이름: 거지태공망
2011/10/7(금)
한국의 명 단편 ^^  
 한국의 명단편


 편저자:편집부
 펴낸이:이종문
 펴낸곳:국일 미디어



        차례

 책머리에
 소년의 비애:이광수
 배따라기:김동인
 감자:김동인
 화수분:전영택
 할머니의 죽음:현진건
 운수 좋은날:현진건
 B사감과 러브레터:현진건
 벙어리 삼룡이:나도향
 표본실의 청개구리:염상섭
 사랑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탈출기:최서해
 백치 아다다:계용묵
 레디 메이드 인생:채만식
 돈: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김강사와 T교수:유진오
 날개:이상
 봄 봄:김유정
 아내:김유정
 제일과 제일장:이무영
 별:황순원
 독짓는 늙은이:황순원
 무녀도:김동리
 역마:김동리
 성황당:정비석
 갯마을:오수영
 수난이대:하근찬


    책머리에

 "한 국민의 문학은 곧 그 국민의 희망의 표현이며, 또한 그 국민의 과거의 기록"이라고도 한다.
따라서 한 나라의 문학은 그 국민성에 기초를 두고, 그것에 시대적 영향이 가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들은 한 번쯤은 우리 문학을 읽어 그것을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올바른 정신자세가 진정 필요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삶의 방식에 있어 한층
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부쩍, 대학 입학시험에 국어교과서 밖에 많은 단편소설들이 출제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서는 중, 고고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있지 않은 우수한 대표작품, 27편을
정선하였다. 대개가 우리나라의 대표작가들의 작품들로써, 그것에는 초기에 출세작도 있지만,
동시에 작자 개인의 대표작인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본서는 현대의 대표적 단편 작가의 작품만을 체계적으로 모아 작품 본위의
'현대소설사'가 되기를 약속한다. 그 뜻은 모든 사람들이 우리 문학의 대표적 작품을 읽어서
우리 문학의 향수를 체득할 수 있는 바램을 내포한다. 또한 계층에 관계없이,
중, 고교학생은 물론, 대학생, 일반인 또는 문학 동호인들에게 문학작품의 감상 또는
연구자료로, 문학 취미의 함양을 목표로 편집하였다.
 아무쪼록 독자들에게 "좋은 책"으로 이바지되기를 바랄 뿐이다.

 1990년 3월 19일
 편집부 드림


    이광수 (1892__?)
 우리나라의 신문학의 실질적인 선구자로서, 최남선과 더불어 언문일치의 현대적인 신문장
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단편이라는 소설의 형식이 비교적 흔하지 않던 시절에, 신소설의 낡은
테를 벗기고 이 방면을 새롭게 한 선구자적인 역할은 높이 인정할 만하다. 그러한 뜻에서 춘원의
단편중 비교적 좋은 수준에 속하여 본격적인 단편문학이라 볼 수 있는 "소년의 비애"를 소개한다.
이 작품은 1917년부터 기미 이전까지 "청춘"지에 발표된 것으로써 계몽주의적 정신이 짙게
반영된, 신교육의 필요성과 종래의 유교적 인습에 따른 결혼제도의 비판을 은연중에 시사한
육친간의 이성애를 그린 작품이다.

    소년의 비애
    "청춘" 제8호 1917. 6.

   1

 난수는 사랑스럽고 얌전하고 재주 있는 처녀라. 그 종형 되는 문호는 여러 자매들을 다
사랑하는 중에도 특별히 난수를 사랑한다.
 문호는 이제 18세 되는 시골 어느 중등 정도 학생인 청년이나, 그는 아직 청년이라고 부르기를
싫어하고 소년이라고 자칭한다. 그는 감정적이요, 다혈질인 재주 있는 소년으로 학교성적도 매양
1, 2호를 다투었다.
 그는 아직 여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가 교제하는 여자는 오직 종매들과 기타 4, 5인 되는
족매들이라, 그는 천성이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부친보다도 모친께, 숙부보다도 숙모께,
형제보다도 자매께 특별한 애정을 가진다.
 그는 자기가 자유로 교제할 수 있는 모든 자매들을 사랑한다. 그중에도 자기와 연치가
상적하거나 혹 자기보다 이하 되는 매들을 더욱 사랑하고 그중에서도 그 종매 중에 하나인
난수를 더욱 사랑한다.
 문호는 뉘 집에 가서 오래 앉았지 못하는 성급한 버릇이 있건마는 자매들과 같이 있으면 세월
가는 줄을 모른다.
 그는 자매들에게 학교에서 들은 바, 또는 서적에서 읽은 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여 자매들을
웃기기를 좋아하고, 자매들도 또한 문호를 왜 그런지 모르게 사랑한다.
 그러므로 문호가 집에 온 줄을 알면 동중의 자매들이 다 회집하고, 혹은 문호가 간 집 자매가
일동을 청하기도 한다.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 오전에는 으레 문호가 본촌에 돌아오고, 본촌에 돌아오면 으레
동중자매들이 쓸어 모인다. 혹 문호가 좀 오는 것이 늦으면 자매들은 모여 앉아서 하품을 하여
가며 문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혹 그중에 어린 누이를--가령 난수 같은 것은 앞고개에 나가서
망을 보다가 저편 버드나무 그늘로 검은 주의에 학생창을 잦혀 쓰고 활활 활개치며 오는 문호를
보면 너무 기뻐서 돌에 발부리를 채며 뛰어내려와 일동에게 문호가 저 고개 너머 오더라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면 회집한 일동은 갑자기 회색이 나고 몸이 들먹거려 혹, "어디까지 왔더냐?" 하는 자도
있고 혹, "저 고개턱까지 왔더냐?" 하는 자도 있고, 혹 난수의 말을 신용치 아니하여, "저것이 또
거짓말을 하는 게지" 하고 눈을 흘겨 난수를 보는 자도 있다. 학교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시험
때가 되어 문호가 혹 아니 올 때엔 난수가 고개에서 망을 보다가 거짓 보도를 한 적도 한두번
있은 까닭이다.
 이러한 때엔 자매들은 대문밖에 나섰다가 웃으며 마주 오는 문호를 반갑게 맞는다. 어린
누이들은 혹 손도 잡고 매어 달리고, 혹 어깨에 올려 업히기도 하고, 혹 가슴에 와 안기기도 하며
좀 낫살 먹은 누이들은 얼른 문호의 손을 만지고 물러서기도 하고, 조금 문호의 옷을 당기어
보기도 하고, 혹 마주보고 빙긋이 웃기만 하기도 한다.
 난수도 작년까지는 문호의 손에 매어 달리더니 금년부터 조금 손을 잡아 보고 얼굴이 빨개지며
물러서게 되고 작년까지 문호의 가슴에 안기던 연수라는 난수의 동생이 손을 잡고 매어 달리게
된다. 그리고는 문호의 집에 몰려 들어가 문호의 자친께 매어 달리며 어리광을 부린다.
 문호는 중앙에 웃으며 앉고, 일동은 문호의 주위에 돌아 앉는다. 그러나 그네와 문호와의
자리의 거리는 연령에 정비례한다. 제일 나이 많은 누이가 제일 멀리 앉고 제일 나이 어린
누이가 제일 가까이 앉거나 혹 문호의 무릎에 기대기도 하고 문호의 어깨에 걸어 엎디기도 한다.
문호는 이런 줄을 안다. 그리고 슬퍼한다. 이전에는 서로 안고 손을 잡고 하던 누이들이 차차차차
가까이 앉기를 그치고 손을 잡기를 그치고 피차의 사이에 점점 다소의 거리가 생기는 것을 보고
문호는 슬퍼하였다.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자연히 비감한 생각이 남을 금하지 못하였다.
 사십이 넘은 문호의 어머니는 그 어린 질녀들을 잘 사랑하였다. 그는 문중에도 현숙하기로
유명하거니와 문호에게는 모범적 부인과 같이 보인다.
 문호는 자기가 아는 부인들 중에 그 모친과 숙모(난수의 모친)를 가장 애경한다. 도리어 그
모친보다도 숙모를 더욱 애경한다. 그래서 4, 5세 적에는 꼭 숙모의 곁에 자려 하였다.
 한 번은 그 모친이, "문호는 나보다도 동서를 더 따라!" 하고 시기 비슷하게 탄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호는 모친과 숙모를 평등하게 애경한다. 그러나 친누이 되는 지수보다도 종매
되는 난수를 더 사랑하였다.
 문호의 종제 문해도 문호와 막형막제한 쾌활한 소년이다. 종제라 하건만 문해는 문호보다
이십여 일을 떨어져 났을 뿐이라, 용모나 거동이 별로 다름은 없었다. 그러나 문해는 그 모친의
성격을 받아 문호보다 좀 냉정하고 이지적이라 문호는 문해를 사랑하건만 문해는 문호의
감정적인 것을 싫어하였다. 그러므로 문호가 자매들 속에 섞여 노는 것을 항상 불만히 여겼다.
그러므로 문해는 자매에게 일종의 존경은 받으나 친애는 받지 못하였다.
 문해는 자매들이 자기를 외경하므로 자기의 '젊지 아니하다'는 자랑을 삼고 문호에 비하여
인격이 일층 위인 것으로 자처하였다.
 문호는 문해의 자기에 대한 감정을 아주 모름은 아니나 이는 문해가 아직 자기를 이해하기에
너무 유치한 것이라 하여 그리 괘념치도 아니하였다.
 이렇게 종형제간에 연치의 점장함을 따라 성격의 차이가 있으면서도 양인간에는 여전히 따뜻한
애정이 있었다.
 물론 문호가 항상 문해를 더 사랑하고 문해는 문호에게 대하여 가끔 반감도 일으키건마는.

   2

 문호가 집에 돌아오면 문호의 모친이 혹 떡도 하고 닭도 잡아 문호를 먹인다. 그러할 때에는
반드시 문해와 문호를 따르는 여러 자매들도 함께 먹인다.
 모친은 아랫목에 앉고 문호와 문해는 웃목에서 겸상하고 자매들은 모친을 중심으로 하고
좌우에 갈라 앉아서 즐겁게 이야기도 하고, 혹은 먹을 것을 서로 빼앗고 감추기도 하면서 방안이
떠들썩하도록 떠들며 먹는다.
 문호의 부친이 문밖에서, "왜 이리 떠드느냐?" 하면 일동이 갑자기 말소리를 그치고 어깨를
움츠리다가 부친이 문을 열어 보고, "장군 모이듯 했구나" 하고 빙긋이 웃고 나가면 여전히
떠들기를 시작한다.
 이것을 보고 문호는 더할 수 없이 기뻐하건마는 문해는 양미간을 찌푸린다. 그러할 때에는
난수도 웃고 지껄이기를 그치고 걱정스러운 듯이, 원망스러운 듯이, 문해의 눈을 본다. 그러다가
문호의 웃는 얼굴을 보면 또 웃는다. 이러다가 식후가 되면 문호와 문해는 웃간에 올라가서 무슨
토론을 한다.
 그네의 토론하는 화제는 흔히 중국과 서양의 위인에 관한 것이라, 여기도 두 사람의 성격의
차이가 드러난다.
 문호는 이백, 왕창령 같은 중국 시인이나 톨스토이, 사옹, 괴에테 같은 서양시인을 칭찬하며,
문해는 그러한 시인은 대개 인생에 무익한 나타자라고 매도하고 공맹, 주자라든가 서양이면
소크라테스, 워싱턴 같은 사람을 찬송한다.
 양인이 다 어떤 의미로 보아 문학에 뜻이 있는 것은 공통이었다. 그러나 문호가 미적, 정적
문학을 애함에 반하여 문해는 지적, 선적 문학을 애한다.
 즉 문해는 문학을 사회를 교화하는 한 방편으로 여기되 문호는 꽤 분명하게 예술지상주의를
이해한다.
 이러한 토론을 할 때에는 자매들은 자기네끼리 무슨 이야기를 한다. 실로 차동 중에 양인의
담화를 알아듣는 사람은 양인 외에 없다. 부친들도 이제는 양인의 지식이 자기네들보다 승한
줄을 속으로는 인정한다. 더구나 자매들은 오직 국문 소설을 읽을 뿐이다.
 원래 문호의 당내는 적이 부요하고 또 대대로 문한가라. 석일에는 여자들도 대개는 "사서"와
"소학" "열녀전" "내칙" 같은 것을 읽더니, 3, 40년래로 점차 3, 4년 전에 문호가 그 자매들을
위하여 소설 1편을 작하고 익년에 문해가 또 소설 1편을 작하였다. 그러나 자매간에는 문호의
소설이 더욱 환영되었고 문해도 자기의 소설보다 문호의 소설을 추장하여 자기 손으로 좋은
종이에다가 문호의 소설을 베끼고 그 표지에, "김문호작, 종제 문해서"라 하고 뚜렷하게 썼다.
 문호의 부친도 이것을 보고 양인의 정의의 친밀함을 찬탄하고 또 그 아들의 손으로 된 소설을
일독하였다.
 "이런 것을 쓰면 사람을 버리나니라" 하고 책망은 하면서도 15세 된 문호의 재주를 속으로
기뻐하기는 하였다. 그리고 과거제도가 폐하지 아니하였던들 문호와 문해는 반드시 대과에 장원
급제를 할 것인데, 하고 아깝게 여겼다.

   3

 문호는 난수를 시인의 자질이 있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노래나 시를 읽어 주면 난수는 손으로
무릎을 치며 좋아하고, 또 즉시 그것을 암송하며 유치하나마 비평도 한다.
 문호는 이것을 기뻐하여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반드시 새로운 노래나 시나 단편 소설을
지어 가지고 온다. 난수도 문호가 돌아올 때마다 이것을 기다린다. 그러나 문호의 친누이는
난수와 동갑이요, 재주도 있건마는 문호가 보기에 난수만큼 미를 감수하는 힘이 예민치 못하다.
 그러므로 문호가, "얘 지수야, 너는 고운 것을 볼 줄을 모르는구나" 하고 경멸하는 듯이 말하면
지수는 얼굴이 빨개지며, "내야 아나, 난수나 알지" 하고 눈물 괸 눈으로 문호의 얼굴을 힐끗
본다. 이렇게 되면 문호는 지수의 우는 것이 불쌍하여 머리를 쓸며, "아니, 너도 남보다야 낫지,
그러나 난수가 너보다 더 낫단 말이지" 한다.
 과연 지수도 재주가 있다.
 그러나 지수는 문호보다 문해와 동형이라, 말이 적고 지혜롭고 침착하고...그러므로 지수는
문호보다 문해를 사랑한다.
 한 번은 문호가 난수와 지수 있는 곳에서 문해더러, "얘 문해야, 참 이상하구나. 난수는 나를
닮고 지수는 너를 닮았구나, 흥, 좋지, 한 집에서 시인 둘하고 도덕가 둘이 나면 그 아니
영광이냐"하였다.
 문해도 지수의 머리를 쓸며, "지수야, 너와 나와는 도덕가가 되자. 형님과 난수와는 시인이
되어 술주정이나 하고" 하고 일동이 웃었다. 더욱이 평생을 불만한 마음을 품던 지수는 이에
비로소 문호에게 대하여 나도 평등이거니 하는 위로를 얻었다. 그러고 문해에게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졌다.
 다른 누이들 중에도 난수의 형 혜수가 매우 재주가 있다. 그는 차동중 청년여자계 문학으로
최선각자라. 국문소설을 유행케 한, 말하자면 차문중에 신문단을 건설한 자는 문호의 고모라.
그는 오래 외가에서 길러나는 동안에 내종제자의 영향을 받아 국문소설을 애독하게 되고 14세
외가에서 올 때에 "숙향전" "사씨남정기" "월봉기" 같은 국문소설을 가지고 와서 동중 여러
처녀들에게 일변 국문을 가르치며 일변 소설을 권장하였다.
 마침 문중에 존경을 받는 문호의 조모가 노년에 소설을 편기하므로 문호의 부친 형제의 다소한
반대도 효력이 없고 국문문학의 세력은 점점 문호의 당내 여자계에 침윤하였다.
 그러므로 문호와 문해의 집 부인네도 처음에는 국문도 잘 모르더니, 지금은 열렬한 문학
애호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네는 며느리 된 몸이라 딸 된 자와 같이 자유롭지 못하므로 겨우 명절 때를 타서
독서할 뿐이요, 그밖에는 누이들의 틈에 끼어서 조금씩 볼 뿐이었다.
 이 모양으로 김문여자계에 문학을 수립한 자는 문호의 고모로되, 그 고모는 출가한 지 삼년이
못하여 요절하고 문학계는 군웅할거의 상태라. 그중에 문호의 재종매 되는 자가 가장 유력하나
그는 가세가 빈한하여 독서할 틈이 없고 그 남아는 대개 재질이 둔하여 장족의 진보가 없고
현재에는 지수와 난수가 문학계의 쌍대성이라.
 그러나 난수는 훨씬 지수보다 감수성이 예민하다.
 그래서 문호는 한사코 난수를 공부를 시키려 하건마는 문호의 계부는, "계집애가 공부는 해서
무엇하게" 하고 언하에 거절한다.
 문해도 난수를 공부시킬 마음이 없지 아니하건마는 워낙 냉정하여 열정이 없는데다가 부모의
명령에 절대로 복종하는 미질이 있고, 난수 당자는 아직 공부가 무엇인지 모르므로 부모에게
간구도 아니하며 문호 혼자서 애를 쓸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중학교를 마치고서 서울에 갈 때에는 반드시 지수를 데리고 가리라. 될 수만
있으면 난수도 데리고 가리라, 하고 어서 명춘이 돌아오기만 기다린다.

   4

 그해 가을에 16세 되는 난수는 모 부가의 15세 되는 자제와 약혼이 되었다. 문호가 이 말을
듣고 백방으로 부친과 계부에게 간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문호는 난수에게, "얘 시집가기 싫다고 그래라. 명춘에 내 서울 데려다 줄 것이니" 하고
여러 말로 충동하였다. 그러나 난수는, "내가 어떻게 그러겠소. 오빠가 말씀하시구료" 한다.
 난수는 미상불 남자를 대하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어서 혼인날이 와서 그 신랑 되는
자의 얼굴도 보고 안겨도 보았으면 하는 생각조차 없지 아니하였다.
 난수는 지금껏 가장 정답게 사랑하던 문호보다도 아직 만나지 아니한 어떤 남자가 그립다 하게
되었다.
 문호는 난수의 이 말에, "엑, 못생긴 것!" 하고 눈물이 흐를 뻔하였다. 그리고 아까운 시인이
그만 썩어지고 마는 것을 한탄도 하였다. 또 자기가 가장 사랑하던 누이를 어떤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깝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였다. 마치 영국 시인 워어즈 워어드가 그 누이와
일생을 같이 보낸 모양으로 자기도 난수와 일생을 같이 보냈으면 하였다.
 얼마 있다가 신랑 되는 자가 천치라는 말이 들려 온다. 온 집안이 모두 걱정하였다. 그러나
그중에 제일 슬퍼한 자는 문호라.
 문호의 부친이 이 소문의 허실을 사실할 양으로 5, 60리 정도 되는 신랑가를 방문하여 신랑을
보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좀 미련한 듯하더라마는 그래야 복이 있나니라" 하고 혼인은 아주
확정되었다. 그러나 전하는 말을 듣건대 신랑은 논어 일행을 삼일에도 못 된다는 등, 코와 침을
흘리고 어른께도 '너, 나' 한다는 둥, 지랄을 부린다는 둥, 눈에 흰자위 뿐이요, 검은자위가
없다는 둥, 심지어 그는 고자라고 소문까지 들려서 문호의 조모와 숙모는 날마다 눈물을 흘리고
약혼한 것을 후회한다.
 난수도 이런 말을 듣고는 안색에 드러내지는 아니하여도 조그마한 가슴이 편할 날이 없어서 혹
후원에 돌아가 돌을 던져 이 소문이 참인가 아닌가 점도 해 보고, 문호의 시키는 대로, "나는
시집가기 싫소" 하고 떼를 쓰지 아니한 것도 후회도 하였다.
 문호는 이 말을 듣고 울면서 계부께 간하였다. 그러나 계부는, "못한다. 양반의 집에서 한번
허락한 일을 다시 어찌한단 말이냐, 다 제 팔자지" "그러나 양반의 체면은 잠시 일이지요. 난수의
일은 일생에 관한 것이 아니오니까. 일시의 체면을 위하여 한 사람의 일생을 희생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하였으나 계부는 성을 내며, "인력으로 못하느니라" 하고는 다시 문호의 말을
듣지도 아니한다. 문호는 그 '양반의 체면' 이란 것이 미웠다. 그리고 혼자 울었다. 그날 난수를
만나니 난수도 문호의 손을 잡고 운다.
 문호는 난수를 얼마 위로하다가, "다 네가 약한 죄로다. 왜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왈칵 난수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 나왔다.
 그러나 문해는 울지 아니한다. 물론 문해도 난수의 일을 슬퍼하지 아니함은 아니나, 문해는
그러한 일에 울 만한 열정이 업고, 그 부친과 같이 단념할 줄을 안다. 그러나 문호는 이것은 그
계부가 난수라는 여자에게 대하여 행하는 대죄악이라 하여 그 계부모의 무지 무정함을
원망하였다. 이 혼인 때문에 화락하던 문호의 집에는 밤낮 슬픈 구름이 가리었다.

   5

 혼인날이 왔다. 소를 잡고 떡을 치고 사람들이 다 술에 취하여 즐겁게 웃고 이야기한다. 동네
부인들은 새옷을 갈아입고 난수의 집 부엌과 마당에서 분주히 왔다갔다 한다.
 문호의 부친과 계부도 내외로 다니면서 내빈을 접대한다. 그러나 그 양미간에는 속일 수 없는
근심이 보인다. 문해도 그날은 감투에 갓을 받쳐 쓰고 분주하다.
 그러나 문호는 두루마기도 아니 입고 집에 가만히 앉았다. 혼인날이라고 고모들과 시집간
누이들이 모여들어 문호의 집 안방에는 노소 여자가 가득히 차서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운 정회를
토론한다. 늙은 고모들은 혹 눕기도 하고 젊은 누이들은 공연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마치 오랫동안 시집에 있어서 펴지 못하던 기운을 일시에 다 펴려는 것 같다. 가는
말소리 굵은 말소리가 들리다가는 이따금 즐거운 웃음소리가 합창 모양으로 들린다. 그러나
문호는 별로 이야기 참례도 아니하고 한편 구석에 가만히 앉았다. 시집간 누이들과 집에 있는
누이들이 여러 번 몰려와서 문호를 웃기려 하였으나 마침내 실패에 종하였다
 문호의 어머니가 음식을 감독하다가 문호가 아니 보임을 보고 문호를 찾아와서.
 "얘, 왜 여기 앉았느냐. 나가서 손님 접대나 하지 그려. 어디 몸이 편치 아니하냐?" 하여도
문호는 성난 듯이 가만히 앉았다. 여기저기서 취한 사람들의 웃고 지껄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문호는 분노한 듯이 주먹을 부르쥐었다.
 난수는 형들 틈에 앉았다가 시끄러운 듯이 뛰어나온 문호의 곁에 들어와 앉는다. 형들은
난수를 대하여 '좋겠구나' '기쁘겠구나' '부자라더라'...이러한 농담을 하였다. 그러나 난수는
이러한 농담을 들을 때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하였다.
 난수는 문호의 어깨에 기대며 문호의 눈을 본다. 문호는 난수의 눈을 보았다. 그 눈에는 절망과
단념의 빛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난수는 다만 신랑이 천치라는 말에 근심이 되고 절망이 될
뿐이요, 이 사건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할 줄을 모르고 다만 나는 불가불 천치와 일생을
보내게 되거니 할 뿐이다.
 문호는 눈물을 난수에게 아니 보일 양으로 고개를 돌리며, "아깝다. 그 얼굴에 그 재주에
천치의 아내 되기는 참 아깝고 절통하다" 하고 어느 준수한 총각이 있으면 그와 난수를
부부를 삼아 어디로나 도망을 시키라 한다. 차라리 부모의 억제로 마음 없는 곳에
시집가기보다는 자기 마음에 드는 남자와 도망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문호는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난수를 보며 사랑스러운 마음과 불쌍한 마음과 아까운 마음과 천치 신랑이 미운 생각이
한데 섞여 나온다.
 문호는 난수의 손을 힘껏 쥐었다. 난수도 문호의 손을 힘껏 쥔다. 그리고 이빨로 가만히 문호의
팔을 물고 바르르 떤다. 문호는 무슨 결심을 하였다.
 신랑이 왔다.
 신랑을 맞는 일동은 모두 다 낙심하고 고개를 돌렸다. 비록 소문이 그러하더라도 설마
저렇기야 하랴 하였더니 실제로 보건댄 소문보다 더하다.
 머리는 함부로 크고 싯뻘건 얼굴이 두 뺌이나 길고 커다란 눈은 마치 쇠눈깔과 같고 커다란
입은 헤벌려서 걸찍한 침이 턱에서 떨어진다.
 문호의 숙모는 이 꼴을 보고 문호 집 안방에서 뛰어들어와 이불을 쓰고 눕고, 지금껏 웃고
떠들던 고모들과 누이들도 서로 마주보기만 하고 아무 말도 없다. 다만 문호의 부친 형제와
문해가 웃을 때에는 웃기도 하면서 여전히 내빈을 접하고 동네 부인네와 남자들이 분주할
뿐이요, 양가 가족들은 모두 다 낙심하여 앉았다.
 문호는 한참이나 신랑을 보다가 집에 뛰어들어와 난수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난수는 문호의
등에 얼굴을 대고 운다. 문호는 저고릿등이 눈물에 젖어 따뜻함을 깨달았다. 이때에는 혜수가
와서 난수를 안아 일으키며, "얘, 난수야, 오라비 두루마기 젖는다. 울기는 왜 우느냐, 이 기쁜 날"
하고 난수를 달랜다. 난수는 속으로, '흥, 제 서방은 얼굴도 똑똑하고 사람도 얌전하니까' 하였다.
 과연 혜수의 남편은 얼굴이 어여쁘고 얌전도 하였다. 아까 그가 신랑을 맞아들여 갈 때에
중인은 양인들 비교하고 혜수와 난수의 행불행을 생각지 아니한 자가 없었다. 난수가 처음에
기다리던 신랑은 혜수의 신랑과 같은 자 또는 문화나 문해와 같은 자러라.
 밤이 왔다.
 문호는 어디서 돈 오원을 구하여 가지고 가만히 난수에게, "얘 이제 나하고 서울로 가자. 이
밤차로 도망하자. 가서 내가 공부하도록 하여주마" 하였다.
 그러나 난수는 문호의 말에 다만 놀랄 뿐이요, 응할 생각은 없었다.
 "서울로 도망!"
 문호는, "얘 이 못생긴 것아, 일생을 그 천치의 아내로서 지낼 터이냐" 하며 팔을 끌었다.
그러나 난수는 도망할 생각이 없다.
 문호는 울어 쓰러지는 난수를 발길로 차며, "죽어라 죽어!" 하고 꾸짖었다. 그러고 외따른 방에
가서 혼자 누웠다.
 혜수의 신랑이 들어와, "자, 나하고 자세" 하고 문호의 곁에 눕는다. 문호는 또 난수의 신랑과
혜수의 신랑을 비교하고 난수를 불쌍히 여기는 정이 격렬하여진다. 그리고 혜수의 신랑의
아름다운 얼굴과 자기의 얼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듯하는 웃음을 보고 문호도 빙긋이 웃는다.
 혜수의 신랑은, "여보게, 그 신랑이란 자가..." 하고 웃음이 나와서 말을 이루지 못하면서 겨우,
"내가 떡을 권했더니 먹기 싫다고 밥상을 발길로 차데 그려. 그래 방바닥에 국이 쏟아지고"
하면서 자기의 젖은 바지를 보이며 웃는다. 문호도 그 쇠눈깔 같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발길로
차던 모양을 상상하고 웃음을 금치 못하였다.
 혜수의 신랑도 혜수에 비기면 열등하였다. 그는 지금 17세이나 아직 사숙에서 맹자를 읽을
뿐이라 도저히 혜수의 발달한 상상력과 취미에 기급치 못할 뿐더러 혜수의 정신력이 자기보다
우월한 줄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직 유취소아였다.
 그러므로 혜수도 부에게 대하여 일종 경멸하는 감정을 가진다. 그러나 문호나 혜수나 다같이
그의 용모의 미려함과 성질의 온순 냉철함을 사랑한다.
 이튿날 아침에 문호는 계부의 집에 갔다. 아랫방 아랫목에 난수가 비단옷을 입고 머리를
쪽지고 앉은 모양을 문호는 말없이 물끄러미 보았다.
 난수는 얼른 문호의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린다. 문호는 그 비단옷과 머리의 변한 것을 볼
때에 형언치 못할 비애와 혐오를 깨달았다.
 난수가 작야에 저 천치와 한자리에 잤는가, 혹은 저 천치에게 처녀를 깨뜨렸는가 생각하매
비분한 눈물이 흐르려 한다.
 난수의 주위에 둘러앉았던 고모들과 누이들은 문호의 불평하여 하는 안색을 보고 웃기와
말하기를 그친다.
 지수는 문호의 팔을 떼밀치며, "오빠는 나가시오" 한다.
 난수도 문호의 심정을 대강은 짐작한다. 그러나 문호는 입술로 '쩝쩝'하는 소리를 내며, 난수의
돌아앉은 꼴을 본다. 그러고 속으로 '아아 만사 휴의로구나'한다. 왜 저렇게 어여쁘고 얌전하고
재주 있는 처녀를 천치의 발앞에 던져주어 짓밟히게 하는가 생각하매 마당과 방안에 왔다갔다
하는 인물들이 모두 다 난수 하나를 못되게 만들고 장난감을 삼는 마귀의 무리들같이 보인다.
힘이 있으면 그 악한 무리들을 온통 때려 부수고 그 무리들의 손에서 죽는 난수를 구원해내고
싶다.
 문호의 눈에 난수는 죽은 사람이로다. 이런 생각을 할 때에 지수는 또 한번, "어서 오빠는
나가세요!" 하고 떼밀친다.
 그제야 비로소 난수를 보던 눈으로 지수를 보았다. 지수의 눈에는 사랑과 자랑의 빛이 보인다.
문호는 지수나 잘되도록 하리라 하고 나온다.
 나와서 바로 집으로 오려다가 혜수의 신랑한테 끌려 신랑방으로 들어갔다. 혜수의 신랑은
신랑의 우스운 꼴을 구경하려고 문호를 끌고 들어가는 것이다. 신랑방에는 소년들이 많이 모였다.
 혜수의 신랑이 신랑의 곁에 앉으며, "조반 자셨나?" 하고 인사를 한다. 신랑은 침을 질질
흘리며 헤하고 웃는다. 그래도 어저께 자기를 맞던 사람을 기억하는구나 하고 문호는 코웃음을
하였다.
 곁에서 누가 문호를 신랑에게 소개한다. " 이 이가 신랑의 처종형일세"
 그러나 신랑은 여전히 침을 흘리며 다만 '처종형?' 하고 문호의 얼굴을 본다. 그 눈이 마치
죽은 쇠눈깔 같이 보여 문호는 구역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속으로 '아아 저것이 내
난수의 배필!' 하였다.

   6

 익년춘에 문호는 동경으로 유학을 갔다가 이태 되는 여름에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앞고개에는
이미 난수의 나와 맞음이 없고, 대문 밖에는 웃고 맞아 주던 자매들이 보인다.
 문호가 동경 갈 때에 십여 세 되던 자매들이 지금은 12, 3세의 커다란 처녀가 되어 역시
반갑게 문호를 맞는다. 그러나 그 처녀들은 결코 문호의 친구가 아닐러라.
 문호는 방에 들어가 이전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처녀들도 이전 모양으로 문호를
중심으로 하고 둘러앉는다. 그러고 처녀들도 이전 모양으로 문호를 중심으로 하고 둘러앉는다. 그
어머니는 여전히 닭을 잡고 떡을 만들어 문호와 둘러앉은 처녀들을 먹인다. 그러나 삼년 전에
있던 즐거움은 영원히 스러지고 말았다.
 문호는 울고 싶었다. 그러나 삼년 전과 같이 눈물이 흐르지 아니한다. 문호는 마주앉은 문해의
까맣게 난 수염을 본다. 그러고 손으로 자기의 턱을 쓰며, "문해야, 우리 턱에도 수염이 났구나"
하며 턱 아래 한 치나 자란 외대 수염을 툭툭 잡아채며 웃는다.
 문해도 금석의 감을 금치 못하면서 코 아래 까맣게 난 수염을 만진다. 처녀들도 양인의 수염을
만지는 것을 보고 웃는다. 그러나 그네는 양인의 뜻을 모른다.
 모친은 어린아이둘을 안아다가 문호의 앞에 놓는다. 물끄러미 검은 양복 입은 문호를 보도니
토실토실한 팔을 내어두르고 '으아' 하고 울면서 모친의 무릎으로 기어간다.
 모친은 두 아이를 안으면서, "이 애들이 벌써 세 살이 되었구나" 한다. 문호는 하나이 자기의
아들이요, 하나이 문해의 아들인 줄은 아나, 어느 것이 자기의 아들인 줄을 몰라 우두커니 우는
아이들을 보고 앉았다가 자탄하는 모양으로 "흥, 우리도 벌써 아버질세 그려. 소년의 천국은
영원히 지나갔네 그려" 하고 웃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괸다.
 가만히 문호를 보고 앉았던 모친의 얼굴에도 전보다 주름이 많게 되었다.
 문호는 정신 없는 듯이 모친만 보고 앉았다. 집앞 버드나무에서는, "꾀꼬리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동인(1900__1951)
 우리나라 최초의 순문예지 "창조"의 동인으로서, 본격적인 근대소설의 정립을 이루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조" 창간호 (1919년 2월)에 실린 "약한 자의 슬픔"을 비롯하여
"배따라기", "감자", "광화문",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김연실전" 등의
우수한 단편을 발표하여 자연주의 경향, 예술지상주의 경향 또는 민족주의 경향으로
평판이 높았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 단편소설 작가로서 자연주의 문학을 씨뿌린
공로자다, 그리고 그는 소설의 문장에 유독 관심을 가져 문체의 전환은 물론 확연한 서제에
의한 문장 표현, 삼인칭 단수인 '그'의 의식적인 사용을 주장하였다.

    배따라기
    "창조" 1921. 5.

 좋은 일기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우리 사람으로서는 감히 접근치 못할 위엄을 가지고
높아서 우리 조그만 사람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 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게 뭉글뭉글 엉키는 분홍빛 구름으로써, 우리가 서로 손목을 잡자는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내리는 대동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딩굴고 있었다.
 이 날은 삼월 삼질, 대동강에 첫 뱃놀이 하는 날이다. 까아맣게 내려다 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요리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봄 향기에 취한 형형색색의
선율이 우단보다도 부드러운 봄 공기를 흔들면서 내려온다. 그리고 거기서는 기생들의 노래와
함께 날아오는 조선 아악은 느리고, 길게, 유창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또 애처롭게 _ 모든 봄의
정다움과 끝까지 조화하지 않고는 안두겠다는 듯이, 대동강에 흐르는 시커먼 봄물, 청류벽에
돋아나는 푸르른 풀어음, 심지어 사람의 가슴 속에 봄에 뛰노는 불붙는 핏줄까지라도, 습기 많은
봄공기를 다리 놓고 떨리지 않고는 두지 않는다.
 봄이다. 봄이 왔다.
 부드럽게 부는 조그만 바람이 시커먼 조선 솔을 깨며, 또는 돋아나는 풀을 스치고 지나갈 때의
그 음악은, 다름 데서는 듣지 못할 아름다운 음악이다.
 아아, 사람을 취케 하는 푸른 봄의 아름다움이여! 열 다섯 살부터의 동경생활에 마음껏 이런
봄을 보지 못하였던 나는, 늘 이것을 보는 사람보다 곱 이상의 감명을 여기서 받지 않을 수 없다.
 평양성 내에서는 겨우 툭툭 터진 땅을 헤치며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새기와 돋아나려는
버들의 어음으로 봄이 온 줄 알 뿐, 아직 완전히 봄이 안 이르렀지만, 이 모란봉 일대와,
대동강을 넘어 보이는 '가나안' 옥토를 연상시키는 장림에는 마음껏 봄의 정다움이 이르렀다.
 그리고 꽤 자란 밀 보리들로 새파랗게 장식한 장림의 그 푸른 빛, 만족한 웃음을 띠고 그 벌에
서서 내다보는 농부의 모양은 보지 않아도 생각할 수가 있다.
 구름은 자꾸 하늘을 날아 다니는 모양이다. 그 밀 위에 비치었던 구름의 그림자니, 그 구름과
함께 저 편으로 몰려가며, 거기는 세계를 아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새로운 녹빛이 퍼져 나간다.
바람이나 조금 부는 때는, 그 잘 자란 밀들은 물결과 같이 누웠다 일어났다, 일록일청으로 춤을
춘다. 그리고 봄의 한가함을 찬송하는 솔개들은 높은 하늘에서 둥그러미를 그리며 더욱 더
아름다운 봄의 향그러움을 더한다.

 다스한 봄정에
 솟아나리다
 다스한 봄정에
 솟아나리다

 나는 두어 번 소리나게 읊은 뒤에 담배를 붙여 물었다. 담뱃내는 무럭무럭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에도 봄이 왔다.
 하늘은 낮았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넉넉히 만질 수가 있으리 만큼 하늘은 낮다. 그리고
그 낮은 하늘보다는 오히려 더 높이 있는 듯한 분홍빛 구름은 뭉글뭉글 얽히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나는 이러한 아름다운 봄경치에, 이렇게 마음껏 봄의 속삭임을 들을 때는 언제든 '유토피아'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시시각각으로 애를 쓰며 수고하는 것은 그 목적이 무엇인가? 역시
'유토피아' 건설에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생각할 때는 언제든 그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며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진 나라 시황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어찌하면 죽지를 아니할까 하여 동남동녀 삼백을 배를 태워 불사약을 얻으러
떠나보내며, 예술의 사치를 다하여 아방궁을 지으며, 매일 신하 몇 천명과 잔치를 즐기며,
이리하여 여기 한 '유토피아'를 세우려던 시황은 몇 만의 역사가가 어떻다고 욕을 하던, 그는
참말로 참말의 향락자며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위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만한 순전한 용기
있는 사람이 있고야 우리 인류의 역사는 끝이 날지라도 하나의 사람을 가졌었다고 할 수 있다.
 "큰 사람이 댔다."
 하면서 나는 머리를 들었다.
 이때에 기자묘 근처에는 이상한 슬픈 소리가 떨리면서 봄공기를 진동시켜 날아오는 것을
들었다. 나는 무심중 귀를 기울였다.
 영유 '배따라기'다. 그것도 웬만한 광대나 기생은 발꿈치도 미치지 못하리만큼, 그만큼 그
'배따라기'의 주인은 잘 부르는 사람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천후토 일월성신
 하나님전 비나이다
 실날같은 우리 목숨
 살려 달라 비나이다
 에--야 어그여 지여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에 저편 아래 물에서 장구소리와 함께 기생의 노래가 울리어 오며,
'배따라기'는 그만 안 들리게 되었다.
 나는 이년 전 한 여름을 영유서 지내본 일이 있다. 배따라기의 본 고장인 영유를 몇 달 있어
본 사람은 그 배따라기에 대하여 언제든 한 속절없는 애처로움을 깨달을 터이다.
 영유, 이름은 모르지만, X산에 올라가서 내다보면 앞은 망망한 황해이니, 거기 저녁 때의
경치를 한 번 본 사람은 영구히 잊을 수가 없으리라. 불덩어리 같은 커다란 시뻘건 해가
남실남실 넘치는 바다에 도로 빠질 듯, 도로 솟아오를 듯 춤을 추며, 때때로 보이지 않는 배에서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오는 것을 들을 때면 눈물 많은 나는 때때로 눈물을 흘렸다. 이로 보아서
어떤 원의 아내가 자기의 모든 영화를 낡은 신과 같이 내어던지고, 뱃사람과 정처없는 물길을
떠났다 함도 믿지 못할 말이랄 수가 없다.
 영유서 돌아온 뒤에도 그 배따라기는 내 마음에 깊이 새겨져서,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고,
언제 한 번 다시 영유를 가서 그 노래를 한 번 더 들어보고, 그 경치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늘 떠나지를 않았다.

 장구소리와 기생의 노래는 멎고, 배따라기만 슬프게 날아온다. 걸걸이 부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때때로는 들을 수가 없으되, 나의 기억과 곡조를 부합하여 들은 배따라기는 여기이다.

 강변에 나왔다가
 나를 보더니만,
 혼비백산하여
 꿈인지 생시인지,
 와르륵 달려들어
 섬섬옥수로 붙어 잡고
 호천망극 하는 말이,
 '하늘로서 떨어지며
 땅으로서 솟아났다
 바람결에 묻어오고
 구름결에 쌔여왔다'
 이리저리 붙들고 울음 울 제,
 인리 제인이며
 일가 친척이 모두 모여...

 여기까지 들은 나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서서 소나무 가지에 걸었던 모자를 내려
쓰고 그 곳을 찾으려 모란봉 꼭대기에 올라섰다. 꼭대기는 좀 더 노래 소리가 잘 들린다. 그는
배따라기의 맨 마지막 여기를 부른다.

 밥을 빌어서
 죽을 쑬지라도
 제발 덕분에
 뱃놈 노릇은 하지 마라
 에야--어그여 지여--

 그의 소리로써 방향을 찾으려던 나는 그만 자리에 섰다.
 "어딘가? 기자묘, 혹은 을밀대?"
 그러나 나는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든 찾아보자 하고 현무문으로 가서 문밖에 썩
나섰다.
 기자묘의 깊은 솔밭은 눈앞에 쫙 퍼진다.
 "어딘가?"
 나는 또 물어 보았다.
 이때에 그는 또 다시 배따라기를 첫 번부터 부른다. 그 소리는 왼편에서 온다.
 왼편이구나 하면서 소리나는 곳을 더듬어 소나무 틈으로 한참 돌다가, 겨우 기자묘 대고는 그
중 하늘이 넓고 밝은 곳에, 혼자서 딩굴고 있는 그를 찾아 내었다. 나의 생각한 바와 같은
얼굴이다. 얼굴, 코, 입, 눈, 몸집이 모두 네모나고 그의 이마의 굵은 주름살과 시커먼 눈썹은
고생 많이 함과 순진한 성격을 나타낸다.
 그는 어떤 신사가 자기를 들여다 보는 것을 보고 노래를 그치고 일어나 앉는다.
 "왜? 그냥 하지요" 하면서, 나는 그의 곁에 가 앉았다.
 "머..." 할 뿐, 그는 눈을 들어서 터진 하늘을 쳐다본다.
 좋은 눈이었다. 바다의 넓고 큼이 유감없이 그의 눈에 나타나 있다. 그는 뱃사람이다. 나는
짐작하였다.
 "고향이 영유요?"
 예, 머 영유서 나기는 했지만 한 이십년 영유를 가 보지두 않아시오."
 "왜, 이십년씩 고향엘 안 가요?"
 "사람의 일이라니 마음대로 됩데까?"
 그는 왜 그러는지 한숨을 짓는다--.
 "그저 운명이 제일 힘셉디다."
 운명의 힘이 제일 세다는 그의 소리엔 삭이지 못할 원한과 뉘우침이 섞여 있다.
 "그래요?"
 나는 다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한참 잠잠하니 있다가 나는 다시 말하였다.
 "자, 노형의 경험담이나 한 번 들어 봅시다. 감출 일이 아니면 한 번 이야기 해 보소."
 "뭘 감출 일은..."
 "그럼 어디 한 번 들어 봅시다 그려."
 그는 다시 하늘을 쳐다 보았다. 그러나 좀 있다가, "하디요." 하면서 내가 담배를 붙이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담배를 붙여 물고 이야기를 꺼낸다.
 "십 구년 전 팔월 열 하룻날 일인데요..." 하면서 그가 이야기한 바는 대략 이와 같은 것이다.
 그의 살던 마을은 영유 고을서 한 이십리 떠나 있는 바다를 향한 조그만 동리이다. 그의 살던
그 조그만 마을(서른 집쯤 되는)에서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는 모두 열 댓에 났을 때 없었고, 남은 친척이라고는 곁집에 딴 살림하는 그의 아우
부처와 자기 부처뿐이었다. 그들 형제가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이고, 또 제일 고기잡이를 잘
하였고, 그 중 글이 있었고, 배따라기도 그 마을에선 빼나게 그 형제가 잘 하였다. 말하자면 그
형제가 그 동리의 대표적 사람이었다.
 팔월 보름은 추석 명절이다. 팔월 열 하룻날, 그는 명절에 쓸 장도 볼 겸 그의 아내가 늘
부러워하는 거울도 하나 사올 겸 장으로 향하였다.
 "당손네 집에 있는 것보다 큰 것이요. ㄴ지 말구요."
 그의 아내는 길까지 따라나오면서 잊지 않도록 부탁하였다.
 "안ㄴ 어." 하면서 그는 떠 오르는 새빨간 햇빛을 앞으로 받으면서 자기 마을을 나섰다. 그는
아내를 '이렇게 말하기는 우습지만 고와했다.' 그의 아내는 '촌에서는 드물게 연연하고도 예쁘게
생겼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내(평양) 덴줏골을 가두 그만한 거 쉽진 않가시오."
 그러니까 촌에서는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남에게 우습게 보이도록 그 부처의 사이는 좋았다.
늙은이들은 계집에게 혹하지 말라고 흔히 그에게 권고하였다.
 부처의 사이는 좋았지만, 아니 오히려 좋으므로 그는 아내에게 시기를 많이 하였다. 품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는 대단히 쾌활한 성질로서 아무에게나 말 잘하고 애교를 잘
부렸다.
 그 동리에서는 무슨 명절이나 되면, 그 집이 그 중 깨끗함을 핑계 삼아, 젊은이들은 모두 그의
집에 모이곤 하였다.
 그 젊은이들은 모두 그의 아내에게 '아주머니'라 부르고, 그의 아내는 아내대로 '아즈바니,
아즈바니'하며 그들과 지껄이고 즐기며, 그 웃기 잘하는 입에는 늘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 편 구석에서 눈만 흘근거리며 있다가, 젊은이들이 돌아간 뒤에는 불문곡직하고
아내에게 덤벼들어, 발길로 차고 때리며 이전에 사다 주었던 것을 모두 거두어 올린다.
 싸움을 할 때에는 언제든 곁집 있는 아우 부처가 말리러 오며, 그렇게 되면 언제든 그는 아우
부처까지 때렸다.
 그가 아우에게 그렇게 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그의 아우는 촌사람에게는 다시 없도록
늠름한 위엄이 있었고, 만날 바닷바람을 쐬었지만 얼굴이 희었다. 이것 뿐으로도 시기가 된다
하면 되지만, 특별히 아내가 그의 아우에게 친절히 하는 데는 그는 속상하여 못견디었다.
 그가 영유를 떠나기 반년 전쯤--다시 말하자면 그가 거울을 사러 장에 갈 때부터 반년 전쯤,
그의 생일날이었다. 그의 집에서는 음식을 차려서 잘 먹었는데, 그에게는 한 버릇이 있어서, 맛
있는 음식은 남겨 두었다가 좀 있다 먹곤하는 것을 예사로 하였다. 그의 아내도 그 버릇을 잘
알 터인데, 그의 아우가 점심때 쯤 오니까 아까 그가 아껴서 남겨 두었던 그 음식을 아우에게
주려 하였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못 주리라'고 암호를 하였지만, 아내는 그것을 보았는지
못보았는지, 그의 아우에게 주어 버렸다. 그의 마음 속이 자못 편치 못하였다. 트집만 있으면
이년을--그는 마음먹었다. 그의 아내는 시아우에게 상을 준 뒤에 물러오다가 그만 그의 발을
조금 밟았다.
 "이년!"
 그는 힘껏 발을 들어서 아내를 냅다 찼다. 그의 아내는 상 위에 거꾸러졌다가 일어난다.
 "이년! 사나이 발을 짓밟는 년이 어디 있어!"
 "거 좀 밟아서 발이 부러뎃쉐까?"
 아내는 낯이 새빨개져서 울음 섞인 소리로 고함친다.
 "이년! 말대답이..."
 그는 일어서서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가만 있거라 이놈의 자식!" 하며 그는 아우를 밀친 뒤에 아내를 되는대로 내려 찧었다.
 "죽일 이년! 나가거라!"
 "죽여라, 죽여라! 난 죽어도 이 집에선 못 나가."
 "못 나가?"
 "못 나가디 않구, 뉘 집이게..."
 이때다, 그의 마음에는 그 못 나가겠다는 아내의 말이 푹 들이 박혔다. 그 이상 때리기가
싫었다. 우두커니 눈만 흘기고 있던 그는,
 "망한 년, 그럼 내가 갈라." 하고 그만 문 밖으로 뛰어 나가서,
 "형님, 어디 갑니까?"
 하는 아우의 말에는 대답도 아니하고 곁 동리 탁주집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가서, 거기 있는
술파는 계집과 술상 앞에 마주 앉았다...
 그날 저녁 얼근히 취한 그는 아내를 위하여 떡을 한 돈 어치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리하여 또 서너 달은 평화가 이르렀다. 그러나 이 평화가 언제까지든 연속할 수는 없었다.
그의 아우로 말미암아 또 평화는 쪼개져 나갔다.
 오월 초승부터 영유 고을 출입이 잦던 그의 아우는 오월 그믐께부터는 고을서 며칠씩 묵어
오는 일이 많았다. 함께 고을에 첩을 얻어 두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이 있은 뒤로 아내는
아우가 고을 들어가는 것을 벌레보다도 싫어하고, 며칠 묵어나오는 때면 곧 아우의 집으로 가서
그와 담판을 하며, 심지어 동서 되는 아우의 처에게까지 못 가게 하지 않는다고 싸우는 일이
있었다. 이때도 전과같이 그의 아내는 그의 아우와 제수와 싸우다 못하여, 마침내 그에게까지
와서 아우가 그런 못된 데를 다니는 것을 그냥 둔다고 해보자 한다. 그 꼴을 곱게 보지 않았던
그는 첫마디로 고함을 쳤다.
 "내게 상관이 무에가? 듣기 싫다."
 "못난둥이. 아우가 그런 델 댕기는 걸 말리지두 못하구!"
 분 김에 이렇게 그의 아내는 고함쳤다.
 "이년, 무얼?"
 그는 벌떡 일어섰다.
 "못난둥이!"
 그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그의 아내는 악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이년! 사나이에게 그따웃 말버릇 어디서 배완!"
 "에미네 때리는 건 어디서 배왔노! 못난둥이!"
 그의 아내는 울음소리로 부르짖었다.
 "상년, 그냥? 나갈! 우리 집에 있디 말구 나갈!"
 그는 내리찧으면서 부르짖었다. 그리고 아내를 문을 열고 밀쳤다.
 "나가지 않으리!" 하고 그의 아내는 울면서 뛰어나갔다.
 "망할 년!"
 토하는 듯이 중얼거리고 그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의 아내는 해가 지고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았다. 일단 내쫓기는 하였지만 그는 아내의
돌아옴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워져서도 그는 불도 안 켜고 성이 나서 우들우들 떨면서,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아내의 참 기쁜 듯이 웃는 소리가 그의 아우 집에서 밤새도록
울리었다. 그는 움찍도 않고 자리에 앉아서 밤을 새운 뒤에, 새벽 동 터올 때 아내와 아우를
죽이려고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들어와서 문을 벌컥 열었다.
 그의 아내로서, 만약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그 문밖에 우두커니 서서 문을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내와 아우를 죽이고야 말았으리라.
 그는 아내를 보는 순간, 마음에 가득 차는 사랑을 깨달으면서 칼을 내어던지고 뛰어나가서
아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년! 하면서 들어오더니 뺨을 물어뜯으면서 함께 이리저리 자빠져서
딩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으되, 다만 '그', '그의 아내', '그의 아우', 세 사람의 삼각
관계는 대략 이와 같았다.
각설--
 거울은 마침 장에 마음에 맞는 것이 있었다. 지금 것과 대보면 어떤 때는 코도 크게 보이고
입이 작게도 보이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리고 그런 촌에서는 둘도 없는 귀물이었다. 거울을
사가지고 장을 본 뒤에, 그는 이 거울을 아내에게 주면 그 기뻐할 모양을 생각하면서 새빨간
저녁 햇빛을 받은, 넘치는 듯한 바다를 안고 자기 집으로, 늘 들리던 탁주 집에도 안 들르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그의 집 안방에 들어설 때에는 뜻도 안 하였던 광경이 그의 눈앞에 벌어져
있었다.
 방 가운데에는 떡상이 있고, 그의 아우는 수건이 벗어져서 목뒤로 늘어지고, 저고리 고름이
모두 풀어져 가지고 한편 모퉁이에 서 있고, 아내도 머리채가 모두 뒤로 늘어지고 치마가 배꼽
아래 늘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의 아내와 아우는 그를 보고 어찌할 줄을 모르는 듯이 움찍도
안하고 서 있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어이 없이 서 있었다. 그러나 좀 있다가 마침내 그의 아우가 겨우 말했다.
 "그 놈의 쥐 어디 갔니?"
 "흥! 쥐? 훌륭한 쥐 잡댔다."
 그는 말을 끝내지 않고 짐을 벗어버리고 뛰어가서 아우의 멱살을 그러쥐었다.
 "형님 정말 쥐가!"
 "쥐? 이놈! 형수와 그런 쥐 잡는 놈 어디 있니?"
 그는 아우의 따귀를 몇 번 때린 뒤에 등을 밀어서 문밖에 집어 던졌다. 그런 뒤에 이제
자기에게 이를 매를 생각하고, 우들우들 떨면서 아랫목에 서 있는 아내에게 달려들었다.
 "이년! 시아우와 그런 쥐잡는 년이 어디 있어!"
 그는 아내를 거꾸러뜨리고 함부로 내리찧었다.
 "정말 쥐가..., 아이 죽갔다!"
 "이년! 너두 쥐? 죽어라."
 그의 팔다리는 함부로 아내의 몸 위에 오르내렸다.
 "아이 죽갔다. 정말 아까 적은이가 왔게 떡 먹으라구 내놓았더니..."
 "듣기 싫다. 시아우 붙은 년이 무슨 잔소리!"
 "아이, 아이 정말이야요. 쥐가 한 마리 나..."
 "그냥 쥐?"
 "쥐 잡을래다가..."
 "상년! 죽얼! 몰에래두 빠데 죽얼..."
 그는 실컷 때린 뒤에 아내도 아우와 같이 등을 밀어내어 쏘았다. 그 뒤에 그의 등에로
 "고기 배때기로 장사해라!" 고 토하였다.
 분풀이는 실컷 하였지만, 그래도 마음 속이 자못 편치 못하였다. 그는 아랫목으로 가서
바람벽을 의지하고 실신한 사람같이 우두커니 서서 떡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서편으로 바다를 향한 마을이라, 다른 곳보다는 늦게 어둡지만, 그래도 술시쯤 되어서는
깜깜하니 어두웠다. 그는 불을 켜려고 바람 벽에서 떠나 성냥을 찾으려고 돌아갔다. 성냥은 늘
있던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기저기 뒤적이고 있노라니까 어떤 낡은 옷뭉치를 들칠 때에
쥐소리가 나면서 무엇이 후덕덕 뛰어 나온다. 그리하여 저편으로 기어서 도망한다.
 "역시 쥐댔다!"
 그는 조그만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만 그 자리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아까 그가 보지 못한 때의 광경이 활동사진과 같이 그의 머리에 지나갔다.
 아우가 집에를 왔다. 아우에게 친절한 아내는 떡을 먹으라고 아우에게 떡상을 내어 놓는다.
그때에 어디선가 쥐가 한 마리 뛰어 나온다. 둘이서는 쥐를 잡느라고 돌아간다. 한참 성화시키던
쥐는 어느 구석에 숨어 버렸다. 그들은 쥐를 찾노라고 두리번거린다. 그 때에 그가 들어선
것이다.
 "상년, 좀 있으믄 안 들어오리..."
 그는 억지로 마음먹고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밤이 가고 밝기는커녕 해가 중천에 올라도 돌아오지를 않았다. 그는 차차
걱정이 나서 찾아보러 나섰다.
 아우의 집에도 없었다. 동리를 모두 찾아 보아도 본 사람도 없다 한다.
 그리하여 낮쯤, 한 삼사리 내려간 바닷가에서 겨우 아내를 찾기는 찾았지만, 그 아내는 이전과
같은 생기로 찬 아내가 아니요, 몸은 물에 불어서 곱이나 크게 되고, 이전에 늘 웃음을 흘리던
예쁜 입에는 거품을 잔뜩 물은 죽은 아내였다.
 그는 아내를 업고 집에 오기까지에 정신이 없었다.
 이튿날 간단하게 장사를 하였다. 뒤에 따라오는 아우의 얼굴에는,
 "형님, 이게 웬 일이오니까?" 하는 듯한 원망이 있었다.
 장사를 지낸 이튿날부터 아우는 그 조그만 마을에서 없어졌다. 하루 이틀은 심상히 지냈지만
닷새 엿새가 지나도 아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보니까 꼭 그의 아우와 같이 생긴
사람이 오륙일 전에 멧 산자봇짐을 하여 진 뒤에 새빨간 저녁 해를 등으로 받고 더벅더벅
동편으로 가더라 한다. 그리하여 열흘이 지나고 스무날이 지났건만, 한 번 떠난 아우는 돌아올
길이 없고, 혼자 남은 아우의 아내는 만날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도 이것을 잠자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불행의 모든 죄는, 죄 그에게 있었다.
 그도 마침내 뱃사람이 되어 적으나마, 아내를 삼킨 바다와 늘 접근하며, 가는 곳마다 아우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어떤 배를 얻어 타고 물길을 나섰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우의 이름과 모양을 물었으되 아우의 소식은 알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꿈결같이 십년을 지나서, 구년전 가을, 탁탁히 낀 안개를 깨며 연안바다를 지나가던
그의 배는 몹시 부는 바람으로 말미암아 파선을 하여 벗 몇 사람은 죽고 그는 정신을 잃고 물
위에 떠돌고 있었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때는 밤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는 물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를
말리느라고 새빨갛게 피워 놓은 불빛으로 자기를 간호하는 아우를 보았다.
 그는 이상하게 놀라지도 않고 천연히 물었다.
 "너 어떻게 여게 완!"
 아우는 잠자코 한참 있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형님, 거저 다 운명이외다."
 따뜻한 불기운에 잠이 들려 하던 그는 화닥닥 깨이면서 또 말하였다.
 "십년 동안에 되게 파리했구나."
 "형님, 나두 변했거니와, 형님두 되게 변하셋쉐다!"
 이 말을 꿈결같이 들으면서 그는 또 흔흔히 잠이 들었다. 그리하여 두어 시간, 꿀보다도 단잠을
잔 뒤에 깨어 보니 아까 같이 새빨간 불은 피워있지마는 아우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겨우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아까 아우는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새빨간 불빛을
등으로 받으면서 터벅터벅 아물 말 없이 어두움 가운데로 스러졌다 한다. 이튿날 아무리
알아봐야 그의 아우는 종적이 없어지고, 알 수 없으므로, 그는 할 수 없이 다른 배를 얻어 타고

물길을 나섰다. 그리하여 그의 배가 해주에 이르렀을 때, 그는 해주장에 들어가서 무엇을
사려다가, 저편 가게에 걸핏 그의 아우와 같은 사람이 있으므로 뛰어가서 보니 그는 벌써
없어졌다. 배가 해주에는 오래 머무르지 않으므로, 그는 마음을 해주에 남겨두고 또 다시
바닷길을 떠났다.
 그 뒤에 삼년을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아우는 다시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삼년을 지나서 지금부터 육년 전에, 그의 탄 배가 강화도를 지날 때에 바다로 향한
가파로운 뫼곁에서 바다로 향하여 날아오는 배따라기를 들었다. 그것도 어떤 구절과 곡조는 그의
아우 특색으로 변경된, 그의 아우가 아니면 부를 사람이 없는 그 배따라기였다.
 배가 강화도에는 머무르지 않아서 그저 지나갔으나, 인천서 열흘쯤 머무르게 되었으므로, 그는
곧 내려서 강화도로 건너갔다. 거기서 여기저기 찾아다니다가 어떤 조그만 객주집에서 물어보니,
이름도 그의 아우요, 생긴 모양도 그의 아우인 사람이 묵어 있기는 하였으나 사나흘 전에 도로
인천으로 갔다 한다. 그는 곧 돌아서서 인천으로 건너가서 찾아 보았지만, 그 조그만 인천서도
그의 아우는 찾을 바이 없었다.
 그 뒤에 눈 오고 비 오며 육년이 지났지만 그는 다시 아우를 만나 보지 못하고 아우의
생사까지 알 수 없었다.
 말을 끝낸 그의 눈에는 저녁 해에 반사하여 몇 방울의 눈물이 번득인다.
 나는 한참 있다가 겨우 물었다.
 "노형의 계수는?"
 "모르디요, 이십년을 영유는 안 가봤으니깐요."
 "노형은 이제 어디루 갈테요?"
 "것두 모르지요, 정처가 있나요. 바람 부는대루 몰려 댕기지요."
 그는 한 번 다시 나를 위하여 배따라기를 불렀다.
 아아! 그 속에 담겨 있는 삭이지 못할 뉘우침! 바다에 대한 애처로운 그리움!
 노래를 끝낸 다음에 그는 일어서서 시뻘건 저녁 해를 잔뜩 등으로 받고 을밀대로 향하여
더벅더벅 걸어간다. 나는 그를 말릴 힘이 없어서 눈이 멀거니 그의 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배따라기와 그의 숙명적 경험담이 귀에 쟁쟁 울리어 한잠도 못
이루고, 이튿날 아침 깨어서, 조반도 안 먹고 기자묘로 뛰어가서 또다시 그를 찾아 보았다. 그가
어제 깔고 앉았던 풀은, 모두 한편으로 누워서 그가 다녀감을 기념하되, 그는 그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그러나 배따라기는 어디선가 쟁쟁히 울리어서 모든 소나무들을 떨리지 않고는 안
두겠다는 듯이 날아온다.
 "모란봉이다. 모란봉에 있다!" 하고 나는, 한숨에 모란봉으로 뛰어갔다. 모란봉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부벽루에도 없다.
 "을밀대다!" 하고 나는 다시 을밀대로 갔다. 을밀대에서 부벽루로 연한, 지옥까지 연한 듯한
구렁텅이에 물 한 방울도 안새리라고 빽빽히 난 소나무의 그 모든 잎잎은 떨리는 '배따라기'를
부르고 있지만, 그는 여기에도 있지 않다. 기자묘의 하늘을 향하여 퍼져 나간 그 모든 소나무의
천만의 잎잎도, 그 아래쪽 퍼진 천만의 풀들도, 모두 그 배따라기를 슬프게 부르고 있지만,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 일대에선 찾을 수가 없었다.
 강가에 나가서 알아보니, 그의 배는 오늘 새벽에 떠났다 한다.
 그 위에, 여름과 가을이 가고 일년이 지나서 다시 봄이 이르렀으되, 잠깐 평양을 다녀간 그는
그 숙명적 경험과 슬픈 배따라기를 남겨둘 뿐, 다시 조그만 모란봉엔 나타나지 않는다.
 모란봉과 기자묘에 다시 봄이 이르러서, 작년에 그가 깔고 앉아서 부러졌을 풀들도 다시 곱게
대가 나서 자줏빛 꽃이 피려 하지만 끝없는 뉘우침을 다만 한낱 배따라기로 하소연 하는 그는 이
조그만 모란봉과 기자묘에서 다시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남기고 간 배따라기만 추억하는
듯이, 기념하는 듯이, 모든 잎잎이 속삭이고 있을 따름이다.

    감자
    "조선문단" 1925. 1.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사 농 공 상 제이 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이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땅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 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 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만,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서 시집이라는 것을 갔다. 그의
새서방(영감이라는 편이 적당할까)이라는 사람은 그보다 이십년이나 위로서, 월내 아버지의
시대에는 상당한 농민으로 밭도 몇 마지기가 있었으나 그의 대로 내려오면서는 하나 둘 줄기
시작하여서 마지막에 복녀를 판 팔십원이 그의 마지막 재산이었다. 그는 극도로 게으른
사람이었다. 동네 노인의 주선으로 소작밭개나 얻어주면 종자만 뿌려둔 뒤로는 후치질도 안하고
김도 안매고 그냥 버려두었다가는 가을에 가서는 되는대로 거둬서 '금년엔 흉년입네'하고
전주집에는 가져도 안 가고 혼자 먹어버리곤 하였다. 그러니까 그는 한 밭을 이태를 연하여 붙여
본 일이 없었다. 이리하여 몇 해를 지내는 동안 그는 그 동네에서는 밭을 못 얻을 만큼 인심과
신용을 잃고 말았다.
 복녀가 시집을 온지 한 삼, 사년은 장인의 덕으로 이렁저렁 지내 갔으나 예전 선비의 꼬리인
장인도 차차 사위를 밉게 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처가에까지 신용을 잃게 되었다. 그들 부처는
여러 가지로 의논하다가 하릴없이 평양 성안으로 막벌이로 들어왔다. 그러나 게으른 그에게는
막벌이나마 역시 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지게를 지고 연광정에 가서 대동강만 내려다 보고
있으니, 어찌 막벌이인들 될까. 한 서너달 막벌이를 하다가 그들은 요행 어떤 집
막간(행랑)살이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집에서도 얼마 안되어 쫓겨 나왔다. 복녀는 부지런히 주인 집 일을 보았지만 남편의
게으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만날 복녀는 눈에 칼을 세워 가지고 남편을 채근하였지만 그의
게으른 버릇은 개를 줄 수는 없었다.
 "벳섬 좀 치워 달라우요."
 "난 조름 오는데, 님자 치우시관."
 "내가 치우나요."
 "이십년이나 밥을 처먹고 그걸 못 치워!"
 "에이구 칵 죽구나 말디."
 "이년 뭘!"
 이러한 싸움이 그치지 않다가 마침내 그 집에서도 쫓겨 나왔다.
 이젠 어디로 가나? 그들은 하릴없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밀리어 나오게 되었다. 칠성문 밖을
한 부락으로 삼고 그 곳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정업은 거러지요, 부업으로는
도둑질과(자기네끼리의)매음, 그밖에 이 세상의 모든 무섭고 더러운 죄악이 있었다. 복녀도 그
정업으로 나섰다.
 그러나 열 아홉 살의 한창 좋은 나이의 여편네에게는 누가 밥인들 잘 줄까.
 "젊은 거이 거랑질은 왜."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남편이 병으로 죽어 가거니 어쩌니 핑계는
대었지만, 그런 핑계에는 단련된 평양 시민의 동정은 역시 살수가 없었다. 그들은 이 칠성문
밖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 가운데 드는 편이었다. 그 가운데서 잘 수입되는 사람은 하루에
오리 짜리 돈푼으로 일원 칠, 팔십전의 현금을 쥐고 돌아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극단으로
나가서는 밤에 돈벌이를 나갔던 사람은 그날 밤 사십여원을 벌어 가지고 그 근처에서 담배장사를
하기 시작한 사람까지 있었다.
 복녀는 열 아홉 살이었다. 얼굴도 그만하면 빤빤하였다. 그 동네 여인들의 보통 하는 일을
본받아서, 그도 돈벌이 좀 잘하는 사람의 집에라도 잠깐 찾아가면 매일 오, 육십 전은 벌 수가
있었지만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는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었다.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냈다. 굶은 일도 있었다.
 기자묘 솔 밭에 송충이가 끓었다. 그때 평양 '부'에서는 그 송충이를 잡는데 (은혜를 베푸는
뜻으로)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을 인부로 쓰게 되었다.
 빈민굴의 여인들은 모두가 지원을 하였다. 그러나 뽑힌 것은 겨우 오십명쯤이었다. 복녀도 그
뽑힌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복녀는 열심으로 송충이를 잡았다. 소나무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는 송충이를 집게로
집어서 약물에 잡아넣고 또 그렇게 하고 그의 통은 잠깐 새에 차곤하였다. 하루에 삼십삼전 씩의
품삯이 그의 손에 들어 왔다.
 그러나 대엿새 하는 동안에 그는 이상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젊은 여인부 한 여남은 사람은 언제든 송충이는 안 잡고 아래서 지절거리며 웃고 날뛰기만 하고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놀고 있는 인부의 품삯은 일하는 사람의 삯전보다 팔전이나 더
많이 내어 주는 것이다. 감독은 한 사람 뿐이었는데 감독도 그들이 놀고 있는 것을 묵인할 뿐
아니라 때때로는 자기까지 섞여서 놀고 있었다. 어떤 날 송충이를 잡다가 점심을 먹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에 감독이 그를 찾았다.
 "복네! 얘, 복네!"
 "왜 그릅네까?"
 그는 약통과 집게를 놓고 뒤로 돌아섰다.
 "좀 오나라."
 그는 말 없이 감독 앞에 갔다.
 "얘, 너, 음...데 뒤 좀 가보자."
 "뭘 하레요?"
 "글쎄 가야..."
 "가디요. 형님!"
 그는 돌아서면서 부인들 모여 있는 데로 고함쳤다.
 "형님두 갑세다."
 "싫다 얘, 둘이서 재미나게 가는데 내가 무슨 맛에 가갔니?"
 복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면서 감독에게로 돌아섰다.
 "가 보자."
 감독은 저편으로 갔다. 복녀는 머리를 숙이고 따라 갔다.
 "복네 도캇구나."
 뒤에서 이런 소리가 들렀다. 복녀의 숙인 얼굴은 더욱 빨갛게 되었다.
 그날부터 복녀도 '일 안하고 품삯 많이 받는 인부'의 한 사람으로 되었다.
 복녀의 도덕관 내지 인생관은 그때부터 변하였다.
 그는 아직껏 딴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 일이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요, 짐승의 하는 것쯤으로만 알고 있었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알았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디 다시 있을까. 사람인 자기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있고
빌어먹는 것보다 점잖고... 일본말로 하자면 '삼박자' 같은 좋은 일은 이것 뿐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삶의 비결이 아닐까. 뿐만 아니라 이 일이 있은 뒤부터 그는 처음으로 한 개 사람으로 된
것 같은 자신까지 얻었다.
 그 뒤부터는 그의 얼굴에 조금씩 분도 바르게 되었다.
 일년이 지났다.
 그의 처세의 비결은 더욱 더 순탄히 진척되었다. 그의 부처는 인제는 그리 궁하게, 지내지는
않게 되었다. 그의 남편은 이것이 결국 좋은 일이라는 듯이 아랫목에 누워서 벌씬벌씬 웃고
있었다.
 복녀의 얼굴은 예뻐졌다. "여보 아즈바니, 오늘은 얼마나 벌었소?"
 복녀는 돈 좀 많이 벌은 듯한 거지를 보면 이렇게 찾는다.
 "오늘은 많이 못 벌었쉐다."
 "얼마?"
 "도무지, 열 서너냥."
 "많이 벌었쉐다가레. 한 댓냥 꿰주소 그래."
 "오늘은 내가..."
 어쩌고 어쩌고 하면 복녀는 곧 뛰어가서 그의 팔에 늘어진다.-
 "나한테 들킨 댐에는 뀌구야 말아요."
 "난, 원, 이 아즈마니 만나믄 야단이더라. 자 꿰주디, 그 대신 응? 알았디?"
 "난, 몰라요, 해해해해."
 "모르믄, 안 줄테야."
 "글쎄 알았대두 그른다."
--그의 성격은 이만큼까지 진보되었다.
 가을이 되었다.
 칠성문 밖 빈민굴의 여인들은 가을이 되면 칠성문 밖에 있는 중국인의 채마밭에
감자(고구마)며 배추를 도둑질 하러 밤에 바구니를 가지고 간다. 복녀도 감자께나 잘 도둑질하여
왔다.
 어떤 날 밤 그는 고구마를 한 바구니 잘 도둑질하여 가지고 인젠 돌아가려고 일어설 때에 그의
뒤에 시꺼먼 그림자가 서서 그를 꽉 붙들었다. 보니 그것은 그 밭의 주인인 왕서방이었다. 복녀는
말도 못하고 멀찐멀찐 발 아래만 보고 있었다.
 "우리 집에 가!"
 왕서방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재문 가디, 워, 것두 못 갈까."
 복녀는 엉덩이를 한 번 휙 두른 뒤에 머리를 젖히고 바구니를 저으면서 왕서방을 따라갔다.
 한 시간쯤 뒤에는 그는 왕서방의 집에서 나왔다. 그가 밭고랑에서 길로 들어서려 할 때에 문득
뒤에서 누가 그를 찾았다.
 "복네 아니냐?"
 복녀는 휙 돌아서 보았다. 거기는 곁집 여편네가 바구니를 끼고 어두운 밭고랑을 더듬더듬
나오고 있었다.
 "형님이댔쉐까... 형님도 들어 갔댔쉐까?"
 "님자두 들어 갔댔나?"
 "나? 육서방네 집에 님자는?"
 "난 왕서방네...형님 얼마 받았소?"
 "육서방네 그 깎쟁이놈 배추 세패기..."
 "난 삼원 받았다."
 복녀는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하였다.
 십분쯤 뒤에 그는 자기 남편과 그 앞에 돈 삼원을 내놓은 뒤에, 아까 그 왕서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 뒤부터 왕서방은 무시로 복녀를 찾아왔다.
 한참 왕서방이 눈만 멀찐멀찐 앉아 있으면 복녀의 남편은 눈치를 채고 밖으로 나간다.
왕서방이 돌아간 뒤에는 그들 부처는 일원 혹은 이원을 가운데 놓고 기뻐하곤 하였다. 복녀는
차차 동네 거지들한테 애교를 파는 것을 중지하였다. 왕서방이 분주하여 못 올 때가 있으면
복녀는 스스로 왕서방의 집까지 찾아갈 때도 있었다.
 복녀의 부처는 이젠 이 빈민굴의 한 부자였다.
 그 겨울도 가고 봄에 이르렀다.
 그때 왕서방은 돈 백원으로 어떤 처녀를 하나 마누라로 사오게 되었다.
 "흥."
 복녀는 다만 코웃음만 쳤다.
 "복녀 강짜 하갔구만."
 동네 여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면 복녀는 '흥'하고 코웃음을 웃곤 하였다.
 내가 강짜를 해? 그는 늘 힘있게 부인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생기는 검은 그림자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놈 왕서방, 네 두고 보자."
 왕서방이 색시를 데려 오는 날이 가까워 왔다.
 왕서방은 아직껏 자랑하던 기다란 머리를 깎았다. 동시에 그것은 새색시의 의견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흥."
 복녀는 역시 코웃음만 쳤다.
 마침내 새색시가 오는 날이 이르렀다. 칠보단방에 사린교를 탄 색시가 칠성문밖 채마밭 가운데
있는 왕서방의 집에 이르렀다.
 밤이 깊도록 왕서방의 집에는 중국인들이 모여서 별난 악기를 뜯으며 별난 곡조로 노래하며
야단하였다.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 서서 눈에 살기를 띠고 방안의 동정을 듣고 있었다.
 다른 중국인들은 새벽 두 시쯤 하여 돌아갔다. 그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복녀는 왕서방의
집안에 들어 갔다. 복녀의 얼굴에는 분이 하얗게 발리워 있었다. 신랑 신부는 놀라서 그를 쳐다
보았다. 그것을 무서운 눈으로 흘겨보면서 그는 왕서방에게 가서 팔을 잡고 늘어졌다. 그의
입에서는 이상한 웃음이 흘렀다.--
 "자, 우리 집으로 가요."
 왕서방은 아무 말도 못하였다. 눈만 정처없이 두룩두룩 하였다. 복녀는 다시 한 번 왕서방을
흔들었다.--
 "자, 어서."
 "우리, 오늘은 일이 있어 못 가."
 "일은 밤중에 무슨 일."
 "그래두 우리 일이..."
 복녀의 입에 아직껏 떠돌던 이상한 웃음은 문득 없어졌다.
 "이까짓 것!"
 그는 발을 들어서 치장한 신부의 머리를 찼다.
 "자, 가자우, 가자우."
 왕서방은 와들와들 떨었다. 왕서방은 복녀의 손을 뿌리쳤다. 복녀는 쓰러졌다. 그러나 곧
일어섰다. 그가 다시 일어설 때는 그의 손에 얼른 얼른 하는 낫이 한 자루 들리워 있었다.
 "이 되놈 죽어라, 이놈, 나 때렸니! 이놈아 아이구 사람 죽이누나"
 그는 목을 놓고 처울면서 낫을 휘둘렀다. 칠성문 밖 외따른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왕서방의
집에서는 일장의 활극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 활극도 곧 잠잠하게 되었다. 복녀의 손에
들리워 있던 낫은 어느덧 왕서방의 손으로 넘어가고 복녀도 목으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있었다.
 복녀의 송장은 사흘이 지나도록 무덤으로 못 갔다. 왕서방은 몇 번을 복녀의 남편을 찾아갔다.
둘의 새에는 무슨 교섭하는 일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밤중 복녀의 시체는 왕서방의 집에서 남편의 집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의사. 왕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원 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의사의 손에도 십원 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사의 진단으로 공동묘지로 실려갔다.

    전영택(1984__1968)
 그의 작품 대부분이 비참한 생활에서 취재하되 사실적이면서도 항상 심리적으로 따뜻한 광명을
보여 주는 것이 특색이다. 1924년 대의 "화수분" "힐닭" 등에서 그것을 볼 수 있는 데, 그가
목사라는 신분의 영향으로 본바탕은 휴머니즘으로써 종교적이며 인도주의적인 색채를 강하게
풍기는 경향이 있다. 여기 수록된 "화수분"은 가장 많이 읽혀지고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자연주의 계열에 속하는 대표작이다. 초기의 그의 작품으로 "혜선의 사"(1919. 2. 창조) "천치?
천재?"(동 3월 창조) "생명의 봄"(1920. 3__7 창조) 등이 있다.

    화수분
    "조선문단" 1925. 1.

   1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 간다. 뒷들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휘익 우수수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가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름발이가 지나가면 무슨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러나 보아요." 공부하던 애가
말한다. 우리들은 잠시 그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으나, 다시 각각 하던 일을 계속하여 다시
주의도 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우리는 모두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자다가 꿈결같이
'으으으으으으'하는 소리를 들었다. 잠깐 잠이 반쯤 깨었으나 다시 잠들었다. 잠이 들려고 하다가
또 깜짝 놀라서 깨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었다.
 "저게 누가 울지 않소?"
 "아범이구려."
 나는 벌떡 일어나서 귀를 기울였다. 과연 아범의 우는 소리다. 행랑에 있는 아범이 우는
소리다.
 '어찌하여 우는가, 사나이가 어찌하여 우는가. 자기 시골서 무슨 슬픈 상사의 기별을 받았나?
무슨 원통한 일을 당하였나?"
 나는 생각하였다. '어이 어이' 느껴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범이 왜 울까"
 "글쎄요, 왜 울까요."

   2

 아범은 금년 구월에 그 아내와 어린 계집애 둘을 데리고 우리집 행랑방에 들었다. 나이는 한
서른 살쯤 먹어 보이고, 머리에 상투가 그냥 달라붙어 있고, 키가 늘씬하고 얼굴은 갸름하고,
누르퉁퉁하고, 눈은 좀 큰데 사람이 퍽 순하고 착해 보였다. 주인을 보면 어느 때든지 그 방에서
고달픈 몸으로 밥을 먹다가도 얼른 일어나서 허리를 굽혀 절한다. 나는 그것이 너무 미안해서
그러지 말라고 이르려고 하면서 늘 그냥 지내었다. 그 아내는 키가 자그마하고, 몸이 똥똥하고,
이마가 좁고 항상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다. 적은 돈은 회계할 줄을 알아도 '원'이나 '백냥'
넘는 돈은 회계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어멈은 날짜 회계할 줄을 모른다. 그러기에 저 낳은
아이들의 생일을 아범이 그 전날 내일이 생일이라고 일러주지 않으면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속일 줄은 모르고, 무슨 일이든지 하라는 대로 하기는 하나 얼른 대답을 시원히 하지 않고,
꼬물꼬물 오래하는 것이 흠이다. 그래도 아침에는 일찍이 일어나서 기름을 발라 머리를 곱게
빗고, 빨간 댕기를 드려 쪽을 찌고 나온다.
 그들에게는 지금 입고 있는 단벌 홑옷과 조그만 남비 하나밖에 아무것도 없다. 세간도 없고,
물론 입을 옷도 없고, 덮을 이부자리도 없고, 밥 담아 먹을 그릇도 없고 먹을 숟가락도 한 개가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보기 싫게 생긴 딸 둘과 작은 애를 업는 홑누더기와 띠, 아범이 벌이하는
지게가 하나, 이것뿐이다. 밥은 우선 주인 집에서 내어간 사발과 숟가락으로 먹고, 물은 역시
주인집 어린애가 먹고 비운 '가루 우유통'을 갖다가 떠먹는다.
 아홉 살 먹은 큰 계집애는 몸이 좀 뚱뚱하고 얼굴은 컴컴한데, 이마는 어미 닮아서 좁고, 볼은
애비 닮아서 축 늘어졌다. 그리고 이르는 말은 하나도 듣는 법이 없다. 그 어미가 아무리 욕하고
때리고 하여도 볼만 부어서 까딱 없다. 도리어 어미를 욕한다. 꼭 서서 어미 보고 눈을 부르대고,
'조 깍쟁이가 왜 야단이야'하고
 욕을 한다. 먹을 것이 생기면 자식 먹이고 남편 대접하고, 자기는 늘 굶는 어미가 헛입
노릇이라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저 망할 계집년이 무얼 혼자만 처먹어?"하고 욕을 한다. 다만
자기 어미나 아비의 말을 아니 들을 뿐 아니라, '주인 마누라'나 '주인 나리'가 무슨 말을 일러도
아닌 듣는다. 먼데 있는 것을 가까이 오게 하려면 손수 붙들어 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것을
비키게 하려면 붙들어다 치워야 한다.
 다음에 작은 계집애는 돌을 지나 세 살 먹은 것인데, 눈이 커다랗고 입술이 삐죽 나오고,
걸음은 겨우 빼뚤빼뚤 걷는다. 그러나 여태 말도 도무지 못하고, 새벽부터 하루 종일 붙들여 매어
끌려가는 돼지 소리 같은 크고 흉한 소리를 내어 울어서 해를 보낸다.
 울지 않는 때라고는 먹을 때와 자는 때 뿐이다. 그러나 먹기는 썩 잘 먹는다. 먹을 것이라고
눈앞에 보이기만 하면 죄다 빼앗아다가 두 다리 사이에 넣고 다리와 팔로 웅크리고 '웅웅'소리를
내면서 혼자서 먹는다. 그렇게 심술 사나운 큰 계집애도 다 빼앗기고 졸연해서 얻어먹지 못한다.
이렇기 때문에 작은 것은 늘 어미 뒷잔등에 업혀 있다. 만일 내려놓아 버려 두면, 그냥 땅바닥을
벗은 몸으로 두 다리를 턱 내뻗치고, 묶여가는 돼지 소리로 동리가 요란하도록 냅다 지른다.
 그래서 어멈은 밤낮 작은 것을 업고 큰것과 싸움을 하면서 얻어먹지도 못하고, 물 긷고 걸레질
치고 빨래하고 서서 돌아간다. 작은것에게는 젖을 먹이고, 큰것의 욕을 먹고, 성화 받고,
사나이에게 '웅얼웅얼'하는 잔말을 듣는다. 밥지을 쌀도 없는데, 밥 안 짓는다고 욕을 한다.
그리고 아범은 밝기도 전에 지게를 지고 나갔다가 밤이 어두워서 들어오지만, 하루에 두 끼니를
못 끓여 먹고 대개는 벌이가 없어서 새벽에 나갔다가도 오정 때나 되면 일찍 들어온다.
들어와서는 흔히 잔다. 이런 때는 온종일 그 이튿날 아침까지 굶는다. 그때마다 말없던 어멈이
'옹알옹알'바가지 긁는 소리가 들린다. 어멈이 그 애들 때문에 그렇게 애쓰고, 그들의 살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을 보고, 나는 이따금 이렇게 생각하였다. 아내에게 말도 한다.
 "저 애들을 누구를 주기나 하지."
 위에 말한 것은 아범과 그 식구의 대강의 정형이다. 그러나 밤중에 그렇게 섧게 운 까닭은
무엇인가.

   3

 그 이튿날 아침이다. 마침 일요일이기 때문에 내게는 한가한 틈이 있어서 아범에게서 그
내용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지난 밤에 아범이 왜 그렇게 울었나?" 하는 아내의 말에 어멈의 대답은 대강 이러하였다.
 "어멈이 늘 쌀을 팔러 댕겨서 저 뒤의 쌀가게 마누라를 알지요. 그 마누라가 퍽 고맙게 굴어서
이따금 앉아서 이야기도 했어요. 때때로 '그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나 지내나'하고 물어요. 그럴
적마다 '죽지 못해 삽지요'하고 아무말도 아니했어요. 그랬는데 한번은 가니까, 큰애를 누구를
주면 어떠냐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데리고 있다가 먹이면 먹이고, 죽이면 죽이고 하지, 제
새끼를 어떻게 남을 줍니까? 그리고 워낙 못생기고 아무 철이 없어서 에미 애비나 기르다가
죽이더라도 남은 못 주어요. 남이 가져갈 게 못 됩니다. 그것을 데려가시는 댁에서는 길러
무엇합니까. 도야지면 잡아나 먹지요' 하고 저는 줄 생각도 아니했어요. 그래도 그 마누라는
'어린것이 다 그렇지 어떤가. 어서 좋은 댁에서 달라니 보내게. 잘 길러 시집보내 주신다네,
그리고 여태 젊은이들이 벌어먹고 살아야지. 애들을 다 데리고 있다가 인제 차차 날도 추워
오는데 모두 한꺼번에 굶어 죽지 말고...' 하시면서 여러 말로 대구 권하셔요. 말을 들으니까
그랬으면 좋을 듯도 하기에 '그럼 저의 아범 보고 말을 해보지요'했지요. 돌아와서 그날 밤에,
그제 밤이올시다. 그제 밤 아니라 어제 아침이올시다. 요새 저는 정신이 하나 없어요. 그제
밤에는 들어와서 반찬 없다고 밥도 안 먹고, 곤해서 쓰러져 자길래 그런 말을 못하고, 어제
아침에야 그 이야기를 했지요. 아무러나 제 자식을 남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어떻게 합니까.
아씨 아시드키 이제 새끼 또 하나 생깁니다 그려. 지금도 어려운데 어떻게 둘 씩 셋씩
기릅니까. 그래서 차마 발길이 안 나가는 것을 오정 때가 되어서 데리고 갔지요. 짐승 같은
계집애는 아무런 것도 모르고 따라나서요. 앞서 가는 것을 뒤로 하면서 어멈은 울먹울먹한다.
눈물이 핑 돈다.
 "그런 것을 데리고 갔더니 참말 웬 알지 못하는 마누라님이 앉아 계셔요. 그 마누라가 이걸
호떡이라 군밤이라 감이라 먹을 것을 사다 주면서, '나하고 우리집에 가 살자. 이쁜 옷도 해주고
맛난 밥도 먹고 좋지, 나하고 가자 가자'하시니까 이것은 먹기에 미쳐서 대답도 아니하고
앉았어요.
 이 말을 들을 때에 나는 그 계집애가 우리 마루 끝에 서서 우리집 어린애가 감 먹는 것을
바라보다가 내버린 감꼭지를 쳐다보면서 집어 가지고 나가던 것이 생각났다. 어멈은 다시
이야기를 이어,
 "그래, 제가 어쩌나 볼랴고, '그럼 너 저 마님 따라 사련? 나는 집에 갈 터이니' 했더니 저는
본체만체하고 머리를 끄덕끄덕해요. 그래도 미심해서 '정말 갈 테야? 가서 울지 않을 테야?'
하니까, 저를 한번 힐끗 노려 보더니 '그래, 걱정 말고 가요' 하겠지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내버리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그러고 돌아와서 저 혼자 가만히 생각하니까, 아범이 또 무어라고
할는지 몰라 어째 안되었어요. 그래, 바삐 아범이 일하러 댕기는 데를 찾아갔지요. 한 번 보기나
하랄려고, 염천교 다리로 남대문 통으로 아무리 찾아야 있어야지요. 몇 시간을 애써 찾아
댕기다가 할 수 없이 그 댁으로 도루 갔지요. 갔더니 계집애도 그 마누라도 벌써 떠났다고
하셔요. 가시면서 보고 싶으면 설 때에나 와 보고, 와 살려면 농사짓고 살라고 하셨대요. 그래
하는 수가 있습니까. 그냥 돌아왔지요. 와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아범 저녁 지어 줄 생각도
아니하고 공연히 밖에 나가서 왔다갔다 돌아 댕기다가 들어왔지요. 저는 눈물도 안나요. 그러다가
밤에 아범이 들어왔기에 그 말을 했더니, 아무말도 아니하고 그렇게 통곡을 했답니다. 여북하면
제 자식을 꿈에도 보두 못하던 사람에게 주겠어요. 할 수가 없어서 그렇지요. 집에 두고 굶기는
것보다 날까 해서 그랬지요. 아범이 본래는 저렇게는 못 살지는 않았답니다. 저희 아버지 살았을
때는 벼 백 석이나 하고, 삼 형제가 양평 시골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답니다. 이름들도 모두
좋지요. 맏형은 '장자'요, 둘째는 '거부'요, 아범이 세짼데, '화수분'이랍니다. 그런 것이 제가
간 후로부터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그리고 맏아들이 죽고, 농사 밑천인 소 한 마리를 도적 맞고
하더니, 차차 못살게 되기 시작해서 종내 저렇게 거지가 되었답니다. 지금도 시골 큰댁엘 가면
굶지나 아니할 것을 부끄럽다고 저러고 있지요. 사내 못생긴 건 할 수가 없어요."

   4

 그런 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아침이다. 화수분은 새옷을 입고 갓을 쓰고, 길 떠날 행장을
차리고 안으로 들어온다. 그것을 보니까 지난 밤에 아내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시골 있는 형
'거부'가 일하다가 발을 다쳐서 일을 못하고 누워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흉년인 데다가 일을
못해서 모두 굶어 죽을 지경이니 아범을 오라고 하니 가 보아야 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는 '가
보아야겠군' 하니까, 아내는 '김장이나 해주고 가야 할 터인데' 하기에, '글쎄, 그럼   그렇게
이르지' 한 일이 있었다. 아범은 뜰에서 허리를 한번 굽히고 말한다.
 "나리, 댕겨 오겠습니다. 제 형이 일하다가 도끼로 발을 찍어서 일을 못하고 누웠다니까 가
보아야겠습니다. 가서 추수나 해주고는 곧 오겠습니다. 거저 나리댁만 믿고 갑니다." 나는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잘 댕겨 오게." 하였다. 아범은 다시 한 번 절을 하고, '안녕히 계십시오'하면서 돌아서 나갔다.
 "저렇게 내버리고 가면 어떡합니까. 우리도 살기 어려운데 어떻게 불 때 주고 먹이고 입히고
할 테요?"
 "그렇게 곧 오겠소?" 이렇게 걱정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나는 바삐 나가서 화수분을 불러서,
 "곧 댕겨 오게, 겨울을 나서는 안 되네." 하였다.
 "암, 댕겨 옵지요." 화수분은 뒤를 돌아보고 이렇게 대답을 하고 달아난다.

   5

 화수분은 간 지 일 주일이 되고, 열흘이 되고 보름이 지나도 아니 온다. 어멈은 아범이
추수해서 쌀말이나 지고 돌아오기를 밤낮 기다려도 종내 오지 아니하였다. 김장 때가 다 지나고
입동이 지나고 정말 추운 겨울이 되었다. 하룻저녁은 바람이 몹시 불고 그 이튿날 새벽에는 하얀
눈이 펑펑 내려 쌓였다.
 아침에 어멈이 들어와서 동네 이름과 번지 쓴 종이 조각을 내어놓으면서, 오지 않으면 제가
가겠다고 편지를 써 달라고 하기에 곧 써서 부쳐까지 주었다.
 그 다음날부터는 며칠 동안 날이 풀려서 꽤 따뜻하였다. 그래도 화수분의 소식은 없다. 어멈은
본래 어린애가 달려서 일을 잘 못하는 데다가, 다리병이 있어 다리를 잘 못쓰고, 더구나 며칠
전에 손가락을 다쳐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을 퍽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추운 겨울에 혼자
살아갈 길이 막연하여, 종내 아범을 따라 시골로 가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다.
 "그만 아씨, 시골로 가겠습니다."
 "몇 리나 되나?"
 "몇 린지 사나이들은 일찍 떠나면 하루에 간다고 해두, 저는 이틀에나 겨우 갈 걸이요."
 "혼자 가겠나?"
 "물어 가면 가기야 가지요." 아내와 이런 문답이 있은 다음날 아침, 바람 몹시 불고 추운 날
아침에 어멈은 어린것을 업고 돌아볼 것도 없는 행랑방을 한번 돌아보면서 아창아창 떠나갔다.
 그날 밤에도 몹시 추웠다. 우리는 문을 꼭꼭 닫고 문틈을 헝겊으로 막고 이불을 둘씩 덮고
꼭꼭 붙어서 일찍 잤다. 나는 자면서, 잘 갔나, 얼어죽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났다.
 화수분도 가고, 어멈도 하나 남은 어린것을 업고 간 뒤에는 대문간은 깨끗해지고 시꺼먼
행랑방 방문은 닫혀 있었다. 그리고 우리집에는 다시 행랑사람도 안들이고 식모도 아니 두었다.
그래서 몹시 추운 날, 아내는 손수 어린것을 등에 지고 이웃집의 우물에 가서 배추와 무를
씻어서 김장을 대강 하였다. 아내는 혼자서 김장을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어멈 생각을 하였다.

   6

 김장을 다 마친 어떤 날, 추위가 풀려서 따뜻한 날 오후에 동대문 밖에 출가해사는 동생 S가
오래간만에 놀러 왔다. S에게 비로소 화수분의 소식을 듣고 우리는 놀랐다. 그들은 본래 S의
시댁에서 천거해 보낸 것이다. 그 소식은 대강 이렇다.
 화수분이 시골 간 후에, 형 '거부'는 꼼짝 못하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형대신겸 두 사람의 일을
하다가 몸이 지쳐 몸살이 나서 넘어졌다. 열이 몹시 나서 정신없이 앓았다. 정신없이 앓으면서도
귀동이(서울서 강화 사람에게 준 큰 계집애)를 부르고 늘 울었다.
 "귀동아, 귀동아, 어델 갔니? 잘 있니..." 그러다가는 흐득흐득 느끼면서,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사탕 한 알 못 사주고 연시 한 개 못 사주고..." 하고, 소리를 내어
'어이어이'운다. 그럴 때에 어멈의 편지가 왔다. 뒷집 기와집 진사댁 서방님이 읽어 주는 편지
사연을 듣고,
 "아이구 옥분아(작은 계집애 이름), 옥분이 에미!" 하고 또 '어이어이'운다. 울다가 펄떡
일어나서 서울서 넝마전에서 사 입고 간 새옷을 입고 갓을 썼다. 집안 사람들이 굳이 말리는
것도 뿌리치고 화수분은 서울을 향하여 어멈을 데리러 떠났다. 싸리문 밖에를 나가 화수분은
나는 듯이 달아났다.
 화수분은 양평서 오정이 거의 되어서 떠나서, 해져갈 즈음해서 백리를 거의 와서 어떤 높은
고개를 올라섰다.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친다. 그는 고개를 숙여 앞을 내려다보다가 소나무 밑에
희끄무레한 사람의 모양을 보았다. 그것에 곧 달려가 보았다. 가 본즉, 그것은 옥분과 그의
어머니다. 나무 밑 눈 위에 나뭇가지를 깔고 어린 것 업은 헌 누더기를 쓰고 한끝으로 어린것을
꼭 안아 가지고 웅크리고 떨고 있다. 화수분은 왁 달려들어 안았다. 어멈은 눈은 떴으나 말은
못한다. 화수분도 말은 못한다. 어린것을 가운데 두고 그냥 껴안고 밤을 지낸 모양이다.
 이튿날 아침에 나무장수가 지나다가, 그 고개에 젊은 남녀의 껴안은 시체와 그 가운데 아직 막
자다 깬 어린애가 등에 따뜻한 햇볕을 받고 앉아서, 시체를 툭툭 치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어린것만 소에 싣고 갔다.

    현진건(1900__1943)
 김동인, 염상섭과 더불어 초기 단편소설의 정립에 기여한 작가로서, 흔히 한국의 '체흡'이라고
부른다. "백조"의 동인으로 1920년 처녀작 "희생화"를 비롯하여, "빈처", "술 권하는 사회",
"타락자", 등 초기 작품을 거쳐, "운수 좋은날", "불", "할머니의 죽음", "B사감과 러브 레터"
등 짜임새 있는 단편을 발표하였다. 또한 장편으로는 불국사 석가탑 건립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무영탑"과 "적도", "흑치상지", "미완성" 등을 남겼다. 특히 그는 문장 표현에 재기가 있어,
이 시기에 있어서 가장 치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작가로 꼽힌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
"할머니의 죽음"은 표제가 암시하는 바와 같이 노령의 할머니의 생물학적 자연사의 과정을
제시한 작품으로 고통스러운 사망경과와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형태와 반응을 수필형식으로
포착하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최초의 죽음에의 기억을 위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에는 죽음은 평안한 소멸이 아니고 최후의 고통스러운 병임을 암시하고 있다.

    할머니의 죽음
    "백조" 1923. 9.

 '조모주 병환 위독'
 3월 그믐날 나는 이런 전보를 받았다. 이는 XX에 있는 생가에서 놓은 것이니 물론 생가에서
놓은 것이니 물론 생가 할머니의 병환이 위독하단 말이다. 병환이 위독은 하다 해도 기실 모나게
무슨 병이 있는 게 아니다. 벌써 여든 둘이나 넘은 그 할머니는 작년 봄부터 시름시름 기운이
쇠진해서 가끔 가물가물하기 때문에 그동안 자손들로 하여금 한두 번 아니게 바쁜 걸음을 치게
하였다.
 그 할머니의 5년 맏인 양조모는 갑자기 울기 시작하였다.
 "아이고...이승에서는 다시 못 보겠디. 동서라도 의로 말하면 친형제나 다름이 없었다...60년을
하루같이 어디 뜻 한 번 거실러 보았을까..."
 연해연방 이런 넋두리를 섞어가며 양조모는 울었다. 운다 하여도 눈 가장자리가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릴 뿐이었다. 워낙 연만한 그는 제법 울음답게 울 근력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 할머니는 팔자가 좋으시다. 자손이 늘은 듯하고...아이고."
 끝으로 이런 말을 하며 울음이 한숨으로 변하였다. 자기가 너무 수한 까닭으로 외동자들을
앞세워 원이 되고 한이 되어 노상 자기의 생을 저주하는 그는 아들이 둘(본래 셋이더니 그 중에
중부가 일찍이 돌아갔다), 직손자가 여덟이나 되는 그 할머니를 언제든지 부러워하였다.
 "지금 돌아가시면 호상이지. 아드님이 백발이 허연데..." 라고 양모도 맞방망이를 치며 눈을
멍하게 뜬다. 나도 과연 그렇기도 하겠다 싶었다.
 나는 그날 X차로 XX를 향하고 떠났다. 새로 석 점이 지나 기차를 내린 나는 벌써
돌아 가시지나 않았냐고 염려를 마지않으며 캄캄한 좁은 골목을 돌아들어 생가의 삽짝 가까이
다다를 제 곡성이 나는 듯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하건만 다행히 그 불길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삽짝은 빠끔히 열려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니 추녀 끝에 달린 그을음 앉은 괘등이 간 반밖에 아니되는 마루와 좁직한 뜰을
쓸쓸하게 비치고 있었다. 우물 둑과 장독간의 사이에 위는 거적으로 덮고 양 가는 삿자리로 두른
울막을 보고 나는 가슴이 덜컥하고 내려앉았다. 상청이 아닌가...
 그러나 나의 어림의 짐작은 틀리었다. 마루에 올라선 내가 안방 아랫방에서 뛰어나온 잠 못 잔
피로한 얼굴들에게 이끌리어 할머니의 거처하는 단칸 건넌방으로 들어가니 할머니는 깔아진 듯이
아랫목에 누웠으되 오히려 숨은 붙어 있었다. 그 앞에 앉은 나를 생선의 그것 같은 흐릿한
눈자위로 의아롭게 바라본다.
 "얘가 누구입니까. 어머니 얘가 누구입니까."
 예안이씨로, 예절 알기와 효성 있기로 집안 중에 유명한 중모는 나를 가리키며 병자의 귀에
대고 부르짖었다.
 "몰라..."
 환자는 담이 그르렁그르렁하면서 귀찮은 듯이 대꾸하였다.
 "제가 누구입니까, 할머니!"
 나는 그 검버섯이 어룽어룽한 뼈만 남은 손을 만지며 물어 보았다. 나의 소리는 떨리었다.
 "저를 모르겠습니까. 제가XX이 아닙니까."
 "응, 네가 XX이냐..."
 우는 듯이 이런 말을 하고 그윽하나마 내가 잡은 손에 힘을 주는 듯 하였다. 그 개개 풀린
눈동자 가운데도 반기는 빛이 역력히 움직였다.
 할머니의 병환이 어젯밤에는 매우 위중해서 모두 밤새움을 한 일, 누구누구 자손을 찾던 일,
그중에 내 이름도 부르던 일, 지금은 한결 돌린 일...온갖 것을 중모는 나에게 알으켜주었다.
 나는 그날 밤을 누울락앉을락, 깰락졸락 할머니 곁에서 밝혔다. 모였던 자손들이 제각기 돌아간
뒤에도 중모만은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불교의 독신자인 그는 잠오는 눈을 비비기도 하고
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기도 하면서 밤새도록 염불을 그치지 않았다. 그 소리는 적적한 새벽녘에
해가와 같이 처량히 들렸다. 나는 새삼스럽게 그 효심의 지극함과 그 정성의 놀라움에
탄복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자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방이라야 단지 셋밖에
없는데, 안방은 어머니, 형수들이 점령하고 뜰 아랫방 하나 있는 것은 아버지, 삼촌, 당숙들에게
빼앗긴 우리 젊은이 패--사, 육촌 형제들은 밤이 되어도 단 한 시간을 눈 붙일 곳이 없었다.
이웃집에 누누이 교섭한 끝에 방 한 칸을 빌려서 번 차례로 조금씩 쉬기로 하였다. 이 짧은
휴식이나마 곰비임비 교란되었나니 그것은 십 분들이로 집에서 불러들이는 까닭이다. 아버지와
삼촌네들의 큰심부름 잔심부름도 적지 않았지만 할머니 곁에 혼자 앉은 중모의 꾸준한 명령일
때가 많았다. 더욱이 밤새 한 시에나 두 시에나 간신히 잠을 들어 꿀보다 더 단잠이 온몸에
나른하게 퍼진 새벽녘에 우리는 끄들리어 일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할머님 병환이 이렇게 위중하신데 너희는 태평 치고 잠을 잔단 말이야."
 우리가 건넌방에 들어서면 그는 다짜고짜로 야단을 쳤다. 그 중에도 가장 나이 어리고 만만한
내가 이 꾸중받이가 되었다. 인정사정 없는 그의 태도가 불쾌는 하였지만 도덕적 우월을 빼앗긴
우리는 대꾸 한 마디 할 수 없었다.
 "다들 뭐란 말이냐. 나는 한 달이나 밤을 새웠다. 며칠들이나 된다고."
 졸음 오는 눈을 비비는 우리를 보고 그는 자랑스럽게 또 이런 꾸중도 하였다.
 '놀라운 효성을 부리는 게 도무지 우리 야단칠 밑천을 장만하는 게로구나.'
 나는 속으로 꿀꺽꿀꺽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한 번은 또 그의 명령으로 우리는 건넌방에 모여들었다. 그 방문은 열어 젖히었는데 문지방
위에 할머니의 지팡이가 놓이고 그 밑에 또 신으시던 신이 놓여 있었다. 방안 할머니의
머리맡에는 다라니가 걸려 있다.
 '할머니가 운명을 하시나보다!'
 우리는 번개같이 이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 곁으로 다가들었다. 그는 담을 그르렁그르렁거리며
흔흔히 누워 있었다. 중모는 흐르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며 그의 귀에 들이대고 울음소리로
아미타불과 지방보살을 구슬프게 부르짖고 있었다.
 한동안 엄숙한 긴장이 여기 있었다. 모두 같은 일을 기대하면서.
 십 분! 이십 분! 환자의 신상에는 아무 별증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 잠이 드신 모양입니다."
 이윽고 아버지가 이 긴장한 침묵을 깨뜨렸다. 그리고 중모를 향하여,
 "잠 주무시게스리 염불을 고만 뫼십시오." 하고, 나가버렸다. 그 뒤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섰던
자손들이 하나씩 둘씩 헤어졌다.
 그래도 눈물을 섞어가며 염불을 말지 않던 중모가 얼마 뒤에 제물에 부처님 찾기를 그치었다.
그리고 끝끝내 남아 있던 나에게 할머니가 중부가 왔다고 하던 일, 자기를 데리러 교군이 왔다던
일, 중모의 손을 비틀며 어서 가자고 야단을 치던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다가 숨구멍에서
무엇이 꿀꺽하더니 그만 저렇게 정신을 잃으신 것을 설명해 듣기었다.
 그날 저녁때에 할머니는 여상히 깨어나셨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신과
지팡이가 놓였다 치였다, 다라니가 벽에 걸리었다 떼였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자손의 얼굴은
자꾸자꾸 축이 나갔었다. 말하기는 안 되었지만 모두 불언 중에 할머니의 하루바삐 끝장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관조차 맞추어서 칠까지 먹여 놓았다. 내가 처음 오던 날 상청이 아닌가고
놀래던 그 울막도 이 관을 놓아두려는 의짓간이었다.
 그러하건만 할머니는 연해 한 모양으로 그물그물하다가 또 정신을 차리었다. 아니 정신이
돌아오는 때가 도리어 많아 간다. 자기 앞에 들어서는 자손들을 거의 틀림없이 알아맞췄다.
 그리고 가끔 몸부림을 치면서 일으켜 달라고 야단을 쳤다. 이럴 때에 중모는 거북스럽게도
염불을 모시었다.
 "어머니 어머니, 가만히 계셔요. 가만히 계셔요."
 그는 몸부림하는 할머니를 제지하면서 이렇게 타일렀다.
 "저를 따라 염불을 뫼셔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 일어 날란다."
 "에그, 왜 그러셔요. 가만히 계셔요. 제발 덕분에.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할머니는 마지못하여 중모를 따라 두어 번 입술을 달싹달싹하더니 또 얼굴을 찡그리며
애원하는 어조로,
 "인제 고만 뫼시고 날 좀 일으켜다고. 내 인제 고만 가련다."
 "인제 가세요! 가만히 누워 가시지요. 왜 일어나시긴. 나무아미타불...왕생극락...나무아미타불..."
 할머니는 귀찮아 못 견디겠다는 듯이 팔을 내어 저으며,
 "듣기 싫다, 염불 소리 듣기 싫다! 인제 고만 해라." 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중모는 질색을 하며 더욱 비장하게 부처님을 찾았다.
 "듣기 싫다! 듣기 싫어. 나는 고만 갈 테야."
 할머니는 또 이렇게 재우쳤다.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적이 이외의 감이 있었다--할머니는 중모보다 못하지 않은 불교의
독신자이다. 몇십 년을 하루같이 새벽마다 만수향을 켜 놓고 염불 모시기를 잊지 않은 어른이다.
정신이 혼혼된 뒤에도 염주 담은 상자와 만수향은 일일이 아랑곳하던 어른이다.
 "...하루에도 만수향을 세갑 네갑 켜시겠지. 금방 사다 드리면 세 개씩 네 개씩 당장 다
켜버리시고 또 안 사온다고 꾸중이시구나..."
 작년 가을 내가 귀성하였을 제 계모가 웃으며 할머니의 노망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만수향
켜는 것을 그 하나로 헤아렸다.
 그러하던 할머니가 왜 지금 와서 염불을 듣기 싫다는가? 그다지 할머니는 일어나고 싶으신가?
죽어가면서도 일어나려는 이 본능 앞에는 모든 것이 권위를 잃는 것인가?
 "저렇게 일어나시랴니 좀 일으켜 드리지요."
 나는 보다 못해 이런 말을 하였다.
 "안된다, 일으켜 드릴 수가 없다. 하도 저러시길래 한번 일으켜 드렸더니 어떻게 아파하시는지
차마 뵈올 수가 없었다."
 "어째 그래요?"
 나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이 반문에 대한 중모의 설명은 더욱 놀란 것이었다.
 할머니가 작년 봄부터 맑은 정신을 잃은 결과에 늙은이가 어린애 된다고, 뒤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이 두어 달 전부터 물을 자꾸 청해 잡수시고 옷에고 욧바닥에 함부로 뒤를
보았다. 그것을 얼른 빨아 드리지 못한 때문에 제물에 뭉켜지고 말라붙은 데다가 뜨거운 불목에
데이어 궁둥이 언저리가 모두 벗겨졌다. 그러므로 일어나려면 그 곳이 땅기고 박이어 아파하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을 들은 나는 할머니를 모로 누이고 그 상처를 보았다. 그 자리는 손바닥 넓이만치나
빨갛게 단 쇠로 지진 듯이 시커멓게 벗겨졌는데 그 위에는 하얀 때가 징그럽게 끼었고 그
가장자리는 독기를 품고 아른아른히 부르터 올라 있다. 나는 차마 더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양조모, 양모가 부러워하던 늘은 듯한 자손은 다 무엇을 하고 우리 할머니를 이
지경이 되게 하였는가? 왜 자주 옷을 갈아 입혀 드리며 빨아 드리지 못하였는가? 이 직접
책임자인 계모가 더할 수 없이 괘씸하였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를 그르다고도 할 수 없다.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할머니가 이리
된 지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몇 달이 되었다. 이 긴 시일에 제 아무리 효부라 한들 하루도
몇 번을 흘리는 뒤를 그때 족족 빨아낼 수 없으리라. 더구나 밤에 그런 것이야, 일일이 알 수도
없으리라, 하물며 계모는 시집오던 첫날부터 골머리를 앓은이만큼 큰 병객이다. 병명은 의원을
따라 혹은 변두머리라고도 하고 혹은 뇌진이라고도 하고 혹은 선천부족이라고도 하였지만은
하나도 고쳐 주지는 못하였다. 30이 될락말락하건만 60이나 70이 다 된 노인 모양으로 주야장천
자리 보전하고 누워 있는 터이다. 제 몸이 괴로우니 모든 것이 싫은 것이다. 그리고 나까지
아우르면 아버지 슬하에 아들만 넷이나 되건만은 지금 60 노경에 받드는 어느 아들, 어느 며느리
하나 없다. 집안이 넉넉지 못한 탓으로 사방에 흩어져서 제 입 풀칠하기에 눈코를 못 뜨는
까닭이다.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까?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쓴 물만 입 안에 돌 뿐이다.
 그후에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때 내가 할머니 곁에 갔을 적이었다. 할머니는 그 뼈만 남은
손으로 나의 손을 만지고 있었다.
 "XX아, XX아."
 할머니는 문득 나를 불렀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인제는 다시 못 보겠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제 내가 안 죽니, 그런데 너, 내 청 하나 들어 주겠니."
 "네? 무슨 말씀입니까."
 "나, 나 좀 일으켜다고."
 나는 눈물이 날 듯이 감동하였다. 어찌 차마 이 청을 떼칠건가. 나는 다짜고짜로 두 손을
할머니 어깨 밑으로 넣으려 하였다. 이것을 본 중모는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얘, 네가 왜 또 그러니, 일으켜 드리면 아파하신대두 그 애가 그리네."
 "그 때 약을 사다 드렸으니 그 자리가 인제는 아물었겠지요."
 "아니야, 아직 다 낫지 않았어. 오늘 아침에도 일으켜 드렸더니 몹시 아파하시더라."
 나는 주춤하였다. 할머니의 앓는 것이 애처로왔음이다.
 "어머니! 어머니! 가만히 누워 계셔요, 네? 일어나시면 아프십니다."
 중모는 또 잔상히 타이르듯 말하였다. 할머니는 물끄러미 나와 중모를 번갈아 보시더니 단념한
듯이 눈을 감았다. 한참 앉아 있다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이때에 할머니가 눈을 번쩍 뜨며 문득,
 "어데를 가?" 라고 물었다. 나는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
 할머니는 퀭한 눈으로 이윽히 나를 쳐다보더니 무엇을 잡을 듯이 손을 내어 저으며 우는 듯한
소리로,
 "서방님! 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서방님, 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었다.
 "에그머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애가 XX이 아닙니까. 서방님이 무엇이야요."
 중모는 바싹 할머니에게 다가들며 애처롭게 알으켜 드렸다. 이때 마침 할머니가 잡수실 배즙을
가지고 들어오던 둘째 형수가 무슨 구경거리나 생긴 듯이 안방을 향하고 외쳤다.
 "에그, 할머니 좀 보아요! 서울 아우님더러 서방님! 서방님! 하십니다."
 이 외침을 듣고 자부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의 눈은 호기심에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또
할머니의 청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어떠한 나쁜 영향을 초치할지라도 아니 일으켜 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요바닥 위로 반 자를 떠나지 못하여.
 "아야야..."라고, 외마디 소리를 쳤다. 나는 얼른 들어올리던 손을 뺄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눕기 싫어하던 요 위에 누운 뒤에도 할머니는 앓기를 말지 않았다. 적지 아니한 꾸중을
모시었다.
 이윽고 조금 진정이 되더니만 또 팔을 내저으며 기를 쓰고 가슴을 덮은 이불자락을 자꾸자꾸
밀어 내리었다. 감기나 들까 염려하는 중모는 그것을 꾸준히 도로 집어 올렸다.
 할머니는 손을 내어 밀더니 이번에는 내 조끼 단추를 붙잡아 당기었다.
 "왜, 이리 하십니까, 단추를 빼란 말씀입니까?"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끄덕였다 하여도 끄덕이려는 의사를 보였을 뿐이었다. 나는 단추
한 개를 빼었다. 그래도 할머니는 자꾸 조끼의 단추와 씨름을 말지 아니하였다. 나는 단추를
낱낱이 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니 그는 또 옷고름과 실랑이를 시작하였다.
 "옷고름을 끄를까요?"
 "응!"
 나는 또 옷고름을 끌렀다. 끄른 뒤엔 할머니는 또 소매를 잡아 당기었다.
 "왜 이리 하셔요?"
 "버, 벗어라, 답답치 않니."
 여기저기서 물어 멈추려고 애쓰는 웃음이 키키하였다.
 나는 경멸과 모욕의 시선을 그들에게 던졌다. 자기가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길래 남의 단추
끼운 것과 옷고름 맨 것과 저고리 입은 것조차 답답해 보일 것이랴! 여기는 쓰디쓴 눈물과 살을
저미는 슬픔이 있어야 하겠거늘, 이 기막힌 광경을 조소로 맞아야 옳을까?
 나는 곧 그들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하되 나의 마음을 냉정하게 살펴본 즉 슬프다!
나에게는 그들을 모욕할 권리가 없었다. 형수들 앞에서 앞가슴을 풀어 젖히라는 할머니가
민망스럽기도 하고 딱하기도 하였다. 환자를 가엾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속 어디인지 웃음이
움직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내가 젊은이 패가 모인 이웃집 방에 들어갔을
제 무슨 재미스러운 일이나 보고 온 사람 모양으로 득의 양양히 이 이야기를 하고서 허리를
분질렀다...
 거기에서는 할머니의 병세에 대하여 의논이 분분하였다. 그들은 하나도 한가한 이가 없었다.
혹은 변호사, 혹은 회사원으로 다 무한년하고 있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암만해도 내일은 좀 가 보아야 되겠는데 나는 그 전보를 보고 벌써 돌아가신 줄 알았어.
올 때에 친구들이 북포니 뭐니 부의를 주길래 아직 돌아 가시지도 않았는데 이게 웬일이냐
하니까, 그 사람들 말이, 돌아가셔도 자손들에게 그렇게 전보를 놓으니, 하데 그려. 그래 모두
받아 왔는데...허허허..."
 그 중에 제일 연장자로 쾌활하고 말 잘하는 백형은 웃음 섞어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암만해도 오늘 내일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는데...이거 큰일났는걸, 가는 수도 없고..."
 "따는 곧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아..."
 은행원으로 있는 육촌은 이렇게 맞방망이를 쳤다.
 "의사를 불러서 진단을 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산 방직 회사에 다니는 사촌이 이런 제의를 하였다.
 "옳지, 참 그래 보아야 되겠군."
 아버지께 이 사연을 아뢰었다.
 "시방 그물그물 하시지 않나, 그러면 하여간 의원을 좀 불러 올까."
 의원은 아버지와 절친한 김주부를 청해 오기로 하였다.
 갓을 쓴 그 의원은 얼마 아니 되어 미륵 같은 몸뚱이를 환자방에 나타내었다. 매우 정신을
모으는 듯이 눈을 내리 감고 한나절이나 진맥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물러앉는다.
 "매우 말씀하기 안 되었소마는 아마 오늘밤이 아니면 내일은 못 넘길 것 같소."
 매우 말하기 어려운 듯이, 기실 조금도 말하기 어렵지 않은 듯이, 그 의원은 취호의 판결을
언도하였다.
 "글쎄 그래 워낙 노쇠하셔서 오래 부지를 하실 수 없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얼굴도 아버지는 맞방망이를 쳤다.
 가려던 자손은 또 붙잡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날 저녁부터 한결 돌리었다. 가끔 잡수실
것을 찾기도 하였다. 잡숫는 건 고작해야 배즙, 국물에 만 한술도 안되는 진지였다. 죽과 미음은
입에 대기도 싫어하였다. 그리고 전일에 발라 드린 양약은 효험이 나서 상처가 아물었던지
자부와 손부에게 부축되어 꽤 오래 일어나 앉게도 되었다.
 그 이튿날이 무사히 지나가자 한의의 무지를 비소하고 다른 것은 몰라도 환자의 수명이 어느
때까지 계속될 시간 아는 데 들어서는 양의가 나으리라는 우리 젊은 패의 주장에 의하여 XX의원
원장으로 있는 천엽의학사를 불러오게 되었다.
 그는 진찰한 결과에 다른 증세만 겹치지 않으면 2, 3주일은 무려하리라 하였다.
 "그래, 그저 그럴 거야, 아직 괜찮으신데 백주에 서둘고 야단을 했지." 하고, 일이 바쁜 백형은
그날 밤으로 떠나갔다.
 그 이튿날 아침이었다.
 우리가 집에 돌아오니까 할머니 곁을 떠난 적 없는 중모가 마당에서 한가롭게 할머니의 뒤
흘린 바지를 빨고 있다가 웃는 낯으로 우리를 맞으며,
 "할머님이 오늘 아침에는 혼자 일어나셨다. 시방 진지를 잡수시고 계시다. 어더 들어가 뵈와라."
 나는 뛰어들어갔다. 자부와 손부의 신기해 여기는 시선을 받으면서 할머니는 정말 진지를
잡숫고 있었다.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할머니, 어떻게 일어나셨습니까?"
 할머니는 합죽한 입을 오물오물하며 막 떠 넣은 밥 알맹이를 삼키고,
 "내가 혼자 일어났지, 어떻게 일어나긴. 흉악한 놈들, 암만 일으켜 달라니 어데 일으켜
주어야지. 인제 나 혼자라도 일어난다."하며, 자랑스럽게 대답하였다.
 "어제 의원이 왔지요. 인제 할머니가 곧 나으신대요."
 "정말 낫겠다고 하든, 응?"하고, 검버섯 핀 주름을 밀며 흔연한 웃음의 그림자가 오래간만에
그의 볼을 스쳤다. 나의 눈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밤차로 모였던 자손들은 제각기 흩어졌다. 나도 그날 밤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말갛게 개인 하늘은 구름 한 점도 없고 아른아른한 아지랑이가 그
하늘거리는 깁 올이로 봄 비단을 짜내는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나는 깨끗하게 춘복을
차리고 친구 몇몇과 우이동 앵화구경을 막 나가려던 때이었다. 이 때에 뜻 아니한 전보 한 장이
닥치었다.
 '오전 3시 조모주 별세'

    운수 좋은 날
    "개벽" 1924. 6.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 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
주기로 되었다.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아침 댓바람에 그리 흉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십 전 짜리 백통화 서푼, 또는 다섯
푼이 찰깍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제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날 이때에 이
팔십 전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모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앓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기침으로 쿨룩거리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니 물론 약 한 첩 써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병이란
놈에게 약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의사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병인이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 새로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병이 이대도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조밥을 먹고 체한 때문이다. 그때도 김첨지가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좁쌀 한 되와 십
전 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 주었더니 김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년이 천방지축으로
남비에 대고 끓였다. 마음은 급하고 불길은 달지 않아 채 익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숟가락은 고만두고 손으로 움켜서 두 뺨에 주먹덩이 같은 혹이 붉어지도록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날 저녁부터 가슴이 땅긴다, 배가 켕긴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때
김첨지는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년, 조랑복은 할 수가 없어, 못 먹어 병, 먹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김첨지는 앓는 이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흡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첨지의 눈시울도 뜨끈뜨끈하였다.
 이 환자가 그러고도 먹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하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파 보채는 개똥이(세살 먹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팔십 전을 손에 쥔 김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땀과 빗물이 섞여 흐르는 목덜미를 기름주머니가
다 된 왜목 수건으로 닦으며, 그 학교 문을 돌아 나올 때였다. 뒤에서 "인력거!"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그 학교 학생인줄 김첨지는 한 번 보고 그 학교 학생인줄
김첨지는 한 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학생은 다짜고짜로,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요."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학교 기숙사에 있는 이로 동기방학을
이용하여 귀향하려 함이리라. 오늘 가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비는 오고, 짐은 있고 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첨지를 보고 뛰어나왔음이리라. 그렇지 않으면 왜 구두를 채 신지 못해서 질질
끌고, 비록 '고구마'양복일망정 노박이로 비를 맞으며 김첨지를 뒤쫓아 나왔으랴.
 "남대문 정거장까지 말씀입니까."하고, 김첨지는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이 우주에 우장도 없이
그 먼곳을 철벅거리고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앞집 마나님한테서 부르러 왔을 제 병인은 그 뼈만
남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우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덕분에 집에 붙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걸그렁걸그렁하였다. 그 때에 김첨지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압다,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환자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하고, 목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정거장까지 가잔 말을 들은 순간에 경련적으로 떠는 손, 유달리 큼직한 눈, 울 듯한 아내의
얼굴이 김첨지의 눈앞에 어른어른하였다.
 "그래 남대문 정거장까지 얼마란 말이요?"하고 학생은 초조한 듯이 인력거꾼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인천 차가 열 한 점에 있고, 그 다음에는 새로 두 점이든가."라고, 중얼거린다.
 "일 원 오십 전만 줍시오."
 이 말도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돈 액수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금액을 불러라도 본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벌 용기가 병자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일 제이의 행운을 곱친 것보다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일 원 오십 전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학생은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잇수로 치면 여기서 거기가 시오리가 넘는답니다. 또 이런 진날에 좀더
주셔야지요."하고 빙글빙글 웃는 차부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가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그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옷도 입고 짐도 챙기러 갈 데로 갔다.
 그 학생을 태우고 나선 김첨지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바퀴도 어떻게 속히 도는지 군다느니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가는 듯하였다. 얼은 땅에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지만.
 이윽고 끄는 이의 다리는 무거워졌다. 자기 집 가까이 다달은 까닭이다. 새삼스러운 염려가
그의 가슴을 눌렀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그리고 병자의 움쑥 들어간 눈이 원망하는 듯이 자기를 노리는 듯하였다. 그러자
엉엉하고 우는 개똥이의 곡성을 들은 듯 싶다. 딸국딸국하고 숨 모으는 소리도 나는 듯 싶다.
 "왜 이러우, 기차 놓치겠구먼."하고 탄 이의 초조한 부르짖음이 간신히 그의 귀에 들어왔다.
언뜻 깨달으니 김첨지는 인력거를 쥔 채 길 한복판에 엉거주춤 멈춰 있지 않은가.
 "예, 예."하고 김첨지는 또다시 달음질하였다. 집이 차차 멀어갈수록 김첨지의 걸음에는 다시금
신이 나기 시작하였다. 다리를 재게 놀려야만 쉴새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정거장까지 끌어다주고 그 깜짝 놀란 일 원 오십 전을 정말 제 손에 쥠에, 제 말마따나 십
리나 되는 길을 비를 맞아가며 질퍽거리고 온 생각은 아니 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될 듯이 기뻤다. 제 자식 뻘밖에 안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다녀옵시오."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그러나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며 이 우중에 돌아갈 일이 꿈밖이었다. 노동으로 하여 흐른 땀이
식어지자 굶주린 창자에서, 물 흐르는 옷에서 어슬어슬 한기가 솟아나기 비롯하매 일 원 오십
전이란 돈이 얼마나 괜찮고 괴로운 것인 줄 절절히 느끼었다. 정거장을 떠나는 그의 발길은 힘
하나 없었다. 온몸이 옹송그려지며 당장 그 자리에 엎어져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젠장맞을 것! 이 비를 맞으며 빈 인력거를 털털거리고 돌아를 간담. 이런 빌어먹을, 제 할미를
붙을 비가 왜 남의 상판을 딱딱 때려!"
 그는 몹시 홧증을 내며 누구에게 반항이나 하는 듯이 게걸거렸다. 그럴 즈음에 그의 머리엔 또
새로운 광명이 비쳤나니 그것은 '이러구 갈게 아니라 이 근처를 빙빙 돌며 차 오기를 기다리면
또 손님을 태우게 될는지도 몰라'란 생각이었다. 오늘 운수가 괴상하게도 좋으니까 그런 요행이
또 한번 없으리라고 누가 보증하랴. 꼬리를 굴리는 행운이 꼭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내기를
해도 좋을 만한 믿음을 얻게 되었다. 그렇다고 정거장 인력거꾼의 등살이 무서우니 정거장 앞에
섰을 수는 없었다. 그래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해본 일이라 바로 정거장 앞 전차 정류장에서
조금 떨어지게, 사람 다니는 길과 전찻길 틈에 인력거를 세워 놓고 자기는 그 근처를 빙빙 돌며
형세를 관망하기로 하였다. 얼마만에 기차는 왔고 수십 명이나 되는 손이 정류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손님을 물색하는 김첨지의 눈엔 양머리에 뒤축 높은 구두를 신고 '만토'까지
두른 기생 퇴물인 듯, 난봉 여학생인 듯한 여편네의 모양이 띄었다. 그는 슬근슬근 그 여자의
곁으로 다가 들었다.
 "아씨, 인력거 아니 타시랍시오?"
 그 여학생인지 뭔지가 한참은 매우 탯갈을 빼며 입술을 꼭 다문 채 김첨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김첨지는 구걸하는 거지나 무엇 같아 연해연방 그의 기색을 살피며,
 "아씨, 정거장 애들보담 아주 싸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댁이 어디신가요."하고,
추근추근하게도 그 여자의 들고 있는 일본식 버들고리짝에 제 손을 대었다.
 "왜 이래, 남 귀치않게."
 소리를 벽력같이 지르고는 돌아선다. 김첨지는 어랍시요하고 물러섰다.
 전차는 왔다. 김첨지는 원망스럽게 전차 타는 이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전차가 빡빡하게 사람을 싣고 움직이기 시작하였을 제 타고 남은 손 하나이 있었다.
굉장하게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아마 붐비는 차 안에 짐이 크다 하여 차장에게
밀려내려온 눈치였다. 김첨지는 대어 섰다.
 "인력거를 타시랍시오."
 한동안 값으로 승강이를 하다가 육십 전에 인사동까지 태워다 주기로 하였다. 인력거가
무거워지매 그의 몸은 이상하게도 가벼워졌고 그리고 또 인력거가 가벼워지니 몸은 다시금
무거워졌건만 이번에는 마음조차 초초해온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리어 인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나무 등걸이나 무엇 같고 제 것 같지도 않은 다리를 연해 꾸짖으며
갈팡질팡 뛰는 수밖에 없었다. 저놈의 인력거꾼이 저렇게 술이 취해 가지고 이 진 땅에 어찌
가노, 라고 길가는 사람이 걱정을 하리만큼 그의 걸음은 황급하였다. 흐리고 비오는 하늘은
어둠침침하게 벌써 황혼에 가까운 듯하다. 창경원 앞까지 다달아서야 그는 턱에 닿은 숨을
돌리고 걸음도 늦추 잡았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질수록 그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런데 이 누그러움은 안심에서 오는 게 아니요, 자기를 덮친 무서운 불행을 빈틈없이 알게 될
때가 박두한 것을 두리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그는 두리번두리번 사면을 살피었다. 그 모양은 마치 자기 집--곧 불행을 향하고
달아가는 제 다리를 제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으니 누구든지 나를 좀 잡아다고, 구해다고
하는 듯 하였다.
 그럴 즈음에 마침 길가 선술집에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온다. 그의 우글우글 살찐 얼굴에
주홍이 덧는 듯, 온 턱과 뺨을 시커멓게 구레나룻이 덮혔거늘, 노르뎅뎅한 얼굴이 바짝 말라서
여기저기 고랑이 패우고 수염도 있대야 턱 밑에만 마치 솔잎송이를 거꾸로 붙여 놓은 듯한
김첨지의 풍채하고는 기이한 대상을 짓고 있었다.
 "여보게 김첨지, 자넨 문안 들어갔다 오는 모양일세 그려, 돈 많이 벌었을 테니 한 잔 빨리게."
 뚱뚱보는 말라깽이를 보든 맡에 부르짖었다. 그 목소리는 몸짓과 딴판으로 연하고 싹싹하였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어떻게 반가운지 몰랐다. 자기를 살려준 은인이나 무엇같이
고맙기도 하였다.
 "자네는 벌써 한 잔 한 모양일세 그려. 자네도 오늘 재미가 좋아 보이."하고, 김첨지는 얼굴을
펴서 웃었다.
 "압다, 매지 안 좋다고 술 못 먹을 낸가.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몸이 어째 물독에 빠진 새앙쥐
같은가? 어서 이리 들어와 말리게."
 선술집은 훈훈하고 뜨뜻하였다. 추어탕을 끓이는 솥뚜껑을 열 적마다 뭉게뭉게 떠오르는 흰 김,
석쇠에서 뻐지짓뻐지짓 구워지는 너비 아니 구이며 저육이며 간이며 콩팥이며 북어며 빈대떡...이
너저분하게 늘어 놓인 안주 탁자에 김첨지는 갑자기 속이 쓰려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대로 할
양이면 거기 있는 모든 먹음먹이를 모조리 깡그리 집어삼켜도 시원치 않았다. 하되 배고픈 이는
위선 분량 많은 빈대떡 두 개를 쪼이기도 하고 추어탕을 한 그릇 청하였다. 주린 창자는
음식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들이라 하였다. 순식간에 두부와 미꾸리 든
국 한 그릇을 그냥 물같이 들이키고 말았다. 세째 그릇을 받아 들었을 제 데우던 막걸리 곱배기
두 잔이 더웠다. 치삼이와 같이 마시자 원원히 비었던 속이라 찌르를 하고 창자에 퍼지며 얼굴이
화끈하였다. 눌러 곱배기 한 잔을 또 마셨다.
 김첨지의 눈은 벌써 개개 풀리기 시작하였다. 석쇠에 얹힌 떡 두 개를 숭덩숭덩 썰어서 볼을
불룩거리며 또 곱배기 두 잔을 부어라 하였다.
 치삼은 의아한 듯이 김첨지를 보며,
 "여보게 또 붓다니, 벌써 우리가 넉 잔씩 먹었네, 돈이 사십 전 일세."라고 주의시켰다.
 "아따 이놈아, 사십 전이 그리 끔찍하냐. 오늘 내가 돈을 막 벌었어. 참 오늘 운수가 좋았느니."
 "그래 얼마를 벌었단 말인가!"
 "삼십 원을 벌었어. 삼십 원을! 이런 젠장맞을 술을 왜 안 부어...괜찮다. 괜찮다, 막 먹어도
상관이 없어. 오늘 돈 산더미같이 벌었는데."
 "어, 이 사람 취했군, 그만두세."
 "이놈아, 이걸 먹고 취할 내냐, 어서 더 먹어."하고는 치삼의 귀를 잡아 치며 취한 이는
부르짖었다. 그리고 술을 붓는 열 다섯 살 됨직한 중대가리에게로 달려들며,
 "이놈, 오라질 놈, 왜 술을 붓지 않어."라고 야단을 쳤다. 중대가리는 희희 웃고 치삼을
문의하는 듯이 눈짓을 하였다. 주정꾼이 이 눈치를 알아보고 화를 버럭내며,
 "에미를 붙을 이 오라질 놈들 같으니, 이놈 내가 돈이 없을 줄 알고."하자마자 허리춤을
흠칫흠칫 하더니 일 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중대가리 앞에 펄쩍 집어던졌다. 그 사품에 몇 푼
은전이 잘그랑 하며 떨어진다.
 "여보게 돈 떨어졌네, 왜 돈을 막 끼얹나."이런 말을 하며 일변 돈을 줍는다. 김첨지는 취한
중에도 돈의 거처를 살피는 듯이 눈을 크게 떠서 땅을 내려다보다가 불시에 제 하는 것이 너무
더럽다는 듯이 고개를 소스라치자 더욱 성을 내며,
 "봐라 봐! 이 더러운 놈들아, 내가 돈이 없나, 다리뼉다구를 꺾어 놓을 놈들 같으니."하고
치삼의 주워 주는 돈을 받아,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하면서, 풀매질을 친다. 벽에 맞아 떨어진 돈은 다시 술
끓이는 양푼에 떨어지며 정당한 매를 맞는다는 듯이 쨍하고 울었다.
 곱배기 두 잔은 또 부어질 겨를도 없이 말려 가고 말았다. 김첨지는 입술과 수염에 붙은 술을
빨아들이고 나서 매우 만족한 듯이 그 솔잎 송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또 부어, 또 부어."라고, 외쳤다.
 또 한 찬 먹고 나서 김첨지는 치삼의 어깨를 치며 문득 껄껄 웃는다. 그 웃음소리가 어떻게
컸는지 술집에 있는 이의 눈은 모두 김첨지에게로 몰리었다. 웃는 이는 더욱 웃으며,
 "여보게 치삼이, 내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할까. 오늘 손을 태고 정거장까지 가지 않았겠나."
 "그래서."
 "갔다가 그저 오기가 안 됐데 그려, 그래 전차 정류장에서 어름어름하며 손님 하나를 태울
궁리를 하지 않았나. 거기 마침 마나님이신지 여학생이신지--요새야 어디 논다니와 아가씨를
구별할 수가 있던가--'만토'를 두르시고 비를 맞고 서 있겠지. 슬근슬근 가까이 가서 인력거
타시랍시오 하고 손가방을 받으려니까 내 손을 탁 뿌리치고 홱 돌아서더니만 '왜 남을 이렇게
귀찮게 굴어!' 그 소리야말로 꾀꼬리 소리지, 허허!"
 김첨지는 교묘하게도 정말 꾀꼬리 같은 소리를 내었다. 모든 사람은 일시에 웃었다.
 "빌어먹을 깍쟁이 같은 년, 누가 저를 어쩌나, '왜 남을 귀찮게 굴어!' 어이구 소리가 처신도
없지, 허허."
 웃음소리들은 높아졌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들이 사라지기 전에 김첨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하였다.
 치삼은 어이없이 주정뱅이를 바라보며,
 "금방 웃고 지랄을 하더니 우는 건 또 무슨 일인가."
 김첨지는 연해 코를 들여 마시며,
 "우리 마누라가 죽었다네."
 "뭐, 마누라가 죽다니, 언제?"
 "이놈아 언제는. 오늘이지."
 "엑기 미친놈, 거짓말 말아."
 "거짓말은 왜, 참말로 죽었어, 참말로...마누라 시체를 집어 뻐들쳐 놓고 내가 술을 먹다니, 내가
죽일 놈이야, 죽일 놈이야."하고 김첨지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치삼은 흥이 조금 깨어지는 얼굴로,
 "원 이 사람이, 참말을 하나 거짓말을 하나. 그러면 집으로 가세, 가."하고 우는 이의 팔을
잡아당기었다.
 치삼의 끄는 손을 뿌리치더니 김첨지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으로 싱그레 웃는다.
 "죽기는 누가 죽어."하고 득의가 양양.
 "죽기는 왜 죽어, 생떼같이 살아만 있단다. 그 오라질 년이 밥을 죽이지. 인제 나한테
속았다."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손뼉을 치며 웃는다.
 "이 사람이 정말 미쳤단 말인가. 나도 아주먼네가 앓는단 말은 들었었는데."하고, 치삼이도 어느
불안을 느끼는 듯이 김첨지에게 또 돌아가라고 권하였다.
 "안 죽었어, 안 죽었데도 그래."
 김첨지는 홧증을 내며 확신 있게 소리를 질렀으되 그 소리엔 안 죽은 것을 믿으려고 애쓰는
가락이 있었다. 기어이 일 원어치를 채워서 곱배기 한 잔씩 더 먹고 나왔다. 궂은 비는 의연히
추적추적 내린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달았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칸을 빌려든 것인데 물을 길어대고 한 달에 일
원씩 내는 터이다. 만일 김첨지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에 들여놓았을제 그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렸으리라.
쿨룩거리는 기침소리도 들을 수 없다.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깨뜨린다느니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하는 그윽한
소리,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뿐이다. 만일 청각이 예민한 이 같으면 그 빡빡 소리는 빨
따름이요, 꿀떡꿀떡 하고 젖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빈 젖을 빤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첨지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은 년, 남편이 들어오는 데 나와보지도 않아, 이 오라질년."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한 증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첨지는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떨어진 삿자리 밑에서 나온
먼지네, 빨지 않은 기저귀에서 나는 똥내와 오줌내, 가지각색 때가 케케히 앉은 옷내, 병인의 땀
썩은 내가 섞인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장천 누워만 있으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때에 '빽빽' 소리가 '응아' 소리로 변하였다. 개똥이가 물었던
젖을 빼어 놓고 운다. 운대도 온 얼굴을 찡그려 붙여서, 운다는 표정을 할 뿐이다. '응아' 소리도
입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뱃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울다가 울다가 목도 잠겼고 또 울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야,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버이" 이러다가 누운 이의 흰 창을 덮은, 위로 치뜬 눈을
알아보자마자.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릉어릉
적시었다. 문득 김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테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은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B사감과 러브 레터
    "조선문단" 1925. 2.

 C여학교에서 교원 겸 기숙사 사감 노릇을 하는 B여사라면 딱장대요, 독신주의자요, 찰진
야소꾼으로 유명하다. 사십이 가까운 노처녀인 그는 주근깨 투성이 얼굴이 처녀다운 맛이란 약에
쓰려도 찾을 수 없을 뿐인가,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폼이 곰팡 슬은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여러 겹 주름이 잡힘 훨렁 벗겨진 이마라든지, 숱이 적어서 법대로 쪽지거나 틀어 올리지를
못하고 엉성하게 그냥 빗겨 넘긴 머리꼬리가 뒤통수에 염소똥만하게 붙은 것이라든지, 벌써
늙어가는 자취를 감출 길이 없었다. 뾰족한 입을 앙다물고 돋보기 너머로 쌀쌀한 눈이 노릴 때엔
기숙생들이 오싹하고 몸서리를 치리만큼 그는 엄격하고 매서웠다.
 이 B여사가 질겁을 하다시피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은 소위 '러브 레터'였다. 여학교
기숙사라면 으레 그런 편지가 많이 오는 것이지만 학교로도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여학생이
많은 탓인지 모르되 하루에도 몇 장씩 죽느니 사느니 하는 사랑타령이 날아들어 왔었다.
기숙생에게 오는 사신을 일일이 검토하는 터이니까 그 따위 편지도 물론 B여사의 손에
떨어진다. 달짝 지근한 사연을 보는 족족 그는 더할 수 없이 흥분되어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편지 든 손이 발발 떨리도록 성을 낸다.
 아무 까닭없이 그런 편지를 받은 학생이야말로 큰 재변이었다. 하학하기가 무섭게 그 학생은
사감실로 불리워간다.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사람 모양으로 쌔근쌔근하며 방안을 왔다갔다 하던
그는, 들어오는 학생을 잡아먹을 듯이 노리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코가 맞닿을 만큼 바싹 다가
들어서서 딱 마주 선다. 웬 영문이지 알지 못하면서도 선생의 기색을 살피고 겁부터 집어 먹은
학생은 한동안 어쩔 줄 모르다가 간신히 모기 만한 소리로,
 "저를 부르셨어요?"하고 묻는다.
 "그래 불렀다. 왜!"
 팍 무는 듯이 한마디하고 나서 매우 못마땅한 것처럼 교의를 우당퉁탕 당겨서 철썩
주저앉았다가 학생이 그저 서 있는 걸 보면,
 "장승이냐? 왜 앉지를 못해."하고 또 소리를 빽 지르는 법이었다.
 스승과 제자는 조그마한 책상 하나를 새에 두고 마주 앉는다. 앉은 뒤에도, "네 죄상을 네가
알지?"하는 것처럼 아무 말없이 눈살로 쏘기만 하다가 한참만에야 그 편지를 끄집어 내어 학생의
코앞에 동댕이를 치며,
 "이건 누구한테 오는 거냐?"하고 문초를 시작한다.
 앞장에 제 이름이 쓰였는지라.
 "저한테 온 것이야요."하고, 대답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발신인이 누구인 것을 재쳐 묻는다.
그런 편지의 항용으로 발신인의 성명이 똑똑치 않기 때문에 주저주저하다가 자세히 알 수 없다고
내대일 양이면,
 "너한테 오는 것을 네가 모른단 말이냐."고 불호령을 내린 뒤에 또 사연을 읽어보라 하여
무심한 학생이 나즉나즉 하나마 꿈같은 구절을 입술에 올리면, B여사의 역정은 더욱 심해져서
어느 놈의 소위인 것을 기어이 알려 한다. 기실 보도 듣도 못한 남성이 한 노릇이요, 자기에게는
아무 죄도 없는 것을 변명하여도 곧이 듣지를 않는다. 바른대로 아뢰어야 망정이지 그렇지
않으면 퇴학을 시킨다는 둥, 제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편지할 리가 만무하다는 둥, 필연 행실이
부정한 일이 있으리라는 둥...
 하다 못해 어디서 한번 만나기라도 하였을 테니 어찌해서 남자와 접촉을 하게 되었느냐는 둥,
자칫 잘못하여 학교에서 주최한 음악회나 '바자'에서 혹 보았는지 모른다고 졸리다 못해 줏어댈
것 같으면 사내의 보는 눈이 어떻더냐, 표정이 어떻더냐, 무슨 말을 건네더냐, 미주알고주알 캐고
파며 얼르고 볶아서 넉넉히 십년 감수는 시킨다.
 두 시간이 넘도록 문초를 한 끝에는 사내란 믿지 못할 것, 우리 여성을 잡아 먹으려는 마귀인
것, 연애가 자유이니 신성이니 하는 것도 모두 악마가 지어낸 소리인 것을 입에 침이 없어 열에
띠어서 한참 설법을 하다가 닦지도 않은 방바닥(침대를 쓰기 때문에 방이라 해도
마루바닥이다)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말끝마다
하느님 아버지를 찾아서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려는 어린양을 구해 달라고 뒤삶고 곱삶는
법이었다.
 그리고 둘째로 그의 싫어하는 것은 기숙생을 남자가 면회하러 오는 일이었다.
 무슨 핑계를 하든지 기어이 못 보게 하고 만다. 친부모, 친동기간이라도 규칙이 어떠니,
상학중이니 무슨 핑계를 하든지 따돌려 보내기가 일쑤다.
 이로 말미암아 학생이 동맹휴학을 하였고 교장의 설유까지 들었건만 그래도 그 버릇은 고치려
들지 않았다.
 이 B사감이 감독하는 그 기숙사에 금년 가을 들어서 괴상한 일이 '생겼다'느니 보다
'발각되었다'는 것이 마땅할는지 모르리라. 왜 그런고 하면 그 괴상한 일이 언제 '시작된'것은
귀신밖에 모르니까.
 그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밤이 깊어서 새로 한 점이 되어 모든 기숙생들이 달고 곤한 잠에
떨어졌을 제 나데 없는 깔깔대는 웃음과 속살속살하는 말 낱이 새어 흐르는 일이었다. 하루 밤이
아니고 이틀 밤이 아닌 다음에야 그런 소리가 잠귀 밝은 기숙생의 귀에 들리기도 하였지만
잠결이라 뒷동산에 구르는 마른잎의 노래로나, 달빛에 날개를 번뜩이며 울고가는 기러기의
소리로나 흘러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깨비의 장난이나 아닌가 하여 무시무시한 증이 들어서
동무를 깨웠다가 좀처럼 동무는 깨지 않고 제 생각이 너무도 어림 없고 어이 없음을 깨달으면,
밤소리 멀리 들린다고, 학교 이웃집에서 이야기를 하거나 또 딴 방에 자는 제 동무들의
잠꼬대로만 여겨서 스스로 안심하고 그대로 자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가 풀릴 때는
왔다. 이때 공교롭게 한 방에 자던 학생 셋이 한꺼번에 잠을 깨었다. 첫째 처녀가 소변을 보러
일어났다가 그 소리를 듣고 둘째 처녀와 셋째 처녀를 깨우고 만 것이다.
 "저 소리를 들어보아요. 아닌 밤중에 저게 무슨 소리야."하고 첫째 처녀는 호동그래진 눈에
무서워하는 빛을 띠운다.
 "어제 밤에 나도 저 소리에 놀랬었어. 도깨비가 났단 말인가?"하고, 둘째 처녀도 잠 오는 눈을
비비며 수상해 한다.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을 뿐더러(많았자 열 여덟 밖에 아니 되지만) 장난 잘
치고 짓궂은 짓 잘 하기로 유명한 셋째 처녀는 동무 말을 못 믿겠다는 듯이 이윽히 귀를
기울이다가.
 "딴은 수상한걸, 나는 언젠가 한 번 들어본 법도 하구먼. 무얼 잠 아니 오는 애들이 이야기를
하는 게지."
 이때에 그 괴상한 소리는 땍데굴 웃었다. 세 처녀는 귀를 소스라쳤다. 적적한 밤 가운데 다른
파동 없는 공기는 그 수상한 말마디를 곁에서나 나는 듯이 또렷 또렷이 전해 주었다.
 "오! 태훈씨! 그러면 작히 좋을까요."
 간드러진 여자의 목소리다.
 "경숙씨가 좋으시다면 내야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아아, 오직 경숙씨에게 바친 나의 타는 듯한
가슴을 인제야 아셨습니까!"
 정열에 띠인 사내의 목청이 분명하였다.
 한동안 침묵...
 "인제 고만 놓아요. 키스가 너무 길지 않아요. 행여 남이 보면 어떡해요."
 아양떠는 여자 말씨,
 "길수록 더욱 좋지 않아요. 나는 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키스를 하여도 길다고는
못하겠습니다. 그래도 짧은 것을 한하겠습니다."
 사내의 피를 뿜는 듯한 이 말 끝은 계집의 자지러진 웃음으로 묵혀 버렸다.
 그것은 묻지 않아도 사랑에 겨운 남녀의 허무러진 수작이다. 감금이 지독한 이 기숙사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세 처녀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놀랍고 무서운 빛이 없지
않았으되 점점 호기심이 번쩍이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머리 속에는 한결같이 로맨틱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안에 있는 여자 애인을 보려고 학교 근처를 뒤돌고 곰돌던 사내 애인이 타는 듯한
가슴을 걷잡다 못하여 밤이 이슥하기를 기다려 담을 뛰어 넘었는지 모르리라.
 모든 불이 다 꺼지고 오직 밝은 달빛이 은가루처럼 서리인 창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여자
애인이 흰 수건을 흔들어 사내 애인을 부른지도 모르리라.
 활동사진에 보는 것처럼 기나긴 필육을 내리워서 하나는 위에서 당기고 하나는 밑에서 매달려
디룽디룽하면서 올라가는 정경이 있었는지 모르리라...
 그래서 두 애인은 만나 가지고 저와 같이 사랑의 속삭거림에 잦아졌는지 모르리라...
 꿈결같은 감정이 안개 모양으로 눈부시게 세 처녀의 몸과 마음을 휩싸돌았다.
 그들의 뺨은 후끈후끈 달았다.
 괴상한 소리는 또 일어났다.
 "난 싫어요. 당신 같은 사내는 난 싫어요."
 이번에는 매몰스럽게 내어대는 모양.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주어요. 나를 구해
주어요."사내의 애를 졸이는 간청...
 "우리 구경 가 볼까."
 짓궂은 셋째 처녀는 몸을 일으키며 이런 제의를 하였다. 다른 처녀들도 그 말에 찬성한다는
듯이 따라 일어섰으되 의아와 공구와 호기심이 뒤섞인 얼굴을 서로 교환하면서 얼마쯤
망설이다가 마침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왔다. 쌀벌레 같은 그들의 발가락은 가장 조심성 많게
소리나는 곳을 향해서 곰실곰실 기어간다. 컴컴한 복도에 자다가 일어난 세 처녀의 흰 모양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다.
 소리나는 방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찾고는 나무로 깎아 세운 듯이 주춤 걸음을
멈출 만큼 그들은 놀래었다. 그런 소리의 출처야말로 자기네 방에서 몇 걸음 안되는 사감실인
줄이야! 그렇듯이 사내라면 못 먹어 하고 침이라도 배앝을 듯하던 B여사의 방일 줄이야! 그 방에
여전히 사내의 비대발괄하는 푸념이 되풀이 되고 있다...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의 애를 말려 죽이실테요. 나의
가슴을 뜯어 죽이실테요. 내 생명을 맡으신 당신의 입술로...
 셋째 처녀는 대담스럽게 그 방문을 빠끔히 열었다. 그 틈으로 여섯 눈이 방안을 향해 쏘았다.
이 어쩐 기괴한 광경이냐! 전등불은 아직 끄지 않았는데 침대 위에는 기숙생에게 온 소위 '러브
레터'의 봉투가 너저분하게 흩어졌고 그 알맹이도 여기저기 두서없이 펼쳐진 가운데 B여사
혼자--아무도 없이 제 혼자 일어나 앉았다. 누구를 끌어 당길 듯이 두 팔을 벌리고 안경을 벗은
근시안으로 잔뜩 한곳을 노리며 그 굴비쪽 같은 얼굴에 말할 수 없이 애원하는 표정을 짓고는
키스를 기다리는 것 같이 입을 쫑긋이 내어민 채 사내의 목청을 내어 가면서 아깟말을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그 넋두리가 끝날 겨를도 없이 급작스리 앵 돌아서는 시늉을 내며 누구를
뿌리치는 듯이 연해 손짓을 하며 이번에는 톡톡 쏘는 계집의 음성을 지어,
 "난 싫어요. 당신 같은 사내는 난 싫어요."하다가 제물에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러더니 문득
편지 한 장을 (물론 기숙생에게 온 '러브 레터'의 하나) 집어들어 얼굴에 문지르며,
 "정 말씀이야요? 나를 그렇게 사랑하셔요? 당신의 목숨 같이 나를 사랑하셔요? 나를, 이
나를."하고 몸을 치수리는데 그 음성은 분명히 울음의 가락을 띠었다.
 "에그머니, 저게 웬 일이야!"
 첫째 처녀가 소곤거렸다.
 "아마 미쳤나 보아, 밤중에 혼자 일어나서 왜 저리고 있을꾸."
 둘째 처녀가 맞방망이를 친다...
 "에그 불쌍해!"하고, 셋째 처녀는 손으로 고인 때 모르는 눈물을 씻었다.

    나도향(1902__1927)
 "백조"동인으로 참가하면서 문단에 데뷔, 19세 때 동아일보에 장편 "환희"를 연재하여 천재적
재능을 보였으나, 2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등, 초기에는
낭만주의로 출발하였으나 이 시기는 감상적, 영탄적인 낭만주의로 습작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낭만성을 극복한 후기에는 순 객관적이고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띠어 요절하기 직전
"물레방아", "뽕", "벙어리 삼룡이" 등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특히 이"벙어리 삼룡이"는
빅톨 위고의 "노틀담의 곱추"를 연상케하는 것으로 크게 주시되고 있는 작품이다.

    벙어리 삼룡이
    "여명" 1925. 7.

   1

 내가 열 살이 될락말락한 때이니까 지금으로부터 십사오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 부르지마는 그때는 연화봉이라고 이름하였다. 즉 남대문에서 바로
내다보며는 오정포가 놓여 있는 산등성이가 있으니, 그 산등성이 이쪽이 연화봉이요, 그 새에
있는 동네가 역시 연화봉이다.
 지금 그곳에 빈민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이 지저분한 촌락이 생기고 노동자들밖에 살지 않는
곳이 되어 버렸으나, 그때에는 자기네 딴은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있었다.
 집이라고는 십여호 밖에 있지 않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과목밭을 하고 또는 채소를
심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하여 갔었다.
 여기에 그 중 큰 과목밭을 갖고 그중 여유 있는 생활을 하여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잊어버렸으나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오생원이라고 불렀다.
 얼굴이 동탕하고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앉아서 길게 목 늘여 우는 매미 소리같이
저르렁저르렁 하였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아침이면 새벽 일찍이 일어나서 앞 뒤로 뒷짐을 지고
돌아다니며 집안 일을 보살피는데, 그 동네에는 그가 마치 시계와 같아서 그가 일어나는 때가
동네 사람이 일어나는 때였다. 만일 그가 아침에 돌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이 이상하여 그의 집으로 가보면 그믐 반드시 몸이 불편하여 누웠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는 일년 삼백육십일에 한번 있기가 어려운 일이요, 이태나 삼년에 한 번 있거나 말거나 하였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 아니하나 그가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니므로 동네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불렀고, 또 그 사람도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으려고 섣달이면
북어쾌, 김톳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농사 때에 쓰는 연장도 넉넉히 장만한 후 아무 때나
돈네 사람들이 쓰게 하므로 그 동네에서는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을 받는 집인 동시에 세력 있는
집이다.
 그 집에는 삼룡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가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전에 새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하고 일어섰다. 그래 걸어 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 같이
숨차 보이고 더디어 보인다.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고 언제든
'벙어리' '벙어리'라고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앵모' '앵모' 한다. 그렇지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알지 못한다.
 그도 이 집 주인이 이리로 이사를 올 때에 데리고 왔으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가는 벙어리지마는 말하고 듣는 사람보다 슬기로울 적이 있고 평생
조심성이 있어서 결코 실수한 적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돼지의 여물을 먹이며, 여름이면 밭에 풀을 뽑고 나무를
실어 들이고 장작을 패며, 겨울이면 눈을 쓸고 잔심부름이며 진일, 마른 일 할 것 없이 못하는
일이 없다.
 그럴수록 이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 주며 사랑한다. 혹시 몸이 불편한 기색이 있으면 쉬게
하고, 먹고 싶어하는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때 입히고 잘 때 재운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독자로 내려오는 그 집 아들이 있다. 나이는 열 입곱 살이나 아직 열 네
살도 되어 보이지 않고 너무 귀엽게 기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없고 어리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포악한 짓을 많이 한다.
 동네 사람들은,
 "후레자식! 아비 속 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없는 것만 못해."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잘못할 때마다 그의 영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때려 주그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 두지?"하고 자기가 대신 때려 주려고
나서면,
 "아뇨, 아직 철이 없어 그렇지. 저도 지각이 나면 그렇지 않을 것이 아뇨."하고 너그럽게
타이른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지르며,
 "철이 없긴 지금 나이가 몇이요. 낼 모레면 스무 살이 되는데, 또 며칠 아니면 장가를 들어서
자식까지 날 것이 그래 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오."하고, 들이대며,
 "자식은 꼭 아버지가 버려 놓았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았지 버릇 가르칠 줄은
모르니까--."
 이렇게 싸움만 시작하려하면 영감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그 아들은 더구나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않는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길로 엉덩이도 찬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없이 그러는 것이 도리어 귀엽기도 하고 또는 그 힘없는 팔과
힘없는 다리로 자기의 무쇠 같은 몸을 건드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징하기도 하여 돌아서서
방그레 웃으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 버린다.
 어떤 때는 낮잠 자는 벙어리 입에다가 똥을 먹인 때도 있었다. 또 어떤 때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동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불을 붙여 놓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려는 사람처럼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이러할 때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꽉 들어 찼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기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였으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의 눈물은 나오려 할 때 아주 말라 붙어 버린
샘물과 같이 나오려 하나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모르는 개 모양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밖에 없고 자기가 믿을 곳도 여기 있는 사람들밖에 없을 줄 알았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서 죽는 것이 자기의 운명인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자기의 주인 아들이
때리고 지르고 꼬집어 뜯고 모든 방법으로 학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으레 있을 줄밖에 알지
못하였다. 아픈 것도 그 아픈 것이 으레 자기에게 돌아올 것이요, 쓰린 것도 자기가 받지
않아서는 안 될 것으로 알았다. 그는 이 마땅히 자기가 받아야 할 것을 어떻게 해야 면할까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여본 일이 없었다.
 그가 이 집에서 떠나가려거나 또는 그의 생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하였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든지 그 주인 아들이 자기를 학대하고 또는 자기를 못 살게 굴 때
그는 자기의 주먹과 또는 자기의 힘을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아들이 자기를 때릴 때 그는 주인 아들 하나쯤은 넉넉히 제지할 힘이 있는 것을 알았다.
 어떠한 때는 아픔과 쓰림이 자기의 몸으로 스미어 들 때면 그의 주먹은 떨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려하다가는 그는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께 꽉 참았다.
 그는 속으로,
 "아니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인이다."하고, 꾹 참았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핏 잊어버리었다. 그러다가도 동네집 아이들과 혹시 장난을 하다가 주인
아들이 울고 들어 올 때에는 그는 황소같이 날뛰면서 주인을 위하여 싸웠다. 그래서 동네에서도
어린애들이나 장난꾼들이 벙어리를 무서워하여 감히 덤비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주인 아들도
위급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찾았다. 벙어리는 얻어맞으면서도 기어드는 충견 모양으로
주인의 아들을 위하여 싫어하지 않고 힘을 다하였다.

   2

 벙어리가 스물 세 살 될 때까지 그는 물론 이성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다. 동네의 처녀들이
저를 '벙어리' '벙어리'하며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려먹음을 받을 적에 분하고 골나는 중에도
느긋한 즐거움을 느끼어 본 일은 있었으나 그가 결코 사랑으로서 어떠한 여자를 대해 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정욕을 가진 사람인 벙어리도 그의 피가 차디찰 리는 없었다. 혹 그의 피는 더욱
뜨거웠을는지도 알 수 없었다. 뜨겁다 뜨겁다 못하여 엉기어 버린 엿과 같을지도 알 수 없었다.
만일 그에게 볕을 주거나 다시 뜨거운 열을 준다면 그의 피는 다시 녹을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깜박깜박하는 기름 등잔 아래에서 밤이 깊도록 짚세기를 삼을 때이면 남모르는 한숨을
아니 쉬는 것도 아니지마는 그는 그것을 곧 억제할 수 있을 만치 정욕에 대하여 벌써부터 단념을
하고 있었다.
 마치 언제 폭발이 될는지 알지 못하는 휴화산 모양으로 그의 가슴 속에는 충분한 정열을 깊이
감추어 놓았으나 그것이 아직 폭발될 시기가 이르지 못한 것이었다. 비록 폭발이 되려고 무섭게
격동함을 벙어리 자신도 느끼지 않는 바는 아니지마는 그는 그것을 폭발시킬 조건을 얻기
어려웠으며 또는 자기가 여태까지 능동적으로 그것을 나타낼 수가 없을 만치 외계의 압축을
받았으며 그것으로 인한 이지가 너무 그에 자제력을 강대하게 하여 주는 동시에 또한 너무
그것을 단념만 하게 하여 주었다.
 속으로 '나는 벙어리다' 자기가 생각할 때 그는 몹시 원통함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자유와 똑 같은 권리가 없는 줄 알았다. 그는 이와 같은 생각에서 언제든지
단념 않을래야 단념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단념이 쌓이고 쌓이어 지금에는 다만 한 개의 기계와
같이 이 집의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천직으로 알고 있을 뿐이요, 다시는 자기가
살아갈 세상이 없는 것같이 밖에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그 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었다. 색시는 신랑보다 두 살 위인 열 아홉 살이다.
주인이 본시 자기가 언제든지 문벌이 얕은 것을 한탄하여 신부를 구할 때에 첫째 조건이 문벌이
높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문벌 있는 집에서는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놀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하는 수 없이 그 어떠한 영락한 양반의 딸을 돈을 주고 사오다시피 하였으니 무남독녀의 딸을 둔
남촌 어떤 과부를 꿀을 발라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딴소리가 있을까 하여 부랴부랴
성례식을 시켜 버렸다.
 혼인할 때의 비용도 그때 돈으로 삼만냥을 썼다. 그리고 아들의 처가집에 며느리 뒤 보아주는
바느질삵, 빨래삯이라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오백냥씩을 대어 주었다.
 신부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까지 상당히 견디기도 하고 또는 금지옥엽같이 기른 터이라
구식 가정에서 배울 것 읽힐 것은 못한 것이 없고 또는 본래 인물이라든지 행동거지에 조금도
구김이 있지 아니하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흠절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까마귀지."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어."
 "색시에게 쥐여 지내겠지."
 "신랑에겐 과하지." 동네집 말 좋아하는 여편네들이 모여 앉으면 이렇게 비평들을 한다. 어떠한
남의 걱정 잘 하는 마누라님은 간혹 신랑을 보고는 그대로 세워 놓고,
 "글쎄, 인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셈이 좀 나요, 저리구 어떻게 색시를 거느려 가누. 색시방에
들어가기가 부끄럽지 않담."하고 들이대다시피 하는 일이 있다.
 이럴 적마다 신랑의 마음은 그 말하는 이들이 미웠다. 일부러 자기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것
같아서 그 후에 그를 만나면 말도 안하고 인사도 하지 아니한다.
 또 그의 고모 되는 이가 와서 자기 조카를 보고,
 "인제는 어른이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때가 되지 않았니. 네 처가 부끄럽지
아니하냐."하고 타이를 적마다 그의 마음은 그 말하는 사람이 부끄럽다는 것보다는 자기를
이렇게 하게 한 자기 아내가 더욱 밉살머리스러웠다.
 "여편네가 다 무엇이냐? 저 빌어먹을 년이 들어오더니 나를 이렇게들 못살게들 굴지."
 혼인한지 며칠이 못되어 그는 색시방에 들어가지를 않았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났다. 마치
돼지나 말새끼를 혼례시키려는 것같이 신랑을 색시방으로 집어넣으려 하나 막무가내였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 때려서 자기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를 뚫어서
피까지
나게 한 일이 있었다.
 집안 식구들은 하는 수가 없어 맨 나중으로 아버지에게 밀었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없을 뿐더러 풍파를 더 일으키게 하였다. 아버지께 꾸중을 듣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아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쳤다.
 그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싫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도 말아."하였다. 밥상을 가져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주를 넘고 옷을 가져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여 색시는 시집오던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고서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었다.
 울며는 요사스럽다고 때린다. 또 말이 없으면 빙충맞다고 친다. 이리하여 그 집에는 평화스러운
날이 하루도 없었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없는 의혹을 품게 된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곧
벙어리 삼룡이었다.
 그렇게 예쁘고 유순하고 그렇게 얌전한, 벙어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만치
선녀 같은 색시를 때리는 것은 자기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의심이다.
 보기에도 황홀하고 건드리기도 황송할만치 숭고한 여자를 그렇게 학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세상에 있지 못할 일이다. 자기는 주인 새서방에게 개나 돼지같이 얻어맞는 것이 마땅한
이상으로 마땅하지마는 선녀와 짐승의 차가 있는 색시와 자기가 똑같이 얻어 맞는 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받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였다.
 어떠한 달밤, 사면은 고요적막하고 별들은 드문드문 눈물만 깜박이며 반달이 공중에 뚜렷이
달려 있어 수은으로 세상을 깨끗하게 닦어낸 듯이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밖
마당 멍석 위에 비슷이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고 생각하여 보았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공중에 있는 달보다도 더 곱고 별들보다도 더 깨끗하였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이고 별이 보이었다. 삼라만상을 씻어내는 은빛보다도 더 흰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 하였다. 마치 달이나 별이 땅에 떨어져 주인
새아씨가 된 것도 같고 주인 새아씨가 하늘에 올라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자기를 어린 주인이 때리고 꼬집을 때 감히 입 벌려 말은 하지 못하나 측은하고 불쌍히
여기는 정이 그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다시 생각할 때 그는 부들부들한 개들을 어루만지면서
감격을 느끼었다.
 개는 꼬리를 치며 자기를 귀여워 하는 줄 알고 벙어리의 손을 핥았다.
 삼룡이의 마음은 주인 아씨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또는 그를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는 의분에 넘치었다. 그것이 마치 살구를 보면 입 속에 침이 도는 것
같이 본능적으로 느끼어지는 감정이었다.

   4

 새댁이 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운 안 출입을 금하였으나 벙어리는 마치 개가 맘대로
안에 출입할 수 있는 것같이 아무 의심 없이 출입할 수가 있었다.
 하루는 어린 주인이 먹지 않던 술이 잔뜩 취하여 무지한 놈에게 맞아서 길에 자빠진 것을
업어다가 안으로 들여다 누인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아무도 안에 있지 않고 다만 새색시 혼자
바느질을 하고 있다가 이 꼴을 보고 벙어리의 충성된 마음이 고마워서 그 후에 쓰던 비단
헝겊조각으로 부시쌈지 하나를 하여준 일이 있었다.
 이것이 새서방님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색시는 어떤 날 밤 자던 몸으로 마당복판에 머리를 푼
채 내동댕이가 쳐졌다. 그리고 온 몸에 피가 맺히도록 얻어맞았다.
 이것을 본 벙어리는 또 다시 의분의 마음이 뻗쳐 올라왔다. 그래서 미친 사자와 같이 뛰어
들어가 새서방님을 내어 던지고 새색시를 둘러 메었다. 그리고는 나는 수리와 같이 바깥 사랑
주인 영감 있는 곳으로 뛰어가 그 앞에 내려놓고 손짓과 몸짓을 열번 스무번 거푸하며 하소연
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굴을 몹시 얻어 맞아서 한쪽 뺨이 눈을
얼러서 피가 나고 주먹같이 부었다. 그 때릴 적에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칙한 벙어리 같으니, 내 여편네를 건드려!"하고, 부시쌈지를 빼앗아 갈갈이 찢어 뒷간에
던졌다.
 "그러고 이놈아! 인제는 주인도 몰라 보고 막 친다! 이런 것은 죽여야 해."하고, 채찍으로 그의
뒷덜미를 갈겨서 그 자리에 쓰러지게 하였다.
 벙어리는 다만 두 손으로 빌 뿐이었다. 말도 못하고 고개를 몇 백번 코가 땅에 닿도록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비로소 숨겨 있던 정의감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 아픈 것을 참아 가면서도 북받치는 분노(심술)를 억제하였다.
 그때부터 벙어리는 안방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더욱 벙어리로 하여금
궁금증이 나게 하였다. 그 궁금증이라는 것이 묘하게 빛이 변하여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감정으로 변하였다. 뵈옵지 못하므로 가슴이 타올랐다. 몹시 애상의 정서가 그의 가슴을 저리게
하였다. 한번이라도 아씨를 뵈올 수가 있으면 하는 마음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넋은 느끼기를
시작하였다. 센티멘탈한 가운데에서 느끼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같은 희열을 주었다.
그것과 자기의 목숨이라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때는 그대로 대강이로 담을 뚫고
들어가고 싶도록 주인 아씨를 뵈옵고 싶은 것을 꾹 참을 때도 있었다.
 그 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없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틈만 있으면 안으로만
들어가고 싶었다.
 주인이 전보다 많이 밥과 음식을 주고 더 편하게 하여 주었으나 그것이 싫었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집 가장자리로 돌아다녔다.
 하루는 주인 새서방님이 술이 취하여 들어오더니 집안이 수선수선하여지며 계집 하인이 약을
사러 갔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 계집하인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엇이냐고 물었다.
 계집 하인은 한 주먹을 뒤통수에 대고 얼굴을 젊다고 하는 뜻으로 쓰다듬으며 둘째 손가락을
내밀었다. 그것은 그집 주인은 엄지손가락이요, 둘째 손가락은 새서방님이라는 뜻이요, 주먹을
뒤통수에 대이는 것은 여편네라는 뜻이요, 얼굴을 문지르는 것은 예쁘다는 뜻으로 벙어리에게
쓰는 암호다.
 그런 뒤에 다시 혀를 내밀고 눈을 뒤집어 쓰는 형상을 하고 두 팔을 싹 벌리고 뒤로 자빠지는
꼴을 보이니 그것은 사람이 죽게 되었거나 앓을 적에 하는 말 대신의 손짓이다.
 벙어리는 눈을 크게 뜨고 계집 하인에게 한 발자국이 가까이 들어서며 놀래는 듯이 멀거니
한참이나 있었다.
 그의 가슴은 무섭게 격동하였다. 자기의 그리운 주인 아씨가 죽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는 두
주먹을 마주치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자기 방에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두어 시간이나
두 눈만 껌벅껌벅하고 앉았었다.
 그는 밤이 깊어 갈수록 궁금증 나는 사람처럼 일어섰다, 앉았다 하더니 두시나 되어서
바깥으로 나가서 뒤로 돌아갔다.
 그는 도둑놈처럼 조심스럽게 바로 건넌방 뒤 미닫이 앞 담에 서서 주저주저하더니 담을
넘었다. 가까이 창 앞에 서서 문틈으로 안을 살피다가 그는 진저리를 치며 물러섰다.
 어두운 밤에 그의 손과 발이 마치 그 뒤에 서 있는 감나무 잎같이 떨리더니 그대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을 때 그의 팔에는 주인 아씨가 한 손에 갈다란 명주수건을 들고서 한 팔로
벙어리의 가슴을 밀치며 뻐팅기었다. 벙어리는 다만 눈이 뚱그래서 '에헤'소리만 지르고 그
수건을 뺏으려 애쓸 뿐이다.
 집안이 야단 났다.
 "집안이 망했군!"
 "어디 사내가 없어서 벙어리를!"
 "어떻든 알 수 없는 일이야!"하는 소리가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수군댔다.

   6

 그 이튿날 아침에 벙어리는 온 몸이 짓이긴 것이 되어 마당에 거꾸러져 입에서 피를 토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 곁에서는 새서방이 쇠줄 몽둥이를 들고서 문초를 한다.
 "이놈!"하고는 음란한 흉내는 모조리 하여가며 건넌방을 가리킨다. 그러나 벙어리는 손을
내저을 뿐이다. 또 몽둥이에는 살점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피가 흘렀다.
 벙어리는 타들어가는 목으로 소리도 못내며 고개만 내젓는다. 그는 피를 토하며 거꾸러지며
이마를 땅에 비비며 고개를 내흔든다. 땅에는 피가 스며든다. 새서방은 채찍 끝에 납뭉치를
달아서 가슴을 훔쳐 갈겼다가 힘껏 잡아 뽑았다.
 새서방은 그래도 시원치 못하였다. 그는 어제 벙어리가 새로 갈아 놓은 낫을 들고 달려왔다.
그는 그 시퍼렇게 드는 날을 번쩍 들었다. 그래서 벙어리를 찌르려 할 제 벙어리는 한 팔로
그것을 받았고 집안 사람은 달려 들었다. 벙어리는 낫을 뿌리쳐 저리로 내던졌다.
 주인은 집안이 망하였다고 사랑에 누워서 모든 일을 들은 체 만 체 문을 닫고 나오지를
아니하며 집안에서는 색시를 쫓는다고 야단이다. 그날 저녁에 벙어리는 다시 끌려 나왔다.
그때에는 주인 새서방이 그의 입던 옷과 신짝을 주며 눈을 부릅뜨고 손을 머리 가리키며,
 "가! 인제는 우리 집에 있지 못한다."하였다. 이 소리를 듣는 벙어리는 기가 막혔다. 그에게는
이 집 외에 다른 집이 없다. 살 곳이 없었다. 자기는 언제든지 이 집에서 살고 이 집에서 죽을
줄밖에 몰랐다. 그는 새서방님의 다리를 끼어 안고 애걸하였다. 말도 못 하는 것을 몸짓과
표정으로 간곡한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새서방님은 발길로 지르고 사람을 불렀다.
 "이놈을 좀 내쫓아라."
 벙어리는 죽은 개모양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대갈빼기를 개천구석에 박히면서 나가
곤드라졌다가 일어서서 다시 들어오려 할 때에는 벌써 문이 닫혀 있었다. 그는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음으로는 주인 영감을 찾았으나 부를 수가 없었다. 그가 날마다 열고 날마다 닫던 문이
자기가 지금은 열려 하나 자기를 내어쫓고 열리지를 않는다. 자기가 건사하고 자기가 거두던
모든 것이 오늘에는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모든 정성과 힘과 뜻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일한 값이 오늘에는 이것이다.
 그는 비로소 믿고 바라던 모든 것이 자기의 원수란 것을 알았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없애 버리고 자기도 또한 없어지는 것이 나은 것을 알았다.
 그날 저녁 밤은 깊었는데 멀리서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개짖는 소리 뿐이 들린다. 난데없는
화염이 벙어리 있던 오생원 집을 에워쌌다. 그 불을 미리 놓으려고 준비하여 놓았는지 집
가장자리로 쪽 돌아가며 흩어 놓은 풀에 모조리 돌라 붙어 공중에서 내려다 보며는 집의 윤곽이
선명하게 보일 듯이 타오른다.
 불은 마치 피묻은 살을 맛있게 잘라먹는 요망의 혓바닥처럼 날름날름 집 한 채를 삽시간에
먹어 버리었다. 이와 같은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사람이 하나 있으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낮에 이 집을 쫓겨난 삼룡이다. 그는 먼저 사랑에 가서 문을 깨뜨리고 주인을 업어다가
밭 가운데 놓고 다시 들어 가려 할 제 그의 얼굴과 등과 다리가 불에 데이어 쭈그러져 드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는 건넌방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색시는 없었다. 다시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또
없고 새서방이 그의 팔에 매달리어 구원하기를 애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몰랐다. 부엌으로
가 보았다. 거기서 나오다가 문설주가 떨어지며 왼팔이 부러졌다. 그러나 그것도 몰랐다. 그는
다시 광으로 가 보았다. 거기도 없었다. 그는 다시 건넌방으로 가 보았다. 거기도 없었다. 그는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야 그는 색시가 타 죽으려고 이불을 쓰고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색시를 안았다. 그리고는 길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여태까지 맛보지 못한 즐거운
쾌감을 자기의 가슴에 느끼는 것을 알았다. 색시를 자기 가슴에 안았을 때 그는 이제 처음으로
살아난 듯하였다. 그는 자기의 목숨이 다 한 줄 알았을 때 그 색시를 내려놀 때에는 그는 벌써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색시를 무릎에 뉘고 있었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께 사라졌을는지! 평화롭고 행복스러운 웃음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엷게 나타났을
뿐이다.


    염상섭(1897__1963)
 1920년대에 나온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작품활동을 한 작가인 동시에, 문학사적인 비중이
가장 무겁게 다루어지고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처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는
현대소설의 중요한 요소라 할 심리분석 방법을, 우리나라의 소설사상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마치 과학자와 같이 치밀한 관찰과 세밀한
사실적인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 당시의 김동인은 '과도기 청년의 불안과
번민'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같이 그는 초기 작품에서부터 문제성을 제기했으며, 중편
"만세전", 장편 "삼대"에 이르러서는 그 건실한 작가의식과 중후한 문장표현으로 작가적 특색을
보였다. 특히 그의 해방 후의 작품인 "임종", "두 파산" 등의 단편은 원숙한 경지를 보여 주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
    "개벽" 1921. 8__10

   1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어왔다.
 귀성한 후 칠, 팔개삭 간의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전신을 해면같이 짓두들겨 놓았을 뿐 아니라
나의 혼백까지 두식 하였다. 나의 몸을 어디를 두드리든지 알코올과 니코친의 독취를 내뿜지
않는 곳이 없을 만큼 피로하였었다. 더구나 육, 칠월 성하를 지내고 겹옷 입을 때가 되어서는
절기가 급변하여 갈수록 몸을 추스르기가 겨워서 동네 산보에도 식은 땀을 줄줄 흘리고 친구와
이야기하려면 두, 세마디째부터는 목침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무섭게 앙분한 신경만은 잠자리에서도 눈을 뜨고 있었다. 두 홰 세 홰 울 때까지
엎치락 뒤치락거리다가 동이 번히 트는 것을 보고 겨우 눈을 붙이는 것이 일주일간이나 넘은
뒤에는 불을 끄고 드러눕지를 못하였다.
 그 중에도 나의 머리에 교착하여 불을 끄고 누웠을 때마다 가혹히 나의 신경을 엄습하여 오는
것은 해부된 개구리가 사지에 '핀'을 박고 칠성판 위에 자빠진 형상이다.
 내가 중학교 2년 시대에 박물실험실에서 수염텁석부리 선생이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 차례차례로 끌어내서 자는 아기 누이 듯이 주정병에 채운 후에
옹위하고 서서 있는 생도들을 돌아다보며 대발견이나 한 듯이,
 "자 여러분, 이래도 아직 살아 있는 것을 보시오."하고 뾰족한 바늘 끝으로 여기저기를 콕콕
찌르는 대로 오장을 빼앗긴 개구리는 진저리를 치며 사지에 못박힌 채 벌떡벌떡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팔년이나 된 그 인상이 요사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나서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애를 써도 아니
되었다. 새파란 '메스', 닭의 똥만한 오물오물하는 심장폐, 바늘끝, 조그만 전율...차례 차례로
생각날 때마다 머리끝이 쭈뼛쭈뼛하고 전신에 냉수를 끼얹는 것 같았다.
 남향한 유리창 밑에서 번쩍 쳐드는 '메스'의 강렬한 반사광이 안공을 찌르는 것 같아 컴컴한
방 속에 드러누웠어도 꼭 감은 눈썹 밑이 부시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머리맡에 놓인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면도칼이 조심이 되어서 못 견디었다.
 내가 남포에 가던 전날 밤에는 그 증이 더욱 심하였다. 간반통 밖에 안 되는 방에 높이 매달은
전등불이 부시어서 꺼버리면 또다시 환영에 괴롭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으나 심사가
나서 웃통을 벗은 채로 벌떡 일어나서 스위치를 비틀고 누웠다. 그러나 '째응'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스러져 나가자 또 머리를 엄습하여 오는 것은 수염 텁석부리의 '메스'서랍 속의 면도다.
메스...면도, 메스..., 잊으려면 잊으려 할수록 끈적끈적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어느 때까지 꼬리를
물고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었다. 금시도 손이 서랍으로 갈듯갈듯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괴이한
마력은 억제하려면 할수록 끈적끈적하게도 떨어지지 않고 어느 때까지 꼬리를 물고 머리 속에서
돌아다니었다. 금시도 손이 서랍으로 갈듯갈듯하여 참을 수가 없었다. 괴이한 마력은 억제하려면
할수록 점점 더하여 왔다. 스스로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소스라쳐 눈을 뜨면 덧문안 닫은
창이 부옇게 보일 뿐이요, 방속은 여전히 암흑에 침적하였다. 비상한 공포가 전신에 압도하여 손
끝 하나 까딱거릴 수 없으면서도 이상한 매력과 유혹은 절정에 달하였다.
 "내가 미쳤나? 아니, 미치려는 징조인가?"하며 제풀에 겁이 났다.
 나는 잠에 취한 놈 모양으로 이불을 와락 차던지고 일어나서 서랍에 손을 대었다. 그러나
'그래도 손을 대었다가...'하는 생각이 전뢰와 같이 머리 속에 번쩍할 제 깊은 꿈에서 깨인 것같이
정신이 반짝나서 전등을 켜려다가 성냥통을 더듬어 찾았다. 한 개피를 드윽 켜들고 창틀 위에
얹어둔 양초를 집어내려서 붙여 놓은 후 서랍을 열었다. 쓰다가 몇 달 동안이나 꾸려둔 원고,
편지, 약갑들이 휴지통같이 우굴우굴한 속을 부스럭부스럭하다가 미끈하고 잡히는 자루에
집어넣은 면도를 외면을 하고 꺼내서 창밖으로 뜰에 내던졌다. 그러나 역시 잠은 못 들었다.
 맥이 확 풀리고 이마에는 식은 땀이 비져 나왔다. 시체 같은 몸을 고민하고 난 병인처럼
사지를 축 늘어뜨려 놓고 누워 생각하였다.
 "하여간 이 방을 면하여야 하겠다."
 지긋지긋한 듯이 방안을 휘익 돌아다 본 뒤에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디든지 여행을 하려는
생각은 벌써 수삭 전부터의 계획이었지만 여름에 한 번 놀러가 본 신흥사에도 간다는 말 뿐이요,
이때껏 실현은 못 되었다.
 "어디든지 가야겠다. 세계의 끝까지, 무한에, 영원히, 발끝 자라는 데까지, 무인도! 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 몸에서 기름이 부지직부지직 타는 남양!...아아."
 나는 그림엽서에서 본 울창한 산림, 야자수 밑에 앉은 나체의 만인을 생각하고 통쾌한 듯이
어깨를 으쓱하여 보았다. 단 일분의 정거도 아니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힘있는 굳센 숨을
헐떡헐떡 쉬는 '풀 스피이드'의 기차로 영원히 달리고 싶다...만일 타면 현기가 나리라는 염려만
없었으면 비행기! 비행기! 하며 혼자 좋아하였을지도 몰랐었다.

   2

 내가 두어달 동안이나 집을 못 떠나고 들어 앉았는 것은 금전의 구애가 제일 원인이었지마는
사실 대문밖에 나서려도 좀처럼 하여서는 쉽지 않았다.
 그 이튿날 H가 와서 오늘은 꼭 떠날 터이니 동행을 하자고 평양 방문을 권할 때에는
지긋지긋한 경성의 잡답을 등지고 떠나서 다른 기분을 얻으려는 욕구와 장단을 불구하고 하여간
기차를 타게 될 호기심에 끌리어서,
 "응, 가지 가지."하며 덮어놓고 동의는 하였으나 인제 정말 떠날 때가 되어서는 떠나고 싶은지
그만두어야 좋을지 자기의 심증을 몰라서, 어떻게 된 셈도 모르고 H에게 끌려 남대문역까지
하여간 나왔다.
 열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나 승객은 입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급히 표를 사 가지고 재촉하는 H를 따라갔다. 시간이라는 세력이 호불호 긍불긍을
불문하고 모든 것을 불가항력 하에서 독단하여 끌고 가게 된 것을 나는 오히려 다행히 알고
되어가는 대로 되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풀려 나가는 행렬 뒤에 섰었다. 그러나 검역증명서가
없다고 개찰구에서 H와 힐난이 되는 것을 보고 나는 행렬에서 벗어나서 또다시 아니가겠다고
하였다.
 심사가 난 H는 마음대로 하라고 뿌리치며 혼자 출장 주사실로 향하다가 돌쳐와서 같이 끌고
들어갔다.
 백촉이나 되는 전등 밑에서 '히스테리칼'한 간호부가 주사침을 들고 덤벼들제 나는 반쯤 걷어
올렸던 셔츠를 내리며 돌아서 마주 섰다. 그러나 간호부의 핀잔과 재촉에 마지 못하여 눈을 딱
감고 한 대 맞은 후 황황히 플랫포음으로 들어가서 차에 올랐다. 차에 올라 앉아서도 공연히
후회를 하고 앉았었으나 강렬한 위스키의 힘과 격심한 전신의 동요, 반발, 차바퀴 달리는 소리,
암흑을 돌파하는 속력, 주사 맞은 어깨의 침통...모든 관능을 일시에 용약케하는 자극의 와중에서
모든 것을 잊고 새벽에는 쿨쿨 자리만치 마음이 가라앉았다. 덕택으로 오늘 밤에는 메스도
번쩍거리지 않고 면도도 뛰어 나오지 않았다. 동이 틀락말락 하여서 우리들은 평양역에 내렸다.
 남포행은 아직 이, 삼십분이나 있는 고로 우리들은 세면소에서 세수를 하고 대합실로 나왔다.
나는 부석부석한 붉은 눈을 내리깔고 소파 끝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서,
 "난 예서 좀 돌아다닐 테니..." 내던지듯이 한 마디를 불쑥하고 H를 마주쳐다보다가,
 "혼자 가서 Y군을 만나보고, 오늘이라도 같이 이리 오면 만나보고, 그렇지 않으면 혼자
돌아다니다가 밤차로 갈테야."하며 H의 대답도 듣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
 "응? 뭐야? 그 왜 그래?...또 미친 증이 난 게로군."하며 H는 벗어 들었던 레인코오트를 뒤집어
쓰면서 쫓아 나와 붙든다.
 "...사람이 보기 싫어서...사실 Y군과 만나기로 별로 이야기할 것도 없고."하며 애원하듯이 힘
없는 어조로 한마디 하고,
 "영원히 흘러가고 싶다. 끝없는 데로..."혼잣말처럼 힘을 주어 말을 맺고 훌쩍 나와 버렸다.
 H도 하는 수 없이 테이블에 놓았던 트렁크를 들고 따라 나왔다.
 우리 양인은 대동강가로 길을 찾아 나와서 부벽루로, 훤히 동이 틀까말까한 컴컴한 길을 소리
없이 걸었다.
 한바탕 휘돌아서 내려오다가 종로에서 조반을 사먹고 또다시 부벽루로 향하였다. 개시를 하고
문전에 물을 뿌린 뒤에 신문을 펴들고 앉았는 것은 청량하고 행복스럽게 보였다.
 아까 내려올 제는 능라도서 저편 지평선에서 주홍의 화염을 뿜으며 날름날름하던 아침 해가
벌써 수원지 연통 위에 올라서 천변식목 밑으로 걸어가는 우리의 곁뺨을 눈이 부시게 내리
쬐었다.
 칫솔을 물고 바위 위에 섰는 사람, 수건을 물에 잠그고 세수하는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무심히 내려다 보다가 자기도 산뜻한 물에 손을 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서
얕은 곳을 골라서 물가로 뛰어 내려갔다.
 H도 쫓아 내려와서 같이 손을 잠그고 앉았다가,
 X군, 오후차로 가지?"
 "되어 가는 대로..." 다소 머리의 안정을 얻은 나는 뭉쳤던 마음이 풀어진 듯 하였다. 나는 아침
햇빛에 반짝이며 청량하게 소리 없이 흘러 내려가는 수면을 내다보며 이렇게 대답하고 '물은
위대하다'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때에 마침 뒤 동둑에서 누군지 이리로 점점 가까이 내려오는 발자취를 듣고 우리는 무심히
힐끗 돌아다 보았다. 마른 곳을 골라 디디느라고 이리저리 뛸 때마다 등에까지 철철 내리덮은
장발을 눈이 옴폭 패인 하얀 얼굴 뒤에서 펄럭펄럭 날리면서 앞으로 가까이 오는 형상은 동경
근처에서 보던 미술가가 아닌가 의심하였다. 이 기괴한 머리의 소유자는 너희들의 존재는 나의
의식에 오르지도 않는다는 교만한 마음으로인지 혹은 일신에 모여드는 모든 시선을 피하려는
무관심한 태도로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오른 손에 뜬 짤막한 댓개비를 전후로 흔들면서 발끝만
내려다보며 내 등 뒤를 지나 한 간통쯤 상류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도 우리와 같이 손을 물에 성큼 넣고 불쩍불쩍 소리를 내더니 양치를 한번하고 벌떡
일어나서 대동문을 향하여 성큼성큼 간다. 모자도 아니 쓴 장발과 돌돌 말린 때묻은 철겨운
모시박이 두루마기 자락은 오른편 손가락에 끼우고 교묘히 돌리는 댓가지와 장난을 맞춰서
풀풀풀풀 날리었다.
 "오늘은 꽤 이르군."
 "핫하! 조반이나 약조하여 둔 데가 있는 게지."하며 장발객을 돌아서 보다가 서로 조소하는
소리를 뒤에 두고 우리는 손을 씻으면서 동쪽으로 올라왔다.
 진정한 행복은 저런 생활에 있는 게야 하며 혼자 생각하였다.
 우리는 황달이 들어가는 잡초에 싸인 부벽루 앞 축대 밑까지 다달았다. 소경회루라 할만큼 텅
빈 누내에는 뽀얀 가을 햇빛이 가벼운 아침 바람에 안기어 전면에 흘러 들어왔다. 좀 피로한
우리는 누내에 놓인 벤치에 걸터 앉으면서 여기저기 매달린 현판을 쳐다 보다가,
 "사람이란 그럴까, 저것 좀 보아." 좌편에 달린 현판 곁에 붙인 찰을 가리키며 나는 입을
열었다.
 자기의 존재를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려는 것이 본능적 욕구라면 그만이지만 저렇게까지라도
하지 않으며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참 정말 불쌍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고사하고 지금 지나온 그 절벽에 역력히 새긴 이모 김모란 성명은 대체 누구더러 보라는
것이야...이러구서도 밥이 입으로 들어갔으니 좋은 세상이었지."
 나는 금시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와서 벌떡 일어나와 성벽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
보고 섰었다.
 "그것이 소위 유방백세라는 것이지."
 H도 일어나 오며,
 "그렇게 내려다 보고 섰는 것을 보니..." '입포리다'('사의 승리'의 여주인공)가 없는 게
한이로군..."
 "내가 '쫄지요' "하고 나는 고소하였다.
 "적어도 '쫄지요'의 고통은 있을 테지."
 "그야...현대인 쳐놓고 누구나 일반이지."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잠시 섰다가 을밀대로 향하였다.
 외외히 건너다 보이는 대각은 엎드러지면 코닿을 듯하여도 급한 경사는 그리 쉽지 않았다.
우리는 허위단심 겨우 올라갔다. 그러나 대상의 어떤 오복점 광고의 벤치가 맨 먼저 눈에 띌 때
부벽루에서는 앉기까지 하여도 눈 서투르지 않던 것이 새삼스럽게 불쾌한 생각이 났다. 나는
눈을 찌푸리고 잠시 들여다 보다가 발도 들여놓지 않고 돌쳐 서서 그늘진 서편 성밑으로
내려왔다.
 높은 성벽에 가리운 일면은 아직 구슬 이슬이 끝만 노릇노릇하게 된 잔디 잎에 매달려서
어디를 밟던지 먼지가 앉은 구두끝이 까맣게 반짝거렸다. 나는 성에 등을 기대고 앞에 전개된
광야를 맥없이 내려다 보고 섰다가 다리가 풀리어서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엄동에 음산한
냉방에서 끼치는 듯한 쌀쌀한 찬바람이 늘어진 근육에 와 닿을 때 나는 정신이 반짝 들었다.
 그러나 다리를 내던지고 벽에 기대어서 두 손으로 이슬 방울을 흐트리며 앉았는 동안에 사지가
느른하고 졸음이 와서 포켓에 넣어 둔 신문지를 꺼내서 펴고 드러누웠다.
 ...H에게 두 세 번 흔들려서 깬 때는 이렁저렁 삼, 사십분이나 지났었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앉으니까 H는 단장 끝으로 조약돌을 여기저기 딱딱치며 장난을 하다가
소리를 내어 깔깔 웃으면서,
 "아, 예가 어덴 줄 알고 잠을 자아? 그리고 잠꼬댄 무슨 잠꼬대야?...왜 얼굴이 저렇게
뒤틀렸어?"
 나는 멀거니 H의 주름 많은 얼굴을 쳐다보고 앉았다가 "으응..."하며 무엇이라고 입을
벌리려다가 하품에 막히어 말을 끊고, 일어나서 두 손을 바지 포켓에 지르고 이리저리 거닐었다.
H가 내 꽁무니의 앉았던 자리가 동그랗게 이슬에 젖은 것을 보고 놀라는 데에는 대꾸도
아니하고 나는 좀 선선한 증이 나서 양지로 나서면서 가자고 H를 끌었다.
 "왜 그래? 무슨 꿈이야?"
 H는 따라오며 물었다.
 "...죽은 꿈...아주 영영 죽어벼렸더면...좋았을걸..."
 나는 무엇을 보는 것도 없이 앞을 멀거니 내다보며 꿈의 시종을 차례차례로 생각하여 보다가
이같이 내던지듯이 한 마디 하고 궐련을 꺼내 물었다.
 "자살?"
 H는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미인의 손에...나 같은 놈에게 자살할 용기가 있는 줄 아나? 아-하."
 "누구에게? 미인에겔 지경이면 한 두어번 죽어 보았으면...해해해."
 "참 정말...하여간 아무 고통없이 공포도 없이 죽는 경험만 해보고 그리고도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으면 여남은 번이라도 통쾌해...목을 졸라 매일 때의 쾌감! 그건 어떤 자극으로도 얻을 수
없는 거야."
 나는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썩어가는 듯한 심사를 이기지 못하여 입을 다물고 올라가던
길로 천천히 내려오다가 H의 묻는 것이 귀찮아서 다점 앞으로 지나오며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슨 일이었던지 분명치는 않으나...아마 쌀을 찧어서 떡을 만들었는데 익지를 않았다고 해서
그랬던지?...하여간 흰 가루가 뒤발을 한 손을 들고 마루 끝에서 어정버정하다가 인제는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처럼 손에 들었던 수건으로 목을 매고 덧문을 첩첩히 닫은 방앞 툇마루 위에
반듯이 드러누우니까 어떤 바짝 말라서 뼈만 남은 흰 손이 머리 맡에서 슬그머니 넘어와서 목에
매인 수건의 두 자락을 좌우로 슬금슬금 졸라대었다. 그때에 나는 이것이 당연히 당할 약조가
있었다는 것처럼 어떠한 만족과 안심을 가지고 눈을 감은 채 조용히 드러누웠었다. 그때에...차차
목이 메어 올 때의 이상한 자극은 낙지 이후에 처음 경험하는 쾌감이었다. 그러나 무슨 까닭에
이같이 일찍 죽지 않으면 안되는가...참 정말 죽었는가 하는 의문이 나서 몸을 뒤틀며 눈을 번쩍
또 보았다...
 "깜짝 놀라 일어날 때에 빙그레 웃고 섰는 군은 악마가 아닌가 생각하였어... H군의 웃음은 늘
조소하는 듯이 보이지만 아까는 참말 화가 나서..."
 실상 아까 깨었을 때에 제일 심사가 나는 것은 꿈자리가 사나운 것보다도 H가 조소하듯이
빙그레 하며 웃고 섰는 것이었다.
 "...그러나 암만 생각하여도 희미한 것은 처음부터 눈을 감고 누웠었는데 어찌하여 그 '손'의
주인이 여성이었다고 생각되는지, 자기가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어..."
 이야기를 마친 후 나는 말할 수 없는 심화가 공연히 가슴에 치미는 것 같아서 올라올 제
앉았던 강물가로 뛰어 내려가서 세수를 하였다.

   3

 남포에 도착하였을 때는 벌써 오후 두 시가 훨씬 넘었었다. 출입하였던 Y는 방금 들어와서
옷을 벗어 던지고 A와 마주 앉아서 지금 심방하고 온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 우리들을
보고 놀란 듯이 뛰어나와 맞아 들였다. 우리를 맞은 Y는 웬 셈인지 좌불안석의 태도였다.
 "P는 잘 있나? 금명간 올라가려고 하였지. 평양서 전화를 하였더면 내가 평양으로 나갈 걸.
곤할 테지? 점심은?" 순서없는 질문을 대답할 새도 없이 연발하였다. 나는 간단 간단히 응대하고
졸립다고 드러누웠다.
 Y는 무슨 다른 생각을 하면서 좌중이 흥을 돋우려고 애를 쓰는 듯이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입을 쫑긋쫑긋 하다가 나를 건너다 보며,
 "...웬 셈이야? 당대의 원기는 다 어디 갔나?...그 표단은? 하하하."
 "글쎄...그것도 인제 좀 염증이 나서..."
 나도 시든 웃음을 띠우며,
 "여기까지 가지고 오긴 왔지"하고 누운 채 벗어 놓은 외투를 잡아당기어 찻간에서 먹다 남은
위스키 병을 주머니 속에서 꺼내어 내미니까 일동은 하하하 웃으면서 잠자코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 본다.
 "그러나 그것 큰일 났군. 제행무상을 감하였나... 무표단이면 무인생이라던 것은 취소인가." Y는
다소 과장한 듯이 흘흘 느끼며 웃었다.
 "그런데 표단이란 무엇이야?"
 영문을 모르는 A는 Y에게 묻고 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흥흥흥, 한 마디로 쉽게 설명하면 위선 X군 자신인 동시에 X군의 인생관을 심벌한 X군의
술병이랄까."
 "응? X군의 인생관...인 동시에 X씨 자신의...무엇이야? 어디 나같은 놈은 알아 들을 수가
있나?"하며 A는 손을 꼽다가 웃고 말았다.
 "아니랍니다. 내가 일전에 서울서 어떤 상점에 갔던 길에 표단 모양으로 만든 유리 정종병이
마음에 들기에 사가지고 왔더니 여럿이 놀린답니다."
 나도 이 같이 설명을 하고 웃어 버렸다.
 "그러나 이 술을 선생한테나 갖다주고 강연이나 들을까?" H는 병을 들어서 레테르에 쓰인
글자를 들여다 보며 웃었다.
 "남포에도 표단이 있는 게로군..." H도 웃었다.
 "응! 그러나 병유리가 좀 흐려... 닦은 유리(스리가라쓰-모래로 간 것)랄까." 일동은 와하하 하며
웃었다. 나는 눈을 감고 드러누워서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다시 일어나 앉으며,
 "A씨도 표단당에 한 몫은 가겠지요."하고 위스키 병을 들어서 한잔 따라 권하고 나도 반배를
받았다.
 "그래 여기 표단은 어때?" 하며 H는 나를 쳐다보는 모양이었으나 나는 술을 마시느라고 못
보았다.
 "...별로 표단을 달고 다니지는 않지만 삼원 오십전에 삼층집을 지은 대건축가인데..."
 "삼원 오십전에? 하하하, 미친 사람인 게로군?" H가 웃었다.
 "글쎄 미쳤다면 미쳤을까...그러나 인생의 최고 행복을 독점하였다고 나는 생각해..." Y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였다. Y와 H가 이야기하는 동안에 나는 A와 잡지계에 관한 이, 삼 문답을
하다가 자기들 이야기를 들으라고 H가 부르는 바람에 나도 말참례를 하였다.
 "술 이야기는 아니나 삼원 오십전에 삼층집을 지은 대철인이 있단 말이야..." Y는 다시 설명을
하고 어느 틈에 빈 병이 된 것을 보고,
 "술이 없군, 위스키를 사 올까."하더니 하인을 불러 명하였다.
 "옳은 말이야. 철학자가 땅두더지로 환장을 하였거나 위인이 하늘서 떨어졌거나 삼원 아니라
단 삼전으로 삼십층을 지었거나 누가 아나...표단 이상의 철학서는 적어도 내 눈에는 보이지를
않으니까..." 나는 냉소를 하면서 또 다시 A에게로 향하였다.
 "그러나 군은 무슨 까닭에 술을 먹는다."
 "논리는 없지. 다만 취하려고."
 "그러게 말이야...군은 아무 것에도 붙을 수 없었다. 아무 것에도 만족할 수가 없었다. 결국
알코올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비통하고 비참은 하나 그 중에서 위안을 얻기에 먹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결코 행복은 아니다. 그는 고사하고 알코올의 힘을 빌지 않아도 알코올 이상의
효과가...다만 위안뿐 아니라 행복을 얻을 만한 것이 있다 하면 군은 무엇을 취할 터이냐는
말이야. 하하하..."
 "알코올 이상의 효과?...광증이냐? 신념이냐? ...이 두 가지 밖에 없을 것이요...그러나 오관이
명확한 이상...에, 피로, 권태, 실망...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이상...그것도 광인으로 일생을 마칠
숙명이 있다면 하는 수 없겠지만--할 수 없지 않은가." 주기가 돌수록 나는 더욱 더 흥분이
되어 부지부식간에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들여 명확한 악센트를 붙여서 말을 맺고,
 "하여간 위선 먹고 봅시다.
 A공자-."하며 잔을 A에게 전하였다. 그러나 A군, '톨스토이이즘'에다가 '윌슨이즘'을 가미한
선생의 설교를 들을 제 나는 부럽던 걸." 술에 약한 Y는 벌써 빨개진 얼굴을 A에게 향하고
동의를 구하였다.
 "오늘은 좀 신기가 불편한데...연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 이야기를 못하겠달 제는 사람이 기가
막혀서...하하하." A는 Y와 삼층집에 갔을 때의 일을 꺼내었다.
 "듣지 않아도 세계 평화론이나 인류애쯤 떠드는 게로군."하며 나는 웃목으로 나가 드러누웠다.
 아랫목에서는 Y를 중심으로 하고 삼층집 주인의 이야기가 어느 때까지 끝이 아니 났다.
가다가다, 와-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나는 소르르 오는 잠이 깨고 깨고 하다가 종내 잠을
잃어서 나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A가 두 발을 쳐들고 엉덩이로 이리저리 맴을 돌면서 삼층집
주인이 자기 집에 문은 없어도 출입이 자유자재라고 자랑하던 흉내를 내는 것을 보고 여럿이
웃는 통에 나도 눈을 떠보고 일어났다.
 약간 취기가 오른 나는 찬바람도 쏘이고 싶고 또 어차피에 오늘 밤은 평양에 나가서 묵을
작정인 고로 정거장 가는 길에 삼층집 아래를 가고 싶은 생각이 나서,
 "우리 구경 가 볼까?"하고 Y에게 물었다.
 "글쎄 좀 늦지 않았을까?"하며 Y는 시계를 꺼내 보더니,
 "아직 다섯 시가 못 되었군...그러나 강연은 못할 걸! 보시다시피 역사를 벌려 놓고 매일 강연에
목이 쉬어서..."하며 흉내를 내고 또 웃었다.
 네 청년은 두어 시간 동안의 홍소훤담에 다소 피로를 느낀 듯이 모두 잠자코 석양판에 갑자기
번잡하여 오는 큰 길로 느럭느럭 걸어나왔다.

   4

 황해도 잠긴 석양은 백운을 뚫고 흘러 멀러 바라보이는 저편 이층집 지붕에 은빛으로
반짝거리었다.
 Y의 집에서 나온 우리 일행은 축동거리를 일정쯤 북으로 가다가 십자로에서 동으로 꼽쳐 새
거리로 들어섰다. 왕래가 좀 조용하게 되었다. 나는 Y의 말이 과연 사실인가, 실없는 풍자나
조롱을 잘 하는 Y의 말이라 혹은 나에게 대한 일종의 우의를 품은 농담이 아닌가 하는 제
버릇의 신경과민적 해석을 하며 따라오다가,
 "선생은 원래 무엇을 하던 사람인구?"하며 Y에게 물었다.
 "별로 자세히는 모르지만...보통학교 훈도라든가!...A군도 아마 배웠다지?"
 "응!...일본말도 제법 하는데...이전에는 그래도 미남자였는데. 하하하..." A의 말 끝에 Y도
웃으며,
 "미남자이었던, 추남자이었던 하여간 금년 봄에 한 서너달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에는
데...자세한 이유는 몰라."
 "처자는 있나?"
 "예, 계집은 친정에 가서 있다고도 하고 놀아났다기도 하나 그 역시 자세한 것은 몰라요."라고
A가 대답을 하였다.
 "Y군, 그 계집이 어느 놈의 유혹으로 팔리어서 돌아다니다가 그 유곽에 굴러 들어와 있다면
어떨까?"
 나는 잠자코 있다가 말을 걸었다.
 "흥...그리고 매일 찾아가서 미친 체를 부리면..." Y는 대꾸를 하였다.
 새 거리를 빠져 황엽이 되어 가는 잡초에 싸인 벌판 중턱에 나와서 남북으로 통한 길을 북으로
꼽드려 유정을 바라볼 때는 십여 간통이나 떨어져 보이는 유곽 이층에서는 벌써 전등 불빛이
반짝거리며 흘러 나왔다.
 "응! 저기 보이는군..." A가 마주 보이는 것을 가리켜 주는 대로 희끄무레한 것이 그 위에서
움질움질하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는 발길을 재촉하였다.
 십여보쯤 가다가 나는,
 "이것이 유곽이야?"하며 좌편을 가리켰다. 방금 전기가 들어온 헌등이 일자로 총총 들어박힌
사이로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얼굴만 하얀 괴물들이 화장품을 담은 대야를 들고 쓸쓸한 골짜기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부화하다 함보다 도리어 처량히 보였다.
 "선생이 여기 덕도 꽤 보지... 강연 한 번에 술 한병씩 주는 곳은 그래도 여기밖에 없어..."A는
웃으면서 설명하였다.
 삼층집 꼭대기에 퍼더버리고 앉아서 희미한 햇발이 점점 멀어가는 산등성이를 얼없이 바라보고
있던 주인은 우리들이 우중우중 올라오는 것을 힐끔 돌아보더니 별안간에 돌아 앉아서 무엇인지
똑딱똑딱 두드리고 있다. 우리는 싸리로 드문드문 얽어맨 울타리 앞에서 들어갈 곳을 찾느라고
이리저리 주저하다가 그래도 넘어서서 성큼성큼 들어갔다.
 앞서 들어간 A는 주인이 돌아 앉은 삼층 위에다 손을 걸어 잡고 들여다보며,
 "선생님! 또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A는 소리를 내어 웃으며 재우쳐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농장 문짝에 못을 박고 있었다. A와 Y는 동시에  H와 나를 돌려보고 눈짓을 하며 소리없이
웃었다.
 "...신기가 그저 불편하신가요?...오늘은 꼭 강연을 들으러 왔는데요." 이번에는 Y가 수작을
건네었다. 그제야 그는 깜짝 놀란 듯이 먼지가 뿌옇게 앉은 더벅머리를 휙 돌이키며,
 "예? 왔소?" 간단히 대답을 하고 여전히 돌아 앉아서 장도리를 들었다. 세 사람은 일시에 깔깔
웃었다. 그러나 귀밑 같은 수염이 까맣게 덮인 주먹만한 하얀 상을 힐끗 볼 제 나는 앗! 하며
깜짝 놀랐다. 감전된 것같이 가슴이 선뜻하며 심한 전율이 전신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는 다소 안심된 가슴에 이상한 의혹과 맹렬한 호기심이 일시에 물밀 듯 하였다. 중학교
실험실의 박물선생이 따라온 줄만 안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 이유없이 무의식하게 경건한 혹은
숭엄한 느낌이 머리 뒤를 떼미는 것 같아서 나는 무심 중간에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흥흥하며 웃는 것을 볼 때 나는 미안하기도 하고, 무슨 큰 불경한 일이나 하는 것
같아서 도리어 괘씸한 듯이도 보이고 혹은 이 사람이 심사가 나서 곧 뛰어 내려와 폭행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생겼다.
 "선생님! 정말 신기가 불편하신 모양이외다 그려!"A는 갑갑증이 나서 또 말을 붙였다.
 "서울서 일부러 손님이 오셨는데 강연을 하시구려, 하..."
 때묻은 옷가지며 빨래 보퉁이 같은 것이 꾸역꾸역 나오는 것을 꾹꾹 눌러 데밀면서 고친
문짝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앉았던 주인은 서울 손님이란 말에 귀가 띄었는지 우리를 향하여
돌아 앉으며 입을 벌렸다.
 "예-감기도 좀 들었소이다."하고 영채 없는 뿌연 눈으로 나를 유심히 똑바로 내려다 보다가,
 "...보시듯이 이렇게 역사를 벌려 놓고..."
 한번 방을 휘익 돌아다 본 후 또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주며,
 "요사이 같아서는 눈코 뜰 새도 없쇠다. ...더군다나 연일 강연에 목에 꽉쇠서..."말을 맺고 H를
돌려다 보았다.
 그러나 별로 목이 쉰 것 같지는 않았다. Y가 H와 나를 소개하니까,
 "예--그러신가요? 서울서 멀리 오셨소이다 그래." 반가운 듯이.
 "나는 남포 사는 김창억이외다."하며 인사하는 그의 얼굴에는 약간 미소까지 나타났다.
 "예--나는 XXX올시다."
 나는 정중히 답례를 하였다. H도 인사를 마쳤다.
 "선생님! 그 용하시외다 그래...이름도 아니 잊으시고... 하하하." H가 놀렸다. 창억은 거기에도
대꾸도 아니하고 나를 향하여,
 "좀 올라오시소 그래. 아직 역사가 끝이 안 나서 응접실도 없쇠다마는..."하며 올라오라고 재삼
권하다가,
 "게다가 차차 스토오브도 들여놓고 손님이 오시면 좀 들어 앉아서 술잔이나 나누도록 하여야
하겠지마는..."
 어긋매인 선반 같은 소위 이층간을 가리키며 천연덕스럽게 인사치레를 하였다.
 세 사람은 깔깔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러나 자기의 말에 조금도 부자연한 과장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웃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이 힘 없는 시선으로 물끄러미 웃는 사람을 내려다
보다가 '힝'하고 코웃음을 치고 외면을 하였다. 나는 이 사람이 미쳤다고 하여야 좋을지 모든
것을 대오하고 모든 것에서 해탈한 대철인이라고 하여야 좋을지 몰랐다.
 "너무 황송하여 올라가진 못하겠습니다마는 어떻게 강연이나 좀 하시구려."하며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글쎄, 모처럼 오셨는데 술도 한 잔 없어서 미안하외다."
 그는 딴전을 부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 술 이야기만 꺼내는 것이 이상하였다.
 "여기 온 손님들은 모두 하나님 아들이기 때문에 술은 아니 먹는답니다."늘 웃으며 대화를 듣고
섰던 Y가 입을 열었다.
 "예? 형공도 예수 믿습니까?"
 그는 놀란 듯이 나를 마주 건너다 보다가 히히히 웃으며,
 "예수꾼도 무식한 놈만 모였나 봅디다. ...예수꾼들 기도할 때에 하나님 아버지시어! 나의 죄를
구하소서, 아맹-하지-않소?...그러나 아맹이란 무엇이오. 맹자 같은 만고의 웅변가더러 버버리라고
아맹이라 하니 그런 무식한 말이 아, 어디 있단 말이오? 나를...나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할
지경이면 아면이라고 해야 옳지 않습니까."
 강연의 서론을 꺼낸 그가 득의만면하여 히히 웃는데 따라서 둘러섰던 사람들도 웃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비상한 공상가라는 것을 직각한 외에 웃는지 어쩐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럿이 따라서 웃는 것을 보고 더욱 신이 나서 강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 지공무사하시외다. 나를...이 삼층 집을 단 서른 닷냥으로 꼭 한달
열 사흘만에 짓게 하신 것이외다...하나님의 은택이외다. 서양놈들이 아무리 문명을 했느니 기계가
발달되었느니 하지만 그래 단 서른 닷냥에 삼층집을 지은 놈이 어디 있습니까...날마다 하나님이
와보시고 칭찬을 하십니다."
 "칭찬을 하시니까 지공무사한 것 같지요."
 H가 한 마디 새치기를 하였다.
 "천만에, 이것이 모두 하나님 분부가 있어서 된 것이외다. ...인제는 불의 심판이 끝나고 세계가
일대가정을 이룰 시기가 되었으니 동서친목회를 조직하라고 하신 고로, 위선 이 사무소를 짓고
내가 회장이 되었으나 각국의 분쟁을 순찰할 감독관이 없어서 큰일이 났소다."
 일동은 와-ㅅ 웃었다.
 "여기 X군이 어떨까요?" Y는 나의 어깨를 탁 치며 얼른 추천을 하였다.
 "글쎄, 해 주신다면 고맙지만..." 세 사람은 "야...동서친목회 감독각하!"하며 한층 더 소리를
높여 웃었다.
 아닌게 아니라 첨하에 주레주레 매달은 멍석조각이며, 밀감조각들 사이에 '동서친목회
본부'라고 굵직하게 쓰고 그 옆에 '회장 김창억'이라고 쓴 궐련상자 껍질 같은 마분지 조각이
모으로 매달려 있다. 나는 모자를 벗어 들은 채 양수거지를 하고 서서, 그 마분지를 쳐다보던
눈을 돌이켜서 동서친목회 회장에게로 향하여,
 "회의 취지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
 "아까 말씀한 것같이 성경에 가르치신 바 불의 심판이 끝나지 않았습니까. 구주 대전의 그
참혹한 포연탄우가 즉 불의 심판이외다 그래. 그러나 이번 전쟁이 왜 일어났나요...이 세상은
물질만능, 금전만능의 시대라 인의예지도 없고, 오륜도 없고, 애도 없는 것은 이 물질 때문에
사람의 마음이 욕에 더럽혀진 까닭이 아닙니까...부자, 형제가 서로 반목 질시하고 부부가
불화하여 이웃과 이웃이, 한 마을과 마을이...그리하여 한 나라와 나라가 서로 다투는 것은 결국
물욕에 사람의 마음이 가리웠기 때문이 아니오니까. 그리하여 약육강식의 대원칙에 따라
세계만국이 간과로써 서로 대하게 된 것이 즉 구주대전이외다 그려. 그러나 인제는 불의 심판도
다-끝났다. 동서가 친목할 시대가 돌아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는 신종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대로 세계 각국으로 돌아다니며 경찰을 하여야 하겠쇠다. ...나도 여기에는
오래 아니 있겠쇠다. 좀 더 연구하여 가지고...영미법덕으로 돌아다니며 천하명승도 구경하고
설교도 해야 하겠쇠다."
 말을 맺고 그는 꿇어 앉아서 선반 위를 부스럭부스럭하더니 먹다가 꺼 둔 궐련 토막을
찾아내서 물고 도로 앉는다.
 "선생님! 그러면 금강산에는 언제 들어가실텐가요?" A가 놀렸다.
 "한 번 다-돌아다닌 후에 들어가야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릴 수가 있습니까."
 "응?..." 그는 눈을 뚱그렇게 뜨고 A를 바라보았다.
 "아, 선생님 망령이 나셨나보구만... 금강산에 들어가시면 군수나 하나 시켜 주신다더니..."
일동은 박장대소를 하였다.
 "응! 가기 전에 시켜 주지!"
 그의 하는 말에는 조금도 농담이 없었다. 유창하게 연설구조로 열변을 토할 때는 의심할
여지없는 어떠한 신념을 가진 것같이 보였다.
 "그러나 금강산에 옥좌는 벌써 되었나요?" Y는 웃으며 물었다.
 "예--, 이 집이 낙성되던 날 벌써 꾸며 놓았답니다."하고 여러 사람의 웃음이 끝나기를
기다려서,
 "성중에 김씨가 제일 좋은 성이외다. 옥은 곤강에서 나지만도 금은 여수에서 나지 않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 말씀이 너는 김가니 산고수려한 금강산에 들어가서 옥좌에 올라 앉아
세계의 평화를 누리게 하라고 하십디다..."하고 잠자코 가만히 섰는 나의 동정을 얻으려는 듯이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대단히 좋소이다. ...그러나 이 삼층집은 무슨 생각으로 지셨나요?"나는 이 같이 물었다.
 "연전 여름 방학에 서울에 올라가서 중동학교에 일어강습을 하러 다닐 때에 서양사람의 집을
보니까 위생에도 좋고 사람 사는 것 같기에 우리 조선사람도 팔자 좋게 못 사는 법이 어디
있겠소? 기왕이면 삼층쯤 높직이 지어 볼까 해서...우리가 그놈들만 못할 것이 무엇이요. 나도
교회에 좀 다녀 보았지만 그 놈들처럼 무식하고 아첨 좋아하는 놈은 없습니다. ...헷, 그 중에서도
목사인지 하는 것들 한참 때에 대원군이나 뫼신 듯이 서양놈들이 입다 남은 양복조각들을
떠쳐 입고 그 더러운 놈들 밑에서 굽실굽실하며 돌아 다니는 것을 보면 이 주먹으로
대구리를..."하며 새까만 거칫한 주먹을 쳐들었다. 그때의 그의 눈에는 이상한 광채가 뒤틀리었다.
나는 무심히 쳐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날은 점점 추워 오고...어떻게 하실 작정인가요?" 나는 화제를 이같이 돌렸다.
 "춥긴요, 하나님 품 속은 사시 봄이야요...그러나 예다가 스토오브를 놓지요."하고 이층을
가리켰다.
 "그래 스토오브는 어디 주문하셨소? 누구인지 곁에서 말참견을 하였다.
 "주문은 무슨 주문..." 대단히 불쾌한 듯이 한 마디 하고,
 "스토오브는 서양놈들만 만들 줄 알고 나는 못 만든답디까. ...그놈들이 하루에 하는 일이면
나는 한 반나절이면 만들 수 있소이다. 이 집이 며칠이나 걸린 줄 아슈?...단 한 달하고 열 사흘!
서양놈들은 십삼이란 수가 흉하답디다마는 나는 양옥을 지으면서도 꼭 한달 열 사흘에
지었다오."
 "동으로 가래도 서로만 갔으면 고만 아니오."
 "글쎄 말이오. 세상 놈들이야말로 동으로 가라면 서로만 달아나는 빙퉁그러진 놈 뿐이외다.
...조선이 있고 조선 글이 있어도 한문이나 서양놈들의 혀꼬부라진 말을 해야 사람의 구실을 하는
이 쌍놈의 세상이 아닙니까."
 한 마디 한 마디씩 나의 동의를 얻으려는 것처럼 나를 똑바로 내려다 보며 잠깐씩 말을
멈추다가 나중에는 열중한 변사처럼 쉬일 새 없이 퍼붓는다...
 "네 그렇지 않습니까. 네...것도 바로 읽을 줄이나 알았으면 좋겠지만...가령 천지현황하면
하늘천 이렇게 읽으니 일대라 써 놓고 왜 '하늘 대'하지 않습니까. 창공은 우주간에 유일최대하기
때문에 창힐이 같은 위인이 일대라고 쓴 것이 아니외니까. 또 '흙 야'할 것을 '따 지'하는 것도
안된 것이외다. 따란 무엇이외니까? 흙이 아니오? 그러기에 흙토 변에 언재호야라는 천자문의
왼쪽자인 이끼 야자를 쓴 것이외다 그려. 다시 말하면 따는 흙이요, 또 우주간에 최말위에
처한고로 흙토 자에 천자문의 최말자 되는 이끼 야자를 쓴 것이외다."우리들은 신기히 듣고
섰다가,
 "그러면 쇠 금자는 어떻게 되었길래 김가를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하시나요?"하고 Y가
물었다.
 "옳은 말씀이외다. 네-참 잘 물으셨소이다..." 깜빡 했더면 잊었을 것을 일깨워 주어서 고맙고도
반갑다는 듯이 득의만면하여 그 일사천리의 구변으로 강연을 계속한다.
 "사람 인 안에 구슬 옥을 하지 않았소. 하므로 쇠 금이 아니라 사람 구슬 금...이렇게 읽어야 할
것이외다." 일동은 킥킥킥 웃었다.
 "아니외다. 웃을 것이 아니외다. ...사람 구실을 할려면 성현의 가르치신 것같이 첫째에
인하여야 하지 않쇠니까. 하므로 사람 '인'하는 것이외다 그려. 그 다음에는 구슬이 두 개가
있어야 사람이지 두 다리를 이렇게(사람인-손가락으로 쓰는 흉내를 내이며)벌리고 선 사이에 딱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도저히 사람 값에 가지 못할 것이외다. 고자는 그것이 없어도 사람이라
하실지 모르나 그러기에 사람 구실을 못하지 않습니까. 히히히...그는 하여간 그 두 개가 즉
사람을 사람 값에 가게 하는 보배가 아닙니까. 그런 고로 보배에 제일 가는 구슬 옥자에 한 점을
더 박은 게 아니외니까..."
 한 마디마다 허리가 부러지게 웃던 A는, "그래서 금강산에 옥좌를
만들었습니다 그려...하하하."하며 웃었다.
 "그러면 여인네는 김자가 없구만요?" 이번에는 H가 놀렸다.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눈만
멀뚱멀뚱하며 앉았다가 별안간에,
 "옳지! 옳지! 그래서 내 댁내는 안가로군...응! 히히히. 여인네가 관을 썼어...여인네가 관을
썼어...히히 히히히."
 잠꼬대 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나서는 히히히 웃기를 두
세 번이나 뇌었다.
 "참 아씨는 어디 가셨나요?" 나는 "내 댁내가 안가라고"하는 그의 말에 문뜩 그의 처자의
소식을 물어보려는 호기심이 나서 이 같이 물었다.
 "예? 못 보셨소?...여보, 여보, 영희 어머니! 영희 어머니!..." 몸을 꼬고 엎드려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부르다가 "또 나갔나!" 혼잣말처럼 하며 바로 앉더니,
 "아마 저기 갔나보외다."하고 유곽을 가리켰다.
 "또 난봉이 난 게로군...하하하. 큰일 났소이다. 비끄러 매두지 않으면..."
 A가 말을 가로채서 놀렸다.
 "히히히, 저기가 본대 제 집이라오."
 "저긴 유곽이 아니오?" H도 웃으며 물었다.
 "여인네가 관을 썼으니까. ...하하하." 이번에는 Y가 입을 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앉았다가,
 "예-, 그 안에 있어요...그 안에 오년이나 나하고 사는 동안에도 역시 그 안에 있었어요.
히히히 히히."
 "...그 안에...그 안에!" 나는 아까 그의 처가 도주를 하였다는 소문도 있다고 하던 A의 말을
생각하며 속으로 뇌어 보았다.
 "좀 불러 오시구려."
 "인제 밤에 와요. 잘 때에..."
 "그거 옳은 말이외다. ...잘 대밖에 쓸 데 없지요. 하하하." H가 농담을 붙이는 것을 나는 미안히
생각하였다.
 "히히히. 그러나 너무 뜨거워서 죽을 지경이랍디다. ...어제는 문지기에게 죽도록 단련을 받고
울며 왔기에 불을 피우고 침대에서 재워 보냈습니다...히히히"
 무슨 환상을 좇듯이 먼 산을 바라보며 누런 이를 내놓고 히히히 웃는 그의 얼굴은 원숭이 같이
비열하게 보였다.
 산등에서 점점 멀어가던 햇발은 부지중 소리없이 날아가고 유곽 이층에 마주 보이는 전등불
빛만 따뜻하게 비치었다.
 홍소, 훤담, 조롱 속에서 급격히 피로를 느낀 그는 어슬어슬하여 오는 으슥한 산밑을 헤매는
쌀쌀한 가을 저녁 바람과 음산하고 적막한 암흑이 검은 이빨을 악물고 휙휙 한숨을 쉬며
덤벼들어 물고 흔드는 삼층 위에 썩은 밤송이 같은 뿌연 머리를 움켜쥐고 곁에 누가 있는 것도
잊은 듯이 기둥에 기대어 앉았다.
 "인제 가볼까."하는 소리가 누구의 입에선지 힘없이 나왔다.
 동서친목회 회장...세계평화론자...기이한 운명의 순난자...몽현의 세계에서 상상과 환영의 감주에
취한 성신의 총신...오욕육구, 칠난팔고에서 해탈하고 부세의 제연을 저버린 불타의 성토와,
조소에 더러운 입술로 우리는 작별의 인사를 바꾸고 울타리 밖으로 나왔다.
 울타리 밑까지 나왔던 나는 다시 돌쳐서서 그에게로 향하였다. 이층에서 뛰어 내려 오는 그와
마주칠 때 그는 내 손에 위스키 병이 있는 것을 보고 히히 웃었다. 나는 Y의 집에서 남겨 가지고
나온 술병을 그의 손에 쥐어준 후 빨간 능금 두 개를 포켓에서 꺼내 주었다.
 "이것 참 미안하외다." 그는 만족한 듯이 웃으며 받아서 이층 벽에 기대어 가로 세운 병풍 곁에
늘어놓고 따라나와 인사를 하였다.
 가련한 동무를 이별하고 나온 나는 무겁고 울적한 기분에 잠기어서 입을 다물고 구두코를
내려다보며 무심히 걸었다. 역시 잠자코 앞서가던 Y는 잠깐 멈칫하고 돌아다 보며,
 "X군! 어때?"
 "글쎄..."
 "...그러나 모자를 벗어 들고 공손히 강연을 듣고 섰는 군의 모양은 지금 생각을 해도 요절을
하겠어...하하하."
 "흐흥..." 나는 힘없이 웃었다.
 저녁 가을 바람은 산듯산듯 목에 닿는 칼라 속을 핥고 달아났다. 일행이 삼거리에 와서 A와
헤어질 때는 이, 삼간 떨어진 사람의 얼굴이 얼숭얼숭 보였다.
 시시각각으로 솔솔 내려앉는 땅거미에 싸인 황야에, 유곽에서 가늘고 길게 흘러나오는
'사미센' 소리, 탁하고 넓게 퍼지는 장구소리는 혹은 급하게, 혹은 느리게 퍼지어서 정거장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우리의 발뒤꿈치를 어느 때까지 좇아왔다.
 컴컴하고 쓸쓸한 북망 밑 찬바람에 불리우며 사지를 오그리고 드러누운 삼층집 주인공은
장구소리를 천당의 왈츠로 듣는지, 지옥의 아비규환으로 깨닫는지, 나는 정거장 문에 들어설
때까지 흘금흘금 돌아다 보아야 오직 유곡의 요화 같은 유곽의 전등불이 암흑 가운데에 반짝거릴
뿐이었다.

   5

 평양행 열차에 오를 때에는 일단 헤어졌던 A도 다시 일행과 합동되었다.
 커다란 트렁크를 무거운 듯이 두 손으로 떠받쳐서 선반에 얹고 나서 목이 막힐 듯한 한숨을
휘-쉬이며 앉는 A를 Y는 웃으며 건너다 보고,
 "인젠 영원인가?"
 "응!...영원히. 하하하." A는 간단히 말을 끊고 호젓해 하는 듯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나 평양이 세계의 끝일지도 모르지...핫하하."
 "하하하."
 A도 숙였던 고개를 쳐들며 힘없이 웃었다.
 "왜 어디 가시나요?"
 A와 마주 앉은 나는 물었다.
 "글쎄요...남으로 향할지 북으로 달릴지 모르겠소이다." A는 말을 맺고 머리를 창에 기대며
눈을 감았다.
 "...A군은 오늘 부친께 선언을 하고 영원히 나섰다는 게라오." Y가 설명을 하였다.
 "하하하, 그것 부럽소이다 그려...영원히 나섰다는...그것이 부럽소이다." 나는 이 같은 한
마디하고 A를 쳐다보았다. 고개를 들고 눈을 뜬 A는 바로 앉으며 빙긋 웃을 뿐이었다.
 우리는 엽서를 꺼내 들고 서울에다가 편지를 썼다. 나는 P에게 대하여 이렇게 섰다.
 "무엇이라고 썼으면 지금 나의 이 심정을 가장 천명히 형에게 전할 수 있을까! 큰 경이가 있는
뒤에는 큰 공포의 큰 침통과 큰 애수가 있다 할 지경이면 지금 나의 조자를 잃은 심장의 간헐적
고동은 반드시 그것이 아니면 아닐 것이요--인생의 진실된 일면을 추켜들고 거침없이 육박하여
올 때 전령을 에워싸는 것은 경악의 전율이요, 그리고 한없는 고민이요. 샘솟는 연민의 눈물이요.
가슴이 저린 애수요. ...그 다음에 남는 것은 미치게 기쁜 통쾌요... 삼원오십전으로 삼층집을 짓고
유유자적하는 실신자를--아니오, 아니오, 자유민을 이 눈앞에 놓고 볼 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소. 현대의 모든 병적 디아크사이드를 기름 가마에 몰아넣고 전축하여 최후에 가마 밑에
졸라 붙은 오뇌의 환약이 바지직바지직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의 욕구를 홀로 구현한 승리자
같기도 하여 보입니다...나는 암만 하여도 남의 일같이 생각할 수 없습니다."
 나는 엽서 한 장에다가 깨알같이 써서 Y에게 보라고 주고, 다른 엽서에 다시 계속 하였다.
 "P군! 지금 아무리 자세히 쓴다 하기로 충분한 설명은 못하겠기로 후일에 맡기지마는 그러나
이것만은 추측하여 주시오. ...지금 나는 얼마나 소리없는 눈물을 정거한 화차의 연통같이
가다가다 뛰노는 심장 밑으로 흘리며 앉았는가를...지금 나는 울고 있소. 심장을 압축할 만한
엄숙하고 경건한 사실에 하도 놀라고 하도 슬퍼서...지금 나는 울고 있소. 모든 세포 세포가
환희와 오뇌 사이에서 뛰놀다가 기절할 만큼 기뻐서..."

   6

 북국의 철인, 남포의 광인 김창억은 아직 남포 해안에 증기선의 검은 구름이 보이지 않던
삼십여년 전에 당시 굴지하는 객주 김건화의 집 안방에서 고고의 첫소리를 울리었다. 그의
부친은 소시부터 몸에 녹이 슨 주색잡기를 숨이 넘어갈 때까지 놓지를 못한 서도에 소문난
외도객. 남편보다 네 살이나 위인 모친은 그가 십사세 되던 해에 죽은 누이와 단 남매를 생산한
후에는 남에게 말 못할 수심과 지병으로 일생을 마친 박복한 여성이었다. 이러한 속에서 자라난
그는 잔열포류의 약질일망정 칠, 팔세부터 신동이라 들으리만큼 영리하였다. 영업과 화류
이외에는 가정이라는 것을 모르는 그의 부친도 의외에 자식의 총명한 것은 기뻐할 줄 알았었다.
더구나 자기의 무식함을 한탄하니만치 자식의 교육은 투전장 다음쯤으로 생각하였다. 그 덕에
창억이도 남만큼 한학을 마친 후 십육세 되던 해에 경성에 올라가서 한성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러나 삼년급 되던 해 봄에 부친이 장중풍으로 졸사하기 때문에 유학을 단념하고 내려오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그때 숙부의 손으로 재산정리를 하고 보니까 남은 것이라고는 몇 두락의
전답하고 들어 있는 집 한 채 뿐이었다. 유산이 있어도 선고의 유업을 계속할 수 없는 창억은
연래의 지병으로 나날이 수척하여 가는 모친과 1년 열 두달 말 한 마디 건네 보지 않는 가속을
데리고 절망에 싸여 쓸쓸한 큰집 속에 들어 엎드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친도 그 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였다. 전 생명의 중심으로 믿고 살아가려던 모친을 잃은 그에게는 아직 어린
생각에도 자살 이외에는 아무 희망도 없었다.
 백부의 지휘대로 집을 팔고 줄여간 뒤로는 조석 이외에 자기 아내와 대면도 않고 종일 서재에
들어 엎드렸었다. 조석 상식에 어린 부부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으나
그 설움은 각각 의미가 달랐다. 그것이 창억으로 하여금 더욱 불쾌하고 애통하게 하였다. ...이
세상에는 자기와 같은 설움을 가지고 울어 줄 사람은 없구나! 이런 생각이 날 때마다 오년 전에
십오세를 일기로 하고 간 누이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한 동시에 자기 처가 상식마다 따라 우는
것이 미워서 혼자 지내겠다고까지 한 일이 있다. ...독서와 애곡...이것이 삼년 전의 그의 한결
같은 일과였다.
 그러나 부친의 삼년상을 마치던 해에 소학교가 비로소 설시되어 유지자의 강청으로 교편을
들게 된 뒤로부터는 다소 위안도 얻고 기력도 회복되었으며 가속에 대한 정의도 좀 나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주연의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의사의 주의로 반주를 얼굴을 찌푸려
가며 먹던 사람이 점점 양이 늘어갈 뿐 아니라, 학교 동료와 추축이 잦아 갈수록 자기 부친의
청년시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처는 내심으로 도리어 환영하였다.
 그 이듬 해에 식구가 하나 더 는 뒤부터는 가정다운 기분도 돌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책과 눈물이 인제는 책과 술잔으로 변하였다. 그 동시에 그의 책상 위에는 식구약전서 대신에
동경 어떠한 대학의 정경과 강의록이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기이한 운명은 창억의 일신을 용서치는 않았다. 처참한 검은 그림자는 어느 때까지
쫓아다니며 약한 그에게 휴식을 주지 않았다.
 자기가 가르치던 이년생이 졸업하려던 해에 그의 아내는 겨우 젖 떨어질 만하게 된 것을 두고
시부모의 뒤를 따라갔다. 어미 없는 계집자식을 끼고 어쩔 줄 몰라 방황하였다. 친척들은 재취를
얻어 맡기려고 무수히 권하였으나 종내 듣지 않았다. 오직 술과 방랑만이 자기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마침내 서재에서 뛰어 나왔다. ...학교의 졸업식을 마친 후 그는 표연히 유랑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멀리는 못 갔다. 반년 쯤 되어 훌쩍 돌아와서 못 알아 볼 만큼 초췌한 몸을
역시 서재에 던졌다. 그리하여 수삭쯤 지나 건강이 다시 회복된 후 권하는 대로 다시 가정을
이루었다. 이번에는 나이도 자기보다 어리거니와 금실도 좋았다.
 그러나 애처의 강렬한 사랑은 힘에 겨워서 충분한 만족을 줄 수가 없었다. 혈색 좋은 큼직하고
둥근 상에서 디굴디굴 구는 쌍꺼풀 눈썹 밑의 안광은 곱고 귀여우면서도 부시기도 하며 미웁기도
하며 무서워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피하였다.
 이같은 중에 재미있는 유쾌한 오, 육년간은 무사히 지냈다. 소학교는 제십회 창립기념식을
거행하고 그는 십년 근속 축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역시 그의 호운을 시기하였다. 내월이면 명예로운 축하를 받게 되는 이때에
그는 불의의 사건으로 철창에 매달리어 신음치 않으면 아니되게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그의 일생을 통하여 노려보며 앉았는 비운은 그가 사개월만에 무죄 방면되어 사파에 발을
들여놓을 때까지 하품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사개월간의 옥중생활은 잔약한 그의 신경을 바늘 끝같이 예민하게 하였다. 그는 파리하고
하얗게 세인 얼굴을 들고 감옥 지붕의 이슬이 아직 녹지 않은 새벽 아침에 옥문을 나섰다.
차입하던 집으로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였던 자기 처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육십이 가까운
백부만 왔다.

 출옥하기 1삭 전까지는 일이 있어도 하루가 멀다고 매일 면회하러 오던 아내가 근 1개월
동안이나 발을 끊은 고로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가끔 백부가 올 때마다 영희가 앓아서 몸을
빼쳐 나지 못한다기로 염려와 의혹 속에서도 다소 안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옥하던 전 날
면회하러 오던 인편에 가깝증이 나서 내일은 꼭 맞으러 와달라고 한 것이라서 뜻밖에 보이지
않는고로 더욱 의심이 날 뿐 아니라 거의 낙심이 되었다. 백부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이것이
자기의 신경과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나서 가깝한 마음을 참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도중에서 일부러 길을 돌아 백부의 집으로 가자는 데에도 의심이 나지 아니나 잠자코 따라갔다.
 대문에 발을 들여놓자,
 "아 아바지!"하며 영희가 앞선 백부와 바꾸어 뛰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너 탈이 났다더니 언제 일어났니?" 영희의 어깨에 손을 걸며 눈이 휘둥글해서 숨이 찬 듯이
물었다.
 "예? 누가 탈은 무슨 탈이 났댔나요?"하고 영희는 멈칫하며 돌아다 보았다.
 "어머니는...?" 그는 자기가 추측하며 무서워 하던 사실이 점점 명백하여 오는 것을 깨달으며
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어머니 어데 갔어..."
 그에게 대한 이 한마디가 억만 진리보다 더 명백하였다. 그 동시에 자기의 귀가 의심쩍었다.
 온 식구가 다 뛰어나오며 웃음 속에서 맞으나 그는 얼빠진 사람처럼 인사도 변변히 하지
못하고 맥없이 얼굴이 새파래서 뜰 한가운데에 섰다가,
 "인제 가보지요..., 영희야!"하며 그대로 뛰쳐 나오려 했다.
 뜰 아래에 여기저기 섰던 사람들은 그가 얼빠진 사람처럼 둥그런 눈만 무섭게 뜨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며 주저주저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입을 벌리지 못하고 피차에 물끄러미 눈치만
보다가,
 "아, 아침이나 먹고...천천히..." 숙모가 끌어당기듯이 만류하였다.
 "아니오. 왜 영희 어미는...어디 갔나요?" 그는 입이 뻣뻣하여 말을 어우를 수 없는 것처럼
떠듬떠듬 겨우 입을 열었다.
 "으응...일전에 평양에...하여간 올라오려므나." 평양이라는 것은 처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숙부가 말을 더듬는 것이 위선 이상히 보였다. 더구나 '하여간'이란 말은 웬소리인가. 평시
같으면 귓가로 들을 말도 일일이 유심히 들리었다.
 "흐흥...평양! 흐흥...평양!" 실성한 사람처럼 흐흥흐흥 콧웃음을 치며 평양을 뇌고 섰는 그의 눈
앞에는 금년 정초에 평양 정거장 문 밖 우체통 뒤에서 누구하고인지 수군거리다가 휙 돌쳐서
캄캄한 밤길에 사라져 버리던 양복장이의 뒷모양이 환영같이 떠올랐다. 그는 차차 눈이 캄캄하여
오고 귀가 멀어갔다. ...절망의 깊은 연못은 점점 깊고 가깝게 패어 들어갔다.
 그는 빈 집에라도 가서 형편도 보고 혼자 조용히 드러누워서 정신을 가다듬을까 하였으나
현기가 나서 금시로 졸도할 듯하여 권하는 대로 올라가서 안방으로 들어가 픽 쓰러졌다.
 피로, 앙분, 분노, 낙심, 비탄, 미가지의 운명에 대한 공포, 불안...인간의 고통이란 고통은
노도와 같이 일시에 치밀어 와서 껍질만 남은 그를 삶아 죽이려는 듯이 덤벼들었다. 옴폭 패인
눈을 감고 벽을 향하여 드러누운 그의 조막만한 얼굴은 납으로 만든 "데드 마스크"와 같았다.
죽은 듯이 숨소리도 들리지 않으나, 격렬한 심장의 동기와, 가다가다 부르르 떠는 근육의 마비는
위에 덮어준 주의 위로도 분명히 보였다.
 한 시간쯤 되어 깨었다. 잔듯만듯한 불쾌한 기분으로 일어나서 밥상을 받았다. 무엇이 입에
들어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속에 들어 앉았을 때에는 나가면 이것도 먹어보리
저것도 하여 보리라고 벼르고 별렀으나 이렇게 되고 보니까 차라리 삼, 사년 후에 나오는 것이
좋았겠다고 생각하였다.
 밥술을 뜨자마자 그는 허둥지둥 뛰어나왔다.
 "아버지?"하며 쫓아 나오는 영희를 험상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며 들어가라고 턱짓을 하고
나섰다. 머리를 비슷이 숙이고 동구까지 기어 나오다가 돌쳐설 때 숙부의 손에 매달려 나오는
딸을 힐끗 보고 별안간 눈물이 앞을 가리우며 낳은 어미 없이 길러내인 딸자식이 불쌍히
생각되어 금시로 돌쳐가서 손을 잡고 오고 싶은 생각이 불쑥 나는 것을 억제하고 "야-야-"하며
부르는 백부의 소리도 못들은 체하고 앞서서 왔다.
 ...범죄자의 누명을 쓰고 처자까지 잃은 이내 신세일망정 십여년이나 정을 들이고 살던 사개월
전의 내집조차 나를 배반하고 고리에 쇠를 비스듬히 차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그대로 매달려서
울고 싶었다.
 백부는 숨이 찬 듯이 씨근씨근하며 쫓아와서, "열쇠가 여기 있다."하며 자기 손으로 열고 들어
갔으나 그는 어느 때까지 우두커니 섰었다.
 1개월 이상이나 손이 가지 않은 마당은 이삿집을 나른 뒤 모양으로 새끼 부스러기, 종이
조각들이 즐비한 사이에 초하의 잡초가 수채 앞이며 담 밑에 푸릇푸릇하였다. 그의 숙부도 역시
이럴 줄이야 몰랐다는 듯이 깜짝 놀라며 한번 휙 돌아보고 나서 신을 신은 채 툇마루에
올라섰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퇴 위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여기저기 산국화송이 같이 박혀 있다.
뒤로 쫓아 들어온 그는 뜰 한가운데에 서서 덧문을 첩첩이 담은 대청을 멀거니 엎드러지듯이
벌떡 드러누웠다.
 "큰아버지-여기...농이!" 안방으로 들어온 영희는 깜짝 놀라며 큰 소리를 쳤다.
 "예-ㅅ?"하며 어름어름하던 숙부는 서창덧문을 열어 젖히고 방안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농장이
없어진 것을 보고 혀를 두 세 번 차고 나서, "망할 년의 새끼...어느 틈에 집어갔노..."하며 밖으로
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창억이가 첫 장가 들 때 서울서 사다가 십칠, 팔년 동안이나 놓아 두었던
화류농장 두 짝이 없어졌다.
 백부가 간 뒤에 일꾼 아이와 계집애년이 와서 대강대강 소제를 한 후 저녁밥은 먹기 싫다는
것을 건네왔다. 그 이튿날도 꼼짝 아니하고 들어 앉았었다.
 백부의 주선으로 소년 과부로 오십이나 넘은 고모가 안방을 점령하기까지 오, 육일 동안은 한
발자국도 방문밖에 나오지 않았다. 백부가 보제를 복용하라고 돈푼 든 약첩을 지어다가 조석으로
대려다 놓아도 끝끝내 손도 대지 않았다. 하루 이, 삼차씩 백부가 동정을 살피러 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보면 앉았다가도 별안간 돌아 누워서 자는 체도 하고 우릿간에 든 곰 모양으로
빈 방안을 빙빙 돌아다니다가 누가 들여다 보는 기척만 있으면 책상을 향하여 앉기도 하였다.
아침에 세수할 때와 간혹 변소 출입 이외에는 더운 줄도 모르는지 창문을 꼭꼭 닫고 큰 기침소리
한번 없이 들어 앉았었다. 그가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그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다. 가다가다 몇 해 동안이나 손도 대어 보지 않던
성경책을 꺼내 놓고 들여다보기도 하였으나 결코 한 페이지를 계속하여 보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모양을 일삭쯤 지내더니 매일 아침에 한번씩 세수하러 나오던 것도 폐하고 방으로
갖다주는 조석만 먹으면 자는지 깨어서 누웠는지 하여간 목침으로 느러눕기로만 위주하였다.
백부는 병세가 더 위중하여 그렇다고 약을 먹이지 못하여 달래도 보고 꾸짖어도 보았으나 약은
기어코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노인은 하루 삼, 사차례씩은 궐하지 않고 와서 방문도 열어보고
위무하듯이 말도 붙여 보나 벙어리처럼 가만히 돌아 앉았다가 어서 가 달라고 걸인이나
쫓아내듯이 언제든지 창문을 후다닥 닫았다.
 하루는 전과 같이 저녁 때쯤 되어 가만가만 들어와서 유리 구멍으로 들여다 보려니까 방
한가운데에 눈을 감고 드러누웠다가 무엇에 놀란 듯이 깎아 세운 기둥처럼 눈을 부릅뜨고 벌떡
일어나더니 창에다 대고,
 "이놈의 새끼! 내 댁내를 차가고 인제는 나까지 죽이러 왔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감히 창문은 열지 못하고 얼어붙은 장승같이 섰다. 백부는 기가 막혀서 미닫이를
열며,
 "이거 와 이러니."하고 소리를 질렀다. 문만 열면 곧 때려 죽이겠다는 듯이 딱 버티고 섰던
사람이 금시로 껄껄 웃으며,
 "나는...누구라고! 삼촌 올라오시소 그래."하고 이번에는 안방에다 대고,
 "여보, 영희오마니! 삼촌이 왔는데 술 좀 받아오소 그래."하고 나서 경련적으로 캥기어 네 귀가
나는 입을 벌리고 히히히 웃었다. 그의 백부는 한참 쳐다보다가,
 "야-어서 자거라, 잠이 아직 깨이지 못한 게로구나...술은 있다 먹지, 어서 어서."
 "그런데, 여보소 삼촌! 영희오마니는 지금 어데 갔소? 예? 술 받으러? 히히...아하 어젯밤에도
왔어! 그 사진을 살려 달라고...그...어디 있던가?"하며 고개를 쳐들고 방안을 휙 돌아보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별안간에 책상 앞으로 가서 꿇어앉으며 무엇인지 부리나케 찾는다. 노인은
뒷모양을 한참 들여다 보다가 방문을 굳게 닫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뒤에 방에서는 히히히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에는 두 조각이 난 사진이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에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어느 틈에 방을 뛰어나와서 부엌을 들여다 보고
요사이는 왜 세숫물도 아니 주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며 대야를 내밀고 물을 청하였다. 밥솥에
불을 때고 앉았던 고모가 깜짝 놀라 돌아다 보니까 근 반년이나 면도를 아니한 수염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고 솟은 듯한 붉은 눈매에는 이상한 영채가 돌면서도 무시무시하게 보였다. 고모는
무서운 증이 나서 아니 나오는 웃음을 띠우고 달래듯이 온유한 목소리로,
 "예예, 잘못 하였쇠다. 처음 시집살이라 거행이 늦었쇠다. 히히히..." 웃으며 물을 퍼주었다.
 아침상을 차려다 디밀며 차차 좋아지는 듯한 신기를 위로 삼아 무엇이든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니까,
 "영희오마니나 뭐든지 해주시소."하며 의논할 것이 있으니 들어오라고 간청을 하였다. 고모는
주저주저 하다가 오늘은 맑은 정신이 난 듯 하여 안심하고 방을 치워 줄겸 걸레를 집어 들고
들어갔다. 책상 위와 방구석을 엎드려서 훔치며, "무슨 의논이야?"하며 말을 꺼냈다.
 "어젯밤에 영희오마니가 왔더랬는데, 오늘 낮에는 아주 짐을 지워 가지고 오겠다고..."
 "무어? 지금은 어디메 있기에?" 고모는 역시 제 정신이 아니 들어서 저러나보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여 눈이 휘둥그래지며 걸레 잡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지금? 히히히, 연옥에서 매일 단련을 받는데 도망하여 올 터이니 전죄를 용서하고 집에
두어 달라고 합디다."
 "단테"의 신곡에서 본 것이 생각나서 연옥이란 말을 썼으나 고모는 물론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다만 옥이라는 말에 대개 지옥이라는 말인 줄 짐작하고 하도 어이가 없어서,
 "냉면이나 한 그릇 받아다 주지..."하고 나오다가 아침에 세수하던 것을 생각하고 혼자 빙긋
웃었다.
 날이 더워 갈수록 그의 병세는 나날이 더 하여 갔다. 팔월 중순이 지나 심한 더위가 다-가고
뜰에 심은 백일홍이 누릇누릇 하여감을 따라 그에게는 없던 증이 또 생겼다. 축대 밑에 나오려던
풀이 폭열에 못 이기어서 비틀어져 버리던 육, 칠월 삼복에는 겨우 동창으로 바람을 들이면서
불같이 끓는 방 속에 문을 봉하고 있던 사람이 무슨 생각이 났던지 매일 아침만 먹으면 의관도
아니하고 뛰어나가기를 시작하였다. 무슨 짓을 하며 어디로 돌아다니는지 아무도 몰랐다. 대개는
어슬어슬하여 돌아오거나 혹은 자정이 넘어서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별로 곤한 빛도
없었다. 안방에서 혹 변소에 가는 길에 들여다 보면 그믐 달빛이 건너방 지붕 끝에서 꼬리를
감추려 할 때에도 빈 방속에 생불처럼 가만히 앉았었다.
 너무 심하여서 삼촌이 며칠을 두고 찾으려 다녀 보아도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집에서 나갈
때에 누가 뒤를 밟으려고 쫓아나가는 기색만 있어도 도로 들어와서 어떻게 하여서든지 틈을 타서
몰래 빠져 달아 나갔다. 그러나 그는 별로 다른 데를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집에서
동북으로 향하여 1, 2정쯤 떨어져 있는 유곽 뒤에 둘러싸인 조그마한 뫼 위에 종일 드러누웠을
뿐이었다. 무슨 까닭에 그곳이 좋은지는 자기도 몰랐다. 하여간 수풀 위에서 데굴데굴 구는 것이
자기 방 속보다 더 상쾌하다고 생각하였다. 아침에 햇발이 두텁지 않은 동안에 잠깐
드러누웠다가 오정 전후의 폭양에는 해안가로 방황한 후 다시 돌아와서 석양판에 가만히 누웠는
것이 얼마나 재미스러웠는지 몰랐다. 그것도 처음에는 동리아이들이 덤벼들어서 괴로워 못
견디었으나 1주, 2주, 지나갈수록 자기의 선경을 침략하는 자도 점점 없어졌다. 그러나 김모가
미쳤다는 소문은 전시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가 매일 어디 가 있는 것이 삼촌의 귀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그 후부터는 매일 감시를 엄중하게 하여 나가지를 못하게 하였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이, 삼일
동안을 근신한 태도로 칩복치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사, 오일 동안 신용을 보여서 감시가 좀
누그러져 가는 기미를 채인 그는 또다시 방문 밖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땅으로 꺼져 들어간 듯이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었다.

   7

 반달 동안을 두고 찾다 못하여 경찰서에 수색원을 제출한지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연통 속으로
기어 나온 것처럼 대가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탈을 하고 훌쩍 돌아와서 불문곡직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코를 골며 잤다. 이튿날 아침에는 조반을 걸신들린 사람처럼 그릇마다 핥듯이
하여 다 먹고 삼촌이 건너 오기 전에 또 뛰어나갔다. 삼, 사시간 뒤에 쫓아간 그의 백부는
유정유곽산에서 용이히 그를 발견하였다.
 그가 처음 감시의 비상선을 끊고 나올 때는 맑은 정신이 들어서 그리하였는지, 하여간 자기의
고향을 영원히 이별할 작정으로 나섰었다. 위선 시가를 떠나 촌리로 나와서 별장 이전의 상지를
복하려고 이 산 저 산으로 헤매었다. 가가호호로 돌아다니며 연명을 하여가며 오, 육일만에
평양부근까지 갔었다. 그러나 평양이 가까워 오는 데에 정신이 난 그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남포로 향하였다. 그 중에 다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지는 않았으나 무엇보다도
불만족한 것은 바다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자기 서재로 자기를 위하여
영원히 안도하라고 하느님이 택정 하신 바 유정 뒷산 밑으로 기어든 것이었다.
 인간에게 허락된 이외의 감각을 하나 더 가지고 인간의 침입을 허락치 않는 유수미려한 신비의
세계에 들어갈 초대장을 가진 하느님의 총아, 김창억은 침식 이외에는 인간계와 모든 연락을
끊고 매일 같은 꿈을 반복하여 대지 위에 자유롭게 드러누워서 무애무변한 창공을 쳐다보며
대자연의 거룩함과 하느님의 총은 많음을 홀로 찬영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달포나 되어 시월 하순이 가까와 초상이 누른 풀잎 끝에 엷게 맺을 때가
되었다.
 하루는 어두워서야 들어오라고 생각한 그가 의외에 점심 때도 아니 되어서 꼭 닫은 중문을
소리없이 열고 자취를 감추며 들어와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안방에서 일을 하고 있던 고모는
도둑이나 아닌가 하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고 문틈으로 지키고 앉았으려니까 한식경이나
무엇인지 부수럭부수럭 하더니 금침인 듯한 보따리를 들고 나온다. 가슴이 덜렁하던 고모는 문을
박차며 내다보고,
 "그건 어디로 가져가니?"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망꾼처럼 한숨에 뛰어나려던 그는 보따리를 진
채 어색한 듯이 히히히 웃으면서,
 "새 집 들레...히히히, 영희 어머니를 데려오려고 저기 한 채 지었어..." 또 히히히 웃고 휙
돌아서 나갔다. 고모는 삼촌집에 곧 기별을 하려도 마침 아이가 없어서 걱정만 하고 앉았었다.
조금 있다가 또 발자취가 살금살금 난다. 이번에도 안방으로 향하여 어정어정 들어오더니
부엌간으로 들어가서 시렁 위에 얹어 놓은 병풍을 끌어 내려다가 아랫방 앞에 놓고 퇴로
올라서서,
 "아지먼네, 그 농 좀 갖다 놓게 좀 주시소 고래."하고 성큼 뛰어들어와서 옷칸에 놓았던 조그만
붉은 농장짝을 번쩍 들고 나갔다. 다행히 영희의 계모가 갈 때에 그의 의복이며 빨래들을 모아서
농장 속에 넣어 두었기 때문에 고모는 걱정을 하면서도 안심하였다. 낙지 이래로 이때껏 빗자루
한번 들어보지 못하던 그가 그 무거운 농짝에다가 병풍을 껴서 새끼로 비끄러 매어 가지고
나가는 것을 방문에 기대어 보고 섰던 고모는 입을 딱 벌리고 놀랐다.

 기지 이전에 실패한 그는 유정에 돌아와서 일, 이주간이나 언덕에 드러누워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답답한 방을 면하려면 위선 여기다가 집을 한 채 지어야 하는데 단층으로는 좁기도
하거니와 제일 바다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층? 삼층? 삼층 만하면 예서도
보이겠지!"하고 일어나서 발돋움을 하고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인가에 가리워서 사 오정이나
상거가 있는 해면이 보일 까닭이 없다.
 "삼층이면 그래도 내 키의 삼, 사배나 될 터이니까...되겠지."하며 곁에 떨어진 나무가지를 들고
차차 햇발이 멀어가는 산비탈에 앉아서 건축의 설계도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누렇게 된 잔디
위에 정처없이 이리저리 줄을 쓱쓱 그면서 가다가다,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해가 저물어
가는 것도 모르고 앉았었다.
 그날 밤에 돌아와서는 책궤 속에서 학생시대에 쓰던 때묻은 양척과 사기가 물러난 삼각정규를
꺼내 가지고 동이 트도록 책상머리에 앉았었다.
 도안을 얻은 그는 동이 트기도 전에 산으로 달아났다. 위선 기지의 검분을 마친 후 그는 그
길로 돌을 주워 들이기 시작하였다. 반나절쯤 걸리어서 두세 삼태기나 모아 놓은 후, 허기진 줄도
모르고 제일 가까운 유곽 속으로 헤매이며 새끼오라기, 멍석조각이며 장작개비, 비루궤짝, 깨진
사기그릇 나부랑이...손에 걸리는 대로 모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유곽 속에서
먹다 남은 청요리 부스럭지를 좀 얻어 먹었으나 해질 무렵쯤 되어서는 맥이 풀려서 하는 수 없이
엉기어 들어와 저녁을 먹고 곧 자빠졌다.
 그 이튿날은 건축장에 나가는 길에 헛간에 들어가서 괭이를 몰래 집어 숨켜 가지고 도망하여
나왔다. 오전에 위선 한 간통쯤 터를 닦아서 다져 놓고 산을 내려와 물을 얻어다가 흙을 이겨
놓고 오후부터는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한 모퉁이에서부터 쌓아 나와 기역 자로 꼽드릴
때에 비로소 기둥이 없는 데에 생각이 나서 일을 중지하고 산등에 올라 앉아서 이 궁리 저 궁리
하여 보았다... 자기집에는 물론 없지마는 삼촌집에 가면 서까래 같은 것이라도 서너 개 있을
터이나 꺼낼 계책이 없었다. 지금의 그로서 무엇보다도 제일 기외하는 것은 자기의 계획이
완성되기 전에 가족이 눈에 띄거나 탄로되는 것인 동시에 이것을 계획하는 것, 더욱이 이 계획을
절대 비밀리에 완성하는 것이 유일의 재미요, 자랑거리이며 또한 생명이었다. 만일 이때에 누가
와서 "너의 계획은 이러저러하고 너의 포부는 약차약차히 고대하나 가엾은 일이지만 그것은 한
꿈에 불과하다."고 설파하는 사람이 있다 하면 경악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살인을
하였을지도 모를 것이다.
 "...어떻게 하였으면 아무도 모르게, 아무도 모르는 동안에 하루 바삐 이 신식 삼층 양옥을
지어서 세상 사람들을 놀래 보일까!" 침식을 잊고 주소로 노심초사하는 것이 오직 이것이었다.
그는 삼촌집의 개목을 가져올 궁리를 하였다. "밤에나 새벽에 가서 집어 와? ...그것도 아니될
것이다. ...그러면 어느 재목상에나 가서? ...응응 옳지 옳지!"하며 그는 흙 묻은 손을 비벼 털며
뛰어 내려와서 정거장으로 향하여 달아 나왔다. 그는 '재목상에나!'라는 생각이 날 제 십여년
전에 자기가 가르치던 A라는 청년이 재목상을 경영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뛰어 나온 것이었다.
삼거리로 갈리는데 와서 잠깐 멈칫하다가 서으로 꼽드려서 또다시 뛰었다. K재목상회라는 기단
간판이 달린 목책으로 돌라 막은 문전에 다달아 우뚝 서며 안을 들여다보고 멈칫거리다가
문안으로 썩 들어섰다. 그는 무엇이나 도둑질하러 온 사람처럼 황황히 사방을 돌아다보다가
사무실에서 누가 내다보는 것을 눈치채고 곧 그리로 향하였다.
 "재목 있소?"발을 들여놓으며 한 마디 부르짖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오? ...재목집에 재목이야 있지요. 하하하..." 테이블 앞에 앉아서
사무원들과 잡담을 하고 있던 주인은 바로 앉아서 그를 마주 쳐다보며 웃었다.
 그는 얼이 빠진 사람처럼 이 사람 저 사람 사무원들을 차례차례로 쳐다보다가 마치 취한이나
광인이 스스러운 사람과 대할 때에 특별한 주의와 긴장을 가지는 거와 같이 뿌연 눈을 똑바로
뜨고 서서 한 마디 한 마디씩 애를 써 분명한 어조로,
 "아니 좀 자질구레한 기둥 있거든 몇 개 주시소 그려, 지금 집을 짓다가..."
 "그건 해 무엇 하시랴오? 그러나 돈을 가져오셔야지요? ...하하하."
 사소한 대금을 관계하는 것은 아니나 그가 광증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주인은 그대로 내주는
것이 어떨까 하여 물어 보았다.
 "응응! 옳지! 돈이 있어야지. 응응! 돈이 있어야지..." 돈이란 말에 비로소 깨달은 듯이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멀거니 섰다가 아무 말도 없이 도로 뛰어 나갔다. 처음부터 서로 눈짓을 하며
빙긋빙긋 웃고 앉았던 사무원들은 참았던 웃음을 왓하하하 하며 웃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을 흘겨다 보며 급히 달아 나왔다.
 그 길로 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방에 쑥 들어서면서 흙이 말라서 뒤발을 한 손으로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뒤적거리며 한참 찾더니 돈지갑을 들고서 선재를 열어 보았다. 속에는 일원짜리
지폐가 석장 하고 은전 백동전 합하여 구십여전쯤 들어 있었다. ...옥중에서 차입하여 쓰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혼자 히-웃으며 지갑을 단단히 닫아서 바지춤에다 넣고 다시 뜰로 내려섰다.
대문을 막 나서렬 때 삼촌과 마주쳤다. 그는 마치 못된 장난을 하다가 어른에게 들킨 어린
아이처럼 깜짝 노라며 꽁무니를 슬슬 빼며 급히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자는 체하고
드러누워버렸다...그날 밤에는 종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는 위선 재목상을 찾아갔다.
 마침 나와 앉았던 주인은 아무 말없이 들어와서 훔척훔척하다가 삼원오십전을 꺼내 놓고
'얼마든지 좀 주시고래'하고 벙벙이 섰는 그의 태도를 한참 쳐다 보다가,
 "얼마나 드리리까?"하며 웃었다.
 "기둥 여섯하고..."
 "기둥 여섯만 하여도 본전도 안됩니다." 주인은 하하 웃으며 그의 말을 자르고 사무원을
돌아다보고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는 사무원을 따라 나가서 서까래만한 기둥 여섯 개와 널판
두개를 얻어서 짊어지고 나섰다. 재목을 얻은 그는 생기가 더 나서 위선 네 귀에 기둥을 세우고
두 편만은 중간에다 마주 대하여 두 개를 세운 뒤에 삼등분 하여 새끼로 두 층을 돌려 매어 놓고
담을 쌓기 시작하였다. 담쌓기는 쉬우나 돌멩이 모두 들이기에 날짜가 많이 걸렸다. 약
삼주간이나 되어 동편으로 드나들 구멍을 터 놓고는 사방으로 삼, 사척의 벽을 쌓았다. 위선
하층은 되었는고로 널판지를 절반하여 한 편에 기대어서 걸쳐놓고 나머지 길이를 이등분하여
어긋 매어서 삼층을 꾸렸다. 그 다음에는 이층만 사면에 멍석 조각을 둘러막고 삼층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도 물론 그의 설계에 한조목 든 것이었다. 그의 이상으로 말하면 지붕까지라도
없어야 할 것이지만 우로를 피하기 위하여 부득이 역시 멍석을 이어서 덮었다.
 이같이 하여 이렁저렁 일개월 이상이나 걸린 역사는 대강대강 끝이 나서 우선 손을 떼던 날
석양에 그는 삼층 위에 올라 앉아서 저물어 가는 산경치를 내다보고 혼자 기꺼움을 이기지
못하였다. 인생의 모든 행복이 일시에 모여든 것 같았다. 금시에라도 이사를 하려다가 집에
들어가면 또 잡히어서 나오지 못할 것을 생각하고 어둡기까지 그대로 드러누웠었다.
드러누워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위선 세계평화 유지 사업으로 회를 하나 조직하여야 할
터인데...
 "회명은 무엇이라고 할까? 국제연맹이란 것은 있으니까 국제평화협회? 세계평화회? 그것도
아니 되었어, 동서양이 제일에 친목하여야 할 것인즉 '동서친목회'라 하지! 옳지!
동서친목회...되었어."
 그 다음에 그는 삼층 양옥을 어떻게 하면 거처에 편리하게 방세를 정할까 생각하였다. 우선
급한 것은 응접실이다. 그 다음에는 사무실, 침실, 식당, 서재...차례차례로 서양사람집 본새를
생각하여가며 속으로 정하여 놓고 어슬어슬한 때에 뛰어 내려왔다. 일단 집으로 향하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돌쳐서 기웃기웃 하다가 어떤 상점 앞에 와서 서더니 저고리 고름 끝에 매인
매듭을 힘을 들여서 풀고 섰다. 한 사람 두 사람 모여드는 것도 모르는 것같이 시치미를 떼고
풀더니 은전 네잎을 꺼내서 던지고 일본주 이홉병을 받았다. ...낙성연을 베풀려는 작정이었다.
 공복에 들어간 두 홉 술의 힘은 강렬하였다. 유정의 사람 자취가 그칠 때까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동서친목회 회장이 너희들을 감독하려고 내일이면 떠나 오신다고 도지개를 틀며
앉았는 여회원들을 웃기며 비틀거리고 돌아다닌 것도 그날 밤이었다.

   8

 세간을 나르느라고 중문 대문을 훨씬 열어 젖혀놓은 것을 지치려고 뒤를 쫓아 나간 고모는
이맛살을 찌푸리고 그의 가는 방향을 한참 건너다 보다가 긴 한숨을 쉬고 들어와서 큰 집에 간
영희만 기다리고 앉았으려니까 십오분쯤 되어 삐꺽 하는 소리가 나더니 또 들어와서 이번에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한참동안 훔척훔척하다가 석유통으로 만든 화덕 위의 남비를 들고 나왔다. 그
속에는 사기그릇이며 수저나부랑이를 손에 잡히는 대로 듬뿍 넣었다. 그는 안에서 무엇이라고
소리가 칠까 보아서 면상 힐끗힐끗 돌아다 보며 뺑소니를 쳐서 나왔다. ...십수년 동안 기거하던
자기 집을 영원히 이별하였다.
 그날 석양에 고모는 영희를 데리고 동리 사람이 가르쳐주는 대로 그의 신가정을 찾아갔다.
고모에게 대하여는 가장 불행하고 비통한 집알이였다. 엿과 성냥 대신에 저녁밥을 싸가지고
갔었다. 물론 가자고 하여야 다시 집에 돌아올 그가 아니었다. 영희가 울면서 가자고 하니까 그는
무슨 정신이 났던지 측은하여 하는 듯한 슬픈 안색으로 목소리를 떨며,
 "어서 가거라. 어서 가거라...아-춥겠다. 눈이 저렇게 왔는데 어서 가거라."혼잣말처럼 꼭 한
마디 하고 아랫간에 늘어놓은 부엌 세간을 정돈하며 있었다.
 고모는 하는 수 없이 돌아와서 남았던 시량과 찬을 그에게로 보내주고나서 어둑어둑할 때 문을
잠그고 영희와 같이 큰집으로 건너갔다. 근 보름이나 앓아 누운 그의 백부는 눈물을 흘리며 깊은
한숨만 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소년 과부로 오십이 넘은 그의 고모는 건넌방에 영희를 끼고 누워서 밤이 이슥하도록
훌쩍거렸다. 영희의 흘흘 느끼는 소리도 간간이 안방에까지 들렸다. 아랫목에 누웠던 영감이,
 "여보 마누라, 좀 가보시구려."하는 소리에 잠이 들려던 노마님이 건너갔다. 조금 있다가 이
마누라까지 훌쩍훌쩍하며 안방으로 건너왔다. 미선을 가슴에 대고 반듯이 드러누운 노인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글썽 하였다.
 십칠야의 교교한 가을 달빛은 앞창 유리 구멍으로 소리 없이 고요히 흘러 들어와서 할머니의
가슴에 안기어 누운 영희의 젖은 베개 밑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9

 평양으로 나온 우리 일행은 그 이튿날 아침에 남북으로 뿔뿔이 헤어졌다. 그후 이개월쯤 되어
나는 백설이 애애한 북국 어떠한 한 촌 진흙방 속에서 이러한 Y의 편지를 받았다.
 "형식에 빠진 모든 것은 우리에게 벌써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아니오? 어느 때든지 자기의
생활에 새로운 그림자(그것은 보다 더 선한 것이거나 혹은 보다 더 악한 것이거나 하여간)가
비쳐올 때나 혹은 잠든 나의 영이 뛰놀만한 무슨 위대한 힘이 강렬히 자극하여 오거나 그렇지
않으면 군에게 무엇이든지 기별하고 싶은 사건이 있기 전에는 같은 공기 속에서 같은 타임
속에서 동면상태로 겨우 서식하는 지금의 노로는 절하고 대적으로 누구에게든지 또는 무엇에든지
붓을 들지 않으려고 결심하였소. 자기의 침체한 처분, 꿈꾸는 감정을 아무리 과장한들 그것이
결국 무엇이요... 그러나 지금 펜을 들어 이 페이퍼를 더럽히는 것은 현재의 내가 무슨 새로운
의의를 발견하고 혹은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게 된 까닭은 아니오. 다만 내가 오래간만에 집을
방문하였다는 것과 그 외에 군이 어떠한 호기심을 가지고 심방하였던 삼원 오십전에 삼층 양옥을
건축한 철인의 철저한 예술적 또한 신비적 최후를 군에게 알리려는 까닭이오."
 여기까지 읽은 나는 깜짝 놀랐다. 손에 들었던 편지를 책상 위에 놓고 바로 앉아서 한 자 한
자 세이듯이 하여가며 계속하여 보았다.
 "...사실은 지극히 간단하나, 이 소식은 군에게 비상한 만족을 줄 줄로 믿소. 하느님이 천사를
보내시어 꾸며 놓으신 옥좌에 올라 앉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치 않으면 아니될 시기라고 생각한
그는 신의로서 만든 삼원 오십전 짜리 궁전을 이 오탁에 싸인 속계에 두고 가기 어려웠을
것이오.
 신의 물은 신에게 돌리리라. 처치하기 어려운 삼층 집을 맡길 곳이 신 이외에 없었을 것도
괴이치 않은 것이겠소. ...유곽 뒤에 지어 놓았던 원두막 한 채가 간밤 바람에 실화하여 먼지가
되어 날아간 뒤에 집 주인은 종적을 감추었다. ...라고 하면 사실은 지극히 간단할 것이오. 그러나
불은 왜 놓았나?"
 나는 이하를 더 읽을 기운이 없다는 것 같이 가만히 지면을 내려다 보고 앉았었다. 의외의
사실에 대한 큰 경이도 아니려니와 예측한 사실이 실현됨에 대한 만족의 정도 아닌 일종의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다대한 호기심과 기대에 긴장하였던 마음을 일시에 느즈러지게 한
상태였다. ...나는 또다시 읽기 시작하였다.
 "추위에 못 견디어서...라고 세상 사람들은 웃고 말 것이오. 그리고 군더러 말하라면 예의
현실폭로라는 넉자로 설명할 것이오. 그러나 그가 삼층집에서 내려와 자기 집 서재로 들어가기
전에는 불을 놓았다고도 못할 것이오. 또 현실폭고의 비애를 감하여 그리 하였다하면 방화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오. ...신의에 따라서만 살 수 있다는 신념을 확집한 그는 인제는
금강산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다고 삼층 위에서 뛰어 내려온 것이오. 그리고 그 건축물은 신에게
돌린 것이오...
 아-그 위대한 건물이 홍염의 광란 속에서 구름 탄 선인같이 찬란히 떠오를제 그의 환희는
어떠하였을까. 그의 입에서는 반드시 '할렐루야'가 연발되었을 것이오. -마치 네로가 홍염
가운데의 로마 대도를 바라보며 하아프에 맞춰서 시를 읊듯이. 아-그는 얼마나 위대한 철인이며
얼마나 행복스러운가... 반열반온의 자기를 돌아볼 제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매도치 않을 수
없소..."

   10

 기뻐하리라고 한 Y의 편지는 오직 잿빛의 납덩어리를 내 가슴에 던져 주었을 따름이었다. 나는
여기저기 골라가며 또 한 번 읽은 뒤에 편지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채 드러누웠었다. 음산한
방 속은 무겁고 울적한 나의 가슴을 더욱 질식케 하는 것 같았다. 까닭없이 울고 싶은 증이 나서
가만히 누웠을 수가 없었다. ...나는 뛰어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섰다.
 아침부터 햇발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하늘에는 뽀얀 구름이 건너다 보이는 앞산 위까지 처져서
방금 눈이 퍼불 것 같았다. 나는 얼어붙은 눈 위를 짚신발로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R동 고개로
나서서 항상 소요하던 절벽 위로 향하였다.
 사람 하나 간신히 통행할 만한 길 오른편 언덕에 거무스름하게 썩어서 문정문정 하는 짚으로
에워 쌓은 한간 집이 있고 그 아래에는 비스듬하게 짓다가 둔 헛간 같은 것이 있다. 나는 늘
보았건만 그것의 본체가 무엇인지 아직껏 물어도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삼층 양옥의 실화사건의
통지를 받고는 새삼스럽게 눈여겨 보았다. 나는 두세 걸음 지나가다가 다시 돌쳐서서 언덕으로
내려와서 사면팔방을 멍석으로 꼭 틀어막은 괴물 앞에 섰다.
 나는 무슨 무서운 물건이나 만지듯이 입구에 드리운 멍석 조각을 가만히 쳐들고 컴컴한 속을
들여다 보았다. 광선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속에서는 쌀쌀한 바람이 휙 끼칠 뿐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히 마음이 선뜻하여 손에 쥐었던 거적문을 놓으려다가 다시 자세히 검사를
하여 보았다. 그러나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기둥 두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위에 나무 관
같은 것을 놓고 그 위에는 언젠지 대동 강변에서 본 봉황선 대가리 같은 단청한 목판짝이 얹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할 것을 본 것 같이 께름하여 마른 침을 탁 뱉고 돌아서 동둑 위로
올라왔다. 나는 눈에 묻힌 절벽 위에 와서 고총 앞에 놓인 석대에 걸터 앉으려다가 곁에 새로
붉은 흙을 수북히 모아 논 것을 보고 외면을 하며 일어 나왔다. 이것은 일전에 절골에선가
귀신이 씌어서 죽었다는 무녀가 온 식전 굿을 하던 떼도 안 입힌 새 무덤이다. ...저녁 밥상을
받고 앉아서 주인더러 등 너머의 일간두옥은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그것이 이 촌에서 천당에 올라가는 정거장이라우..."하고 웃으며 동리에서 조직한 상계의
소유라고 설명하였다. 이 촌에서 난 사람은 누구나 조만간 그곳을 거쳐야만 한다는 묵계가
있다는 그의 말에는 무슨 엄숙한 의미가 있는 것같이 들리었다. 나는 밥을 씹으며 저를 손에 든
채로 그 내력을 설명하는 젊은 주인의 생기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앉았었다. 그 순간에
나는 인생의 전 국면을 평면적으로 부감한 것 같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는 동시에 무거운
공포가 머리를 누르는 것 같았다.
 그날 밤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용기가 없어서 몇몇 청년이 몰려와서 떠드는 속에 가만히
드러누웠었다. 어쩐지 공연히 울고 싶었다. 별로 김창억을 측은히 생각하여 그의 운명을 추측하여
보거나 삼층집 소화한 후의 행동을 알려는 호기심은 없었으나 지금쯤은 어디로 돌아다니나? 하는
생각이 나는 동시에 작년 가을에 대동강가에서 잠깐 본 장발객의 하얀 신경질적 얼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과연 그가 그 후에 어디로 간 것은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뱀보다도 더 두려워하고 꺼리는
평양에 나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몽상외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평양에 왔다. ...평양은 그의
후취의 본가가 있는 곳이다.
 ...일년 열 두 달 열어 보는 일이 없이 꼭 닫은, 보통문 밖에 보금자리 같은 집더미 속에서
우물우물 하기도 하고 혹은 그 앞 보통 강가로 돌아 다니는 걸인은 오직 대동강가의 장발객과
형제거나 다만 걸인으로 알 뿐이요, 동리에서도 누구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주요섭 (1902__1972)
 그는 1921년 4월부터 "추운밤", "개벽", "인력거꾼", "1925년 4월(개벽)", "살인", "동 6월(개벽)"
등의 작품을 발표했으나,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기는 1935년 11월부터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비롯하여 "아네모네의 마담", "추물" 등을 발표 한 뒤부터였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는 그의
대표작이자 또한 우리 단편 소설사상 가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내용은 동심에
비친 당시의 인습 관념 때문에 고민하는 애정을 그린 것이며 여섯 살 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이야기를 섬세하게 펼쳐 나가는 형식을 취한 작품이다. 해방 후엔 단편 "시계당 주인",
"대학교수", 장편"길" 등 역작을 발표했다.

    사랑 손님과 어머니
    "조광" 1935.12

   1

 나는 금년 여섯 살 난 처녀애입니다. 내 이름은 박옥희구요, 우리 집 식구라구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어머니와 단 두 식구 뿐이랍니다. 아차 큰일 났군, 외삼촌을 빼놓을 뻔했으니.
 지금 중학교에 다니는 외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싸돌아 다니는지 집에는 끼니때나 외에는 별로
붙어 있지를 않으니까 어떤 때는 한 주일 씩 가도 외삼촌 코빼기도 못 보는 때가 많으니까요,
깜박 잊어버리기도 예사지요, 무얼.
 우리 어머니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둘도 없이 곱게 생긴 우리 어머니는, 금년 나이 스물 네
살인데 과부랍니다. 과부가 무엇인지 나는 잘 몰라도 하여튼 동리 사람들이 날더러 '과부
딸'이라고들 부르니까 우리 어머니가 과부인 줄을 알지요. 남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나만은
아버지가 없지요. 아버지가 없다고 아마 '과부 딸'이라나 봐요.

   2

 외할머니 말씀을 들으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오기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요. 우리
어머니하고 결혼한 지는 일년만이고요. 우리 아버지의 본집은 어디 멀리 있는데 마침 이 동네
학교에 교사로 오게 되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시집으로 가지 않고 여기 이 집을
사고(바로 이 집은 우리 외할머니댁 뒷집이지요) 여기서 살다가 일년이 못 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내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다니까 나는 아버지 얼굴도 못
뵈었지요. 그러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 생각은 안 나요. 아버지 사진이라는 사진은 나도
한 두 번 보았지요. 참말로 훌륭한 얼굴이야요.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참말로 이 세상에서 제일
가는 잘난 아버지일거야요. 그런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것은 참으로 분한 일이야요. 그 사진도 본
지가 퍽 오래 되었는데 이전에는 그 사진을 늘 어머니 책상 위에 놓아두시더니 외할머니가 오실
때마다 그 사진을 치우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그 사진이 어디 있는지 없어졌어요. 언젠가
한 번 어머니가 나 없는 동안에 몰래 장농 속에서 무엇을 꺼내시다가 내가 들어오니까 얼른 장농
속에 감추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것이 아마 아버지 사진인 것 같았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가 먹고 살 것을 남겨 놓고 가셨대요. 작년 여름에, 아니로군,
가을이 다 되어서군요. 하루는 어머니를 따라서 저 여기서 한 십리나 가서 조그만 산이 있는
데를 가서 거기도 밤도 따먹고 또 그 산사 밑의 초가집에 가서 닭고기 국을 먹고 왔는데 거기
있는 땅이 우리 땅이래요. 거기서 나는 추수로 밥이나 굶지 않게 된다구요. 그래두 반찬 사고
과자 사고 할 돈은 없대요. 그래서 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바느질을 맡아서 해 주지요. 바느질을
해서 벌어서 그걸루 청어도 사고 달걀도 사고 또 내가 먹을 사탕도 사고 한다구요. 그리구 우리
집 정말 식구는 어머니와 나와 단 둘뿐인데 아버님이 계시던 사랑방이 비어 있으니까 그 방도 쓸
겸 또 어머니의 잔심부름도 해 줄 겸 해서 우리 외삼촌이 사랑방에 와 있게 되었대요.

   3

 금년 봄에는 나를 유치원에 보내 준다고 해서 나는 너무나 좋아서 동무 아이들한테 실컷
자랑을 하고 나서 집으로 들어오느라니까 사랑에서 큰 외삼촌이(우리집 사랑에 와 있는 외삼촌의
형님 말이야요) 웬 한 낯선 사람 하나와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큰 외삼촌이 나를
보더니 "옥희야"하고 부르겠지요.
 "옥희야 이리 온. 와서 이 아저씨께서 인사 드려라."
 나는 어째 부끄러워서 비슬비슬하니까 그 낯선 손님이,
 "아, 그 애기 참 곱다. 자네 조카딸인가?"하고 큰 삼촌더러 묻겠지요. 그러니까 큰 삼촌은,
 "응, 내 누이의 딸...경선군의 유복녀 외딸일세."하고, 대답합니다.
 "옥희야 이리 온, 응! 그 눈은 꼭 아버지 닮았네 그려."하고 낯선 손님이 말합니다.
 "자, 옥희야, 커단 처녀가 왜 저 모양이야, 어서 와서 이 아저씨께 인사해요. 너의 아버지의
옛날 친구신데, 오늘부터 이 사랑에 계실텐데, 인사 여쭙고 친해 두어야지."
 나는 이 낯선 손님이 사랑방에 계시게 된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즐거워졌습니다. 그래서 그
아저씨 앞에 가서 사붓이 절을 하고는 그만 안마당으로 뛰어 들어 왔지요. 낯선 아저씨와 큰
외삼촌은 소리를 내서 크게 웃더군요. 나는 안방으로 들어오는 나름으로 어머니를 붙들고,
 "엄마 사랑방에 큰 삼촌이 아저씨를 하나 데리구 왔는데에, 그 아저씨가 이제 사랑에
있는데."하고 법석을 하니까,
 "응, 그래."하고 어머니는 벌써 안다는 듯이 대수롭잖게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언제부텀 와 있나?"하고 물으니까,
 "오늘부텀."
 "애구 좋아."하고 내가 손벽을 치니까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왜 이리 수선이야."
 "그럼 작은 외삼촌은 어디로 가나?"
 "외삼촌두 사랑에 계시지."
 "응."
 "한 방에 둘이 있어?"
 "왜, 장짓문 닫구 외삼촌은 아랫방에 계시구 그 아저씨는 웃방에 계시고, 그러지."

   4

 나는 그 아저씨가 어떠한 사람인지는 몰랐으나 첫날부터 내게는 퍽 고맙게 굴고 나도 그
아저씨가 꼭 마음에 들었어요. 어른들이 저희끼리 말하는 것을 들으니까 그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와 어렸을 적 친구라구요. 어디 먼데 가서 공부를 하다가 요새 돌아왔는데, 우리
동네학교 교사로 오게 되었대요. 또 우리 큰 외삼촌과도 동무인데 이 동리에는 하숙도 별로
깨끗한 곳이 없고 해서 우리 사랑으로 와 계시게 되었다구요. 또 우리도 그 아저씨한테서 밥
값을 받으면 살림에 보탬도 좀 되고 한다구요.
 그 아저씨는 그림책들이 얼마든지 있어. 내가 사랑방으로 나가면 그 아저씨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그림책들을 보여줍니다. 또 가끔 과자도 주구요.
 어느 날은 점심을 먹고 이내 살그머니 사랑에 나가 보니까 아저씨는 그 때야 점심을 잡수셔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점심 잡숫는 걸 구경하구 있느라니까 아저씨가,
 "옥희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하고 묻겠지요. 그래 삶은 달걀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삶은 달걀을 한 알 집어주면서 나더러 먹으라구 합니다. 나는 그 달걀을 벗겨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하고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두 삶은 달걀."하겠지요. 나는 좋아서 손벽을 짤깍짤깍 치고,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하면서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꼭 붙들면서,
 "그러지 말어." 그러시겠지요. 그래두 나는 한번 맘을 먹은 댐엔 꼭 그대로 하구야마는
성미지요. 그래 안 마당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사랑 아저씨두 나처럼 삶은 달걀을 제일 좋아한대."하고 소리를 질렀지요.
 "떠들지 말어."하고, 어머니는 눈을 흘기십니다.
 그러나 사랑 아저씨가 달걀을 좋아하는 것이 내게는 썩 좋게 되었어요. 그것은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달걀을 많이씩 사게 되었으니까요. 달걀 장수 노친네가 오면 한꺼번에 열 알두 사구
스무 알두 사구 그래선 두고두고 삶아서 아저씨 상에두 놓구 또 으레 나도 한 알씩 주구 그래요.
그 뿐만 아니라 아저씨한테 놀러 나가면 가끔 아저씨가 책상 서랍 속에서 달걀을 한 두알
꺼내면서 먹으라고 주지요. 그래 그 담부터는 아주 실컷 달걀을 많이 먹었어요.
 나는 아저씨가 아주 좋았어요. 마는 외삼촌은 가끔 툴툴하는 때가 있었어요. 아마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드나봐요. 아니, 그것보다도 아저씨 상 심부름을 꼭 외삼촌이 하게 되니까 그것이
싫어서 그러나봐요. 한 번은 어머니와 외삼촌이 말다툼하는 것까지 내가 들었어요. 어머니가,
 "야, 또 어데 나가지 말구 사랑에 있다가 선생님 들어오시거던 상 내가야지."하고 말씀하니까
외삼촌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제길, 남 어데 좀 볼 일이 있는 날은 으레 끼니 때에 안 들어오고 늦어지니..."하고 툴툴
하겠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그러니 어짜갔니? 너밖에 사랑 출입할 사람이 어디 있니?"
 "누님이 좀 상 들구 나가구려. 요샛 세상에 내외합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시고 아무 대답 없이 그냥 외삼촌에게 향하여 눈을
흘기셨습니다. 그러니까 외삼촌은 흥흥 웃으면서 사랑으로 나갔지요.

   5

 나는 유치원에 가서 창가도 배우고 댄스도 배우고 하였습니다. 유치원 여자 선생님이 풍금을
아주 썩 잘 타요. 그런데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은 우리 예배당에 있는 풍금과는 아주 다른 데
퍽 조그마한 것이지만 소리는 썩 좋아요. 그런데 우리 집 웃간에도 유치원 풍금과 꼭 같이 생긴
것이 놓여 있는 것이 갑자기 생각이 났어요. 그래 그 날 나는 집으로 오는 길로 어머니를 끌고
웃간으로 가서,
 "엄마, 이거 풍금이유?"하고 물으니까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렇단다. 그건 어찌 알았니?"
 "우리 유치원에 있는 풍금이 이것과 꼭 같은데 무얼. 그럼 엄마두 풍금 탈 줄 아우?"하고 나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은 이때껏 한 번도 어머니가 이 풍금 앞에 앉은 것을 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십니다.
 "엄마 이 풍금 타 봐!"하고 재촉하니까 어머니 얼굴은 약간 흐려지면서,
 "이 풍금은 너희 아버지가 날 사다 주신 거란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그 풍금은
이때까지 뚜껑두 한 번 안 열어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보니까 금방 또
울음보가 터질 것만 같이 보여서 나는 그만,
 "엄마 나 사탕 주어."하면서 아랫방으로 끌고 내려 왔습니다.

   6

 아저씨가 사랑방에 와 계신지 벌써 여러 밤을 잔 뒤입니다. 아마 한 달이나 되었지요. 나는
거의 매일 아저씨 방에 놀러 갔습니다. 어머니는 나더러 그렇게 가서 귀찮게 굴면 못 쓴다고
가끔 꾸지람을 하시지만 정말인즉 나는 조금도 아저씨를 귀찮게 굴지는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저씨가 귀찮게 굴었지요.
 "옥희 눈은 아버지를 닮았다. 고 고운 코는 아마 어머니를 닮았지, 고 입하고! 응, 그러냐, 안
그러냐? 어머니두 옥희처럼 곱지 응?..."
 이렇게 여러 가지로 물을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께 입때 우리 엄마 못 봤수?"하고 물었더니 아저씨는 잠잠합니다. 그래 나는,
 "우리 엄마 보러 들어갈까?"하면서 아저씨 소매를 잡아당겼더니 아저씨는 펄쩍 뛰면서,
 "아니, 아니, 안 돼. 난 지금 분주해서."하면서 나를 잡아 끌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는 무슨
그리 분주하지도 않은 모양이었어요. 그러기 나더러 가란 말도 않고 그냥 나를 붙들고 앉아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뺨에 입도 맞추고 하면서,
 "요 저구리 누가 해주지?...밤에 엄마하구 한 자리에서 자니?"라는 둥 쓸데 없는 말을 자꾸만
물었지요!
 그러나 웬 일인지 나를 그렇게도 귀애해 주던 아저씨도 아랫방에 외삼촌이 들어오면 갑자기
태도가 달라지지요. 이것저것 묻지도 않고 나를 꼭 껴안지도 않고 점잖게 앉아서 그림책이나
보여주고 그러지요. 아마 아저씨가 우리 외삼촌 무서워 하나봐요.
 하여튼 어머니는 나더러 너무 아저씨를 귀찮게 한다고 어떤 때는 저녁 먹고 나서 나를 꼭
방안에 가두어 두고 못 나가게 하는 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있다가 어머니가
바느질에 정신이 팔리어서 골몰하고 있을 때 몰래 가만히 일어나서 나오지요. 그런 때에는
어머니는 내가 문 여는 소리를 듣고야 파딱 정신을 차려서 쫓아와 나를 붙들지요. 그러나 그런
때는 어머니는 골은 아니 내시고,
 "이리 온, 이리 와서 머리 빗고..."하고 끌어다가 머리를 다시 곱게 땋아 주지요.
 "머리를 곱게 땋고 가야지, 그렇게 되는 대루 하구 가문 아저씨가 숭보시지 않니."하시면서...
 또 어떤 때에는 머리를 다 땋아주시고는,
 "응, 저고리가 이게 무어냐?"하시면서 새저고리를 내어주시는 때도 있었습니다.

   7

 어떤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더러 뒷동산에 올라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무나
좋아서 가자고 그러니까 아저씨가,
 "들어가서 어머님께 허락 맡고 온."하십니다. 참 그렇습니다. 나는 뛰쳐 들어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맡았습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다시 세수시켜 주고 머리도 다시 땋고 그리고 나서는
나를 아스라지도록 한 번 몹시 껴안았다가 놓아 주었습니다.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응."하고 어머니는 크게 소리치셨습니다.. 아마 사랑 아저씨도 그 소리를
들었을꺼야요.
 뒷동산에 올라가서는 정거장을 한참 내려다 보았으나 기차는 안 지나갔습니다. 나는 풀잎을
쭉쭉 뽑아보기도 하고 땅에 누운 아저씨의 다리를 가서 꼬집어 보기도 하면서 놀았습니다. 한참
후에 아저씨가 손목을 잡고 내려 오는데 유치원 동무들을 만났습니다.
 "옥희가 아빠 하구 어디 갔다 온다 응."하고 한 동무가 말하였습니다. 그 아이는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나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그 때 나는 얼마나 이 아저씨가
정말 우리 아버지였더라면 하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나는 정말로 한 번만이라도,
 "아빠!"하고 불러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그렇게 아저씨하고 손목을 잡고 골목골목을
지나오는 것이 어찌도 재미가 좋았는지요.
 나는 대문까지 와서,
 "난 아저씨가 우리 아빠라문 좋겠다."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져서 몹시 흔들면서,
 "그런 소리 하믄 못써."하고 말하는데 그 목소리가 몹시도 떨렸습니다. 나는 아저씨가 몹시
성이 난 것처럼 보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어머니가,
 "어디까지 갔댄?"하고 나와 안으며 묻는데 나는 대답도 못하고 그만 쿨쩍쿨쩍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놀라서,
 "옥희야 왜 그러니? 응?"하고 자꾸만 물었으나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

   8

 이튿날은 일요일인 고로 나는 어머니와 함께 예배당에를 가려고 차리고 나서 어머니가 옷을
갈아 입는 동안 잠깐 사랑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아저씨가 아직두 성이 났나?'하고 가만히 방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책상에 앉아서 무엇을 쓰고
있던 아저씨가 내다보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 웃음을 보고 나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저씨가
지금은 성이 풀린 것이 확실하니까요. 아저씨는 나를 이리 보고 조리 보고 훑어보더니,
 "옥희, 오늘 어디 가노? 저렇게 곱게 채리구."하고, 물었습니다.
 "엄마 하구 예배당에 가."
 "예배당에?"하고 나서 아저씨는 잠시 나를 멍하니 바라보더니,
 "어느 예배당에?"하고 물었습니다.
 "요 앞의 예배당에 가지 뭐."
 "응? 요 앞이라니?"
 이 때에 안에서,
 "옥희야."하고 부드럽게 부르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었습니다. 나는 얼른 안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돌아다 보니까 아저씨는 또 얼굴에 빨갛게 성이 났겠지요. 내 원, 참으로 무슨 일로
요새는 아저씨가 그렇게 성을 잘 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예배당에 가서 찬미하고 기도하다가 기도하는 중간에 갑자기 나는 '혹시 아저씨도 예배당에
오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나서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남자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
바로 거기에 아저씨가 와 앉아 있겠지요. 그런데 아저씨는 어른이면서도 눈 감고 기도하지 않고
우리 아이들처럼 눈을 뻔히 뜨고 여기 저기 두리번 바라봅니다. 나는 얼른 아저씨를 알아
보았는데 아저씨는 못 알아 보았는지 내가 빙그레 웃어 보여도 웃어 주지도 않고 멀거니 보고만
있겠지요. 그래 나는 손을 흔들었지요. 그러니까 아저씨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더군요. 그 때에
어머니가 내가 팔 흔드는 것을 깨닫고 두 손으로 나를 붙들고 끌어당기더군요. 나는 어머니
귀에다 입을 대고,
 "저기 아저씨두 왔어."하고 속삭이니까 어머니는 흠칫하면서 내 입을 손으로 막고 막 끌어
잡아다가 앞에 앉히고 고개를 누르더군요. 보니까 어머니가 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군요.
 그 날 예배는 아주 젬병이었어요. 웬 일인지 예배가 다 끝날 때까지 어머니는 성이 나서
강대만 향하여 앞으로 바라보고 앉았고 이전 모양을 가끔 나를 내려다보고 웃는 일이 없었어요.
그리고 아저씨를 보려고 남자석을 바라보아도 아저씨도 한번도 바라보아도 주지도 않고 성이
나서 앉아 있고, 어머니는 나를 보지도 않고 공연히 꽉꽉 잡아 당기지요. 왜 모두들 성이 났는지!
나는 그만 으악 하고 한 번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유치원 선생님이
앉아 있는 고로 울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았답니다.

   9

 내가 유치원에 입학한 후 처음 얼마 동안은 유치원에 갈 때나 올 때나 외삼촌이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밤을 자고 난 뒤에는 나 혼자서도 넉넉히 다니게 되었어요. 그러나
언제나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때이면 어머니가 옆대문(우리 집에는 대문이 사랑대문과
옆대문 둘이 있어서 어머니는 늘 이 옆대문으로 출입하시는 것이었습니다)밖에 기다리고 섰다가
내가 달음질쳐가면, 안고 집으로 들어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어쩐 일인지 어머니가 대문간에 보이지를 않겠지요. 어떻게도 화가 나는지요.
물론 머리 속으로는 '아마 외할머니 댁에 가셨나 부다'하고 생각했지마는 하여튼 내가
돌아왔는데
문간에서 기다리지 않고 집을 떠났다는 것이 몹시 나쁘게 생각되더군요. 그래서 속으로 '오늘
엄마를 좀 골려야겠다'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대문 밖에서,
 '아이고, 얘가 원 벌써 왔나?'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그 순간 나는 얼른 신을
벗어들고 안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벽장문을 열고 그 속에 들어가서 숨어버렸습니다.
 "옥희야, 옥희 너 여태 안 왔니?"하는 어머니 목소리가 바로 뜰에서 나더니,
 "여태 안 왔군."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재미가 나서 혼자 흥흥흥흥
웃었습니다.
 한참을 있더니 집에서는 온통 야단이 났습니다. 어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할머니 목소리도
들리고 외삼촌 목소리도 들리고!
 "글쎄, 하루 종일 집이라군 안 떠났다가 옥희 유치원 파하구 오문 멕일 과자가 없기에
어머님댁에 잠깐 갔다가 왔는데 그 동안에 이런 변이 생긴 걸..."하는 것은 어머니 목소리,
 "글쎄 유치원에선 벌써 이십분 전에 떠났다는데 원 중간에서..."하는 것이 외할머니 목소리.
 "하여튼 내가 나가서 돌아댕겨 보웨다. 원 고것이 어딜 갔담."하는 것이 외삼촌의 목소리.
 이윽고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가늘게 들렸습니다. 외할머니는 무어라고 중얼중얼 이야기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이젠 그만하고 나갈까?'하고 생각했으나 '지난 주일날에 예배당에서 성냈던
앙갚음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나서 나는 그냥 벽장 안에 누워 있었습니다. 벽장 안은 답답하고
더웠습니다. 그래서 이윽고 부지중에 나는 슬며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 동안이나 잤는지요? 이윽고 잠을 깨어보니 아까 내가 벽장으로 들어왔던 것은 잊어버리고
참 이상스러운 데 내가 누워 있거던요. 어둑 컴컴하고 좁고 덥고...나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나서 엉엉 울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갑자기 어디 가까운데서 어머니의 외마디 소리가 나더니
벽장문이 벌컥 열리고 어머니가 달려들어서 나를 안아 내렸습니다.
 "요 망할 것아."하면서 어머니는 내 엉덩이를 댓번 때렸습니다. 나는 더욱더 큰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그때에는 어머니는 나를 끌어안고 어머니도 따라 울었습니다.
 "옥희야, 옥희야, 응, 인젠 괜찮다. 엄마 여기 있지 않니, 응, 울지 말아 옥희야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다. 옥희 하나만 바라구 산다. 난 너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 일이 없다. 옥희만
있으문 바라고 산다. 옥희야, 울지 말아, 응, 울지 말아." 이렇게 어머니는 나더러 자꾸 울지
말라고 하면서도 어머니는 그치지 않고 그냥 자꾸자꾸 울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원 고것이 도깨비가 들렸단 말인가, 벽장 속엔 왜 숨는담."하고 앉아 있고 외삼촌은,
 "에, 재수나시다."하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10

 이튿날 유치원을 파하고 집으로 오게 된 때, 나는 갑자기 어제 벽장 속에 숨었다가 어머니를
몹시 울게 했던 생각이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어째 부끄러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머니를 좀
기쁘게 해드려얄 텐데...무엇을 갖다 드리문 기뻐할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문득 유치원
안의 선생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꽃병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꽃병에는 나는 이름도 모르나
곱고 빨간 꽃이 꽂히어 있었습니다. 그 꽃은 개나리도 아니고 진달래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꽃은
나도 잘 알고 또 그런 꽃은 벌써 폈다가 져버린 후이었습니다. 무슨 서양 꽃이려니 하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어머니가 꽃을 사랑하는 줄을 잘 압니다. 그래서 그 꽃을 갖다가
드리면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려니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 유치원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선생님도 잠깐 어디를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 나는 그 꽃을 두어개 얼른 빼들고
달음질 쳐 나왔지요.
 집에 오니 어머니는 문간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안고 들어 왔습니다.
 "그 꽃은 어디서 났니? 퍽 곱구나."하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건 엄마드릴라구 유치원에서 가져왔어.'하고 말하기가 어째 몹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잠깐 망설이다가,
 "응, 이 꽃! 저, 사랑 아저씨가 엄마 갖다 주라구 줘."하고 불쑥 말했습니다. 그런 거짓말이
어디서 그렇게 툭 튀어 나왔는지 나도 모르지요.
 꽃을 들고 냄새를 맡고 있던 어머니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무엇에 몹시 놀란 사람처럼
화다닥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금시에 어머니 얼굴이 그 꽃보다도 더 빨갛게 되었습니다. 그 꽃을
든 어머니 손가락이 파르르 떠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무서운 것을 생각하는
듯이 방안을 휘 한 번 둘러 보시더니,
 "옥희야, 그런 걸 받아오면 안 돼."하고 말하는 목소리는 몹시 떨렸습니다. 나는 꽃을 받고
그처럼 성을 낼 줄은 참으로 뜻밖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도 성을 내는 것을 보니까 그 꽃을
내가 가져왔다고 그러지 않고 아저씨가 주더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 참 잘 되었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성을 내는 까닭을 나는 모르지만 하여튼 성을 낼 바에야 내게 내는
것보다 아저씨에게 내는 것이 내게는 나았기 때문입니다. 한참 있더니 어머니는 나를 방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옥희야, 너 이 꽃 이야기 아무 보구도 하지 말아라, 응"하고 타일러 주었습니다. 나는,
"응"하고 대답하면서 고개를 여러번 까댁까댁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 꽃을 곧 내버릴 줄로 나는 생각했습니다마는 내버리지 않고 꽃병에 꽂아서 풍금
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아마 퍽 여러 밤 자도록 그 꽃은 거기에 놓여 있어서 마지막에는
시들었습니다. 꽃이 다 시들자 어머니는 가위로 그 대는 잘라 내버리고 꽃만은 찬송가 갈피에
곱게 끼워 두었습니다.
 내가 어머니께 꽃을 갖다 주던 날 밤에 나는 또 사랑에 놀러 나가서 아저씨 무릎에 앉아서
그림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저씨 몸이 흠칫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풍금 소리! 그 풍금 소리는 분명 안방에서 흘러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풍금 타나부다."하고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안으로 뛰어 왔습니다. 안방에는 불을 켜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음력으로 보름께가 되어서 달이 낮 같이 밝은데 은빛 같은 흰
달빛이 방 한 절반 가득히 차 있었습니다. 나는 흰 옷을 입은 어머니가 풍금 앞에 앉아서 고요히
풍금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이 지금 여섯 살밖에 안 되었지만 하여튼 어머니가 풍금을 타시는 것을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풍금을 더 잘 타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갔습니다마는 어머니는 내가 곁에 온 것도 깨닫지 못하는지 그냥 까딱
아니하고 앉아서 풍금을 탔습니다. 조금 있더니 어머니는 풍금 곡조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도 아름다운 것도 나는 이 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참으로 우리 유치원 선생님보다도 목소리가 훨씬 더 곱고 또 노래도 훨씬 더 잘
부르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어머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마치도 은실을
타고 저 별나라에서 내려오는 노래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얼마 오래지 않아 목소리는 약간 떨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늘게 떨리는 노래 소리,
그에 따라 풍금의 가는 소리도 바르르 떠는 듯했습니다. 노래 소리는 차차 가늘어지더니
마지막에는 사르르 없어져 버렸습니다. 풍금 소리도 사르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고요히
풍금에서 일어나시더니 옆에 섰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다음 순간 어머니는 나를 안고
마루로 나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나를 꼭꼭 껴안는 것이었습니다. 달빛을
함뿍 받는 내 어머니 얼굴은 몹시도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참으로 천사
같다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새하얀 두 뺨 위로는 쉴새없이 두 줄기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니 나도 갑자기 울고 싶어졌습니다.
 "어머니 왜 울어?"하고 나도 훌쩍거리면서 물었습니다.
 "옥희야."
 "응?"
 한참동안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참 후에,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 뿐이다."
 "엄마."
 어머니는 다시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11

 하루는 밤에 아저씨 방에서 놀다가 졸려서 안방으로 들어오려고 일어서니까 아저씨가 하이얀
봉투를 서랍에서 꺼내어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갖다가 엄마 드리고 지나간 달 밥값이라구, 응."
 나는 그 봉투를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받아들자 갑자기 얼굴이
파랗게 질리었습니다. 그 전 날 달밤에 마루에 앉았을 때보다도 더 새하얗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봉투를 들고 어쩔 줄을 모르는 듯이 초조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거 지나간 달 밥값이래."하고 나는 말을 하니까 어머니는 갑자기 잠자다 깨나는 사람처럼
"응."하고 놀래더니 또 금시에 백지장 같이 새하얗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봉투 속으로
들어갔던 어머니의 파들파들 떨리는 손가락이 지전을 몇 장 끌고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입술에
약간 웃음을 띠우면서 후하고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어머니는 무엇에
놀랐는지 흠칫 하더니 금시에 얼굴이 다시 새하얘지고 입술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바라다보니 거기에는 지전 몇 장 외에 네 모로 접은 하이얀 종이가 한 장 잡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무슨 결심을 한 듯이 입술을 악물고 그
종이를 채근 채근 펴들고 그 안에 쓰인 글을 읽었습니다. 나는 그 안에 무슨 글이 씌어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으나 어머니는 그 글을 읽으면서 금시에 얼굴이 파랬다 빨갰다 하고 그 종이를 든
손은 이제는 바들바들이 아니라 와들와들 떨리어서 그 종이가 부석부석 소리를 내이게
되었습니다.
 한참 후에 어머니는 그 종이를 아까 모양으로 네 모지게 접어서 돈과 함께 봉투에 도로 넣어
반짇그릇에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멀거니 앉아서 전등만 쳐다 보는데 어머니
가슴이 불룩불룩 합니다. 나는 어머니가 혹시 병이나 나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어서 얼른 가서
무릎에 안기면서,
 "엄마 잘까?"하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 뺨에 입을 맞추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입술이 어쩌면 그리도 뜨거운지요.
마치 볼에 달쿤 돌이 볼에 와 닿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자고 나서 잠이 채 깨지는 않았으나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어보니 어머니가
없었습니다. 가끔가다가 나는 그런 버릇이 있어요. 어렴풋한 정신으로 옆을 쓸면 어머니의
보드라운 살이 만져지지요. 그러면 다시 잠이 들어버리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자리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습니다. 그래서 잠은 다
달아나고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돌려 살펴보았습니다. 방에는 불은 안 켰지만 어슴푸레하게
밝습니다. 뜰로 하나 가득한 달빛이 방 안에까지 희미한 밝음을 던져주는 것이었습니다. 웃목을
보니 우리 아버지의 옷을 넣어두고 가끔 어머니가 꺼내서 쓸어보는 그 장농 문이 열려 있고 그
아래 방바닥에는 흰 옷이 한 무더기 널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농을 반쯤 기대고 자리
옷만 입은 어머니가 주춤하고 앉아서 고개를 위로 쳐들고 눈을 감고 무엇이라고 입술로 소곤소곤
외우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마 기도를 하나보다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어가서 어머니 무릎을 뻐개고 기어들어 갔습니다.
 "엄마 무얼 해?"
 어머니는 소곤거리기를 그치고 눈을 떠서 나를 한참이나 물끄러미 들여다 보십니다.
 "옥희야."
 "응?"
 "가서 자자."
 "엄마두 같이 자."
 그 목소리가 어째 싸늘하다고 내게 생각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옷들을 한 가지씩 들고는 가만히 손바닥으로 쓸어보고는 장농
안에 넣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쓸어보고는 장농에 넣고 하여 그 옷을 다 넣은 때 장농 문을
닫고 쇠를 채우고 나서 나를 안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엄마 우리 기도하고 자?"하고 나는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밤마다 재워줄 때마다 반드시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할 줄 아는 기도는 주기도문 뿐이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도
모르지만 어머니를 따라서 자꾸 자꾸 해보아서 지금에는 나도 주기도문을 잘 외웁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어젯밤 잘 때에는 어머니가 기도할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잤던 것이 지금 생각이 났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어젯밤 자리에 들 때, 내가
 "기도할까?"하고 말하고 싶었으나 어머니가 너무도 슬픈 빛을 띠고 있는고로 그만 나도 가만히
아무 소리없이 잠을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응, 기도하자."하고 어머니가 고요히 대답했습니다.
 "엄마가 기도해."하고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기도하는 보드라운 음성이 듣고 싶어져서
말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어머니는 고요히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름이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처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시험에 들지 말게...시험에 들지 말게..."
 이렇게 어머니는 자꾸 되풀이하였습니다. 나도 지금은 막히지 않고 줄줄 외는 기도문을 글쎄
어머니가 막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말게, 시험에 들지 말게..."하고 자꾸만 되풀이하는 것을 나는 참다 못해서, "엄마
내 마저 하께."하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하고,
내가 끝을 마치었습니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가만 있다가 오랜 후에야 겨우,
 "아멘."하고 속삭이었습니다.

   12

 요새 와서 어머니의 하는 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어떤 때는 어머님도 퍽
유쾌하셨습니다. 밤에 때로는 풍금도 타고 또 때로는 찬송가도 부르고 그러실 때에는 나도
너무나 좋아서 가만히 어머니 옆에 앉아서 듣습니다. 그러나 가끔가끔 그 독창은 소리 없는
울음으로 끝을 맺는 때가 많은데 그런때면 나도 따라서 울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나를 안고
내 얼굴에 돌아가면서 무수히 입을 맞추어 주면서,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응, 그렇지..."하시면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요일 날, 그렇지요, 그것은 유치원 방학하고 난 그 이튿날이었어요. 그 날 어머니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시다고 예배당을 그만두었습니다. 사랑에서는 아저씨도 어디 나가고 외삼촌도
어디 나가고 집에는 어머니와 나와 단둘이 있었는데 머리가 아프다고 누워 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나를 부르시더니,
 "옥희야, 너 아빠가 보고 싶니?"하고 물으십니다.
 "응, 우리두 아빠 하나 있으문."하고 나는 혀를 까불리고 어리광을 좀 부려가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 동안을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아니 하시고 천정만 바라다 보시더니,
 "옥희야, 옥희 아버지는 옥희가 세상에 나오기두 전에 돌아가셨단다. 옥희두 아빠가 없는 건
아니지. 그저 일찍 돌아가셨지. 옥희가 이제 아버지를 새로 또 가지면 세상이 욕을 한단다.
옥희는 아직 철이 없어서 모르지만 세상이 욕을 해. 옥희 아버지는 죽었는데 옥희는 아버지가 또
하나 생겼대, 참 망측두 하지, 이러구 세상이 욕을 한단다. 그리 되문 옥희는 언제나 손가락질
받구, 옥희는 커서 훌륭하게 되두, 얘 그까짓 화냥년의 딸, 이러구 남들이 욕을 한단다." 이렇게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시듯 뜨문뜨문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있더니,
 "옥희야."하고 또 부르십니다.
 "응?"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내 곁을 안 떠나지. 옥희는 언제나 언제나 엄마하구 같이 살지. 옥희
엄마는 늙어서 꼬부랑 할미가 되어두, 그래두 옥희는 같이 살지. 옥희가 유치원 졸업하구, 또
소학교 졸업하구, 또 중학교 졸업하구, 또 대학교 졸업하구, 옥희가 조선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되두 그래두 옥희는 엄마하구 같이 살지. 응! 옥희는 엄마를 얼만큼 사랑하나?"
 "이망큼."하고 나는 두 팔을 쫙 벌리어 뵈었습니다.
 "응? 얼망큼? 응! 그망큼! 언제나, 언제나 옥희는 엄마만 사랑하지. 그리구 공부도 잘 하구
그리구 훌륭한 사람 되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가 또 울까봐 겁이 나서,
 "엄마, 이망큼, 이망큼."하면서 두 팔을 쫙쫙 벌리었습니다.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습니다.
 "응, 그래, 옥희 엄마는 옥희 하나문 그뿐이야. 세상 다른 건 다 소용없어, 우리 옥희 하나문
그만이야. 그렇지 옥희야."
 "응!"
 어머니는 나를 당기어서 꼭 끼어 안고 내 가슴이 막혀들어 올 때까지 자꾸만 껴안아
주었습니다.
 그 날 밤 저녁밥 먹고 나니까 어머니는 나를 불러 앉히고 머리를 새로 빗겨주었습니다. 댕기도
새 댕기를 드려주고, 바지, 저고리, 치마 모두 새 것을 꺼내 입혀 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하고 물으니까.
 "아니."하고 웃음을 띠우면서 대답합니다. 그러더니 풍금 옆에서 새로 대린 하이얀 손수건을
내리워 내 손에 쥐어 주면서,
 "이 손수건, 저 사랑 아저씨 손수건인데, 이것 아저씨 갖다 드리구 와, 응, 오래 있지 말구
손수건만 갖다드리구 이내 와, 응."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수건을 들고 사랑으로 나가면서 나는 그 손수건 접이 속에 무슨 발각발각하는 종이가
들어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마는 그것을 펴 보지도 않고 그냥 갖다가 아저씨에게
주었습니다.
 아저씨는 방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손수건을 받는데 웬 일인지 아저씨는 이전처럼
나보고 빙그레 웃지도 않고 얼굴이 몹시 파래지었습니다. 그리고는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면서 말
한 마디 아니하고 그 수건을 받더군요.
 나는 어째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저씨 방에 들어가 앉지도 못하고 그냥 되돌아서 안방으로
들어 왔지요. 어머니는 풍금 앞에 앉아서 무엇을 그리 생각하는지 가만히 있더군요. 나는 풍금
옆으로 가서 가만히 그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는 조용조용히 풍금을 타십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야요. 밤이 늦도록 어머니는 풍금을
타셨습니다. 그 구슬프고 고즈넉한 곡조를 계속하고 또 계속하면서...

   13

 여러 밤을 자고 난 어떤 날 오후에 나는 오래간만에 아저씨 방엘 나가 보았더니, 아저씨가
짐을 싸느라고 분주하겠지요. 내가 아저씨에게 손수건을 갖다 드린 다음부터는 웬 일인지
아저씨는 나를 보아도 언제나 퍽 슬픈 사람, 무슨 근심이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는 고로 나도 그리 자주 놀러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랬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짐을 꾸리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아저씨, 어디 가우?"
 "응, 멀리루 간다."
 "언제?"
 "오늘 기차 타구?"
 "응, 기차 타구."
 "갔다가 언제 또 오우?"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없이 서랍에서 예쁜 인형을 하나 꺼내서 내게 주었습니다.
 "옥희, 이것 가져, 응. 옥희는 아저씨 가구나문 아저씨 이내 잊어버리구 말겠지!"
 나는 갑자기 슬퍼졌습니다. 그래서,
 "아니."하고 얼른 대답하고 인형을 안고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엄마 이것 봐. 아저씨가 이것 나 줬다우. 아저씨가 오늘 기차 타구 먼 데루 간대."하고 내가
말했으나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엄마, 아저씨 왜 가우?"
 "학교 방학했으니깐 가지."
 "어디루 가우?"
 "아저씨 집으로 가지 어디루 가."
 "갔다가 또 오우?"
 어머니는 대답이 없으십니다.
 "난 아저씨 가는 거 나쁘다."하고 입을 쫑깃 했으나 어머니는 그 말은 대답 않고,
 "옥희야 벽장에 가서 달걀 몇 알 남았나 보아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깡충깡충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달걀은 여섯 알이 있었습니다.
 "여스 알,"하고 소리쳤습니다.
 "응, 다 가지구 이리 나오너라."
 어머니는 그 달걀 여섯 알을 다 삶았습니다. 그 삶은 달걀 여섯 알을 손수건에 싸놓고 또
잔지에 소금을 싸서 한 귀퉁이에 넣었습니다.
 "옥희야, 너 이것 갖다 아저씨 드리구, 가시다가 찻간에서 잡수시랜다구, 응."

   14

 그날 오후에 아저씨가 떠나간 다음 나는 방에서 아저씨가 준 인형을 업고 자장자장 잠을
재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들어오시더니,
 "옥희야, 우리 뒷동산에 바람이나 쐬러 올라갈까?"하십니다.
 "응, 가, 가."하면서 나는 좋아하였습니다.
 잠깐 다녀 올 터니이 집을 보고 있으라고 외삼촌에게 일르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나섰습니다.
 "엄마 나 저 아저씨가 준 인형 가지구 가?"
 "그러렴."
 나는 인형을 안고 어머니 손목을 잡고 뒷동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뒷동산에 올라가면 정거장이
빤히 내려다 보입니다.
 "엄마 저 정거장 봐. 기차는 없군."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이 가만히 서 계십니다. 사르르 바람이 와서 어머니 모시 치마자락을
산들산들 흔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산 위에 가만히 서 있는 어머니는 다른 때보다도 더 한층
예쁘게 보였습니다.
 저-편 산모퉁이에서 기차가 나타났습니다.
 "아 저기 기차 온다."하고 나는 좋아서 소리쳤습니다. 기차는 정거장에 잠시 머물더니 금시에
'뻑'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움직였습니다.
 "기차 떠난다."하면서 나는 손뼉을 쳤습니다. 기차가 저 편 모퉁이 뒤로 사라질 때까지 그리고
그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하늘 위로 모두 흩어져 없어질 때까지 어머니는 가만히 서서 그것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뒷동산에서 내려오자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이때까지 뚜껑을 늘 열어 두었던 풍금
뚜껑을 닫으십디다. 그리고는 거기 쇠를 채우고 그 위에다가 이전 모양으로 반짇 그릇을 얹어
놓으십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있는 찬송가를 맥없이 들고 뒤적뒤적 하시더니 빼빼 마른
꽃송이를 그 갈피에 집어 내시고,
 "옥희야, 이것 내다 버려라."하고 그 마른 꽃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 꽃은 내가 유치원에서
갖다가 어머니께 드렸던 그 꽃입니다. 그러자 옆 대문이 삐걱하더니,
 "달걀 사소."하고 매일 오는 달걀 장수 노친네가 달걀 자배기를 이고 들어왔습니다.
 "인젠 우리 달걀 안 사요. 달걀 먹는 이가 없어요."하시는 어머니 목소리는 맥이 한 푼어치도
없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이 말씀에 놀라서 떼를 좀 써보려 했으나 석양에 빤히 비치는 어머니 얼굴을 볼
때 그 용기가 없어지구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저씨가 주신 인형 귀에다가 내 입을 갖다대고
가만히 속삭였습니다.
 "얘, 우리 엄마가 거즈뿌리 썩 잘하누나. 내가 달걀 좋아하는 줄 알문성 생 먹을 사람이
없대누나. 떼를 좀 쓰구 싶다만 우리 엄마 얼굴을 좀 봐라. 어찌문 저리두 새파래졌을까. 아마
어디가 아픈가 보다."라고요.

    최서해 (1901__1932)
 '빈궁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낳기도 한 그는, 1924년 10월 "조선문단"에 단편 "고국"이
추천을 받아 문단에 데뷔, 한국 문학사에 있어서 신경향파 문학의 대표작가로 손꼽힌다. 보통학교
삼학년도 미처 마치지 못한 것이 그의 신교육의 전부였지만, 춘원의 "무정"을 비롯하여 신소설,
구소설 할 것 없이 하나도 빼지 않고 밤을 새워가며 읽었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나뭇바리장수,
두부장수 등 다채로운 여러 가지 체험은 그의 창작 생활에 원천을 이룬 것은 물론이다. 그는
어느 작가보다도 가난에 대한 체험의 근거와 양식을 작품 속에 원자화시키고 있는 작가다. 또한
그 자신의 체험을 소재를 하여 생활의 참상을 부각시킨 "탈출기"는 빈곤과 기아를 자전적인
수법으로 그려냄으로써 문학적 가치를 한층 높여, 일약 문단의 총아가 되었다.

    탈출기
    "조선문단" 1925. 3.

   1

 김군! 수삼 차 편지는 반갑게 받았다. 그러나 한 번도 회답치 못하였다. 물론 군의 충정에는
나도 감사를 드리지만 그 충정을 나는 받을 수 없다.
 --박군! 나는 군의 탈가를 찬성할 수 없다. 음험한 이역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처자를 버리고
나선 군의 행동을 나는 찬성할 수 없다. 박군! 돌아가라.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 군의 부모와
처자가 이역 노두에서 방황하는 것을 나는 눈앞에 보는 듯싶다. 그네들의 의지할 곳은 오직 군의
품밖에 없다. 군은 그네들을 구하여야 할 것이다.
 군은 군의 가정에서 동량이다. 동량이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 조그마한 고통으로 집을 버리고
나선다는 것이 의지가 굳다는 박군으로서는 너무도 박약한 소위이다. 군은 XX단에 몸을 던져
X선에 섰다는 말을 일전 황군에게 듣기는 하였으나 그렇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시인할 수 없다.
가족을 못 살리는 힘으로 어찌 사회를 건지랴.
 박군! 나는 군이 돌아가기를 충정으로 바란다. 군의 가족이 사람들 발 아래서 짓밟히는 것을
생각할 때 군의 가슴인들 어찌 편하랴-
 김군! 군은 이러한 말을 편지마다 섰지? 나는 군의 뜻을 잘 알았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하여 동정하여 주는 군에게 어찌 감사치 않으랴? 정다운 벗의 충고에 나는 늘 울었다. 그러나
그 충고를 들을 수 없다. 듣지 않는 것이 군에게는 고통이 될는지? 분노가 될는지? 나에게
있어서는 행복일는지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김군! 나도 사람이다. 정애가 있는 사람이다. 나의 목숨 같은 내 가족이 유린 받는 것을 내
어찌 생각지 않으랴? 나의 고통을 제삼자로서는 만분의 일이라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의 탈가한 이유를 군에게 말하고자 한다. 여기에 대하여 동정과 비난은 군의
자유이다. 나는 다만 이러하다는 것을 군에게 알릴 뿐이다. 나는 이것을 군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충동을 받는 까닭이다.

   2

 김군! 내가 고향을 떠난 것은 오년 전이다. 이것은 군도 아는 사실이다. 나는 그때에 어머니와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 내가 고향을 떠나 간도로 간 것은 너무도 절박한 생활에 시든 몸에 새
힘을 얻을까 하여 새 희망을 품고 새 세계를 동경하여 떠난 것도 군이 아는 사실이다.
 --간도는 천부금탕이다. 기름진 땅이 흔하여 어디를 가든지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농사를
지으면
쌀도 흔할 것이다. 삼림이 많으니 나무 걱정도 될 것이 없다.
 농사를 지어서 배불리 먹고 뜨뜻이 지내자. 그리고 깨끗한 초가나 지어 놓고 글도 읽고 무지한
농민들을 가르쳐서 이상촌을 건설하리라. 이렇게 하면 간도의 황무지를 개척할 수 있다.
 이것도 간도 갈 때의 내 머리 속에 그리었던 이상이었다. 이때에 나는 얼마나 기뻤으랴!
두만강을 건너고 오랑캐령을 넘어서 망망한 평야와 산천을 바라볼 때 청춘의 내 가슴은 이상의
불길에 탔다. 구수한 내 소리와 헌헌한 내 행동에 어머니와 아내도 기뻐하였다. 오랑캐령을
올라서니 서북으로 쏠려 오는 봄 세찬 바람이 어떻게 빰을 갈기는지,
 "에그 춥구나! 여기는 아직도 겨울이구나."
 하고 어머니는 수레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섰다.
 "무얼요, 이 바람을 많이 마셔야 성공이 올 것입니다."
 나는 가장 씩씩하게 말하였다. 이처럼 나는 기쁘고 활기로웠다.

   3

 김군! 그러나 나의 이상은 물거픔으로 돌아갔다. 간도에 들어서서 한 달이 못 되어서부터
거칠은 물결은 우리 세 생령의 앞에 기탄없이 몰려왔다.
 나는 농사를 지으려고 밭을 구하였다. 빈 땅은 없었다. 돈을 주고 사기 전에는 한 평의
땅이나마 손에 넣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지나인의 밭을 도조나 타조로 얻어야 한다. 일 년
내 중국 사람에게서 양식을 꾸어 먹고 도조나 타조를 얻는대야 일 년 양식 빚도 못 될 것이고 또
나 같은 시로도(아마튜어)에게는 밭을 주지 않았다.
 생소한 산천이요, 생소한 사람들이니, 어디 가 어쩌면 좋을는지? 의논할 사람도 없었다. H라는
촌 거리에 셋방을 얻어 가지고 어름어름하는 새에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넘었다. 그새에 몇 푼
남았던 돈은 다 불려 먹고 밭은 고사하고 일자리도 못 얻었다. 나는 팔을 걷고 나섰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구들도 고쳐 주고 가마도 붙여 주었다. 이리하여 호구하게 되었다. 이 때H장에서는
나를 온돌장이(구들 고치는 사람)라고 불렀다. 갈아 입을 의복이 없는 나는 늘 숯검정이 꺼멓게
묻은 의복을 벗을 새가 없었다.
 H장은 좁은 곳이다. 구들 고치는 일도 늘 있지 않았다. 그것으로 밥먹기가 어려웠다. 나는 여름
불볕에 삯김도 매고 꼴도 베어 팔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는 삯방아 찧고 강가에 나가서
부스러진 나뭇개비를 주워서 겨우 연명하였다.
 김군! 나는 이때부터 비로소 무서운 인간고를 느꼈다. 아아, 인생이란 과연 이렇게도 괴로운
것인가, 하는 것을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나에게 닥치는 풍파 때문에 눈물 흘린 일은
이때까지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무를 줍고 젊은 아내가 삯방아를 찧을 때 나의 피는
끓었으며 나의 피는 끓었으며 나의 눈은 눈물에 흐려졌다.
 "에구, 차라리 내가 드러누워 앓고 있지, 네 괴로워 하는 꼴은 차마 못 보겠다."
 이것은 언제 내가 병들어 신음할 때에 어머니가 울면서 하신 말씀이다. 이것을 무심히 들었던
나는 이때에야 이 말의 참뜻을 느꼈다.
 '아아, 차라리 나의 고기가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내 눈앞에서 사랑하는
늙은 어머니와 아내가 배를 주리고 남의 멸시를 받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구나.'
 나는 이렇게 여러 번 가슴을 쳤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비 오나 바람이 치나 헤아리지 않고
삯김, 삯심부름, 삯나무,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았다.
 "오늘도 배고프겠구나, 아침도 변변히 못 먹고...나는 너 배 주리지 않는 것을 보았으면 죽어도
눈을 감겠다."
 내가 삯일을 하다가 늦게 돌아오면 어머니는 우실 듯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흔연하게,
 "배가 무슨 배가 고파요."
 하고 대답하였다.
 내 아내는 늘 별말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지 시키는대로 다소곳하고 아무 소리 없이
순종하였다. 나는 그것일 더욱 불쌍하게 생각된다.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내 보기가 퍽
부끄러웠다.
 '경제의 자립도 못 되는 내가 왜 장가를 들었누?'
 이것이 부모의 한 일이었지만 나는 이렇게도 탄식하였다. 그럴수록 아내에게 대하여
황공하였고 존경하였다.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이러한 생각은 이때 내 머리를 몹시 때렸다. 이때 나에게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온다, 하는 말이 거짓말로 생각되었다. 그 말을 지상의 격언으로 굳게 믿어 온 나는
그 말에 도리어 일종의 의심을 품게 되었고 나중은 부인까지 하게 되었다.
 부지런하다면 이때 우리처럼 부지런함이 어디 있으며 정직하다면 이때 우리 식구같이 정직함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빈곤은 날로 심하였다. 이틀 사흘 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 번은
이틀이나 굶고 일자리를 찾다가 집으로 들어가 보니 부엌 앞에서 아내가(아내는 이때에 아이를
배어서 배가 남산하였다) 무엇을 먹다가 깜짝 놀랐다. 그리고 손에 쥐었던 것을 얼른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이때 불쾌한 감정이 내 가슴에 떠올랐다.
 '...무얼 먹을까? 어디서 무엇을 얻었을까? 무엇이길래 어머니와 나 몰래 먹누? 아! 여편네란
그런 것이로구나! 아니 그러나 설마...그래도 무엇을 먹던데...'
 나는 이렇게 아내를 의심도 하고 원망도 하고 밉게도 생각하였다. 아내는 아무런 말 없이
어색하게 머리를 숙이고 앉아 씩씩하다가 밖으로 나간다. 그 얼굴은 좀 붉었다.
 아내가 나간 뒤에 나는 아내가 먹다 던진 것을 찾으려고 아궁이를 뒤지었다. 싸늘하게 식은
재를 막대기에 뒤져 내니 벌건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을 집었다. 그것은 귤껍질이다.
거기는 베먹은 잇자국이 났다. 귤껍질을 쥔 나의 손은 떨리고 잇자국을 보는 내 눈에는 눈물이
괴었다.
 김군! 이때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적당할까?
 --오죽 먹고 싶었으면 길바닥에 내던진 귤껍질을 주워 먹을까, 더욱 몸비잖은 그가! 아아, 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한 아내를 나는 의심하였구나! 이놈이 어찌하여 그러한 아내에게 불평을
품었는가. 나 같은 잔악한 놈이 어디 있으랴. 내가 양심이 부끄러워서 무슨 면목으로 아내를
볼까?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느껴가며 눈물을 흘렸다. 귤껍질을 쥔 채로 이를 악물고 울었다.
 "야, 어째서 우느냐? 일어나거나. 우리도 살 때 있겠지, 늘 이러겠느냐."하면서 누가 어깨를
친다. 나는 그것이 어머니인 것을 알았다.
 '아이구 어머니, 나는 불효외다.' 하면서 어머니의 팔을 안고 자꾸자꾸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소리없이 가슴을 부둥켜안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왜 우노? 울기만 하면 무엇하나? 살자! 살자! 어떻게든지 살아 보자! 내 어머니와 내
아내도 살아야 하겠다. 이 목숨이 있을 때까지는 벌어 보자!'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눈물은 여전히 흘렀다. 아내는 말없이 울고 섰는 내
곁에 와서 손으로 치마끈을 만적거리며 눈물을 떨어뜨린다 농사집에서 자라난 아내는 지금도
어찌 수줍은지 내가 울면 같이 울기는 하여도 어떻게 말로 위로할 줄은 모른다.

   4

 김군! 세월은 우리를 위하여 여름을 항시 주지는 않았다.
 서풍이 불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찬 기운은 벗은 우리를 위협하였다. 가을부터 나는
대구어 장사를 하였다. 삼원을 주고 대구 열 마리를 사서 등에 지고 산골로 다니면서 콩과
바꾸었다. 난 대구 열 마리는 등에 질 수 있었으나 대구 열 마리를 주고 받은 콩 엶 말은 질 수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삼사십 리나 되는 곳에서 두 말씩 두 말씩 사흘 동안이나 져 왔다.
우리는 열 말 되는 콩을 자본 삼아 두부 장사를 시작하였다.
 아내와 나는 진종일 맷돌질을 하였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내가 이렇게 괴로울 적에 해산한 지 며칠 안 되는 아내의 고로움야 어떠하였으랴? 그는 늘
낯이 부석부석하였다. 그래도 나는 무슨 불평이 있는 때면 아내를 욕하였다. 그러나 욕한 뒤에는
곧 후회하였었다. 콧구멍만한 부엌방에 가마를 걸고 맷돌을 놓고 나무를 들이고 의복 가지를
걸고 하면 사람은 겨우 비비고 들어앉게 된다. 뜬 김에 문창은 떨어지고 벽은 눅눅하다. 모든
것이 후질근하여 의복을 입은 채 미지근한 물속에 들어앉은 듯하였다. 어떤 때는 애써 갈아 놓은
비지가 이 뜬 김 속에서 쉬어 버렸다. 두부물이 가마에서 몹시 끓어 번질 때에 우유빛 같은
두부물 위에 버터빛 같은 노란 기름이 엉기면 그것은 두부가 잘 될 징조다. 우리는 안심한다.
그러나 두부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굴러 가기 시작한다. 초를 쳐 보아서 두부발이 서지 않게 매캐지근하게 풀려질 때에는 우리의
가슴은 덜컥 한다.
 "또 쉰 게로구나! 저를 어찌누?"
 젖을 달라구 빽빽 우는 어린아이를 안고 서서 두부물만 들여다보시는 어머니는 목매인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다. 이렇게 되면 온 집안은 신산하여 말할 수 없는 울음, 비통, 처참, 소조한
분위기에 싸인다.
 "너 고생한 게 애닮구나! 팔이 부러지게 갈아서...그거(두부)를 팔아서 장을 보려고 태산같이
바랬더니..."
 어머니는 그저 가슴을 뜯으면서 우신다. 아내도 울듯 울듯 머리를 숙인다. 그 두부를 판대야 큰
돈은 못 된다. 기껏 남는대야 이십 전이나 삼십 전이다. 그것으로 우리 호구를 한다. 이십 전이나
삼십 전에 어머니는 운다. 아내도 기운이 준다. 나까지 가슴이 바짝바짝 조인다.
 그날은 하는 수 없이 순 두부물로 때를 메우고 지낸다. 아이는 젖을 달라고 밤새껏 빽빽거린다.
우리의 살림에 어린애도 귀치는 않았다.

   5

 울면서 겨자 먹기로 괴로운 대로 또 두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번에는 땔나무가
없다. 나는 낫을 들고 떠난다. 내가 낫을 들고 떠나면 산후 여독으로 신음하는 아내도 낫을 들고
말 없이 나를 따라 나선다. 어머니와 나는 굳이 만류하나 아내는 듣지 않는다. 내 손으로 하는
나무이언만 마음 놓고는 못한다. 산 임자에게 들키면 여간한 경을 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황혼이면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지고 밤이 깊어서 돌아온다. 아내는 이고 나는 지고 캄캄한
밤에 산비탈로 내려오다가 발이 미끄러지거나 돌에 채이면 곤두박질을 하여 나뭇짐 속에 든다.
아내는 소리없이 이었던 나무를 내려놓고 나뭇짐에 눌려서 버둑거리는 나를 겨우 끄집어
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나뭇짐을 지고 일어나면 아내는 혼자 나뭇짐을 이지 못한다. 또 내가
나뭇짐을 벗고 아내에게 이어주면 나는 추어 주는 이 없이는 나뭇짐을 질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어떤 높은 바위에 벗어 놓고 아내에게 이어준다. 이리하여 산비탈을 내려오면 언제
왔는지 어머니는 애를 업고 우들우들 떨면서 산 아래서 기다리다가도,
 "인제 오니? 나는 너 또 붙들리지나 않는가 하여 혼이 났다."하신다. 이때마다 내 가슴은
저렸다. 나는 이렇게 나무를 하다가 중국 경찰서까지 잡혀가서 여러번 맞았다.
 이때 이웃에서는 우리를 조소하고 경찰에서는 우리를 의심하였다.
 --흥, 신수가 멀쩡한 연놈들이 그 꼴이야, 어디 가 일자리도 구하지 않고 그 눈이 누래서 두부
장사 하는 꼬락서니는 참 더러워서 못 보겠네. X알을 달고 나서 그러게야 살리?-
 이것은 이웃 남녀가 비웃는 소리였다. 그리고 어떤 산 임자가 나무 잃고 고발을 하면
경찰서에서는 불문곡직하고 우리 집부터 수색하고 질문하면서 나를 때린다. 그러나 나는 호소할
곳이 없다.

   6

 김군! 이러구러 겨울은 점점 깊어 가고 기한은 점점 박두하였다. 일자리는 없고...그렇다고 손을
털고 앉았을 수도 없었다. 시퍼런 칼이라도 들고 하루라도 괴로운 생을 모면하도록 쿡쿡 찔러
없애고 나까지 없어지든지, 나가서 강도질이라도 하여서 기한을 면하든지 하는 수밖에 더 도리가
없게 절박하였다.
 나는 일이 없으면 없느니만큼, 고통이 닥치면 닥치느니만큼 내 번민은 크다. 나는 어떤 날은
거의 얼빠진 사람처럼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일도 있었다. 이때 머리속에서는 머리를
움실움실 드는 사상이 있었다.
 '오늘날에 생각하면 그것은 나의 전 운명을 결정할 사상이었다.'
 그 생각은 누구의 가르침에 의해 일어난 것도 아니려니와 일부러 일으키려고 애써서 일어난
것도 아니다. 봄 풀싹같이 내 머리속에서 점점 머리를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세상에 대하여 충실하였다. 어디까지든지 충실하려고 하였다. 내 어머니, 내
아내까지도 뼈가 부서지고 고기가 찢기더라도 충실한 노력으로써 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를 속였다. 우리의 충실을 받지 않았다. 도리어 충실한 우리를 모욕하고 멸시하고
학대하였다.
 우리는 여태까지 속아 살았다. 포악하고 허위스럽고 요사한 무리를 용납하고 옹호하는 세상인
것을 참으로 몰랐다. 우리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치 못하였을 것이다.
그네들은 그러한 세상의 분위기에 취하였었다. 나도 이때까지 취하였었다. 우리는 우리로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어떤 험악한 제도의 희생자로서 살아왔었다-
 김군! 나는 사람들을 원망치 않는다. 그러나 마주에 취하여 자기의 피를 짜 바치면서도 깨지
못하는 사람을 그저 볼 수 없다. 허위와 요사와 표독과 게으른 자를 옹호하고 용납하는 이
제도는 더욱 그저 둘 수 없다.
 --이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노력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생의 만족을 느낄 날이 없을 것이다
어찌하여 겨우 연명을 한다 하더라도 죽지 못하는 삶이 될 것이요, 그 영향은 자식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나는 어미 품속에서 빽빽하는 어린것의 장래를 생각할 때면 애잡짤한 감정과 분함을
금할 수 없다. 내가 늘 이 상태면(그것은 거의 정한 이치다) 그에게는 상당한 교양은 고사하고,
다리밑이나 남의 집 문간에 버리게 될 터이니, 아! 삶을 받을 만한 생명을 죄없이 찌그러지게
하는 것이 어찌 애달프지 않으랴? 그렇다면 그것을 나의 죄라 할까?
 김군! 나는 더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나부터 살려고 한다. 이때까지는 최면술에 걸린
송장이었다. 제가 죽은 송장으로 남(식구)들을 어찌 살리랴. 그러려면 나는 나에게 최면술을
걸려는 무리들, 험악한 이 공기의 원류를 쳐부수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생의 충동이며 확충이라고 본다. 나는 여기서 무상의 법열을 느끼려고
한다. 아니 벌써부터 느껴진다. 이 사상이 나로 하여금 집을 탈출케 하였으며, XX단에 가입케
하였으며, 비바람 밤낮을 헤아리지 않고 벼랑 끝보다 더 험한 선에 서게 한 것이다.
 김군! 거듭 말한다. 나도 사람이다. 양심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떠나는 날부터 식구들은 더욱
곤경에 들 줄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이곳에서도 남의 집 행랑어멈이나 아범이며, 노두에
방황하는 거지를 무심히 보지 않는다.
 아! 나의 식구도 그럴 것을 생각할 때면 자연히 흐르는 눈물과 뿌직뿌직 찢기는 가슴을 덮쳐
잡는다.
 그러나 나는 이를 갈고 주먹을 쥔다. 눈물을 아니 흘리려고 하며 비애에 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울기에는 너무도 때가 늦었으며, 비애에 상하는 것은 우리의 박약을 너무도 표시하는 듯싶다.
어떠한 고통이든지 참고 분투하려고 한다.
 김군! 이것이 나의 탈가한 이유를 대략 적은 것이다. 나는 나의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내
식에게 편지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네가 죽어도, 내가 또 죽어도...
 나는 이러다가 성공 없이 죽는다 하더라도 원한이 없겠다. 이 시대, 이 민중의 의무를 이행한
까닭이다.
 아아, 김군아! 말을 다 하였으나 정은 그저 가슴에 넘치누나!

    계용묵(1904__1961)
 그가 작품활동을 개시한 것은 1925년부터였다. 자아청년이란 익명으로 "조선문단"에 "상환"을
발표했고, 본명으로는 "최서방"(1927년 3월 "조선문단")으로부터였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
작품활동을 시작한 건 1935년 5월 그의 대표작인 "백치 아다다"(조선문단)를
발표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당시의 빈궁 문학의 영향을 받아 경향파에 속하는
작품을 발표했으나 "백치 아다다"를 발표한 후부터는 전혀 다른 작품성으로,
순수문학으로 변모하여 인생파적, 예술파적 작품 세계에로 고정시켰다. 구성에 있어서의
그의 작품은 낭만적인 기풍이 많다. 기교를 극도로 존중, 글자 하나하나에 생명력을
불어 넣으려는 고심가이다. 또 짧으면 짧을수록 정교한 맛이 나는 것이 그의 작품적
특색으로 되어 있다. "백치 아다다"는 인간의 가치기준이 물질이 아니고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병풍에 그린 닭이", "붕우도" 등의 작품이 있다.

    백치 아다다
    "조선문단" 1935. 5.

 질그릇이 땅에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고 들렸는데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부엌에 쥐가 들었나? 샛문을 열어 보려니까,
 "아 아 아이 아아 아야..."하는 소리가 뒤란 켠으로 들려온다. 샛문을 열려던 박씨는 뒷문을
밀었다.
 장독대 밑 비슴듬한 견 아래 아다다가 입을 해 벌리고 납작하니 엎더져 두다리만을 힘 없이
버지럭거리고 있다. 그리고 머리 편으로 한 발쯤 나가선 깨어진 동이 조각이 질서없이
너저분하게 된장 속에 묻혀 있다.
 "아이구테나! 무슨 소린가 했더니! 이년이 동애를 또 잡았구나! 이년아 너더러 된장 푸래든!
푸래?"
 어머니는 딸이 어딘가 다쳤는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파하는 데 가는 동정심보다 깨어진
동이만이 아깝게 눈에 보였던 것이다.
 "어 어마! 아다아다 아다 아다..."
 모닥불을 뒤집어 쓰는 듯한 끔찍한 어머니의 음성을 또다시 듣게 되는 아다다는 겁에 질려
얼굴에 시퍼런 물이 들며 넘어진 연유를 말하여 용서를 빌려는 기색이나, 말이 되지를 않아
안타까워한다.
 아다다는 벙어리였던 것이다. 말을 하렬 때는 한다는 것이 아다다 소리만이 연거푸 나왔다.
어찌어찌 가다가 말이 한 마디씩 제법 되어 나오는 적도 있었으나, 그것은 쉬운 말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것을 조롱 삼아 확실이라는 뚜렷한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를 부르는
이름은 아다다였다. 그리하여 이것이 자연히 이름으로 굳어져 그 부모네까지도 그렇게 부르게
되었거니와, 그 자신조차도 '아다다!'하고 부르면 마땅히 들을 이름인 듯이 대답을 했다.
 "이년까타나 끌이 세누나! 시켠엘 못 가갔으문 오늘은 어드메든디 나가서 뒈디고 말아라
이년아! 이년아! 이년아!"
 어머니는 눈알을 가로 세워 날카롭게도 흰자위만으로 흘기며 성큼 문턱을 넘어선다.
 아다다는 어머니의 손길이 또 자기의 끌채를 감아 쥘 것을 연상하고 몸을 겨우 뒤재비꼬아
일어서서 절룩절룩 굴뚝 모퉁이로 피해 가며 어쩔 줄을 모르고 일변 고개를 좌우로 돌려 살피며
아연하게도
 "아다 어 어마! 아다 어마! 아다다다다다!"하고 부르짖는다. 다시는 일을 아니 저지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한 번만 용서를 하여 달라는 듯 싶게.
 그러나, 사정 모르는 체 기어코 쫓아간 어머니는,
 "이년! 어서 뒈데라. 뒈디기 싫건 시집으로 당장 가가라. 못가간?..."
 그리고 주먹을 귀 뒤에 넌지시 얼메고 마주 선다.
 순간, 주먹이 떨어지면? 하는 두려운 생각에 오싹하고 끼치는 소름이 튀해 논 닭같이 전신에
돋아나는 두드러기를 느끼는 찰나, '턱'하고 마침내 떨어지는 주먹은 어느새 끌채를 감아쥐고
갈짓자로 흔들어 댄다.
 "아다 어어 어마! 아 아고 어 어마!"
 아다다는 떨며 빌며 손을 몬다.
 그러나 소용이 없다. 한 번 손을 댄 어머니는 그저 죽어 싸다는 듯이 자꾸만 흔들어 댄다.
하니, 그렇지 않아도 가꾸지 못한 텁수룩한 머리는 물결처럼 흔들리며 구름같이 피어나선
얼크러진다.
 그래도, 아다다는 그저 빌 뿐이요, 조금도 반항하려고는 않는다. 이런 일은 거의 날마다
지내보는 것이기 때문에 한대야 그것은 도리어 매까지 사는 것이 됨을 아는 것이다. 집의 일이
아무리 꼬여 돌아가더라도 나 모르는 체 손 싸매고 들어앉았으면 오히려 이런 봉변을 아니 당할
것이, 가만히 앉았지는 못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천치에 가까운 그의 성격은 무엇엔지 힘에 부치는 노력이 있어야 만족을
얻는 듯 했다. 시키건, 안 시키건, 헐하나 힘차나 가리는 법이 없이 하여야 될 일로 눈에 띄기만
하면 몸을 아끼는 일이 없이 하는 것이 그였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고된 일을 실로 아다다가
혼자서 치워 놓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이 반갑지 않았다. 둔한 지혜로 차비없이 뼈가 부러지도록 몸을 돌보지
않고, 일종 모험에 가까운 짓을 하게 되므로 그 반면에 따라는 실수가 되려 일을 저질러 놓게
되어 그릇 같은 것을 깨쳐먹는 일은 거의 날마다 있다 하여도 옳을 정도로 있었다.
 그래도 아다다의 힘을 빌지 않고는 집안 일을 못 치겠다면 모르지만 그는 참예를 하지 않아도
행랑에서 차근차근히 다 해 줄 일을 쓸데없이 가로맡아선 일을 저질러 놓고 마는 데 그 어머니는
속이 상했다.
 본시 시집을 보내기 전에도 그 버릇은 지금이나 다름이 없이, 벙어리인 데다 행동까지
그러하였으므로 내용 아는 인근에서는 그를 얻어 가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열 아홉
고개를 넘기도록 처묻어 두고, 속을 태우다 못해 깃으로 논 한 섬지기를 처넣어 똥 치듯 치워
버렸던 것이 그만 오 년이 말다 다시 쫓겨와 시집에는 아예 갈 생각도 아니하고 하루 같은
심화를 올렸다. 그래서 어머니는 역겨운 마음에 아다다가 실수를 할 때마다 주릿대를 내리고
참예를 말라건만 그는 참는다는 것이 그 당시 뿐이요, 남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속이 쏘는 듯이
슬그머니 나와서 곁을 슬슬 돌다가는 손을 대고 만다.
 바로 사흘 전엔가도 무명뉨을 할 때 활짝 달은 솥뚜껑을 차비없이 맨손으로 열다가 뜨거움을
참지 못해 되는 대로 집어 엎는 바람에 자배기를 하나 깨쳐서 욕과 매를 한 모태 겪고 났지만
어젯저녁 행랑 색시더러 오늘은 묵은 된장을 옮겨 담아야 되겠다고 이르는 말을 어느 겨를에
들었든지 아다다는 아침밥이 끝나자 어느새 나가서 혼자 된장을 퍼 나르다가 그만 또 실수를 한
것이었다.
 "못 가간? 시집이! 못 가간? 이년! 못 가갔음 죽어라!"
 붙잡았던 머리를 힘차게 휘 두르며 밀치는 바람에 손에 감겼던 머리카락이 끊어지는지
빠지는지 무뚝 묻어나며 아다다는 비칠비칠 서너 걸음 물러난다.
 순간, 어찔해진 아다다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써 버지럭거리며 삐치는 다리에 겨우 진정을
얻어 세우자,
 "아다 어마! 아다! 어마 아다! 아다!"하고, 다시 달려들 듯이 눈을 흘기고 섰는 어머니를 향하여
눈물 글썽한 눈을 끔벅 한 번 감아 보이고, 그리고 북쪽을 손가락질하여 어머니의 말대로
시집으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어라도 버리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주억이며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르고 허청허청 대문 밖으로 몸을 이끌어 냈다.
 나오기는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아다다는 마당 귀를 돌아서선 발길을 더 내놓지 못하고 우뚝
섰다.
 시집으로 간다고는 하였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의 매는 어머니의 그것보다 무섭다.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나? 이번에는 외상 없는 매가 떨어질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곳 없는
갈 곳을 짜보니 눈물이 주는 위로밖에 쓸데 없는 오 년 전 그 시집이 참을 수 없이 그립다.
 --추울세라, 더울세라, 힘이 들까, 고단할까, 알뜰살뜰히 어루만져 주던 시부모, 밤이면 품속에
꼭 껴안아 피로를 풀어 주던 남편, 아! 얼마나 시집에서는 자기를 위하여 정성을 다하던 것이고-
 참으로 아다다가 처음 시집을 가서의 오 년 동안은 온 집안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단 것이
사실이다.
 벙어리라는 조건이 귀에 들어맞는 것은 아니었으나, 돈으로 아내를 사지 아니하고는 얻어볼 수
없는 처지에서 스물 여덟 살에 아직 장가를 못 들고 있는 신세로 목구멍조차 치기 어려운
형세이었으므로 아내를 얻게 되기의 여유를 기다리기까지에는 너무도 막연한 앞날이었다.
벙어리이나 일생을 먹여 줄 것까지 가지고 온다는 데 귀가 번쩍 띄어 그 자리를 앗기울까 두렵게
혼사를 지었던 것이니, 그로 의해서 먹고 살게 되는 시집에서는 아다다를 아니 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가운데 또한 아다다는 못하는 일이 없이 일 잘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듣고, 조금도
말썽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생활고가 주는 역겨움이 쓸데없이 서로 눈독을 짓게 하여
불쾌한 말만으로 큰소리가 끊일 새 없이 오고 가던 가족은 일시에 봄비를 맞은 동산같이 화락의
웃음에 꽃이 피었다.
 원래, 바른 사람이 못 되는 아다다에게는 실수가 없는 것이 아니었으나, 그로 의해서 밥을 먹게
된 시집에서는 조금도 역겹게 안 여겼고, 되려 위로를 하고 허물을 감추기에 서로 힘을 썼다.
 여기에 아다다가 비로소 인생의 행복을 느끼며, 시집 가기 전 지난 날 어머니 아버지가
쓸데없는 자식이라는 구실 밑에, 아니, 되려 가문을 더럽히는 악화자식이라고 사람으로서의
푼수에도 넣어주지 않고 박대하던 일을 생각하여 어머니 아버지를 원망하는 나머지 명절 목이나
제향 때이면 시집에서는 그렇게도 가 보라는 친정이었건만 이를 악물고 가지 않고, 행복 속에
묻혀 살던 지나간 그 날이 아니 그리울 수가 없을 게다.
 그러나 그 날은 안타깝게도 다시 못 올 영원한 꿈속에 흘러가고 말았다.
 해를 거듭하며 생활의 밑바닥에 깔아 놓았던 한 섬지기라는 거금이 차츰 그들을 여유한 생활로
이끌어, 몇 백 원 돈이 눈앞에 굴게 되니, 까닭없이 남편 되는 사람은 벙어리로서의 아내가
미워졌다.
 조그만 실수가 있어도 눈을 흘겼다. 그리고 매를 내렸다. 이 사실을 아는 아버지는 그것은
들어오는 복을 차버리는 짓이라고 타이르나 듣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자간에 충돌이 때로는
일어났다. 이럴 때마다 아버지에게 감히 하고 싶은 행동을 못하는 아들은 그 분을 아내에게로
돌려 풀기가 일쑤였다.
 "이년 보기 싫다! 네 집으로 가거라."
 그리고 다음에 따르는 것은 매였다. 그러나 아다다는 참아가며 아내로서의, 그리고 며느리로서,
임무를 다했다.
 이것이 시부모로 하여금 더욱 아다다를 귀엽게 만드는 것이어서 아버지에게서는 움직일 수
없는 며느리인 것을 깨닫게 된 아들은 가정적으로 불만을 느끼어 한해의 농사를 지은 추수를
온통 팔아가지고 집을 떠나 마음의 위안을 찾아 주색에 돈을 다 탕진하고 물거품같이 미려
돌다가 동무들과 짝지어 안동현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이 투기적 도시에 물젖어 노동의 힘으로 본전을 얻어선 '양호'와 '은떼루'에 투기하여
황금을 꿈꾸어 오던 것이 기적적으로 맞아나기 시작하여 이태만에는 이만 원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고 완전한 아내로서의 알뜰한 사랑에 주렸던 그는 돈에 따르는 무수한 여자 가운데서 마음대로
흡족히 골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새로운 살림을 꿈꾸는 일변 새로이 가옥을 건축함과 동시에 아다다를 학대함이 전에
비할 정도가 아니었다. 이에는 그 아버지도 명민하고 인자한 남부끄럽지 않은 새며느리에게
마음이 쏠리는 나머지, 이미 생활은 걱정이 없이 되었으니, 아다다의 것으로서가 아니라도 유족할
앞날의 생활을 내다볼 때 아들로서의 아다다에게 대하는 태도는 소모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시부모의 눈에서까지 벗어나게 된 아다다는 호소할 곳조차 없는 사정에 눈감은
남편의 매를 견디다 못해 집으로 쫓겨오게 되었던 것이니, 생각만 하여도 옛 맷자리가 아픈 그
시집은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찾아갈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게 되니 그것보다는 좀 헐할망정 어머니의 매도 결코 견디기에 족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날마다 더 심해만 왔다. 오늘도 조그만 반항이 있었던들, 어김없이 매는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로 가나?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야 그저 이 세상에서는 수롱이네 집밖에 또 찾아갈
곳은 없었다.
 수롱은 부모 동생조차 없는 삼십이 넘은 총각으로 누구보다도 자기를 사랑하여 준다고 믿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쫓기어 날 때마다 그를 찾아가선 마음의 위안을 얻어 오던 것이다.
 아다다는 문득 발걸음을 떼어 아지랑이 얼른거리는 마을 끝 산 턱 아래 떨어져 박힌 한 채의
오막살이를 향하여 마당 어귀를 꺾어 돌았다.
 수롱은 벌써 일 년 전부터 아다다를 꾀어 왔다. 시집에서까지 쫓겨난 벙어리였으나, 김초시의
딸이라, 스스로도 낮추어 보여지는 자신으로서는 거연히 염을 내지 못하고 뜻있는 마음을 속으로
꾸며가며 눈치를 보아 오던 것이, 눈치에서보다는 베풀어진 동정이 마침내 아다다의 마음을 사게
된 것이었다.
 아이들은 아다다를 보기만 하면 따라다니며 놀렸다. 아니, 어른들까지라도 '아다다, 아다다'하고
골을 올려서, 분하나 말을 못하고 이상한 시늉을 하며 투덜거리는 것을 봄으로 행복을 느끼는
듯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래서 아다다는 사람을 싫어하였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의 욕과 매, 밖에 나오면 뭇 사람들의
놀림, 그러나 수롱이만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따라다닐 때에도 남 아니 말려
주는 것을 그는 말려 주고, 그리고 매에 터질 듯한 심정을 풀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다다는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수롱을 생각해 오던 것이 얼마 전부터는
찾아다니게까지 되어 동네의 눈치에도 어느덧 오른 지 오랬다.
 그러나 아다다의 집에서도 그 아버지만이 지체를 가지기 위하여 깔맵게 아다다의 행동을
경계하는 듯하고 그 어머니는 도리어 수롱이와 배가 맞아서 자기의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고
어디로든지 달아났으면 하는 눈치를 알게 된 수롱이는 지금에 와서는 어느 정도까지
내어놓다시피 그를 사귀어 돈다.
 아다다는 제 집이나처럼 서슴지도 않고 달리어 오자마자 수롱이네 집문을 벌컥 열었다.
 "아, 아다다!"
 수롱은 의외에 벌떡 일어섰다.
 "너 또 울었구나." 울었다는 것이 창피하긴 하였으나, 숨길 차비가 아니다. 호소할 길 없는 가슴
속에 꽉 찬 설움은 수롱이의 따뜻한 위무가 어떻게도 그리웠는지 모른다.
 방 안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쫓기어 난 이유를 언제나 같이 낱낱이 고했다.
 "그러기 이젠 아야 다시는 집으로 가지 말구 나하구 둘이서 살아, 응?"
 그리고 수롱은 의미있는 웃음을 벙긋벙긋 웃으며, 아다다의 등을 척척 두드려 달랬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던지 자기의 것을 영원히 만들고 싶은 생각에 불탔던 것이다.
 그러나 아다다는,
 "아다 무 무서! 아바 무 무서! 아다 아다다다!"하고, 그렇게 한다면 큰일난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뜬다. 집에서 학대를 받고 있느니보다는 수롱의 사랑 밑에서 살았으면 오죽이나
행복되냐! 다시 집으로는 아니 들어가리라는 생각이 없었던 바도 아니었으나 정작 이런 말을
듣고 보니, 무엇엔지 차마 허하지 못할 것이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은지라, 눈을 부릅뜨고
수롱이한테 다니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이 연상될 때 어떻게도 그 말은 엄한 것이었다.
 "우리 둘이 달아났음 그만이지 무섭긴 뭐이 무서워..."
 아다다는 대답이 없다.
 딴은 그렇기도 한 것이다. 당장 쫓기어 난 몸이 갈 곳이 어딘고? 다시 생각을 더듬어 볼 때
어머니의 매는 아버지의 그 눈총보다도 몇 배나 더한 두려움으로 견딜 수 없이 아픈 것이다.
먼저 한 말이 금시 후회스러웠다.
 "안 그래? 무서울 게 뭐야. 이젠 아예 가지 말구 나하구 있어, 응?"
 "응, 아다 이 있어, 아다 아다."하고, 아다다는 다시 있자는 말이 나오기나 기다렸던 듯이,
그리고 살 길을 찾았다는 듯이 한숨과 같이 빙긋 웃으며 있겠다는 뜻을 명백히 보이기 위하여
고개를 주억이며 삿바닥을 손으로 툭툭 두드려 보인다.
 "그렇지 그래, 정 있으야돼, 응?"
 "응, 이서 이서 아다 아다..."
 "정말이야?"
 "으, 응 저 정 아다 아다..."
 단단히 강문을 받고 난 수롱이는 은근히 솟아나는 미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벙어리인 아다다가 흡족할 이치는 없었지만 돈으로 사지 아니하고는 아내라는 것을 얻어 볼 수
없는 처지였다. 그저 생기는 아내는 벙어리였어도 족했다. 그저 일이나 도와 주고, 아들 딸이나
낳아 주었으면 자기는 게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내를 얻으려고 십 여년 동안을 불피풍우
품을 팔아 궤 속에 꽁꽁 묶어둔 일백 오십 원이란 돈이 지금에 와서는 아내 하나를 얻기에 그리
부족할 것은 아니나, 장가를 들지 아니하고 아다다를 꾀어온 이유도 아다다를 꾀이므로 돈을
남겨서 그 돈으로 가정의 마루를 얹자는 데서였던 것이다. 이제 계획이 은근히 성공에
가까워옴에 자기도 남과 같이 가정을 이루어 보누나 하니 바라지 못하였던 인생의 행복이
자기에게도 찾아오는 것 같았다.
 "우리 아다다." 수롱이는 아다다의 등에 손을 얹으며 빙그레 웃었다.
 "아다 다다."
 아다다도 만족한 듯이 히쭉 입이 벌어졌다.
 그날 밤은 수롱의 품안에서 자고난 아다다는 이미 수롱의 아내 되기에 수줍음조차 잊었다.
아니, 집에서 자기를 받들어 들인다 하더라도 수롱을 떨어져서는 살 수 없을이만큼 마음은
굳어졌다. 수롱이가 주는 사랑은 이 세상에서는 더 찾을 수 없는 행복이리라 느끼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이 자리에 그대로 박여서는 누릴 수 없을 것이 다음에 남은
근심이었다. 수롱이와 같이 삶에는 첫째 아버지가 허하지 않을 것이요, 동네 사람도 부끄럽지
않은 노릇이 아니다. 이것은 수롱이도 짐짓 근심이었다. 밤이 깊도록 의논을 하여 보았으나
동네를 피하여 낯모르는 곳으로 감쪽같이 달아나는 수밖에는 다른 묘책이 없었다.
 예식없는 가약을 그들은 서로 맹세하고 그날 새벽으로 그 마을을 떠나 신미도라는 섬으로
흘러가서 그곳에 안주를 정하였다. 그러나 생소한 곳이므로 직업을 찾을 길이 없었다. 고기를
잡아머고 사는 섬이라 뱃노름을 하는 것이 제길이었으나, 이것은 아다다가 한사코 말렸다. 몇
해전에 자기 동네에서도 농토를 잃은 몇몇 사람이 이 섬으로 들어와 첫배를 타다가 그만 풍랑에
몰살을 당하고 만 일이 있던 것을 잊지 못하는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지라, 수롱이조차도 배에는 마음이 없었다. 섬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땅을 파서 먹는
것이 조마구 빨 때부터 길러온 습관이요, 손 익은 일이기 때문에 그저 그 노릇만이 그리웠다.
 그리하여 있는 돈으로 어떻게 밭날갈이나 사서 조 같은 것이나 심어 가지고 겨울의 불목이와
양식을 대게 하고 짬짬이 조개나, 굴, 낙지, 이런 것들을 캐어서 그날 그날을 살아 갔으면 그것이
더할 수 없는 행복일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삼십 반생에 자기의 소유라고는 손바닥만한 것조차 없어, 어떻게도 몽매에
그리던 땅이었는지 모른다. 완전한 아내를 사지 아니하고 아다다를 꾀어 온 것도, 이
소유욕에서였다. 아내가 얻어진 이제, 비록 많지는 않은 땅이나마 가져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였거니와 또는 그만한 소유를 가지는 것이 자기에게 향한 아다다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하는
데도 보다 더한 수단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본시 뱃노름판인 섬인데, 작년에 놀구지가 잘 되었다 하여 금년에 와서 더욱 시세를
잃은 땅은 비록 때가 기경시라 하더라도 용이히 살수까지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그렇게 하리라
일단 마음을 정하니 자기도 땅을 마침내 가져 보누나 하는 생각에 더할 수 없는 행복을 느끼며
아다다에게도 이 계획을 말하였다.
 "우리 밭을 한 뙈기 사자, 그래두, 농사허야 사람 사는 것 같다. 내가 던답을 살라구 묶어 둔
돈이 있거던!"하고 수롱이는 봐라는 듯이 시렁 위에 얹힌 석유통 궤속에서 지전 뭉치를
뒤져내더니 손끝에다 침을 발라가며 펄딱펄딱 뒤져 보인다. 그러나 그 돈을 본 아다다는 어쩐지
갑자기 화기가 줄어 든다.
 수롱이는 이상했다. 기꺼워 할 줄 알았던 아다다가 도리어 화기를 잃은 것이다. 돈이 있다니
많은 줄 알았다가 기대에 틀림으로서인가?
 "이거봐, 그래봬두 일천 오백냥이야. 지금 시세에 이천 평은 한참 살다가두 떡 먹두룩 산건데!"
 그래도 아다다는 아무 대답이 없다. 무엇 때문엔지 수심의 빛까지 역연히 얼굴에 떠오른다.
 "아니 밭이 이천 평이문 조를 심는다 하구 잘만 가꿔 봐! 조가 열 섬에 조짚이 백여 목 날
터이야. 그래, 이걸 개지구 겨울 한 동안이야 못 살아? 그렇거구 둘이 맞붙어 몇 해만 벌어 봐.
그적엔 논이 또 나오는 거야. 이건 괜히 생..."
 아다다는 말없이 머리를 흔든다.
 "아니, 내레 이게, 거즈뿌레기야? 아 열 섬이 못 나!"
 아다다는 그래도 머리를 흔든다.
 "아니, 그롬 밭은 싫단 말인가?"
 비로소 아다다는 그렇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린다.
 아다다는 돈이 있다 해도 실로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 많은 돈으로 밭을 산다는
소리에 지금까지 꿈꾸어 오던 행복이 여지 없이도 일시에 깨어지는 것만 같았던 것이다. 돈으로
의해서 그렇게 행복일 수 있던 자기의 신세는 남편(전 남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므로, 그리고
시부모의 눈까지 가리는 것이 되어, 필야엔 쫓겨나지 아니치 못하게 되던 일을 생각하면 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좋지 않던 것인데, 이제 한 푼 없는 알몸인 줄 알았던 수롱이에게도
그렇게 많은 돈이 있어, 그것으로 밭을 산다고 기꺼워하는 것을 볼 때, 그 돈의 밑천은 장래
자기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리람 보다는 몽둥이를 벼리는 데 지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밭에다
조를 심는다는 것은 불행의 씨를 심는다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그저 섬으로 왔거니 조개나 굴 같은 것을 캐어서 그날그날을 살아가야 할 것만이
수롱의 사랑을 받는 데 더할 수 없는 살림인 줄만 안다. 그래서 이러한 살림이 얼마나 즐거우랴!
혼자 속으로 축복을 하며 수롱을 위하여 일층 벌기에 힘을 써야 할 것을 생각해 오던 것이다.
 "그롬 논을 사재나? 밭이 싫으문."
 수롱은 아다다의 의견이 알고 싶어 이렇게 또 물었다.
 그러나 아다다는 그냥 고개를 주억여 버린다. 논을 산대도 그것은 똑같은 불행을 사는데 있을
것이다. 돈이 있는 이상 어느 것이든지 사기는 반드시 사고야 말 남편의 심사이었음에 머리를
흔들어 댔자 소용이 없을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근본 불행인 돈을 어찌 할 수 없는 이상엔
잠시라도 남편의 마음을 거스름으로 불쾌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는 아는 때문이었다.
 "흥! 논이 도흔 줄은 너두 아누나! 그러나 어려운 놈껜 밭이 논보다 나앗디 나아..."하고,
수롱이는 기어이 밭을 사기로 그달음에 거간을 내세웠다.

 그날 밤.
 아다다는 자리에 누웠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은 아무런 근심도 없는 듯이 세상 모르고 씩씩 아침부터 자내건만 아다다는 그저 돈
생각을 하며 장차 닥쳐올 불길한 예감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불을 붙안고 밤새도록
쥐어틀며 아무리 생각해야 그 돈을 그대로 두고는 수롱의 사랑 밑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으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짧은 봄 밤은 어느덧 새어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처량히 들려온다.
 밤이 벌써 새누나 하니 아다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하게 탔다. 이 밤으로 그 돈에 대한 처리를
하지 못하는 한 내일은 기어이 거간이 흥정을 하여가지고 올 것이다. 그러면 그 밭에서 나는
곡식은 해마다 돈을 불려 줄 것이다. 그때면 남편은 늘어가는 돈에 따라 차차 눈이 어둡게 되어
점점 정은 멀어만 가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더 생각하기조차 무서웠다.
 닭의 울음소리에 따라 날은 자꾸만 밝아온다. 바라보니 어느덧 창은 희끄스럼하게 비친다.
아다다는 더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옆에 누운 남편을 지그시 팔로 밀어 보았다. 그러나
움찍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못 믿어지는 무엇이 있는 듯이 남편의 코에다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고 숨소리를 엿들었다. 씨근씨근 아직도 잠은 분명히 깨지 않고 있다. 아다다는 슬그머니 이불
속을 새어 나왔다. 그리고, 시렁 위에 석유통을 휩쓸어 그속에다 손을 넣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지전 뭉치를 더듬어서 손에 쥐고는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가며 살그머니 문을 열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일찍이 아침을 지어 먹고 나무새기를 뽑으러 간다고 바구니를 끼고 바닷가로 나섰다.
아무도 보지 못하게 깊은 물속에다 그 돈을 던져 버리자는 것이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물들며 잔뜩 밀린 조수는 거품을 부걱부걱 토하며 바람결
쫓아 철썩철썩 해안을 부딪친다.
 아다다는 바구니를 내려 놓고 허리춤 속에서 지전뭉치를 쥐어 들었다. 그리고는 몇 겹이나
쌌는지 알 수 없는 헝겊조각을 둘둘 풀었다. 헤집으니 일 원짜리, 오 원짜리, 십 원짜리, 무수한
관 쓴 영감들이 나를 박대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모두들 마주 바라본다. 그러나 아다다는 너
같은 것을 버리는 데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넘노는 물결 위에다 휙 내어 뿌렸다. 세찬
바닷바람에 채인 지전은 바람결 쫓아 공중으로 올라가 팔랑팔랑 허공에서 재주를 넘어가며
산산히 헤어져 멀리 그리고 가깝게 하나씩 하나씩 물 위에 떨어져서는 넘노는 물결 쫓아 잠겼다
떴다 숨박꼭질을 한다.
 어서 물 속으로 가라앉든지 그렇지 않으면 흘러내려가든지 했으면 하고 아다다는 멀거니 서서
기다리나, 너저분하게 물 위를 덮은 지전 조각들은 차마 주인의 품을 떠나기가 싫은 듯이 잠겨
버렸는가 하면 다시 기울거리며 솟아올라서는 물 위를 빙글빙글 돈다.
 하더니, 썰물이 잡히자부터야 할 수 없는 듯이 슬금슬금 밑이 떨어져 흐르기 시작한다.
 아다다는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밀려 내려가는 무수한 그 지전 조각은 자기의 온갖 불행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다시 돌아올 길이 끝없는 한 바다로 내려갈 것을 생각할 때 아다다는
춤이라도 출 듯이 기꺼웠다.
 그러나 그 돈이 완전히 눈앞에 보이지 않게 흘러 내려 가기까지에는 아직도 몇 분 동안을
요하여야 할 것인데, 뒤에서 허덕거리는 발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다보니 뜻밖에도 수롱이가
헐떡이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야! 야! 아다다야! 너, 돈 돈 안 건새핸? 돈, 돈 말이야 돈!..."
 청천의 벽력 같은 소리였다.
 아다다는 어쩔 줄을 모르고 남편이 이까지 이르기 전에 어서어서 물결은 휩쓸려 돈을 모두
거둬 가지고 흘러 버렸으면 하나 물결은 안타깝게도 그닐그닐 한가히 돈을 이끌고 흐를 뿐,
아다다는 그 돈이 어서 자기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것을 보기 위하여 그닐거리고
있는 돈 위에 쏘아 박은 눈을 떼지 못하고 쩔쩔매는 사이, 마침내 달려오게 된 수롱의 눈에도
필경 그 돈은 띄고야 말았다.
 뜻밖에도 바다 가운데 무수하게 지전조각이 널려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둥둥 떠내려가는 것을
본 수롱이는 아다다에게 그 연유를 물을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 옷을 훨훨 벗고 첨버덩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헤엄을 질 줄 모르는 수롱이는 돈이 엉키어 도는 한복판으로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겨우 가슴패기까지 잠기는 깊이에서 더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내려가는 돈더미를 안타깝게도
바라보며 허우적 달려갔다. 차츰 물결은 휩쓸려 떠내려가는 속력이 빨라진다. 돈들은 수롱이더러
어서 달려와 보라는 듯이 휙휙 숨바꼭질을 하며 흐른다. 그러나 물결이 세어질수록 더욱
걸음발은 자유로 놀릴 수가 없게 된다. 더퍽더퍽 물과 싸움이나 하듯 엎어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섰다가는 다시 엎어지며 달려가나 따를 길이 없다. 그대로 덤비다가는 몸조차 물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 같아, 멀거니 서서 바라보니 벌써 조각들은 가물가물하고 물거품인지도 부난할
수 없을이만큼 먼거리에서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여지는 것이 없다. 휙휙하고 밀려 내려가는 거품진 물결뿐이다.
 수롱이는 마지막으로 돈을 잃고 말았다고 아는 정도의 물결 위에 쏘아진 눈을 돌릴 길이 없이
정신 빠진 사람처럼 그냥그냥 바라보고 섰더니, 쏜살같이 언덕켠으로 달려오자 아무런 말도 없이
벌벌 떨고 섰는 아다다의 중동을 사정없이 발길로 제겼다.
 "흥앗!"
 소리가 났다고 아는 순간, 철썩 하고 감탕이 사방으로 튀자 보니 벌써 아다다는 해안의
감탕판에 등을 지고 쓰러져 있다.
 "이! 이! 이..."
 수롱이는 무슨 일인지를 하려고는 하나, 너무도 기에 차서 말이 되지를 않는 듯 입만
너불거리다가 아다다가 움찍하는 것을 보더니, 아직도 살았느냐는 듯이 번개같이 쫓아 내려가
다시 한번 발길로 제겼다.
 "푹!"하는 소리와 함께 아다다는 가꿉선 언덕을 떨어져 덜덜덜 굴러서 물 속에 잠긴다.
 한참 만에 보니 아다다는 복판도 한복판으로 밀려가서 솟구어 오르며 두 팔을 불 밖으로
허위적거린다. 그러나 그 깊은 파도 속을 어떻게 헤어나랴! 아다다는 그저 물 위를 둘레둘레 굴며
요동을 칠 뿐, 그러나 그것도 한 순간이었다. 어느덧 그 자체는 물 속에 사라지고 만다.
 주먹을 부르쥔 채 우상같이 서서 굽실거리는 물결만 그저 뚫어져라 쏘아 보고 섰는 수롱이는
그 물 속에 영원히 잠들려는 아다다를 못 잊어함인가? 그렇지 않으면 흘러 버린 그 돈이 차마
아까워서인가?
 짝을 찾아 도는 갈매기 떼들은 눈물겨운 처참한 인생 비극이 여기에 일어난 줄도 모르고 '끼약
끼약'하며 흥겨운 춤에 훨훨 날아다니는 깃치는 소리와 같이 해안의 풍경만 돕고 있다.



    채만식(1904__1950)
 1925년 12월에 "세 길로"라는 단편이 "조선문단"에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으나, 주로 30년대에
활약했다. "치숙", "레디 메이드 인생", 등은 암담한 시대의 배경과 그 곤경을 주제로 하여
풍자작가로서의 면모를 잘 나타낸 그의 대표작이고, 장편 중에서의 "탁류"는 우수한 세태소설로써
이것도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그는 작품 속에서 현실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풍자하는 수법을 주로 사용하였다. 여기에 수록된 "레디 메이드 인생"에서 작자는
인텔리의 현실적 무능과 실업문제를, 이데올로기로 터치한 것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의 정신으로
설명해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레디 메이드 인생
    "신동아" 1934. 6.

   1

 "뭐 어디 빈 자리가 있어야지."
 K사장은 안락의자에 폭신 파묻힌 몸을 뒤로 벌떡 젖히며 하품을 하듯이 시원찮게 대답을 한다.
두 팔을 쭉 내뻗고 기지개라도 한 번 쓰고 싶은 것을 겨우 참는 눈치다.
 이 K사장과 둥근 탁자를 사이에 두고 공손히 마주 앉아 얼굴에는 '나는 선배인 선생님을 극히
존경하고 앙모합니다.'하는 비굴한 미소를 띠고 있는 구변 없는 구변을 다하여 직업 동냥의 구걸
문구를 기다랗게 늘어 놓던 P... P는 그러나 취직운동에 백전백패의 노졸인지라 K씨의 힘
아니드는 한 마디의 거절에도 새삼스럽게도 실망도 아니한다. 대답이 그렇게 나왔으니 인제 더
졸라도 별 수가 없는 것이지만 헛일 삼아 한 마디 더 해보는 것이다.
 "글쎄올시다. 그러시다면 지금 당장 어떻게 해주십사고 무리하게 조를 수야
있겠습니까마는...그러면 이 담에 결원이 있다든지 하면 그때는 꼭..."
 이렇게 말하고 P는 지금까지 외면하였던 얼굴을 돌리어 K사장을 조심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K사장은 위선 고개를 좌우로 두어번 흔들고는 여전히 하품 섞인 대답을 한다.
 "결원이 그렇게 나나 어디...그리고 간혹 가다가 결원이 난다더라도 유력한 후보자가 몇 십명씩
밀려 있어서..."
 P는 아무 말도 아니하고 고개를 숙였다. 인제는 영영 틀어진 것이다.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일어서는 것밖에는 별 수가 없다.
 별 수가 없이 되었으니 '네 그렇습니까'하고 선선히 일어서야 할 것이지만 지금까지의 은근히
모시고 있던 태도에 비하여 그것이 너무 낯간지러운 표변임을 알기 때문에 실망이나 하는 체하고
잠시 더 앉아 있는 것이다.
 "거 참 큰일났어".
 K사장은 P가 낙심해 하는 것을 보고 밑천이 들지 아니하는 일이라서 알뜰히 걱정을 나누어
준다.
 "저렇게 좋은 청년들이 일거리가 없어서 저렇게들 애를 쓰니."
 P는 속으로 코똥을 '흥'하고 뀌었으나 아무 대답도 아니하였다. K사장은 P가 이미 더 조르지
아니하리라고 안심한지라 먼저 하품 섞어 '빈 자리가 있어야지'하던 시원찮은 태도는 버리고
그가
늘 흉중에 묻어두었다가 청년들에게 한바탕씩 해 들려주는 훈화을 꺼낸다.
 "그렇지만 내가 늘 말하는 것인데 저렇게 취직만 하려고 애를 쓸게 아니야. 도회지서
월급생활을 하려고 할 것만이 아니라 농촌으로 돌아가서..."
 "농촌으로 돌아가서 무얼 합니까."
 P는 말 중동을 잘라 불쑥 반문하였다. 그는 기왕 취직운동은 글러진 것이니 속 시원하게
시비라도 해 보고 싶은 것이다.
 "허, 저게 다 모르는 소리야...조선은 농업국이요, 농민이 전 인구의 팔할이나 되니까
조선문제는 즉 농촌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아, 지금 농촌에서 할 일이 오죽이나 많다구?"
 "저는 그 말씀 잘 못 알아 듣겠는데요. 저희 같은 사람이 농촌에 가서 할 일이 있을 것
같잖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가령 응...저..."
 K사장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가 구직하러 오는 지식청년들에게 농촌으로 돌아가 농촌 사업을 하라는 것과 다음에 또
꺼내는 일거리를 만들라는 것은 결코 현실에서 출발한 이론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지식계급의 구직군이 넘치는 것을 보고 막연히 '농촌으로 돌아가라' '일을 만들어라'고 해 왔을
따름이다. 따라서 거기에 대한 구체적 '플랜'이 있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
행세거리로 또 한편으로는 구직군 격퇴의 수단으로 자룡이 헌 창 쓰듯 섞일 뿐이지.-
 그리하여 그 동안까지는 대개는 그 막연한 설교를 들은 성만 성 물러가는 것이 그들의
행투였었는데 오늘 이 P에게만은 그렇지가 아니하여 불가불 구체적 설명을 해 주어야 하게
말머리가 돌아선 것이다. 그래서 그는 떠듬떠듬 생각해 가면서 생각나는 대로 주워 섬기는
것이다.
 "가령 응...저...문맹퇴치운동도 있지. 농민의 구할은 언문도 모른단 말이야! 그리고
생활개선운동도 좋고...헌신적으로."
 "헌신적으로요?"
 "그렇지...할 테면 헌신적으로 해야지."
 "무얼 먹고 헌신적으로 그런 사업을 합니까?...먹을 것이 있어서 그런 농촌 사업이라도 할
신세라면 이렇게 취직을 못해서 애를 쓰겠습니까?"
 "허! 그게 안 된 생각이야. 자기가 먹고 살 재산이 있으면서 사회를 위해서 일도 아니하고
번들번들 논다는 것은 그것은, 타락된 생각이야."
 P는 K사장이 억단을 내세우는 것을 보고 속으로 싱그레 웃었다.
 "그렇지만 지금 조선 농촌에서는 문맹퇴치니 생활개선이니 합네 하고 손 끝이 하얀 대학이나
전문학교 졸업생들이 모여 오는 것을 그다지 반겨하기는 커녕 머릿살을 앓을 것입니다...농민이
우매하다든지 문화가 뒤떨어졌다든지 또 생활이 비참한 것의 근본 원인이, 기역 니은을
모른다든가 생활개선을 할 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조선의 지식청년들이 모두
그런 인도주의가 되어집니까?"
 "되면 되지 안 될건 무어야?"
 "그건 인도주의란 그것이 한 개 공상이니까 그렇겠지요."
 "허허...그러면 P군은 XX주의잔가?"
 "되다가 찌부러진 찌스러깁니다. 철저한 XX주의자라면 이렇게 선생님한테 와서 취직운동도
아니합니다."
 "못 써. 그렇게 과격한 사상으로 기울어서야 쓰나...정 농촌으로 돌아가기가 싫거든 서울서라도
몇 사람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서 무슨 일을--조국에 신문이 모자라니 신문을 하나 경경하든지
또 조그맣게 하자면 잡지 같은 것도 좋고 또 영리사업도 좋고...그러면 취직운동하는 것보담 훨씬
낫잖은가?"
 "좋을 줄이야 압니다만 누가 돈을 내놉니까?"
 "그거야 성의 있게 하면 자연 돈도 생기는 거지."
 P는 엉터리 없는 수작을 더 하기가 싫어 웬만큼 말을 끊고 일어섰다.
 속에 있는 말을 어느 정도까지 활활 해 준 것이 시원은 하나 또 취직이 글렀고나 생각하니 입
안에서 쓴 침이 고여 나온다.
 복도에서 편집국장 C를 만났다. P는 C와 자별히 사이가 가까운 터이었다.
 "사장 만나러 왔소?"
 C는 묻는 것이다.
 "아-니."
 P는 거짓말을 하였다. 그는 지금 K사장을 만나 거절 당한 이야기를 하기가 어쩐지 창피하기도
할 뿐 아니라 또 전부터 C더러 K사장에게 자기의 취직운동을 부탁해 왔던 터인데 직접 이렇게
찾아와서 만났다고 하기가 혐의쩍기도 하여 시치미를 뚝 뗀 것이다.
 "아주 단념하오."
 C는 자기에게 부탁한 취직운동을 단념하란 말이다. 그러면 벌써 C가 K사장에게 이야기를
하였고 그 결과 일이 틀어진 것을 모르고 와서 헛노릇을 한바탕 한 것이다. P는 먼저 C를
만나보지 아니하고 K사장을 만난 것을 후회하였다. C는 잠깐 멈췄던 말을 계속하였다.
 "어제 아침에 사장더러 P군의 사정이 퍽 난처하니 어떻게 생각해 봐 주면 좋겠다고 여러 말을
했다가 코떼었소. 신문사가 구제기관이 아닌데 남의 사정이 난처한 것을 어떻게 하라느냐고
그럽디다...하기야 그게 옳은 말이지만..."
 신문사가 구제기관이 아니라고 한다는 그 말이 P의 머리에는 침 끝으로 찌르는 것같이 정신이
들게 울리었다.
 "흥! 망할 자식들!"
 P는 혼잣말로 이렇게 두덜거리며 C와 작별도 아니하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2

 P는 광화문 네거리의 기념비각 옆에서 발길을 멈추고 망설였다.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다.
 봄 하늘이 맑게 개었다. 햇볕이 살이 올라 포근히 온 몸을 싸고 돈다. 덕석같은 겨울 외투를
벗어 버리고 말쑥말쑥하게 새로 지은 경쾌한 춘추복의 젊은이들이 봄볕처럼 명랑하게 오고가고
한다.
 멋장이로 차린 여자들의 목도리가 나비같이 보드랍게 나부낀다. 그 오동보동한 비단 다리를
바라다 보노라니 P는 전에 먹던 치킨 커틀렛이 생각이 났다.
 창을 활활 열어 젖힌 전차 속의 봄 사람들을 보니 P도 전차를 잡아 타고 교외나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크림 맛을 못 본 지 몇 달이 된 낡은 구두, 구기적거린 양복 바지, 양편 포켓이
오뉴월 쇠불알 같이 축 처진 양복 저고리, 땟국 묻은 와이셔츠와 배배 꼬인 넥타이, 엿장사가
이전 어치 주마던 낡은 모자, 이렇게 아래로부터 훑어 올려보며 생각하니 교외의 산보는커녕
얼핏 돌아가서 차라리 이불을 뒤쓰고 드러눕고만 싶었다.
 마침 기념비각 앞에 자동차 하나가 머물더니 서양 사람 내외가 내린다. 그들은 사내가
설명하고 여자가 듣고 하면서 기념비각을 앞 뒤로 구경한다. 여자는 사진까지 찍는다.
 대원군이 만일 이 꼴을 본다면...이렇게 생각하매 P는 저절로 미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3

 대원군은 한말의 '돈 키호테'였다. 그는 바가지를 쓰고 벼락을 막으려 하였다. 바가지는
여지없이 부스러졌다. 역사는 조선이라는 조그마한 땅 덩어리나마 너무 오래 뒤떨어뜨려 놓지
아니하였다.
 갑신정변에 싹이 트기 시작하여 가지고 '한일합방'의 급격한 역사적 변천을 거치어 자유주의의
사조는 기미년에 비로소 확실한 걸음을 내어디디었다.
 자유주의의 새로운 깃발을 내어 걸은 시민의 기세는 등등하였다.
 "양반? 흥! 누구는 발이 하나길래 너희만 양발(반)이라느냐?"
 "법률의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
 "돈...돈이 있으면 무어든지 할 수 있다."
 신흥 '부르죠아지'는 민주주의 간판을 이용하여 노동자 농민의 등을 어루만지고 경제적으로
유력한 봉건 귀족과 악수를 하는 동시에 지식계급을 대량으로 주문하였다.
 유자천금이 불여 교자일권서라는 봉건시대의 진리가 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아 일단의 더 발전된
얼굴로 민중을 열광시켰다.
 "배워라, 글을 배워라...지식만 있으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 살 수가 있다."
 이러한 정열의 외침이 방방곡곡에서 소스라쳐 일어났다.
 신문과 잡지가 붓이 닳도록 향학열을 고취하고 피가 끓는 지사들이 향촌으로 돌아다니며
삼촌의 혀를 놀리어 권학을 부르짖었다.
 "배워라! 배워야 한다. 상놈도 배우면 양반이 된다."면 누구나 양반이 되고 잘 살 수가 있다."
 "가르쳐라! 논 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가르쳐라. 그나마도 못하면 고학이라도 해야 한다."
 "공자 왈 맹자 왈은 이미 시대가 늦었다. 상투를 깎고 신학문을 배워라."
 "야학을 설치하여라."
 재등총독이 문화정치의 간판을 내어 걸고 골고루 학교를 증설하였다.
 보통학교의 교장이 감발을 하고 촌으로 돌아다니며 입학을 권유하였다.
 생도에게는 월사금을 받기커녕 교과서와 학용품을 대어 주었다.
 민간의 유지는 돈을 거둬 학교를 세웠다. 민립대학도 생기려다가 말았다. 청년회에서 야학을
설시하였다. '갈돕회'가 생겨 갈돕만주 외우는 소리가 서울의 신풍경을 이루었고 일반은 고학생을
존경하였다.
 여학생이라는 새 숙어가 생기고 신여성이라는 새 여인이 생기어 났다.
 이와 같이 조선의 관민이 일치되어 민중의 지식 정도를 높이는 데 진력을 하였다. 즉 그들
관민이 일치하여 계획한 조선의 문화 정도는 급속도로 높아갔다.
 그리하여 민중의 지식보급에 애쓴 보람은 나타났다.
 면서기를 공급하고 순사를 공급하고 간이농업학교 출신의 농사개량기수를 공급하였다.
 은행원이 생기고 회사원이 생겼다. 학교 교원이 생기고 교회의 목사가 생겼다. 신문기자가
생기고 잡지기자가 생겼다. 민중의 지식 정도가 높았으니 신문 잡지 독자가 부쩍 늘고 의사와
변호사의 벌이가 윤택하여졌다.
 소설가가 원고료를 얻어 먹고 미술가가 그림을 팔아먹고 음악가가 광대의 천호에서 벗어났다.
 인쇄소와 책장사가 세월을 만나고 양복점 구둣방이 늘비하여졌다.
 연애결혼에 목사님의 부수입이 생기고 문화주택을 짓느라고 청부업자가 부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부르죠아지'는 가보를 잡고 공부한 일부의 지식군은 진주 '다섯끗'을 잡았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은 무대를 잡았다. 그들에게는 조선 문화의 향상이나 민족적 발전이 나가
도리어 무거운 짐을 지워주었을지언정 덜어주지는 아니하였다. 그들은 배주고 속 얻어먹은
셈이다.
 '인텔리'...'인텔리'중에도 아무런 손 끝의 기술이 없이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졸업증서 한 장을
또는 조그마한 보통 상식을 가진 직업없는 '인텔리'...해마다 천여명씩 늘어가는 '인텔리'뱀을 본
것은 이들 '인텔리'다.
 '부르죠아지'의 모든 기관이 포화상태가 되어 더 수효가 아니 느니 그들은 결국 꾀임을 받아
나무에 올라갔다가 흔들리우는 셈이다. 개 밥의 도토리다.
 '인텔리'가 아니었으면 차라리...노동자가 되었을 것인데 '인텔리'인지라 그 속에는
들어갔다가도 달아 나오는 것이 구십구 퍼센트다, 그 나머지는 모두 어깨가 축 처진 무직
'인텔리'요, 무력한 문화예비군 속에서 푸른 한숨만 쉬는 초상집의 주인 없는 개들이다.
'레드 메이드' 인생이다.

   4

 "제길!"
 P는 혼자 두덜거리며 지금까지 섰던 기념비각 옆을 떠났다.
 P는 자기 자신이고 세상의 모든 일이고 모두 짜증이 나고 원수스러웠다.
 광화문 큰 거리를 총독부 쪽으로 어실어실 걸어가노라니 그의 그림자가 짤막하게 앞에 누워
간다. P는 그 자기의 그림자를 콱 밟고 싶었다. 그러나 발을 내어 디디면 그림자도 그만큼 앞으로
더 나가곤 한다. 이 그림자와 자기 자신에서 그리고 그림자를 밟으려는 자기 자신과 앞으로
달아나는 그림자에서 P는 자기의 이중인격의 모순상을 발견하였다.
 동십자각 옆에까지 온 P는 그 건너편 담배가게 앞으로 갔다.
 "담배 한 갑 주시오."하고, 돈을 꺼내려니까 담배가게 주인이,
 "네, 마꼬입니까?" 묻는다.
 P는 담배가게 주인을 한 번 거들떠보고 다시 자기의 행색을 내려 훑어보다가 심술이 번쩍
났다. 그래서 잔돈으로 꺼내려던 것을 일부러 일원짜리로 꺼내 드는데 담배가게 주인은 벌써
'마꼬' 한 갑 위에다 성냥을 받쳐 내어민다.
 "'해태' 주어요."
 P는 돈을 들이밀면서 볼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담배가게 주인은 그저 무신경하게,
 "네!"하고는 '마꼬'를 '해태'로 바꾸어 주고 팔십 오전을 거슬러 준다.
 P는 저 편이 무렴해 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욱 얄미웠다.
 그는 '해태' 한 개를 꺼내어 붙여 물고 다시 전찻길을 건너 개천가로 해서 올라갔다. 인제는
포켓 속에 남은 것이 꼭 삼원하고 동전 몇 푼이다. 엊그제 겨울 외투를 사원에 잡혀서 생긴
것이다.
 방세와 전깃불 값이 두 달 치나 밀렸다. 삼원은 방세 한 달 치를 주고 일원에서 전등 삯 한 달
치를 주고도 싶었으나 그리고 나면 그 나머지로 설렁탕이나 호떡을 사먹어도 하루밖에는 못
지낸다. 그래 그대로 넣어두고 한 이틀 지내는 동안에 일원이 거진 달아났던 판인데 공연히
객기를 부리느라고 당치도 아니한 '해태'를 샀기 때문에 인제는 일원 돈은 완전히 달아나고
삼원만 남은 것이다.
 P는 '포켓'속에 손을 넣고 잔 돈과 지폐를 섞어 삼원 남은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서 왼편
손으로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삼원을 곱쟁이쳐 보았다.
 육원, 십 이원, 이십 사원, 사십 팔원, 구십 육원, 백 구십 이원, 팔원 모자라는 이백원...사백원,
팔백원, 일천 육백원, 삼천 이백원, 육천 사백원, 일만 이천 팔백원, 팔백원은 떼어버리고 이만
사천원, 사만 팔천원, 구만 육천원, 십구만 이천원, 삼십팔만 사천원, 칠십 육만 팔천원, 일백 오십
삼만 육천원...
 삼원을 열 여덟 번만 곱 집으면 일백 오십 삼만원. 그 놈이 있으면...이렇게 생각하매 어깨가
으쓱해졌다.
 삼원의 열 여덟 곱쟁이가 일백 오십만원이니 퍽 쉬운 일이다.
 그 놈만 있으면 백만원을 들여서 오십전짜리 십육 페이지 신문을 하나 했으면 위선 K사장의
엉엉 우는 꼴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로 십 오만원만 있어도 일만 오천원 아니 일천 오백원만 있어도 아니 일백
오십원만 있어도 우선 방세와 전등 삯을 주고 한 달은 살아가겠다.
 P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달! 한 달만 살고 나면 그 담은 어떻게 하나?...그대로 몇 백원은
있어야지 아니 몇 천원은 아니 몇 만원은...
 P는 늘 하는 버릇으로 이런 터무니 없는 공상을 되풀이하였다.
 그는 최근 이러한 공상을 하면서부터 취직을 시들하게 여겼다.
 취직이 된댔자 사오십원이나 오륙십원의 월급이다. 그것을 가지고 빠듯빠듯 살아간들 무슨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을 터도 없는 것이다.
 가령 근실히 해서 월쾌저금 같은 것도 하고 집도 장만하고 여편네도 생기고 사장이나 중역들의
눈에 들어 지위도 부자쯤으로는 올라가고 그리하여 생활의 근거도 안정이 되고 하면 지금 같은
곤란을 당하지 아니하겠지만 그러나 P에게는 아직도 젊은 때의 야심이 있어 그러한 고식된
안정이나 명색 없는 생활은 도리어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좀 더 남의 눈에 띄며 좀 더 재미있고
그리고 자유로운 생활...
 물론 그는 지금이라도 누가 한 달에 삼십원만 줄 테니 와서 일을 해달라면 마치 주린 개가
고기를 보고 덤비듯이 덮어놓고 덤벼들 것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와는 딴판으로 배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P가 삼청동으로 올라가느라고 건춘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에 저 편에서 말쑥하게 봄치장을 한
여자 하나가 마주 내려왔다.
 역시 삼청동 근처에 사는 여자인지 P와는 가끔 마주치는 여자다.
 P는 그 여자와 만날 때마다 일부러 눈여겨 보지 아니하는 체는 하면서도 실상은 고비샅샅
관찰을 하였고 그리고 속으로는 연애라도 좀 했으면 하던 터이었다. 무엇보다도 둥그스럼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모두 모지지 아니하고 얼굴의 윤곽이 둥글듯이 모가 나지 아니한 것 그래서
맘 자리도 그렇게 동글려니 하는 것이 P의 마음을 끈 것이다.
 그 여자는 자주 만나는 이 헙수룩한 양복장이 P를 먼 빛으로 알아 보았는지 쳐녀다운 조심스런
몸매로 길을 가로 비켜 가까이 왔다.
 P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앞만 쳐다보면서도 속으로는,
 "저 여자가 지금 내 옆으로 다가와서 조그만 소리로 정답게 구애를 한다면? 사뭇 들이
안긴다면...어쩔꼬?"
 이런 생각을 하면서 히죽이 웃는데 여자는 벌써 지나쳐 버렸다.
 "흥! 어쩌긴 무얼 어째?...이년아, 일 없다는데 왜 이래! 하고 발길로 칵 차 내던지지."하고 P는
어깨를 으쓱하였다.
 삼청동 꼭대기에 있는 집--집이 아니라 사글세로 든 행랑방--에 돌아왔다. 객지에 혼자
있으니 웬만하면 하숙에 있을 것이로되 밥 값에 밀리고 그것에 졸릴 것이 무서워 P는 방을 얻어
가지고 있던 것이다.
 먹는 것이야 수중에 돈이 있는 때에 따라 호떡도 설렁탕도 백화점의 런치도 그렇잖고 몇 끼씩
굶기도 하여 대중이 없었다.
 볕 구경을 잘못해서 겨울에도 곰팡이가 슬고 이불을 며칠씩 그대로 펴 두는 방바닥에서는
먼지가 풀신풀신 올랐다.
 하도 어설퍼 앉으려고도 아니하고 방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있노라니까 안방 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며 주인 노파가 나와서 캑하고 기침을 한다. P는 또 방세 졸릴 일이 아득하였다.
 그러나 노파는 방세보다도 우선 편지 한 장을 들이 밀어 준다. 고향의 형에게서 온 것이다.
 편지를 뜯어 읽고난 P는 말가웃이나 되게 한 숨을 푸 내쉬었다. 그리고는 편지를 박박
찢어버렸다.

   5

 편지의 요건은 P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P에게는 연전에 갈린 아내와의 사이에 생긴 창선이라는 아들이 있다. 금년에 아홉 살이다.
 아내와 갈릴 때에 저 편에서 다만 어린애만이라도 주었으면 그것을 데리고 길러가는 재미로
혼자 사는 세상에 낙을 붙이겠다고 사정하였다. 그리고 적어도 중학까지는 마치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했으면 P도 한 짐을 덜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듣지 아니하였다.
 어릴 적부터 소박데기어미의 손에서 아비의 원망과 푸념을 들어가면서 자란 자식은 자란 뒤에
그 아비에게 호감을 가지지 못한다. P는 자식을 꼭 찾고 싶은 것은 아니나 아무튼 장성하면
아비라고 찾아올 터인데 그 때에 P는 이미 늘고 자식은 팔팔하게 젊은 놈이 제 어미를 소박한
아비라서 아니꼽게 군다면 그것은 차마 못 당할 노릇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P는 창선이를 내주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빼앗아 놓고 보니 인제 겨우
너덧 살밖에 아니 먹은 것을 자기 손으로 어찌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할 수 없이 어렵사리
지내는 그 형에게 맡기어 놓고 다시 서울로 올라 온 것이다. 보통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서울로 데려오겠다고 해두고.
 P의 형은 작년에 조카를 보통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극빈 축에 드는 집안인지라 몇 푼
아니 되는 월사금과 학비를 대지 못하여 중도에 퇴학시켰다. 애초에 입학시킬 상의로 P에게
편지를 했을 때에 P는 공부 같은 것은 시켰자 소용이 없으니 차라리 뼈가 보드라운 때부터
생일을 시키라고 하였다. P의 형은 그러나 백부의 도리로나 집안의 체면으로나 창선이를 생일을
시킬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기 손에 두어 헐벗기고 헐입히면서 공부도 시키지 못하느니 제
아비인 P더러 데려가라고 작년부터 편지를 하던 터이다.
 금년도 입학시기가 당함에 P의 형은 P에게 수차 편지를 하였다. 금년에 입학을 시키지 못하면
명년에는 학령이 초과되어 들여주지 아니 할 것이니 어서 데려다가 공부를 시키라는 것이다.
 "그 어린것이 굶기를 먹듯 하고 재주는 있으면서 남의 집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부러워
하는 꼴은 차마 애처로워 볼 수가 없다. 차라리 이꼴 저꼴 보지 아니하는 것이 속이나 편하겠다."
 이번 편지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고 끝에 가서 "여비가 몇 원 변통되면 차를 태우고 전보를 칠
테니 정거장에 나와 데려가거라. 나도 웬만하면 객지에 혼자 있는 너에게 어린 자식을
떠맡기듯이 보내겠느냐마는 잘못하다가 그것을 굶겨 죽이겠기에 생가다 못하여 단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이 씌어 있었다.
 P는 박박 찢은 편지를 돌돌 뭉쳐 방구석에 내던지고 한숨을 푸 내쉬었다.
 인제는 자식을 데리고 있기가 피할 수 없이 되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하는 것이다. 그는
형이 원망스럽고 아니꼬웠다.
 굳이 제 아비를 따라 보낸다는 것이 아니라 부득부득 공부를 시키라는 것 때문이다. 기왕
서울로 보내나 시골서 데리고 있으나 고생시키기는 일반이니 차라리 시골서 일찍부터 생일이나
시켰으면 P에게는 여러 가지로 좋은 것이었다.
 "흥! 체면! 공부! 죽어도 '인텔리'는 만들잖는다."
 P는 혼자 이렇게 두덜거렸다.
 "집에서 온 편지유? 무슨 걱정이 생겼수."
 말거리를 찾지 못하여 머뭇거리고 섰던 안방 노인이 동정이나 하는 듯이 이렇게 묻는다.
 "아-니요."
 P는 마지못해 코대답을 하였다.
 "필경 무슨 걱정이 생긴게구려!"
 노인은 자기의 말거리를 만들려고 아니라는 데도 이렇게 걱정을 내어 놓는다.
 "그게 모두 가난한 탓이지...저렇게 젊고 똑똑한 이가, 저게 모두 가난한 탓이야! 어디 구실자리
말한다더니 아직 아니 됐수?"
 "네 아직..."
 "거 큰 일 났구려! 어서 왜야 할텐데...나두 꼭 죽겠수...이 늙은 것이...돈 좀 마련되잖았수?..."
 "네 아직..."
 "저걸 어쩌나! 오늘은 물 값이야 전깃불 값이야 사뭇 받으러 달려 들텐데!"
 "며칠만 더 미루십시오. 설마하니 마나님이야 아니 드리겠습니까..."
 "아무렴! 실수야 없을 줄 알지만 내가 하도 옹색하니깐 그러는 거지..."
 P는 노인이 지껄이게 두어두고 혼자 생각하였다. 전에 아는 집에서 셋방을 얻어 들었을 때에는
두 달이고 석 달이고 세가 밀려야 조르는 법이 없었다.
 밀려도 조르지 아니하는 아는 집...이것이 P는 도리어 미안해서 이곳으로 옮겨 온 것이다.
옮겨와 가지고 막상 졸림질을 당하니 미안해도 졸리지는 아니하던 옛집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노인이 문을 가로막고 서서 수다스런 소리로 더 지껄이려고 하는 데 마침 P의 동무 M과 H가
찾아왔다.
 "어디 나가나?"
 M이 그러잖아도 벌씸한 코를 한 번 더 벌씸하고 사이 벌어진 앞 이를 내어 보이며 싱긋
웃는다.
 몸집은 M과 같이 뚱뚱하지만 키가 작아 M의 뒤에 가려섰던 H가 옆으로 나서며,
 "안녕하시오."하고 인사를 한다.
 P는 싱긋이 웃었다. 이 M과 H는 같은 하숙에 있는 데 두 사람은 곧잘 같이 돌아다닌다. 같이
가는 것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하나는 키가 커서 우뚝하고 하나는 키가 작아서 납작 붙어
가는 것 같다.
 얼굴도 M은 우들부들한 게 정객 타입으로 생기었고--잘못하면 복싱 링에 내세워도 좋겠고--
H는 안존하게 사무원 타입이다.
 일상의 언행을 보아도 H는 무슨 이야기가 자기 전문인 법률에 관한 것에 다다르면 육법전서의
조목을 따르르 외우면서 이렇고 저렇고 하다고 설명을 하고 M은 동경서 학생 XX에 제휴를
했던 만큼 그리고 전문이 정경과인 만큼 좌익진영에서 쓰는 어투가 그대로 나온다.
 "여전히 모두 동색이 창연하군!"
 P는 두 사람의 칙칙한 겨울 양복을 보고 그리고 자기의 행색을 내려보며 웃었다.
 M이 신을 벗고 들어와 먼지 앉은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춘래 불사춘일세."하고 한 마디 왼다. H도 따라 들어와 한 편에 앉으며 한 마디 한다.
 "아직 괜찮아...거리에서 보니까 동복 입은 사람이 많데..."
 "괜찮기는 무어 괜찮아...우리가 길로 돌아다니니까 사방에서 아이구야! 소리가 들리데."
 "왜?"
 "봄이 발 밑에서 짓밟히느라고."
 "하하하하."
 세 사람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참 시험 본 것 어떻게 되었소."
 P는 H가 일전에 총독부서 본 고원채용시험을 생각하고 물어보았다.
 "말두 마시우...인제는 꼭 들어앉아 공부나 해가지고 변호사 시험이나 치겠소."
 사람이 별로 신통성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저기 발련도 없이 취직이 여의하게 되지 못하는 것을
볼 때에 P는 가엾은 생각이 늘 들곤 하였다.
 "가만 있게...어서 변호사 시험만 '파스'하게. 그러면 인제 내가 백만원짜리 주식회사를 조직해
가지고 자네를 법률고문으로 모셔 옴세."
 이것은 M이 늘 농 삼아 하는 농담이다. M도 일년이나 취직운동을 하면서 지냈건만 그는 되려
배포가 유하다. 좀 더 재빠르게 했으면 M은 벌써 취직이 되었을는지도 모르나 그는 타고 난
배포와 그리고 남에게 아유구용을 하기 싫어하는 성질로 말하자면 취직전선의 낙오자다.
 별로 만나야 할 일도 없다. 그러나 제가끔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니까 이렇게 서로 찾으며 자주
만나게 된다.
 만나 앉아서 이야기라도 지껄이면 그 동안만은 명랑하여진다. 지금 서울 안에 P니 M이니 H와
같이 매일 만나 하는 일 없이 돌아다니고 주머니 구석에 돈푼 있으면 서로 털어 선술잔이나 먹고
하는 '룸펜'의 패가 수 없이 많다.
 무어나 일을 맡기었으면 불이 번쩍 일게 해낼 팔팔한 젊은 사람들이다. 그렇건만 그들은 몸을
비비 꼬고 있다.
 아무데도 용납치 못하는 사람들이다. XX적 XX에서 그들을 불러 들이기에는 XX적 XX의
주관적 정세가 너무도 미약하다. 그것은 그들의 몇 부분이 동경서 학생으로 있을 시절에는 그
속에서 활발하게 XX를 계속하던 것이 조선에 나오면서 탈리되는 것으로 보아 그러한 해석을
내리지 아니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부르죠아지'의 기성문화기관에 들어가자니 그곳에서는 수요를 찾지 아니한다.
'레디 메이드'로 된 존재들이니 아무 때라도 저 편에서 필요해야만 몇씩 사 들여간다.
 M이 '마꼬'를 꺼내놓고 붙여 문다. P는 포켓 속에 들어 있는 '해태'를 차마 내놓기가 낯이
따가워 M의 '마꼬'를 집어 당겼다.
 P는 설명을 시작한다. P 자신 그러한 장난 비슷한 공상은 하면서 일단 해보라고 하면 주저할
것이지만 어쨌거나 그랬으면 통쾌하리라는 것이다.
 "먼첨 경무국에 들어가서 아주 까놓고 이야기를 한단 말이야. 우리가 지금 대상으로 하는 것은
총독부가 아니라 조선의 소위 민간측 유지들이니까 간섭을 말아 달라고."
 "그러면 관허 '메이 데이'로 구만."
 "그래 관허도 좋아...그래가지고는 거기에다가는 무어라고 쓰느냐 하면
 '우리에게 향학열을 고취한 놈이 누구냐?'...어때?"
 "좋-지."
 "인텔리에게 직업을 내라...이렇게 노래를 지어 부르거든."
 "응, 유지와 명사의 가면을 박탈시키라고-한 몇 십 명이 그렇게 데모를 한단 말이야."
 "하하하하."
 M은 이렇게 웃고 H는 시원찮은 핀잔을 준다.
 "듣그럽소 여보...아, 글쎄 멀끔멀끔한 양복쟁이들이 종로 네거리로 기를 받고 그렇게 다녀봐!
애들이 와서 나 광고지 한장 주! 하잖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창 밖에서 냉이 장수가 싸구려 소리를 외치고 지나간다. M이 그에 응하여,
 "이크, 봄을 덤핑하는구나."
 "흥, 경제학자라 다르군...참 우리 하숙에서는 채소를 좀 먹여 주어야지!"
 "밥 값을 잘 내보지."
 "그도 그렇지만."
 "나는 석 달 치 밀렸네."
 "나도 그렇게 될 걸."
 "그러니까 나처럼 이렇게 아파트 생활을 해요."
 이것은 P의 말이다. 아파트라고 말해 놓고 서글퍼서 허허 웃었다.
 "조선식 아파트! 그렇지만 우리가 아파트 생활을 했다면 아마 두어 달 전에 굶어 죽었을 걸."
 "나는 돈을 보면 초면 인사를 해야 되겠네...본 지가 하도 오래서 낯을 잊었어."
 "여보게."하고 M이 으젓하게 H를 달군다.
 "돈 구경한 지 오래 됐다지?"
 "응."
 "존 수가 있네."
 "뭐?"
 "자네 책 좀 삼사 구락부에 보내세."
 "싫으이."
 "자네 돈 구경하고...구경하고 나서 그 놈으로 한 잔 먹고..."
 "한 잔 말이 났으니 말이지 요즘 같으면 술이나 실컷 먹고 주정이라도 했으면 속이
시원하겠네."
 "그러니까 말이야...가세. 가서 다섯 권 잽혀."
 "일 없다."
 "내가 찾아 주지."
 "흥."
 "정말이야."
 "싫어."

   6

 그 날 밤-
 P와 M은 H를 졸라 그의 법률책을 잡혀 돈 육원을 만들어 가지고 나섰다.
 선술집에 가서 엔간히 취하도록 먹은 뒤에 C라는 카페에 가서 술 두 병을 놓고 자정이 되도록
노닥거렸다.
 그 곳에서 나올 때는 육원 돈이 이원 남았다. 이원의 처치를 생각하다 세 사람은 일제히
동관으로 가기로 하였다.
 세 사람이 모두 다리가 비틀거렸다. 그 중에도 P는 더욱 취하였다.
 닐닐이 가락으로 들어 박힌 갈보집,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을 세 사람이 아는 집 들어서듯 쑥쑥
들어서니,
 "들어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하고 머리 딴 계집애가 배를 북통같은 애 배인 계집이 마루로 나선다.
 P가 무심결에 '해태'곽을 꺼내어 붙여 무니까 머리 딴 계집애가 P의 목을 얼싸안고 볼에 다
입을 쪽 맞추더니,
 "나도 하나."하고 손을 벌린다. P가 기가 막혀 담배곽을 내미는데 H와 M은 박수를 하며,
 "부라보..."하고 굉장하게 큰 소리로 외친다.
 배 부른 계집은 푸대접을 받고 머리 딴 계집애가 H와 M의 손으로 옮아다니면서 주물린다.
깩깩 소리를 지르며 엄살을 한다. 말을 붙이고 대답을 주고 받고 하는 것이 H와 M은 전에 한 번
와 본 집인 듯하다.
 잔은 사발 만한 데 술 주전자는 눈 알 만하다. 술은 부어 놓으니 M이 척 받아 놓고는 노래를
투정한다. 계집애는 그보다 더 약아서 제가 그 술을 쭉 들이마시고는 빈 잔만 M의 입에
대어준다.
 P는 재숫물 같이 밍밍한 술을 두어 잔 받아 먹는 동안에 비위가 콱 거슬려서 진정하느라고
드러누웠다.
 H가 계집애를 무릎에 올려 놓고 신이 나게 노래를 부른다. 물론 고저도 장단도 맞지 아니하는
노래다.
 M이 애 배인 계집을 실컷 시달려 주다가 머리 딴 계집애를 빼앗아 가더니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거린다. 그러면서 둘이서 연해 P를 건너다 보며 싱긋벙긋 웃는다.
 조금 있다가 계집애가 P에게로 오더니 귀에다 입을 대고 속삭인다.
 "저이가 나더러 당신하고 오늘 저녁...응, 어때?"
 "그래라."
 P는 불쑥 성난 것처럼 대답했다.
 "아이! 싱거워!"
 계집애는 P를 한 번 꼬집어 주고 다시 M에게로 달아났다.
 M에게로 가서 또 무어라고 속삭거리더니 재차 와가지고는 귓속말을 한다.
 "자고 가, 응."
 "그래 글쎄."
 "꼭."
 "응."
 "정말."
 "응."
 술은 네 주전자가 들어왔는데 세 사람 손님은 두 서너 잔씩밖에 아니 먹었다. 그 나머지 다
저희가 먹었다. 계집애가 술이 곤주가 되게 취해 가지고 해롱해롱 까분다.
 술값을 치르는 것을 보고 P도 따라 일어섰다. M이 몸뚱이로 슬쩍 밀어서 방안으로 들여보내고
뒤에서 계집애가 양복 뒷깃을 잡아당긴다.
 "그래라, 자고 간다."
 P는 방 가운데 벌떡 드러누웠다.
 "너희 집이 어디냐?"
 계집애가 옆에 와서 앉는 것을 보고 P가 물었다.
 "XX도 XX."
 "언제 왔니?"
 "작년에."
 P는 몸을 일으켰다. 또 속이 왈칵 뒤집혀 좀 더 진정하려고 하는 생각인 데 계집애가 콱 밀어
뜨린다.
 "나이 몇 살이냐?"
 "열 여덟."
 "부모는?"
 "부모가 있으면 여기서 이 짓을 해?"
 "왜 이 짓이 나쁘냐?"
 "흥...나도 사람이야."
 "에꾸! 나는 네가 신선인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까 사람이로구나!"
 "듣그러!"
 계집애는 눈을 쪽 흘기고는 갑자기 웃으면서 P의 목을 끌어 안는다.
 "자고 가, 응."
 "우리 마누라한테 자볼기 맞고 쫓겨난다."
 "그러면 내한테 와서 나하고 살자...여기 내 빚 팔십원만 물어 주면..."
 "팔십원이냐?"
 "응."
 "가겠다."
 P는 또 일어나려는 것을 계집이 껴안고 놓지 아니 한다.
 "자고 가...내가 반했어."
 "아서라."
 "정말!"
 "놓아."
 "아니야, 안 놓아. 자고 가요 응...자고...나 돈 좀 주어."
 "돈? 내가 돈이 있어 보이니?"
 "돈 소리가 절렁절렁 나는데?"
 미상불 P의 포켓 속에는 아까부터 잔돈 소리가 가끔 잘랑거렸다.
 "자고 나 돈 조...금 주고 가 응."
 "얼마나?"
 "암만도 좋아...오십전도, 아니 이십전도."
 계집애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P는 불에 데인 것 같이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그는 포켓
속에 손을 넣고 있는 대로 돈을 움켜쥐고 방바닥에 홱 내던졌다. 일원짜리 지전 두 장과 백
동전이 방바닥에 요란스럽게 흐트러진다.
 "앗다, 돈!"
 내던지고는 P는 뛰어나왔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7

 P는 정조적으로 순진한 사나이가 아니다.
 열 네 살 때에 소꼽질 같은 장가를 갔고 그 뒤 동경 가서 있을 동안에 거기 여자와 살림도
하였다.
 조선에 돌아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 기생과 사귀어 한 동안 죽을 둥 살 둥 모르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밖에도 정 두어 지낸 여자가 두엇 더 있다. 그러나 삼십이 되도록 지금까지 유곽을 가거나
은근짜 집을 가거나 동관의 색주가 집에 가서 잠자리를 한 일은 없다.
 그것은 P의 괴벽이다. 어떠한 여자를 물론하고 그가 정이 들지 아니한 여자이면 절대로 관계를
아니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한 번 P의 눈에 들고 따라서 정이 들면 아무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심각한 열정에
맡기어 완전히 그 여자를 움켜쥐어 버리며 또한 그 여자에게 전부를 내주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늘 all or nothing을 말한다.
 이것이 처세상 퍽 이롭지 못한 것을 P도 잘 안다. 또 공연한 승벽이요, 고집인 줄 알건만 그는
그것을 고치지 못한다.
 이 날 밤에도 그는 그 계집애를 조금도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나지 아니하였다.
 술 취한 끝에 속이 괴로우니까 진정을 하자는 판인데 '오십전, 아니 이십전도 좋아'하는 소리에
버쩍 흥분이 된 것이다.
 너무도 인간이 단작스럽고 악착스러운 것 같았다. P가 노상 보고 듣는 세상이 돈을 중간에
놓고 악착스럽게 으르릉으르릉 하는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정조 대가로 일금 이십전을
요구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P는 그러한 여자가 정조를 파는데 무신경한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것이 비도덕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관심과 해석은 그런 것보다 더 나아간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이십전만 주어도..." 소리에는 이것 저것 생각하고 헤아릴 나위도 없었다. 더럽고
얄미우면서도 눈물이 고였다. 삼원쯤 되는 전재산을 털어 내던지고 정신 없이 뛰어나온 것이다.
 술 취한 P를 남겨둔 H와 M은 골목에 기다리고 서서 있었다. P가 뛰어나오는 것을 보고
그들은 우선 농을 건넨다.
 "한 턱 하오."
 "장가 간 턱 하게."
 P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서서 생각을 하였다.
 다분의 가면 밑에서 꿈틀거리는 인도주의에 몹시 증오를 느끼는 P는 이 날밤 자기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지 몰라 괴로워 하였다.
 내일을 굶어야 할 그 돈이지만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다. 정조 값으로 이십전을 주어도
좋다는데 왜 정조는 퇴하고 돈만 있는 대로 털어 주었는가? 왜 눈에 눈물이 고였는가?

   8

 P는 머리가 띵하고 속이 뉘엿거리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두 친구에게 인사도
변변히 하지 아니하고 코를 베인 듯이 삼청동으로 올라왔다. 어서 바삐 좀 드러눕고만 싶었던
것이다.
 아무리 방 구들은 차고 지저분하게 늘어 놓았어도 제 처소는 반가운 것이다. 더구나 몸이
괴로울 때는-.
 P는 누더기 양복이나마 벗으려고 아니하고 그대로 펴 두었던 이부자리 속에 몸을 파묻었다.
드러누우니 취기가 새삼스리 더하여 영영 옷 벗을 생각도 잊어버리고 그래도 잠이 들었다.
 얼마를 자고 났는지 괴로워 부대끼다 못하여 잠이 깨었을 때는 목이 타는 듯이 말랐다.
 물은 없다. 물이 없어 못 먹느니라 생각하니 목은 더 말랐다.
 밤은 어느 때나 되었는지 짐작할 수가 없다. 전등은 그대로 켜져 있다. 밖에서는 사람 지나
다니는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아니한다. 전차 달리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고 가끔 가다가
자동차의 경적이 딴 세상의 소리 같이 감감하게 들리어 온다.
 밤이 깊지 아니 했으면 잠긴 안 대문을 두드려 주인 노인에게라도 물을 청하겠지만 깊은 밤에
그리하기도 미안하다. 그것도 방세나 여일하게 내었을 제 말이지 얼굴 대하기를 이 편에서
피하는 판에 차마 못할 일이다. 물지게 장수의 삐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나 하고 귀를 기울였으나
감감히 소리가 없다.
 목은 더욱더욱 말라 들어온다. 입술이 바싹 마르고 입 안이 침기가 없고 목구멍이 바삭바삭
소리가 날 듯이 마르고 그리고는 창자 속까지 말라 내려가는 듯하다.
 방금 미칠 듯하다.
 눈 앞에 용용하게 흘러가는 푸른 한강이 어릿어릿하고 쏴 쏟아지는 수통꼭지가 보이는 듯하다.
 P는 배고픈 고비는 많이 겪어 보았으나 이대도록 목마른 참은 당하기 처음이다.
 배는 고프면 기운이 없어 착 가라앉을 뿐이었지만 목이 극도로 마름에는 금시 미치고 후덕후덕
날뛸 것 같다.
 일어나서 삼청동 꼭대기로 올라가면 산골짜기의 물도 있고 또 우물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어두운 밤에 어디가 어디인지 보이지 아니할 테고 또 우물에는 두레박도 없을 것이다.
 겨우겨우 참아가며 몇 시간을 뼈대었다. 실상 한 시간도 못 되는 동안이지만 P에게는 여러
시간인 듯만 싶었다.
 그런 뒤에 겨우 물지게 소리를 듣고 그는 수통 있는 곳을 찾아 뛰어나갔다.
 사정 이야기도 변변히 하지 아니하고 쏟아지는 수통 꼭지에 매달이어 한동이는 되리만치
냉수를 들이켰다. 물장사가 어이가 없어 물끄러미 치어다 보고만 있다가 P의 끔벅하고 돌아서는
등 뒤에다 혀를 끌끌 찼다.
 밥보다도 더 다급하게 물을 실컷 취기도 적이 걷히고 정신이 말쑥하여졌다.
 P는 새삼스리 양복을 벗어 던지고 다시 자리에 파묻혔다. 인제는 잠이 십리나 달아나고 눈이
초랑초랑하여진다. 그러면서 어젯밤 일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것은 마치 못 먹을 것을 먹은 것처럼 꺼림칙한 기억이다. 아무렇게나 씻어넘겨버리재도
그러나 머리 한 구석에 박혀 가지고 사라지려 하지 아니하는 어룽과 같다. 어떻게 해서라도
시원스러운 해석을 내리고라야 마음이 놓일 것 같다.
 정조대가로 일금 이십전을 부르는 여자...
 방금 세상에는 한번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목숨을 버려 자살하는 여자도 있다. 그러는 한편
'이십전도 좋소'하는 여자가 있다.
 여자의 정조가 그것을 잃었다고 자살을 하도록 그다지도 고귀한 것이라면 '이십전에라도
팔겠소'하는 여자가 눈을 멀끔멀끔 뜨고 있는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또 정조를 '이십전에도 팔겠소'하는 여자가 있도록 그것이 아무렇지도 아니한 것이라면 그것을
한 번 빼앗긴 때문에 생명을 내버리는 여자가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한 것인가?
 이 두 여자가 모두 건전한 양심의 소유자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나무라기로 들면 차라리 정조를 빼앗긴 것으로 자살한 여자를 나무랄 것이지
'이십전에 팔겠소'하는 여자는 나무랄 수가 없다.
 열 여섯 살부터 시작하여 이래 삼년이나 색주가 집으로 굴러다니는 여자다.
 언제 누구에게 귀떨어진 도덕관념이나 정당한 인생관을 얻어들은 적이 없을 것이다.
 술잔을 들고 앉아 한 잔이라도 오는 손님에게 더 먹이어 한 푼어치라도 주인의 수입을 도와
주면 칭찬이 오니 그만이다.
 "고년 어여쁘다. 나하고 XX."하고 손님이 말하면 그에 좇아 조발일지언정 생리적 만족을 얻는
한편 그야말로 단돈 이십전이라도 벌면 그만이다.
 옆에서 그것을 시키기는 할지언정 그것이 나쁘다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는
것이다. 사실 일반 매춘부가 정조적으로 양심을 가진 듯이 보인다는 것은 그 대부분이 되려 한
가식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정당성을 가진 노동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불쌍하다고 여기고 동정을 하는 것은 의문의 패은이다.
 지금 세상은 정당한 성도덕이 서 있는 때도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에 여러 가지의 시대사조가 얼크러져 있는 때문이다. 그러니까 여자의 정조에
대하여도 일률적으로 선악과 시비를 가릴 수는 없는 것이다.
 하룻밤 몸 값으로 '이십전도 좋소'하는 여자, 그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는 성도덕도 없고 따라서
자신을 타락이래서 슬퍼하지도 아니한다.
 그 여자 자신을 나무랄 필요도 없는 것이요, 동정할 여지도 없는 것이다. 그 여자 자신은 결코
불쌍한 사람이 아니다.
 예수의 사랑(?)도 아무리 그 사랑이 크고 넓다 했을지언정 그것은 '불쌍한 사람' '죄 지은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불쌍하지 아니한' '죄짓지 아니한' 동관의 색주가 계집애에게는 누구의 동정이나 사랑도 일
없는 것이다.
 "뭐? 관념적이라고?"
 그렇다. 관념적이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의 주관을 객관화한 것이다.
 또 그 병적 현실에 메스를 대이는 것은 집단의 역사적 문제이지만 룸펜 인텔리의 결벽과
흥분쯤으로는 문제가 되지 아니한다.
 다만 취객이 삼원 각수를 던져 주었으므로 해서 그 여자는 감격 없는 기쁨을 맛보았을 뿐일
것이다.
 "이게 웬 떡이냐...어제 저녁에 꿈이 괜찮더니 이런 땡을 잡을 양으로 그랬구나...웬 얼간
망둥이냐."
 그 계집애는 응당 그렇게 밖에는 더 생각되지 아니 하였을 것이다. 그것이 결코 무리가 없는
당연한 일이다.
 P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입맛 쓴 고소를 띠었다.
 "흥! 되지 못하게...장님이 눈병 앓는 사람더러 불쌍하다고 한 셈인가."
 P는 돌아 누우면서 혀를 끌끌 찼다.

   9

 일천 구백 삼십 사년의 이 세상에도 기적이 있다.
 그것은 P가 굶어 죽지 아니한 것이다. 그는 최근 일주일 동안 돈이 생긴 데가 없다. 잡힐 것도
없었고 어디서 벌이 한 적도 없다.
 그렇다고 남의 집 문앞에 가서 밥 한 술 주시오 하고 구걸한 일도 없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아니 하였다.
 그러나 그 동안 굶어 죽지 아니하였다. 야위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멀쩡하게 살아 있다. P와
같은 인생이 이 세상에 하나도 없이 싹 치워진다면 근로하는 사람이 조금은 편해질는지도
모른다.
 P가 소부르죠아지 축에 끼이는 인텔리가 아니요, 노동자였더라면 그 동안 거지가 되었거나
비상수단을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러한 용기도 없다. 그러면서도 죽지 아니하고 살아
있다. 그렇지만 죽기보다 더 귀찮은 일은 그를 잠시도 해방시켜 주지 아니한다.
 그의 아들 창선이를 올려 보낸다고 어제 편지가 왔고 오늘은 내일 아침에 경성역에 당도한다는
전보까지 왔다.
 오정 때 전보를 받은 P는 갑자기 정신이 난듯이 쩔쩔 매고 돌아다니며 돈마련을 하였다.
최소한도 이십원은...혹 돌아다닌 것이 석양 때 겨우 십 오원이 변통되었다.
 종로에서 풍로니 남비니 양재기니 숟갈이니 무어니 해서 살림나부랑이를 간단하게 장만하여
가지고 올라오는 길에 전에 잡지사에 있을 때 알은 XX인쇄소의 문선과장을 찾아갔다.
 월급도 일 없고 다만 일만 가르쳐 주면 그만이니 어린 아이 하나를 써 달라고 졸라대었다.
 A라는 그 문선과장은 요리조리 칭탈을 하던 끝에-그는 P가 누구 친한 사람의 집 어린애를
천거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보통학교나 마쳤나요?"하고 물었다.
 "아-니요." P는 솔직하게 대답하였다.
 "나이는 몇인데?"
 "아홉살."
 "아홉살?"
 A는 놀라 반문을 하는 것이다.
 "기왕 일을 배울 테면 아주 어려서부터 배워야지요."
 "그래도 너무 어려서 원, 뉘 집 애요?"
 "내 자식놈이랍니다."
 P는 그래도 약간 얼굴이 붉어짐을 깨달았다. A는 이 말에 가장 놀라운 듯이 입만 벌리고
한참이나 P를 물끄러미 바라다 본다.
 "왜? 내 자식이라고 공장에 못 보내란 법 있답디까?"
 "아니 정말 그래요?"
 "정말 아니고?"
 "괜-히 실없는 소리...자제라고 해야 들어줄 테니까 그러시지?"
 "아니 그건 그렇잖아요, 내 자식놈야요."
 "그럼 왜 공부를 시키잖구?"
 "인쇄소 일 배우는 것도 공부지."
 "그건 그렇지만 학교에 보내야지."
 "학교에 보낼 처지가 못 되고 또 보낸댔자 사람 구실도 못할 테니까..."
 "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려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학교도 아니 마친 자제를 공장엘 보내요?"
 "내가 학교 공부를 해 본 나머지 그게 못쓰겠으니까 자식은 딴 공부를 시키겠다는 것이지요."
 "글쎄 정 그러시다면 내가 내 자식 진배없이 잘 데리고 있으면서 일이나 착실히 가르쳐
드리지마는...원 너무 어린데 애처롭잖아요?"
 "애처로운 거야 애비된 내가 더 하지요만, 그것이 제게는 약이니까..."
 P는 당부와 치하를 하고 인쇄소를 나왔다. 한 짐 벗어 놓은 것 같이 몸이 가뜬하고 마음이
느긋하였다. 그는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싸전에 쌀 한 말을 부탁하고 호배추도 몇 통 사 들었다.
 그렁저렁 오원을 썼다.
 십원 남은 중에 주인 노인에게 육원을 내어주니 입이 귀밑까지 째어진다. 그 끝에 P가 사온
호배추를 내어주며 김치를 담가 달라고 하니 선선히 응낙한다. 그리고 자식을 데리고 자취를
하겠다니까 깎두기나 간장이나 된장 같은 것을 아까운 줄 모르고 날라다 주고 한다.

   10

 이튿날 전에 없이 첫 새벽에 일어난 P는 서투른 솜씨로 화롯밥을 지어 놓고 정거장으로
나갔다.
 그의 형에게서 온 편지에 S라는 고향 사람이 서울 올라오는 길에 따라 보낸다고 했으니까 P는
창선이 보다도 더 낯이 익은 S를 찾았다.
 과연 차가 식식거리고 들어서매 인간을 뱉어 내놓는 찻간에서 S가 창선이를 데리고
두리번거리며 내려왔다.
 어디서 생겼는지 새까만 고꾸라 양복을 입고 이화표 붙은 학생 모자를 쓰고 거기다가 보따리를
하나 지고 무엇 꾸린 것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는 어린아이...저게 내 자식이니라 생각하니 P는
어쩐지 속으로 붉어지며 한편 가엾기도 하였다.
 S가 두 손에 짐을 가득 들고 두리번거리다가 가까이 온 P를 보고 반겨 소리를 지른다.
창선이가 모자를 벗고 학교식으로 경례를 한다. 얼굴은 너덧 살 적에 보던 것보다 더 한층 저의
외가를 닮았다. P는 그것이 몹시 불만하였다.
 "그새 재미나 좋았나?"
 S의 하는 첫 인사다.
 "뭘 그저 그렇지...괜한 산 짐을 지고 오느라고 애썼네.
 P는 이렇게 인사 겸 치하를 하였다.
 "원 천만에...그 애가 나이는 어려도 어떻게 속이 찼는지...너 늬 아버지 알아 보겠니?"
 S는 창선이를 돌아보며 웃는다. 창선이는 고개를 숙이고 수줍은지 아무 대답도 아니한다.
 P는 S와 창선이를 데리고 구름다리로 올라왔다.
 "저의 외할머니가 저 양복이야 떡이야 모두 해가지고 자네 댁에까지 오셨더라네...오셔서 어제
떠나는 데 정거장까지 나오셨는데 여러 가지 신신 당부를 하시데...자네에게 전하라고."
 S는 P가 그다지 듣고 싶지도 안한 이야기를 뒤따라 오며 늘어 놓는다. 그의 가슴에는 옛날의
반감이 솟쳐 올랐다.
 "별 걱정 다 하던 게로군...내 자식 내가 어련히 할까봐 쫓아다니면서 그래..."
 "그래도 노인들이라 어디 그런가...객지에서 혼자 있는데 데리고 있기 정 불편하거든 당신께로
도루 보내게 하라고 그러시데..."
 "그 집에 내 자식이 무슨 상관이 있어서 보내라는 거야?...보낼 테면 그때 데려 왔을라구..."
 P는 그것이 모두 그와 갈린 아내의 조종인 줄 알기 때문에 더구나 심정이 났다. 화가 나는대로
하면 어린아이가 입고 온 양복도 벗겨 내던지고 싶었으나 꿀꺽 참았다.

   11

 일찍 맛보지 못한 새 살림을 P는 시작하였다.
 창선이가 도착한 날 밤.
 창선이는 아랫목에서 색색 잠을 자고 있다. 외롭게 꿈을 꾸고 있으려니 생각하매 전에 없던
애정이 솟아오르는 듯 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창선이를 데리고 인쇄소에 가서 A에게 맡기고 안 내키는 발길을 돌이켜
나오는 P는 혼자 중얼거렸다.
 "'레디 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이효석(1907__1940)
 그는 1928년 7월 처녀작인 "도시와 유령"으로 문단에 등장하여 주로 30년대에 작품을 발표한
작가이다. 처음에는 유진오와 함께 프로문학, 신경향파문학에 약간 동조적이거나 그들 작가와
밀접하다는 면에서, 소위 동반작가로 활동하여 "노령근해" 등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에서는 그러한 경향을 찾아보기 퍽 어려울 정도로, 1933년에 발표한 "돈"부터, 경향성을 버리고
인간의 본능적인 순수성과 자연성의 예찬인 서정적인 문학으로 새출발을 했다. 그는 그의
대표작인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하여 "돈", "석류", "산", "들", "개살구", "분녀" 등에서와 같이
산문인 소설을 시의 경지에까지 끌어 올리려고 노력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다. 특히 "메밀꽃
필 무렵"은 시적 정서가 가득 넘치는 그의 대표작품이다. 또한 "돈"은 성의 육감적 묘사에 따른
에로티시즘으로 그의 문학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돈
    "삼천리" 1935. 3.

 예성 모롱이 버드나무 까치 동우리 위에 푸르둥둥한 하늘이 얕게 드리웠다. 토끼 우리에서는
하이얀 양토끼가 고슴도치 모양으로 까칠하게 웅크리고 있다. 능금나무 가지를 간들간들
흔들면서 벌판을 불어오는 바닷 바람이 채 녹지 않은 눈 속에 덮힌 종묘장 보리밭에 휩쓸려
도야지 우리에 모질게 부딪힌다.
 우리 밖 네 귀의 말뚝 안에 얽어 매인 암퇘지는 바람을 맞으면서 유난히 소리를 친다.
 말뚝을 싸고 도는 종묘장 씨돝은 시뻘건 입에 거품을 품으면서 말뚝의 위로 돌아 그 위에 덥석
앞다리를 걸었다. 시꺼먼 바위 밑에 눌린 자라 모양인 암퇘지는 날카로운 비명을 울리며 전신을
요동한다. 미끄러진 씨돝은 게걸떠꺼리며 다시 말뚝을 싸고 돈다. 앞뒤 우리에서 응하는 도야지들
고함에 오후의 종묘장은 떠들썩한다.
 반 시간이 넘어도 여의치 않았다. 둘러싸고 보던 사람들도 흥이 식어서 주춤주춤 움직인다.
여러 번째 말뚝 위에 덮쳤을 때에 육중한 힘에 말뚝이 와싹 무지러지면서 그 바람에 밑에 깔렸던
도야지는 말뚝 테두리를 벗어져서 뛰어났다.
 "어려서 안 되겠군." 종묘장 기수가 껄껄 웃는다.
 "-황소 앞에 암탉 같으니 징그러워서 볼 수 있나."
 "겁을 먹고 달아나는데."
 농부는 날쌔게 우리 옆을 돌아 뛰어가는 도야지의 앞을 막았다.
 "달포 전에 한 번 왔다 갔으나 씨가 붙지 않아서 또 끌고 왔는데요."
 식이는 겸연쩍어서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즘생이기로 저렇게 어리구야 씨가 붙을 수 있나."
 농부의 말에 식이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
 "빌어 먹을 놈의 즘생."
 무안도 무안이려니와 귀치않게 구는 짐승에 식이는 화를 버럭 내면서 농부의 부축을 하여
달아나는 도야지의 뒤를 좇는다. 고무신이 진창에 빠지고 바지춤이 흘러 내린다.
 도야지의 허리를 맨 바를 붙들었을 때에는 그는 홧김에 바를 뒤로 잡아나꾸며 기운껏
매질한다. 어린 짐승은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를 친다. 농사 일년의 생명선-좀 있으면 나올 제
일기분 세금과 첫여름 감자가 나올 때까지의 가족의 양식의 예산의 부담을 맡은 이 어린 짐승에
대한 측은한 뉘우침이 나중에는 필연코 나련마는 종묘장 사람들 앞에서의 무안을 못 이겨 식이의
흔드는 매는 자연 가련한 짐승 위에 잦게 내렸다.
 "그만 갖다 매시오."
 말뚝을 고쳐 든든히 박고 난 농부는 식이에게 손짓한다.
 겁과 불안에서 떨며 허둥거리는 짐승을 이번에는 한결 더 말뚝 안에 우겨 넣고 나뭇대를 가로
질러 배까지 떠받쳐 올려 꼼짝 요동하지 못하게 탁탁하게 얽어 매었다.
 털몸을 근실근실 부딪치며 그의 곁을 감돌던 씨돝은 미처 식이의 손이 떨어지기도 전에
화차와도 같이 육중하게 말뚝 위로 엄습한다. 시뻘건 입이 욕심에 목메어서 풀무 같이 요란히
울린다. 깔리운 암돝은 목이 찢어져라 날카롭게 고함친다.
 둘러선 좌중은 일제히 웃음소리를 멈추고 일시 농담조차 잊은 듯하다. 문득 분이의 자태가 눈
앞에 떠오르자 식이는 말뚝에서 시선을 돌려 딴전을 보았다.
 --"분이 고것, 지금, 넌 어데 가 있는구."
 --제 이기분은 새루, 일기분 세금조차 밀려오는 농가의 형편에 도야지보다 나은 부업이 없었다.
한 마리를 일년 동안 충실히 기르면 세금도 세금이려니와 잔돈푼의 가용 용돈쯤은 훌륭히
우러나왔다. 이 도야지의 공용을 잘 아는 식이가 푼푼히 모은 돈으로 마을 사람들의 본을 받아
읍내 종묘장에서 갓난 양도야지 한 자웅을 사온 것이 지난 여름이었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새까만 자웅을 식이는 사람보다도 더 귀히 여겨 갓 사 왔을 무렵에는 우리 안에 넣기가 아까워
그의 방 한 구석에 짚을 펴고 그 위에 재우기까지 하던 것이 젖이 그리워서인지 한 달도 못 돼서
숫놈이 죽었다. 나머지의 암놈을 식이는 애지중지하여 단 한벌의 그의 밥그릇에 물을 받아
먹이기까지 하였다. 물도 먹지 않고 꿀꿀 앓을 때에는 그는 나무 하러 가는 것도 그만두고 종일
짐승의 시중을 들었다. 여섯 달을 기르니 겨우 암퇘지 티가 났다. 달포 전에 식이는 첫 시험으로
십리가 넘는 종묘장까지 끌고 왔었다. 피돈 오십전이나 내서 씨를 받은 것이 종시 붙지 않았다.
식이는 화가 났다. 때마침 정을 두고 지나던 이웃집 분이가 어디론지 도망을 갔다. 속이 상해서
며칠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늘 뾰로통해서 쌀쌀하게 대꾸하더니 그 고운 살을
한 번도 허락하지 않고 늙은 아비를 혼자둔 채 기어코 도망을 가버렸구나 생각하니 분이가
괘씸하였다. 그러나 속 깊은 박초시의 일이니 자기 딸 조처에 무슨 꿍꿍 수작을 대었는지 도무지
모를 노릇이었다. 청진으로 갔느니, 서울로 갔느니, 며칠 전에 박초시에 돈 십원이 왔느니, 소문은
갈피갈피었으나 하나도 종잡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상할 대로 속이 상했다. 능금꽃 같은 두 볼을
잘강잘강 씹어먹고 싶던 분이인 만큼 식이는 오늘까지 솟아오르는 심화를 억제할 수 없었다-.
 "다 됐군."
 딴전만 보고 있던 식이는 농부의 목소리에 그 쪽을 보았다. 씨돝은 만족한 듯이 여전히 꿀꿀
짖으면서 그 곳을 떠나지 않고 빙빙 돈다.
 파장 후의 광경이언만 분이의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식이는 몹시도 겸연쩍었다. 잠자코
섰는 까칠한 암퇘지와 분이의 자태가 서로 얽혀서 그의 머리 속에 추근하게 떠올랐다. 음란한
잡담과 허리 꺾는 웃음소리에 얼굴이 더 한층 붉어졌다. 환영을 떨쳐 버리려고 애쓰면서 식이는
얽어매었던 도야지를 풀기 시작하였다.
 농부는 여전히 게걸떡거리며 어른어른 싸도는 욕심 많은 씨돝을 몰아 우리 속에 가두었다.
 "이번에는 틀림 없겠지."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오십전을 치러 주고 종묘장을 나오니 오후의 해가 느지막하였다.
 능금 밭 건너편 양옥관사의 지붕이 흐린 석양에 푸르둥절하게 빛난다. 옛성어귀에는 성 안으로
드나드는 장꾼의 그림자가 어른어른한다.
 성 안에서 한 채의 버스가 나오더니 폭 넓은 이등도로를 요란히 달아온다. 도야지를 몰고 길
왼편 가으로 피한 식이는 피뜩 지나가는 버스 안을 살펴본다. 분이를 잃은 후로부터는 달아나는
버스 안까지 조심스럽게 살피게 되었다. 일전에 나남에서 버스차장 시험이 있었다더니 그런
데로나 뽑혀 들어가지 않았을까? 분이의 간 길을 이렇게도 상상하여 보았기 때문이다.
 "장이나 한 바퀴 돌아올까."
 북문 어귀성 밑 돌 틈에 도야지를 매놓고 성을 들어가 남문거리로 향하였다. 분이가 없는 이제
장꾼의 눈을 피하여 으슥한 가게 앞에서 겸연쩍은 태도로 매화분을 살 필요도 없어진 식이는
석유 한 병과 마른 명태 몇 마리를 사들고 장판을 오르락내리락하였다. 한 동리 사람들의
그림자도 띄지 않기에 그는 곧게 성 밖으로 나와 마을로 향하였다.
 어기적거리며 도야지의 걸음이 올 때만큼 재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매질할 용기는 없었다.
 철로를 끼고 올라가 정거장 앞을 지나 오촌포 한길에 나서니 장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문드문 보인다. 산모퉁이가 바닷 바람을 막아 아늑한 저녁 빛이 한길 위를 덮었다. 먼
산 위에는 전기의 고가선이 솟고 산 밑을 물줄기가 돌아내렸다. 온천 가는 넓은 도로 도로가
철로와 나란히 누워서 남쪽으로 줄기차게 뻗쳤다. 저물어 가는 강산 속에 아득하게 뻗친 이 두
줄기의 길이 새삼스럽게 식이의 마음을 끌었다. 걸어가는 그의 등 뒤에서는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기차소리가 아련히 들린다. 별안간 식이에게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 길로 아무 데로나 달아날까."
 장에 가서 도야지를 팔면 노자가 되겠지. 차 타고 노자가 자라는 곳까지 달아나면 그 곳에 곧
분이가 있지 않을까. 어디서 들었는지 공장에 들어가기가 분이의 소원이더니 그곳에서 여직공
노릇하는 분이와 만나 나도 노동자가 되어 같이 살면 오즉 재미 있을까. 공장에서 버는 돈을
달마다 고향에 부치면 아버지도 더 고생할 것 없겠지. 도야지를 방에서 기르지 않아도 좋고 세금
못 냈다고 면소서기들한테 밥솥을 뺏길 염려도 없을 터이지. 농사 같이 초라한 업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무리 부지런히 일해도 못 살기는 일반이니...분이 있는 곳이 어디인가... 도야지를 팔면
얼마나 받을까.--이 도야지, 암퇘지, 양돼지...
 "얏!"
 날카로운 소리에 번쩍 정신이 깨었다. 찬 바람에 휙 앞을 스치고 불시에 일신이 딴 세상에 뜬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 들리지 않고-잠시간 전신이 죽고 감각이 없어졌다. 캄캄하던 눈
앞이 차차 밝아지며 거물거물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귀가 뚫리며 요란한 음향이 전신을 쓸어
없앨 듯이 우렁차게 들렸다. 우뢰소리가...바닷 소리가...바퀴 소리가...별안간 눈 앞이 환해지더니
열차의 마지막 바퀴가 쏜살같이 눈 앞을 달아났다.
 "앗 기차!"
 다 지나간 이제 식이는 정신이 아찔하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진땀이 나는 대신 소름이 쭉 돋는다. 전신이 불시에 빈 듯이 거뿐하다. 글자대로 전신은
비었다. 한 쪽 팔에 들었던 석유병도 명태 마리도 간 곳이 없고 바른 손으로 이끌던 도야지도
종적이 없는 것이다.
 "아, 도야지!"
 "도야지구 무어구 미친 놈이지, 어디라고 '후미끼리'를 막 건너."
 따귀를 철썩 맞고 바라보니 철로 망 보는 사람이 성난 얼굴로 그를 노리고 섰다.
 "도야지는 어찌 됐단 말요."
 "어젯 밤 꿈 잘 꾸었지, 네 몸 안 치인 것이 다행이다."
 "아니 그럼 도야지 치었단 말요."
 "다음부터 차에 주의해!"
 독하게 쏘아 붙이면서 철로 망꾼은 식이의 팔을 잡아 나꿔 '후미끼리'밖으로 끌어냈다.
 "아, 도야지가 치었다니, 두 번이나 종묘장에 가서 씨 받은 내 도야지, 암퇘지 양돼지."
 엉겁결에 외치면서 훑어보았으나 피 한 방울 찾아볼 수 없다. 흔적조차 없다니-기차가 달릉
들고 간 것 같아서 아득한 철로 위를 바라보았으나 기차는 벌써 그림자조차 없다.
 "한 방에서 잠 재우고 한 그릇의 물 먹여서 기른 도야지, 불쌍한 도야지..."
 정신이 아찔하고 일신이 허전하여서 식이는 금시에 그 자리에 푹 쓰러질 것도 같았다.

    메밀꽃 필 무렵
    "조광" 1936. 10.

 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려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뭇군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기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 않다. 얼금뱅이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나꾸어 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 장에서 한 번이나 흐뭇하게 사 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장에서나 한 몫
벌어야겠네."
 "오늘 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 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려 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 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쟁이도, 엿장수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 축들은 그 어느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 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 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충줏집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 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 걸. 축들이 사족을 못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 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거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고 나꾸었나 부지. 착실한 녀석인줄 알았더니."
 "그 길 만은 알 수 있나...궁리말구 가보세나 그려. 내 한 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얼금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일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 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 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 충줏집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빨끈 화가 나버렸다. 상 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군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 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 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 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결 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고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다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좋겠다. 장사만 탐탁하게 해야 되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 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도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ㅉ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
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구 자식 낳게 된 것을 붙들고 치고 닦아셀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쫑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 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 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 채서는 어떡헐 작정이었누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 편에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었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예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면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 뒤 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꼽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 보아야 벌써 다리까지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야단스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 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는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배인 몸뚱아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 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 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앙돌아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워 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 놈의 짐승이."
 아이의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이십 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 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 쯤에 물건하러 가는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고 자랑삼아 말하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 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웠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 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여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악물고 단념하였다. 결국 도로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념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
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 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막히도록 들어 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날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 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 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주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도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 데 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 가는 일색이었지-팔자에 있었나 부지."
 아무렴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는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은 것두 아니었네. 처녀는
울고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 날 판인 때였지. 한 집 안
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 날이렸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허나 처녀의 꼴은 꿩 궈 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 나지. -그러나 늙으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 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리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 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렸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섧게 생각말게."
 "천 천만에요. 자나깨나 어머니 생각 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어미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 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견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뜻하며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을 한바탕 쪽 씻어 내렸다.
 고개 너머는 바로 개울이었다. 장마에 흘러버린 널다리가 아직도 걸리지 않은 채로 있는
까닭에 벗고 건너야 되었다. 고의를 벗어 따로 등에 얽어매고 반 벌거숭이의 우스꽝스런 꼴로
물속에 뛰어들었다. 금방 땀을 흘린 뒤였으나 밤물은 뼈를 찔렀다.
 "그래 대체 기르긴 누가 기르구?"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의부를 얻어 가서 술장사를 시작했죠. 술이 고주래서 의부라고 전
망나니예요. 철 들어서부터 맞기 시작한 것이 하룬들 편한 날이 있었을까. 어머니는 말리다가
채이고 맞고 칼부림을 당하고 하니 집 꼴이 무어겠소. 열 여덟 살 때 집을 뛰어나서부터 이
짓이요."
 "총각 낫세론 동이 무던하다고 생각했더니 듣고 보니 딱한 신세로군."
 물은 깊어 허리까지 찼다. 속 물살도 어지간히 센 데다가 발에 채이는 돌멩이도 미끄러워
금시에 훌칠 듯하였다. 나귀와 조선달은 재빨리 거의 건넜으나 동이는 허생원을 붙드느라고 두
사람은 훨씬 떨어졌다.
 "모친의 친정은 원래부터 제천이었던가?"
 "웬걸요. 시원스리 말은 안해 주나 봉평이라는 것만은 들었죠."
 "알 수 있나요. 도무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 그렇겠지."하고 중얼거리며 흐려지는 눈을 까물까물하다가 허생원은 경망하게도 발을 빗
디디었다. 앞으로 꼬꾸라지기가 바쁘게 몸째 풍덩 빠져 버렸다. 허위적거릴수록 몸을 걷잡을 수
없어 동이가 소리를 치며 가까이 왔을 때에는 벌써 퍽으나 흘렀었다. 옷 째 쫄딱 젖으니 물에
젖은 개보다도 참혹한 꼴이었다. 동이는 물속에서 어른을 해깝게 업을 수 있었다. 젖었다고는
하여도 여윈 몸이라 장정등에는 오히려 가벼웠다.
 "이렇게까지 해 안 됐네, 내 오늘은 정신이 빠진 모양이야."
 "염려하실 것 없어요."
 "그래 모친은 아비를 찾지는 않는 눈치지?"
 "늘 한번 만나고 싶다고는 하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
 "의부와도 갈라져 제천에 있죠. 가을에는 봉평에 모셔 오려고 생각 중인데요.
 이를 물고 벌면 이럭저럭 살아갈 수 있겠죠."
 "아무렴, 기특한 생각이야 가을이랬다?"
 동이의 탐탁한 등어리가 뼈에 사무쳐 따뜻하다. 물을 다 건넜을 때에는 도리어 서글픈 생각에
좀 더 업혔으면도 하였다.
 "진종일 실수만 하니 웬일이요, 생원."
 "나귀야, 나귀 생각하다 실족을 했어. 말 안했던가. 저 꼴에 제법 새끼를 얻었단 말이지. 읍내
강릉집 피마에게 말일세. 귀를 쫑끗 세우고 달랑달랑 뛰는 것이 나귀새끼 같이 귀여운 것이
있을까. 그것 보러 나는 일부러 읍내를 도는 때가 있다네."
 "사람을 물에 빠뜨릴 젠 따는 대단한 나귀새끼군."
 허생원은 젖은 옷을 웬만큼 짜서 입었다. 이가 덜덜 갈리고 가슴이 떨리며 몹시도 추었으나
마음은 알 수 없이 둥실둥실 가벼웠다.
 "주막까지 부지런히들 가세나. 뜰에 불을 피우고 훗훗이 쉬어. 나귀에겐 더운물도 끓여주고.
내일 대화장 보고는 제천이다."
 "생원도 제천으로...?"
 "오래간만에 가보고 싶어. 동행하려나 동이?"
 나귀가 걷기 시작하였을 때, 동이의 채찍은 왼손에 있었다. 오랫동안 아둑신이 같이 눈이
어둡던 허생원도 동이의 왼손잡이가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걸음도 해깝고 방울 소리가 밤 벌판에 한층 청청하게 울렸다.
 달이 어지간이 기울어졌다.

    유진오(1906__1988)
 이효석과 동창으로 호는 현민 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그는 처녀작
"스리"(1928년 "조광") 이래 많은 단편을 발표했는데, 처음엔 이효석과 함께 동반작가로 일련의
프롤레타리아 문학관에 동조, 경향적인 작품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1930년대 중기에 이르러선
시대와 더불어 합리주의적인 작품으로 일변했다. 1935년 "신동아"에 연재한 그는 단편 "김강사와
T교수"는 일제 치하의 암담한 현실에서의 지성인의 고민을 박력 있게 묘사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무튼 그는 지적 색채가 농후한 주지적 작가란 세평이 있다. 해방 후에는 작품활동을 거의
않고 정치가로서 활약하였다. 이 밖의 저서로는 "가을"(39), "이혼"(39), "나비"(40), "창랑
정기"(40) 등의 단편과 "화상보", "봄" 등의 장편이 있다.

    김강사와 T교수
    "신동아" 1935. 1.

   1

 문학사 김만필은 동경 제국대학 독일 문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수재이며 학생시대는
한때 '문화 비판회'의 한 멤버로 적지 않은 단련의 경력을 가졌으며 또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일년 반 동안이나 실업자의 쓰라린 고통을 맛보아 왔지만 아직도 '도령님' 또는 '책상 물림'의
티가 뚝뚝 돋는 그러한 지식청년이었다.
 S전문학교 교문을 들어선 택시가 기운차게 큰 커어브를 그려 육중한 본관 현관 앞에 우뚝
섰을 때에는 벌써 김만필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이학기 개학하는 날이라
학생들은 둘씩 셋씩 떼를 지어 웃고 떠들고 하면서 희희낙락하게 교문을 들어가고 있었다. 저
학생들-저 다 큰 학생들을 앞에 놓고 내일부터 강의를 하는 것이로구나. 감만필은 세 내 입은
모오닝의 옷깃을 가다듬고 넥탁이를 바로잡아 위의를 갖춘 후에 자동차를 내렸다. 그윽한
'나우다링'냄새가 초가을 아침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 새삼스레 코를 찔렀다. 그는 천천히
일원짜리를 한 장 꺼내 주고 거스를 필요는 없다는 의미로 손짓을 하고 무거운 정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늘은 김만필이 그의 우울한 일년 반 동안의 룸펜생활을 청산하는 날이며, 새로이
이S전문학교의 선생으로-시간강사로나마-취임하는 날이며 또 이도 또한 이번에 새로 임명된 이
학교 교련선생과 함께 취임식의 단 위에 오르는 날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기쁨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이 학교 교문을 들어선 것은 이상해 할 일이 아닌 것이다.
 현관을 들어서서 한참 어리둥절하다가 그는 겨우 수부에 가서 교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누구냐고 뒤 묻는 것을 명함을 내주며 자기는 이번에 이 학교 독일어 선생으로 새로 임명된
사람이라고 대답하니 그제서야 사무원은 몸을 납신하고 '아 그러셔요'하면서 이 복도를
오른쪽으로 꺾이어 바로 둘째 방이 교장실이라고 일러 주었다.
 교장실은 넓고 화려하였다. 교장은 그 넓은 방 한복판에 커다란 테이블을 앞에 놓고 두툼한 회  
전의자 위에 버티고 앉아 있었다. 마치 김만필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나 싶이.
이왕에 김만필은 교장을 그의 사택으로 찾아간 일이 사 오차나 있었지만 그 때에는 김에게
대하는 태도가 몹시 친절한데다가 교장의 생김생김이 쭈그렁 밤송이 같았으므로 마치 시골집
행랑 아범이나 대하듯이 몹시 만만했는데 이 날 아침 교장실에 와서 그는 교장이요 자기는 일개
시간강사로 마주 대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거기다가 교장의 태도는
전과는 아주 딴판으로 독난 뱀 모가지 같이 고개를 반짝 뒤로 젖히고 있어서 속심으로는 꼴같지
않기 짝이 없었으나 큼직하게 유덕스레 생긴 사람보다도 도리어 더 무서웠다.
 "어! 잘 오셨소. 자 이리 와 앉으시오."
 교장은 목소리를 지어 가며 테이블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말할 때에 그는 두 볼의
주름살 한 줄기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김만필은 몸이 오그라지는 것을 느끼며 황송해 의자에
앉았다.
 "우리 학교에 이왕에 오신 일이 있던가요. 아마 처음이죠?"
 "네 처음입니다."
 "어때요. 누추한 곳이라서."
 "천만에요. 정말 훌륭합니다."
 김만필은 교장실 창에 반쯤 걷어 놓은 호화스런 커어튼으로 눈을 옮기며 대답하였다. 커어튼은
정말 훌륭하였다.
 교장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을 서너번 울렸다. 급사가 들어오나 했더니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뚱뚱한 모오닝을 입은 친구가 허리를 굽실굽실하며 들어왔다.
 "여보게 그것 가져오게."
 "핫."
 뚱뚱한 친구는 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리를 굽실하고 도로 나갔다.
 잠깐 있다가 그는 무슨 종이조각을 들고 들어와 교장에게 전했다. 교장은 김만필에게,
 "김만필씨, 이것이 당신 사령서입니다. 자 이리 오시오."
 김만필은 공손히 걸어가 사령서를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혔다.
 "인제 자네도-"
 김만필이 허리도 채 펴기 전에 교장은 그의 머리 위에 대고 말을 퍼부었다.
 "우리 학교의 한 직원이니까 우리 학교를 위해 전력을 다 해 주게. 더구나 우리 학교에서
조선사람을 교원으로 쓰는 것은 자네가 처음이니까 한층 더 주의하고 노력하도록 하게."
 "핫" 김만필은 아까 그 뚱뚱한 친구가 하던 그대로 거의 반사적으로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었다.
 "에 그리고 김군. T군을 소개하지. 우리 학교 교무일을-"
 교장이 말도 맺기 전에,
 "내가 T올시다."하며 뚱뚱한 친구는 몹시 친절하게 허리를 굽혔다. 김만필은 아까는 그를
경멸의 눈으로 보았지만 지금 그가 이 학교 교무를 보는 이인줄을 알고 더구나 이렇게 공손하게
자기한테 하는 것을 보니 도리어 황송해서 그보다도 한층 더 허리를 굽혔다.
 "자, 저방으로 가서 기다립시다. 곧 식이 시작될 테니까. 이번에 새로 오게 된 교련선생
A소좌도 벌써 와 계십니다."
 T교수는 앞에서 김만필을 그 옆방 교무실로 안내하였다. 교무실에는 A소좌가 긴 칼을 짚고
만들어 논 사람같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김만필에게는 어째 꿈나라에나 온 것
같았다.
 김만필과 A소좌의 취임식은 개학식 끝에 간단하게 거행되었다. 위엄을 차리느라고 한층 더
눈에 살기를 띤 교장이 먼저 단 위에 올라가 김만필을 동경 제국대학 출신의 보기 드문 수재라고
소개하고, 이어 이번에 새로 교련을 맡아 보게 된 A소좌는 그의 경력과 인물에 대해 자기로서
감히 어떻다고 말할 생각도 없으며, 다만 이번에 특히 그의 분주한 사무의 틈을 타 우리 학교
일을 보아주게 된 데 대하여 감사의 말을 드릴 뿐이라는 인사를 한 후에 김만필과 A소좌는
동시에 단 위로 올라갔다. 얼굴이 창백하고 몸이 가는 김만필이 앞서서 나후다링냄새를 피우며
층대를 올라가고 바로 그 뒤에 검붉은 햇볕에 탄 얼굴과 강철 같은 체격에 나이도 김만필의
존장벌이나 됨직한 A소좌가 가슴에 훈장을 빛내며 유유히 따랐다. 강당 안에 가득 찬 학생들은
이 진기한 행진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터뜨릴뻔 하였으나 '기오쓰겠'하는 체조선생의
일갈로 겨우 참았다. 김만필과 A소좌가 나란히 단 위에 서자 체조교사는 다시 '게이레잇'하고
외쳤다. 동시에 수백명 검은 머리가 일제히 숙였다.
 생각하면 S전문학교의 신임교원 취임식이 이렇게 장엄할 줄이야 미리부터 모를 바 아니었지만
막상 눈 앞에 대하고 보니 김만필은 기가 막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기는 무엇으로 수백명
학생의 경례를 받을 가치가 있는가. 김만필은 예를 받고 섰는 그 짧은 동안에 착잡된 모순의
감정으로 그의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였다. 대학시대에 문학비판회의 한 멤버이었던 일, 졸업하자
'취직'을 위해 일상 속으로 멸시하던 N교수를 찾아갔던 일, N교수로부터 경성의 어떤 유력한
방면으로 소개장을 받던 일, 그리고 서울로 돌아온 후 수차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독일의
좌익문학운동을 소개하던 일, 그리고 H과장의 소개로 작년 가을에 S전문하교 교장을 찾던 일-이
모든 기억은 하나도 모순의 감정 없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인생의 모순의 축도를 자기
자신이 몸소 보이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었다. 지식계급이란 것은 이 사회에서는 이중 삼중 사중
아니 칠중 팔중 구중의 중첩된 인격을 갖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어떤 자는 그 수많은 인격
중에서 자기의 정말 인격을 명확하게 쥐고 있다. 그러나 어떤 자는 자기 자신의 그 수많은
인격에 현황해 끝끝내는 어떤 것이 정말 자기의 인격인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자기는 이 두 가지 중의 어느 것인가? 이 모든 생각이 김만필의 머리를 번개같이 지났다. 그는
학생들이 경례하고 있는 그 짧은 시간이 지긋지긋하게 지리하게 생각되었다. 어째 눈이 핑핑
도는 것 같고 다리가 떨리는 것 같았다.
 식이 끝나고 강당을 나올 때 T교수는 친절히 김만필-아니 김강사의 옆으로 오며,
 "긴상, 몹시 몸이 약하시구먼. 얼굴빛이 대단히 좋지 않은데요. 어디 괴로우십니까?"하고
물었다.
 "아아뇨. 별로 몸에 고장은 없습니다마는-"
 김강사는 등에 식은 땀이 흐른 것을 느끼며 대답하였다.

   2

 김만필은 생전 처음 서는 교단이라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그 날 밤은 늦도록 공부하였다.
학생들의 독일어는 거의 '아-, 베-, 체-'부터 가르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실수가 있을까봐 '아-, 베-, 체-'하고 발음연습까지 해 보았다. 그의 시간은 바로 개학식 다음날
끼어 있었다.
 아침의 교원실은 요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기운찬 소리로 의미 없는 회화를
껄껄거리며 끝없이 계속하였다. 김강사는 원래가 말이 적은데다가 '신마이'고 보니 어디가 말 한
마디 붙여 볼 용기가 없었다. 교원실의 그 소동을 피해 신문실로 들어가 새로 온 독일의 그림
신문을 펴들고 있노라니 문이 열리며 T교수의 벙글벙글하는 친절한 얼굴이 나타났다.
 "어어 여기 와 계셨습니까. 신진 학자는 다르시군."
 김강사는 의미 없이 얼굴을 붉히며,
 "어떠십니까. 오늘은 매우 산들산들합니다."하고 인사에 궁했다. T교수는 신문실로 들어와
김강사 옆에 와 앉으며,
 "바로 이번 첫째 시간이 당신 시간이지요?'
 "네."
 "허...무어, 어련허실 거 아니지만 그래두 당신은 교단에 서시는 것이 처음이 되니까. 더구나
우리 학교로 말하면 XX학생이 섞여 있으니까 한층 더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버릇이란 처음 오는 선생, 더군다나 당신같이 젊은 선생에게는 쓸데없는 질문을 자꾸 해 괴롭게
굽니다. 나도 역시 그 전에 당한 일입니다만 말하자면 학생이 선생을 시험하는 게랄까요. 이
시험에 급제를 해야만 학생들을 다스려 나가지, 만일 떨어지는 날이면 뒤가 몹시 괴롭습니다.
허...어허..." T교수는 말을 끝내고 호걸 같은 웃음을 폭발시켰다. 그러나 김강사는 T교수의
친절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쯤이야 자기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바이지만 아무도
자기한테 좋은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는 이때에 일부러 자기를 찾아와 이런 귀띔을 해주는 것이
몹시 고마웠다.
 T교수는 몇 마디 잡담을 더 하고 곧 일어나 나갔다. 뚱뚱한 몸을 흔들흔들하며 나가는
뒷모양이 김강사에게는 몹시 믿음직해 보였다. 사실을 말하면 김강사는 과거에
문화비판회원이었던 것이 선생으로서는 '정강이의 흠집'인데다가 이 학교를 오게 된 것도 초빙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라 이 학교 교장이 H과장 밑에 꼼짝을 못하는 관계로 또 H과장은 보통 사제
이상으로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 동경 제대 N교수에게 대한 의리로, 이렇게 어쩔 수 없는 관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김만필에게 일주일에 네 시간의 강사의 자리가 차례가 온 것이었으므로
김만필은 이 학교 안에 우선 교장을 필두로 자기를 환영치 않는 공기가 있을 것을 예기하고
있었다. 교장은 정말로 김강사를 싫어서 그러는 것인지 또는 그의 오종종한 성미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그를 별로 환영하지 않는 듯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당연한
일이요. T교수 같이 친절하게 구는 것은 예기치 못하였던 것이다.
 학생들은 예상보다 얌전들 하였다. 김강사는 T교수의 말도 있고 해서 몹시 경계하였으나 아무
일도 없었다. 질문이 있을 때마다 김강사는 '이키 인제 왔누나'하며 원수나 만난 듯이 준비를
차렸지만 일부러 선생을 골탕 먹이기 위한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새로 온 젊은 선생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오는 동정의 빛이 보였다.
 시간을 끝내고 교원실로 돌아오자 T교수는 친절하게도 또 찾아와서 처음 서는 교단의 감상이
어떠냐고 물었다.
 "감상이 무어 별거 있습니까. 학생들은 생각던 것보다 얌전하더구먼요."
 김강사는 학생들이 처음 온 선생에 대해 으레 해 본다는 그 시험에 자기가 합격이나 한 듯이
약간 득의의 웃음을 띠며 대답하였다.
 "그렇지만 긴상, 얌전한 것은 표면뿐입니다. 별별 고약한 놈이 다 있으니까요. 미리 주의해
드립니다마는-"하면서 T교수는 학교 수첩-학생들이 '엠마ㅉ'라 부르는 것-을 꺼내 김강사 앞에
놓고 연필 끝으로 쭉 훑어내려가다가 "우선 이 '스스끼'란 놈만 해도 웬 고약한 놈입니다. 학교는
결석만 하고 모처럼 출석하면 선생한테 시비나 걸려 덤비고 교실에서는 장난이나 치고, 그리구
게다가 품행이 좋지 못해 여학생한테 편지질하기가 일쑤입니다. '스스끼'뿐입니까, 옳지, 이놈이
'야마다'란 놈도 그보다 더함 더했지 덜하진 않은 놈, 또 이 김홍규란 놈도, 옳지, 또 이 '가도'란
놈도. 도대체 이 반은 급장부터 맘에 안 듭니다. 학교성적은 좋지만 성질이 못되어서..."
 김만필은 T교수의 의외의 일변에 기가 막혀 가만히 그의 얼굴을 치어다 보았다. 그의 눈은
충심으로부터의 미움에 타고 있었다. 신참자인 김강사에게 들려주는 친절한 조언으로서는 좀
정도가 지나친다고 생각되리 만치.
 "허지만..."하고 김강사는 T교수의 얼굴빛을 보아 가며 가만히 자기의 의견을 끼웠다.
 "우리는 학생을 대할 때 좀 더 따듯한 마음으로 대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요."
 "허..."하고 T교수는 조금 체면이 안된 듯이,
 "그야 물론 그렇지요. 허지만 학생들이 선생의 그 친절을 받아 주지 않는 데야 어떡하요.
당신도 인제 좀 치어다 보시면 차차 내 생각에 가까워지십니다. 두고 보십시오."
 T교수는 마침 급사가 찾으러 왔으므로 그대로 교무계로 가버렸다. 그러나 김강사는 몹시
우울하였다. T교수가 인격 상 결점이 있는 것인가. 또는 자기가 아직 책상물림에서 지나지 않는
것인가? 그러나 어쨌든 김강사에게는 T교수에게 몹시 탈을 잡히던 '스스끼'라는 학생이 도리어
흥미가 있었다.

   3

 며칠 지난 후 토요일 밤이었다. 김만필은 오래 찾아보지도 못한 H과장에게 치하의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H과장이 교장에게 억지로 떼를 쓴 것이 아니었더라면 김만필은 도저히 S전문학교에
자리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H과장은 조선에 와있는 관리로서는 퍽이나 평민적인 친절한
신사였다.
 H과장의 집은 북악산 밑 관사촌의 북쪽 끝으로 있었다. 저녁 후의 고요한 관사촌은 김만필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쉐퍼어드인지 무서운 개들의 짖는 소리로 몹시 요란스러웠다. 김만필이
H과장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돌려는 순간 등 뒤에서 다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휙 돌리자 바로 등 뒤에까지 온 그 사람의 얼굴과 거의 마주칠 뻔하였다.
 "어!"
 "여! 이거 누구시요."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뒤에 온 것은 무슨 보퉁이를 낀 T교수였다.
 "얏데루나."(할 짓은 다 하는구먼)
 T교수는 김만필의 어깨를 툭 치며 비밀을 서로 통한 사람들끼리만이 서로 주고 받는 그러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의 의미는 김만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베쓰니 얏데루 와께데모 아리마셍가."(별로 무슨 짓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흥 당신도 나는 책상물림으로만 알았더니 상당하구먼."
 T교수는 여전히 그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긴 당신도 아시겠지만 나는 H과장의 힘으로 이번에 취직이 된 것이니까요. H과장은 나의
은인이니까요."
 "그야 물론 그렇지. 그렇구 말구. 나는 H과장하고 고향이 한 곳이라오."
 "네 그러세요."
 김만필은 더 할 말이 없었다.
 T교수는 잠깐 무슨 생각을 하더니 별안간 H과장 집 부엌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며 김만필을
보고,
 "잠깐만 거기서 기다려 주시오. 우리 같이 들어 갑시다."
 "무어요?"
 "허...이거 왜 이러슈. 세상이란 다 이런 게 아니우?"하며 T교수는 손에 들었던 물건을 한 번
번쩍 쳐들어 보이고 부엌 문으로 사라졌다.
 김만필은 T교수가 가지고 들어간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이 꼴을 한번 학생들을 보여
주었으면-하고 생각하니 김만필의 마음은 몹시 우울하였다.
 부엌 속에서 하녀하고 무엇인지 쏘곤쏘곤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T교수는 도로 나왔다.
이번에는 들어갈 때와는 달리 몹시 위엄 있는 태도를 회복하고 있었다.
 "기두르셨지요."
 그는 김만필에게 간단히 말하고는 잠자코 앞서 가서 정면 현관의 초인종을 눌렀다.

 그날 밤 H과장 집에서 나온 후 T교수는 자꾸 어디든지 잠깐 차라도 마시러 같이 가자고
졸랐다. 김만필은 그것을 감사하게는 여길망정 거절할 이유는 없었으므로 그를 따라 갔다.
 두 사람은 '세르팡'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이 집은 김만필도 몇 번 간 일이 있었으나 T교수는
매우 친히 아는 것 같았다. 카운터에 앉은 매몰스럽게 된 여자가 T교수가 문을 들어서자마자
"아라 센세. 이럇샤이마시. 스이붕 오히사시부리네."하고 정떨어지게 외쳤다. 무슨 의미인지
T교수는 입에다 손가락을 대이고 쉬쉬하면서, 그러나 벙글벙글 웃으면서 구석 테이블을
차지하였다.
 "홍차 둥, 위스키를 타 다구."
 T교수는 뽀이에게 주문을 하고 김만필을 보며,
 "긴상, 어떠슈, 술을 잘 하신다지요."
 "천만에요. 조금만 먹으면 빨갛게 올라서..."
 "이거 왜 이러슈. 순 다 듣고 앉았는데, 허...어허..."
 T교수는 의미 모를 너털웃음을 크게 웃고 나서,
 "긴상. 긴상 일은 내 다 잘 알고 있지요. 벌써 작년에 H과장께 당신 말씀을 들었어요.
사실은...이거 무어 내가 공치사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교장하에 추천한 것도 실상은 개가 한
것이지요. 허...어..."
 김만필은 T교수의 후림대와 너털웃음에 몹시 야비한 느낌을 받았으나 하여간 고개를 숙여
그에게 감사의 표정을 아니할 수 없었다. T교수가 무엇 때문에 자기를 추천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H과장의 명령을 교장에게 전하는 일만은 하였음직한 일이었다.
 T교수는 차를 한숨에 마시고 이번에는 알짜 위스키를 청하며,
 "당신은 나를 모르셨겠지만 나는 당신을 이왕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저 작년부터
나는 조선말을 공부하느라고요."
 김만필은 T교수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T교수가 배우는 조선말과 김만필과의 사이에 무슨 연락이 있단 말인가? T교수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김만필에게 친밀의 감정을 표시하기 위한 것 같았으나 김만필은 무슨 말이 또 나올는지
몰라 슬그머니 겁이 나는 것이었다.
 "...조선말을 배우느라고 신문에 나는 소설과 논문을 학생더러 통역해 달래며 읽었는데 우연히
당신이 쓰신 '독일 신흥 작가 군상'이란 논문을 읽었어요. 정말 경복하였습니다. 독일문학에 대해
당신만침 연구와 이해가 깊은 이는 온 일본 안에도 적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H과장 집에서
당신 이야기가 났을 때 그런 분을 우리 학교에 맞았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속으로 대단
바랐던 것입니다. 허, 허허 좋은 일입니다. 앞으로 많이 써 주십시오."
 김만필은 상처나 다친 듯이 속이 뜨끔하였다. 도대체 이런 말을 하는 T교수의 내심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작년 겨울에 조선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일 신흥작가 군상'이란 논문은 몇 푼
안되는 원고료를 목표로 총총히 쓴 것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그 논문의 내용은 독일 좌익
작가의 활동을 소개한 것이므로 지금 그런 종류의 일은 그의 S전문학교에서의 지위를 위해서는
절대로 비밀에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밀을 T교수가 일부러 쳐들어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라느니보다 도리어 위협으로 들렸다. 도대체 T교수는 무슨 까닭으로 김만필에게 친절을
억지로 보이려는 것일까 모를 일이었다.
 '세르팡'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얼근히 취하고 시간도 열 한시가 지났었다. 그러나 T교수는
어디든가 한 군데 더 다녀 가자고 놓지 않았다. T교수는 몹시 명랑한 태도로 앞장을 서서
'바하트 암 라인'을 콧노래로 부르며 아사히마찌(욱정) 어느 뒷골목 깨끗하게 차린 오뎅집 노렝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에도 그는 가끔 오는 눈치인 것이 삼십이 넘을락 말락한
게이샤(기생) 퇴물인 듯 싶은 여자가 아까 '세르팡'의 마담이 외치던 것과 똑 같은 소리로 외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센세'를 '센세이'라고 발음하는 것만이 달랐다.
 김만필과 T교수가 그 오뎅집을 나왔을 때에는 둘이 다 비틀걸음을 쳤다. '삼월백화점' 앞에
와서 T교수는 단장을 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불렀다. 걸어 가겠으니 택시는 일없다고 김만필이
사양하니까 전차도 끊어졌는데 여기서 동소문 안까지 어떻게 걸어 가느냐, 당신 집이 우리집에서
가깝지 않으냐라고 T교수는 말했다.
 "아니 우리 집은 어떻게 아십니까?"
 김만필은 너무나 의외여서 물었다.
 "아다마다요. 더러 대문 앞으로 지나다니는 걸요. 긴상 문패가 붙었기에 그저 그런가 했지요.
우리 집은 긴상 댁에서 바로 거깁니다. 그 저 O씨의 커다란 문화 주택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밑입니다. 인제 자주 놀러 오세요."
 "네 놀러 가지요."하고 김만필은 대답했으나 속심으로는 결단코 T교수를 찾아가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어째서 그는 탐정견 같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일까? 그와
교제를 계속하면 할수록 자기는 손해만 볼 것같이 생각되었다.
 자동차가 박석고개를 전속력으로 넘어갈 때 T교수는 김만필의 귀에다 대고,
 "인제 차차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 안에도 여러 가지 세력이 있어 대단 시끄럽습니다. 긴상도
주의하시오. 그리고 O군에게도 주의하시오."하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속삭였다. O라는 사람은
지난 봄부터 S전문학교의 독일어 강사로 있는 사람이었다. 인물이 심술궂게 된 데다가 김만필과
같은 독일어 선생이므로 어찌 생각하면 경쟁자의 입장에 있는 듯도 하나 O의 우월한 지위는
도저히 김만필의 대적이 아니었으며 또 김만필은 일주일에 네 시간이든 한 시간이든 시간을
얻은 것만 고마웠지 그것을 오래 하리라, 또는 좀 더 얻어 보리라는 욕심도 없었던 것이다.
 김만필이 무슨 영문을 모르고 대답을 못하고 있노라니까 T교수는 별안간 껄껄 웃으며,
 "아니 무어 별로 마음에 새겨 들을 것은 없습니다. 그저 그렇단 말이지요."
 "그렇습니까."
 김만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떨어진 대답을 하였다. 무슨 무서운 악몽에 붙들린 것 같아서
일각이라도 빨리 T교수의 옆을 떠나고 싶었다.

   4

 S전문학교에는 김만필은 일주일에 이틀밖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틀이 김강사에게는
여간 큰 부담이 아니었다. 첫째로 그 쭈그렁 밤송이-외양도 맘씨도 쭈그랑 밤송이 같은 교장을
생각하면 당초에 정이 뚝 떨어졌다. 교무계에를 가면 T교수가 너털웃음을 치며 친절스레 말을
거는 것이 무서웠고, 교원실에를 가면 모두가 제 잘났다고 김강사 같은 것은 위쪽 눈으로
거들떠도 안 보는데다가 언젠가 T교수가 주의하라고 말하던 O강사의 그 심술궂게 생긴 낯짝도
보기가 싫었다. 하루 이틀 지나가는 동안에 김강사는 학교에 나가도 교장실에도 교무계에도
들르지 않고 교원실에 모자를 벗어 걸고는 바로 신문실로 들어가 독일서 온 신문, 잡지를 펴들고
종 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교실에서는 언젠가 T교수가 귀뜸해 주던 '스스끼'라는 학생에게 특별히 주의를 했으나 별로
시비를 걸려는 눈치도 안보이고 평범하게 착실히 공부하는 모양이었다. 가끔 역독을 시켜 보아도
번번히 예습을 해 온 것이었다.
 시월 하순의 어느 일요일, 아침 후 김만필이 자기 집에서 새로 도착한 '룬드 샤우'를 펴들고
있노라니까 마당에서 '긴센세이'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보니 그것은 의외에도 무슨
책을 옆에 낀 '스스끼'였다. T교수의 말이 생각났으나 도리어 반가운 생각이 나서 반갑게 방으로
청해 들었다.
 '스스끼'라는 학생은 광대뼈가 약간 내밀고 아래턱이 크게 생긴 것이 조선사람의 얼굴 비슷한
데다가 고집이 좀 있어 보였다. 그 얼굴의 인상이 T교수를 불쾌케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말하는 품은 그의 생김생김과는 달리 상냥하고도 조리가 있어 두뇌가 명석함을 보였다. 그는
독일어는 배우기 시작한 지 아직 일년도 안되었건만 독일문학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더구나 그 해 봄에 '히틀러'가 독일의 정권을 잡은 뒤의 일은 김만필의 '취직'에 쪼들려 자세히
알아볼 여유가 없었던만치 '스스끼'가 도리어 더 자세하였다.
 "'에른스트 톨러' '게오르그 카이서' '렌 레마르크' 심지어 '토마스 만' 형제까지 예술원을 쫓겨
났다지요?"
 "그랬지요."
 김만필은 어디가지든지 '스스끼'를 경계하면서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야기는 문학자 박해로부터
파시즘 자체의 공격으로 들어갔다. '스스끼'는 열을 띠어 가며 '히틀러'를 공격하였다. 처음
찾아온 김만필을 어째서 그리 신용하는지 '스스끼'는 할 말 아니할 말 섞어 떠들었다. 그
이야기하는 폼이 몹시 단순하였다. 만일 '스스끼'가 김만필이 이외의 선생을 찾아가, 이를테면
T교수 같은 이를 찾아가 그런 말을 떠들어 댄다면 미움을 받을 것은 정한 이치였다.
 이야기는 파시즘으로부터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스스끼'는 S전문학교 학생들이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이 그 시 그 시의 생활에 도취되어 있는 것을 몹시 공격하고 그것도 다 시세의 변천,
학교당국의 가혹한 탄압 때문이라고 불평을 말했다.
 "선생님이 동경제대서 문화비판회원으로 활동하실 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지요?"
 '스스끼'는 김만필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문화비판회요? 내가?"
 '스스끼'의 질문은 김강사에게는 청천의 벽력-까지는 안 가더라도 너무나 의외였다. 김만필은
취직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그가 일찍이 문화비판원이었던 것을 아무에게도 말한 일이 없고,
그것이 혹시나 알려질까봐 몹시 주의해 왔던 것이다.
 "'문화비판'이라니요?"
 "선생님이 그 회원으로 굉장하게 활동하신 것은 학생들이 모두들 압니다."
 '스스끼'는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하였다.
 "아아뇨. 그건 무슨 잘못이겠죠. 나는 그런 회는 잘 모르는데."
 김만필은 모처럼 얻은 그의 지위와 자기의 양심과를 저울에 달아 가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세요?" '스스끼'는 몹시 의외라는 표정을 하면서,
 "아 그 회가 해산할 때 선생님이 일장 연설까지 하셨다는데요?"
 그것은 사실이었다. 또 그 사실은 지금의 김강사로서 결코 후회하는 사실은 아니다. 그러나
대체 자기의 현재 지위에 불리한 이러한 소문은 어디로부터 나는 것일까? 김강사는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 중의 이 사람 저 사람을 생각해 보았으나 자기의 과거를 암직한 사람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소문은 대체 어디서 들었소?"
 "요전 '다까하시'라는 학생이 T교수한테 놀러 갔더니 T선생님이 그러시더래요."
 T선생님이 무어라구?"
 "김선생은 그만침 수재시라구요."
 '스스끼'는 김강사의 질문에 고만 겸연쩍어 얼굴이 붉어지며 웃는 얼굴을 지었다. T교수는 또
어떻게 해서 그런 사실을 알았으며 알았기로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학생들에게 펴놓는 것일까?
필연코 그것은 무슨 계교를 쓰는 것에 틀림없다고 생각되었다. 이것은 정녕코 김강사를 먹으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김만필에게는 오늘 자기를 찾아와 독일 문학으로부터 '히틀러'와
파시즘과 현 사회정세의 공격까지를 탁 터놓고 이야기하던 '스스끼'의 본심까지도 의심되기
시작하였다. 의심을 시작하고 보면 다음다음 끝이 없었다. 대체 개학식 다음날 왜 T교수는
유난스럽게도 '스스끼'의 험담을 자기에게 들려 주었을까? H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에 왜
T교수는 자기에게 한턱을 써가며 친절을 보여주면서 슬그머니 자기의 비밀을 아는 것을
암시하였을까? 그리고 이 '스스끼'란 학생은 사실은 T교수와 한통이어서 오늘 김만필의 본심을
한 번 떠보려 온 것이나 아닐까?...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김만필은 공연히 모든 것이 무서워지며
앞에 앉았는 '스스끼'의 얼굴이 별안간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도리어 의외라는 듯이 김만필의
얼굴을 치어다보고 있었다. 김만필은 '이 놈이 이렇게 순진한 체하고 있어도 실상은 T교수의
스파이이기가 쉽다'하고 생각하니 '스스끼'의 그 놀란 듯한 표정이 도리어 가증스럽고도
무서웠다. '스스끼'는 흥이 깨진 듯이 한참 앉았다가 모자를 들고 일어선다. 그의 얼굴에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미처 결단을 못해 곤각하는 표정이 떴다. 일어선 채 잠깐 머뭇거리더니
그는 결심한 듯이 소리를 낮추어,
 "사실은 선생님께 청이 있어 왔는데요."하고 김만필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고,
 "우리 반 안에 조금 생각 있는 동무 몇이 모여 독일학문연구의 그룹을 맨들었는데 선생님이 좀
참가해 주시지 못할까요?"
 '스스끼'의 목소리는 몹시 진실하였다. 그러나 불안과 회의에 쪼들린 김만필에게는 모든 것이
자기를 해하려는 흉계로만 들렸다.
 "바빠서 난 참가 못 하겠소."
 그는 단번에 '스스끼'의 청을 딱 거절했다.
 "선생님 틈 계신대로라도..."
 '스스끼'는 다시 열심으로 청했다.
 김강사는 여전히 딱 잡아 떼었다.
 "정 그러시면 하는 수 없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스스끼'는 몹시 실망한 낯으로 모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문을 나갔다.

   5

 '스스끼'가 찾아왔다 간 후 김만필의 우울은 한층 더 심했다. 일종의 강박관념에 쪼들리는
정신병자 같이 김만필은 항상 무엇엔가 마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우울은 또 그의
태도를 한층 더 비겁하게 하였다.
 그는 S전문학교에 가면 어째 모든 사람이 자기를 손가락질하며 공론하는 것 같아 점점 더
동료들과 말을 하기도 싫어졌다. 교장도 T교수도 H과장까지도 영영 찾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T교수는 가끔 자진해 김강사를 찾아와 말을 붙였지만 교장은 가을 이후 겨우 두서너번 낭하에서
마주쳐 간단히 인사를 교환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날이 감에 따라 김강사는 S전문학교 직원 사이의 공기를 차차로 짐작하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나 지금 세력을 잡고 있는 교장과 T교수의 일파가 대가리를 휘젓고 있고
그에 대항해 물리학의 S교수와 독일어의 O강사가 대립해 있는 듯싶었다. 김만필은 그 어느
편에도 가담할 이유도 자격도 없었으나 교장과 T교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슬그머니 O강사편으로
동정이 갔다.
 S교수는 교장 반대파라 해도 비교적 든든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O강사는 까닥하면 이
두 파의 알력의 희생이 될 듯싶어 과부의 설움은 과부가 아는 격으로 그에게로 동정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O강사의 심술궂게 된 얼굴과 김강사의 '히포콘드리아'는 결합될 기회가 없이 지냈다.
 흐린 가을 하늘에서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고 가게 처마마다 '세모 대매출'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아침, 김강사는 수업하러 들어가다가 낭하에서 T교수와
마주쳤다.
 "몹시 춥습니다."
 "대단 추운데요."
 인사를 던지고 지나려니까 T교수는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저 잠깐만"하고 돌아서서 김강사를 멈추었다.
 "저 이런 말씀은 허기가 좀 무엇하구먼두-"하고 T교수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소리를 낮추어,
 "긴상 가을 생각하세요? 저 H과장 집에서 만나던 밤..."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김강사는 잠자코 T교수를 쳐다만 보았다. T교수는 여전히 웃으며,
 "내가 과자상자 들고 간 것 보았지요. 세상이란 다 그런 겝니다. 우리 교장도 그런 것을 대단
생각하는 사람이니 연말도 되구 허니 한 번 과자나 한 상자 사 가지구 찾아가 보시란 말이오."
 "흐..."
 김강사는 할 말이 없어 얼굴을 삐뚤어 뜨린 웃음으로 대답하고 그대로 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 시간에는 가르치는 데는 정신이 하나도 없고 T교수의 그 말에만 정신이 팔렸다.
T교수는 대체 무슨 동기로 자기에게 그런 말을 또 들려주는 것일까? 친절인가? 조롱인가?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T교수의 그 말로 교장이 김강사에게 대해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짐작 할 수 있었다.
 그 날 밤에 김강사는 '명치옥'에 가서 서양과자를 한 상자 샀다. 윗 덮개에 교장의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자기의 명함을 붙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서는 종시 두 가지 의사가 싸우고 있었다.
창피하다. 아무리 '자리'를 위해서라 해도 차마 이 짓만은 할 수 없다. 이제 이왕 노염을 산
다음에야 이까짓 과자상자를 사다 주면 무얼 하느냐. 도리어 노염을 돋을 뿐이다. 내가 이것을
사다 주며는 등뒤에서 T가 그 능글능글한 웃음을 띠고 나의 어리석음을 조소할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않아. 이것이 세상이 아닌가. 나는 나의 선물을 받고 기뻐하고 또는 나의 어리석은
심정을 조롱하는 사람을 도리어 경멸하면 그만 아닌가. 선물을 보내는 것 때문에 더럽혀지는
것은 나의 인격이 아니라 도리어 받는 자의 인격이 아닌가...
 그러나 김강사는 드디어 그 과자상자를 교장의 집에까지 가지고 갈 용기는 없었다. 전차를
타고 가다 말고 중간에서 내려 한참이나 헤매다가 생각난 것이 욕심쟁이로 일가 간에 돌림뱅이가
난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뜻 아니한 선물에 무슨 영문을 모르고 그러나 넌지시 과자상자를
받아 들였다.

   6

 어느덧 동기 휴가가 되고, 새해가 되고, 다시 학교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김강사는
아무데도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책상 위에는 먼지가 쌓이고, 외국서 온 신문, 잡지는 겉봉도
안 뜯긴 채 방안에 흩어졌으나 그것을 정돈하기도 싫었다. 김강사는 아침에 일어나서는 밥을 한
술 떠넣고 바람 부는 거리로 헤매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피곤하면 거리에 갑자기 많아진 찻집을
찾아 정신나간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는 점점 더 피곤을 느꼈다. 감당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모순을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어느 편으로든가 그는 그 모순의 터져
나갈 길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그것을 구할 방도와 용기가 없는 것이었다.
 -L' ennui Lui vint.
 벌써 칠팔년 전에 읽던 '도 오데'의 소설에서 우연히 기억한 이 짧은 구절이 무슨 깊은 의미나
가진 것처럼 매일 같이 머리에 떠올랐다.
 T교수는 겨울 동안에 몸이 한층 더 뚱뚱해진 것 같았다. 아무리 추워도 답답하다고 바지
밑에는 잠뱅이 하나밖에 안 입고 다니건만 얼굴은 기름이 번질하게 흐르고 붉은 빛이
이글이글하였다. 교무실 안은 그의 너털웃음과 떠드는 소리로 일상 떠들썩 하였다. 겨울 이후로는
그는 조선의 민속을 연구한다고 젊은 무당과 양금 가야금 뜯는 기생을 돼지 떼처럼 몰고
돌아다녔다. 학교에서는 누구를 붙들기만 하면 무당의 신장 내리는 신비에 대해 끝없는 열변을
토하였다. 그러나 T교수가 젊은 무당이나 기생을 데리고 무엇을 연구하는지 아무도 모르듯이, 또
그가 일상 떠들고 웃고 하는 이면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루는 T교수가 또 예의 인품 좋은 웃음을 띠고 김강사를 찾아와 집으로 나가는 길에 잠깐
어디로 같이 가자고 청했다. 김강사는 지금까지 T교수와 접촉해서 유쾌한 기억을 가진 일은
한번도 없었으나 어쨌든 또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언젠가 같이 갔던 '세르팡'이라는 찻집으로 갔다. 그러나 T교수의 이야기는 또
언제나 마찬가지로 불쾌한 것이었다.
 "어제 저녁에 H과장을 만났더니 긴상을 좀 만나자고 그럽디다...우리 교장의 성미는 내가 잘
아니까 요전에도 무슨 과자상자라도 갖다주라니까 아마 안 그랬지요. 허...긴상은 실례의 말이지만
아직 세상을 모르단 말요. 무슨 말이 어떻게 들어 갔는지 나는 모르지만 어째 도무지 공기가 좀
재미 없는 듯하던 걸요. 아마 H과장도 이 근래는 한 번도 안 찾아 갔지요. 그것도 다 긴상의
서뿔은 짓이란 말씀이오. 긴상으로 말하면 H과장의 추천으로 들어왔겠다. 잘만 하면 차차 시간도
더 얻을 수 있구 할 텐데 왜 '헤다'를 한단 말씀요."
 T교수는 충심으로 김강사를 동정하는 눈치를 보였다. 어찌 생각하면 그 말도 그럴 듯한 말이나
김만필에게는 어째 T의 하는 말이 뺨치고 등 만지는 수작같이 생각되었다.
 "네 잘 알았습니다. H과장은 곧 찾아가지요."
 그는 침이나 뱉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날 밤으로 곧 H과장을 찾아갔다. 불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H과장 집 현관에는 마침 손이 있는지 구두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응접실에는 H과장
혼자서 앉아 있었다. 하녀가 와서 테이블 위의 찻종을 치우고 있는 것이 누가 왔다가 금방 간
모양이다.
 H과장은 웬 일인지 노기가 등등해 앉아 있었다. 일상의 그 온후하던 안색은 간 곳 없고
독살스런 눈으로 김만필을 노려 보았다.
 "무얼 하러 왔나."
 그는 김만필이 방을 들어서자마자 대고 쏘았다. 김만필은 너무나 의외여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겨우 대답하였다.
 "T 말이 과장께서 좀 만나자고 하신다기에..."
 "만나자고 해야만 만나겠다. 자네한테 긴할 때는 자꾸 찾아오고 자네한테 일 없이 되니까 발을
뚝 끊는 그런 실례의 경우가 어디에 있나. 그러기에 조선 사람은 배은망덕을 한다고들 하는
게야."
 "잘못 되었습니다."
 김만필은 앉지도 못하고 과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다. 하녀가 차를 가져 왔다. H과장은
노한 소리로 한층 높여,
 "자네는 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나. 나는 자네만 믿었지. 남을 그렇게 감쪽같이 속여 남의
얼굴에 똥칠을 해주는 그런 법이 어디 있나."
 "제가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속이다니요? 자네는 내한테 와서 취직 청을 할 때 무어라고 그랬어. 사상방면에는 절대로
관계없다고 그랬지. 그래 그렇게 남을 감쪽같이 속이는 데가 어디 있나."
 올 것이 온 것이다, 라고 김만필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고 보면 어디까지 한 번
버티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상이니 무어니 그런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더군다나 과장님을 속이다니요. 그건 천만의 말씀입니다."
 "무엇! 그래도 자네는 나를 속이려나?"
 H과장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찻종을 덜그럭 하고 놓고 의자를 뒤로 떼밀며 몸을 벌떡 젖혔다.
 그때의 이웃방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며 언제나 일반으로 봄 물결이 늠실늠실하듯 온 얼굴에
벙글벙글 미소를 띤 T교수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이상(1911__1937)
 본명은 김해경으로 다재다능하여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 수필도 썼다. 그는 36년대를
전후하여 유행된 자의식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서 작품에는 "동해", "봉별기", "종생기" 등이
있다. 1930년 9월에는 "오감도" 등의 난해시를 발표하여 문학계 일대의 큰 충격을 주었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날개"는 1936년 월간지 "조광"에 발표되었는데, 심리주의적 경향이
농후한, 고도로 지식화한, 극도로 피곤한 지식계급의 신경과 그 신경이 가져오는 무한도의
자의식 세계의 분열을 악착스럽게 추구한 작품이다. 본래 신경질적이고 폐결핵이었던 그는
이러한 자학적 자의식의 세계에서 심리적 심층을 파고든 특색 있는 작품을 남겼다.

    날개
    "조강" 1936. 9.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육신이 흐느적 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니코틴이 내 회배 앓는
뱃속으로 스미면 머릿속에 으레 백지가 준비되는 법이오.
 그 위에다 나는 위트와 파라독스를 바둑 포석처럼 늘어놓소. 가중할 상식의 병이오.
 나는 또 연인과 생활을 설계하오. 연애기법에마저 서먹서먹해진 지성의 극치를 흘깃 좀
들여다본 일이 있는, 말하자면 일종의 정신분일자 말이오. 이런 여인의 반--그것은 온갖 것의
반이오--말을 영수하는 생활을 설계한다는 말이오. 그런 생활 속에 한 발만 들여 놓고 흡사 두
개의 태양처럼 마주 쳐다보면서 깔깔거리는 것이오. 나는 아마 어지간히 인생의 제행이 싱거워서
견딜 수가 없게쯤 되고 그만둔 모양이오. 굿바이.

 굿바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제일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하는 아이로니를 실천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소. 위트와 파라독스와... 그대 자신을 위조하는 것도 할 만한 일이오.
 그대의 작품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기성품에 의하여 차라리 경편하고 고매하리라.
 십구세기는 될 수 있거든 봉쇄하여 버리오. 도스토예프스키 정신이란 자칫하면 낭비일 것 같소.
위고를 불란서의 빵 한 조각이라고는 누가 그랬는지 지언인 듯 싶소. 그러나 인생 혹은 그
모형에 있어서 디테일 때문에 속는다거나 해서야 되겠소? 화를 보지 마오. 부디 그대께 고하는
것이니.
 (테이프가 끊어지면 피가 나오. 상채기도 머지 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바이.)

 감정은 어떤 포오즈. (그 포오즈의 원소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지 나도 모르겠소.)
 그 포오즈가 부동자세에까지 고도화한 때 감정은 딱 공급을 정지합네다.

 나는 내 비범한 발육을 회고하여 세상을 보는 안목을 규정하였소.
 여왕봉과 미망인-세상의 하고 많은 여인이 본질적으로 이미 미망인 아닌 이가 있으리까? 아니!
여인의 전부가 그 일상에 있어서 대개 '미망인'이라고 내 논리가 뜻밖에도 여성에 대한 모독이
되오? 굿바이.

 그 삼삼번지라는 것이 구조가 흡사 유곡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다.
 한 번지에 열 여덟 가구가 주욱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 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
같다. 게다가 각 가구에 사는 사람들이 송이 송이 꽃과 같이 젊다. 해가 들지 않는다.
 해가 드는 것을 그들이 모른 체하는 까닭이다. 턱살 밑에다 철줄을 매고 얼룩진 이부자리를
널어 말린다는 핑계로 미닫이에 해가 드는 것을 막아 버린다.
 침침한 방안에서 낮잠들을 잔다.
 그들은 밤에는 잠을 자지 않나? 알 수 없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잠만 자느라고 그런 것을 알 길이 없다. 삼삼번지 열 여덟 가구의 낮은 참
조용하다.
 조용한 것은 낮 뿐이다. 어둑어둑하면 그들은 이부자리를 걷어들인다. 전등불이 켜진 뒤의
열 여덟 가구는 낮보다 훨씬 화려하다. 저물도록 미닫이 여닫는 소리가 잦다. 바빠진다. 여러
가지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비웃 굽는 내. 탕고 도오랑내, 뜨물 내, 비눗 내.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들의 문패가 제일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다.
 이 열 여덟 가구를 대표하는 대문이라는 것이 일각이 져서 외따로 떨어지기는 했으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번도 닫힌 일이 없는 한길이나 마찬가지 대문인 것이다. 온갖 장사아치들은
하루 가운데 어느 시간이라도 이 대문을 통하여 드나들 수 있는 것이다. 이네들은 문간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미닫이만 열고 방에서 두부를 사는 것이다. 이렇게 생긴 삼삼번지
대문에 그들 열 여덟 가구의 문패를 몰아다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들은 어느 사이엔가 각
미닫이 위 백인당이니 길상당이니 써 붙인 한 곁에다 문패를 붙이는 풍속을 가져 버렸다.
 내 방 미닫이 위 한 곁에 칼표 딱지를 넷에다 낸 것 만한 내-아니! 내 아내의 명함이 붙어
있는 것도 이 풍속을 쫓은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그러나 그들의 아무와도 놀지 않았다. 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사도 않는다. 나는 내
안내와 인사하는 외에 누구와도 인사하고 싶지 않았다.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과 인사를 하거나 놀거나 하는 것은 내 아내 낯을 보아 좋지 않은 일인
것만 같이 생각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만큼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내 아내를 소중히 생각한 까닭은 이 삼삼번지 열 여덟 가구 속에서 내 아내가 내
아내의 명함처럼 제일 작고 제일 아름다운 것을 안 까닭이다. 열 여덟 가구에 각기 별러 들은
송이송이 꽃들 가운데서도 내 아내가 특히 아름다운 한 떨기의 꽃으로 이 함석지붕 밑 볕 안
드는 지역에서 어디까지든지 찬란하였다. 따라서 그런 한 떨기 꽃을 지키고-아니 그 꽃에
매어 달려 사는 나라는 존재가 도무지 형언할 수 없는 거북살스러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나는 어디까지든지 내 방이-집이 아니다. 집은 없다-마음에 들었다. 방안의 기온은 내 체온을
위하여 쾌적하였고, 방안의 침침한 정도가 또한 내 안력을 위하여 쾌적하였다. 나는 내방 이상의
서늘한 방도 또 따뜻한 방도 희망하지 않았다. 이 이상으로 밝거나 이 이상으로 아늑한 방을
원하지 않았다. 내 방은 나 하나를 위하여 요만한 정도를 꾸준히 지키는 것 같아 늘 내 방에
감사하였고 나는 또 이런 방을 위하여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만 같아서 즐거웠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하는 것을 계산하는 것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행복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불행하다고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그
날을 그저 까닭없이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이었던 것이다.
 내 몸과 마음에 옷처럼 잘 맞는 방 속에서 딩굴면서, 축 처져 있는 것은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그런 세속적인 계산을 떠난, 가장 편리하고 안일한, 말하자면 절대적인 상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가 좋았다.
 이 절대적인 내 방은 대문간에서 세어서 똑 일곱째 칸이다. 럭키 세븐의 뜻이 없지 않다. 나는
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훈장처럼 사랑하였다. 이런 이 방이 가운뎃 장지로 말미암아 두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는 그것이 내 운명의 상징이었던 것을 누가 알랴.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 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 해지면서
나가버린다. 해가 영영 들지 않는 웃방이 즉 내 방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볕 드는 방이
아내 방이요, 볕 안 드는 방이 내 방이요 하고 아내와 나 둘 중에 누가 정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평이 없다.
 아내가 외출만 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와서 그 동쪽으로 난 들창을 열어 놓고 열어 놓으면
들이비치는 햇살이 아내의 화장대를 비쳐 가지각색 병들이 아롱이지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이렇게
빛나는 것을 보는 것은 다시 없는 내 옭이다. 나는 조그만 돋보기를 꺼내 가지고 아내만이
사용하는 지리가미를 꺼내 가지고 그슬려 가면서 불장난을 하고 논다. 평행광선을 굴절시켜서 한
촛점에 모아 가지고 그 촛점이 따끈따끈해지다가, 마지막에는 종이를 그슬기 시작하고 가느다란
연기를 내면서 드디어 구멍을 뚫어 놓는 데까지에 이르는 고 얼마 안 되는 동안의 초조한 맛이
죽고 싶을 만큼 내게는 재미있었다.
 이 장난이 싫증이 나면 나는 또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논다. 거울이란 제
얼굴을 비칠 때만 실용품이다. 그 외의 경우에는 도무지 장난감인 것이다. 이 장난도 곧 싫증이
난다. 나의 유희심은 육체적인 데서 정신적인데로 비약한다. 나는 거울을 내던지고 아내의 화장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나란히 늘어 놓인 그 가지각색의 화장품 병들을 들여다 본다.
 고것들은 세상의 무엇보다도 매력적이다. 나는 그 중의 하나만을 골라서 가만히 마개를 빼고
병구멍을 내 코에 대고 숨죽이듯이 가벼운 호흡을 하여본다. 이국적인 센슈얼 한 향기가 폐로
스며들면 나는 저절로 스르르 감기는 내 눈을 느낀다. 확실히 아내의 체취의 파편이다.
 난 도로 병마개를 막고 생각해 본다. 아내의 어느 부분에서 요 냄새가 났던가를...그러나 그것은
분명하지 않다. 왜? 아내의 체취는 여기 늘어섰던 가지각색 향기의 합계일 것이니까.

 아내의 방은 늘 화려하였다. 내 방이 벽에 못 한 개 꽂히지 않은 소박한 것인 반대로 아내
방에는 천정 밑으로 쫙 돌려 목이 박히고 못마다 화려한 아내의 치마와 저고리가 걸렸다. 여러
가지 무늬가 보기 좋다. 나는 그 여러 조각의 치마에서 늘 아내의 동체와 그 동체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포오즈를 연상하고 연상하면서 내 마음은 늘 점잖지 못하다.
 그렇건만 나에게는 옷이 없었다. 아내는 내게 옷을 주지 않았다. 입고 있는 골덴 양복 한 벌이
내 자리옷이었고 통상복과 나들이옷을 겸한 것이었다. 그리고 하이넥크의 스웨터가 한 조각
사철을 통한 내 내의다. 그것들은 하나 같이 다 빛이 검다. 그것은 내 짐작 같아서는 즉 빨래를
될 수 있는 데까지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나는 허리와 두 가랑이 세 군데 다-고무 밴드가 끼어 있는 부드러운-사루마다를 입고 그리고
아무 소리없이 잘 놀았다.

 어느덧 손수건만해졌던 볕이 나갔는데 아내는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요만 일에도 좀
피곤하였고 또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내 방으로 가 있어야 될 것을 생각하고 그만 내 방으로
건너간다. 내 방은 침침하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 쓰고 낮잠을 잔다. 한 번도 거둔 일이 없는 내
이부자리는 내 몸뚱이의 일부분처럼 내게는 참 반갑다. 잠은 잘 오는 적도 있다. 그러나 또
전신이 까칫까칫하면서 영 잠이 오지 않는 적도 있다. 그런 때는 아무 제목으로 제목을 하나
골라서 연구하였다. 나는 내 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참 여러 가지 발명도 하였고 논문도 많이
썼다. 시도 많이 지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잠이 드는 것과 동시에 내 방에 담겨서 철철
넘치는 그 흐늑흐늑한 공기에다 비누처럼 풀어져서 온데간데가 없고 한참 자고 깬 나는 속이
무명 헝겊이나 메밀 껍질로 띵띵 찬 한 덩어리 베개와도 같은 한벌 신경이었을 뿐이고 뿐이고
하였다.
 그러기에 나는 빈대가 무엇보다도 싫었다.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쓰라리다. 그것은 그윽한 쾌감에 틀림
없었다. 나는 혼곤히 잠이 든다.
 나는 그러나 그런 이불 속의 사색 생활에서도 적극적인 것을 궁리하는 법이 없다. 내게는 그럴
필요가 대체 없었다. 만일 내가 그런 좀 적극적인 것을 궁리해 내었을 경우에 나는 반드시 내
아내와 의논하여야 할 것이고 그러면 반드시 나는 내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것이고-나는
꾸지람이 무서웠다느니 보다는 성가셨다. 내게 제법 한 사람의 사회인의 자격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아내에게 사설 듣는 것도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다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로웠다. 생활이 스스로웠다. 모두가 서먹서먹할 뿐이었다.
 아내는 하루에 두 번 세수를 한다.
 나는 하루 한 번도 쑤를 하지 않는다.
 나는 밤중 세시나 네시쯤 해서 변소에 갔다. 달이 밝은 밤에는 한참씩 마당에 우두커니 섰다가
들어오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열 여덟 가구의 아무와도 얼굴이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열 여덟 가구의 젊은 여인네 얼굴들을 거반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아내만 못하였다.
 열한 시쯤 해서 하는 아내의 첫 번 세수는 좀 간단하다. 그러나 저녁 일곱시 쯤해서 하는 두
번째 세수는 손이 많이 간다. 아내는 낮에 보다도 밤에 더 좋고 깨끗한 옷을 입는다. 그리고 낮에
외출하고 밤에도 외출하였다.
 아내에게 직업이 있었던가?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만일 아내에게 직업이
없었다면 같이 직업이 없는 나처럼 외출할 필요가 생기지 않을 것인데-아내는 외출한다. 외출할
뿐만 아니라 내객이 많다. 아내에게 내객이 많은 날은 나는 온 종일 내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만 한다.
 불장난도 못한다. 화장품 냄새도 못 맡는다. 그런 날은 나는 의식적으로 우울해 하였다. 그러면
아내는 나에게 돈을 준다. 오십전짜리 은화다. 나는 그것이 좋았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에 써야
옳을지 몰라서 늘 머리맡에 던져두고 두고 한 것이 어느 결에 모여서 꽤 많아졌다. 어느 날
이것을 본 아내는 금고처럼 생긴 벙어리를 사다 준다. 나는 한 푼씩 한 푼씩 그 속에 넣고
열쇠는 아내가 가져갔다. 그 후에도 나는 더러 은화를 그 벙어리에 넣은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게을렀다. 얼마 후 아내의 머리 쪽에 보지 못하던 누깔잠이 하나 여드름처럼 돋았던 것은
바로 그 금고형 벙어리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나는 드디어 머리맡에 놓였던
그 벙어리에 손을 대지 않고 말았다. 내 게으름은 그런 것에 내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싫었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이불 속으로 암만 깊이 들어가도 비 오는 날 만큼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나는 그런 때 아내에게 왜 늘 돈이 있나 왜 돈이 많은가를 연구했다.
 내객들은 장지 저쪽에 내가 있는 것을 모르나 보다. 내 아내와 나도 좀 하기 어려운 농을 아주
서슴지 않고 쉽게 해 던지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아내를 가운데 서너 사람의 내객들은 늘 비교적
점잖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자정이 좀 지나면 으레 돌아들 갔다. 그들 가운데는 퍽 교양이 얕은
자도 있는 듯 싶었는데 그런자는 보통 음식을 사다 먹고 논다. 그래서 보충을 하고 대체로
무사하였다.
 나는 우선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연구하기에 착수하였으나 좁은 시야와 부족한
지식으로는 이것을 알아 내기 힘이 든다. 나는 끝끝내 내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말려나 보다.
 아내는 늘 진솔 버선만 신었다. 아내는 밥도 지었다. 아내가 밥을 짓는 것을 나는 한 번도
구경한 일은 없으나 언제든지 끼니 때면 내 방으로 내 조석밥을 날라다 주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나와 내 아내 외의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밥은 분명 아내가 손수 지었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아내는 한 번도 나를 자기 방으로 부른 일은 없다. 나는 늘 웃방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밥은 너무 맛이 없었다. 반찬이 너무 엉성하였다. 나는 닭이나 강아지처럼 말 없이 주는
모이를 넙적넙적 받아먹기는 했으나 내심 야속하게 생각한 적도 더러 없지 않다. 나는 안색이
여지없이 창백해 가면서 말라 들어 갔다. 나날이 눈에 보이는 듯이 기운이 줄어들었다.
영양부족으로 하여 몸뚱이 곳곳이 뼈가 불쑥불쑥 내어 밀었다. 하룻밤 사이에도 수십 차를 돌쳐
눕지 않고는 여기 저기가 박여서 나는 배겨낼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이불 속에서 아내가 늘 흔히 쓸 수 있는 저 돈의 출처를 탐색내는 일변
장지틈으로 새어 나오는 아랫방의 음식은 무엇일까를 간단히 연구하였다. 나는 잠이 잘 왔다.

 깨달았다. 아내가 쓰는 그 돈은 내게는 다만 실없는 사람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까닭 모를
내객들이 놓고 가는 것이 틀림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그러나 왜 그들 내객은 돈을 놓고 가나? 왜 내 아내는 그 돈을 받아야 되나? 하는 예의 관념이
내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예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혹 무슨 대가일까? 부수일까? 내
아내가 그들의 눈에는 동정을 받아야만 할 한 가엾은 인물로 보였던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노라면 으레 내 머리는 그냥 혼란하여 버리고 하였다. 잠들기 전에
획득했다는 결론이 오직 불쾌하다는 것 뿐이었으면서도 나는 그런 것을 아내에게 물어보거나 한
일이 참 한 번도 없다. 그것은 대체 귀찮기도 하려니와 한참 자고 일어나는 나는 사뭇 딴
사람처럼 이것도 저것도 다 깨끗이 잊어버리고 그만두는 까닭이다.
 내객들이 돌아가고, 혹 외출에서 돌아오고 하면 아내는 경편한 것으로 옷을 바꾸어 입고 내
방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이불을 들치고 내 귀에는 영 생동생동한 몇 마디 말로 나를
위로하려 든다. 나는 조소도 고소도 홍소도 아닌 웃음을 얼굴에 띠고 아내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다본다. 아내는 방그레 웃는다 그러나 그 얼굴에 떠도는 일말의 애수를 나는 놓치지 않는다.
 아내는 능히 내가 배고파하는 것을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아랫방에서 먹고 남은 음식을
나에게 주려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든지 나를 존경하는 마음일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배가 고프면서도 저으기 마음이 든든한 것을 좋아했다. 아내가 무엇이라고 지껄이고 갔는지 귀에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만 내 머리맡에 아내가 놓고 간 은화가 전등불에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고 금고형 벙어리 속에 고 은화가 얼마만큼이나 모였을까? 나는 그러나 그것을 쳐들어 보지
않았다. 그저 아무런 의욕도 기원도 없이 그 단추 구멍처럼 생긴 틈바구니로 은화를 들여뜨려 둘
뿐이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나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 같이 푸 수 없는 의문이었다. 내 비록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고것이 내 손가락에 닿는
순간서부터 고 벙어리 주둥에서 자취를 감추기까지의 하잘 것 없는 촉각이 좋았달 뿐이지 그
이상 아무 기쁨도 없다.

 어느 날 나는 고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 넣어 버렸다. 그 때 벙어리 속에는 몇 푼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고 은화들이 꽤 들어 있었다.
 나는 내가 지구 위에 살며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지구가 질풍신뢰의 속력으로 광대무변의
공간을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참 허망하였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한 지구 위에서는
현기증도 날 것 같고 해서 한시 바삐 내려 버리고 싶었다.
 이불 속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난 뒤에는 나는 고 은화를 고 벙어리에 넣고 넣고 하는 것조차
귀찮아졌다. 나는 아내가 손수 벙어리를 사용하였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벙어리도 돈도 사실은
아내에게만 필요한 것이지 내게는 애초부터 의미가 전연 없는 것이었으니까 될 수만 있으면 그
벙어리를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져 갔으면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가져가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내방으로 가져다 둘까 하고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 즈음에는 아내의 내객이 원체 많아서
내가 아내 방에 가 볼 기회가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변소에 갖다 집어
넣어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아내의 꾸지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아무말도 하지를 않았다.
않았을 뿐 아니라 여전히 돈은 돈대로 머리맡에 놓고 가지 않나! 내 머리맡에는 어느덧 은화가
꽤 많이 모였다.

 내객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아내가 내게 돈을 놓고 가는 것이나 일종의 쾌감-그
외의 다른 아무런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나는 또 이불 속에서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쾌감이라면 어떤 종류의 쾌감일까를 계속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불 속의
연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쾌감 쾌감, 하고 나는 뜻밖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만 흥미를 느꼈다.
 아내는 물론 나를 늘 감금하여 두다시피 하여 왔다. 내게 불평이 있을 리 없다. 그런 중에도
나는 그 쾌감이라는 것의 유무를 체험하고 싶었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왔다. 나는 거리에서 잊어버리지 않고 가지고 나온
은화를 지폐로 바꾼다. 오원이나 된다.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나는 목적을 잃어버리기 위하여
얼마든지 거리를 쏘다녔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리는 거의 경이에 가까울 만치 내 신경을
흥분시키지 않고는 마지 않았다. 나는 금시에 피곤하여 버렸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그리고 밤이
이슥하도록 까닭을 잊어버린 채 이 거리 저 거리로 지향없이 헤매었다. 돈은 물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돈을 쓸 아무 엄두도 나서지 않았다. 나는 벌써 돈을 쓰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과연 피로를 이 이상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까스로 내 집을 찾았다. 나는 내 방을
가려면 아내 방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아내에게 내객이 있나 없나를 걱정하면서
미닫이 앞에서 좀 거북살스럽게 기침을 한번 했더니 이것은 참 또 너무도 암상스럽게 미닫이가
열리면서 아내의 얼굴과 그 등 뒤에 낯설은 남자의 얼굴이 이쪽을 내다보는 것이다. 나는 별안간
내어 쏟아지는 불빛에 눈이 부셔서 좀 머뭇머뭇했다.
 나는 아내의 눈초리를 못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모른 체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 나는
어쨌든 아내의 방을 통과하지 아니하면 안되는가...
 나는 이불을 뒤집어 썼다. 무엇보다도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불 속에서는 가슴이 울렁거리면서 암만해도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걸을 때는 몰랐더니 숨이
차다. 등에 식은 땀이 쭉 내밴다. 나는 외출한 것을 후회하였다. 이런 피로를 잊고 어서 잠이
들었으면 좋겠다. 한참 잘 자고 싶었다.
 얼마 동안이나 비스듬히 엎드려 있었더니 차츰차츰 뚝딱거리는 가슴 동기가 가라앉는다.
그만해도 우선 살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돌쳐 반듯이 천정을 향하여 눕고 쭉 다리를 뻗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다시 가슴의 동기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아랫방에서 아내와 그 남자의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소근거리는 기척이 장지틈으로 전하여 왔던 것이다.
청각을 더 예민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눈을 떴다. 그리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아내와 남자는 앉았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섰고 일어서면서 옷과 모자
쓰는 기척이 나는 듯하더니 이어 미닫이가 열리고 구두 뒤축소리가 나고 그리고 뜰에 내려서는
소리가 쿵하고 나면서 뒤를 따르는 아내의 고무신 소리가 두어 발자국 찍찍 나고 사뿐사뿐 나나
하는 사이에 두 사람의 발소리가 대문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아내의 이런 태도를 본 일이 없다. 아내는 어떤 사람과도 결코 소근거리는 법이 없다.
나는 웃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웠는 동안에도 혹 술이 취해서 혀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내객들의
담호는 더러 놓치는 수가 있어도 아내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말소리는 일찍이 한 마디도 놓쳐본
일이 없다. 더러 내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있어도 나는 그것이 태연한 목소리로 내 귀에
들렸다는 이유로 충분히 안심이 되었다.
 그렇던 아내의 이런 태도는 필시 그 속에 연간하지 않은 사정이 있는 듯시피 생각이 되고 내
마음은 좀 서운했으나 그보다도 나는 좀 너무 피로해서 오늘만은 이불 속에서 아무 것도
연구하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고 잠을 기다렸다.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문간에 나간 아내도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흐지부지 나는 잠이 들어 버렸다.
 꿈이 얼쑹덜쑹 종을 잡을 수 없는 거리의 풍경을 여전히 헤매었다.

 나는 몹시 흔들렸다. 내객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가 잠든 나를 잡아 흔드는 것이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아내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나는 좀 눈을 비비고
아내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노기가 눈초리에 떠서 얇은 입술이 바르르 떨린다. 좀처럼 이
노기가 풀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벼락이 내리기를 기다린
것이다. 그러나 쌔근하는 숨소리가 나면서 푸시시 아내의 치맛자락 소리가 나고 장지가 여닫히며
아내는 아내 방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몸을 돌쳐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개구리처럼 엎드리고
엎드려서 배가 고픈 가운데서 오늘밤의 외출을 또 한번 후회하였다.

 나는 이불 속에서 아내에게 사죄하였다. 그것은 네 오해라고...
 나는 사실 밤이 퍽으나 이슥한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것이 네 말마따나 자정전인지는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너무 피곤하였다. 오래간만에 나는 너무 많이 걸은 것이 잘못이다.
 내 잘못이라면 잘못은 그것밖에는 없다. 외출은 왜 하였더냐고?
 나는 그 머리맡에 저절로 모인 오원 돈을 아무에게라도 좋으니 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 잘못이라면 나는 그렇게 알겠다. 나는 후회하고 있지 않나?
 내가 그 오원돈을 써 버릴 수 있었던들 나는 자정 안에 집에 돌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너무 복잡하였고 사람은 너무 들끓었다.
 나는 어느 사람을 붙들고 그 오원 돈을 내어 주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여지없이 피곤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좀 쉬고 싶었다. 눕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 짐작 같아서는 밤이 어지간히 늦은
줄만 알았는데, 그것이 불행히도 자정 전이었다는 것은 참 안 된 일이다. 미안한 일이다. 나는
얼마든지 사죄하여도 좋다. 그러나 종시 아내의 오해를 풀지 못하였다. 하면 내가 이렇게까지
사죄하는 보람은 그럼 어디 있나? 한심하였다.
 한 시간 동안을 나는 이렇게 초조하게 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불을 홱 젖혀 버리고
일어나서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비칠비칠 달려 갔던 것이다. 내게는 거의 의식이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아내 이불 위에 엎드러지면서 바지 포켓 속에서 그 돈 오원을 꺼내 아내 손에 쥐어
준 것을 간신히 기억할 뿐이다.
 이튿날 잠이 깨었을 때 나는 내 아내 방 아내 이불 속에 있었다. 이것이 이 삼삼번지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내가 아내 방에서 잔 맨 처음이었다.
 해가 들창에 훨씬 높았는데 아내는 이미 외출하고 벌써 내 곁에 있지는 않다. 아니! 아내는
엊저녁 내가 의식을 잃은 동안에 외출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을 조사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전신이 찌뿌드드한 것이 손가락 하나
꼼짝할 힘 조차 없었다. 책보 보다 좀 작은 면적의 볕이 눈이 부시다. 그 속에서 수 없는 먼지가
흡사 미생물처럼 난무하다. 코가 꽉 막히는 것 같다. 나는 다시 눈을 감고 이불을 푹 뒤집어 쓰고
낮잠을 자기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코를 스치는 아내의 체취는 꽤 도발적이었다. 나는 몸을
여러번 여러번 비비꼬면서 아내의 화장대에 늘어선 고 가지각색 화장품 병들과 고 병들의 마개를
뽑았을 때 풍기는 내음새를 더듬느라고 좀처럼 잠은 들지 않는 것을 나는 어찌하는 수도 없었다.

 견디다 못하여 나는 그만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서 내 방으로 갔다. 내 방에는 다
식어 빠진 내 끼니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내 모이를 여기다 두고 나간 것이다.
나는 우선 배가 고팠다. 한 숟갈을 입에 떠넣었을 때 그 촉감은 참 너무도 냉회와 같이
써늘하였다. 나는 숟갈을 놓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룻밤을 비었던 내 이부자리는 여전히
반갑게 나를 맞아 준다. 나는 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번에는 참 늘어지게 한잠 잤다. 잘-
 내가 잠을 깬 것은 전등이 켜진 뒤다. 그러나 아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나 보다. 아니!
돌아왔다. 또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을 상고하여 무엇하나?
 정신이 한결 난다. 나는 밤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 돈 오원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넘어졌을
때에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을 나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객들이 내 아내에게
돈 놓고 가는 심리며 내 아내가 내게 돈 놓고 가는 심리의 비밀을 나는 알아낸 것 같아서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나는 속으로 빙그레 웃어 보았다.
 이런 것을 모르고 오늘까지 지내온 내 자신이 어떻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지 몰랐다.
 따라서 나는 또 오늘 밤에도 외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다. 나는 엊저녁에 그 돈 오원을
한꺼번에 아내에게 주어 버린 것을 후회하였다. 나는 실없이 실망하면서 습관처럼 그 돈 오원이
들어 있던 내 바지 포켓에 손을 넣어 한 번 휘둘러 보았다. 뜻밖에도 내 손에 쥐어지는 것이
있었다. 이원 밖에 없다. 그러나 많아야 맛은 아니다. 얼마간이고 있으면 된다. 나는 그만한 것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다.
 나는 기운을 얻었다. 나는 그 단벌 다 떨어진 골덴 양복을 걸치고 배고픈 것도 주제 사나운
것도 다 잊어버리고 활갯짓을 하면서 또 거리로 나섰다. 나서면서 나는 제발 시간이 화살
닫듯 해서 자정이 어서 홱 지나 버렸으면 하고 조바심을 태웠다. 아내에게 돈을 주고 아내
방에서 자보는 것은 어디까지든지 좋았지만 만일 잘못 해서 자정 전에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의
눈총을 맞는 것은 그것은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저물도록 길 가 시계를 들여다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또 지향 없이 거리를 방황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좀처럼 피곤하지는 않았다. 다만 시간이 좀 너무 더디게 가는 것만 같아서
안타까웠다.
 경서역 시계가 확실히 자정이 지난 것을 본 뒤에 나는 집을 향하였다.
 그 날은 그 일각대문에서 아내와 아내의 남자가 이야기하고 섰는 것을 만났다. 나는 모른 체
하고 두 사람 곁을 지나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아내도 들어왔다. 와서는 이 밤중에 평생
안하던 쓸레질을 하는 것이다. 조금 있다가 아내가 눕는 기척을 엿보자 나는 또 장지를 열고
아내 방으로 가서 그 돈 이원을 아내 손에 덥썩 쥐어 주고 그리고-하여간 그 이원을 오늘 밤에도
쓰지 않고 도로 가져 온 것이 참 이상하다는 듯이 아내는 내 얼굴을 몇 번이고 엿보고-아내는
드디어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자기 방에 재워 주었다. 나는 이 기쁨을 세상의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편히 잘 잤다.

 이튿날 내가 잠이 깨었을 때는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또 내 방으로 가서 피곤한 몸이
낮잠을 잤다. 내가 아내에게 흔들어 깨었을 때는 역시 불려 들어온 뒤였다. 아내는 자기 방으로
나를 오라는 것이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다. 아내는 끊임없이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내 팔을
이끄는 것이다. 나는 이런 아내의 태도 이면에 엔간치 않은 음모가 숨어 있지나 않은가 하고
적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내의 하자는 대로 아내의 방으로 끌려 갔다. 아내 방에는 저녁 밥상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는 것이다. 생각하여 보면 나는 이틀을 굶었다. 나는 지금 배고픈 것까지도 긴가 민가 잊어
버리고 어름어름하던 차다.
 나는 생각하였다. 이 최후의 만찬을 먹고 나자마자 벼락이 내려도 나는 차라리 후회하지 않을
것을. 사실 나는 인간 세상이 너무나 심심해서 못 견디겠던 차다. 모든 것이 성가시고 귀찮았으나
그러나 불의의 재난이라는 것은 즐겁다.
 나는 마음을 턱 놓고 조용히 아내와 마주 이 해괴한 저녁밥을 먹었다.
 우리 부부는 이야기하는 법이 없었다. 밥을 먹은 뒤에도 나는 말이 없이 부시시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가 버렸다. 아내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나는 벽에 기대어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 그리고 벼락이 떨어질 테거든 어서 떨어져라 하고 기다렸다.
 오분! 십분!
 그러나 벼락은 내리지 않았다. 긴장이 차츰 풀어지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덧 오늘 밤에도
외출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돈은 확실히 없다. 오늘은 외출하여도 나중에 올 무슨 기쁨이 있나? 내 앞이 그저
아뜩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이리 딩굴 저리 딩굴 굴렀다. 금시 먹은 밥이
목으로 자꾸 치밀어 올라온다. 메시꺼웠다.
 하늘에서 얼마라도 좋으니 왜 지폐가 소낙비처럼 퍼붓지 않나? 그것이 그저 한없이 야속하고
슬펐다.
 나는 이렇게 밖에 돈을 구하는 아무런 방법도 알지는 못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좀 울었나
보다. 왜 없느냐면서...

 그랬더니 아내가 또 내 방에를 왔다. 나는 깜짝 놀라 아마 이제서야 벼락이 내리려나 보다
하고 숨을 죽이고 두꺼비 모양으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떨어진 입을 새어 나오는 아내의
말소리는 참 부드럽다. 정다웠다. 아내는 내가 왜 우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돈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냔다. 나는 실없이 깜짝 놀랐다. 어떻게 사람의 속을 환하게 들여다 보고 해서 나는
한편으로 슬그머니 겁도 안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아마 내게 돈을 줄
생각이 있나 보다. 만일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은 일일까. 나는 이불 속에 뚤뚤 말린 채 고개도
들지 않고 아내의 다음 거동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옛소 하고 내 머리맡에 내려뜨리는 것은 그
개뿐한 음향으로 보아 지폐에 틀림 없었다. 그리고 내 귀에다 대고 오늘을랑 어제보다도 늦게
돌아와도 좋다고 속삭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우선 그 돈이 무엇보다 고맙고 반가웠다.
 어쨌든 나섰다. 나는 좀 야맹증이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밝은 거리로 골라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리고는 경성역 일 이등 대합실 한곁 티이 룸에를 들렀다. 그것은 내게는 큰 발견이었다.
거기는 우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안 온다. 설사 왔다가도 곧들 가니까 좋다. 나는 날마다 여기
와서 시간을 보내리라 속으로 생각하여 두었다. 제일 여기 시계가 어느 시계보다도 정확하리라는
것이 좋았다. 섣불리 서투른 시계를 보고 그것을 믿고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갔다가 큰 코를
다쳐서는 안 된다.

 나는 한 박스에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마주 앉아서 잘 끓은 커피를 마셨다. 총총한 가운데
여객들은 그래도 한 잔 커피가 즐거운가 보다. 얼른얼른 마시고 무얼 좀 생각하는 것같이
담벼락도 좀 쳐다보고 하다가 곧 나가 버린다. 서글프다. 그러나 내게는 이 서글픈 분위기가
거리의 티이 룸들의 그 거치장스러운 분위기보다는 절실하고 마음에 들었다. 이따금 들리는
날카로운, 혹은 우렁찬 기적소리가 모짜르트보다도 더 가깝다. 나는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되는
음식 이름을 치 읽고 내리 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거기서 얼마나 내가 오래 앉았는지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중에 객이 슬며시 뜸해지면서 이 구석
저 구석 걷어 치우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아마 닫는 시간이 된 모양이다. 열 한 시가 좀
지났구나, 여기도 결코 내 안주의 곳은 아니구나. 어디 가서 자정을 넘길까? 두루 걱정을 하면서
나는 밖으로 나섰다. 비가 온다. 빗발이 제법 굵은 것이 우비도 우산도 없는 나를 고생을 시킬
작정이다. 그렇다고 이런 괴이한 풍모를 차리고 이 홀에서 어물어물 하는 수도 없고 에이 비를
맞으면 맞았지 하고 나는 그냥 나서 버렸다.
 대단히 선선해서 견딜 수가 없다. 골덴 옷이 젖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속속들이 스며들면서
추근거린다. 비를 맞아 가면서라도 견딜 수 있는 데까지 거리를 돌아다녀서 시간을 보내려
하였으나, 인제는 선선해서 이 이상은 더 견딜 수가 없다. 오한이 자꾸 일어나면서 이가 딱딱
맞부딪는다. 나는 걸음을 잦추면서 생각하였다. 오늘 같은 궂은 날도 아내에게 내객이 있을라구?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집으로 가야겠다. 아내에게 불행히 내객이 있거든 내 사정을 하리라. 사정을 하면 이렇게 비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아주겠지.
 부리나케 와 보니까 그러나 아내에게는 내객이 있었다. 나는 너무 춥고 척척해서 얼떨김에
노크하는 것을 잊었다. 그래서 나는 보면 아내가 덜 좋아할 것을 그만 보았다.
 나는 감발 자국 같은 발자국을 내면서 덤벙덤벙 아내 방을 디디고 그리고 내 방으로 가서 쭉
빠진 옷을 활활 벗어 버리고 이불을 뒤썼다. 덜덜덜덜 떨린다. 오한이 점점 더 심해 들어온다.
여전 땅이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만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튿날 내가 눈을 떴을 때 아내는 내 머리맡에 앉아서 제법 근심스러운 얼굴이다. 나는 감기가
들었다. 여전히 으시시 춥고 또 골치가 아프고 입에 군침이 도는 것이 씁쓸하면서 다리 팔이 척
늘어져서 노곤하다. 아내는 내 머리를 쓱 짚어 보더니 약을 먹어야지 한다. 아내 손이 이마에
선뜻한 것을 보면 신열이 어지간한 모양인데 약을 먹는다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하고 속생각을
하자니까 아내는 따뜻한 물에 하얀 정제약 네 개를 준다. 이것을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면
괜찮다는 것이다. 나는 널름 받아먹었다. 쌉사름한 것이 짐작 같아서는 아마 아스피린인가 싶다.
나는 다시 이불을 쓰고 단번에 그냥 죽은 것처럼 잠이 들어 버렸다.
 나는 콧물을 훌쩍훌쩍 하면서 여러 날을 앓았다. 앓는 동안에 끊이지 않고 그 정제약을 먹었다.
그러는 동안에 감기도 나았다. 그러나 입맛은 여전히 소태처럼 썼다.
 나는 차츰 또 외출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아내는 나더러 외출하지 말라고 이르는
것이다. 이 약을 날마다 먹고 그리고 가만히 누워 있으라는 것이다. 공연히 외출을 하다가 이렇게
감기가 들어서 저를 고생시키는 게 아니냔다. 그도 그렇다. 그럼 외출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그 약을 연복하여 몸을 좀 보해 보리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나는 날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밤이나 낮이나 잤다. 유난스럽게 밤이나 낮이나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잠이 자꾸만 오는 것은 내가 몸이 훨씬 튼튼해진 증거라고
굳게 믿었다.
 나는 아마 한 달이나 이렇게 지냈나 보다. 내 머리와 수염이 좀 너무 자라서 후툿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내 거울을 좀 보리라고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나는 아내 방으로 가서
아내의 화장대 앞에 앉아 보아다. 상당하다. 수염과 머리가 참 상당하였다.
 오늘은 이발을 좀 하리라고 생각하고 겸사겸사 고 화장품 병들 마개를 뽑고 이것저것 맡아
보았다. 한동안 잊어버렸던 향기 가운데서는 몸이 배배 꼬일 것 같은 체취가 전해 나왔다. 나는
아내의 이름을 속으로만 한 번 불러 보았다.
 '연심이-'하고...
 오래간만에 돋보기 장난도 하였다. 거울 장난도 하였다. 창에 든 볕이 여간 따뜻한 것이
아니었다. 생각하면 오월이 아니냐.
 나는 커다랗게 기지개를 한 번 켜 보고 아내 베개를 내려 베고 벌떡 자빠져서는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세월을 하느님께 흠씬 자랑하여 주고 싶었다. 나는 참 세상의 아무 것과도
교섭을 갖지 않는다. 하느님도 아마 나를 칭찬할 수도 처벌할 수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실로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최면약 아달린
갑이었다. 나는 그것을 아내의 화장대 밑에서 발견하고 그것이 흡사 아스피린처럼 생겼다고
느꼈다. 나는 그것을 열어 보았다. 꼭 네 개가 비었다.
 나는 오늘 아침에 네 개의 아스피린을 먹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잤다. 어제도 그제도
그그제도-. 나는 졸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감기가 다 나았는데도 아내는 내게 아스피린을
주었다. 내가 잠이 든 동안에 이웃에 불이 난 일이 있다. 그 때에도 나는 자느라고 몰랐다.
이렇게 나는 잤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별안간 아뜩하더니 하마터면 나는 까무러질뻔 하였다. 나는 그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산을 찾아 올라갔다.
 인간 세상의 아무것도 보기가 싫었던 것이다. 걸으면서 나는 아무쪼록 아내에 관계되는 일은
일체 생각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길에서 까무러치기가 쉬우니까. 나는 어디라도 양지가 바른
자리를 하나 골라 자리를 잡아 가지고 서서히 아내에 관하여서 연구할 작정이었다. 나는 길가의
돌창 핀 구경도 못한 진개나리꽃, 종달새, 돌멩이도 새끼를 까는 이야기, 이런 것만 생각하였다.
다행히 길가에서 나는 졸도하지 않았다.
 거기는 벤치가 있었다. 나는 거기 정좌하고 그리고 그 아스피린과 아달린에 관하여 연구하였다.
그러나 머리가 도무지 혼란하여 생각이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단 오분이 못가서 나는 그만
귀찮은 생각이 번쩍 들면서 심술이 났다. 나는 주머니에서 가지고 온 아달린을 꺼내 남은 여섯
개를 한꺼번에 질겅질겅 씹어 먹어 버렸다. 맛이 익살맞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 벤치 위에 가로
기다랗게 누웠다. 무슨 생각으로 내가 그 따위 짓을 했나. 알 수가 없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나는 게서 그냥 깊이 잠이 들었다. 잠결에도 바위 틈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졸졸하고 귀에
언제까지나 어렴풋이 들려왔다.
 내가 잠을 깨었을 때는 날이 환히 밝은 뒤다. 나는 거기서 일주야를 잔 것이다. 풍경이 그냥
노오랗게 보인다. 그 속에서도 나는 번개처럼 아스피린과 아달린이 생각났다.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마르크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이라고 속이고 내게
먹였다.
 그것은 아내 방에서 이 아달린 갑이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증거가 너무나 확실하다.
 무슨 목적으로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웠어야 됐나?
 나를 밤이나 낮이나 재워 놓고 그리고 아내는 내가 자는 동안에 무슨 짓을 했나? 나를 조금씩
조금씩 죽이려던 것일까? 그러나 또 생각하여 보면 내가 한 달을 두고 먹어온 것이
아스피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무슨 근심되는 일이 있어서 밤이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정작 아내가 아달린을 사용한 것이나 아닌지? 그렇다면 나는 참 미안하다. 나는 아내에게 이렇게
큰 의혹을 가졌다는 것이 참 안 됐다.
 나는 그래서 부리나케 거기서 내려왔다. 아랫도리가 홰홰 내어저이면서 어찔어찔한 것을 나는
겨우 집을 향하여 걸었다. 여덟시 가까이었다.
 나는 내 잘못된 생각을 죄다 일러 바치고 아내에게 사죄하려는 것이다. 나는 너무 급해서 그만
또 말을 잊어버렸다. 그랬더니 이건 참 큰일 났다. 나는 내 눈으로 보아서 안 될 것을 그만 딱
보아 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그만 냉큼 미닫이를 닫고 그리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진정 시키느라고 잠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기둥을 짚고 섰자니까 일초 여유도 없이 홱 미닫이가 다시 열리더니
매무새를 풀어 헤친 아내가 불쑥 내밀면서 내 멱살을 잡는 것이다. 나는 그만 어지러워서 게가
그냥 나둥그러졌다. 그랬더니 아내는 넘어진 내 위에 덮치면서 내 살을 함부로 물어 뜯는 것이다.
아파 죽겠다. 나는 사실 반항할 의사도 힘도 없어서 그냥 넓적 엎드려 있으면서 어떻게 되나
보고 있자니까 뒤이어 남자가 나오는 것 같더니 아내를 한 아름에 덥썩 안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없이 다소곳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내는 아무 말없이 다소곳이
그렇게 안겨 들어가는 것이 내 눈에 여간 미운 것이 아니다. 밉다.
 아내는 너 밤 새워 가면서 도둑질 하러 다니느냐, 계집질 하러 다니느냐고 발악이다. 이것은 참
너무 억울하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너는 그야말로 나를
살해하려던 것이 아니냐고 소리를 한 번 꽥 질러 보고도 싶었으나 그런 긴가민가한 소리를
섣불리 입밖에 내었다가는 무슨 화를 볼는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억울하지만 잠자코 있는 것이
우선 상채인 듯시피 생각이 들길래 나는 이것은 또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툭툭 떨고
일어나는 내 바지 포켓 속에 남은 돈 몇 원 몇 십전을 가만히 꺼내서는 몰래 미닫이를 열고
살며시 문지방 밑에다 놓고 나서는 나는 그냥 줄달음박질을 쳐서 나와 버렸다.
 여러 번 자동차에 치일뻔 하면서 나는 그래도 경성역으로 찾아갔다. 빈자리와 마주 앉아서 이
쓰디쓴 입맛을 거두기 위하여 무엇으로 입가심을 하고 싶었다.
 커피! 좋다. 그러나 경성역 홀에 한 걸음을 들여 놓았을 때 나는 내 주머니에는 돈이 한푼도
없는 것을 그것을 깜박 잊었던 것을 깨달았다. 또 아뜩하였다.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어디로 디립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
옥사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
 나는 거기 아무데나 주저앉아 내 자라온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내 자신에게 물어 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
 허리를 굽혀서 나는 그저 금붕어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참 잘들도 생겼다.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큰 놈은 큰 놈대로 다 싱싱하니 보기 좋았다. 내려 비치는 오월 햇살에 금붕어들은
그릇 바탕에 그림자를 내려뜨렸다. 지느러미는 하늘하늘 손수건을 흔드는 흉내를 낸다. 나는 이
지느러미 수효를 헤어보기도 하면서 굽힌 허리를 좀처럼 펴지 않았다. 등어리가 따뜻하다.
 나는 또 오탁의 거리를 내려다 보았다. 거기서는 피곤한 생활이 똑 금붕어 지느러미처럼
흐늑흐늑 허우적거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오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가지 않는 수도
없다 생각하였다.
 나서서 나는 또 문득 생각하여 보았다. 이 발길이 지금 어디로 향하여 가는 것인가를...
 그 때 내 눈앞에는 아내의 모가지가 벼락처럼 내려 떨어졌다. 아스피린과 아달린.
 우리들은 서로 오해하고 있느니라. 설마 아내가 아스피린 대신에 아달린의 정량을 나에게
먹여 왔을까? 나는 그것을 믿을 수는 없다. 아내가 대체 그럴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날밤을 새면서 도둑질을, 계집질을 하였나? 정말이지 아니다.
 우리 부부는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절름발이인 것이다. 내나 아내나 제 거동에 로직을
붙일 필요는 없다. 변해할 필요도 없다. 사실은 사실대로 오해는 오해대로 그저 끝없이 발을
절뚝거리면서 세상을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이 발길이 아내에게로 돌아가야 옳은가 이것만은 분간하기가 좀 어려웠다. 가야
하나? 그럼 어디로 가나?
 이때 뚜우하고 정오 싸이렌이 울었다. 사람들은 모두 네 활개를 펴고 닭처럼 푸드득거리는 것
같고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떨고 하는 것 같은
찰나!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다.
 나는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렵다. 아하, 그것은 내 인공의 날개가 돋았던 자국이다. 오늘은
없는 이 날개.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였다.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일어나 한 번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김유정(1908__1937)
 '구인회'의 멤버로 활약, 조선일보에 "소나기"(1935), 중앙일보에 "노다지"가 각각 당선됨으로써
작가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김유정의 고향의식은 대체로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토착어
세계이다. "동백꽃", "봄 봄", "따라지", "산골 나그네", "아내" 등 한자어가 자리하지 못한다.
둘째는 고향의 이야기이다. 작품무대는 태반이 그의 고향(실제 마을)이며 인물들도 실제 생존했던
사람들이다. 셋째는 토속적 해학의 세계이다. 고전 문학의 해학의 전통과 맥락이 닿으면, 해학이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정서 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는 정조를 포착하여
고향의 발견으로 확대된다. 고향을 상실한 식빈지 조국의 하늘아래에서 고향회복을 갈구한
치열한 고향의식이라 할 수 있다.--평론가 김영기씨의 "농민과 고향의 발견" 중에서.

    봄 봄
    "조광" 1936. 9.

 "장인님! 인젠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 줘야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장차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3년 하고 꼬박이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그만
벙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초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3년이면 3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했어야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박이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차려서.
 "어 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들어라."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 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 번 재 볼까했다마는, 우리의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 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며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큼 가서,
 "제에미 키두!"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말락 밤낮 요모양이다. 개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뼈다귀가
움츠러드나 보다, 하고 내가 넌ㅈ넌즈시 그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 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 줍소서.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하고 치성도 한
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돼 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 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은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조금도 심고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몰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 그대로 논둑으로 기어 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밀어 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 오른 풀 한 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쓱쓱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논 가운데서 장인님이 이상한 눈을 해 가지고 한참을 날 노려보더니,
 "너 이 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 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내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 자식아, 일허다 말면 누굴 망해 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 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 자식 저 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막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 세워 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하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 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이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 생기길
호박개 같아야 쓰는 거지만 장인은 외양에 똑 됐다. 장인께 닭 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준다든가 하면 그 해 가을에는 영낙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아앉는다. 이
바람에 장인님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 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 가면서도 그래도 굽신굽신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 놓고는 장인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 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창 바쁜
때인데 나 일 안하고 우리 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
잔다고 돌멩이를 집어 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 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 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얘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 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품 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 원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 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르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고 그러니 원!"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꽂고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 꼴 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 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 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 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 동안 사경 쳐 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 줘야 안 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 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 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 자식아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고 뻗디디고 이렇게 호령은 제 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 고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
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몸살을 아직 모르지만) 병이 나려고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 하고 이랬다.
 "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 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을 반도
갈지 않아서 온 몸의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드립다 두들기며,
 "아냐! 아냐! 이 망할 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리를 꺾어 줄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아냐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 된다. 그렇다구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도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 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더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몽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 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단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을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한데 한 가지 파가 있다면 가끔 가다 몸이(장인님은 이걸
체신이 없어 들까분다고 하지만) 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는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 봐서 이걸 씹고 앉았노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 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 채로 밭머리에 곱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와서 챙기는데, 그런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하고 혼자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떻게?"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떻게..."하고 되알지게 쏘아 부치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질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셈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 내에
부쩍(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안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 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 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고 옷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 꼬랑지
같다)양쪽으로 뾰죽히 뻗치고 그걸 에헴, 하고 늘 쓰다듬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을 허다 말구 그래?"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에헴을 한 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 하면 괜스레 골을 내려든다. 뱀두 뱀이라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짐을 받아 오면서 난 것도 자꾸 잊는다. 당장도
장인님 하다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 둔 새끼 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 싶다는 걸..."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 말에 장인님은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하니까 고만 멀쑤록해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다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 다 그만 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 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장모님은 점순이보다도 귀배기가
작다.)"
 장인님은 이 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도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꽉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상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서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 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하면 장인님이 뭐라고 귀엣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
붙이니까 그래 꾀였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 찼으니까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창 바쁜 때 일을 안 한다든가 집으로 달아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 좀 놓았다구 징역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 두니 죄가 얼마나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시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 하나가 돼야 비로소 결혼을
할 수 있는 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 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니
좀 고마울 겐가. 빨리 가서 모 붓던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뜻밖의 일이라 안 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 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툭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 판이다. 이까진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 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지 할 어른이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뵈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는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둬?"
 "그럼 어떡하니?"
 "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루 박아 놓지 뭘 어떻게?"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 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본시 괄괄은 하지만 그래 놓고 날더러 석유값을 물라고 막
찌다우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방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 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1년을 살구두 장갈 들었는데 넌 4년이나 살구두 더 살아야 해?"
 "네가 세번째 사윈 줄이나 아니? 세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 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 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이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 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 살 때부터 열 아홉,
즉10년 동안에 데릴사위를 갈아 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 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 올 때까지는 부려
먹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 들였다. 또 한 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참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룩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세째딸이 인제 여섯 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 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 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서 뽕뽕 좀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라면 그럴 리도 없었던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히 곧이 듣지 않았다. 꼭 곧이 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히 해 오니까 두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 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 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어 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여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큼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도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갈려하다 도로 벗어 던지고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 자식아! 너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고 나서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 주면 이 자식아 징역 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 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 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
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들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고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렇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였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미난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부엌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 마디 똑똑히 못 한다고 바보라는 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 나하곤 아무것도 안 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지게 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 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 몸에 약이 올랐다. 이 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 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 버렸다. 조금 있다가
장인님이 씩, 씩, 하고 한번 해 보려고 기어 오르는 걸 얼른 또 떠밀어 굴려 버렸다.
 기어 오르면 굴리고, 굴리면 기어 오르고, 이러길 한 너덧 번을 하며 그럴 적마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하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 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웅켜
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 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하고 두 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도 장인님은 놓지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 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에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꽉 움키고 잡아 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 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쫓았지 터진 머리를 불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시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 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이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사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야! 이!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헛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 주리라 생각하고 짓궂이 더 댕겼다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
 그래도 안 되니까,
 "얘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소해서 하겠지-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려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하고 내 귀를 뒤로 잡아당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 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 놓고 장인님은 지게 막대기를 들어 사뭇 내려 조겼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 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 보았다.
 "이 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아내
    "?" 1936.

 우리 마누라는 누가 보든지 뭐 이쁘다고는 안 할 것이다. 바로 계집에 환장한 놈이 있다면
모르거니와. 나도 일상 같이 지내긴 하나 아무리 잘 고쳐 보아도 요만치도 이쁘지 않다. 하지만
계집이 낯짝이 이뻐 맛이냐. 제길할 황소 같은 아들만 줄대 잘 빠쳐 놓으면 고만이지. 사실 우리
같은 놈은 늙어서 자식까지 없다면 꼭 굶어 죽을밖에 별도리 없다. 가진 땅 없어, 몸 못 써 일
못하여, 이걸 누가 얼쳤다고 그냥 먹여 줄테냐. 하니까 내 말이 이왕 젊어서 되는 대로 자꾸
자식이나 쌓아 두자 하는 것이지.
 그리고 어미가 낯짝 글렀다고 그 자식까지 더러운 법은 없으렷다. 아, 바로 우리 똘똘이를
보아도 알겠지만 제 어미년은 쥐었다 논 개떡 같애도 좀 똑똑하고 깨끗이 생겼느냐, 비록 먹고도
대구 또 달라고 불아귀처럼 덤비기는 할망정. 참 이놈이야말로 나에게는 아버지보담도,
할아버지보담도 아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보물이다. 년이 나에게 되지 않은 큰 체를 하게 된
것도 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전에야 그 상판대길 가지고 어딜 끽 소리나 제법 했으랴. 흔히
말하길 계집의 얼굴이란 눈의 안경이라 한다마는 제 아무리 물커진 눈깔이라도 이 얼굴만은 어째
볼 도리 없을 게다.
 이마가 훌떡 까지고 양미간이 벌면 소견이 탁 틔었다지 않냐. 그럼 좋기는 하다마는
아기자기한 맛이 없고 이 조로 둥글넓적이 내려온 하관에 멋없이 쑥 내민 것이 입이다. 두툼은
하나 건순 입술, 말 좀 하려면 그리 정하지 못한 웃니가 부질없이 뻔찔 드러난다. 설혹 그렇다
치고 한복판에 달린 코나 좀 똑똑히 생겼다면 얼마나 좋겠나. 첫째 눈에 띄는 것이 그 코인데,
이렇게 말하면 년의 흉을 보는 것 같지만, 썩 잘 보자 해도 먼산 바라보는 도야지의 코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꼴이 이러니까 밤이면 내 눈치만 스을슬 살피는 것이 아니냐. 오늘은 구박이나 안 할까, 하고
은근히 애를 태우는 맥이렸다. 이게 가여워서 피곤한 몸을 무릅쓰고 대개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된다. 온종일 뭘 했느냐는 둥, 싸리문을 좀 고쳐 놓으라 했더니 어떻게 했느냐는 둥, 혹은
오늘밤에는 웬일인지 훨씬 코가 좋아 보인다는 둥, 하고. 그러면 년이 금새 헤에 벌어지고 힝하게
내 곁에 와 앉아서는 어깨를 비겨대고 슬근슬근 부빈다.
 그리고 코가 좋아 보인다니 정말 그러냐고 몸이 달아서 묻고 또 묻고 한다. 저로도 믿지 못할
그 사실을 한때의 위안이나마 또 한 번 들어 보자는 심정이렷다. 그 속을 알고 짜장 콧날이 서나
보다고 하면 년의 대답이 뒷간에 갈 적마다 잡아 댕기고 했더니 혹 나왔을지 모른다나, 그리고
아주 좋아한다.
 그러나 어느 때에는 한 나절 밭고랑에서 시달린 몸이 고만 축 늘어지는구나. 물론 말 한 마디
붙일 새 없이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버리지. 하면 년이 제 얼굴 때문에 그런 줄 알고 한구석에
가 시무룩해서 앉았다. 얼굴을 모로 돌리어 턱을 삐쯤 쳐들고 있는 걸 보면 필경 제깐엔
옆얼굴이나 한 번 봐 달라는 속이겠지. 경칠 년. 옆얼굴이라고 뭐 깨묵셍이나 좀 난 줄 알구-.
 이러던 년이 똘똘이를 내놓고는 갑자기 세도가 댕댕해졌다. 내가 들어가도 네놈 언제 봤냔
듯이 좀체 들떠보는 법 없지. 눈을 스르르 내려깔고는 잠자코 아이에게 젖만 먹이겠다. 내가 좀
아이의 머리라도 쓰담으며,
 "이 자식, 밤낮 잠만 자나?"
 "가만둬, 왜 깨놓고 싶은감."하고 사정없이 내 손등을 주먹으로 갈긴다. 나는 처음에 어떻게
되는 셈인지 몰라서 멀거니 천장만 한참 쳐다보았다. 내 자식 내가 만지는데 주먹으로 때리는 건
무슨 경우야. 하지만 잘 따져 보니까 조금도 내가 억울할 것은 없다. 년이 나에게 큰 체를 해야
될 권리가 있는 것을 차차 알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이년, 하면, 저는 이놈, 하고 대들기로
무언중 계약되었지.
 동리에서는 남의 속도 모르고 우리를 까따귀들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훅하면 서로 대들려고
노리고만 있으니까 말이지. 하긴 요즘에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을까봐서 만나기만 하면 이놈,
저년, 하고 먼저 대들기로 위주다. 다른 사람들은 밤에 만나면,
 마누라 밥 먹었수?"
 "아니요, 당신 오면 같이 먹으려구-"하고 일어나 반색을 하겠지만 우리는 안 그러기다. 누가
그렇게 팽이 소리로 달라 붙느냐. 방에 떡 들어서는 길로 우선 넓적한 년의 궁둥이를 발길로 퍽
들이지른다.
 "이년아! 일어나서 밥 차려!"
 "이놈이 왜 이래, 대릴 꺾어 놀라!"하고 년이 고개를 겨우 돌리면,
 "나무 판 돈 뭐 했어, 또 술 처먹었지?"
 이렇게 제법 탕탕 호령하였다. 사실이지 우리는 이래야 정이 보째 쏟아지고 또한 계집을
데리고 사는 멋이 있다. 손자새끼 낯을 해 가지고 마누라 어쩌구 하고, 어리광으로 덤비는 건
보기만 해도 눈허리가 시질 않겠나. 계집 좋다는 건 욕하고 치고 차고, 다 이러는 멋에, 그렇게
치고 보면 혹 궁한 살림에 쪼들리어 악에 받친 놈의 말일지는 모른다마는 누구나 다 일반이겠지.
가다가 속이 맥맥하고 부화가 끓어오를 적이 있지 않냐. 농사는 지어도 남는 것이 없고, 빚에는
몰리고, 게다가 집에 들어서면 자식 놈 킹킹거려, 년은 옷이 없으니 떨고 있어, 이러한 때 그냥
배길 수야 있느냐. 트죽태죽 꼬집어 가지고 년의 비녀쪽을 턱 잡고는 한바탕 훌두둘겨 대는구나.
한참 그 지랄을 하고 나면 등줄기에 땀이 뿍 흐리고 한숨까지 후, 돈다면 웬만치 샘이 가라앉을
때였다. 담에는 년을 도로 밀쳐 버리고 담배 한 대만 피워 물면 된다.
 이 멋에 계집이 고마운 물건이라 하는 것이고 내가 또 년을 못잊어 하는 까닭이 거기 있지
않냐. 그렇지 않다면이야 저를 계집이라고 등을 뚜덕여 주고 그 못난 코를 좋아 보인다고 가끔
추어 줄 맛이 뭐야. 하지만 년이 훌쩍거리고 앉아서 우는 걸 보면 이건 좀 재미 적다. 제가
주먹심으로든 입심으로든 나에게 덤비려면 어림도 없다. 쌈의 시초는 누가 먼저 걸었던간
언제든지 경을 팟다발같이 치고 나앉는 것은 년의 차지렸다.
 "이리 와 자빠져 자-"
 "곤두어, 너나 자빠져 자렴."하고 년이 독이 올라서 돌아다보고 안 보고 비쌘다마는, 한 서너 번
내려 오라고 권하면 나중에는 저절로 내 옆으로 스스로 기어들게 된다. 그리고 눈물 흐르는
장반을 벙긋이 흘겨 보이는 것이 아니냐. 하니까 년으로 보면 두들겨 맞고 비쌔는 멋에 나하고
사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우리가 원수같이 늘 싸운다고 정이 없느냐 하면 그건 잘못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정분치고 우리 것만치 찰떡처럼 끈끈한 놈은 다시 없으리라. 미우면 미울수록, 싸울수록 잠시를
떨어지기가 아깝도록 정이 착착 붙는다. 부부의 정이란 이런 겐지 모르나 허여튼 영문 모를
찰거머리 정이다. 나뿐 아니라 년도 매를 한참 두들겨 맞고 나서 같이 자리에 누우면,
 "내 얼굴이 그래두 그렇게 숭업진 않지?"하고 정말 잘난 듯이 바짝바짝 대든다. 그러면 나는
이때 뭐라고 대답해야 옳겠느냐. 하 기가 막혀서 천장을 쳐다보고 피익 내어 버린다.
 "이년아, 그게 얼굴이야?"
 "얼굴 아니면 가주다닐까?"
 "내니까 이년아! 데리구 살지, 누가 근다리니 그 낯짝을?"
 "뭐, 네 얼굴은 얼굴인 줄 아니? 불밤송이 같은 거 참 내니깐 데리구 살지"
 이러면 또 일어나서 땀을 한 번 흘리고 다시 드러눌 수밖에 없다. 내 얼굴이 불밤송이 같다니
이래도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고서 나중 땅마지기나 만져 볼 놈이라고 좋아하던 이 얼굴인데.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손짓 발짓을 하고 하는 게 성이 가셔서 대개는 그대로 눙쳐 둔다.
 "그래, 내 너 이뻐 할께 자식이나 대구 내놔라."
 "먹이지도 못할 걸 자꾸 나 뭘 하게, 굶겨 죽일려구?"
 "야 이년아! 꿔다 먹이진 못하니?"하고 소리는 뻑 지르나 뒤가 켕긴다. 더끔더끔 모다 두었다가
먹이지도 못하면 그걸 어떻게 하랴. 죄다 버리지도 못하고 떼송장이 난다면, 이런 걸 보면 년이
나보담 훨씬 소견이 틘 것을 알 수 있겠다. 물론 10리만큼 벌어진 양미간을 보아도 나와는 턱이
다르지만-.
 우리가 요즘 먹는 것은 내가 나무 장사를 해서 벌어 들인다. 여름 같으면 품이나 판다 하지만
눈이 척척 쌓였으니 얼음을 깨 먹느냐. 하기야 산골에서 어느 놈치고 별 수 있겠느냐마는 하루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 들이고 그 담 날엔 읍에 갖다가 판다. 나니까 쌍지게질도 할 근력이
되겠지만, 잔뜩 나무 두 지게를 혼자서 번 차례로 이놈 져다 놓고 쉬고 저놈 져다 놓고 쉬고
이렇게 해서 장차 30리 길을 한나절에 들어가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언제 한 지게 한 지게씩
팔아서 목구멍을 축일 수 있겠느냐. 잘 받으면 두 지게에 80전, 운이 나쁘면 60전, 65전, 그걸로
좁쌀, 콩, 미역, 무엇 사들고 찾아오겠다. 죽을 쑤었으면 좀 느루 가겠지만 우리는 더럽게 그런
것은 안 한다. 먹다 못 먹어서 뱃가죽을 웅켜쥐고 나설지언정 으레 밥이지, 똘똘이는 네 살짜리
어린애니깐 한 보시기, 나는 즈 아버지니까 한 사발에다 또 반 사발을 더 먹고, 그런데 년은
유독히 두 사발을 처먹지 않나. 그리고도 나보다 먼저 홀딱 집어 세고는 내 사발의 밥을 한
구탱이 더 떠먹는 버릇이 있다.
 계집이 좋다 했더니 이게 밥버러지가 아닌가 하고 한때는 가슴이 선뜩할 만치 겁이 났다. 없는
놈이 양이나 좀 먹어야지 이렇게 대고 처먹으면, 너 웬 밥을 이렇게 처먹니 하고 눈을 크게
뜨니까 년의 대답이 애난 배가 그렇지 그럼, 지도 앨 나 보지, 하고 샐쭉이 토라진다. 압따 그래,
대구 처 먹어라.
 나중 밥값은 그 배때기에 다 게 있고 게 있는 거니까.
 어떤 때에는 내가 좀 덜 먹고라도 그대로 내주고 말겠다. 경을 칠 년, 하지만 참 너무
처먹는다.
 그러나 년이 떡국이 농간을 해서 나보담 한결 의뭉스럽다. 이깐 농사를 지어 뭘 하느냐? 우리
들병이로 나가자고, 딴은 내 주변으로 생각도 못 했던 일이지만 참 훌륭한 생각이다. 밑지는
농사보다는 이밥에, 고기에, 옷, 마음대로 입고 좀 호강이냐마는 년 얼굴을 이윽히 뜯어보다간
고만 풀이 죽는구나. 들병이게게 술먹으러 오는 건 계집의 얼굴 보자 하는 걸 어떤 밸 없는 놈이
저 낯짝엔 몸살 날 것 같지 않다. 알고 보니 참 분하다. 년이 좀만 똑똑히 나왔더면 수가 나는
걸. 멀둥히 쳐다보고 쓴 입맛만 다시니까 년이 그 눈치를 채었는지.
 "들병이가 얼굴만 이뻐서 되는 게 아니라던데, 얼굴은 박색이라도 수단이 있어야지!"
 "그래 너는 그거 할 수단 있겠니?"
 "그럼 하면 하지, 못 할 게 뭐야."
 년이 이렇게 아주 번죽좋게 장담을 하는 것이 아니냐. 들병이로 나가서 식성대로 밥 좀 한
바탕 먹어 보자는 속이겠지. 몇 번 다져 물어도 제가 꼭 될 수 있다니까 아따 그러면 한 번
해보자꾸나. 밑천이 뭐 드는 것도 아니고 소리나 몇 마디 반반히 가르쳐서 데리고 나서면
고만이니까. 내가 밤에 집에 들어오면 년을 앞에 앉히고 소리를 가르치겠다.
 우선 내가 무릎 장단을 치며 아리랑 타령을 한 번 부르는구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춘천아
봄의 산아 잘 있거라, 신연강 배 타면 하직이라. 산골의 계집이면 강원도 아리랑쯤은 곧잘 하련만
년은 그것도 못 배웠다. 그러니 쉬운 아리랑부터 시작할밖에. 그러면 년은 도사리고 앉아서 두
손으로 엉덩이를 치며 흉내를 낸다. 목구멍에서 질그릇 물러앉은 소리가 나니까 나중에 목이
트이면 노래는 잘 할꺼다마는 가락이 딱딱 들어맞아야 할텐데 이게 세상에 돼 먹어야지.
 나는 노래를 가르치는 데 이 망할 년은 소설책을 읽고 앉았으니 어떡허냐. 이걸 데리고 앉으면
흔히 닭이 울고 때로는 날도 밝는다. 년이 하도 못하니까 본보기로 나만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구러나 저를 들병이를 가르친다는 게 결국 내가 배우는 폭이 되지 않나.
 망할 년, 저도 손으로 가리고 하품을 줄대하며 졸리어 죽겠지.
 하지만 내가 먼저 자자 하기 전에는 제가 차마 졸립다진 못할라.
 애초에 들병이로 나가자 말을 낸 것이 누군데 그래. 이렇게 생각하면 울화가 불컥 올라서
주먹이 가끔 들어간다.
 "이년아 정신을 좀 채려, 나만 밤낮 하래니?"
 "이놈이 팔때길 꺾어 놀라."
 "이거 잘 배면 너 잘 되지 이년아, 날 주는 거야, 큰체게."
 이번엔 손가락으로 이마빼길 꾹 찍어서 뒤로 넘긴다. 여느 때 같으면 년이 독살이 나서 저리로
내뺄 게다. 제가 한 죄가 있으니까 다시 일어나서 소리를 가르쳐 주기만 기다리는 게 아니냐.
 하니 딱한 일이다. 될지 안 될지도 의문이거니와 서로 하품은 뻔질 터지고 이왕 내친 걸음이니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에라 빌어먹을 거, 너나 내나 얼른 팔자를 고쳐야지 늘 이러다 말
테냐. 이렇게 기를 한 번 쓰는구나. 그리고 밤의 산천이 울리도록 소리를 빽빽 질러가며 년하고
또다시 흥타령을 부르겠다.
 그래도 하나 기특한 것은 년이 성의는 있단 말이지. 하기는 그나마도 없다면야 들병이커녕
깻묵도 그르지만 날이라도 틈만 있으면 저 혼자서 노래를 연습하는구나. 빨래를 할 적이면
빨랫방추로 가락을 맞추어 가며 이팔 청춘을 부른다. 혹은 방 한구석에 죽치고 앉아서
어깨짓으로 버선을 꿰매며 노랫가락도 부른다. 노래 한 장단에 바늘 한 꿰엄씩이니 버선 한 짝
기우려면 열 나절은 걸리지. 하지만 아따 버선으로 먹고 사느냐. 노래만 잘 배워라. 년도
나만치나 이밥에 고기가 얼른 먹고 싶어서 몸살도 나는지 어떤 때에는 바깥 밭둑을 지나가려면
뒷간 속에서 콧노래가 흥이 겨울 적도 있겠다.
 그러나 인제 노랫가락이 흥타령쯤 겨우 배웠으니 그담 건 어느 하가에 배우느냐. 망할 년두 참.
게다가 년이 시큰둥해서 날더러 신식 창가를 가르쳐 달라고 들병이는 구식 소리도 잘 해야
하겠지만 첫째 시체 창가를 알아야 부려먹는다 한다. 말은 그럴 법하나 내가 어디 시체 창가를
알 수 있냐. 땅이나 파먹던 놈이 나는 그런 거 모른다 하고 좀 무색했더니 며칠 후에는 년이
시체 창가 하나를 배 가주 왔다. 화로를 끼고 앉아서 그 전을 두드리며 네 보란 듯이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피었네 피었네 연꽃이 피었네. 피었다고 하였더니 볼 동안에 옴쳤네. 대체
이걸 어디서 배웠을까. 얘 이년 참 나보단 수단이 좋구나, 하고 나는 퍽 감탄하였다.
 그랬더니 나중 알고 보니까 년이 어느 틈에 야학에 가서 배우질 않았겠나. 야학이란 요 산
뒤에 있는 조그만 움인데 농군 아이에게 한겨울 동안 국문을 가르친다. 창가를 할 때쯤 해서
년이 춘 줄도 모르고 거길 찾아 간다. 아이를 업고 문 밖에 서서 귀를 기울이고 엿듣다가 저도
가만가만히 흉내를 내 보고 내 보고 하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 집에 와서는 히짜를 뽑고
야단이지. 신식 창가는 며칠만 좀더 배우면 아주 능통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년의 낯짝만은 걱정이다. 소리는 차차 어지간히 돼 들어가는데
이놈의 얼굴이 암만 봐도 봐도 영 글렀구나. 경칠 년, 좀만 얌전히 나왔다면 이판에 돈 한 몫
크게 잡는걸. 간혹 가다 제풀에 화가 뻗치면 아무 소리 않고 년의 배때기를 한 두어 번 안
줴박을 수 없다. 웬 영문인지 몰라서 년도 눈깔을 크게 굴리고 벙벙히 쳐다보지. 땀을 낼 년. 그
낯짝을 하고 나한테로 시집을 온담, 뻔뻔하게. 하나 년도 말은 안 하지만 제 얼굴 때문에 가끔
성화이지. 쪽 떨어진 손거울을 들고 앉아서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고 하지만 눈깔이야
일반이겠지 저라고 나 뵐 리가 있겠나. 하니까 오장 썩는 한숨이 연방 터지고 한품 죽는구나.
그러나 요행히 내가 방에 있으면 돌아보고,
 "이봐! 내 얼굴이 요즘 나가지 않어?"
 "그래, 좀 난 것 같다."
 "아니 정말 해봐."하고 이년이 팔때기를 꼬집고 바싹바싹 들어 덤빈다. 년이 능글 차서 나쯤은
좋도록 대담해 주려니, 하고 아주 탁 믿고 묻는 게렷다. 정말 본 대로 말할 사람이면 제가 겁이
나서 감히 묻지도 못한다. 짐짓 이뻐졌다, 하고 나서도 능청을 좀 부리면 년이 좋아서 요새
분때를 자주 밀었으니까 좀 나졌겠지, 하고 들병이는 뭐 그렇게까지 이쁘지 않아도 된다고 또
구구히 설명을 늘어놓는다. 경을 칠 년, 계집은 얼굴 밉다는 말이 칼로 찌르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모양이다. 별 욕을 다 하고 개 잡듯 막 뚜드려도 조금 뒤에는 헤, 하고 앞으로 겨드는
이년이다마는 어쩌다 제 얼굴의 흉이나 좀 본다면 사흘이고 나흘이고 년이 나를 스을슬 피하며
은근히 곯리려고 든다. 망할 년 밉다는 게 그렇게 진저리가 나면 아주 면사포를 쓰고 다니지
그래. 년이 능청스러워서 조금만 이뻤더라면 나는 얼렁얼렁 해 버리고 돈 있는 놈 군서방 해
갔으렷다. 계집이 얼굴이 이쁘면 제 값 다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년의 낯짝 더러운 것이
나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 안 할 수 없으리라.
 계집은 아마 남편을 속여먹은 맛에 깨가 쏟아지나 보다. 년이 들병이 노릇을 할 수단이 있다고
괜히 장담한 것도 저의 이 행실을 믿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새벽 일찍이 뒤를 보려니까 어디서
창가를 부른다. 거적 틈으로 내다보니 년이 밥을 끓이면서 연습을 하지 않나. 눈보라는 생생
소리를 치는데 보강지에 쪼그리고 앉아서 부지깽이를 솥뚜껑을 톡톡 두드리겠다. 그리고 거기
맞추어 신식 창가를 청승맞게 부르는구나. 그러나 밥이 우루루 끓으니까 뙤를 빗겨 놓고 다시
시작한다.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아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망할 년, 창가는
경치게도 좋아하지. 방아타령 좀 부지런히 공부해 두라니까 그건 안 하구. 아따 아무거라도 많이
하니 좋다마는 이번엔 저고리섶이 들먹들먹하더니 아 웬 곰방 담뱃대가 나오지 않냐. 사방을
흘끔흘끔 다시 살피다 아무도 없으니까 보강지에다 들이대고 한 모금 뿌욱 빠는구나. 그리고
냅다 재치기를 줄대 뽑고 코를 풀고 이 지랄이다. 그저께도 들켜서 경을 쳤더니 년이 또 내
담배를 훔쳐 가지고 나온 것이다. 돈 안 드는 소리나 배웠겠지, 망할 년 아까운 담배를. 곧
뛰어나가려다 뒤도 급하거니와 요즘 똘똘이가 감기로 앓는다. 년이 밤낮 들쳐업고 야학으로
돌아다니더니 그예 그 꼴을 만들었다. 오랄질 년. 남의 아들을 중한 줄 모르고 들병이 하다가
이것 행실 버리겠다. 망할 년이 하는 소리가 들병이가 되려면 소리도 소리려니와 담배도 먹을 줄
알고 술도 마실 줄 알고 사람도 주무를 줄 알고 이래야 쓴다나. 이게 다 요전에 동리에 들어왔던
들병이에게 들은 풍월이렷다. 그래서 저도 연습 겸 골고루 다 한 번씩 해 보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다. 방아타령 하나 변변히 못 하는 년이 소리는 고걸로 될 듯 싶은지!
 이런 기맥을 알고 년을 농락해 먹은 놈이 요 아래 사는 뭉태놈이다. 놈도 더러운 놈이다. 우리
마누라의 이 낯짝에 몸이 달았으면 그만 하면 알쪼지. 어서 계집이 없어서 그걸 손을 대구, 망할
자식두. 놈이 와서 섣달 대목이니 술 얻어먹으러 가자고 년을 꼬였구나. 조금 있으면 내가 올
테니까 안 된다. 해 지기 전에 잠깐만, 하고 손을 내 끌었다. 들병이로 나가려면 우선 술 파는
경험도 봐야 하니까, 하는 바람에 년이 솔깃해서 덜렁덜렁 따라섰겠지. 집안을 망칠 년. 남편이
나무를 팔러 갔다 늦으면 밥 먹을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 옳지 않으냐. 남은 밤길을 30리나
허덕지덕 걸어오는데. 눈이 푹푹 쌓여서 발모가지는 떨어져 나가는 듯이 저리고. 마을에 들어왔을
때에는 짜장 곧 쓰러질 듯이 허기가 졌다. 얼른 가서 밥 한 그릇 때려 뉘고 년을 데리고 앉아서
또 소리를 가르쳐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술집을 지나다가 뜻밖에 깜짝 놀란 것은 그 바깥방에서
년의 너털웃음이 들린다. 얼른 다가서서 문틈으로 들여다보니까 아 이 망할 년이 뭉태하고 술을
먹는구나.
 이때까지 하도 우스워서 꼬들만 보고 있었지만 더는 못 참는다. 지게를 벗어 던지고 방문을 홱
열어 젖히자 우선 놈부터 방바닥에 메다꼰잤다. 물론 술상은 발길로 찼으니까 벽에 가 부서졌지.
담에는 년의 비녀쪽을 지르르 끌고 밖으로 나왔다. 술 취한 년은 정신이 번쩍 들도록 흠뻑 경을
쳐 놔야 할 터이니까 눈에 다 틀어박았다.
 그리고 깔고 올라앉아서 망할 년 등줄기를 두 주먹으로 대고 우렸다. 때리면 때릴수록 점점
눈속으로 들어갈 뿐, 발악을 하기에는 너무 취했다. 때리는 것도 년이 대들어야 멋이 있지 이러면
아주 싱겁다. 년은 그대로 내버리고 방으로 들어가서 놈을 찾으니까 이 빌어먹을 자식이
생쥐새끼처럼 어디로 벌써 내빼지 않았나. 참말이지 이런 자식 때문에 우린 동리는 망한다.
 남의 계집을 보았으며 마땅히 남편 앞에 나와서 대강이가 깨져야 옳지 그래 달아난남. 못생긴
자식도 다 많지. 할 수 없이 축 늘어진 이년을 등에다 업고 비척비척 집으로 올라오자니까
죽겠구나.
 날이 몹시 차지, 배는 쑤시도록 고프지, 좀 노할래야 더 노할 근력이 없다. 게다 우리 집 앞
언덕을 올라가다 엎어져서 무르팍을 크게 깠지. 그리고 집엘 들어가니까 빈방에는 똘똘이가 혼자
어미를 부르고 울고 된통 법석이다. 망할 잡년두, 남의 자식을 그래 이렇게 길러 주면 어떡할
작정이람. 년의 꼴 봐 하니 행실은 예전에 글렀다. 이년하고 들병이로 나갔다가는 넉넉히 나는 한
옆에 채워 놓고 딴 서방 차고 달아날 년이다. 너는 들병이로 돈 벌 생각도 말고 그저 집안에
가만히 앉았는 것이 옳겠다. 구구로 주는 밥이나 얻어 먹고 몸 성히 있다가 연해 자식이나
쏟아라. 뭐 많이도 말고 굴대 같은 아들로만 한 열 다섯이면 족하지. 가만 있자. 한 놈이 1년에
벼 열 섬씩만 번다면 열 다섯 놈이니까 1백 50섬. 한 섬도 더도 말고 10원 한 장씩만 받는다면
죄다 일천 오백 원이지. 일천 오백원, 1천 5백원, 사실 일천 오백 원이면 어이구 이거 참 너무
많구나. 그런 줄 몰랐더니 이년의 뱃속에 1천 5백 원을 지니고 있으니까 아무렇게 따져도 나
보담은 낫지 않은가.

    이무영(1908__1960)
 그는 휘문고보에 입학하여 수학하나 1925년에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작가 집에
기숙하면서 4년간 작가수업을 하였다. 이 무렵 그는 불문학, 노문학등 많은 문학작품을 체계 있게
통독한다. 그는 20편의 장편, 7편의 중편, 108편의 단편 그리고 9편의 희곡 중 농촌 소재에
해당하는 것은 2분의 1이하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에게 농촌 소재의 작가, 흙의 작가로서의
비중을 두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종래의 계몽적이며 이상적인 장으로 사용하였던 농촌을 한국의
역사적인 현실로 부각시켰으며, 또한 농의 정신을 말해 주는 순박한 인간과 함께 고민하고
과감하게 현실을 극복하려는 인물을 등장시킴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농촌 문학을 개척한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의도는 "흙의 노예", "제1과 제1장"을 비롯한 많은 작품에 반영되어
농민작가로 불리우게끔 되었다. 진실과 경건, 그리고 정열적인 정신의 자세는 이무영 문학의
구도자적 특징을 더욱 높여 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가 이동희씨의 "대표적인
농촌문학가"에서,

    제1과 제1장
    "인문평론" 1940. 4.

   1

 덜크덕덜크덕-퍼언한 신작로에 소마차 바퀴소리가 외로이 울린다. 사양에 키만 멀쑥하나 된
가로수 포플라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별로이 행인도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동리 앞에는 곰방대를 문 영감님이 발가숭이 손자놈을 데리고 앉아서 돌장난을 시키고
있다. 약삭빠른 계절에 뒤떨어진 매미소리는 마치 남의 나라에 갇힌 공주의 탄식처럼 청승맞다.
 "이러 이 소 쯔쯔!"
 안반짝 같은 소 엉덩이에 철썩 물푸레 회초리가 운다. 소란 놈은 파리를 날려 주어 고맙게
여길 정도인지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저 뚜벅뚜벅 앞만 내다보고 걸을 뿐이다.
 소마차가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주막집 뜰팡에 멍석을 깔고 땀을 들이던 일꾼들의 눈이
일시에 마차 짐으로 옮겨진다. 이삿짐을 처음 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이 우차 위에
실려진 가구며 세간이 진기한 모양이다. 항아리니 독이니 메주덩이 바가지 짝-이런 세간은 한
개도 볼 수 없고 농짝은 분명히 농짝이나 생김생김도 그러려니와 시골서는 볼 수 없는
허들겁스럽게 큰 장이다. 이모저모에 가마니 짝을 대어서 전부는 보이지 않으나마 넘어가는
햇빛을 받아 거울이 번쩍하나. 함짝 대신에 화류단층장 버들상자도 큰 것이 네모 반듯하다.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길도 없는 혼란스러운 갓이며 검고 붉은 빛이 도는 가죽가방, 면장나리나 무슨
주임나리나가 놓고 있는 그런 책상에 걸상도 화려하다.
 "위 첩 살림인 게군."
 키만 멀쑥하니 여덟 팔자 노랑수염이 담숭담숭 난 하릴없이 노름꾼처럼 생긴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뗀다.
 "토ㅅ자에 ㄱ했네."
 누군지가 이렇게 받자,
 "토ㅅ자에 ㄱ이 아냐, 트ㅅ자에 ㄹ일세, 어디루 보나 저게 첩 살림 같은가. 첩살림이면야
자개상이 번득였지 사물상이 당한 겐가. 저 임자들을 보지!"
 이삿짐에서 여남은 간쯤 뒤떨어져서 곤색 저고리에 흰 바지를 받쳐 입은 청년이 하나
따라섰다. 아직 햇살이 따가우련만 모자도 단정히 썼다. 나이는 삼십 사오 세쯤 되었을까...
 청년은 한 손으로 양장을 한 오륙 세 된 계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옆에는 청년보다도 열
살이나 차이가 있음직한 젊은 여인이 역시 양복을 입힌 머슴애의 손을 잡고 간다. 한 너덧 살
되었음직한 토실토실하게 생긴 아이다. 과자 주머니인지 바른손에는 새빨간 주머니를 늘였다.
 "아빠 아직두 멀었우?"
 말소리까지 타박타박하다.
 "인저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에-참 우리 철이 착하다."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덤덤히 마차 뒤를 따라간다.
 "화신상회만큼 되우?"
 어린것은 몹시 지친 모양이다.
 "그래 그만큼 가면 되어."하고 안타까운 듯이 젊은 여인이 대신 대답을 하자니까 어린것이
고개를 반짝 들고서 항의를 한다.
 "뭘 엄만 아나? 엄마두 첨이라면서,"
 "그래두 난 알아. 그렇죠 아빠?"
 "암, 엄만 알구말구."
 청년과 여인은 어린것을 번갈아 업기도 하고 안기도 하다가 몇 걸음 걸려도 보고 몹시
거추장스러우련만 별로이 그런 티도 없다. 소에 끌려가는 이삿짐처럼 그저 묵묵히 끌려가고만
있다.
 "거 어디루 가는 이삿짐요?"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소복 묻듯 한다. 마차꾼은 '나는 소 아니오!'하고 퉁명을 부리듯,
 "샌터 짐요!"하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대답할 뿐이다.
 "샌터 뉘 집 짐요?"
 "난두 모르오!"하고는 소 엉덩이에다 매질을 한다.
 "이러 이 소! 대꾸하기 귀찮다. 어서 가자."
 동리를 빠져 나오더니 청년도 여인네도 뒤를 한 번씩 돌아다본다. 무슨 감시의 구역에서
벗어나기나 한 때처럼 여인네는 가벼운 안도를 얼굴에 나타내기까지 한다.
 "인저 내가 좀 물어 봐야겠군. 아직두 멀었어요?"
 "인저 얼마 안돼. 전에 다닐 때 얼마 안되던 것 같았는데 왜 이리 멀까."
 혼잣말에 우차꾼이 받아넘긴다.
 "여름이라 길두 늘어나 그렇지요."
 얼마 안 가니 조그만 실개천이 흐른다. 청년-수택은 어려서 수수미꾸리 잡던 기억도 새로왔고
땀도 돌릴 겸 포플라 그늘에서 참을 들이기로 했다. 이 개천을 건너서 한 십 분이면 그의
고향인 샌터에 다다르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영감두 쉬어 같이 갑시다. 자 담배 한 개 피슈."
 "고약이라께?"
 "이런 담밸 피구 입술이 성할 수가 있을라구요." 이렇게 재미있는 늙은인 줄 알았더면
정거장에서부터 말벗을 해 왔더면 오는 줄 모르게 왔을 걸...하고 수택은 오늘 처음으로 웃었다.
 수택은 차를 먼저 가게 하고 천천히 세수도 하고 발도 벗고 씻었다. 아내가 핸드백의 조그만
면경을 꺼내어 화장을 하는 동안에 어린것들도 벗기고 말끔히 씻어 주었다. 물에 손을 잠그고
있으려니 어려서 물장난하던 기억이며 그 동안 세파와 싸운 삼십 년 간의 생활이 추억되어
덜크덕덜크덕 멀어져 가는 이삿짐 소리도 한층 더 서글펐다.
 "패배자."
 그는 가만히 이렇게 자기를 불러 본다. 시냇물은 조약돌이 옹기종기 몰려 있는 수택의 발 밑을
지날 때마다 뭐라고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득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삭이는 물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다도
패배자의 짐을 싣고 가는 마차 바퀴소리만이 과장이 돼서 울리는 것이었다.
 "패배자? 어째서 패배자냐? 오랜 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출발이지."
 누가 있어 자기를 패배자라고 부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본다.

   2

 사실 이번 길은 수택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었다. 그것이 희망의 새 출발이 될지
패배가 될지는 그가 타고난 운명(?)에 맡기려니와 현재 그의 가슴에 채워진 감회도 이 둘 중
어느 것인지 그 자신 모르고 있는 터다. 그가 농촌생활을 꿈꾸고 이른 봄 사아지 안을 두둑하게
넣은 춘추복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사직원이 이중봉투를 석 장이나 갈가리 피우고 여름을 났을
때는 그래도 '패배자'란 감정이 없을 때였다. 일금 오십 원의 샐러리맨, 그리 적은 봉급도
아니었다. 회사 총무부 주임 말마따나 이런 자리를 노리는 대학 출신의 이력서가 기백 장 서랍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터다. 사변으로 해서 갑자기 물가가 고등해진 터라 이 정도의 수입만
가지고는 도저히 도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혀 수입이 없는 것보다
날 것은 주먹구구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계획을 듣고 친구의 대부분이-아니 거의
전부가 반대를 한 것도 실로 이 단순한 타산에서였다. 너 굴러든 복바가지를 차 버리고
어쩔테냐는 듯싶은 총무부 주임의 눈치나, 철없이 날뛴다고 가련해 하는 눈으로 보는 동료들의
말투가 그의 결심에 되려 기름을 쳐 준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수택의 계획은 그네들이 보듯이
그렇게 근거가 적은 것도 아니다. 그의 계획이 무모함을 충고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거의 전부가
생활난에 중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수택만큼 생활고를 겪어 온 사람도 그만한 낫세로는
드물리라. 열 두 살에 고향을 떠나서 중학교를 고학으로 마쳤고, 열 일곱에 동경으로 가서 C대학
전문부를 마치는 동안도 식당에서 벗겨 내버린 식빵 껍질과 먹다 내버리는 밥덩어리를 사다 먹고
살아 온 그였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오륙 년 동안 동경서 구르는 동안에도 공중 식당일망정
버젓하니 밥 한 끼 사먹어 보지 못한 채 삼십줄에 접어든 그였다. 조선에 나와서도 지금의
X신문사 사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얻기까지의 삼 년간은 십전짜리 상밥으로 연명을 해 온 그였고,
직업이라고 얻어서 결혼을 한 후도 고기 한 칼 떳떳이 사먹어 보지 못한 그였다. 더욱이 십
개월이란 긴 동안 신문이 정간을 당코 푼전의 수입이 없었을 때도 세 끼나 밥을 못끓이고 인왕산
중허리 같은 배를 끌어안고 숨까지 가빠하는 아내와 만 하루를 얼굴만 쳐다보고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도 갖고 있는 그였다.
 이십 개월 동안에 그는 평상시 오고가던 친구들도 수입이 끊어지는 날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도
경험했고 쌀 말이나 설렁탕 한 그릇도 월급봉투가 없이는 대주지 않는 것도 잘 아는 터였다.
 "인전 널 것도 없지?"하고 물을 때,
 "입은 것밖에..."하고 대답하던 아내의 우울한 음성도 아직 귀에 새로왔고 십여 장이나 되는
전당포를 삼 개년 계획으로 찾아내던 쓰라린 경험도 아직 기억에 새로운 터였다.
 바로 신문이 해간 되던 바로 그 전 달이었만 막역지간이라고 사양해 온 M이라는 친구한테
마침 그날이 월급일이라서(아니 월급날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지만) 삼 원 돈을 취대하러 갔다가
거절을 당코 분김에 욕을 하고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둔 일기가 아직도 그의 책상 어느 구석에
끼워져 있을 것이다.
 이 수택이가 선선히 사직원을 내놓고 나선 것이니 놀랄 만한 사실임에 틀림은 없다.
 "그래, 갑자기 회살 그만두면?"
 마지막으로 사직원을 접수한 R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금후의 생활설계를 설명하는 데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에 가면 십여 두락의 땅이 있겠고
생활수준이 얕아질 것이고 고료 수입도 다소 있을 것이요...마치 R씨까지도 유인해서 끌고 나갈
듯이 호기가 있었던 것이다.
 "좀 더 신중히 하지?"
 호의에서 나온 이런 말에도 그는 적의나 있는 듯이,
 "그럴 필요 없지요."하고 그 자리서 내찼던 것이다.
 사직 이유는 병이었다. 간부측에서 병? 하고 반문했을 만큼 그는 그렇게 말 못된 병자는 물론
아니다. 병이라면 그것은 생리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이 더 위기에 가까웠었다. 의사들이 폐가
어떠니 늑막이 위험하니 할 때도 한편 겁은 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속짐작이 있기는 했었다.
그와 같이 소설을 써오던 H가 자기와 같은 자신으로 버티다가 쓰러진 그 길로 끝을 막은 무서운
사실에 잠시 '아차'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은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버릴 만큼
약해진 터도 아니었다. 이른 봄 그가 아내도 몰래 사직원을 쓰고 도장까지 단정히 눌러 가진
것은 그의 조금만 영웅심에서였다.
 수택은 동경서부터 소설을 써 왔다. 장방형도 아니요, 삼각형도 아니도, 그렇다고 똑 떨어진
원도 아니다. 세상에서는 그를 혹은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렀고 한때 경향문학이 성할 때는 혹은
반동 또 혹은 동반자라고 또는 허무주의자라고 야유도 했다. 그러나 기실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 자신 자기의 특징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작가였다. 소설가로서 차차 알려질
임시해서-아니 그 덕택이 있겠지마는-그는 취직을 했었다. 그것이 그의 작가생활의
마지막이었다. '저널리즘'이란 문학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 갓난애 숨길 만한 잔명을 근근히
유지해 왔다.
 첫 월급을 타던 기쁨은,
 "지난 X일 밤 자정도 가까와 바야흐로 삼라만상이 잠드려 할 때 XX동 XX번지 근방에서 뜻
아니한 비명이 주위의 정적을 깨뜨렸다. 이제 탐문한 바에 의하면..."
 이런 식의 기사를 쓸 때마다 희미해졌고 그것이 거듭되기 일 년이 못되어 그는 자기가
문학도였다는 의식까지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서를 드나들며 강절도, 밀매음,
사기 등속의 사건 전말을 듣는 것이 무슨 문학수업의 좋은 찬스나처럼 생각하던 것도
일시적이었고, 약을 폭로해서 민중의 좋은 시준이 되게 한다던 의협심도 기실 자기 위안의 좋은
방패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그는 완전히 기계였던 것이다. 아침이면
나와서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대개는 밤에 집이라고 찾아 든다. 친구에 휩쓸려 술잔도 마시고
회합에서 늦어 이차회가 벌어지고 이러구러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고 연도가
갈리었다. 그러기를 오년-그 동안에 수택이가 얻은 것은 허영과 태만이다. 그밖에 얻은 것이
있다면 자기가 아닌 이런 사회에서의 독특한 존재인 이르는 바 친구-아니 지인이다.
 그리고 잃은 것은 얻은 것에 비해서 너무나 많았다. 그는 적어도 세 사람의 친구는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한 해 두 해 지내는 동안에 세 친구도 없어졌고 문학도로서 쌓았던
조그만 탑도 출판기념회나 무슨 축하회의 발기인란에서나 겨우 발견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달 그달 발표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는 우울했다. 우두커니 맞은편 흰 회벽을
건너다본다. 성급한 전화 종소리도 그를 깨우쳐 주지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받잖을 전환 뭣하러 맸나요."
 문득 고개를 들면 천리안이라고 소문난 편집장의 두 줄 시선이 쏜다.
 아무것 하나 얻을 것도 없는 회합에서 늦도록 붙잡혔다가 홀로 막차에 앉은 때의 그 공허,
허무감 그것도 비길 데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 큰 전찻간에 동그만이 혼자 앉아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 속이 뜨끈해지는 일도 있었고 얼근히 술이 취했다가 깰 무렵에
집에 돌아가면 문득 숫보가 덮인 책상이 눈에 뜨인다. 펜까지 꽂혀 있는 잉크스탠드, 한 달 가야
한 번 건드려 주지도 않는 원고지가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고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목선처럼 애처로워진다. 다소 술기운이 작용을 했겠지마는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낼부터는 나도 단연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일 년을 별려서 시작한 것이 '소설 못쓰는 소설가'라는 단편이었다. 한 소설가가 취직을
했다. 박쥐처럼 해를 못보는 생활이 계속된다. 무서운 정열로 창작욕을 흥분시켜 주기는 하나
구상이 아물어지기도 전에 출근이다. 잡다한 사무에 얽매여 허덕이는 동안에 해가 지고 오뉴월
엿가래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회합이다, 이차회다, 야근이다를 계속한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짜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내일 형사들을 녹여 내어 재료를 얻어낼 계획이며 안의 진행방법 등을
공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운다. 그러나 이 소설도 끝끝내 소설이 못되고 말았다.
 그것은 몹시 무더운 날 밤이었다. 그는 소학생처럼 벽에다 좌우명을 써 붙였다. 1. 조기할 것,
2. 퇴사 즉시로 귀가할 것, 3. 독서 혹은 창작할 것, 4. 일찍 취침할 것. 그러나 이 좌우명은
이튿날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튿날은 사회부 부회가 밤 아홉 시까지나 계속되었다. 갑론을박의
3, 4시간을 겪은 그는 돌아오는 길로 쓰러져 자고 말았다. 이튿날은 신문사 주최인 축구대회
기사로 야근을 했고, 다음날은 부득이한 회합이 있어 열 시, 거기서 다시 이차 삼차를 거듭해서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세 시였다.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사는 걸까.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걸까. 문화사업? 흥!"
 이러한 반문을 해본다는 것은 벌써 한 전설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수택은 또 한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는 신문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 아닐 뿐만 아니라 영원히 신문기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니 신문기자로서의 성공이 곧 문학적으로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했던 것이다. 그것은 희극-아니 비극이었다.

   3

 수택이가 하루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하는 일 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다니었다. 하루는 S라는 동료를 유인해 가지고 청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둘
계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계로 이야기가 옮아갔을 때다. 그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낸지 몰랐었다.
매퀴한 냄새가 코를 꼭 찌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해서 심장으로 깊이깊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흙내였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일찍이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끼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불 하고 나선 아비와 같이
와서 농사를 짓자. -학문? 학문도 좋긴 하다. 하지만 학문이 짐이 될 때도 있으리라. 그때 그는
아버지를 비웃었다. 흙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면서도 흙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가
가엾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소하던 그 말이 지금 그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집으로 가자. 흙을 만지자."
 수택의 로맨틱한 계획은 이리하여 세워진 것이었다. 그의 계획은 그 동안 장만했던 가구를
전부 팔아 버리리라 한 것이나, 아내가 너무 섭섭해 하기도 했지마는 그들이 상상한 것의 절반도
못되었다.
 이백 원 남짓한 퇴직금이 그들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소꼴지게와 함께 수택의 일행이 쪽대문 안에 들어서자 흰둥이란 놈이 컹하고 물어 박는다.
빈집처럼 찬바람이 휘 돈다. 남의 집으로 잘못 들어온 모양이다. 수택은 부리나케 나와 문패를
보니 분명히 자기 집이다.
 "짐이 들어왔으니까 마중들을 나가신 모양이군요."
 아내가 들어가도 나오도 못하고 있는데,
 "오빠!"
 소리가 나며 와-들 몰려든다. 십 년 가까이 못 본 늙은 아버지도 설명을 듣지 않고는 모를
아이들 속에 끼었었다. 뒤미처 찢어진 고무신짝을 집어 든 고모도 왔고 폭 늙은 어머니도 뒤따라
왔다.
 "그래 이 몹쓸 것아 그렇게두..."하고 막 어머니의 원망이 나오자 그는 사랑으로 나갔다. 이 간
장방은 새에 장지를 질러 웃방은 남에게 세를 주었는지 주판소리가 달그락거린다.
 "저 밖엣게 너들 짐이냐?"
 "네"
 "그래? 헌데 갑자기 이게 웬일이냐?"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수택은 안으로 들어왔다.
 안채 위쪽으로 달린 골방이 치워졌다. 바람이 잔뜩 든 벽하며 벽 흙을 안고 자빠진 종잇장이며
비워 두었던 탓인지 곰팡내가 펄썩 난다. 색지를 붙인 궤짝이며 주둥이도 없는 단지, 도깨비라도
나와 멱살을 잡을 듯 싶은 방이다. 횃대에 걸린 헌옷은 흡사 죽은 사람같이 늘어졌다.
 수택의 그 아름다운 농촌 생활의 첫꿈이 깨진 것은 이 방에서였다. 그의 공상에서는 방부터가
이렇게 허무하지는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와 아들은 오래간만에 자리를 마주했다. 웃방에서 주판알을 튕기던 장사치도
갔고 단 둘만이 호젓이 앉았다. 고향으로 내려오기로 하기는 하면서도 기실 수택은 집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 자기가 집을 나갈 때는 논이 한 이십여 두락에 밭이 여남은 갈이나 있었다.
그후 동경서 나와서 들렀을 때는 논 닷 마지기가 줄었고 밭이 하루같이 남의 손에 넘어 갔었다.
그런지 칠년, 그 동안 거의 딴 남처럼 서신도 별로 없이 지내온 아버지와 아들이다. 물론
이렇다는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식적으로 그런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이 문화인인 아들은
원시인 그대로인 아버지를 경멸했고 아버지는 또 아버지대로 너무나 문화한 아들을 경이원지
했을 뿐이다.
 "흙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 그깟놈 눈만 다락같이 높았지."
 그는 이렇게 자기 아들을 조소했다.
 아들은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꼴이 싫다 했다. 흙에서 나서 흙을 먹고
사는 아버지-옷에까지 흙투성이가 되어 사는 흙인지 사람인지 모를 한낱 평범한 농부에게
털끝 만한 존경도 갖지 못했다. 당당한 문화인인 아들은 흙투성이인 김영감을 내 아버지노라고
내세우기조차 꺼려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가졌다는 것은 자기의 큰 치욕이라고까지 생각해 온
터다. 결혼을 하면서도 자기 아버지를 청하지 않은 것도 그 자신은 친구나 동료들한테 달리
변명을 했겠지마는 기실 자기 아버지의 그 흙투성이 꼴을 뵈고 싶지 않다는 허영에서였다.
김영감만 해도 이런 눈치를 못챌 리는 없었다. 집안에서고 동리에서 왜 며느리 보는 데
안가는냐고 해도,
 "아 그 잘난 놈 잔체에 못난 애비가 가? 댕꼴 곽 주식이 아들놈처럼 제 애빌 보구 누구냐니까,
'우리집 머슴'이라고 대답하더라는데 그런 놈들이 애빌 보고 행랑아범이라구 하지 말란 법이
있다던가?"
 이렇게 격분을 했었다. 또 사실 그때의 수택으로서는 늑중 그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싫으니까 차라리 못오게 한 것이었을 것이었다. 이런 아들이 지금 도시에는 얼마나
많을 것인고?...
 "사람이란 흙내를 맡아야 하느니라. 대처(도회)사람들이 암만 고량진미로 음식을 만든대도 시골
음식처럼 구수한 맛이 없느니라. 마찬가지야. 사람이란 흙내도 맡고 된장 맛도 나고 해야 구수-한
맛이 나는 게지. 음식이나 사람이나 대처 사람들이 맑구 정오(경우)야 밝지! 허지만 사람이란
정오만 가지고 산다더냐! 일테면 말이다. 내가 네 발등을 잘못해서 밟았다고 치자꾸나. 그러면 넌
발끈할 게다. 허지만 우리 시골 사람들은 잘못해 밟았나보다 하군 그만이거든. 정오로 친다면야
남의 발을 밟은 사람이 글지. 그래 이 많은 인총에 정오만 가지고 살려구 들어?"
 수택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 고향에 돌아온 것을 붙잡고 김영감은 이렇게 자기의 지론을 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도회물을 먹은 아들은 물론 코웃음을 쳤었다.
 몇 핸가 후다. 음력과세를 한다고 고향에 내려온 일이 있었다. 이십년래의 혹한이니 삼십 년의
추위니 날마다 신문이 떠들어댈 때였다. 그는 겉으로는 하도 오래간만이니 집에 와서 과세를
한다고 꾸몄지만 기실은 근방 읍에까지 출장이 있어서 온 김에 들른 것이었다.
 그날 밤 수택의 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벽에서 나는 황토 냄새와 그야말로 된장내처럼 쾨쾨한
냄새로 잠을 못 이루고 있을 때 울안에서 발소리가 난다. 조금 있더니 누군지 밖에서,
 "아무것도 없으니 나오! 나오."하는 애원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수택은 문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봤다. 도둑이 분명하다. 밖에서는 나오라고 하나 나갈 길을
막아선지라 어쩔 줄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황당해 한 도둑은 급기야 애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갈 길을 좀 티워 줘유!"
 이때 그는 벌써 부엌을 돌아서 울안에 와 있었다. 손에 흉기 하나 들지 않은 좀도둑임을
발견한 그는 억 소리와 함께 덮치어 잡아 낚았다. 그는 학생시대에 배운 유도로 도둑을
메었다치고는 제 허리끈으로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온 집안이 깨고 뒤미처 김영감도 달려들었다. 영감의 손에는 지겟작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도둑놈도 그랬고 수택이도 그랬고 온 집안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다. 몽둥이에 맞을 사람은
그 도둑이리라고.
 그러나 아니었다. 지겟작대기에 아랫종아리를 얻어 맞은 것은 아들이었다. 수택 자신도 그랬고
두둑도 그랬을 게고 집안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것은 영감이 흥분한 나머지 잘못 때린
것이라고-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수택은 얼른 피했었다. 피하고는 안심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김노인의 작대기는 재차 아들에게로 향하고 겨누어졌다.
 "이 몰인정한 녀석! 내 물건 도둑 안맞았으면 그만이지 사람은 왜 친단 말이냐! 응 이 치운
겨울에 도둑질하는 사람은 여북해 하는 줄 아느냐? 우리네 시굴 사람은 그런 법이 없다!"
 도둑은 울고 있었다. 도둑의 등에는 쌀 한 말이 짊어지어졌다.
 이튿날 수택은 지리할 만큼 긴 설교를 듣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이 법만 가지구 사는 게 아니니라. 법만 가지고 산다면야 오늘날처럼 법이 밝은 세상이
또 어디 있겠니. 법으로만 산다면야 법에 안 걸릴 놈이 또 어디 있단 말이냐. 넌 법에 안걸이는
일만 하고 사는 상싶지? 그런 게 아니니라. 올 갈에두 기다무라한 사람의 과수원에서 사괄 하나
따 먹다가 징역을 갔느니라. 남의 것을 따는 건 나쁘지. 나쁘기야 하지만 그게 징역 갈 죈
아니지. 어젯밤 일을 본다면 너두 네 과밭의 실괄 따면 징역 보낼 사람이 아니냐. 너 어제 그게
누군 줄 아냐? 모르는 체하긴 했다만 내 저 아버진 잘 안다. 알구보면 다 알 만한 사람야.
시굴서야 서루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모두 한집안 식구거든...사람 사는 이치가 다 그런
게란 말야!"
 -이러한 일이란 적어도 도회인의 감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수택은 오늘 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동안에 막연히나마 이르는바 '흙냄새의
감정'이 이해되어지는 것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김영감은 아들의 이 뜻하지 않은 계획을 듣고는 뛸 듯이 기뻐했다. 아들은 논 닷 마지기에 밭
하루갈이만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물자리 좋은 논으로만 여덟 마지기도 준다 했고 집도 한 채
세워 주마 한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소작권을 이동 받은 것에 불과했었다. 그의 집안에는 논 닷
마지기와 밭 두어 뙈기가 남아 있을 뿐이란 것도 그제서야 알았다.
 "피란 무서운 것인가 보구나. 난 네가 애비 옆으로 와서 이렇게 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더니라! 첨엔 답답하겠지마는 차차 농사에도 자밀 붙이구...허지만 걔가 이런 구석에서
살려구 하겠느냐?"
 "웬걸요. 저보다두 제가 서둘러서 한 노릇이니까 별말 없을 겝니다."
 "그래? 그럼 됐구나 뭐. 인제 나두 남들한테 떳떳스럽구..."
 버젓이 아들을 둘씩이나 두고도 자식을 거느리고 있지 못한 것이 동리 사람들 보기에 미안타는
것이었다. 그의 형은 딴 뜻을 품고 집을 나간 지 십 년이다.
 하여튼 이리해서 수택의 농촌 생활은 시작이 된 것이었다.

   4

 집은 조그만 동산 밑, 이 동리 면장이 첩 집으로 지었던 것을 일백 삼십 원에 사기로 했다.
퇴직금이었다. 그 앞으로 수택네 집 소유인 천여 평의 밭도 있어 거기에 심었던 무우와 배추도
그대로 수택의 소유로 이전이 되었다.
 첩의 집이었던 만큼 회칠도 했고 조그만 반침도 붙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골집이었다.
수택이네 큰 이불장만은 역시 들어가지를 않아서 봉당에다 받침을 하고 놓기로 했다. 짓다만
터라 마루가 없어서 그들 부처는 거기다 마루라도 들였으면 했으나,
 "얘들아, 쓸데없는 소리 말아라. 이 물가 비싼 세상에 마룬 들여 뭣 한다든? 마루가 없어 밥을
못먹진 않는다." 하는 바람에 아내는 실쭉해 하면서도 대꾸만은 없었다. 김영감은 아들 내외가
대처 사람인 체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양복때기를 꼬이고 나오는 것도 눈에 가시처럼 대했고
며느리의 트레머리도 못마땅해 한다. 그래서 그 처는 쪽을 찌었고 수택은 고의적삼을 장만했다.
 "시굴 시굴 해두 난 이런 시굴을 못봤어요. 산이 하나 변변한가 물 한 줄기가 시원한가. 이런
곳에 와 살 바에야 마주 벌판에 가서 황무지를 일쿠어 먹지."
 사실 수택이도 이 아내 말에는 동감이었다. 전에는 무심히 보아 그랬던지 자연도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으나 멀쑥한 포플라와 아카시아 숲이 실개천 가에 나 있을 뿐
이렇다는 특징도 없는 산천이다. 장성해서는 가 본 일도 없었지만 어렸을 제의 기억대로라면 그
아카시아 숲 앞에는 상당히 깊은 물도 있었고 큰 고기도 은비늘을 번득이었고 숲에서는 매미며
꾀꼬리도 울었던 것같이 기억이 되었으나 다시 가보니 조그만 웅덩이에는 오금에 차는 물이
괴었고, 가뭄 탓도 있겠지마는 송사리 떼가 발소리에 놀라서 쩔쩔 맬 뿐이다. 숲속의 원두막
정취도 그지없이 시적인 듯이 기억이 되었으나 막상 가보니 그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 숲속은
그나마도 습했다. 월여를 두고 가물었다건만 발을 들여 놀 때마다 지적지적한다. 꾀꼬리가
울었다고 기억한 것도 그의 착각이었다. 이런 숲에 들어오면 꾀꼬리도 목이 쉬리라 싶었다. 이런
데서도 우는 꾀꼬리가 있다면 필시 청상과부가 된 꾀꼬리리라 했다.
 "이렇게 보잘것 없는 자연이었던가?"
 속기나 한 것처럼 허무해서 우두커니 섰으려니까 김영감이 꼴지게를 지고 나온다.
 "옜다. 이건 네 거다, 이런 데 와 살자면 모두 배워야지!"
 숫돌물이 뿌옇게 그대로 말라붙은 낫이다. 수택은 아무 말 없이 받아 들고 따라가다가 자연
말을 했다.
 "뭐? 경치? 얘 넌 경치만 먹구 살 작정이나? 여기 경치가 어때? 산이 없나 풀이 없나. 숲이
있겠다, 십 리만 나가면 수리조합 보가 있겠다..."
 "볼 게 뭐 있어요?"
 그것이 자기 아버지의 탓이기나 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사방을 두리번거리려니까,
 "그래 여기 경치가 서울만 못하단 말이냐?"하기가 무섭게 지게를 벗겨 내던지고는
 상스러울 만큼 수택의 목덜미를 잡아 가랑이 속에다 집어 넣는다.
 "자 봐라! 먼 산이 보이고 저 숲이며 저 물하며 이만하면 되잖느냐!"
 수택은 너무 서두는 통에 어리둥절하고만 있었다. 엄한 독선생을 만난 때처럼 부자유했다.
 "그래, 보렴. 세상이란 모두 거꾸루 봐야 하는 게다. 경치경치 하지만 제대루 볼 땐 보잘것없던
것이 가랭이 밑으로 보니까 희한하잖느냐. 사람 산다는 것두 그러니라. 너들 눈엔 여기 사람들
사는 게 우습지? 허지만 여기 사람들은 상팔자야. 두메로 들어가 보면 조밥이구 보리밥이 구간에
하루 한 낄 제대로 못 얻어 먹는다. 그런걸 내려다보면 되나. 거꾸로 봐야지! 너들 눈엔 우리가
이러구 사는 게 개돼지같이 뵈겠지만서두 알구 보면 신선야, 신선. 너들 월급쟁이에다 대? 그
연기만 자옥한 들판에서 사는 서울 사람들에다 대? 보렴 네, 여기 삶들이 어떻던? 너들처럼
얼굴이 새하얗진 않지? 그게 신선이 아니구 뭐냐?"
 이 급조된 '젊은 신선은 그날 해가 지도록 끌려 다니며 억새에 서뻑서뻑 손을 베며 풀을
베었다. 하면 되리라고 생각한 낫질이 그 좁은 원고지 칸에 글자를 써 넣기보다 이렇게
어려우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침에는 새벽같이 끌리어 일어났다. 먼동이 트기가 무섭게 '어험'소리가 문턱에 난다. 나가
보면 김영감의 삼태기에는 벌써 쇠똥이 그득하게 담겨져 있었다.
 "네 봐라. 이놈이 줄 땐 허리가 아퍼도 논에다 넣어 두면 베가 그저 시커매지구나. 그까짓
암모니아에다 대? 그걸 한 가마에 오 원씩 주고 사다 넣으니 이놈을 며칠 주웠으면 돈 벌구 거름
생기구...자 어서 차빌 차려라. 네 댁두 깨우구. 해가 똥구멍까지 치밀었는데 몸이 근지러워
어떻게 질펀히 ㄴ단 말이냐."
 수택의 부처는 처음에는 허영이었다. 대학을 마치고 세숫물까지 떠다 바치라던 수택이와 처가
매일처럼 그 드센 일을 한다 해서 동리에서 한 화젯거리가 될 것을 상상만 해도 유쾌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수택이가 헌 양복조각을 입고 밭을 맨다거나 삽을 짚고 물꼬를 보러
간다거나 비틀비틀 꼴지게를 지고 개천을 건너 올 때마다 동리 사람들은 경이의 눈으로 그를
맞았던 거시이었다. 그의 아내가 물동이를 이고 비탈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삐끗해서 동이를
해먹었을 때도 그들은 웃는 대신 동정의 눈으로 보아 주었고 호미를 들고 남편 뒤를 따라 나서는
것을 보고는 이웃집 달순이며 앞집 봉년이를 큰일이나 난 듯이 등뒤에 느끼며 일을 했다. 이런
것이 그들에게 있어서 심지어 위안이기도 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잘하는 것이 자랑도
되었지마는 못하는 것도 부끄럼이 되지 않는 유리한 조건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얘 애어마. 너 그렇게 호밀 깊이 묻으면 배추 뿌리에 바람이 들잖겠냐. 요걸 요렇게
다루어가지구 살짝 흙을 일으키고 이쪽 손으론 풀을 집어내야지. 허 그래두 그러는구나. 옳지
옳지."
 이렇게 새 며느리(실상은 헌 며느리지만)한테 잔소리를 하는가 하면 어느새 수택이 등뒤에
와서 서 있는 것이었다.
 "에이끼 미련한 것! 배추밭 매는 걸 밥 먹듯 하는구나. 밥 한 술 떠넣구 반찬 한 가지
집어먹구...그 식이 아니야. 아 이쪽으로 흙을 이렇게 일으키면서 왼손으룬 풀을 집어내야지. 그걸
어떻게 따루..."
 "아직 손에 안 익어 그렇습니다. 아버지."
 수택은 이렇게 변명을 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밤에는 거적 한 닢이 등에 지워진다. 물꼬를 지키라는 것이었다.
 "네게 준 건 난 모른다. 농사 다 지어논 게니까 거둠세까지 네 손으로 해서 꼭꼭 챙겨 놔야
삼동을 나지!"
 동구를 벗어 나오니 약간 일그러진 달이 아카시아 숲에 걸렸다. 말복도 지난지 오래건만
아직도 바람은 무더웠다. 천변에는 여기저기 동리 부인네들이 보리밥 먹기에 흘린 땀을 들이고
아이들은 조약돌들을 또닥또닥 두드린다. 실개천 물소리도 제법 여물다. 풀숲에서 반딧불이
반짝이고 개구리소리가 으슥히 어울리는 것이 역시 아직도 여름밤이다.
 수택은 빨랫자리로 놓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양치를 했다. 아침저녁을 반죽한 치분으로만
닦아 온 이가 물로만 웅얼웅얼 뱉어도 입안이 환한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는 삽을 질질 끌고
징검다리를 건너 논길로 들어섰다. 광대 줄타듯 하던 논두렁도 어느새 평지처럼 평탄해진 것
같고 아랫 종아리에 채이는 이슬이 생기 있는 감촉을 준다. 아스팔트를 거닐다가 상점에서 뿌린
물이 한방울만 튀어도 시비를 걸던 일이 마치 옛날 꿈같았다.
 "이만하면 나도 농촌 제일과는 마친 셈인가?"
 구수한 풀내가 코를 통해서 가슴 속까지 스며드는 것을 그것이라고 느끼며 수택은 이렇게 혼자
중얼거려 본다. 밤이슬에 눅눅하니 젖은 셔츠에서도 차츰차츰 불쾌한 감촉이 없어져 간다. 쫄쫄쫄
윗논 배미서 아랫논으로 떨어지는 물꼬소리에 금시 벼폭이 부쩍부쩍 살이 찌는 것같이
느끼어지는 것은 벌써 그의 문학적인 감각 때문만이 아닌 것 같다.
 여남은 다랑이 건너 도둑한 밭 모롱이에서 누군지 단소를 처량스러이 불고 있다. 역시 물꼬
보는 사람이리라. 그 맞은편 아카시아가 몇 주 선 둔덕 원두막에서는 젊은이들의 노랫소리가
흘러 나온다. 술집 여인들이 놀러 나왔는지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끔 섞여 나온다.
 수택은 물꼬를 삥 한 번 둘러보고 원두막으로 어슬렁어슬렁 올라갔다. 발소리에 노랫소리가 뚝
그치며 누군지 소리를 딱 지른다.
 "누구유!"
 "나요!"
 "어 서울 서방님이신가. 그래 요샌 꼴지게가 등에 제법 붙든가?"
 꺼르르 웃음이 터진다. 시골 살면 그야말로 말소리에서도 흙내와 된장내가 나는 겐가...수택은
원두막 사닥다리를 한 층 한 층 올라가며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내게선 언제부터나 흙냄새가 나려는고..."

   5

 분명한 울음소리다. 그도 여자의-아니 듣고 있을수록에 그 울음소리에는 귀가 익다.
누굴까?...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눈이 아주 띄었다. 어느 땐지 멀리 물방아 돌아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릴 뿐 어린것들의 숨소리조차 고요하다.
 옆을 더듬어 보니 어린것들만이 만져지고 응당 그 옆에 누웠어야 할 아내가 없다. 수택은
그대로 죽은 듯이 누워 눈에 정기를 모았다.
 또 울음소리다. 그것은 마치 앵금줄을 긋는 듯싶은 애절한 울음소리다.
 -아내였다.
 "여보!"
 "..."
 "여보!"
 대답 대신에 울음소리가 한층 높아진다. 그도 일어나서 아내의 옆으로 갔다.
 "왜 그러오?"
 "..."
 "말을 해야 알지. 뉘가 뭐라 그럽디까?"
 "아뇨."
 "그럼 어디가 아프오?"
 또 말이 없다.
 "말을 해야 알잖소. 왜 그러오?"
 "설사가 나요!"
 아내는 이 한 마디를 하고는 그대로 흑흑 느낀다. 그는 어이가 없어 웃음이 탁 터졌다.
 "나이 삼십이 된 여자가 설사 난다구 자다 말구 일어나 앉아 운다? 흐흐흐흐."
 "설사가 자꾸자꾸 나니까 그렇지요."
 울음 반 말 반이다. 그는 또 한 번 커다랗게 웃었다.
 "여보. 그래 설사가 나건 약을 사다 먹든지 밥을 한 끼 굶고서..."허는데 아내는,
 "그만둬요. 당신처럼 무심한 이가 어딨어요!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오던 날부터 설사하구 눈이
퀭하니 들어가도 일언반사가 없으니."
 "그렇기에 약을 사다 먹으랬지. 내가 집에 붙어 있어야 알지."
 아내는 또 모를 소리를 한다.
 "이렇게 나는 설사에 약이 무슨 소용야요. 밥을 갈아 먹어야지."
 그제야 수택은 설사 나는 원인을 눈치챘던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듣고 생각하니 자기도 오던
이튿날부터 설사가 났다. 갑자기 물을 갈아 먹은 관계려니 했으나 며칠을 두고 설사가
계속되었다. 기실은 아직까지도 소화가 그렇게 좋지는 못한 폭이었다.
 "보리끝이 자꾸 뱃속에 들어가서 장을 꼭꼭 찌르나 봐요. 필련이두 자꾸 배가 아프다고
저녁마다 한바탕씩 울고야 잔대요."
 "흥 창자두 흙내를 맡을 줄 알아야 할까보구나..."
 그는 아무말도 못했다. 아직 살림 면모가 갖추어지지도 못했고 여름에 딴 불을 때느니 밥만은
큰 집에서 함께 먹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자니 시골의 이 철의 꽁보리밥으로 신곡장을 대는
동안이다. 쌀밥만 먹던 창자에 갑자기 깔깔한 보리쌀만이 들어가니까 문화생활만 해오던
소화기가 태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럼 쌀을 좀 두어 달라지. 기실 나두 늘 배가 쌀쌀 아팠는데 그걸 난 몰랐구려."
 "야단나게요! 아버님이 이번엔 또 창자를 거꾸로 달구 먹으라고 걱정하잖으시겠어요?"
 가랑이 속으로 경치를 본 이야기를 아내는 생각해 낸 모양이었다.
 "그만 자우. 내 낼 아버님께 말씀해서 당분간은 쌀을 좀 섞어 먹도록 할 게니까."
 그는 어린애를 달래듯이 아내를 재웠다. 추수만 끝나면 남편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데 유일한 희망을 붙이고 있는 줄을 알고 근 이십 일이나 설사를 하면서도 군말 한 마디
안했다는 데 표시는 안했지만 여간 감격한 것이 아니었다. 부디 그런 마음을 버리지 말라 했다.
 이튿날부터는 쌀이 반은 섞이어졌다.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수택은 용기를 못내고
필련이란 년을 시켜 할아버지를 조르게 했던 것이다.
 "할 수 없구나. 그것들이 창자까지 사람 창잘 못가졌으니 딱한 노릇이다. 그러시겠지."
 딸년은 할아버지의 흉내를 내며 재미나게 웃었다.
 그러나 쌀의 분량은 점점 줄어갔다. 그 대신 보리가 늘었고 조가 뛰어들었다. 감자니 기장 같은
잡곡도 간혹 섞였다. 하루바삐 신곡이 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지금의 수택 부처와 어린애들에게
있어서는 유일한 낙이었다. 이때부터 수택의 창작욕도 부쩍 부쩍 늘어갔다. 오랜 전부터 그의
머릿속에서 매대기를 치던 어떤 장편소설의 상이 거의 가다듬어질 무렵에는 수택이가 물꼬를
매고 이듬매기를 해 준 벼도 누렇게 익어 갔다. 집 앞 텃밭의 배추도 제법 자리를 잡고 토실토실
살쪄 갔다. 사람이란 이렇게 욕심이 많은 겐가 싶었다. 손이래야 몇 번 댄 곡식도 아니건만
야무지게 여문 벼알이며 배추 한 폭에까지 지금까지는 맛보지 못한 그윽한 애정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가 일찍이 깨알처럼 씌어진 원고지의 글자를 보는 때의 그 애정 그 감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일년내 피와 땀을 흘려야 벼 한 톨 얻어먹지 못하고 빈손만 털고 일어나는 소작인들의
그 애절해 하던 심정도 지금서야 이해되는 것 같았고 매년 그러리라는 것을 빤히 내다보면서도
그 농사를 단념하지 못하는 그네들의 심정도 이해되는 것 같았다. 타작 마당에서 벼 한 톨이라도
더 차지할 것을 전제로 한 애정임에는 틀림이 없겠지마는 단지 그러한 의욕만으로 그처럼이나 벼
한폭 배추 한 잎을 사랑할 수가 있을까. 그것은 마치 종이값도 못되는 원고료를 전제한
작품이기는 하지마는 쓰는 동안에는 그러한 관념이 전혀 없이 그저 맹목적인 정열을 글자 한 자
한 자에마다 느끼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했다. 애정이란 이해관계를 초월한다는 것을 수택은 또
한 번 생각한다. 이 애정, 그것으로 인류는 살아가는 것이요, 이 애정으로 도덕을 삼는 데서만
인류는 행복될 것이다 싶었다. 아버지의 늘 말하던 소위 '흙냄새'와 된장내'란 결국 이런 애정을
의미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해 본다. '대처 사람'들에게는 흙냄새가 안 난다는 그 말은 곧
이해를 초월한 애정이 없다는 말이 아닐까. 언젠가 집안에 도둑이 들었을 때 도둑을 잡았다고
자기 아버지는 그를 때렸다. 도둑질은 분명히 악이다. 악을 제지하고 미워하는 것은 선이다.
이것은 사람이 가진 그리고 가져야 할 위대한 정신인 동시에 본능이다. 이 선, 이 본능에 대해서
그의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로서 예물 했다. 그러면 그의 아버지는 도둑질을 악으로써 인정치 않는
것일까 하면 그렇지는 않다. 흙속에서 나서 흙과 같이 자라고 흙과 더불어 살아 온 그에게는
포근포근한 흙의 감정과 김가고 이가고 정가고 간에 씨만 뿌려 부면 길러 주는 그러한 흙의 애정
속에서 살아온 그는 없어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놈보다는 흙의 냄새를 맡을 줄 모르고 흙의
애정을 유린한 철두철미 '대처 사람'인 아들에게 보다 더 증오를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수택은 무서운 정열로 자기의 농작물을 사랑했다. 그것은 자기의 작품을 사랑하던 그 정열이다.
문득 꺼칠해진 벼폭을 발견하고는 인쇄된 자기 작품에서 전후 뒤바뀐 귀절을 발견할 때와 꼭같이
놀랐다. 그것은 그지없이 불쾌한 순간이었다. 수택은 그대로 논으로 뛰어들었다. 아랫동아리부터
벼폭이 노랗게 말라 든다. 이삭은 알맹이 한 개 안든 빈 쭉정이었다. 격한 나머지 그는 벼폭을
잡고 낚았다. 각충이란 놈이 밑 대궁에 진을 치고 보기 좋게 까먹은 것이었다.
 그는 삼십여 년의 반생 동안 이처럼 격한 일이 없었다. 이만큼 어떤 물건이나 생물에 대해서
증오를 느껴본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자기 혈관 속에 이토록이나 잔인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도 오늘서야 처음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는 벼폭을 발기고 일일이 각충을 잡아냈다.
그래서는 돌위에다 놓고 짓찧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일생 처음으로 미움다운
미움을 경험했다고 생각하였다.

 수택은 처음 고향에 돌아와서 동리 사람들의 시선에서 차디찬 것을 느끼었었다. 말만 고향이지
눈에 익은 얼굴도 거의 없었다. 파도에 밀린 뱃조각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쫓기어 태반은
타곳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때 그 차디찬 시선에 그는 일종의 반감까지 일으킨 일이
있었으나 지금 가만히 생각하니 그래도 자기 아버지가 아들에게 품고 있던 그 증오보다는 오히려
나은 것이었다 싶었다.
 "그렇다. 하루바삐 나도 대처 사람의 탈을 벗고 흙과 친하자. 그래서 흙의 냄새를 맡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타이를 때 누군지 뒤에다 대고 소리를 꽥 지른다.
 "그것은 퇴화다."
 그것은 대처 사람인 또한 다른 수택이었다. 물방울 한 개만 튀어도 시비를 가리고 파리 한
마리에 상을 찡그리고 데파트에서 한 시간씩이나 넥타이를 고르던 도회인의 반역이었다.
 "퇴화? 퇴화 좋다."
 "아니 패배이다! 패배자의 역변이다. 도시생활-문명사회에서 생활경쟁에 진 패배자의
자위수단이다. 그것은..."
 "아무것이든 좋다!"
 그는 이렇게 발악을 했다.
 이러한 마음의 투쟁은 날은 거듭할수록에 격렬해 갔다. 수택이가 자기의 피에는 흙의 전통이
흐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한 착각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에 문화에 주린 도회인의 반항은
억세 갔다. 포근포근한 흙을 밟는 평범한 감촉보다도 가죽을 통해서 오는 포도의 감촉이 얼마나
현대적인가 했다. 그것은 마치 필대로 핀 낡은 지폐를 만질 때와 빠작 소리가 그대로 나는 손이
베어질 것 같은 새 지폐를 만질 때의 감촉과의 차이와도 같았다. 사람에게서나 자연에서나
입체적인 선의 미가 그리웠다.
 "아니다. 참자. 흙과 친하자!"
 수택은 벌떡 일어났다. 참새 떼가 와- 하고 풍긴다. 이 젊은 도회인이 도회의 환상에 사로잡힌
동안 참새 떼들은 양양해서 벼톨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여 우이!"
 건너 다랑이로 옮겨 앉는 참새를 쫓으면서 논둑을 달리었다. 참새 떼는 적어도 수백 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한 마리가 한 알씩만 까먹었대두 수백 톨을 까먹었을 것이다. 그는 달리다 말고
벼이삭에 눈을 주었다. 누렇게 익은 벼폭들이 생기가 없다. 그때 울컥하고 가슴에 치미는 것이
있다. 증오였다. 도시 생활에서 세련이 된 현대인의 증오였다. 이 갖은 정성과 피와 땀으로 가꾼
곡식을 장난하듯 까먹고 다니는 참새에 대한 증오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에 찬다.
 "우여! 우이!"
 꼼짝도 않고 참새 떼는 못견디어 하는 이삭에 그대로 조롱조롱 매달렸다. 그는 무서운 정열로
기관총을 사모했다. 전쟁 영화에서 보듯이 한 번 빙 둘렀으면 톡톡 소리와 함께 소나기처럼
떨어질 참새 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 도회인의 감각은 기분간의 위안을 받는 것이었다.
 도둑놈을 때릴 때 아버지가 자기에게 느끼던 증오도 이런 것이었을까?

   6

 한결 볕이 얇아졌다. 벌레소리도 훨씬 애조를 띠고 달빛도 감상을 띠었다. 이집 저집 에서
마당질 소리가 나고 밤이면 다듬잇소리도 여물어 갔다.
 수택이네 집에서도 새벽부터 타작이 시작되었다. 한 모로는 벼를 져 나르고 한 모에서는
'때려라'소리를 연발하며 위세를 올렸다. 한 모에서는 도급기가 붕붕 하고 돌아간다. 여인네들의
치맛자락에서 바람이 난다.
 수택이도 벗어붙이고 지게를 졌다. 아직 다리는 허청거리나 그래도 대여섯 묶음씩 져 날랐다.
인제는 벌써 그의 노동을 신성시하는 사람도 없었고 동정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명실공히 한
농부였다. 서투른 낫질에 손가락을 두 개나 처맸지만 보는 사람도 그것을 큰 상처로 알지도 않을
정도까지 이르렀다. 아내 역시 호미 자루에 터진 손바닥이 아물지를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혼자 일어나 앉아서 밤을 새워 가며 울지는 않았다. 아프니 자시니 했다가 그 말이 시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동정 대신에 핀잔을 맞을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가끔 그에게는
아버지가 남에게만 후하지 자식들한테는 너무 박하다는 불평을 말하는 때도 있었으나 그것은
그가 시인을 하는 정도로서 가라앉았다. 사실 그 자신도 다소 심하지 않은가 하는 불평은 여러
번 품었었다. 손에 익잖은 자식이 서투른 낫질을 하다가 손을 다치어도 먼저 핀잔부터 주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증오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도 부리나케 볏단을 져 날랐다. 이 볏단의 대부분이-아니 어쩌면 거의 전부가 낡아빠진
맥고모자를 뒤꼭지에 붙인 되바라진 젊은 친구의 손으로 넘어가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수택은
그것을 억지로 생각지 않으려 했다.
 그의 아버지도 그 위인이 나와서 버티고 선 후로는 분명히 얼굴에 검은빛을 띠었다. 자식에게
그런 눈치를 안보이려고 비상한 노력을 하는 것이 그것이라고 엿보였다. 수택도 아버지의 이
노력에 협조를 했다.
 도합 스물 두 마지기에서 사십 석이 났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 섬이 소작료로 제해졌다. 사십
석에서 스물 닷섬-, 열 닷섬. 그의 지식은 처음 긴요하게 쓰여졌다.
 그러나 이 지식은 정확성을 갖지 못한 것이었다. 거기서 비료대로 한 섬 두 말이 제해졌고
아내와 계집아이들의 설사를 치료한 쌀값으로 장리변을 쳐서 열두 말이 떼였다. 그는 말질을
하는 되강구가 바로 지주나 되는 것처럼 그의 손목이 미웠다. 우를 덤비어 되강구의 목덜미를
잡아 낚고 볏더미 속에다 처박고 싶은 충동을 이를 악물고 참는 것이었다.
 수택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 옴팡하니 들어간 눈에서는 황혼을 뚫고 무시무시한 살기 띤
빛이 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공연습을 할 때의 그 휘황한 몇 줄의 탐조등 광선을 연상하였다.
 김영감은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서 있었다. 볏더미를 보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사음을
노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영감은 내년 이때까지 살아갈 길을 궁리하는 것이었다.
 "자 짊어져라!"
 수택은 깜짝 놀랐다. 남은 벼 여남은 섬이 가마니에 채워졌다. 전혀 자신은 없었으나 벼 이 백
근을 못지겠노란 말도 하기 싫어서 지겟발을 디밀었다.
 "어-차."
 옆에서는 벌써 지고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도 어차 소리를 쳤다. 땅짐도 않는다.
 "자 들어 줄께니-어차아-"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무릎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오금은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대로 똑
꺾인다. 안되겠느니 다른 사람이 지라느니 이론이 분분하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명령이 떨어지기까지는 버티었다. 이를 북북 갈며 기를 썼다.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떨어졌다. 그러나 다리가 허청하며 모여 선 사람들의 '저것 저것'소리를 귓결에
들으며 그대로 픽 한쪽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넘어간 순간,
 "에이끼 천치 자식!"하는 김영감의 소리와 함께 빗자루가 눈앞에 휙 한다. 머리에 동였던
수건이 벗겨졌다.
 "나오게 내 짐세. 나와."하는 누군지의 말을 영감의 호통 같은 소리가 삼키었다.
 "놔 두게! 놔 둬! 나이 사십이 된 자식이 벼 한섬 못지겠는가. 져라 져, 어서 일어나!"
 그는 이를 악물고 또 힘을 북 주었다. 오금이 번쩍 떴다. 뒤뚝뒤뚝 몇 걸음을 옮겨 놓는데 눈과
콧속이 화끈하며 무언인지가 흘렀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저 피! 코필 쏟는군. 내려 놓게!"하는 동리 사람들 소리 끝에,
 "놔들 두게! 남이 피땀을 흘리구 지어 논 농살 죄다 먹는 세상에 제 손으로 진 제 곡식을
못져다 먹는 놈이 있단 말인가! 놔들 두게."
 수택은 눈물과 코피를 좍좍 쏟아 가면서도 그래도 자꾸 걸었다.

    황순원(1915__)

 그는 1930년대부터 시를 쓰다가 1940년에는 "황순원 단편집"을 발간하면서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초기에는 소박한 서정시를 모아 첫시집 "방가"(1934), "골동품"(1936)을 출간했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신속'의 동인으로 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발표했는데, 첫
단편집 "늪"의 발간을 계기로 소설에 치중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심리주의적 경향이 농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기교적으로도 상당히 노숙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정밀한 묘사와 간결한
문장으로 문장가로서도 한 일가를 이루고 있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적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면,
어떤 웅대한 것보다는 진실과 현실의 한 단면을 여실히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어, 어떤
애수라든지 정감이라든지 비애와 같은 것이 그의 작품의 한 기조를 이루고 있다고 평론가
조연현씨는 말하고 있다. 작품으로 "별"(1940), "기러기"(1942), "독짓는 늙은이"(1944),
"곡예사"(1951) 등이 있다. 장편은 "별과 같이 살다", "카인의 후예"가 있다.

    별
    "인문평론" 1941. 2.

 동네 애들과 노는 아이를 한동네 과수노파가 보고, 같이 저자에라도 다녀오는 듯한 젊은
여인에게 무심코, 쟈 동복 누이가 꼭 죽은 쟈 오마니 닮았디 왜, 한말을 얼김에 듣자 아이는
동무들과 놀던 것도 잊어버리고 일어섰다. 아이는 얼핏 누이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 하였으나
암만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집으로 뛰면서 아이는 저도 모르게, 오마니 오마니, 수없이 외었다.
집뜰에서 이복 동생을 업고 있는 누이를 발견하고 달려가 얼굴부터 들여다보았다. 너무나 엷은
입술이 지나치게 큰 데 비겨 눈은 짭짭하니 작고, 그 눈이 또 늘 몽롱히 흐려 있는 누이의 얼굴.
아홉 살 난 아이의 눈은 벌써 누이의 그런 얼굴 속에서 기억에는 없으나 마음 속으로 그렇게
그려 오던 돌아간 어머니의 모습을 더듬으며 떨리는 속으로 찬찬히 누이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오마니는 이 누이의 얼굴과 같았을까. 그러자 제법 어른처럼 갓난 이복동생을 업고 있던 열한
살잡이 누이는 전에 없이 별나게 자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복 남동생에게 마치 어머니다운
애정이 끓어오르기나 한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을 때, 아이는 누이의 지나치게 큰 입 새로
드러난 검은 잇몸을 바라보며 누이에게서 돌아간 어머니의 그림자를 찾던 마음은 온전히
사라지고, 어머니가 누이처럼 미워서는 안 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우리 오마니는 지금
눈앞에 있는 누이로서는 흉내도 못내게스레 무척 이뻤으리라. 그냥 남동생이 귀엽다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는 누이에게 아이는 처음으로 눈을 흘기며 무서운 상을 해보였다. 미운 누이의
얼굴이 놀라 한층 밉게 찌그러질 만큼. 생각다 못해 종내 아이는 누이가 꼭 어머니 같다고 한
동네 과수노파를 찾아 자기 집에서 왼편쪽으로 마주난 골목 막다른 집으로 갔다. 늘 남에게
삯바느질을 시켜 말쑥한 옷만 입고 다녀 동네에서 이름난 과수노파가 제 손으로 인두질을 하다니
웬일일까. 그러나 아이를 보자 과수노파는 아이보다도 더 의아스러운 듯한 눈치를 하면서 인두를
화로에 꽂는다. 아이는 곧 노파에게, 아니 우리 오마니 입하구 우리 뉘 입하구 같이 생겼단 말은
거짓말이디요? 했다. 노파는 더욱 수상하다는 듯이 아이를 바라보다가 그러나 남의 일에는
흥미 없다는 얼굴로, 왜 닮았디, 했다. 아이는 떨리는 입술로 다시, 아니 우리 오마니 입하구 뉘
입하구 다르게 생기디 않았어요? 하고 열심히 물었다. 노파는 이번에는 화로에 꽂았던 인두를
뽑아 자기 입술 가까이 갖다 대어보고 나서, 반만큼 세운 왼쪽 무릎 치마에 문대고는 안감을
잡으며 그저, 그러구 보믄 다르든 것 같기두 하군, 했다. 아이는 인두질하는 과수노파의 손
가까이로 다가서며 퍼뜩 과수노파의 손이 나이보다는 젊고 고와 보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
오마니 잇몸은 우리 뉘 잇몸터럼 검디 않구 이뻤디요? 했다. 과수노파는 아이가 가까이 다가와
어둡다는 듯이 갑자기 인두 든 손으로 아이를 물러나라고 손짓하고 나서 한결같이 흥없이,
그래앤, 했다. 그러나 아이만은 여기서 만족하여 과수노파의 집을 나서 그달음으로 자기 집까지
뛰어오면서, 그러면 그렇지 우리 오마니가 뉘처럼 미워서야 될 말이냐고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안뜰에 들어서자 누이가 안 보임을 다행으로 여기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상 앞으로 가
란도셀 속에서 산수책을 꺼내다가 그 속에 인형을 발견하고 주춤 손을 거두었다. 누이가 비단색
헝겊을 모아 만들어준 낭자를 튼 예쁜 각시인형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언제나 란도셀 속에 이
인형만은 변함없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인형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아이는 이 인형의
여태까지 그렇게 이쁘던 얼굴이 누이의 얼굴이나처럼 미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곧 아이는
인형을 내다버려야 한다는 걸 느꼈다. 그걸 품에 품고 밖으로 나섰다. 저녁 그늘이 내린
과수노파가 사는 골목을 얼마 들어가다 아이는 주위에 사람 없는 것을 살피고 나서 주머니에서
칼을 꺼냈다.
칼끝으로 땅을 파가지고 거기에다 품속의 인형을 묻었다. 그리고는 그곳을 떠났다. 인형인가
누이인가 분간 못할 서로 얽힌 손들이 매달리는 것 같음을 아이는 느꼈다. 그러나 아이는
어머니와 다른 그 손들을 쉽사리 뿌리칠 수 있었다. 골목을 다 나온 곳에서 달구지를 벗은
당나귀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찼다. 아이는 굴러 나가 동그라졌다. 분하다. 일어난 아이는 당나귀
고삐를 쥐고 달구지채로 해서 당나귀 등에 올라탔다. 당나귀가 제 꼬리를 물려는 듯이 돌다가
날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럼 우리 오마니가 뉘터럼 생겼단 말인가? 뉘터럼 생겼단 말인가?
하고 당나귀가 알아나 듣는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당나귀가 더 날뛰었다. 아이의, 뉘터럼 생겼단
말인가? 하는 소리가 더 커갔다. 그러다가 별안간 뒤에서 누이의 데런! 하는 부르짖음 소리를
듣고 아니는 그만 당나귀 등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아이는 다리 하나를 약간 삔
채로 나자빠져 있었다. 누이가 분주히 달려왔다. 그러나 아이는 누이가 위에서 굽어보며 붙들어
일으키려는 것을 무지스럽게 손으로 뿌리치고는 혼자 벌떡 일어나, 삔 다리를 예사롭게 놀려
집으로 돌아왔다.

 갓난 이복동생을 업어주는 것이 학교 다녀온 뒤의 나날의 일과가 되어 있는 누이가, 하루는
아이의 거동에서 자기를 꺼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그런 동생을 기쁘게 해주려는 듯이,
업은 애의 볼기짝을 돌려 대더니 꼬집기 시작했다. 물론 누이의 손은 힘껏 꼬집는 시늉만 했고,
그럴 적마다 그 작은 눈을 힘주는 듯이 끔쩍끔쩍하였지만, 결국은 애가 울지 않을 정도로
조심하면서 꼬집어대는 것이었다. 사실 줄곧 누이에게만 애를 업히는 의붓어머니에게 슬그머니
불평 같은 것이 가고 누이에게는 동정이 가던 아이였다. 그러나 이날 아이는 자기를 기껍게나
해주려는 듯이 이복 동생의 볼기짝을 힘껏 꼬집는 시늉을 하는 누이에게 재미있다는 생각이
일기는커녕 도리어 밉고, 실눈을 끔쩍일 적마다 흉하게만 여겨졌다. 아이는 문득 누이를 혼내어줄
계교가 생각났다. 그는 날렵하게 달려가 이복 동생의 볼기짝을 진짜로 꼬집어댔다. 그리고 업힌
애가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고야 꼬집기를 멈추고 골목으로 뛰어가 숨었다. 이제 턱이 밭은
의붓어머니가 달려나와, 왜 애를 그렇게 갑자기 울리느냐고 누이를 꾸짖으리라. 아이는 골목에서
몰래 의붓어머니가 나오기만 기다렸다. 사실 곧 의붓어머니는 나왔다. 그리고 또 어김없이 누이를
내려다보면서, 앨 왜 그렇게 갑자기 울리니, 했다. 아이는 재미나 하는 장난스런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이는 누이의 대답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걷히고 귀가 기울어졌다. 그렇게 자기들에게 몹쓸게 굴지는 않는다고 생각되면서도
어딘가 어렵고 두렵게만 여겨지는 의붓어머니에게 겁난 누이가 그만 자기가 꼬집어서 운다고
바로 이르기나 하면 어쩌나. 그러나 누이는 의붓어머니가 어렵고 힘들고 두렵게 생각키우지도
않는지 대담스레 고개를 들고, 아마 내 등을 빨다가 울 젠 배가 고파 그런가 봐요, 하지 않는가.
아, 기묘한 거짓말을 잘 돌려 댄다. 그러나 지금 대담하게 의붓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여 자기를
감싸주는 누이에게서 어머니의 애정 같은 것이 풍기어 오는 듯함을 느끼자 아이는, 우리
오마니가 뉘같지는 않았다고 속으로 부르짖으며 숨었던 골목에서 나와 의붓어머니에게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난 또 애 업구 어디 넘어디디나 않았나 했군, 하면서 누이의 등에서
어린애를 풀어내고 있는 의붓어머니에게 아이도 이번에는 겁내지 않고, 이자 내가 애 엉뎅일
꼬집었어요, 했다.

 아이는 옥수수를 좋아했다. 옥수수를 줄줄이 다음다음 뜯어먹는 게 참 재미있었다. 알이 배고
줄이 곧은 자루면 엄지손가락 쪽의 손바닥으로 되도록 여러 알을 한꺼번에 눌러 밀어 얼마나
많이 붙은 쌍둥이를 떼낼 수 있나 누이와 내기하기도 했었다. 물론 아이는 이 내기에서 누이한테
늘 졌다. 누이는 줄이 곧지 않은 옥수수를 가지고도 꽤는 잘 여러 알 붙은 쌍동이를 떼내곤 했다.
그렇게 떼낸 쌍동이를 누이가 손바닥에 놓아 내밀어 아이는 맛있게 그걸 집어먹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 아이는 누이가, 우리 누가 많이 쌍동이를 만드나 내기 할까? 하는 것을 단박에,
싫어! 해버렸다. 누이는 혼자 아이로서는 엄두도 못낼 긴 쌍동이를 떼냈다. 아이는 일부러 줄이
곧게 생긴 옥수수 자루인데도 쌍동이를 떼내지 않고 알알이 뜯어먹고만 있었다. 누이는 금방
뜯어낸 쌍동이를 아이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거칠게, 싫어! 하고 머리를 도리질하고
말았다. 누이가 새로 더 긴 쌍동이를 뜯어내서는 다시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누이가 마치
어머니나처럼 굴 적마다 도리어 돌아간 어머닌가 누이와 같지 않다는 생각으로 해서 더 누이에게
냉정할 수 있는 아이는, 내민 누이의 손을 쳐 쌍동이를 떨궈 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떤 날
저녁, 어둑어둑한 속에서 아이가 하늘의 별을 세며 별은 흡사 땅 위의 이슬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누이가 조심스레 걸어오더니 어둑한 속에서도 분명한 옥수수 한자루를 치마폭 밑에서
꺼내어 아이에게 쥐어 주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것을 먹어볼 생각도 않고 그냥 뜨물항아리 있는
데로가 그 속에 떨구듯 넣어 버렸다.

 아이는 또 땅바닥에 갖가지 지도 같은 금을 그으며 놀기를 잘했다. 바다를 모르는 아이는 바다
아닌 대동강을 여러 개, 그리고 산으로는 모란봉을 몇 개고 그리곤 했다. 그러다가 동무가 있으면
땅따먹기도 했다. 상대편의 말을 맞히고 뼘을 재어 구름이 피어오르는 듯한 땅과 무성한
나무 같은 땅을 만드는 게 재미있었다. 그날도 아이는 옆집 애와 길가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옆집 애의 땅한테 아이의 땅이 거의 잠식당하고 있었다. 한쪽 금에 붙어 꼭 반달처럼
생긴 땅과 거기에 붙은 한 뼘 남짓한 땅이 남았을 뿐이었다. 그것마저 옆집 애가 새로 말을
맞히고 한 뼘 재먹은 뒤에는 반달에 붙은 땅이 또 줄었다. 이번에는 아이가 칠 차례였다. 옆집
애가 말을 놓았다. 그것은 아이의 반달땅 끝에서 한껏 먼 곳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기어코 반달
끝에다 자기의 말을 놓았다. 옆집 애는 아이의 반달땅에 달린 다른 나머지 땅에서가 자기의 말이
제일 가까운데 왜 하필 반달 끝에서 치려는지 이상히 여기는 눈치였다. 사실 아이의 어디까지나
반달 끝에다 한 뼘 맘껏 둘러 재어 동그라미를 그어 놓았으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모르겠다는
계획을 옆집 애는 알 턱 없었다. 아이는 반달 끝에서 옆집 애의 말까지의 길을 닦았다. 이번에는
꼭 맞혀 이 반달 위에 무지개 같은 동그라미를 그어 놓으리라. 아이의 입은 꼭 다물어지고 눈은
빛났다. 뒤이어 아이는 옆집 애의 말을 겨누어 엄지손가락에 버텼던 장가락을 퉁기었다. 그러나
아이의 장가락 손톱에 맞은 말은 옆집 애의 말에서 꽤 먼 거리를 두고 빗지나갔다. 옆집 애가
됐다는 듯이 곧 자기의 말을 집어들며 아이가 아무리 먼 곳에 말을 놓더라도 대번에
맞혀버리겠다는 득의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아이의 말 놓기를 기다리다가 흐려지지도
않은 경계선을 사금파리 말을 세워 그었다. 아이의 반달 끝이 이지러지게 그어졌다. 아이가, 이건
왜 이르캐? 하고 고함쳤다. 옆집 애는 곧 다시 고쳐 금을 그었다. 옆집 애는 아이가 자기의 땅을
줄게 그어서 그러는 줄로 알았는지, 이번에는 반달의 등이 약간 살찌게 그어 놓았다. 아이는
그래도, 것두 아냐! 했다. 그러는데 어느새 왔었는지 누이가 등뒤에서 옆집 애의 말을 빼앗아서는
동생을 도와 반달의 배가 부르게 긋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는 누이가 채 다 긋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막 지워 버리면서, 이건 더 아냐! 이건 더 아냐! 하고 소리 질렀다.

 하루는 아이가 뜰안에서 혼자 땅바닥에다 지도 같은 금을 그으며 놀고 있는데, 바깥에서
누이가 뒷집 계집애와 싸우는 소리가 들려, 마침 안의 어른들이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열린 대문 새로 내다보았다. 아이가 늘 이쁘다고 생각해오던 뒷집 계집애의 내민 역시 이쁜
얼굴에서, 그래 안 맞았단 말이가? 하는 말소리가 빠른 속도로 계속되는 대로, 또 누이의 내민
밉게 찌그러진 얼굴에서는, 안 맞디 않구, 하는 소리가 같은 속도로 계속되고 있었다.
땅따먹기하다가
말이 맞았거니 안맞았거니 해서 난 싸움이 분명했다. 어느 편이 하나 물러나는 법 없이 점점 다
다가들면서 내민 입으로 자기의 말소리를 좀더 이악스레 빠르게들 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뒷집
계집애의 남동생이 달려오더니 다짜고짜로 누이에게 흙을 움켜 뿌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뒷집
계집애의 이쁜 얼굴이 더 내밀어지며, 그래 안 맞았단 말이가? 하는 소리가 더 날카롭게 빠르게
계속되는 한편, 누이는 먼저 한 걸음 물러나며 안 맞디 않구, 하는 소리도 떠져 갔다. 뒷집
계집애의 남동생이 또 흙을 움켜 뿌렸다. 뒷집 계집애의 남동생이 흙을 움켜 뿌릴 적마다 이쪽
누이는 흠칫흠칫 물러나며 말소리가 줄고, 뒷집 계집애의 말소리는 더욱 잦아 갔다. 그러자
아이는
저도 깨닫지 못하고 대문을 나서 그리로 걸어갔다. 아이를 보자 뒷집 계집애가 다가오기를
멈추고, 다음에 계집애의 말소리가 늦추어지고, 다음에 누이가 뒷걸음치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누이는 뒷집 계집애의 남동생처럼 자기의 남동생도 역성을 들러오는 것으로만 안
모양이어서 차차 기운을 내어 다가 나가며, 안맞디 않구, 안 맞디 않구, 하는 소리를 점점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거기 따라 뒷집 계집애는 도로 물러나며 점차, 그래 안 맞았단 말이가? 하는
소리를 늦추고 있고, 뒷집 계집애의 남동생도 한옆으로 아이를 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싸움터로 가까이 가자 누이의 흥분된 얼굴이 전에 없이 더 흉하게 느껴지면서, 어디 어머니가
저래서야 될 말이냐는 생각에, 냉연하게 그곳을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등뒤로 도로
빨라가는 뒷집 계집애의 말소리와 급작스레 떠가는 누이의 말소리를 들으면서도 아이는 누이보다
이쁜 뒷집 계집애가 싸움에 이기는 게 옳다고 생각하며 저만큼 골목 어귀에서 여물을 먹고 있는
당나귀에게로 걸어갔다.

 열네 살의 소년이 된 아이는 뒷집 계집애보다 더 이쁜 소녀와 알게 되었다. 검고 맑고 깊은
눈하며, 깨끗하고 건강한 볼, 그리고 약간 노란 듯한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듯한 향기. 아이는
소녀와 함께 있으면서 그 맑은 눈과 건강한 볼과 머리카락 향기에 온전히 홀린 마음으로 그네를
바라보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소녀 편에서는 차차 말없이 자기를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에게 마음 한구석으로 어떤 부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하루는 아이와 소녀는 모란봉 뒤 한
언덕에 대동강을 등지고 앉아 있었다. 언덕 앞 연보라빛 하늘에는 희고 산뜻한 구름이 빛나며
떠가고 있었다. 아이가 구름에 주었던 눈을 소녀에게로 돌렸다. 그리고는 소녀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소녀의 맑은 눈에도 연보라빛 하늘이 가득차 있었다. 이제
구름도 피어나리라. 그러나 이때 소녀는 또 자기만 말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아이에게 느껴지는
어떤 부족감을 못 참겠다는 듯한 기색을 떠올렸는가 하면, 아이의 어깨를 끌어당기면서 어느새
자기의 입술을 아이의 입에다 갖다 대고 비비었다. 아이는 저도 모르게 피하는 자세를
취하였으나 서로 입술을 비비고 난 뒤에야 소녀에게서 물러났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아이는
거친 숨을 쉬면서 상기돼 있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이미 소녀는 아이에게 아름다운 소녀는
아니었다. 얼마나 추잡스러운 눈인가. 이 소녀도 어머니가 아니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이는 소녀에게서 돌아섰다. 소녀는 실망과 멸시로 찬 아이의 기색을 느끼며 아이를 붙들려
했으나 아이는 쉽게 그네를 뿌리치고 무성한 여름의 언덕길을 뛰어내릴 수 있었다.

 하늘에 별이 별나게 많은 첫가을 밤이었다. 아이는 전에 땅위의 이슬같이만 느껴지던 별이
오늘밤엔 그 어느 하나가 꼭 어머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수많은 별을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곧 안에서 누구를 꾸짖는 듯한 아버지의 음성에 정신을 깨치고 말았다. 아이는 다시
하늘로 눈을 부었으나 다시는 어느 별 하나가 어머니라는 환상을 붙들 수는 없었다. 아쉬웠다.
다시 아버지의 누구를 꾸짖는 듯한 음성이 들려 나왔다. 아이는 아쉬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오는 창 가까이로 갔다. 안에서는 아버지가, 두 번 다시 그런 눈치만 뵀단봐라, 죽여
없애구
말테니, 꼭대기 피두 안 마른 년이 누굴 망신 시킬려구, 하는 폼이 누이 때문에 여간 노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좀한 일에는 노하는 일이 없는 아버지가 이렇게 노함에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었다. 의붓어머니의 조심스런 음성으로, 좌우간 그편 집안을 알압시구레, 하는
말이 들려 나왔다. 이어서 여전히 아버지의 알아보긴 쥐뿔을 알아봐! 하는 노기찬 음성이
뒤따랐다. 이번엔 누이의 나직이 떨리는 음성이 한 번, 동무의 오래비야요, 했다. 이젠 학교두
고만둬라, 하는 아버지의 고함에, 누이 아닌 아이가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누이가 호리호리한 키에 흰 얼굴을 한 청년과 과수노파가 살고 있는 골목 안에 마주 서
있는 것을 본 일이 생각났다. 그때 누이는 청년이 한반 동무의 오빠인데 심부름을 왔었다고
변명하듯
말했고, 아이는 아이대로 그저 모른체하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누이 같은 여자와 좋아하는 청년의
마음을 정말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청년과 누이가 만나는 것을 집안에서도 알았음이
틀림없었다. 지금 안에서 의붓어머니의 낮으나 힘이 든 음성으로, 얘 넌 또 웬 성냥 장난이가!
하는 것만은 이제는 유치원에 다니게 된 이복 동생을 꾸짖는 소리리라. 요사이 차차
의붓어머니가 어렵고 두렵기만 한 게 아니고 진정으로 자기네를 골고루 위해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아이는, 동복인 누이의 일로 의붓어머니를 걱정시키는 것이 아버지에게보다 더
안됐다고 생각했다. 다시 의붓어머니의 조심성 있고 은근한 음성으로, 너두 생각이 있갔디만 이제
네가 잘못이라두 생기믄 땅속에 있는 어머니한테 어떻게 내가 낯을 들겠니, 자 이젠 네 방으루
건너가그라, 함에 아이는 이번에는 의붓어머니의 애정에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정말 누이가
돌아간 어머니까지 들추어내게 하는 일을 저질렀다가는 용서 않는다고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어디서 스며 오듯 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두 번 다시 그런 일만 있었단 봐라,
초매(치마)루 묶어서 강물에 집어 넣구 말디 않나, 하는 아버지의 약간 노염은 풀렸으나 아직
엄한 음성에, 아이는 이번에는 또 밤바람과 함께 온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꽤 쌀쌀한 어떤 날 밤이었다. 의붓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애걸하다시피 하여 학교만은 그냥
다니게 된 누이보고 아이가, 우리 산보 가, 했다. 누이는 먼저 뜻하지 않았던 일에 놀란 듯 흐린
눈을 크게 떠보이고 나서 곧 아이를 따라 나섰다. 밖은 조각달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이 불어올 적마다 별들은 빛난다기보다 떨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이는 앞서 대동강 쪽으로 난 길을 접어들었다. 누이는 그저 아이를 따랐다.
어둑한 속에서도 이제 누이를 놀래어주리라는 계교 때문에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강둑을 거슬러 오르니까 더 써느러웠다. 전에 없이 남동생이 자기를 밖으로 이끌어낸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눈치로, 그러나 즐거운 듯이 누이가 아이에게, 춥디 않니? 했다. 아이는 거칠게
머리를 옆으로 저었다. 젓고 나서 어둠으로 해서 누이가 자기의 머리 저음을 분간치
못했으리라고
깨달았으나 아이는 그냥 잠자코 말았다. 누이가 돌연 혼잣말처럼, 사실 나 혼자였다믄 벌서 죽구
말았어, 죽구 말디 않구, 살믄 멀하노...그래도 네가 있어 그러디, 둘이 있다 하나가 죽으믄 남는
게 더 불쌍할 것 같애서...난 정말 그래, 하며 바람 때문인지 약간 느끼는 듯했다. 아이는 혹시
집에서 누이의 연애 사건을 알게 된 것이 자기가 아버지나 의붓어머니에게 고자질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지나 않나 하는 생각이 들자, 누이를 쓸어안고 변명이나 할 듯이 홱 돌아섰다. 누이도
섰다. 그러나 아이는 계획해온 일을 실현할 좋은 계기를 바로 붙잡았음을 기뻐하며 누이에게,
초매 벗어라! 하고 고함을 치고 말았다. 뜻밖에 당하는 일로 잠시 어쩔줄 모르고 섰다가 겨우
깨달은 듯이 누이는 어둠 속에서 조용히 저고리를 벗고 어깨치마를 머리 위로 벗어냈다. 아이가
치마를 빼앗아 땅에 길게 폈다. 그리고 아이는 아버지처럼 엄하게, 가루 눠라! 했다. 누이는 곧
순순히 이르러서는 자기가 하는 일이면 누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 항거없이 도리어
어머니다운 애정으로 따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누이가 돌아간 어머니와 같은 애정을
베풀어서는 안된다고 치마 위에 이미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누이를 그대로 남겨둔 채 돌아서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누이는 시내 어떤 실업가의 막내아들이라는 작달막한 키에 얼굴이 검푸른, 누이의 한 반
동무의 오빠라는 청년과는 비슷도 안한 남자와 아무 불평없이 혼약을 맺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
안되어 결혼하는 날, 누이는 가마 앞에서 의붓어머니의 팔을 붙잡고는 무던히나 슬프게 울었다.
아이는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누이는 동네 아낙네들이 때어 놓는 대로 가마에 오르기 전에
젖은 얼굴을 들었다. 자기를 찾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는 그냥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누이가 시집간 지 또 얼만 안 되는 어느날, 별나게 빨간 놀이진 늦저녁 때
아이네는 누이의 부고를 받았다. 아이는 언뜻 누이의 얼굴을 생각해 내려 하였으나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슬프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는 지난날 누이가 자기에게 만들어 주었던,
뒤에 과수노파가 사는 골목 안에 묻어 버린 인형의 얼굴이 떠오를 듯함을 느꼈다. 아이는
골목으로 뛰어갔다. 거기서 아이는 인형 묻었던 자리라고 생각키우는 곳을 손으로 팠다. 흙이
단단했다. 손가락을 세워 힘껏힘껏 파댔다. 없었다. 짐작되는 곳을 또 파보았으나 없었다. 벌써
썩어 흙과 분간치 못하게 된 지가 오래리라. 도로 골목을 나오는 데 전처럼 당나귀가 매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러나 전처럼 당나귀가 아이를 차지는 않았다. 아이는 달구지채에 올라서지도
않고 전보다 쉽사리 당나귀 등에 올라탔다. 당나귀가 전처럼 제 꼬리를 물려는 듯이 돌다가
날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는 당나귀에게 나처럼, 우리 뉠 왜 쥑엔! 왜 쥑엔! 하고 소리질렀다.
당나귀가 더 날뛰었다. 당나귀가 날뛸수록 아이의, 왜 쥑엔! 왜 쥐엔! 하는 지름소리가 더 커갔다.
그러다가 아이는 문득 골목 밖에서 누이의, 데런! 하는 부르짖음을 들은거로 착각하면서, 부러
당나귀 등에서 떨어져 굴렀다. 이번에는 어느쪽 다리도 삐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의 눈에는
그제야 눈물이 괴었다. 어느새 어두워지는 하늘에 별이 돋아났다가 눈물 괸 아이의 눈에
내려왔다. 아이는 지금 자기의 오른쪽 눈에 내려온 별이 돌아간 어머니라고 느끼면서, 그럼 왼쪽
눈에 내려온 별은 죽은 누이가 아니냐는 생각에 미치자 아무래도 누이는 어머니와 같은 아름다운
별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머리를 옆으로 저으며 눈을 감아 눈 속의 별을 내몰았다.

    독 짓는 늙은이
    "백민" 1950. 4.

 이년! 이 백번 쥑여두 쌀 년! 앓는 남편두 남편이디만, 어린 자식을 놔두구 그래 도망을 가?
것두 아들놈 같은 조수놈 하구서...그래 지금 한창 일꾼이란 말이디? 그렇다구 이년, 내가
거랑질이야 할 줄 아니? 이녀언! 하는데, 옆에 누웠던 어린 아들이 아바지! 아바지이! 하였으나,
꿈속에서 송영감은 자기 품에 남은 아들이, 아버지! 아바지이! 하고 부르는 것으로 보며, 오냐!
데건 네 에미가 아니다! 하고 꼭 품에 껴안는 것을, 옆에 누운 어린 아들이 그냥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잠꼬대에서 송영감을 깨워 놓는다.
 아까 잠들 때보다 더 머리가 무겁고 언짢다. 애가 종시 쿨적쿨적 울기 시작했다. 오, 오, 하며
송영감은 잠꼬대 속에서처럼 애를 끌어 안는다. 자기의 더운 몸에 별로 애의 몸이 차다. 벌써부터
이렇게 얼구어서 될 말이냐고, 송영감은 더 바싹 애를 껴안는다. 그리고 쿨적이는 이제 일곱 살
난 애를 그렇게 안고 있는 동안, 송영감은 다시 자기보다도 이 어린것을 두고 도망간 아내가
새롭게 분하였다. 아내와 함께 여드름이 많던 조수가 떠 오른다. 그러자 이 아들 같은 조수에게
동때의 사내와 사내가 느끼는 어떤 적수감이 불길처럼 송영감의 괴로운 몸을 휩쌌다.
 그리고 자기가 집중 잡히지 않는 병으로 앓아 눕기 때문에 조수가 이 가을로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거의 혼자서 지어 놓다시피 한, 중옹 통옹 빈옹 멋세기 같고 크고 작은 독들이 구월
보름 가까운 달빛에 마치 하나하나 도망간 조수의 그림자 같이나 느껴졌을 때, 송영감은 벌떡
일어나 부채 방망이를 들어 모조리 깨 부수고 싶은 충동을 받았으나, 다음 순간, 송영감은
내일부터라도 자기가 독을 지어 한가마 독을 채워 구워 내야 시재 자기네 부자가 살아 갈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면서는, 정말 그러는 수밖에 없다고, 지그시 무거운 눈을 감아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송영감은 열에 뜬 머리를 수건으로 동이고 일어나 앉아, 애더러는 흙 이길
엥손이를 부르러 보내 놓고, 엥손이 올 새가 바빠서 자기 손으로 흙을 이겨 틀 위에 올려 놓는다.
송영감의 손은 자꾸 떨리었다. 그러나 반쯤 독을 지어 올려, 안은 조모구, 밖은 부채마치로
맞두드리며 일변 발로는 틀을 돌리는 익은 솜씨만은 앓아 눕기 전과 다를 배 없는 듯했다. 곧
중옹 몇 개가 지어졌다.
 그러나 차차 송영감의 솜씨에는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구나 조모구와 부채마치로 두드려
올릴 때, 문득 눈 앞에 아내와 조수의 환영이 떠오르면 짓던 독을 때리는지 아내와 조수를
때리는지 분간 못하는 새, 독이 그만 얇게 못나게 지어 지곤 했다. 그리고 전을 잡는 손이 떨려,
가뜩이나 제일 힘든 마무리의 전이 잘 잡혀지지를 않았다. 열 때문도 있었다. 송영감은
쓰러지듯이 짓던 독 옆에 눕고 말았다.
 송영감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저녁때가 기울어서였다. 엥손이도 흙 몇 덩이를 이겨 놓고 가고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바깥 저녁 그늘 속에 애가 남쪽 장길을 향해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거리라. 언제나처럼 장보러 간 어머니를 언제나처럼 저녁때면 조수에게
장감을 지워 가지고 돌아올 줄로만 아직 아는가 보다.
 그렇게 애를 내다 보던 송영감은 제 힘만이 아닌 어떤 힘으로 벌떡 일어나 다시 독 짓기를
시작하는 것이었으나 이번에는 겨우 한 개를 짓고는 다시 쓰러지듯이 눕고 말았다.
 다음에 송영감이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주 어두운 속에서 애가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울먹울먹하는 애는 깨나는 아버지를 보자 그제야 안심된 듯이 저쪽에서 밥그릇을 가져다 아버지
앞에 놓는다. 웬 거냐고 하니까, 애가,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주더라고 한다. 송영감이 저도 모를
분노가 치밀어, 누가 거랑질해 오라드냐고 밥그릇을 밀어 놓자, 애가 쿨적쿨적 울기 시작했다.
송영감은 어제 저녁밥 남은 것을 조금씩 뜨는 것처럼 하고는 하루종일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는 애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을지 모른다고 밥그릇을 도로 끌어다 한 술 입에 떠
넣으며, 이번에는 애보고 맛있으니 너도 먹으라는 것이었으나, 설상은 자신이 입맛을 잃은 탓만도
아닌 무엇이 밥 넘기려는 목을 치밀어 올라 오곤 해, 좀처럼 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송영감이 죽인지 밥인지 모를 것을 끓였다. 여전히 입맛은 없었으나 어제
저녁처럼 목이 메어 오르는 것은 없었다.
 오늘은 또 지어 올리는 독을 말리느라고 처음에는 독 밖에 피워 놓았다가 독이 한 반쯤
지어지면 독 안에 매달아 놓는 숯불의 숯내까지가 머리를 더 무겁게 했다. 사십 년래 없이
숯내를 다 먹는 듯했다.
 송영감은 어제보다 더 쓰러져 넘어지는 도수가 많았다. 흙 이기던 엥손이가 저래서는 도무지
한가마 채우지 못하리라고 송영감에게 내년에 마자 지어 첫가마에 넣도록 하는 게 어떠냐고 몇
번이고 권해 보았으나, 송영감은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일어났다가는 쓰러지고 하면서도, 독
짓기를 그만두려고 들지는 않았다.
 송영감이 한 번 쓰러져 있는데, 방물장수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와서 앓는 몸을 돌봐야 하지
않느냐고 하며, 조미음 사발을 송영감 입 가까이 내려 놓았다. 송영감은 어제 어린 아들에게
거랑질해 왔다고 고함쳤던 일을 생각하며, 이 아무에게나 친절한 앵두나무집 할머니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어제만 해도 애한테 밥이란 그렇게 많이줘 보내 잘 먹었는데 또 이렇게 미음까지
쑤어 오면 어떻거느냐고 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그저, 어서 식기 전에 한 모금 마셔 보라고만
했다. 그리고 송영감이 미음을 몇 모금 못 마시고 사발에서 힘없이 입을 떼는 것을 보고,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정말 이 영감이 병으로 죽으려는가보다는 생각에라도 미친 듯, 당손이를
어디 좋은 자리가 있으면 주어 버리는게 어떠냐고 했다. 송영감은 쓰러져 있던 사람 같지 않게
눈을 흡떠 앵두나무집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느새 송영감의 손은 앞에 놓인 미음
사발을 앵두나무집 할머니께로 떠밀치고 있었다. 그런 말 하려 이런 것을 가지고 왔느냐고, 썩썩
눈앞에서 없어지라고, 송영감은 또 쓰러져 있던 사람 같지 않게 고함쳤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송영감의 고집을 아는 터라 무슨 말을 하지 않았다.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가자, 송영감은 지금 밖에서 자기의 어린 아들이 어디로 업혀 가기나
하는 듯이 밖을 향해 목청껏, 당손아! 하고 애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애가 뜸막 문에
나타나는 것을 이번에는 애의 얼굴을 잊지나 않으려는 듯이 한참 쳐다보다가 그만 기운이 없어
눈을 감아 버리고 만다. 애는 또 전에 없이 자기를 쳐다보는 아버지가 무서워 아버지에게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섰다가, 아버지가 눈을 감자 더럭 더 겁이 나 쿨적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송영감은 독 짓기보다 자리에 쓰러져 있는 수가 많았다. 백 개가 못 차니 아직
이십 여 개를 더 지어야 한가마 충수가 된다. 한가마를 채우게 짓자 하고 마음만은 그러는
것이었으나, 몸을 일으키다가 도로 쓰러지며, 흰 털 섞인 노랑수염 입을 벌리고 어깨 숨을 쉬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물감이며 바늘을 가지고 한 돌림 돌고 온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찾아 와서는
마침 좋은 자리가 있으니 당손이를 주어 버리고 말자는 말로, 말난 자리는 재물도 넉넉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들 마음씨가 무던하다는 말이며, 그 집에서 어떤 젊은 내외가 세상을 헤치면서
내버리듯한 애를 하나 얻어다 길렀었는데, 얼마 전에 그 친아버지가 되는 사람이 여남은 살이나
된 그 애를 찾아 갔다는 말이며, 그때 한 재물 주어 보내고서는 영감 내외가 마주 앉아 얼마
동안을 친자식 잃은 듯이 울었는지 모른다는 말이며, 그래 이번에는 아버지 없는 애를 하나
얻어다 기르겠다더라는 말을 하면서, 꼭 그 자리에 당손이를 주어 버리고 말자고 했다. 송영감은
앵두나무집 할머니와 일전의 일이 있은 뒤에도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애를 통해서 먹을 것 같은
것을 보내는 것이 흔히 이런 노파에게 있기 쉬운, 이런 주선이라도 해주면 나중에 자기에게
들리는 것이 있어 그걸 탐내서 그러는 건 아니라고 그저 인정 많은 늙은이라 이 편을 위해 주는
마음에서 그런다는 것만은 아는 터이지만, 송영감은 오늘도 저도 모를 힘으로, 그런 소리
하려거던 아예 다시는 오지도 말라고, 자기 눈에 흙 들기 전에는 내놓지 못한다고 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그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영감이 살아서 좋은 자리로 가는 걸 보아야
좋지 않느냐는 말로, 사실 말이지 성한 사람도 언제 무슨 변을 당할는지 모르는데 앓는 사람의
일을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느냐고 하며, 더구나 겨울도 닥쳐 오고 하니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돌아간 뒤, 송영감은 지금 자기가 거랑질을 해서라도 애를 벌어
먹이겠다고는 했지만, 그리고 사실 아내가 무엇보다도 자기와 같이 살다가는 거랑질을 할 게
무서워 도망갔음에 틀림 없지만, 자기가 이제 병만 나아 일어만 나면, 아직 일등 호주라는 칭호
아래 얼마든지 독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한가마 독만 채워 전처럼 잘만 구워 내면
거기서 겨울 양식과 내년에 한 밑천까지도 나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서 한가마를 채우자고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는 송영감이 독 말리기 좋은 날을 가려 종시 한가마가 차지 못하는 독들을 밖으로
내게 하고야 말았다. 지어진 독만으로라도 한가마 구워 내리라는 생각에서.
 독 말리기, 말리기라기보다는 바람 쐬기다. 햇볕도 있어야 하지만 바람이 있어야 한다. 안개
같은 것이 낀 날은 좋지 못하다. 안개가 걷히면 바람 한점 없이 해가 갑자기 쨍쨍 내리 부면
그야말로 걷잡을 새 없이 백 여 개의 독이 세로 가로 터져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좀
치는 게 독말리기에 썩 좋은 날씨다.
 독들을 마당에 내이자 독가마 속에서 거지들이 무슨 독을 지금 굽느냐고 중얼거리며, 제가끔의
잡은 것들을 안고 나온다. 이 거지들은 가을철이 되면 이렇게 독가마를 찾아 들어, 초가을에는
가마 초입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서 차차 가마가 식어 감에 따라, 온기를 찾아 가마 속 깊이로
들어 가며 한 겨울을 나는 것이다.
 송영감은 거지들에게, 지금 뜸막이 비었으니 독 구워 내는 동안 거기에들 가 있으라고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전에 없이 거지들을 자기 있는 집에 들인다는 것이 마치 자기가 거지나
되는 것처럼 느꼈으므로.
 가마에서 나온 거지들은 혹 더러는 인가를 찾아 동냥을 가고, 혹 한패는 양지 바른 데를 골라
드러 누웠고, 몇 이는 아무데고 앉아서 이 사냥 같은 것을 하기 시작한다.
 송영감도 양지에 앉아서 독이 새하얗게 마르는 정도를 지키고 있었다. 독들을 가마에 넣을 때
가서는, 자신이 가마 속으로 들어가 전에는 될 수 있도록 독이 여러 개 들어 가도록만 힘쓰던
것을 오늘은 어쩐지 도망간 조수와 자기의 크기 같은 독이 아궁지에서 같은 거리에 나란히
놓이게만 힘썼다. 마치 누구의 독이 잘 지어졌나 내기라도 해 보려는 듯이.
 늦저녁 때쯤에서 불길이 시작됐다. 불질. 결국은 이 불질이 독을 쓰게도 못 쓰게도 만드는
것이다. 지은 독에 따라서 세게 때야 할 때 약하게 때도, 약하게 때야 할 때 지나치게 세게 때도,
또는 불을 더 때도 덜 때도 안된다.
 처음에 스름스름 때다가 차차 세게 때기 시작하여 서너 시간 때면, 처음에 새하얗던 독들이
흑색으로 변한다. 거기서 또 너더댓 시간 새하얗던 대로 되고, 다음에 적색으로 됐다가 이번에는
아주 새말갛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쇳물이 녹는 듯 하늘의 해를 쳐다보는 듯이 된다. 그리고
하늘에는 정말 다음 날 맑은 가을 햇빛이 빛나고 있었다.
 곁불 놓기를 시작한다. 독가마 양 옆에로 뚫은 곁창 구멍으로 나무를 넣는 것이다.
 이제는 소나무를 단으로 넣기 시작한다. 아궁과 곁창의 불길이 길을 잃고 확확 내 쏜다. 이
불길이 그대로 어제 늦저녁부터 아궁에서 떨어진 한 곳에 일어나 앉았다 누웠다 하며 한결같이
불질하는 것을 지키고 있는 송영감의 두 눈 속에서도 타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해도 다 저물었다. 그러는데 한편 겉창에서 불질하던 화부가 겉창 속을 들여다
보는 듯하더니, 분주히 이리로 달려 오는 것이다. 송영감은 벌써 화부가 불질하던 겉창의
위치로써 그것이 자기의 독이 들어 있는 자리라는 것을 알며, 화부가 뭐라기 전에 먼저
무너앉았느냐고 했다. 화부는 그렇다고 하면서, 이젠 독이 좀 덜 익더라도 곁불질을 그만두고
아궁을 막기 시작하자고 했다. 그러나 송영감은 그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그냥 불질을 하라고
했다.
 거지들이 또 밤이라고 독가마 부근에로 모여 들었다.
 송영감이 이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속을 조이고 있을 때였다.
 가마 속에서 갑자기 뚜왕- 뚜왕- 하고 독 튀는 소리가 들려 나왔다. 송영감은 처음에 벌떡
반쯤 일어나다가 도로 주저앉으며 이상스레 빛나는 눈을 한 곳에 머물린 채 귀를 기울였다.
송영감은 넣은 독의 위치로 지금 것은 자기가 지은 독, 지금 것도 자기가 지은 독 하고 있었다.
이렇게 튀는 것은 거의 송영감의 것뿐이었다. 그리고 송영감은 또 그 튀는 소리로 해서 그것이
자기가 앓다가 이번에 처음에 지은 몇 개의 독만이 튀지 않고 남은 것을 알며, 화부들의
거치적거린다고 거지들을 꾸짖는 소리를 멀리 들으면서 저물어 가는 저녁 속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다음 날 송영감이 정신이 든 때는, 자기네 뜸막 속에 와 누워 있었다.
 옆에서 적은 몸을 오그리고 쿨적거리던 애가 아버지 정신 든 것을 보고, 더 크게 쿨적거리기
시작했다. 송영감이 저도 모르게 애 보고, 안 죽는다, 안 죽는다 했다. 그러나 송영감은 또
속으로는 지금 자기는 죽고 있다고 부르짖고 있었다.
 이튿날 송영감은 애를 시켜 앵두나무집 할머니를 오게 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오자
송영감은 애더러 놀러 나가라고 하며 유심히 애의 얼굴을 쳐다 보는 것이었다. 마치 애의 얼굴을
잊지나 않으려는 듯이.
 앵두나무집 할머니와 단 둘이 되자, 송영감은 눈을 감으며, 요 전에 말하던 자리에 아직 애를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있다고 했다. 얼마나 먼 곳이냐고 했다. 여기서
한 이 삼십 리 잘 된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보낼 수 있느냐고 했다. 당장이라도
데려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치마 밑에서 지전 몇 장을 꺼내어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송영감의 손에 쥐어 주며, 아무 때나 애를 데려오게 되면 주라고 해서 맡아
두었던 거라고 했다.
 송영감이 갑자기 눈을 뜨면서 앵두나무집 할머니에게 돈을 도로 내주었다. 내게는 아무 소용
없으니 애 업고 가는 사람에게나 주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애 업고 가는 사람 줄 것은 따로 있다고 했다. 송영감은 그래도 그 사람을 주어 애를
잘 업어다 주게 해 달라고 하면서, 어서 애나 불러다 자기가 죽었다고 하라고 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저고리 고름으로 눈을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송영감은 눈을 감은 채 가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눈물을랑 흘리지
않으리라 했다.
 그러나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애를 데리고 와, 저렇게 너의 아버지가 죽었다고 했을 때, 감은
송영감의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러 내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앵두나무집 할머니는 억해 오는
목소리를 겨우 참고, 저것 보라고 벌써 눈에서 썩은 물이 나온다고 하고는, 그렇지 않아도
앵두나무집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더 아버지에게 가까이 갈 염을 않는 애의 손을 끌고 그 곳을
나왔다.
 그냥 감은 송영감의 눈에서 다시 썩은 물 같은, 그러나 뜨거운 새 눈물 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러는데 어디선가 애의 쿨적쿨적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눈을 떴다. 아무도 있을 리
없었다. 지어 놓은 독이라도 한 개 있었으면 좋겠다. 순간 뜸막 속 전체 만한 공허가 송영감의
파리한 가슴을 억눌렀다. 온 몸이 자즈라들고 차 옴을 송영감은 느꼈다.
 문득 눈앞에 독가마가 떠 올랐다. 그러자 송영감은 그리로 가자는 생각이 불현듯 인다.
거기에만 가면 몸이 녹여지리라. 송영감은 기는 걸음으로 뜸막을 나왔다. 거지들이 초입에 누워
있다가 지금 기어 들어오는 게 누구이라는 것도 알려 하지 않고, 우물적거려 자리를 내 주었다.
송영감은 한 옆에 몸을 쓰러뜨렸다. 우선 몸이 녹는 듯해 좋았다. 거기에는 여럿의 몸기운까지
있어서.
 그러나 다음에 송영감은 다시 일어나 기기 시작했다. 가마 안으로, 무언가 지금의 온기로서는
부족하기나 한 듯이.
 곧 예사 사람으로는 더 견딜 수 없는 뜨거운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송영감은 그냥 기었다.
그러나 그냥 덮어놓고 기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마지막으로 남은 생명이 발산하는 듯 어둑한
속에서도 이상스레 빛나는 송영감의 눈은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열어제친
곁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늦어 가는 가을의 맑은 햇빛 속에서 송영감은 기던 걸음을 멈추었다.
자기가 찾던 것이 예 있다는 듯이, 거기에는 이참에 터져 나간 송영감 자신의 독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송영감은 여기에서 몸을 일으켜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해서 송영감
자신이 터져 나간 독 대신이라도 하려는 것도 같았다.



    김동리(1911__)
 1935년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화랑의 후예"가 당선되고, 그 다음해에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등장하게 되었다. "화랑의 후예", "산화", "무녀도" 등에서 주로
몰락하여 가는 운명의 비애를 그리되, 그것을 극복하고 새로운 운명을 설정하려는 노력과 짙은
한국적인 향토미에 탐미주의적인 색채를 가미한 것이 그의 작품적 특색으로 되어 있다. 그의
작품들에 대하여 평론가 조연현씨는 이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허무에의 의지'를 강조하면서
"허무는 그의 최초의 인생 문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출발시킨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기초가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인류의 문명의 하나인 허무와의 대결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의
저서로는 창작집 "무녀도"(1946), "황토기"(1949), "귀환장정"(1950), "실존무"(1958),
"등신불"(1963), 장편 "사반의 십자가"(1957)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무녀도
    "중앙" 1936. 5.

   1

 뒤에 물러 누운 어둑어둑한 산, 앞으로 폭이 널다랗게 흐르는 검은 강물, 산마루로 들판으로
검은 강물 위로 모두 쏟아져 내릴 듯한 파아란 별들, 바야흐로 숨이 고비에 찬 이슥한 밤중이다.
강가 모랫벌엔 큰 차일을 치고, 차일 속엔 마을 여인들이 자유히 앉아 무당의 시나위 가락에
취해 있다. 그녀들의 얼굴 얼굴들은 분명히 슬픈 흥분과 새벽이 가까워 온 듯한 피곤에 젖어
있다. 무당은 바야흐로 청승에 자지러져 뼈도 살도 없는 혼령으로 화한 듯 가벼이 쾌자자락을
날리며 돌아간다...
 이 그림이 그려진 것은 아버지가 장가를 들던 해라 하니 나는 아직 세상에 태어나기도 이전의
일이다. 우리 집은 옛날의 소위 유서 있는 가문으로 재산과 세도로도 떨쳤지만, 글하는 선비란
것도 우글거렸고, 특히 진기한 서화와 골동품으로서는 나라 안에서 손꼽힐 만치 높이 일컬어졌다.
그리고 이 서화와 골동품을 즐기는 취미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아들에게 다시 손자로 대대
가산과 함께 물려받아 내려오는 가풍이기도 했다.
 우리 집 살림이 탁방난 것은 아버지 때였으나, 그 즈음만 해도 아직 옛날과 다름 없이,
할아버지께서는 사랑에서 나그네를 겪으셨고, 그러자니 시인묵객들이 끊일 새 없이 찾아들곤
하였다. 그 무렵이라 한다. 온 종일 흙바람이 불어, 뜰 앞엔 살구꽃이 터져 나오는 어느 봄날
어스름 때였다. 색다른 나그네가 대문 앞에 닿았다. 동저고리 바람에 패랭이를 쓰고, 그 위에
명주 수건을 잘라맨, 나이 한 쉰 가량이나 되어 뵈는 체수도 조그만 사내가 나귀 고삐를 잡고
서고, 나귀에는 열 예닐곱쯤 나 뵈는 낯빛이 몹시 파리한 소녀 하나가 안장 위에 앉아 있었다.
남자 하인과 그 상전의 따님 같아도 보였다.
 그러나 이튿날 그 사내는,
 "이 여아는 소인의 여식이옵는데 그림 솜씨가 놀랍다 하기에 대감의 문전을 찾았삽네다." 했다.
 소녀는 흰 옷을 입었었고, 옷빛보다 더 새하얀 그녀의 얼굴엔 깊이 모를 슬픔이 서리어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
 "나이는?"
 "..."
 주인이 소녀에게 말을 건네 보았었으나, 소녀는 굵은 두 눈으로 한 번 그를 바라보았을 뿐
입을 떼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비가 대신 입을 열어,
 "여식의 이름은 낭이, 나이는 열 입곱살이옵고..."
 하더니, 목소리를 더 낮추며,
 "여식은 귀가 좀 먹었습니다."했다.
 주인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내를 보고, 며칠이든지 묵으며 소녀의
그림솜씨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들 아비 딸은 달포 동안이나 머물러 있으며 그림도 그리고, 자기네의 지난 이야기도 자세히
하소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떠나는 날에 이 불행한 아비 딸을 위하여 값진 비단과 충분한 노자를
아끼지 않았으나, 나귀 위에 앉은 가련한 소녀의 얼굴에는 올 때나 조금도 다름 없는 처절한
슬픔이 서려 있었을 뿐이라고 한다.
 ...소녀가 남기고 간 그림-이것을 할아버지께서는 '무녀도'라 불렀지만 그림과 함께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2

 경주읍에서 성 밖으로 십여리 나가서 조그만 마을이 있었다. 여민촌 혹은 잡성촌이라
불리워지는 마을이었다.
 이 마을 한 구석에 모화라는 무당이 살고 있었다. 모화서 들어 온 사람이라 하여 모화라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 머리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으로, 지붕 위에는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올라 역한 흙냄새를 풍기고, 집 주위는 앙상한 돌담이 군데군데 헐리인 채 옛성처럼
꼬불꼬불 에워싸고 있었다. 이 돌담이 에워싼 안의 공지 같이 넓은 마당에는 수채가 막힌 채
빗물이 고이는 대로 일년 내 시퍼런 물이끼가 뒤덮어, 늘쟁이, 명아주, 강아지풀, 그리고 이름
모를 여러 가지 장풀들이 사람의 키도 묻힐 만큼 거멓게 엉키어 있었다. 그 아래로 뱀 같이 길게
늘어진 지렁이와 두꺼비 같이 늙은 개구리들이 구물거리고 움칠거리며 항시 밤이 들기만 기다릴
뿐으로 이미 수십년 혹은 수백년 전에 벌써 사람의 자취와는 인연이 끊어진 도깨비굴 같기만
했다.
 이 도깨비굴 같이 낡고 헐리인 집 속에 무녀 모화와 그 딸 낭이는 살고 있었다. 낭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 경주읍에서 칠십리가량 떨어져 있는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는데, 풍문에 의하면 그는 낭이를 세상에 없이 끔직히 생각하는 터이므로, 봄 가을 철이면 분
잘 핀 다시마와 조촐한 꼭지 미역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녀가곤 한다는 것이었다. 나중 욱이가
돌연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도깨비굴 속에 그녀들은 찾는 사람이래야,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들과 봄 가을에 한 번씩 낭이를 찾아 주는 그녀의 아버지 정도로 세상 사람들과는 별로
교섭도 없이 살아야 할 쓸쓸한 어미 딸이었던 것이다.
 간혹 먼 곳에서 모화에게 굿을 청하러 오는 사람이 있어도 아주 방문 앞까지 들어서며,
 "여보게 모화네 있는가?"
 "여보게 모화네."하고, 두 세 번 부르도록 대답이 없다가 아주 사람이 없는 모양이라고
툇마루에 손을 집고 방문을 열려고 하면, 그 때에야 안에서 방문을 먼저 열고 말 없이 내다보는
계집애 하나-그녀의 이름이 낭이였다. 그럴 때마다 낭이는 대개 혼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놀라 붓을 던지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와들와들 떨곤 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화는 어느 하루를 집 구석에서 살림이라고 살고 있는 날이 없었다. 날이 새기가
무섭게 성안으로 들어가면 언제나 해가 서쪽 산마루에 걸릴 무렵에야 돌아오곤 했다. 술이
얼근해서, 수건엔 복숭아를 사 들고 춤을 추며,
 "따님아, 따님아, 김씨 따님아,
 수국 꽃님 낭이 따님아,
 용궁이라 들어가니,
 열 두 대문이 다 잠겼다.
 문 열으소, 문 열으소,
 열 두 대문 열어 주소."
 청승가락을 뽑으며 동구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모화네 오늘도 한 잔 했구나."마을 사람들이 인사를 하면, 모화는 수줍은 듯이 어깨를 비틀며,
 "예예, 장에 갔다가요."하고 공손스레 절을 하곤 하였다.
 모화는 굿을 할 때 이외에는 대개 주막에 가 있었다.
 그만큼 모화는 술을 즐기었고, 낭이는 또한 복숭아를 좋아하여, 어미가 술이 취해 돌아올
때마다, 여름 한 철은 언제나 그녀의 손에 복숭아가 들려 있었다.
 "따님 따님 우리 따님."
 모화는 집안에 들어서면서도 이러한 조로 낭이를 불렀다.
 낭이는 어릴 때,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어미의 품에 뛰어들어 젖을 빨 듯, 어미의 수건에 싸인
복숭아를 받아 먹는 것이었다.
 모화의 말을 들으면 낭이는 수국 꽃님의 화신으로, 그녀(모화)가 꿈에 용신님을 만나 복숭아
하나를 얻어먹고 꿈꾼지 이렛만에 낭이를 낳은 것이라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수국 용신님은
따님이 열 두 형제였다. 첫째는 달님이요, 둘째는 물님이요, 세째는 구름님이요...이렇게 열 둘째는
꽃님이었는데, 산신님의 열 두 아드님과 혼인을 시키게 되어, 달님은 햇님에게, 물님은
나무님에게, 구름님은 바람님에게 각각 차례대로 배혼을 정해 가려니까 막내따님인 꽃님은 본시
연애를 좋아하시는 성미라, 자기 차례가 돌아오기를 미처 기다릴 수 없어, 열 한째 형인 열매님의
낭군님이 되실 새님을 가로 채어 버렸더니, 배필을 잃은 열매님과 나비님은 슬피 울며 제각기
용신님과 산신님께 호소한 결과, 용신님이 먼저 크게 노하자 벌을 내려 꽃님의 귀를 먹게 하시고
수국을 추방하시니 꽃님에게 그만 복사꽃이 되어 봄마다 강 가로 산기슭으로 붉게 피지만 새님이
가지에 와 아무리 재잘거려도 지금까지 귀가 먹은 채 말 없는 벙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라 한다.
 모화는 주막에서 술을 먹다 말고, 화랑이들과 어울려서 춤을 추다 말고 별안간 미친 것처럼
일어나 달아나곤 했다. 물으면 집에서 '따님'이 자기를 부르노라고 했다. 그녀는 수국 용신님께서
낭이 따님을 잠깐 자기에게 맡겼으므로 자기는 그 동안 맡아 있는 것 뿐이라 했다. 그러므로
자기가 만약 이 따님을 정성껏 섬기지 않으면 큰 어머님 되는 용신님의 노염을 살까 두렵노라
하였다.
 낭이 뿐 아니라, 모화는 보는 사람마다 너는 나무 귀신의 화신이다. 너는 돌귀신의 화신이다
하여, 걸핏하면 칠성에 갈 빌라는 둥 용왕에 가 빌라는 둥했다.
 모화는 사람을 볼 때마다 늘 수줍은 듯 두 어깨를 비틀며 절을 했다. 어린애를 보고도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다. 때로는 개나 돼지에게도 아양을 부렸다.
 그녀의 눈에는 때때로 모든 것이 귀신으로만 비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뿐 아니라, 돼지,
고양이, 개구리, 지렁이, 고기, 나비, 감나무, 살구나무, 부지껭이, 항아리, 섬돌, 짚세기,
대추무가지, 제비, 구름, 불, 밥, 연, 바가지, 다래끼, 솥, 숟가락, 호롱불...이러한 모든 것이 그녀와
서로 보고, 부르고, 말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성내고 할 수 있는 이웃 사람 같이 생각되곤
했다.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을 '님'이라 불렀다.

   3

 욱이가 돌아온 뒤부터 이 도깨비굴 속에는 조금씩 사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부엌에
들어서기를 그렇게 싫어하던 낭이도 욱이를 위하여는 가끔 밥을 짓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오직 컴컴한 어둠과 별빛만이 차 있던 이 헐려가는 기와집 처마 끝에도 희부연 종이 등불이
고요히 걸리는 것이었다.
 욱이는 모화가 아직 모화마을에 살 때, 귀신이 지피기 전,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 생긴
사생아였다. 그는 어릴적부터 무척 총명하여 신동이란 소문까지 났으나 근본이 워낙 미천하여,
마을에서는 순조롭게 공부를 시킬 수가 없어서 그가 아홉살 되었을 때 아는 사람의 주선으로
어느 절간으로 보낸 뒤 그 동안 한 십년간 까맣게 소식조차 묘연하다가 얼마 전 표연히 이 집에
나타난 것이었다. 낭이와는 말하자면 어미를 같이하는 오ㄴ벌이었다. 낭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때
그때만 해도 아직 병으로 귀가 먹기 전이라 '욱이' '욱이'하고 몹시 그를 따르곤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욱이가 절간으로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낭이는 자리에 눕게 되어 꼭 삼년 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나더니 그 길로 귀가 먹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가 어느 정도로 먹은지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 두번 그의 어미를 향해 어눌하나마,
 "우, 욱이 어디 가아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절에 공부하러 갔다."
 "어어디, 절에?"
 "지림사, 큰 절에..."
 그러나 이것은 거짓말이었다. 모화 자신도 사실은즉 욱이가 어느 절에 가 있는지 통이 모르고
있었고, 다만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서 이렇게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을 뿐이었다.
 모화는 장에서 돌아와 처음 욱이를 보았을 때 그 푸른 얼굴에 난데없는 공포의 빛이 서리며,
곧 어디로 달아날 것 같이 한참 동안 어깨를 뒤틀고 허둥거리다 말고 별안간 그 후리후리한 키에
긴 두 팔을 벌려 흡사 무슨 큰 새가 저희 새끼를 품듯 뛰어들어 욱이를 안았다.
 "이게 누고, 이게 누고? 아이고...내 아들아! 내 아들아!"
 모화는 갑자기 목을 놓고 울었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늬가 왔나, 늬가 왔나?"
 모화는 앞 뒤도 살피지 않고 온 얼굴을 눈물로 씻었다.
 "오마니. 오마니."
 욱이도 어미의 한 쪽 어깨에 왼 쪽 볼을 대이고 오래도록 울었다. 어미를 닮아 허리가
날씬하고 목이 가는 이 열 아홉 살 난 청년은 그 동안 절간으로 어디로 외롭게 유랑해 다닌 사람
같지도 않게 품위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낭이도 그 때야 청년이 욱이인 것을 진정으로 깨닫는 모양이었다. 처음 혼자 방에 있는데 어떤
낯선 청년이 와서 방문을 열기에, 너무도 놀라고 간이 뛰어 말--표정으로라도--한 마디도 못하고
방 구석에 박혀 앉아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낭이는 그 어머니가 욱이를 얼싸안고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우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낭이는 그 어머니에게도 이렇게 인정이 있다는 것을 보자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을 깨달았다.)
 그러나 욱이는 며칠을 가지 않아 모화와 낭이에게는 알 수 없는 이상한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는 음식을 받아 놓고나, 밤에 잠을 자려고 할 때나 또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반드시
한참 동안씩 눈을 감고 입술이 달삭달삭하며 무슨 주문 같은 것을 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틈틈히 품 속에서 조그만 책 한 권을 꺼내 읽곤 하는 것이었다. 낭이가 그것을 수상스레 보고
있으려니까 욱이는 그 아름다운 얼굴에 미소를 띠며,
 "너도 이 책을 읽어라."하고 그 조그만 책을 낭이 앞에 펴보이곤 했다. 낭이는 지금까지
'심청전'이란 책을 여러 차례 두고 읽어서 국문쯤은 간신히 읽을 수 있었으므로 욱이가
내놓은 그 조그만 책을 들여다 보니 맨처음 껍데기에 큰 글자로 '신약전서'란 넉자가 똑똑히
씌어져 있었다. '신약전서'란, 생전 처음 보는 이름이다. 낭이가 알 수 없다는 듯이 욱이를
바라보자, 욱이는 또 만면에 미소를 띠며,
 "너 사람을 누가 만들어 낸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낭이에게는 이 말이 들리지도 않았을
뿐더러, 욱이의 손짓과 얼굴 표정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건 지금까지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어려운 말이었다. "그럼 너 사람이 죽어서 어드케 되는 줄은 아니?"
 "..."
 "이 책에는 그런 것들이 모두 씌어져 있다."
 그리고는 손으로 몇 번이나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하여 낭이가 알아들은 말이라고는 겨우 한
마디 '하느님'이었다.
 "우리 사람을 만든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우리 사람뿐 아니라 천지 만물을 다 만들어
내셨다.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는 곳도 하느님 전이다."
 이러한 욱이의 '하느님'은 며칠 지나지 않아 곧 모화의 의혹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욱이가
온 지 사흘째 되던 날, 아침 밥을 받아 놓고 그가 기도를 드리려니까, 모화는
 "너 불도에도 그런 법이 있나?"
 이렇게 물었다. 모화는 그 동안 욱이가 절간에 가 있다 온 줄만 믿고 있으므로 그가 하는 짓은
모두 불도에 관한 일인 줄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오, 오마니, 난 불도가 아닙니다."
 "불도가 아니고 그럼 무든 도가 있어?"
 "오마니 난 절간에서 불도가 보기 싫어 달아 났댔쇠다."
 "불도가 보기 싫다니, 불도야 큰 도지...그럼 넌 뭐 신선도야?"
 "아니오, 오마니, 난 예수도올시다."
 "예수도?"
 "북선 지방에서는 예수교라고 합데다. 새로 난 교지요."
 "그럼 너 동학당이로군!"
 "아니오, 오마니, 나는 동학당이 아닙내다. 나는 예수도올시다."
 "그래, 예수도온가 하는 데서는 밥 먹을 때마다 눈을 감고 주문을 외이나?"
 "오마니, 그건 주문이 아니외다. 하느님 앞에 기도 드리는 것이외다."
 "하느님 앞에?"
 모화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네,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을 내셨으니깐요."
 "야아, 너 잡귀가 들렸구나!"
 모화의 얼굴 빛은 순간 퍼렇게 질리었다. 그리고는 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모화는 그 마을에 객귀 들린 사람이 있어 '물밥'을 내 주고 돌아오려니까, 욱이가,
 "오마니, 어디 갔다 오시나요?"하고 물었다.
 "저 박급창 댁에 객귀를 물려주고 온다."
 욱이는 한참 동안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더니,
 "그럼 오마니가 물리면 귀신이 물러 나갑네까?"한다.
 "물러나갔기 사람이 살아났지."
 모화는 별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는 지금까지 이 경우 고을 일원을 중심으로
수 백번의 푸닥거리와 굿을 하고, 수백 수천 명의 병을 고쳐 왔지만 아직 한 번도 자기의 하는
굿이나 푸닥거리에 '신령님'의 감응을 의심한다든가 걱정해 본 적은 없었다. 더구나 누구의
객귀에 물밥을 내주는 것쯤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그릇을 떠주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고
손쉬운 일로만 여겨왔다. 모화 자신만이 그렇게 생각할 뿐 아니라, 굿을 청하는 사람, 객귀가
들린 사람 쪽에서도 그와 같이 믿고 있는 편이기도 했다. 그들은 무슨 병이 나면 먼저 의원에게
보이려는 생각보다 으레 모화에게 찾아갈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생각에는 모화의
푸닥거리나 푸념이 의원의 침이나 약보다 훨씬 반응이 빠르고, 효험이 확실하고, 준비가 손쉬웠던
것이다.
 ...한참 동안 고개를 수그리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던 욱이는 고개를 들어 그 어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마니, 그런 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내다. 오마니 이것 보시오. 마태복음 제구장 삼십
오절이올시다. 저희가 나갈 때에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다려오매, 사귀가 쫓겨나니
벙어리가 말하거늘..."
 그러나 이 때 벌써 모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구석에 언제나 차려놓은 '신주상'앞에 가서,
 "신령님네, 신령님네, 동서남북 상하천지,
 날 것은 날하가고, 길 것은 기허가고,
 머리검하 초로인생 실날 같안 이 목숨이,
 신령님네 품이길래 품 속에 품았길래,
 대로 같이 가옵내다 대로 같이 가옵내다. 부정한 손 물리치고, 조촐한 손 받으실새,
 터부님이 터 주시고 조왕님이 요 주시고,
 산신님이 명 주시고 칠성님이 둘르시고,
 미륵님이 돌보셔서 실낱 같안 이 목숨이,
 대로 같이 가옵내다.
 탄단대로 같이 가옵내다."
 모화의 두 눈은 보석 같이 빛나고, 강렬한 발작과도 같이 등어리를 떨며 두 손을 부벼댔다.
푸념이 끝나자 '신주상'위의 냉수 그릇을 들어 물을 머금더니 욱이의 낯과 온 몸에 확 뿜으며,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해,
 깎아 질린 돌 베랑헤, 쉰길 청수해,
 너희 올 곳이 아아니다.
 바른 손헤 칼을 들고 왼 손헤 불을 들고,
 엇쇠, 잡귀신아, 썩 물러서라. 툇 툇!"

 이렇게 외쳤다.
 욱이는 처음 어리둥절해서 모화의 푸념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고개를 수그려 잠깐
기도를 올리고 나서 일어나 잠자코 밖으로 나가버렸다.
 모화는 욱이가 나간 뒤에도 한참 동안 푸념을 계속하며, 방 구석마다 물을 뿜고 주문을 외웠다.

   4

 욱이는 그 길로 이 지방의 예수교인들을 찾아 보기로 했다. 그 날 곧 돌아올 줄 알았던 욱이는
해가 지고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모화와 낭이, 어미 딸은 방 구석에 음울하게 웅크리고
앉아 욱이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것이었다.
 "예수 귀신 책 거 없나?"
 모화는 얼마 뒤에 낭이더러 이렇게 물었다. 나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낭이도
욱이의 그 '신약전서'란 책을 맡아 두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모화는 욱이의 '신약전서'를 '예수
귀신책'이라 불렀다. 모화는 분명히 욱이가 무슨 몹쓸 잡귀에 들린 것으로만 간주하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마치 욱이가 모화와 낭이를 으레 사귀 들린 사람들로 생각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는 모화뿐만 아니라 낭이까지도 어미의 사귀가 들어가서 벙어리가 된 것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예수 당시에도 사귀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서 몇 번이나 고쳐 주시지 않았나."
 욱이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힘으로, 자기가 하느님께 열심으로
기도를 드림으로써 그 어미와 누이동생의 병을 고쳐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결심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무리들이 달려와서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와
귀머거리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마라 하시니 사귀가
소리 지르며 아이를 심히 오그러뜨리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아 되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거늘 오직 예수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드디어 일어서더라.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와 가라대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예수 가라사대 기도 아니하여서는 이런 유를 나가게 할 수 없나니라."(마가복음 제
구장 제이십 오절--제이심 구절)
 그리하여 욱이는 자기도 하느님께 기도만 간절히 드리면 그 어미와 누이동생에게 들어 있는
사귀도 내어쫓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일방 그는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있던 평양 현목사와
이장로에게도 편지를 띄웠다.
 "목사님 저는 하느님의 은혜로 무사히 오마니를 찾아왔삽네다. 그러하오나 이 지방에는 아직
우리 주님의 복음이 전파되지 않아서 사귀 들린 자와 우상 섬기는 자가 매우 많은 것을 볼 때
하루바삐 주님의 복음을 이 지방에 전파하도록 교회를 지어야 하겠삽내다. 목사님께
말씀드리기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나 저의 오마니는 무당 사귀가 들려 있고, 저희 누이동생은
귀머거리와 벙어리귀신이 들려 있습내다. 저는 마가복음 제이십 구절에 있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이 사귀들을 내어쫓기 위하여 열심으로 기도를 드립니다마는 교회가
없으므로 기도 드릴 장소가 매우 힘드옵내다. 하루바삐 이 지방에 교회되기를 하느님께 기도
올려 주소서."
 이 현목사는 미국 선교사로서 욱이가 지금까지 먹고 입고 공부를 하게 된 것이 모두 전혀 그의
도움이었다. 욱이는 열 다섯 살까지 절간에서 중의 상좌노릇을 하고 있다가, 그 해 여름에 혼자서
서울 구경을 간다고 나선 것이 이러저리 유랑하여 열 여섯 되던 해 가을에 평양까지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해 겨울 이장로의 소개로 현목사의 도움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번에 욱이가 평양서 어머니를 보러 간다고 하니까 현목사는 욱이를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삼년 안에 이 사람 고국 갈 것이오. 그 때 만일 욱이가 함께 가기 원하면 이 사람
같이 미국 가게 될 것이오."
 "목사님 고맙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따라 미국 가기가 원입니다."
 "그러면 속히 모친을 만나 보고 오시오."
 그러나 욱이가 어머니의 집이라고 찾아온 곳은 지금까지 그가 살고 있던 현목사나 이장로의
집보다 너무나 딴 세상이었다. 그 명랑한 찬송가 소리와 풍금소리와, 성경 읽는 소리와, 모여
앉아 기도를 올리고, 빛난 음식을 향해 즐겁게 웃음 웃는 얼굴들 대신에 군데군데 헐려져 가는
쓸쓸한 돌담과, 기와 버섯이 퍼렇게 뻗어 오른 묵은 기와집과, 엉킨 잡초 속에 꾸물거리는
개구리, 지렁이들과 그 속에서 무당 귀신과 귀머거리 귀신이 각각 들린 어미 딸 두 여인을
보았을 때 그는 흡사 자기 자신이 도깨비굴에 흘려 든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새삼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욱이가 이 지방 예수교인들을 두루 만나 보고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야릇하게 변해진 것은
낭이의 태도였다. 그 호리호리한 몸매와 종잇장 같이 희고 매끄러운 얼굴에 빛나는 굵은 두
눈으로 온 종일 말 한마디, 웃음 한번 웃는 일 없이 방구석에 들어 박혀 앉은 채 욱이의 하는
양만 바라보고 있다가, 밤이 되어 처마 끝에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리고 하면, 피에 주린
모기들이 미친 듯이 떼를 지어 울고 날아드는 마당 구석에서 낭이는 그 얼음 같이 싸늘한 손과
입술로 욱이의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뛰어들곤 했다. 욱이는 문득문득 목덜미나 가슴팍으로
낭이의 차디찬 손과 입술이 느낄 적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하였으나 그녀가 까무러칠 듯이 사지를
떨며 다시 뛰어들 제면 그도 당황히 낭이의 손을 쥐어 주며, 그 희부연 종이 등불이 걸려 있는
처마 밑으로 이끌곤 했다.
 낭이의 태도가 미묘해진 뒤부터 욱이의 얼굴빛은 날로 창백해 갔다. 그렇게 한 보름 지난 뒤
그는 또 한 번 표연히 집을 나가고 말았다.
 모화는 욱이가 집을 나간 지 이틀째 되던 날 밤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곁에 누워 있는 낭이를 흔들어 깨우더니 듣기에도 우울한 목소리로,
 "욱이가 언제 온다더누?"
 물었다. 낭이가 잠자코 있으려니까.
 "왜 욱이 저녁 밥상은 보아 두라고 했는데 없노."하고 낭이더러 화를 내었다. 모화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초조한 빛으로 밤중마다 부엌에다 들기름 불을 켜고 부뚜막 위에 욱이의 밥상을
차려 놓고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성주님 우리 성주, 칠성은 우리 칠성, 조왕은 우리 조왕,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주님께 비나이다.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금은 같안 이 내 장손, 관옥 같안 이 내 방성,
 삼신헤 명을 빌하 삼신헤 수를 빌하,
 칠성헤 복을 빌하 쌈신헤 덕을 빌하,
 하늘에는 별, 바다에는 진주,
 삼신조왕 마다하고 아니 오지 못하리라.
 예수 귀신하, 서역 십만리 굶주리던 불귀신하
 탄다 훨훨 탄다 불귀신이 훨훨 탄다.
 타고 나니 이 내 방성 금은 같이 앉았다가,
 삼신 찾아 오는구나, 조왕 찾아 오는구나."
 모화는 혼자서 손을 비비고 절을 하고 일어나 춤을 추고 갖은 교태를 다 부리며 완연히 미친
것 같이 날뛰었다. 낭이는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대고 숨소리를 죽여 오랫동안
어미의 날뛰는 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별안간 몸에 한기가 들며 아랫턱이 달달달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미친 것처럼 뛰어 일어나며 저고리를 벗었다. 치마를 벗었다. 그리하여 어미는
부엌에서 딸은 방안에서 한 장단, 한 가락에 놀듯 어우러져 춤을 추곤 했다. 그러한 어느 새벽,
낭이는(정신을 차리고 보니)발가벗은 알몸뚱이로 방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녀 자신을 발견한
일도 있었다.
 두 번째 집을 나갔던 욱이는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들 어미 딸 앞에 나타났다.
 모화는 그 때 마침 굿 나갈 때 신을 새 신발을 신어보고 있었는데 욱이가 오는 것을 보자, 그
후리후리한 허리에 긴 팔을 벌려, 흡사 큰 새가 알을 품듯, 그의 목을 안은 채 잠자코 울기만
하는 것이었다. 언제나 퍼런 그 얼굴에도 이 때만은 붉은 기운이 돌며, 그 천연스런 몸짓은
조금도 귀신 들린 사람 같지 않았다.
 "오마니, 나 방에 들어가 좀 쉬겠쇠다."
 욱이는 어미의 포옹을 끌르고 일어나 방에 들어가 누웠다.
 모화는 웬일인지 욱이가 방에 들어간 뒤에도 혼자 툇마루에 앉아 고개를 수그린 채 몹시
쓸쓸한 얼굴이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일어나 방에 들어가 낭이의 그림을 이것저것 뒤져
보는 것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중이나 되어 욱이가 잠결에 그의 품 속에 언제나 품고 있는 성경책을 더듬어 보았을 때
품속에 허전함을 느꼈다. 그와 동시 웅얼웅얼하며 주문을 외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보았으나 품 속에서 성경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낭이와 욱이 사이에 누워 있을
그의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어떤 불길하고 무서운 예감에 몸이 부르르 떨리었다. 바로 그
때였다. 그의 귀에는 땅 속에서 귀신이 우는 듯한 웅얼웅얼하는(주문을 외이는 듯한)소리가 좀더
또렷이 들려 왔다. 다음 순간 그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방에서 부엌으로 난 봉창 구멍에 눈을
갖다 대었다.
 "서역 십만리 굶주리던 불귀신하,
 한 쪽 손에 불을 들고 한 쪽 손에 칼을 들고,
 이리 가니 산신님이 예 기신다,
 저리 가니 용신님이 제 기신다,
 칠성이라 돌아가니 칠성님이 예 기신다,
 구름 속에 쌔여 간다, 바람결에 묻혀 간다,
 구름님이 예 기신다, 바람님이 제 기신다,
 용궁이라 당도하니 열두 대문 잠겨 있다,
 첫째 대문 두드리니 사천왕 뛰어 나와,
 종발눈 부릅뜨고, 주석 철퇴 높이 든다,
 둘째 대문 두드리니 불개 두 쌍 뛰어 나와,
 꽃불은 숫놈이 낼릉, 불씨는 암놈이 낼릉,
 셋째 대문 두드리니 물개 두쌍 뛰어 나와.
 숫놈이 공공 꽃불이 죽고
 암놈이 공공 불씨가 죽고..."
 모화는 소복 단장에 쾌자까지 두르고, 온갖 몸짓 갖은 교태를 다 부려가며 손을 비비다, 절을
하다, 덩싯거리며 춤을 추다 하고 있다. 부뚜막 위에는 깨끗한 접시불(들기름의)이 켜져 있고
접시불 아래 놓인 소반 위에는 냉수 한 그릇과 흰 소금 한 접시가 놓여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금 막 그 마지막 불꽃이 나불거리고 난 새빨간 불에서 파란 연기 한 오리가 오르는
'신약전서'의 두터운 표지는 한 머리 이미 파리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모화는 무엇에 도전이나 하는 것처럼 입가에 야릇한 냉소까지 띠며, 소반에 얹힌 접시의
소금을 집어, 인제 연기마저 사라진 새까만 재 위에 뿌렸다.
 "서역 십만리 예수 귀신이 돌아간다,
 당산에 가 노자 얻고, 관묘에 가 신발 신고,
 두 귀에 방울 달고 방울 소릴 발맞추어
 재 넘고 개 건너 잘도 간다.
 인제 가면 언제 볼꼬, 발이 아파 못오겠다.
 춘 삼월이 다시 오랴, 배가 고파 못오겠다.
 모화의 음성은 마주 같은 향기를 풍기며 온 피부에 스며들었다. 그 보석 같은 두 눈의 교태와
쾌자자락과 함께 나부끼는 손짓은 이제 차마 더 엿볼 수 없게 욱이의 심장을 쥐어 짜는
것이었다. 욱이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간신히 긴 숨을 내쉬며 뛰어 일어 났다. 다음 순간, 자기
자신도 모르게 방문을 뛰어 나온 그는 부엌문을 박차고 들어가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집어 들려 하였다. 그러나 그가 냉수 그릇을 집어 들기 전에 모화의 손에는 식칼이 번득이고
있었고 모화는 욱이와의 물 그릇 사이에 식칼을 두르며 조용히 춤을 추는 것이었다.
 "엇쇠, 귀신아 물러서라.
 너 이제 보아하니 서역 십만리 굶주리던 잡귀신아,
 여기는 영주 비루봉 상상봉헤
 깎아 질린 돌 벼랑헤, 쉰길 청수헤, 엄나무발에 너희 올 곳이 아니다.
 바른 손헤 칼을 들고 왼 손에 불을 들고,
 엇쇠 서역 잡귀신아 썩 물러서라."
 이 때, 모화는 분명히 식칼로 욱이의 면상을 겨누어 치려 하였다. 순간 욱이는 모화의 칼을
왼쪽 귓전에 느끼며 그의 겨드랑이 밑을 돌아 소반 위에 차려 놓은 냉수 그릇을 들어서 모화의
낯에다 그릇째 끼얹었다. 이 서슬에 접시의 불이 기울어져 봉창에 붙었다. 욱이는 봉창에서
방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잡으려고 부뚜막 위로 뛰어 올랐다. 그러자 물 그릇을
뒤집어쓰고 분노에 타는 모화는 욱이의 뒤를 쫓아 칼을 두르며 부뚜막으로 뛰어올랐다. 봉창에서
방안으로 붙어 들어가는 불길을 덮쳐 끄는 순간, 뒷등어리가 찌르르하여 획 몸을 돌이키려 할 때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은 허옇게 이를 악물고 웃음 웃는 모화의 품속에 안겨져 있었다.

   5

 욱이의 몸은 머리와 목덜미와 등어리와 세 군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이 세군데
칼로 맞은 상처만이 아니었다. 그는 날이 갈수록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고 두 눈자위가 패어
들기 시작했다.
 모화는 욱이의 병 간호에 남은 힘을 다 하여 그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낮과 밤을 헤아리지
않고 뛰어갔다. 가끔 욱이를 일으켜 앉히어서 자기의 품에 안아도 주었다. 물론 약도 쓰고 굿도
하고 방문도 외었다. 그러나 욱이의 병은 낫지 않았다.
 모화는 욱이의 병 간호에 열중한 뒤부터 굿에는 그만큼 신명이 풀린 듯하였다. 누가 굿을
청하러 와도 아들의 병을 핑계로 대개 거절을 했다. 그러자 모화의 굿이나 푸념의 반응이
이전과 같이 신령치 않다고들 하는 사람이 하나 둘 씩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즈음 이 고을에도 조그만 교회당이 서고 선교사가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것은 바람에
불처럼 온 고을에 뻗쳤다. 읍내의 교회에서는 마을마다 전도대를 내보냈다. 그리하여 이 모화의
마을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다.
 "여러 부모 형제 자매 우리 서로 보게 된 것 하느님 앞에 감사 드릴 것이오. 하느님, 우리
만들었소. 매우 사랑했소. 우리 모두 죄인올시다. 우리 마음속 매우 흉악한 것뿐이오. 그러나 예수
우리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소.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믿음으로 우리 구원 받을 것이오. 우리
매우 반가운 뜻으로 찬송할 것이오. 하느님 앞에 기도 드릴 것이오."
 두 눈이 파랗고 콧대가 칼날 같은 미국 선교사를 보는 것은 '원숭이 구경'보다도 더
재미나다고들 하였다.
 "돈은 한 푼도 안 받는다. 가자."
 마을 사람들은 떼를 지어 모여 들었다.
 이 마을 박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요, 선교사와 함께 온 양조사 부인은 집집마다 심방하여
가로되,
 "무당과 판수를 믿는 것은 거룩거룩하시고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우리 하느님 아부지께 죄가
됩니다. 무당이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무당은 썩어 빠진 고목나무나 듣도 보도 못하는
돌미륵한테도 빌고 절을 하지 않습니까. 관수가 무슨 능력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제 앞도 못
보아 지팽이로 더듬거리는 그가 어떻게 눈밝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생을 만든
것은 절대적 하나밖에 없는 하느님 아버지올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앞에
다른 신은 두지 말라..."
 이리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온갖 사귀 들린 사람, 문둥병 든 사람,
앉은뱅이, 벙어리, 귀머거리 고친 이야기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한정 없이 쏟아진다.
 모화는 픽 웃곤 했다.
 "그까짓 잡귀신들."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방과 저주는 뼛골에 사무치는 듯 그녀는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외쳤다.
 "엇쇠 귀신아 물러 서라,
 당대 고축년에 얻어먹던 잡귀신아,
 늬 어이 모화를 모르나냐. 아니 가고 봐하면 쉰 길 청수에 엄나무 밭에, 무쇠 가마에, 백말
가죽에 늬 자자손손을 가두어 못 얻어 먹게 하고 다시는 세상 밖을 내주지 아니하여 햇빛도 못
보게 할란다, 엇쇠 귀신아 썩 물러가거라, 서역 십만리로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벼락 같이 떠나거라."
 그러나 '예수 귀신'들은 결코 물러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점점 늘어만 갔다. 게다가 옛날
모화에게 굿과 푸념을 빌러 다니던 사람들까지 하나 둘씩 모두 예수 귀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이러는 중에 서울서 또 부흥 목사가 내려왔다. 그는 기도를 드려서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다
하여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가 병자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 죄인은 저의 죄로 말미암아 심히 괴로워 하고 있사옵니다."하고 기도를 올리면, 여자들의
월숫병 대하증쯤은 대개 '죄씻음'을 받을 수 있었고, 그 밖에도 소경이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하고, 반신불수와 지랄병까지 저희 믿음 여하에 따라 모두
'죄씻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의 은가락지 금반지가 나날이 수를 다투어 강단 위에
내걸리게 된다. 기부금이 쏟아진다. 이리 되면 모화의 굿 구경에 견줄 나위가 아니라고들 하였다.
 "양국 놈들이 요술단을 꾸며 왔어."
 모화는 픽 웃고, 이렇게 말했다. 굿과 푸념으로 사람 속에 든 사귀 잡귀신을 쫓는 것은
지금까지 신령님께서 자기에게만 허락하신 자기의 특수한 권능이었다. 그리고 그의 신령님은
오늘날 예수군들이 그렇게도 미워하고 시기하는 고목이기도 했고, 미륵돌이기도 했고, 산이기도
했고, 물이기도 했다.
 "무당과 판수를 믿은 것은 절대적 한 분밖에 안 계시는 거룩거룩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죄가
됩니다."
 '예수 귀신'들이 나발을 불고 북을 치며 비방을 하면 모화는 혼자서 징을 울리고 꽹과리를
치며,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서역 십만 리로, 물러서라
잡귀신아."
 이렇게 응수하곤 했다.

   6

 욱이의 병은 그 해 가을을 지나 겨울철에 들면서부터 표나게 악화되어 갔다.
 모화가 가끔 간장이 녹듯 떨리는 음성으로,
 "이것아 이것아, 늬가 이게 웬 일이고? 머나먼 길에 에미라고 찾아와서 늬가 이게 무슨 꼴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
 "오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죽어서 우리 아버지께로 갈 것이오."
 욱이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무어 생각나는 게 없느냐고 물으면 그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어미가 밖에 나가고 낭이가 혼자 있을 때엔 이따금 낭이의 손을 잡고,
 "나 성경 한 권 가졌으면..."하는 것이었다.
 이듬 해 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에 그가 그렇게도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현목사가
평양에서 찾아왔다. 현목사는 방영감네 이종사촌 손자사위인 양조사의 인도로 뜰 안에 들어서자
그 황폐한 광경과 역한 흙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며,
 "이런 가운데 욱이가 살고 있소?"
 양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욱이는 양조사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두 눈에 광채를 띠며,
 "목사님, 목사님."
 이렇게 두 번 불렀다.
 현목사는 잠자코 욱이의 여윈 손을 쥐었다. 별안간 그의 온 얼굴은 물든 것처럼 붉어지며
무수한 주름살이 미간과 눈꼬리에 잡혔다. 그는 솟아 오르는 감정을 누르려는 듯이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양조사는 긴장된 침묵을 깨뜨리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경주에 교회가 이렇게 속히 서게 된 것은 이 분의 공로올시다."
 그리하여 그의 말을 들으면 욱이는 평양 현목사에게 진정을 했고 현목사께서는 욱이의 편지에
의하여 대구 노회에 간청을 했고, 일방, 경주 교인들은 욱이의 힘으로 서로 합심하여 대구 노회와
연락한 결과 의외로 속히 교회 공사가 진척되었던 것이라 하였다.
 현목사가 의사와 함께 다시 오기를 약속하고 일어나려 할 때 욱이는,
 "목사님 나 성경 한 권만 사 주시오."했다.
 "그럼 그 동안 우선 이것을 가지시오."
 현목사는 손가방 속에서 자기의 성경책을 내주었다. 성경책을 받아 쥔 욱이는 그것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그의 감은 눈에서는 이슬 방울이 맺히었다.

   7

 모화 집 마당에는 예년과 다름 없이 잡풀이 엉기고 늙은 개구리와 지렁이들이 그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그 동안 거의 굿을 나가지 않고, 매일, 그 찌그러져 가는 묵은 기와집
잡초 속에서 혼자 징, 꽹과리만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화가 아주 미친 것이라 하였다. 그는
부엌에다 오색 헝겊을 걸고 낭이가 그려둔 그림으로 기를 만들어 말고는 사뭇 먹기를 잊어버린
채 입술은 먹 같이 검어지고 두 눈엔 날로 이상한 광채가 짙어갔다.
 "서역 십만리 예수 귀신 돌아간다.
 꽁무니에 불을 달고 두 귀에 방울 달고, 왈강달강 왈강달강,
 엇쇠 귀신아 썩 물러가거라,
 늬 아니 가고 봐하면, 쉰 길 청수에, 엄나무 바알에, 무쇠가마에, 흰 말 가죽에, 너의
자자손손을 다 가두어 죽일란다. 엇쇠! 귀신아."
 그는 날마다 같은 푸념으로 징 꽹과리를 울렸다.
 혹 술잔이나 가지고 이웃 사람이 찾아가,
 "모화네 아들 죽고 섭섭해서 어쩌나?"하면, 그녀는 다만,
 "우리 아들은 예수 귀신이 잡아 갔소."하고, 한숨을 내 쉬곤 했다.
 "아까운 모화 굿을 언제 또 볼꼬?"
 사람들은 모화를 아주 실신한 사람으로 치고 이렇게 아까워하곤 했다. 이러할 즈음에 모화의
마지막 굿이 열린다는 소문이 났다. 읍내 어느 부자집 며느리가 '예기소'에 몸을 던진 것이었다.
그래 모화는 비단옷 두 벌을 받고 특별히 굿을 응낙했다는 말도 났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모화가 이번 굿에서 딸 낭이의 입을 열게 할 계획이라는 소문도 났다. "흥, 예수귀신이 진짠가
신령님이 진짠가 두고 보자." 이렇게 장담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대와 호기심에 들끓었다.
그들은 놀라웁고 아쉬운 마음으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모여들었다.
 굿이 열린 백사장 서북쪽으로 검푸른 소물이 깊은 비밀과 원한을 품은 채 조용히 돌아
흘러내리고 있었다. (명주구리 하나 들어간다는 이 깊은 소에는 해마다 사람이 하나씩 빠져 죽기
마련이라는 전설이 있다.)
 백사장 위에는 수많은 엿장수, 떡장수, 술가게, 밥가게들이 포장을 치고 혹은 거적을 두르고
득실거렸고, 그 한복판 큰 차일 속에서 굿은 벌어져 있었다. 청사 홍사 녹사 백사 황사의 오색
사초롱이 꽃송이 같이 여기저기 차일 아래 달리고, 그 초롱 불 밑에서 떡 시루 탁주 등이 돼지
통샘이들이 온 시루 온 동이 온 마리째 놓인 대감상, 무더기 쌀과 타래실과 곶감 꽂이, 두부를
놓은 제석상과, 삼색 실과에 백설기와 소채 소탕에 자반 유과들을 차려 놓은 미륵상과 열두 가지
산채로 된 산신상과, 열두 가지 해물을 차린 용신상과, 음식이란 음식마다 한 접시씩 놓은
골목상과, 냉수 한 그릇만 놓인 모화상과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전물상들이 쭉 늘어
놓아져 있었다.
 이 날 밤 모화의 얼굴에는 평소에 볼 수 없던 정숙하고 침착한 빛이 서려 있었다. 어제 같이
아들을 잃고 또 새로 들어온 예수교도들로부터 가지각색 비방과 구박을 받아 오던 그녀로서는
의아스러우리만치 새침하게 가라앉아 있어 전 날 달밤으로 산에 기도를 다닐 적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그녀는 전 날과 같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아양을 부리거나 수선을 떨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호화스러운 전물상들을 둘러보고도 만족한 빛 한 번 띠지 않고 도리어 비웃듯이 입을
비쭉거렸다.
 "더러운 년들 전물상만 잘 차리면 그만인가."
 입밖에 내어 놓고 빈정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자리에서는 모화가 오늘 밤 새로운 귀신이
지핀다고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한 여자가 돌연히,
 "아, 죽은 김씨 혼신이 덮였군."하자 다른 여자들도,
 "바로 그 김씨가 들렸다. 저 청승맞도록 정숙하고 새침한 얼굴을 좀 봐라. 그러고 모화네가
본디 어디 저렇게 이뻤나, 아주 김씨를 덮어 썼구먼."
 이렇게들 수군댔다. 이와 동시, 한 쪽에서는 오늘밤 굿으로 어쩌면 정말 낭이가 말을 하게
될게라는 얘기도 퍼졌고, 또 한쪽에서는 낭이가 누구 아이인지는 모르지만 배가 불러 있다는
풍설도 돌았다...하여간 이 여러 가지 소문들이 오늘 밤 굿으로 해결이 날 것이라고 막연히
그녀들은 믿고 있는 것이었다.
 모화는 김씨 부인이 처음 태어났을 때부터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의 사연을 한참씩
넋두리하다가는 전악들의 젓대 피리 해금에 맞추어 춤을 덩싯거렸다. 그녀의 음성은 언제보다도
더 구슬펐고, 몸뚱아리는 뼈도 살도 없는 율동으로 화한 듯 너울거렸고...취한 양, 얼이 빠진 양
구경하는 여인들의 숨결은 모화의 쾌자자락만 따라 오르내렸다. 모화의 쾌자자락은 모화의
숨결을 따라 나부끼는 듯했고 모화의 숨결은 한많은 김씨부인의 혼령을 받아 청승에 자지러진 채
비밀을 품고 조용히 굽이 돌아 흐르는 강물(예기소의)과 함께 자리를 옮겨가는 하늘의 별들을
삼킨 듯했다.
 밤중이나 되어서였다.
 혼백이 건져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화랑이들과 작은 무당들이 몇 번이나 초망자 줄에
밥그릇을 달아 물 속에 던져도 밥그릇 속에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김씨가 초혼에 응하질 않는 모양이라 하였다.
 작은 무당 하나가 초조한 낯빛으로 모화의 귀에 입을 바싹 대며,
 "여태 혼백을 못 건져서 어떡해?"하였다.
 모화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이 넋대를 잡고 물가로 들어섰다.
 초망자 줄을 잡은 화랑이는 넋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이리저리 초혼 그릇을 물 속에 굴렀다.
 "일어나소, 일어나소,
 서른 세 살 월성 김씨 대주 부인,
 방성으로 태어날 때 칠성에 복을 빌어."
 모화는 넋대로 물을 휘저으며 진정 목이 메인 소리로 혼백을 불렀다.
 "꽃 같이 피난 몸이 옥 같이 자란 몸이,
 양친 부모 생존이요, 어린 자식 누여 두고,
 검은 물에 뛰어들 제 용신님도 외면이라,
 치마폭이 봉긋 떠서 연화대를 타단 말가.
 삼단머리 흐트러져 물귀신이 되단 말가."
 모화는 넋대를 따라 점점 깊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옷이 물에 젖어 한 자락 몸에 휘감기고, 한
자락 물에 떠서 나부꼈다.
 검은 물은 그녀의 허리를 잠그고 가슴을 잠그고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녀는 차츰 목소리가 떨어지며 넋두리도 휘황해지기 시작했다.
 "가자시라 가자시라 이수중분 백노주로,
 불러 주소 불러 주소 우리 성님 불러 주소,
 봄철이라 이 강변에 복숭꽃이 피그덜랑,
 소복단장 낭이 따님 이 내 소식 물어주소,
 첫 가지에 안부 묻고 둘째 가..."
 할 즈음, 모화의 몸은 그 넋두리와 함께 물 속에 아주 잠겨져 버렸다...
 처음엔 쾌자자락이 보이더니 그것마저 잠겨 버리고, 넋대만 물 위에 빙빙 돌다가 흘러내렸다.

 열흘쯤 지난 뒤다.
 동해변 어느 길목에서 해물 가게를 보고 있다던 채수 조그만 사내가 나귀 한 마리를 몰고 왔을
때, 그 때까지 아직 몸이 완쾌하지 못한 낭이는 쾡한 눈으로 자리에 누워 있었다.
 사내는 낭이에게 흰 죽을 먹이기 시작했다.
 "아버으이."
 낭이는 그 아버지를 보자 이렇게 소리를 내어 불렀다. 모화의 마지막 굿이 (떠돌던 예언대로)
영검이 나타냈는지 그녀의 말소리는 전에 없이 알아들을 만도 했다.
 다시 열흘이 지났다.
 "여기 타라."
 사내는 손으로 나귀를 가리켰다.
 "..."
 낭이는 잠자코 그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나귀 위에 올라 앉았다.
 그들이 떠난 뒤엔 아무도 그 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고, 밤이면 그 무성한 잡풀 속에서
모기들만이 떼를 지어 울었다.

    역마
    "백민" 1948. 1.

 '화개 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땅 구례 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추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 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 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 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리를 끼고 앉은 '화개 장터'의 이름이 높았고 경상, 전라 양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 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 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화물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쪽집게, 골백분 들이 또한 구례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의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조기, 자반고등어
들이 들어오곤 하여 산협하고는 꽤 은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하였으나, 그러나 '화개 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그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 많고 멋들어진 진양조 단가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여기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반드시 재주와 신명을 떨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갖 관습과 전례가 '화개 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운데도 옥화네 집은 술맛이 유달리 좋고, 값이 싸고, 안주인-즉 옥화-의 인심이 후하다 하여
화개 장터에서는 가장 이름이 들난 주막이었다. 얼마 전에 그 어머니가 죽고 총각 아들 하나와
단 두 식구만으로 안주인 옥화가 돌아올 길 망연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라 하여
그들은 더욱 호의와 동정을 기울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혹 노자가 딸린다거나 행장이 불비할 때
그들은 으레 옥화네 주막을 찾았다.
 "나 이번에 경상도서 돌아올 때 함께 회계하지라오."
 그들은 예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하였다.
 늘어진 버들가지가 강물에 씻기우고, 저녁 바람에 은어가 번득이고 하는 여름철 석양
무렵이었다.
 나이 예순도 훨씬 더 넘어 뵈는 늙은 체장수 하나가 체바퀴와 바닥감들을 어깨에 걸머진 채,
손에는 지팡이와 부채를 들고 옥화네 주막을 찾아왔다. 바로 그 뒤에는 나이 열 대여섯 살쯤 나
뵈는, 몸매가 호리호리한 소녀 하나가 조그만한 보따리를 옆에 끼고 서 있었다. 그들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저 큰애기까지 두 분입니까?"
 옥화는 노인보다 '큰애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저녁상을 물린 뒤 노인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했다. 살기는 구례에 사는데, 이번엔
경상도 쪽으로 벌이를 떠나온 길이라 하였다. 본시 여수가 고향인데, 젊어서 친구를 따라 한때
구례에 와서도 살다가, 그 뒤 목포로, 군산으로 전전하였고, 나중 진도로 건너가 거기서 열
열 여덟 해 사는 동안 그만 머리털까지 세어져서는, 그래 몇 해 전부터 도로 구례에 돌아와 사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저런 큰애기 데리고 어떻게 다니느냐고 옥화가 묻는 말에 그렇잖아도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데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떠나지 않고는 두 식구 가만히
굶을 판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라 했다.
 "그럼, 저 큰애기는 할아버지 딸입니까?"
 옥화는 남폿불 그림자가 반쯤 비낀 바람벽 구석에 붙어 앉아 가끔 그 환한 두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곤 하는 소녀의 둥그스름한 어깨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평생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나니 이제 고향 삼아 돌아온
곳이래야 또한 객지라 그들 아비 딸이 어디다 힘을 입고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데도 의탁할 곳이
없다고, 그들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도 했다.
 "나도 젊었을 때는 노는 것을 좋아했지라오. 동무들과 광대도 꾸며 갖고 댕겨 봤는듸, 젊어서
한 번 바람들어 농께 평생 못 잡기 마련이랑께... 그것이 스물 네 살 때 정초닝께 꼭 서른 여섯
해 전일 것이며. 바로 이 장터에서도 하룻밤 논 일이 있었지라오."
 노인은 조용히 추억의 실마리를 더듬는 듯, 방 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곤 하는 것이었다.
 "어이유! 참 오래 전일세!"
 옥화는 놀라운 시늉이었다.
 이튿날은 비가 왔다.

 화개 장날만 책전을 펴는 성기는 내일 장 볼 준비도 할 겸 하루를 앞두고 절에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화개 장터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산협의
장려한 풍경은 언제 보나 그에게 길 멀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처음엔 글을 배우러 간다고 할머니에게 손목을 끌리다시피 하여 간 곳이 절이었고, 그 다음엔
손위 동무들과 사랑에 끌려 다니다시피쯤 해 왔지만, 이즘 와서는 매일같이 듣는 북소리,
목탁소리, 그리고 그 경을 치게 해말간 은행나무, 염주나무, 이런 것까지 모두 다 싫증이 났다.
 당초부터 어디로 훨훨 가 보고나 싶던 것이 소망이었고, 그러나 어디로 간다는건 말만 들어도
당장에 두 눈이 서뻘개져서 역정을 내는 어머니였다.
 "서방이 있나, 일가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어머니의 넋두리는 인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다.
 이러한 어머니보다는 차라리, 열 살 때부터 절에 넣어 중질을 시켰으니, 인제 역마살도 거의 다
풀려갈 것이라고, 은근히 마음을 늦추시는 편이던 할머니다. 그러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다.
당사주라면 다시는 더 사족을 못 쓰던 할머니다. 성기사 세 살 났을 때 보인 그의 사주에
시천역이 들었다 하여 한때는 얼마나 낙담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동 산다는 그 키가 나지막한,
명주 치마 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혹시 갑자을축을 잡고 짚지나 않았나 하여, 큰절(쌍계사를
가리킴)에 있는 어느 노장에게도 가 물어 보고 지리산 속에서 도를 닦아 나온다던 어떤 키 큰
영감에게 다시 뵈어도 봤지만 시천역엔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천상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가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히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는 자식 없단다. 근본은 모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에미한테 너무 오금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 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같이 떠돌아 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서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 장터' 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 다 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를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성기로서도 불경보다는
암만해도 이야기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라도 해 보고 싶다는 소청이기도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다.
 성기가 마루 앞 축대 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자 옥화는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더운데 왜 인저사 내려오냐?"
 곁에 있던 수건과 부채를 집어 그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옥화에게 이야기책을 읽어 들려 주고 있는 듯한 낯선 계집애는, 책 읽던 것을 멈추고
얼굴을 들어 성기를 바라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흰자위 검은 자위가 꽃같이 선연한 두
눈이었다. 순간, 성기는 가슴이 찌르르하며, 갑자기 생기를 띠운 눈으로 집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를 바라보았다.
 얼마 뒤, 계집애는 안으로 들어가고 옥화는 성기의 점심상을 차려 들고 나와서,
 "체장수 딸이다."하였다. 어머니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체장수라니?"
 성기는 밥상을 받은 채, 그러나 얼른 숟가락을 들려 하지도 않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례 산다더라. 이번에 어쩌면 하동으로 해서, 진주 쪽으로 나가 볼 참이라는데 어제 저녁에
화갯골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딸아이는 그 체장수의 무남독녀인데 영감이 화갯골 쪽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하동
쪽으로 나갈 때 데리고 가겠다고, 하도 간청을 하기에, 그 동안 좀 맡아 있어 주기로 했다면서,
옥화는 성기의 눈치를 살피듯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갯골에서는 며칠이나 있겠다는고?"
 "들어가 보고 재미나면 지리산 쪽으로 깊이 들어가 볼 눈치더라."
 그리고 나서 옥화는 또,
 "그래도 그런 사람의 딸같이는 안 뵈지?"하였다. 계연이란 이름이었다.
 성기는 잠자코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은 반도 먹지 않고 상을 물려 버렸다.
 이튿날 성기가 체전에 있으려니까, 그 체장수 딸이 그의 점심을 이고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래야 소리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였지만, 그래도 전날 늘 이고 다니던 '상돌 엄마'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벌써 처녀티가 나는 남의 큰애기더러 이런 사환을 시켜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쪽에서는 그러한 빛도 없이, 그 꽃송이같이 화안한 두 눈에 웃음까지
담은 채, 그의 앞에 밥함지를 공손스레 놓고는, 떡과 엿과 참외들을 팔고 있는 음식전 쪽으로
곧장 눈을 팔고 있었다.
 "상돌 엄만 어디 갔는듸?"
 성기는 계연의 그 아름다운 두 눈에서 흥건한 즐거움을 가슴으로 깨달으며, 그러나 고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린 채, 차라리 거치른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손님이 마루에 가뜩 찼는듸 상돌 엄마가 바빠 서두닝께 어머니가 지더러 갖고 가라 했어요."
 그 동안 거의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없었던 계연은 성기 묻는 말에, 의외로 생경한 전라도 쪽
토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가냘프고 갸름한 어깨와 목하며 어디서 그렇게 힘차고 콸콸한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 줌이나 될 듯한 가느다란 허리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하여 발달된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두 손등과 조그맣게 도톰한 입술을 가진 탓인지도
몰랐다.
 "계연아, 오빠 셋물 놔 드려라."
 다음날 아침에도 옥화는 상돌 엄마를 부엌에 둔 채 역시 계연에게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세숫물은 놓는 일뿐 아니라 숭늉 그릇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밥상을 차려 놓는 것이나 수건을
찾아 주는 것이나, 성기에 따른 잔시중은 모조리 그녀로 하여금 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가 맘이 컴컴치 않고, 인정이 있고, 얄미운 데가 없어."
 옥화는 자랑삼아 이런 말도 하였다.
 "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반 억지 비슷하게 그저 곧장 나만 믿겠다고, 아주 양딸처럼
나한테다 맡기구 싶은 눈치더라만..."
 옥화는 잠깐 말을 끊어서 성기의 낯빛을 살피고 나서
 "그래, 너한테도 말을 들어 봐야겠고 해서 거저 대강 들을 만하고 있었잖냐.
...언제 한 번 데리고 칠불구경이나 시켜 줘라."
 하는 것이, 흡사 성기의 동의를 구하는 모양 같기도 하였다.
 그러고 나서 옥화는 계연의 말을 옮겨, 구례 있는 저의 집이래야 구례읍에서 외따로 떨어진
무슨 산기슭 밑에 있는 오막살인가 보더라고도 하였다.
 "그럼, 살림은 어쩌고 나왔을까?"
 "살림이래야 그까짓 거 방문에 자물쇠 채워 두었으면 그만 아냐. 하지만 그보다도 나그넷길에
데리고 나선 계연이가 걱정이지."
 이러한 옥화의 말투로 보아서는 체장수 영감이 화갯골에서 나오는 길에 아주 양딸로 정해 둘
생각인 듯이도 보였다. 다만 성기가 꺼릴까 봐 이것만을 저어하는 눈치 같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성기더러 장가를 들라고 권했으나 그는 응치 않았고, 집에 술 파는 색시를 몇 차례
두어도 보았지만 색시 쪽에서 간혹 성기에게 말썽을 내인 적은 있어도 성기가 색시에게 그러한
마음을 두는 일은 한 번도 있은 적이 없어 이러한 일들로 해서, 이번에도 옥화는 그녀로 하여금
성기의 미움이나 받지 않게 할 양으로, 그녀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듯한 눈치 같기도 하였다.

 아랫집 실과가게에서 성기가 짚신 한 켤레를 사들고 오려니까 옥화는 비죽이 웃는 얼굴로
막걸리 한 사발을 그에게 주며,
 "오늘 날씨가 너무 덥쟎냐?"고 하였다. 술 걸를 때에 누구에게나 맛뵈기 떠 주기를 잘하는
옥화였다. 계연이는 방에서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계연아, 너도 빨리 나와. 목마를 텐데, 미리 좀 마시고 가거라."
 옥화는 방을 향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항라적삼에 가는 삼베 치마를 갈아입고 나오는 계연은 선연한 두 눈의 흰자위 검은자위로
인하여 물에 어린 한 송이 연꽃이 떠오는 듯하였다.
 "꼭 스무 해 전에 내가 입었던 거다."
 옥화는 유감한 듯이 계연의 옷 맵시를 살펴주며 말했다.
 "어제 꺼내서 품을 좀 줄여 놨더니만 청승스리 맞는고나. 보기 보단 품을 여간 많이 입쟎는다,
이앤... 자, 얼른 마셔라. 오빠 있음 무슨 내외할 사이냐?"
 그러자 계연은 웃는 얼굴로 술잔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마시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성기는 먼저 수양버드나무 밑에 와서 새 신발에 물을 축이었다. 계연이도 곧 뒤를 따라나섰다.
어저께 칠불안까지 책값, 수금관계로 좀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더니 옥화가, 그러면 계연이도
며칠 전부터 산딸기를 따러 간다고 벼르는 중이고, 또 칠불암 구경은 어차피 한번 시켜 주어야
할 게고 하니, 이왕이면 좀 데리고 가쟎겠느냐고 하였다.
 성기는 가슴도 좀 뛰고 그래서,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싫다고 했더니, 너더러 누가
딸기까지 따라느냐고, 앞에서 길만 끌어 주면 되쟎느냐고 우기어, 기승한 어머니에게 성기는 더
항변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기는 처음부터 큰 길을 버리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수풀 속 산길을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체가 지리산 밑이요, 또 나뭇길을 본디부터 똑똑히 나 잇지 않는 곳이라 어려서부터 자라난
고장이라곤 하지만 울울한 수풀 속에서 성기는 몇 번이나 길을 잃고 헤매곤 했었다.
 쳐다보면,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산 봉우리요, 내려다보면 발 아래는 바다같이 뿌우연
수풀뿐, 그 위에 흰 햇살만 물줄기처럼 내리퍼붓고 있었다. 머루, 다래, 으름은 아직 철이 일어
파랗고 가지마다 새빨간 복분자(나무딸기), 오디(산 뽕나무의)는 오히려 철이 겨운 듯 한 머리
까맣게 먹물이 돌았다.
 성기는 제 손으로 다듬은 퍼런 아가위나무 가지로, 앞에서 칡덩굴을 헤쳐 가며 가고 있는데,
계연은 뒤에서 꽃을 꺾는다, 딸기를 딴다, 하며 자꾸 떨어지곤 하였다.
 "빨리 오쟎고 뭘 하냐?"
 성기가 걸음을 멈추고 나서 나무라면 계연은 딸기를 따다 말고, 꽃을 꺾다 말고 그 조그맣게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는 뛰어오는 것인데 한참만 가다 보면 또, 뒤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이고, 어머니 어쩔거나!"
 갑자기 뒤에서 계연이가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보니 떡갈나무 위에서, 가지에 치맛자락이 걸려
있다. 하필 떡갈나무에는 뭣하러 올라갔을까고, 곁에 가 쳐다보니 계연이 손이 닿을 만한 위치에
그 아래쪽 딸기나무 가지가 내려와 있다. 딸기나무에는 가시가 있고 또 비탈에 서 있어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 딸기나무와 가지가 서로 얽힌 떡갈나무 쪽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몸을 굽혀
치맛자락을 벗기려면 간신히 잡고 서 있는 윗가지에서 손을 놓아야 하겠고, 손을 놓았다가는
당장 나무에서 떨어질 형편이다. 나무 아래에서 쳐다보니 활짝 걷어 올려진 베치마 속에,
정강마루까지를 채 가리지 못한 짤막한 베고의가 훠언한 햇살을 받아 그 안의 뾰오얀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성기는 짚고 있던 생나무 지팡이로 치맛자락을 벗겨 주려 하였으나, 지팡이가 짧아서
그렇겠지만, 제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 끝은 계연의 발가스레하고 매촐한 종아리만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 싫어! 남게서 떨어진당께!"
 계연은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마침 다람쥐란 놈까지 한 마리 다래 덩굴 위로 타고 와서, 지금
막 계연이가 잡고 서 있는 떡갈나무 가지 위로 건너뛰려 하고 있다.
 "아, 곧 떨어진당께! 그 막대로 저 다램이나 때려줬음 쓰겠는듸."
 계연은 아랫도리를 거진 햇살에 훠언히 드러낸 채 있으면서도 다래 덩굴 위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그 요망스런 턱주가리를 쫑긋거리고 있는 다람쥐가 더 안타까운 모양으로 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요놈의 다램이가..."
 성기는 같은 나무 밑둥치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계연의 치맛자락을 벗겨 주고, 그리고는 막대로
다시 조금 전에 다람쥐가 앉아 있던 다래 덩굴도 한 번 툭 쳤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산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득하고 아래쪽 머루 덩굴 위로 날아갔다.
 "샘물이 있어야 쓰겠는듸."
 계연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퉁이를 돌아 새로운 산줄기를 탈 때마다 연방 더 우악스런 묏부리요, 어두운 수풀을 지나
환하게 열린 하늘을 내려다볼 때마다 바다같이 질펀한 골짜기에 차 있느니 머루 다래요, 딸기
칡의 햇덩굴들이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난장판으로 뻐꾸기들은 울고,
이따금씩 낄낄거리고 골을 건너 날아가는 꿩 울음소리마저 야지의 가을 벌레 소리를 듣는 듯
신산을 더했다.
 해는 거의 하늘 한가운데를 돌아 바야흐로 머리에 불을 끼얹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서 해삼
같은 시꺼먼 달팽이들이 허연 진물을 토한 채 땅에 붙어 늘어졌다.
 햇살이 따갑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를수록 성기들은 자꾸 덩굴 속으로만 들짐승처럼
파묻히었다. 나무딸기, 덤불딸기, 머루, 다래, 오디, 손에 닿는 대로 따서 연방 입에 가져가지만
입에 넣으면 눈 녹듯 녹아질 뿐, 덜척저그한 침을 삼키면 그만이었다. 간혹 이에 걸린다는 것이
아직 익지 않은 풋머루 풋다래인데, 딸기 녹은 침물로는 그 쓰고 떫은 것마저 사양없이 씹어
넘겨졌다. 처음엔 입술이 먼저 꺼멓게 열매 물이 들었고 나중엔 온 볼에까지 묻어졌다. 먹을수록
목이 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머루 다래 섞어,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두 손바닥 위에다 그것을 받아서는 고개를 수그려 물을 먹듯 입을 대어 먹었다.
먹고 난 칡읖은 아무렇게나 덩굴 위로 던져 버린 채 칡 덩굴이 담뿍 감겨 있는 다래 덩굴 위에
비스듬히 등을 대이고 누웠다.
 계연은 두 번째 또 칡 잎의 것을 성기에게 주었다. 성기는 성가신 듯이 그냥 비스듬히 누운 채
그것을 그대로 입에 들어 부어 한입 가득 물고는 나머지를 그냥 덩굴 위로 던졌다.
 그리고 그는 곧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세 번째 칡잎에다 딸기알, 머루알을 골라 놓은 계연은, 그러나 성기가 어느덧 잠이 들어 있음을
보자 아까 성기가 하듯 하여 이번엔 제가 먹어 치웠다.
 "참, 잘도 잔당께."
 계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기도 다래 덩굴에 등을 대이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보았으나 곧
재채기가 났다. 목이 몹시 말랐다. 배도 고팠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가 무서워졌다.
 "덩굴 속에는 샘물이 없는가?"
 계연은 덩굴을 헤치고 한참 들어가다 문득 모과나무 가지에 이리저리 얽히고 주렁주렁 열린
으름 덩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익어 있음 쓰것는듸."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파아란 오이를 만지듯 딴딴하고 우들우들한 으름을 제일 큰
놈으로만 세 개를 골라 따 쥐었다. 그리하여 한나절 동안 무슨 열매던지 손에 닿는 대로 마구 따
입에 넣고는 하던 버릇으로 부지중에 입에 가져가 한 번 담싹 물어 떼었더니 이내 비릿하고
떫직스레한 풀 같은 것이 입에 하나 가득 끼었다.
 "아, 풋내 나!"
 계연은 입안의 것을 뱉고 나서 성기 곁으로 갔다. 해는 벌써 점심때로 겨운 듯 갈증과 함께
시장기도 들었다.
 "일어나 샘을 찾아가장께."
 계연은 성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성기는 눈을 떴다.
 계연은 당황하여 쥐고 있던 새파란 으름 두 개를 성기의 코끝에다 내밀었다. 성기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그 동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머루, 다래, 으름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흙을 찌논 듯한 향긋하고 고소한 고기 냄새가 느껴졌다.
 까악 까악하고 난데없는 까마귀 한 마리가 그들 머리 위로 울며 날아갔다.
 "칠불은 아직도 멀지라?"
 계연은 다래 덩굴에 걸어 두었던 점심을 벗겨 들었다.

 화갯골로 들어간 체장수 영감은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떠날 때 한 말도 있고 하니
지리산 속으로 아주 들어간 모양이라고, 옥화와 계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산중에서 아주 여름을 내시는 갑네."
 옥화는 가끔 이런 말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책을 들고 앉곤 하였다. 계연의
약간 구성진 전라도 지방 토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말고 처량한 노랫조를 띠어 갔다.
 그 동안 옥화와 계연의 사이에 생긴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 안에
있는 조그만한 사마귀 한 개를 발견한 것쯤이었다.
 어느날 아침 그녀의 머리를 빗어 땋아 주고 있던 옥화는 갑자기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참빗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머니, 왜 기리여?"
 계연이 놀라 물었으나 옥화는 그녀의 두 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따름 말이 없었다.
 "어머니, 왜 그러시여?"
 계연이 또 한 번 물었을 때, 옥화는 겨우 정신이 돌아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아니다."하고, 다시 빗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연은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옥화에게 다시 더 캐물을 도리도
없었다.
 이튿날 옥화는 악양에 볼 일이 좀 있어 다녀오겠노라면서 아침 일찍이 머리를 빗고 떠났다.
성기는 큰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낙비가 왔다. 계연이가 밖에서 빨래를 걷어 안고
들어오면서,
 "어쩔꺼나, 어머니 비 만나시겄는듸!"하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은 바깥의 신선한 비바람을
묻혀다 성기의 자는 낯을 스쳐 주었다. 성기는 눈을 뜨는 결로 손을 뻗쳐 그녀의 치맛자락을
거머잡았다.
 그녀는 빨래를 안은 채 고개를 홱 돌이켜 성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볼에
바야흐로 조그만 보조개가 패이려 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 옷 다 젖겠는듸!"
 또 한 번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마루로 나갔다. 성기는 어느덧 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성기가 다시 잠이 깨었을 때는, 손님들이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계연은 그들의
치다꺼리를 해 주고 있는 모양으로 부엌에서,
 "명태랑 풋고추밖엔 안주가 없는듸!"하는 소리가 났다.
 나중 손님들이 돌아간 뒤 성기는 그녀더러,
 "어머니 없을 땐 손님 받지 말라고."
 약간 볼멘소리로 이런 말을 하였다.
 "허지만 오늘 해 넘김, 이 술은 시어질 것인듸, 그냥 두면 어머니 오셔서 화내시지 않을
것이요?"
 계연은 성기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 뒤 그녀는 다시 웃는 낯으로 성기 곁에
다가서며,
 "오빠, 날 면경 하나만 사 주시요. 뚱그란 놈이 꼭 한 개만 있었음 쓰겄는듸."하였다. 이튿날이
마침 장날이라, 성기는 점심을 가지고 온 그녀에게 사 두었던 조그마한 면경 하나와 찰떡을 꺼내
주었다.
 "아이고머니!"
 면경과 찰떡을 보자, 계연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꽃 같은 두 눈에 웃음을 담뿍
담은 채 몇 번이나 면경을 들여다보곤 하더니, 그것을 품속에 넣고는 성기가 점심을 먹고 있는
곁에 돌아앉아 어느덧 짝짝 소리까지 내며, 그것을 먹고 있었다.
 성기는 남이 보지 않게 전 앞에 사람 그림자가 얼씬할 때마다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것을 가리워 주었다. 딴은 떡뿐 아니라 참외고, 복숭아고, 엿이고, 유과고, 일체 군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녀의 성미인 듯하였다. 집 앞으로 혹 참외장수나 엿장수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
계연은 골무를 깁거나 바늘거리를 붙이다 말고 뛰어 일어나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리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며 섰곤 하였다.
 한 번은 성기가 절에서 내려오려니까,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눈에 띄지 않고, 그녀만이 마루
끝에 걸터 앉은 채 이웃 주막의 놈팽이 하나와 더불어 함께 참외를 먹고 있었다. 성기를 보자 곧
무안스러운 듯이 얼굴을 붉히며 곧 일어나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오빠!"
 "..."
 그러나 성기는 그러한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방으로만 들어가 버렸다.
계연은 먹던 참외도 마루 끝에 놓은 채 두 눈이 휘둥그래져서 성기의 뒤를 따라왔다.
 "오빠, 왜?"
 "..."
 "응, 왜 그리요?"
 "..."
 그러자 성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녀가 두 팔을 성기의 어깨 위에 얹어, 그의 목을
껴안으려 했을 때, 성기는 맹렬히 몸을 뒤틀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는, 돌연히 미친 것처럼
뛰어들어 따귀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녀는,
 "오빠, 오빠!"하고 찡그린 얼굴로 성기를 쳐다보며 두 손을 내어 밀어 그의 매질을 막으려
하였으나, 두 찰 세 찰 철썩 철썩하고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자 방구석에 가 얼굴을 쿡
처박은 채 얼마든지 그의 매질에 몸을 맡기듯이 하고 있었다.
 이튿날 장에 점심을 갖고 온 계연은 두 눈에 어저께의 일에 깊은 적의도 원망도 품어 있지
않은 듯하였다.
 그날 밤 그녀가 혼자 강가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성기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하늘엔
별이 파랗게 나 있었으나 나무 그늘은 강가를 칠야 같이 뒤덮고 있었다.
 "오빠."
 계연은 성기가 바로 그녀의 겉에까지 왔을 때 일어나 성기의 턱앞으로 바싹 다가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오빠, 요즘은 어쩌자고 만날 절에만 노상 있는 것이여?"
 그 몹시도 굴곡이 강렬한 전라도 지방 토음이 이렇게 속삭이었다.
 그 즈음 성기는 장을 보러 오는 날 이외에는 절에서 일체 내려오지를 않았다. 옥화가 악양
명도에게 갔다 소낙비에 젖어 돌아온 뒤부터는, 어쩐지 그와 그녀의 사이를 전과 달리 경계하는
듯한 눈치라, 본래 심장이 약하고 남의 미움받기를 유달리 싫어하는 그는,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노여움도 있고 하여 기어코 절에서 배겨나려 했던 것이었다.
 이날 밤만 해도 계연의 물음에, 성기가 무어라도 대담도 채 하기 전에 '계연아, 계연아!'하는
옥화의 목소리가 또 어느덧 들려 오고 있었다. 성기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 말고
다물어 버렸다.
 '아, 어머니도 어쩌면 저다지 야속할까?'
 성기는 갑자기 목이 뿌듯해졌다.
 반딧불이 지나갔다. 계연은 돌 위에 걸터앉아, 손으로 여뀌풀을 움켜잡으며, 혼잣말같이 또
무어라 속삭이는 것이었으나, 냇물소리에 가리어 잘 들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찍이 성기가 방 안으로, 부엌으로, 누구를 찾으려는 듯 기웃기웃하다가 좀
실망한 듯한 낯으로 그냥 절로 올라가고 말았을 때, 그녀는 역시 이 여뀌풀 있는 냇물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오니까, 체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 옷-새 옷이래야
전날의 그 항라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을 갈아입고,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를 곁에 두고
슬픔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띠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일어난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는 시방 떠난단다."
 이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날, 저녁때에 돌아왔었더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저께 영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
가라고 만류를 해서, 그래 오늘 아침엔 일찍이 떠난다고 이렇게 행장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
 그러나 실상 이것은 모두 나중 다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처음은 그저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 맞은 것같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느 한 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쫑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눈 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 일어나는 듯한,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의 그의 전신을 어디로 휩쓸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르게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과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안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 버렸다.
 "아들이 참 잘 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도 돌려 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
 옥화는 그 동안 또 성기에게 역시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젊은이 하나를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한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펼 것 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고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 그에게는 다만 벌떼처럼
무엇이 왕왕거릴 뿐, 아무것도 분명히 들리지는 않았다.
 "막걸리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께."
 그 동안 마지막 술잔을 들이키고 난 영감은 부채와 지팡이를 집어들며 이렇게 말했다.
 "여수 쪽으로 가시게 되면 영영 못보게 되겠구만요."
 옥화도 영감을 따라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일을 누가 알간듸,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영감은 커다란 미투리에 발을 끼며 말했다.
 "아가, 잘 가거라."
 옥화는 계연의 조그마한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주머니 하나를 정표로 넣어주며 하직을 하였다.
 계연은 애걸하듯, 호소하듯 한 붉은 두 눈으로 한참 동안 옥화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또, 오너라."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이렇게 말하였고 그러자 계연은 옥화의 가슴에다 얼굴을
묻으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옥화가 그녀의 그 물결같이 흔들리는 동그스름한 어깨를 쓸어 주며,
 "그만 울어, 아버지가 저기 기다리고 계신다."하는 음성도 이젠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럼 편히 계시오."
 영감은 옥화에게 하직을 하였다.
 "할아버지 거기 가 보시고 살기 여의챦거든 여기 와서 우리 한데 삽시다."
 옥화는 또 한번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을 찾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깬 듯,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뚤어뚤 걸어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나 성기는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한 얼굴은, 옥화와 그의 아버지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일심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오."하고, 거의 울음이 다 된, 마지막 목소리를 남기고 돌아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적삼을, 고운 햇볕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 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이듬해 우수, 경칩도 다 지나, 청명이 되어 비가
질금거릴 무렵이었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지고 하는 날이었다.
 아들의 미음상을 차려 들고 들어온 옥화는 성기가 미음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자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냐?"
 "..."
 성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
 "여기서 장가들어 나랑 같이 살겠냐?"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 해 아직 봄이 오기 전, 보는 사람마다 성기의 회춘을 거의 다 단념하곤 하였을 때 옥화는
이왕 죽고 말 것이라면, 어미의 맘 속이나 알고 가라고, 그래, 그 체장수 영감은, 서른 여섯 해 전
남사당을 꾸며와 이 화개 장터에 하룻밤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계연은 그 왼쪽 귓바퀴위의 사마귀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통정하노라면서, 자기의 같은 왼쪽 귓바퀴위의 검정 사마귀까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나도 처음부터 영감이 '서른 여섯 해 전'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섬뜩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까지 불러 봤더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들여다나보는 듯이 재줄대는 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듯한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 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는듸 어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도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한 형형한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쩔라냐? 너 졸 대로 해라."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 도로 누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포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 또다시 산우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볕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갠 화개 장터 삼거리 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작삼에, 명주 수건까지 머리에 잘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하얀 나무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갈래로 나 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도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을 퍼붓는 햇볕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야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다.

    정비석(1911__)
 "졸곡제"가 동아일보에 선외가작으로, 다음해 1936년에 "성황당"이 조선일보에 일등으로
신춘문예에 당선 되면서부터 문단에 데뷔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순수성에 결합된
인간의 본능을 그린 것이 두드러져, 후일에는 애정문제를 다룬 신문 연재소설을 주로 썼다.
여기에 수록한 "성황당"은 그의 초기작으로 자연의 순수 상태에 동화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초장연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은 당시 지식인의 자의식과 심리주의에 피로한 문단에
청신한 인상을 주었던 것이다.

    성황당
    "조선일보" 1937. 1. 14__26.

 "제이길, 뭘 하구 송구 안와!"
 순이는 저녁밥 짓는 불을 다 때고 나서, 부지깽이로 닫친 부엌문을 탕 열어 젖히며, 눈아래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아래로 뻗은 길에는 사람은커녕 개새끼 하나 얼씬하는 것 없었다.
 한참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던 순이는 다시 아까와 같이 중얼거리면서 부엌바닥을 대강대강
쓸어, 검부러기를 아궁에 지펴 넣는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빗자루를 든 채 뜰 아래로
나서더니, 천마령 위에 걸린 해를 쳐다본다. 산골의 해는 저물기 쉬웠다. 아침해가 앞산 위에
떴나 보다 하면, 벌써 뒷산에서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였다.
 그러기로 신새벽에 집을 나갈 때에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했으니, 여느 장날보다는 좀 일찍
돌아와야 할 것이고, 그러니까 이맘때에는 으레 돌아왔어야 할텐데-하여간 순이는 기다리기가
몹시도 안타까웠다.
 하긴 여느 때 마련하면 아직도 돌아올 무렵이 멀긴 했지마는, 순이는 공연히 마음이 초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붉은 고사댕기 한 감과 흰 고무신 한 켤레를 가져 볼 생각을 하면 금방도
어깨춤이 덩실덩실 나왔고, 이제 보름만 있으면 붉은 댕기에 흰 고무신을 신고, 오 리밖에 있는
큰 마을에 그네 뛰러 갈 것을 생각하면 금시로 엉덩이가 절로 들썩거려졌다.
 어느덧 밥이 바지직바지직 잦는다. 순이는 솥뚜껑을 열어 보고 나서는 또 밖으로 나와 언덕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순이는 아까
집을 나갈 때의 남편의 말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올수리(단오)날이 송구 보름이 남았는데, 발써부터 댕긴 사다 뭘해? 그럴 돈이 있으문 술이나
사 먹지! 참, 오늘은 강냉이 한 말 사구, 남는 돈은 술이나 한 잔 사먹어야겠군!"하던 현보의 말에
순이는,
 "흥! 그래만 보갔디! 난 아예 달아나고 말걸!"하고 대꾸를 하며 남편을 따라 웃고 말았지마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때 현보의 말이 노상 농담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현보는 남은 돈으로 술을 사 먹는 것이나 아닐까?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 현보의 일이니,
사실 그럴는지도 모른다고 순이는 점점 불안스러워서, 이제는 집 뒤 언덕으로 기어올라 더
멀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순이는 집 앞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성황당에 돌을 던져서, 제발 남편이 신발과 댕기를 사오기를 축수하고 나서, 짜장 댕기와
고무신을 사오지 않으면 사생결단으로 싸워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래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가만있자, 현보가 술 먹어 본 지가 한 달... 아니 허좌상네 제사
때 먹은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장근 두 달이나 되었다. 정말 오늘은 댕기 살 돈으로 술을 사
먹을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아직도 안오는 게지 숯 두 섬 팔아서 강냉이 한 말하고 댕기 한 감에
신 한 켤레 사기는 잠깐일 것이 아니냐? 술만 안먹는다면 벌써 돌아온 지 오래였을 것이다.
 저녁 해가 천마령 너머로 잠기고 말았다. 산골짜기에는 산들바람이 불었다. 나뭇잎이 설렁설렁
갈리고, 그런 저녁이면 으레 뒷산 숲에서는 부엉이가 운다. 순이는 차차 불안스러웠다.
 밥을 담아 놓기까지는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건마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밥을 담아 놓고는 가만히 서 기다릴 수가 없어, 힝하니 언덕길을 내려갔다. 언덕길을 다
내려가면 다시 이번에는 맞은편 언덕길을 추어 올라야 한다. 이 언덕이라는 것이 이른바
삼천마--귀성 천마, 삭주천마, 의주천마라는 큰 재였다. 이 재를 경계로 하고 귀성, 삭주, 의주의
세 고을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 재의 꼭대기까지 오르자면 시오리는 넉넉히 되었다.
 순이는 가뿐 숨을 쉬일 새도 없이 두 활개를 치면서 올랐고, 꾸부러진 굽이를 돌 때마다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 보이는 길을 쳐다보곤 한다. 장꾼도 이제는 거근해서 간혹 한 두 사람씩
보일 뿐이었고 멀리서 두런거리며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행여 현보가 아닌가 하고
가슴을 졸였으나, 막상 마주치고 보면 생면부지의 남들이었다. 그런 때면 순이는 가만히 한숨을
쉬면서 맥 풀리는 다리를 가누며 언덕을 올랐다. 언덕을 오르기만 하면 내림길 시오리는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순이는 점점 골이 났다. 제길! 만나기만 하면 댓바람에 멱살을 부여 잡고
악다구니를 치리라 하였다.
 어느덧 황혼이 짙었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피어나기 시작한 황혼은 나무를 에워싸고 개울을
덮고 산허리로 해서 야금야금 산마루로 뻗기 시작하였다. 바람이 어느 때보다 차갑게 불었다. 갓
나온 떡갈나무 잎이 바람을 맞아 사르륵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 옆 숲속에서는 금방
범이나 산돼지가 튀어 나오지 않을까 싶게 굴속같이 캄캄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그런 것은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산에서 나서 산에서 자란 순이였다. 순이는
현보가 붉은 고사댕기와 흰 고무신을 사가지고 올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는
다시 발을 빨리 놀렸다.
 순이가 시오리 고개를 다 올랐을 때, 저편에서 흥어리 타령을 하며 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음성은 틀림없는 현보였다. 그것이 현보인 것을 알자, 대뜸 순이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산골에 귀물은 머루나 다래,
 인간의 귀물은 우리 임 허리...
 이것은 현보가 아는 단 하나의 노래였고, 그리고 현보는 으레 술이 얼근히 취해야만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었던가?
 순이는 그 노래를 듣자, 댕기도 고무신도 '허양낭창'이로구나 생각하니,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어, 길가에 딱 버티고 서며, 주먹을 불끈 쥐고 어둠 속에서
가까이 오는 현보를 노려보았다. 현보는 등에 짐을 걸머진 채 흥얼거리며 그대로 지나가려다가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그제야 순이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며,
 "순인가?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네! 옳지, 내 마중 왔구나, 응?"하고 얼근히 취한 혀를 굴리며
순이의 어깨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래 신은 사오는 거요?"
 순이는 현보의 팔을 뿌리치며 독기 있는 말로 톡 쏘았다.
 "뭐? 그럼 날 마중 나온 게 아니구, 신 사오는가 해서 여기꺼정 왔구나, 응? 허허, 신 사오구
말구! 쌔헌 고무신, 순이 신을 고무신, 말쑥헌 하이칼라신, 사오구 말구!" 하며 현보는 다시
순이의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순이는 천만뜻밖에도 신을 사온다는 바람에, 단박 감정이 풀리며
반갑기만 해서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정말 사오우?"
 "그럼 안사올까, 원! 순이 고무신을 내래 안사다 주문 누구래 사다 준다구!"
 "어디 좀 봅수다."
 순이가 채근하기 전에 현보는 진작 부스럭부스럭하더니, 구무신 한 켤레를 등짐에서 끄집어
내어 순이에게 주면서,
 "여기서 한 번 신어 보련?"하는 현보의 말에,
 "글쎄, 좀 쉬어 갑수다."
 둘은 길 저문 줄도 모르고 길섶 풀밭 위에 나란히 주저앉았다. 순이는 얼른 종이를 풀고 어둠
속에서도 눈처럼 흰 고무신을 보자, 입이 헤작해지며 다 해어진 짚신을 벗고 새고무신을 신어
본다.
 "맞디?"
 "응! 아니, 좀 크우다래! 겨냥보다는 큰 걸 사왔수다래."
 "좀 큰 편이 날 것 같아서..."
 "그래두 과히 큰가 봐."
 "좀 큰 편이 낫대두 그래! 올 한 해만 신을 것두 아니구...발은 크지 않나 원!"
 "크문 돈도 더 허지 않갔소?"
 "돈은 같애! 아따 같은 값이면 처녀라구, 돈이 같기에 큰 걸 사왔디."
 "돈은 같아요? 그름 큰 거 낫디 뭐...참 댕긴?"
 순이는 그제야 생각난 듯이 댕기 독촉을 하였다.
 "댕기 생각두 났지만, 댕기 시집 올 때 디리구 온 거 있잖은가?"
 "아구만나! 시집 올 때 웬 댕기래 있어나, 뭐? 시집오던 날 디리구 온 건 놈(남)해래 돼서 사흘
만에 도루 돌려 주디 않았소!"
 "아, 그랬던가? 난 또 시집올 때 디리구 온 댕기 생각이 나기에 옳다 잘 됐다, 오늘은 댕기
값이 남았으니, 술 먹을 돈이 생겼구나 막걸리 몇 잔 걸티구 왔디! 난 참 그런 줄은 깜빡
잊었드랬구먼, 허어 그러니 헐 수 있나, 다음 당(장)에는 꼭 사다 주디."
 "여보, 그렇게야 놈으 생각을 못해 주갔소?"
 "아니! 생각을 못헌 게 아니라, 있는 댕기야 또 사올 거 없갔기 그랬디. 내가 님자 댕기 사오는
거 아까와 그랬간나? 그렇지 않어? 응 순이!"
 하녀 현보는 순이의 허리를 껴안았다. 순간 술냄새가 물씬 얼굴에 끼쳐졌다.
 "아이구 망칙해라!"
 "망칙은 무슨 망칙,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하고 현보는 성난 범처럼 덤벼들었다. 순이는
고무신 사다 준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 아무 반항도 하지 않았다.
 어느덧 열여드렛달이 천마재 위에 비죽이 솟았다. 산속은 괴괴하다. 나무 사이로 세차게 흐르는
달빛이 더욱 적막을 돋우었다. 숲 위에서 반짝이는 별들만이 순이와 현보를 지키고 있었다.
어디선가 간혹 접동새 울음이 들려 왔고, 그것이 그치면 아지 못할 산짐승이 짝을 찾는 듯,
구슬프게 우는 소리뿐이었다.
 순이는 밤새도록 자지 않고 신만 신었다 벗었다 하였다. 신코가 뾰족한 것도 신기스럽거니와,
휘어잡으면 한 움큼 되었다가도 손을 놓으면 팔딱 제 모양대로 돌아지는 것이 퍽은 재미스럽다.
순이는 버선 위에도 신어 보고 맨발에도 신어 보았다. 그는 참말 별안간에 하늘에 올라간
것만큼이나 기뻤다. 이런 신은 아무리 돈많은 사람이라도 함부로 신을 것이 못되어 보였다.
아랫마을 흰 고무신 신은 여편네라고는 구장댁 한 사람뿐인 것만 보아도 알 것이라고, 순이는
등잔을 끄고 그만 자리라고 자리에 누웠다가도 다시 불을 켜고는 고무신을 어루만져본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이 성황님의 은덕이라고 믿는 것이었다. 순이는 시집올 때에 성황당 앞에서
배례하고 배필이 되기로 맹세한 것을 새삼스러이 행복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순이는 이 세상
모든 재앙과 영광은 성황님께서 주장하는 줄로만 믿는다.
 순이는 처음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우리집 일은 무엇이나, 앞에 계신 성황님께 빌면 순순히 되는 줄만 알아라."하고 타이르던
것과, 시증조부모 때에 한번 성황님께 불공했다가, 집이 도깨비불에 타고 말았다는 말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순이는 지금 고무신을 신게 된 것도 틀림없는 성황님의 은덕이라고 믿는다.
 이튿날 아침 순이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신을 또 한 번 신어 보고는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돌아가며, 돌을 주워 들고 성황당 앞으로 가 공손히 던졌다.
 순이는 성황당에 돌을 던질 때가 가장 행복스러웠다. 돌을 여남은 개 던지고 나서는, 고개를
수그려 합장 배례하고 잠깐 섰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현보도 잠이 깨어 옷을 걸치며
마당으로 나왔다. 숯가마에 일하러 가는 것이었다.
 "곤허갔는데, 좀더 자구 가구래."
 순이는 고무신 사다준 것이 생각할수록 고마워서 현보를 보고 발쭉 웃었다.
 "괜찮어! 어서 가 보야디."
 현보도 순이를 보고 히쭉 마주 웃고 나서, 눈을 비비며 집 뒤 등마루로 올라간다. 숯가마는
고개 너머 산골짜기에 있었다. 현보가 한창 고개를 올라가노라니까 순이는 생각난 듯이 큰소리로,
 "여보! 여보!"하고 급히 쫓아오며 현보를 불렀다.
 "와 그래?"
 "좀 왔다 가우! 왔다 가라구요."하고 순이는 소리를 질렀다. 이윽고 현보는
 "와 그루? 와 그래?"하며 순이에게로 되돌아왔다.
 "인자 갈 때 성황님께 비는 것 잊어버렸디요?"
 "난 또 큰 변 났다구!"
 "그럼, 큰 변 아니구요! 성황님께 불공 안했다간 큰 변 나는 줄 모르우?"하면서 순이는 벌써
돌을 열 개나 남짓 모아다가 현보에게 주면서 던지라고 하였다.
 현보는 돌을 받아서 공손히 던졌다. 그리고 나서 합장하였다. 현보는 다시 순이를 쳐다보며
웃고 나서 집을 떠날 때에 퍽 행복스러웠다. 나이 스물 여덟이 되어서야 겨우 색시랍시고 코를
질질 흘리는 열 네 살짜리 순이를 데려온 것이 어제 일 같은데, 순이는 벌써 열 여덟이 되어서,
이제는 제법 아내 꼴이 박혔고, 게다가 기특하게도 남편에게 재앙이 없도록 성황님께 축수하기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을 보고는, 현보는 그지 없이 마음이 흐뭇하였다.
 현보에게는 이 천마령과 순이만이 온 천하의 모든 것이었다. 순이만 있으면 현보는 조금도
외로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 이 천마령에 있는 동안에는, 잡나무도 끝이 없을 것이요, 그리고
보면 숯구이도 끝이 없을 것이니, 먹기 걱정은 영 없었다. 세상이야 어떻게 변동되건, 어떤
풍파가 일어나건, 그런 것은 현보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세상 일로서 현보와 관계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숯값 내리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제길! 제아무리 멋하기로니 제놈들이 숯이야 안쓰구 배겨날 수 있나 원!"하고 생각하면,
그것조차 걱정할 것이 없었다. 현보는 그저 행복스러웠다.
 전나무, 잣나무, 박달나무, 무푸레나무, 떡갈나무, 소용나무...아름드리나무 나무들이 기운차게
활기를 쭉쭉 뻗고 별 곁듯 서 있는 숲속을 거닐면서 현보는 다시 빙그레 웃었다.
 무성한 나무 나무! 그것은 얼마나 친근한 현보의 벗이었으리요!
 순이는 떼어 버리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다. 그러나 현보에게는 이 나무들도 순이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게 사랑스러웠다.
 봄이 오면 나뭇잎이 싱싱하게 생겨나고, 그래야만 현보의 마음에도 봄이 오는 것이었다.
친근하기로 말하자면 산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온갖 나무를 키워주고 온갖 풀을 키워 주는 것이
산이 아니더냐? 현보를 낳아 준 것도 산이었고, 현보를 살리는 것도 산이었고, 현보의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돌아간 곳도 역시 산이 아니더냐? 현보는 산 없는 곳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덧 현보는 숯가마에 다다랐다.
 숯가마 속에는 그저께 차곡차곡이 모아 넣은 나무들이 그대로 있었다. 현보는 옆에 쌓여 있는
불나무를 도끼로 패기 시작했다. 도끼를 번쩍 들어 뒤로 견줄 때마다 턱 버그러진 구리쇠빛
앞가슴의 근육이 불끈 내솟았다가는, 도끼를 탁 내리갈기면 어깻죽지가 불쑥 부풀어 오르고, 그와
동시에 장작이 팡 하고 두 갈래로 갈라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한 번 한 번 내리갈길 때마다
도끼소리는 찌르렁 산에 울리고, 조금 있으면 또 찌르렁 하고 맞은편 산에서 메아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보는 혼자이면서도 장단 맞추어 둘이 일하는 때와 꼭같이 조금도 힘이
들지 않았다.
 한참 패고 나서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해는 조반 때가 훨씬 겨웠다. 아침 해는 벌써 천마령
꼭대기를 벗어 났다. 현보는 이번에는 언덕길을 올려다보았다. 아직도 순이가 조반을 가져오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패던 장작을 마저 패고 허리를 펴며 일어서니, 이제껏 안보이던 순이가
어느 틈에 눈앞에 나타났다.
 "아아니, 금방 안보이더니 어느 틈에 왔어?"
 "쳐다보기에 나무그늘에 숨어드랬어, 히히!"
 "요, 앙큼한 것이..."하고 현보는 때려 갈길 듯이 을러메며 싱글 웃는다.
 "힝!"
 순이는 입술을 배죽 내밀어 보이고 나서 현보를 따라 풀밭에 주저앉더니 바구니를 연다.
바구니 속에서는 강낭밥 두 그릇과 산나물이 나왔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삶은 감자 다섯 개가
나왔다.
 "응! 웬 감잔구?"
 "궐 자시라구 삶아 왔디, 히히힝!"하고 순이는 연방 싱글벙글하였다.
 "감자가 송구 남아 있었던가?"
 "요것뿐야! 권 생일날 쓰려던 걸 오늘 삶아 왔어!"하고 순이는 수줍은 듯이 고개를 비꼰다.
현보는 눈물이 핑 돌도록 고마웠다.
 조반을 마치자, 현보는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산 속으로 들어가고, 순이는 숯가마에 불을 때기
시작하였다. 순이는 불나무를 한 아궁이 그득히 지펴 넣고는 바구니를 끼고 나무하러 나섰다.
 겨울이 어제 같더니 어느덧 산에는 맛나물이 두 치나 자랐다. 이윽고 고사리도 돋아나리라고
생각하면서, 순이는 눈에 띄는 대로 맛나물, 알바꾸기, 소리채, 민들레...이런 것을 캐어서는
바구니에 넣고 한다. 그러다가는 다시 숯가마에 와서 불이 스러지지 않도록 나무를 지펴 넣었다.
 해는 중낮이 되었다. 별 겯듯 빽빽이 서 있는 나무숲 속도 훤히 밝았다. 겹겹이 쌓인
숲속에서는 졸졸졸 얼음 녹은 물이 흐르고 있다.
 온 산은 적막 속에 잠겼다. 산새도 울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달 새소리가 들려
올 뿐이었고, 그것마저 구름 속에 잠겨지자, 생각난 듯이 미라부리가 한 곡조 부르면서 멀리로
날아갈 뿐이었다. 순이는 나물을 캐다 말고, 미라부리 사라진 먼 하늘을 고요히 우러러보고
있었다. 그런 때에는 순이도 자연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산 속의 봄은 유난히 짧다. 뻐꾸기가 울어서 봄이 왔나 보다 하고, 한 겨울의 칩거에서
해방되어 산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벌써 두견새와 꾀꼬리가 노래를 부르고, 뒤이어 매미가
'맴맴맴' '맴맴맴'하고 한가로이 산 속의 여름날을 돕는다. 그러기에 산사람들에게는 봄보다도
여름이 더욱 친근하였다. 하루하루 산은 무성하는 나뭇잎으로 무거워 가고, 각색 새들이
노래노래에 산사람의 마음은 흐들져간다.
 할미꽃, 앉은뱅이, 진달래가 한물 지나고, 도라지꽃, 제비꽃, 학이꽃, 범부채, 물구지, 소리채...가
먼저 다투어 필 무렵이면, 스러졌던 잔디밭에서도 새싹이 머리를 들고, 그러노라면 풀밭에서는
밈총이, 식세리, 귀뚜라미가 노래를 부른다.
 토끼가 춤을 추고, 여우, 노루가 양지쪽에서 낮잠을 그런 때이다.
 한나절이 되자 날은 점점 무더워 왔다. 사방이 병풍으로 휘두른 듯 산으로 감싸여 있었고,
게다가 나무가 들어차서, 바람 한 점 얻을 수 없었다. 순이는 아궁이 속을 한참 휘저어 불을
되살리고 나니 굴이 활활 달아오르고 전신에 땀이 물 흐르듯 하였다.
 벌거벗은 통에서도 젖가슴 사이로 땀방울이 줄줄 흘렀다.
 순이는 나무를 듬뿍 지피고 나서는 조고리를 벗어 든 채 개울가로 내려왔다. 그래서 그는
치마와 베바지마저 훨훨 벗어 바위 위에 내던지고,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산골 물은
옥구슬처럼 맑고 얼음처럼 차가왔다. 순이는 젖통까지 물속에 잠가서, 두 손으로 물을 앙구어
세수를 하고 나서는, 어깨와 목덜미에 물을 끼얹고 그리고는 앞가슴을 씻었다. 한참 미역을
감고나니 몸은 날 듯이 가벼워졌다.
 순이는 물에서 나와 몸을 말리고 나서 옷을 입으려고 바위에 앉으려니, 바위가 몹시도 따가와
찬물을 두어번 끼얹고 앉았다.
 이제껏 맑은 하늘에 어느새 검은 구름이 한 두점 나타났다. 소나기가 오려는가 하고 고개를
드니, 천마령 위에서는 먹장 갈아 부은 듯한 구름이 자꾸 솟아올랐다. 순이는 어서 소나기 내리기
전에 숯가마에 나무를 듬뿍 지펴 넣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산히 옷 둔 곳으로 달려와 보니,
분명히 돌 위에 놓아 둔 옷이 없어졌다. 혹시 딴데 놓지 않았나 하고 벌거숭이 채로 이리저리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숯가마에 벗어 놓구 왔나?"하면서도 분명히 숯가마에는 벗어 두지 않아서 아래위로 샅샅이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순이는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라고 혼자 안타까워 돌아가노라니까
저편 숲속에서,
 "하하하하하!"
 별안간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순이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아래를 가리며 맞은편
언덕을 쳐다보니, 숲속에서는 당꼬바지를 입은 산림간수 김주사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순이의
옷을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제길! 망할 쌍놈어 새끼!'
 순이는 속으로 이렇게 욕하며,
 "입성 갖다 달라요 거!"하고 커다란 소리로 고함쳤다.
 "이거 입성 아니가! 갯다 입갔디! 누구래 입딜 말래나?"하고 김주사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었다.
 "놈으 입성은 와 개갔소, 와 개가시오?"
 "내래 개왔나, 뭐?"
 "고름 누구래 개가구? 날래 갖다 달라구요, 여보!"
 "개다 입갔디, 누구래 갯다꺼정 줄꼬글?"
 "글디 말구, 갯다 주구래, 여보!"
 "자, 이놈어 송화(성화)야 받어 주나?"하고 김주사는 순이의 옷을 들고 개울가로 내려온다.
 "싫어요! 오디 말라요! 아이구 망칙해 죽갔다!"
 김주사가 가까이 오자 순이는 돌아서며 발을 동동 굴렀다.
 "자, 이런 성화가 있나! 입성 갯다 달라기 개져가문 또 오디 말라구 그럼, 난 몰루?"하고
김주사는 풀밭에 옷을 던진다.
 "거기 놔 두구, 더어기 멀리루 가라구요!"
 "가구 안가구야 내 맘이디 머!"
 "글디 말구, 어서 더어기 가라구요. 점단은 량반이 거 뭘 그루."
 "허, 이거 참!"하며 김주사는 숯가마 쪽으로 몇 걸음 걸어간다. 김주사는 옷 있는 곳에서 멀리
간 다음에 순이는 얼른 옷을 입으려고 뛰어갔다. 그러자 그와 동시에 김주사는 순이에게로
달려오면서,
 "둬어 둬어 이놈어 맷돼지 봐라! 둬어둬!"하고 무슨 산짐승이라고 몰아 쫓듯이 두 팔로 훠어훨
  활개를 치며 달려왔다.
 순이가 재빠르게 바지를 추서 입자, 달려온 김주사는 순이의 저고리를 빼앗아 들었다. "글디
말라요, 여보! 점단은 량반이 거 뭘 그루!"
 "난 점단티 못해!"
 "조고리 날래 달라요, 여보!"
 "멀 줘! 길에서 얻은 조고릴 내래 와 줄꼬?"
 "어서 달라구요!"하고 순이는 짜증을 내면서 웃통을 벗은 채 김주사에게 덤벼 들었다.
 "글쎄 못준대두."하고 김주사는 저고리를 등뒤로 돌리면서 연적처럼 토실토실하고 고무공처럼
탄력 있는 순이는 젖통을 검칙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어서 달래는 데 그래요!"
 "그럼 줄 테니 내 말 듣간나?"
 "말은 무슨 말이라구 그루...어서 달라요!"
 "글쎄, 내 말 듣가서?"
 "응! 들을 거니 조고린 주구래!"
 "정말 듣디?"
 "응! 들어."
 "거짓부리 아니디?"
 "정말 들을 거니 조고린 달라요!"
 김주사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웃으면서 순이에게 저고리를 건네 주었다. 순이는 저고리를 다
입고 나서,
 "흥! 개떡 겉다. 누구래 말을 들을 줄 알구!"하고 홱 돌아서더니 숯가마께로 힝하니 달아난다.
 "순이! 정말 이러기야?"하고 김주사는 잠깐 멍하니 선 채 순이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별안간
순이 뒤를 따라온다. 순이는 숯가마에 다 닿자 씁쓸하니 시치미를 떼고 아궁이에 장작을 몰아
넣는다.
 아까부터 퍼지기 시작한 검은 구름이 이제는 하늘을 휘덮고, 써늘한 바람이 홱 지나간다. 굵은
빗방울이 드문드문 떨어진다. 산에서는 별안간 나뭇잎 갈리는 소리가 소란하였다.
 덮눌러온 김주사는 순이에게로 와락 달겨 들더니 가쁜 숨으로,
 "순이! 정말 말 안들을 테야?"
 "누구래 말을 듣갔다기 추근추근 이래?"
 "분홍 갑사 저고리 사 줄 테니 말 들어 응!"
 "싫어 글쎄! 분홍 갑사 저고리 누구래 입갔대기! 흥!"하면서도 아닌게아니라, 순이는 분홍갑사
저고리가 입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이는 김주사의 행실머리가 아니꼬왔다.
 현보네 집에 늘 놀러 오는 사람 중에 순이를 눈에 걸고 있는 사람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김주사이고, 또 한 사람은 산 너머 광산에서 일하는 칠성이었다.
 칠성이는 돈벌이는 김주사만 못해도 생긴 품은 김주사 열 갑절 잘생겼다. 그러기에 순이는
마음을 허하자면 김주사보다는 오히려 칠성이 편이었다. 칠성이가 오늘처럼 이런 곳에서
시달린다면...하고 생각하다가, 순이는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칠성인 다 뭐래. 현보가 있는데.'
 김주사는 잠깐 궁리하다가,
 "정말 싫으니?"
 "정말 싫어요!"
 소나기가 내리붓기 시작하였다. 거기 따라 순이의 마음도 점점 굳세어 갔다. 순이와 김주사는
숲속으로 들어가서 비를 그었다.
 "너 나하구 틀렸다가는 큰일 날 줄 모르니?"
 "흥! 난 그까짓 큰일 무섭디 않아!"
 "정말? 너의 현보가 오늘두 소나무 찍는 것을 내 눈으로 보구 왔는데두?"
 "그래, 소나무 찍었으문 와 어때?"
 "너, 올봄부터 허가 없이 소나무를 찍었다가는 징역가는 법이 생긴 줄 모르니?"
 "알문 어때? 빌어먹을! 다 성황님이면 고만이지 뭘 그래!"
 순이는 순이대로 김주사가 엄포할수록 저도 뻗대었다. 법이라는 것이 은근히 무섭지 않은 것도
아니지마는, 그렇다고 김주사 따위에게 슬슬 기고 싶지는 않았다. 그까짓거 성황당에 축수만 하면
그만이 아니냐 싶었던 것이다.
 "순이! 그러지 말어! 내가 모르는 체하고 눈 감아 줄 테니 내 말 한번만 들어!"
 "난 싫대두 그래!"
 "그럼, 현보 징역 가두 좋은가?"
 "징역을 와 가? 뭣 때문에? 힝!"
 순이는 입술을 비쭉 내밀어 보였다. 그러자 김주사는 하도 예뻐 못참겠다는 듯이 순이게로
달려들어 허리를 휘어 감으려 하였다. 순이는 그 순간 날쌔게 몸을 비키었다.
 비는 체굽으로 받듯 내리쏟았다. 숲속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김주사는 또 잠깐
겸연쩍은 듯이 가만히 서 있다가,
 "정말 안들을 테냐? 똑똑히 말해 봐!"
 그렇게 다지는 두 눈은 쌍심지를 켠 듯 몹시 충혈 되었다. 음성은 왁살스럽고도 거칠었다.
그러나 순이는 범을 보고도 놀라지 않고 자라난 탓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글쎄 백번 그래야 소용없대두."하고 도리질을 하였다. 그 말을 듣자, 김주사는 성난 표범처럼
순이에게로 덤벼들어 순이를 휘어 넘기려 하였다. 순이는 휘끈 뒤로 자빠지려던 다리에 힘을
주어 떡 버티고 서며, 붙잡힌 저고리 소매를 낚아채려 하는 순간에, 벌써 사내의 뜨거운 입술이
이마로 와 닿았다. 순이는 더 참을 수 없어,
 "쌍 개 같은 놈이..."하면서 눈알이 빠져라고 사내의 면판을 휘갈리고, 제비같이 날쌔게
숲속으로 뛰어나와 체굽하듯 하는 비를 맞으며 언덕길을 홱홱 달리어 집으로 돌아온다.
숲속에서는 뺨 맞은 사내가 달아나는 순이의 뒷모양을 노려보면서,
 "이년, 두고 보자!" 할 뿐이었다.
 비는 좍좍 내리쏟았다. 비안개에 싸여, 산도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만산이 한참 흐드러지게
웃는 것처럼 나뭇잎 와슬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한참 언덕을 오르던 순이는 사내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알자, 발을 멈추고 코로 입으로 흐르는 빗물을 씻었다. 그리고 나서 상그레 웃으며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언덕을 추어 오른다.
 순이는 비가 좀더 퍼부었으면 싶었다. 비가 퍼부면 퍼불수록 마음이 튼튼해질 것 같았다.
고개를 다 올랐을 때에는 순이는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집에 가면 흰고무신 신어 볼
생각에 마음은 날뛰었다. 발부리에서 메추리가 포드드드 날아갔다.
 비는 자꾸만 자꾸만 퍼부었다.
 이틀이 지나, 산림간수 김주사가 읍내 순경과 함께 현보를 잡으러 왔다. 현보는 아무 말도
못하고 얼빠진 사람처럼 한참을 발부리만 내려다보고 있었고, 따라온 김주사만이 뜻있는 웃음을
빙글빙글 순이에게 건네고 있었다. 순이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날래 가! 빨리 빨리!"하는 순경의 재촉에 마지못하여 현보가 무거운 발길을 옮겨 놓으면서,
글썽 글썽 눈물 괸 눈으로 순이를 돌아다본다. 순이는 현보와 눈이 마주치자 울음이 복바쳐
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면 김주사 말을 들어 주었던 편이 더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하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후회는 그저께 그 길로 돌아오면서 성황님께 빌기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그때 성황님께 한 번만이라도 빌었더면 오늘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현보는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늙은 소 모양으로 고개를 수그리고 앞서서 읍으로 걸어간다.
순이는 참다 못해서,
 "언제쯤 돌아올까요?"하고 순경에게 간신히 물었다.
 "한 십 년 있다 올 줄 알아!"하고 순경은 혼자 씩 웃는다. 순이는 순경이 웃을 적에는 대단한
죄는 아니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십 년이라는 말에 눈앞이 아뜩하였다.
 "너 이전 또 시집가야 갔구나!"
 김주사는 몹시 비꼬는 웃음을 보내며 지껄인다. 순이는 아무 대꾸도 않고 입속으로,
 '이놈 두고 보아라! 내래 성황당님께 빌어서 네놈을 망덕을 허게 헐 적을...'하고 중얼거렸다.
 순이는 현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앞에 서 있었다. 마침내 현보의 뒷모양이 안계에서
사라지자, 순이는 참았던 울음보가 탁 터져서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단둘이 살던 살림에 현보가 잡혀 갔으니 누구를 믿고 살 것이랴. 순이는 맘껏 맘껏 울었다.
이런 때에는 아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이 현보 잡혀 간 것이 슬펐다.
그러나 잡혀 간 것은 하는 수 없는 일이고, 이제부터는 몇 해 만에 나오든지 나오는 날까지
혼자서 벌어먹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순이는 한낮이 겹자 숯가마로 갔다. 순이는 전에 현보가
하던 모양으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패고, 틈틈히 겨울 준비로 도라지, 고사리 같은 산나물도 캐
모았다. 순이는 다른 날보다 퍽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 보니 김주사가 능청맞게
아랫목에 자빠져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이 인제 오는 게야? 오늘은 늦었구먼!"하고 사내는 현보를 잡아갈 때와는 딴판으로 다정한
태도를 보인다. 순이는 속으로,
 '이 자식이 왜 왔어?'하면서도 행여 현보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발써 읍내까지 갔던 거요?"하고 공손히 물었다.
 "아니, 난 읍엔 안갔어!"
 "그럼, 우리 쥔은 어떻게 됐소?"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다."
 "언제쯤 나오게 될까요?"
 "그야 내 말에 달렸디!"하고 김주사는 순이를 빤히 쳐다본다.
 순이는 속으로 '네까짓거!'하고 아니꼽게 생각하면서도 잠자코 있었다. 김주사는 몇 날 전에
산에서 한 짓을 사죄하는 것과, 그리고 이제라도 제 말을 들으라는 것쯤은 순이로서도 눈치
챌 수 있었지마는, 행차 뒤에 나팔격으로, 이제는 일이 글러지고 말았으므로, 순이는 자꾸
엇나가고 싶었다.
 "정말 순이가 안타깝다면 현보를 내일루래두 내보내줄까?"
 김주사는 순이가 저만 보면 슬슬 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쓴 도라지 보듯하니까, 적이
아니 실망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저편에서 먼저 수작을 붙이는 것이었다.
 "난 괜찮아요. 근심 말구, 거져 십 년이구 이십 년이구 맘대로 둬둬 주."
 "허! 말룬 그래도 속에서는 불이 날 터이지?"
 "불커녕 화두 안나무다."
 "순이! 그래디 말어 응! 내가 말 잘해서 니어 내보게 주게 하디."
 "..."
 그 말엔 순이도 대꾸를 않았다.
 한참 침묵이 계속되었다. 바깥은 차차 캄캄해 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 떠서 열어 놓은
문으로 북두칠성이 마주 보였다. 바로 집 뒤에서는 접동새가,
 "접동 접동 애오라비 접동!"하고 처량히 울었다.
 순이는 김주사가 현보를 고자질한 것을 생각하면 이에 신물이 돌아서 공알 주먹으로
목덜미를 한 개 쥐어 박고 싶었지마는, 열도깨비 복은 못주어도 화는 준다고, 그러다가 또
어떤 작패를 부릴는지 몰라 어름어름해 두었다. 그랬더니 사내는 좀처럼 돌아갈 생각은
아니하고, 진기를 쓸고 있어 순이는 울화가 치밀었다. 그까짓 김주사 같은 사내 하나쯤
덤벼든대야 조금도 겁날 것이 없지마는, 저편에서 덤벼드는 판이면 순이도 가만 있을 수
없으니 그것이 성가시었다.
 "현보가 나오구 못나오구는 내 말 한 마디면 그만인데, 순인 와 그리 고집을 부리노?"
 김주사는 다시 수작을 붙였으나 순이는 건으로 잠자코 있었다.
 "순이! 현볼 내일 놔 주도록 해 줄까?"하며 김주사는 순이의 치마폭을 슬며시 잡아 당겼다.
 "인 놔요!"
 순이는 치마를 낚아채였다.
 "흥! 내 말 안들어야 순이에게 손해 될 것밖에 있나?"
 사내는 점쩍김에 싱글 웃고 나서, 담배를 피워 문다. 순이는 덤덤히 앉아 있었다. 여름밤은
덧없이 깊어 갔다. 순이는 사내가 어서 가 주었으면 싶었다. 현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작자가
염치 없게도 밤중에 와서 지근덕대는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러이 현보가 그리워지며 울화가
치밀었다.
 "인전 잘래요! 어서 가라우요?"
 순이는 사내에게 툭 쏘아 붙였다.
 "이 오밤중에 가긴 어딜 가란 말야?"
 "못가면 어쩔 테요?"
 "여기서 순이허구 자구 가야갔는걸!"
 "흥, 비위탁이 삼백은 살겠다, 어서 가요!"
 "이 캄캄한 밤에 어딜 가란 말야, 글쎄?"
 "궐네네 집으루 가라요!"
 "그럼, 순이 데려다 주겠나?"
 "흥! 별꼴 다 보갔디."
 순이는 사내에게 눈을 흘겨 보이고는 밖으로 달아 나왔다.
 순이는 어둠 속에서 돌을 주워 가지고 또 성황당 앞으로 가, 성황님께 현보가 속히 나오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몇 번이고 허리를 굽신거리며 큰절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문득 '에헴!'하고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칠성이가 현보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고 산너머에서 찾아온 것이었다. 순이는 김주사의
농락을 받고 있는 지금에 칠성이가 찾아와 준 것을 퍽 다행하게 여겨서, 이내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김주사는 순이가 이제나 들어올까 저제자 들어올까 하고 눈이 감도록 기다리던
판에 웬 낯선 사내를 데리고 들어오니까, 일변 실망하고 일변 겁을 집어먹으며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혹깨(퍽) 어둡디요?"하고 순이는 김주사 보란듯이 칠성이에게 상냥히 말을 걸었다. 그러나
칠성이는 칠성이대로 아지 못하는 사내가 방에 혼자 앉아 있는데 놀래어, 얼른 대답을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허나 다음 순간 칠성이는 직각적으로 눈치를 채자 모진 눈으로 김주사를
노려보았다. 칠성이가 들어오자, 김주사는 침 먹은 지네가 되는 것을 보고, 순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산속의 밤은 접동새의 울음 속에 깊어 갔다. 무한한 적막이 깃들어 있는 깊은 산이건마는,
그러나 순이를 에워싸고 희미한 등잔 밑에 마주앉아 있는 두 사내 사이에 오고가는 시선은 각
일각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띠어 갔다. 아연같이 무거운 공기 속에서 칠성이와 김주사는
제각기 눈앞에 폭풍을 깨달으면서 호흡까지 죽이고 있었다.
 "웬 사람이오?"
 드디어 김주사는 질식할 긴장을 이겨낼 수가 없어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리며, 순이와
칠성이를 번갈아 보았다.
 "산 너머 있는 칠성이네야요."하고 순이는 칠성이를 쳐다보면서 대답을 가로맡았다.
김주사는 칠성이가 쭈그리고 겁먹은 듯이 앉아 있는 것을 보자 한층 깔보았는지,
 "무슨 일이 있어 왔나? 이 밤중에...?"하고 제법 위엄있게 반말로 대들었다.
 "일은 무슨 일이갔소? 거져 마을돌이 왔디요!"
 이번에도 순이가 가로맡아 대답해 주었다.
 "일두 없이 밤중에 남으 여편네 혼자 있는 데를 와?"하고 김주사 어조는 더 한층 높았다.
 "대관절 당신은 어떤 사람인데?"
 마침내 잠자코 있던 칠성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침착히 반문하였다. 싸움을 사려는
말투였다. 칠성의 주먹은 어느덧 굳게 쥐어져 있었다. 칠성이가 별안간 큰소리를 치고 나서는
바람에, 김주사는 잠시 찔끔해 있다가,
 "나? 난 산림간수야! 현보가 산림법칙을 위반해서, 조사할 것이 있어 왔어."
 "산림간수는 남으 여편네 혼자 있는 밤중에 조사를 해야 맛인가?"
 칠성이는 가슴을 약간 앞으로 솟구며 따지고 들었다.
 "그야 조사할 필요가 있으면 언제든지 조사하는 규칙이지..."
 "세상에 그런 빌어먹을 규칙이 어디 있단 말이냐?"
 이번에는 칠성이가 정면으로 김주사를 노려본다. 순이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에끼, 고약한 놈! 그런 말버르장머리가 어딨듸? 아무리 불학무식한 놈이기로니!"
 "이 자식아! 뭐 어때? 유식헌 놈은 똥이 관을 쓰구 나오니?"
 칠성이는 상반신을 일으켜 김주사 앞으로 다가갔다.
 "이놈아!"
 김주사는 고함을 치며 칠성의 따귀를 번개같이 때려 갈겼다. 그와 동시에,
 "이 간나새끼 어디 보자!"하기가 무섭게 칠성이도 김주사 멱살을 추겨 잡았다. 김주사도
칠성이를 맞잡았다. 다음 순간 둘은 서로 엎치락뒤치락 뒤채었다. 그 바람에 등잔불이 홱
꺼졌다. 별안간에 방안은 수라장이 되었다.
 "아이구머니!"
 순이는 왜마디소리를 부르짖으면서 밖으로 뛰어 나왔다.
 "아코!"
 "에이, 쌍!"
 "아코, 아고고..."하는 비명이 방안에서 연방 들려 나왔지마는, 순이는 그 목소리가
누구인지도 분간하지 못하였다. 순이는 어쩔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아이구테나! 아이구테나!"하다가, 문득 성황당 생각이 나서 느티나무 밑으로 부리나케 달려
오더니,
 "성황님! 성황님! 데 쌈을 좀 말려 주십사! 데 쌈을 좀 말려 주십사!"하고 두 손을 싹싹
비비었다.
 방안에서는 아직도 '에이 쌍, 에이 쌍!''하는 소리가 연방 들려나왔다.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현보는 돌아오지 않았다.
 칠성이는 저번날 밤 김주사와 싸우고 가서는 나흘째 오지 않았다. 떠도는 말에 의하면
칠성이는 머리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그날밤으로 어디론지 도망을 치고 말았다 한다.
 순이는 낮이면 산나물을 하였고, 밤이면 성황당에 치성을 드리면서 그날 그날을 보내었다.
현보가 잡혀간 뒤로 숯은 한 가마를 구웠을 뿐이었다. 순이는 저녁에 집에 돌아올 때처럼
쓸쓸한 적이 없었다. 다른 때 같으면 현보와 함께 돌아와서 저녁도 마주앉아 먹을 터인데,
이제는 혼자 오도카니 앉아 먹자니 밥이 목구멍을 넘어가지 않았다. 순이는 나물을 하다가도
숲속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서로 꾸둑거리며 희롱하는 것을 보고는, 문득 현보 생각이 머리에
떠올라 한참은 우두커니 서서 지나간 일을 회고해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숲속에서 꾀꼬리가 울고, 뻐꾸기가 울고, 미라부리가 울고 할 때에는 순이의 마음은
평화스러웠고, 도끼를 드는 팔에도 힘이 넘쳤다.
 산에만 오면 순이는 어머니 품속에 안긴 것처럼 마음이 듬뿍하여, 온갖 새들과 함께
노래부르고 싶었다. 새들의 노래를 들을 때에는 순이의 마음에는 슬픔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었다. 나무가 무성히 자라고 새들이 노래부르는데, 순이의 가슴에 검은 구름이 있을 턱
없었다. 그런 때에는 순이는 현보도 성황님 덕택에 이내 나올 것을 굳게 믿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고 산골짜기가 어둠에 잠기면 순이의 마음도 어두워졌다. 제 둥지로
돌아가는 까마귀가 어쩌다가 순이네 집 위에서,
 "꺄우! 꺄우!"하고 울 때면, 순이의 마음은 납덩이같이 무거워졌다. 옛날부터 저녁 까마귀가
울면 집안이 불길하다는 것을 순이도 알기 때문이었다. 순이는 현보가 내일도 돌아오지
못하려는가, 정말 십 년씩이나 갇혀 있게 될 것인가 하고, 머리를 쥐어 짜며 생각하다가,
마침내는 벌떡 일어나서 성황당으로 달려간다.
 그런 때면 순이는 성황당 앞에 엎드려 오래오래 치성을 드리는 것이었다. 순이는
모제기(샛별)가 서편 하늘에 퍽 기울어진 때에야 잠자리에 누웠다. 허나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노라니 현보와 칠성이와 김주사의 얼굴이 제각기 나타났다. 순이는 아까
산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장난치던 것을 생각하고, 이네 언젠가 현보가 장에서 고무신 사오던
날 저녁 일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에 나오면 현보허구 둘이서 성황님께 아들 낳게 해 달라구 빌어야지."하고 혼자
궁리하다가 씩 웃었다.
 괴괴한 밤이었다. 순이는 낑하고 돌아눕다가 문득 귓결에,
 "응응응응응..."하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번쩍 들었다.
 "여우가 울어?"
 순이는 가슴이 또 철렁 내려 앉았다. 여우가 울 때에, 그 입을 향한 곳에는 반드시 흉사가
있다기에, 순이는 벌떡 일어나서 문밖으로 뛰어나와 어딜 향해 우는지 알아보려 하였다. 그러나
토방에 서서 귀를 기울였지만은, 울음소리만 듣고는 어딜 향하고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꼭
순이네를 향하고 우는 것만 같았다.
 "현보가 영 못나오려나?"
 순이의 가슴은 점점 미어져 왔다. 순이는 성황님께 무슨 죄를 지었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역시 성황님께 정성이 부족한 탓에 까마귀가 울고, 여우가 방정을 떠는 것이라고 믿었다.
까마귀나 여우나 모두가 성황님의 마음대로 되는 것이라고 순이는 믿었던 것이다. 그래 순이는
다시 성황님으로 모신 느티나무 아래에 와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비비었다. 순이는 참된
마음으로 성황님께 사죄를 하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 세 시간이 지났거만 순이의
마음에는 오히려 부족하여, 그는 하룻밤을 치성으로 꼬박이 밝혔다. 그랬더니, 이튿날 아침
순이의 마음은 도로 명랑하여졌다.
 아침 볕에 무르녹은 녹음을 보면, 순이의 마음은 옥구슬같이 맑아진다. 순이가 막 집을 나서
숯가마로 가려는데, 난데없이 까치 두 마리가 순이네 지붕 위에 날아와 앉더니,
 "까까까까까..."하고 열성스럽게 짖었다.
 "옳다, 됐다!"
 순이의 눈은 기쁨에 이글이글 빛났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손님이 온다는데, 아마 오늘은
현보가 돌아오려나 보다 싶었다. 현보가 오면 무엇부터 이야기 할까? 김주사 이야기, 까마귀
이야기, 여우 이야기, 장끼와 까투리가 놀던 이야기...모두 신기스러운 이야기 재료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성황님이 얼마나 신령하시다는 것을 말해서 둘이서 아이를 점지해 주도록 축수를
하리라 하였다.
 순이는 기쁨에 이이 손에 붙지 않았다. 개금아리가 갈갈갈갈 하기만 하여도 고개를 들고
멍하니 섰곤 한다.
 그러다가는 현보가 오지 않나 하고 언덕길을 내려다보곤 한다.
 한낮이 겹자 더위는 찌는 듯하였다. 순이는 웃통을 벗은 채 나물을 하다 말고, 그늘진 풀밭에
펄썩 주저앉았다. 바로 머리 위에서 산비둘기가 '구우 구우'하고 울었다. 순이는 고개를 들어
비둘기를 찾았다.
 소나뭇가지에서는 두 마리의 비둘기가 서로 주둥이를 맞대보기도 하고, 머리를 비비기도 한다.
순이는 멀거니 그것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가슴은 공연히 쓸쓸하였다. 오늘도 현보가 돌아오지
않으려는가 싶어 한숨을 쉬면서 먼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바로 그때,
 "순이!"하고 어디선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는 꿈인가 놀라며 성큼 일어서니 맞은편
숲속에 칠성이가 서 있었다.
 "아! 칠성이네! 어디로 도망을 갔다더니?"
 순이는 반가왔다. 그렇지 않아도 저희 때문에 칠성이가 죄를 짓고 도망을 갔대서 미안히
여기던 판이었는데, 뜻밖에 만나니 참말 반가왔던 것이다.
 "나 말이야, 순이! 그 동안 한 삼백리 되는 곳에 도망을 갔드랬어! 그자식 대가리를 깨뜨려
주었거든! 그래서 도망을 가긴 갔지만, 암만해두 순이 생각을 잊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 순이를
데리러 왔어!"하고, 사내는 순이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순이는 저고리를 입으면서,
 "아이구 망칙해라! 내래 와 칠성이넬 따라 갈꼬!"
 말은 그러나 저를 생각해 주는 마음씨가 노상 싫지는 않았다.
 "안가믄 어쩌누? 현보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걸..."
 "와 몰라! 오늘은 나올 텐데!"
 "오늘?...흥! 적어두 삼 년은 있어야 해!"
 "삼 년!"
 이번에는 순이가 놀란다.
 "그러티! 삼 년은? 그러나 그 동안 순이 혼자 어떻게 사누? 그러기 현보 나올 동안 나하구
같이 가 있자구."
 "..."
 "그뿐인가. 인제 현보가 나온대두 다른 벌이를 해야지, 숯구이는 못하거던!"
 "와 어드래서요?"
 "숯두 말야, 이제부터는 검사를 하거든. 법에 가서 검사를 하지 않고는 못팔아 먹는데."
 "그 검사가 오줄기 어렵다구!"
 "누구래 그릅더까?"
 "누군 누구야! 다 그러는데! 발쎄 신문에두 났다는걸."
 순이는 점점 안타까워서,
 "그까짓 법이 뭐기! 성황님께 빌면 그만이지."하고 혼자 짜증을 내었다.
 "성황님?...흥, 어디 잘 빌어 봐, 되나 안되나!"
 순이는 어찌할 도리를 몰랐다.
 "순이! 내래 발쎄 순이 입성 다 해가지구 왔어. 이것 좀 봐!"하고 칠성이는 손에 들었던
보퉁이를 풀기 시작한다.
 순이는 잠자코 보퉁이만 쳐다본다. 보퉁이 속에서 분홍 항라 적삼과 수박색 목메린스 처마가
나오는 것을 보고, 순이는 눈이 휘둥그래진다.
 "이거 다 순이 입을 거야!"하고 칠성이가 순이 앞에 옷을 내미는 순간, 순이는 기쁨을 참을 수
없어 빙그레 웃으면서 집에 있는 흰 고무신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을 다 갖추어 입고 나서면
그까짓 장끼 지체쯤 어림도 없어 보였다.
 "어서 입어 보라구!"
 그 말에 순이는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 순이는 기쁨에 날뛰었다. 산속이 갑자기 환해지는 것
같았다.
 "순인 참 절색이야!"하고 감탄하면 칠성이는 순이의 손을 끌어 당겼다. 순이는 가만히 생글생글
웃기만 하였다.
 "구우구우구우!"
 산비둘기가 또 울었다. 지금 순이에게는 칠성이가 현보와 꼭같이 정답게 보였다.
 "구우구우!"
 산비둘기가 울 때마다 순이의 가슴은 화로 위에 눈덩이처럼 슬슬 녹아 내렸다.
 그날 저물녘에 순이는 칠성이를 따라 먼 길을 떠났다. 머리에는 붉은 댕기를 디리고, 게다가
분홍 항라 적삼과 수박색 치마를 떨쳐 입고, 흰 고무신까지 받쳐 신고 나서니, 순이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발을 옮겨 놓을 때마다 걸음걸음에 치마폭 너풀거리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무지개보다도 고왔다.
 "빨리 가자구! 어둡기 전에 백 리는 내대어야겠는데..."
 칠성이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순이와 칠성이는 저녁때에야 삼백릿길을 떠나게 되었던 것이다.
밤길이 불편은 하지마는, 낮에는 아차 잘못하여 김주사 눈에 띄면 큰일이기 때문에 일부러 밤을
택하였다. 순이는 가벼운 걸음으로 삼십 리는 언뜻 걸었다. 그러나 천마령 고개를 다 넘고 들길로
접어들자, 순이의 마음은 점점 불안스러워왔다.
 "엉야! 좀 쉬어 가자구요!"
 순이는 애원하듯 말하였다.
 "다리가 아픈가 머?"
 "아니!...그래두..."
 "쉬어 가디! 순인 그래두 풀밭에 마구 앉진 마러! 입성에 풀물 오르믄 안돼!"
 "그럼, 어떡하노?"
 "그래도 서서 쉬어야디."
 한참 순이는 말이 없었다.
 '칠성이를 따라가는 것이 옳을까?'
 순이는 풀밭에 주저앉고 싶었다. 그러나 풀밭에 주저앉으면 안된다구 순이는 불안스러웠다.
장차 아지도 못하는 지방으로 가는 것이 더더구나 불안스러웠다.
 "이제 가는 데두 산이 많은가요?"하고 순이는 물었다.
 "산이 머야! 들판이디! 그까짓 산 댈까!"
 "그럼 노루나 ㄲ 같은 건 없갔구만요?"
 "없구 말구!"
 "부엉이랑 뻐꾸기 같은 것두?"
 "그 따우두 다 없어! 그래두 사람은 많디! 살기 좋은 곳인 줄만 알갔디!"
 "고사리, 도라지 같은 산나물은 있나?"
 "산이 없는데 그런 게 어떻게 있누! 글쎄 근심 말어! 썩 좋은 데 데리구 갈 터이니."
 그러나 순이는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가는 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산이 없고 나무가 없다면,
그 허허벌판에서 무엇에 마음을 희탁하고 살아간단 말인가? 더구나 공연히 사람만 많이 모여서
복작복작 들끓는다는 그런 곳에 가서...
 사람만 많은 곳에 가서 지금처럼 고운 저고리에 고운 치마를 입고 마음대로 주저앉지도 못하고
새색시처럼 곱다랗게 앉아 있어야만 한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 간다는 말인가?
 순이는 문득 천마령 안골짜기 자기집이 그리웠다. 오막살이일망정 고대광실 부럽지 않게
정다운 그 집이었다. 지금쯤은 앞산 뒷산에서 부엉이, 접동새가 울고 있으리라 생각하니
삼십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여기부터가 싫었다. 순이는 고운 옷 입은 기쁨도 사라졌다.
 그는 불현듯 현보가 그리웠다. 성황님께 어젯밤 그만큼이나 치성을 올렸고, 또 오늘 아침에
까치도 지저귀었으니 지금쯤은 현보가 집에 돌아왔을지도 모르리라 싶었다.
 '현보가 왔다면 나를 얼마나 기다릴까?'
 현보와 둘이서 나무하고 숯굽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순이는 천마령과
현보를 떠나서는 살아갈 재미도 없거니와 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죄를 지으면 성황님이
벌을 준다는데, 삼백 리가 멀다고 벌 못주랴 싶어, 순이는 고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안될
것 같았다.
 "자아 또 떠나 보자구!"하고 칠성이가 성큼 일어섰다.
 "나 나, 뒤 좀 보구 갈 거니 슬근슬근 먼저 가라요."
 순이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뒤? 그럼, 더기서 기다릴 거니, 이내 오라구!"
 "응."
 순이는 선대답을 하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숲속으로 들어가자, 순이는 얼른 치마와 저고리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그까짓 입고 주저앉지도 못하는 옷이라고 생각하니, 조금도 애착이
없었다. 고무신은 벗어 들었다. 순이는 옷을 나무에 걸어 놓고, 고무신을 든 채 아까 오던 길을
되돌아서서 힝하니 달음질을 치기 시작하였다. 캄캄한 산길이건마는, 순이는 익숙하게 달렸다.
얼마를 달려 오니까 그제야,
 "접동접동 접접동..."하고 접동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순이의 마음은 가벼워졌다. 이제야 제가
살 곳을 옳게 찾아온 것 같았다. 고개에 올라서서 굽어보니, 마주 건너다 보이는 순이네 집에서
빨간 불이 비치었다.
 "아, 현보가 왔구나!"
 순이는 기쁨에 설레이는 가슴을 안고 쏜살같이 고개를 달음질쳐 내려왔다. 다시 언덕을 추어서
집을 향해 올라올 때 순이는,
 성황님! 성황님!"하고 부르짖었다.
 모든 것이 성황님의 덕택 같았다.
 집 앞에까지 다다랐을 때에 문득,
 "에헴!"하는 귀에 익은 현보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아! 성황님! 성황님!"
 순이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부르짖으며, 느티나무 밑으로 달려왔다.
 접동새가 울었다.
 부엉이도 울었다.
 늘 듣던 울음소리였다.
 그러나 오늘밤따라 새소리는 순이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 정다왔다.

    오영수(1914__1979)
 1949년 "신천지" 7월호에 '남이와 엿장수'('고무신'으로 개원)로 추천을 거쳐, 195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머루'가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여 총 117편이 넘는 단편을 쓴 철저한
단편작가이다. '온정과 선의', '서정의 온상' 또는 '인간의 긍정' 등 소박한 언급에 그친다. 그것은
그의 작품 바탕이 그 만큼 소박하다는 이야기다. 그의 작품을 포용하는 독자의 범위가 넓고,
효용이 예술지향적이면서도 인간주의의 의미를 벗어나지 않으며, 그 감동도 시종여일하다. 그의
작품을 일별하면 눈에 띄는 특색은 작가관찰자 시점, 시적직관, 서정, 토속적 인간 등이며, 그가
취택한 소재나 배경은 거의가 농촌, 어촌, 산촌이거나 서민의 애환이 무르녹아 드는 도회의
뒷골목이다. 이렇듯 그는 전통지향성에의 끈질긴 집착을 보인 작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대적 영웅이나 지적 엘리트가 아니라 "갯마을"의 '해순이와'와 같이 소박하며
토속적인 인물이며, 화해의 인간상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단편집 "머루"(1953), "고갯 마을"(1956),
"메아리"(160), "수련"(1965), "황혼"(1975), "잃어버린 도원"(1977)들이 있다.

    갯마을
    "문예" 1953. 12.

 서로 멀리 기차소리를 바람결에 들으며, 어쩌면 동해 파도가 돌각담 밑을 찰싹대는 H라는
조그만 갯마을이 있다.
 더께더께 굴딱지가 붙은 모 없는 돌로 담을 쌓고 낡은 삿갓 모양 옹기종기 엎딘 초마가 스무
집 될까말까 조그마한 멸치 후리막이 있고, 미역으로 이름이 있으나 이 마을 사내들은 대부분
철따라 원양출어에 품팔이를 나간다. 고기잡이 아낙네들은 썰물이며 조개나 해조를 캐고,
밀물이면 채마밭이나 매는 것으로 여느 갯마을이나 별다름 없다. 다르다고 하면 이 마을에는
유독 과부가 많은 것이라고나 할까? 고로들은 과부가 많은 탓을 뒤산이 어떻게 갈라져서
어찌어찌 돼서 그렇다느니, 앞바다 물발이 거세서 그렇다느니들 했고, 또 모두 그렇게들 믿고
있다.
 해순이도 과부였다. 과부들 중에서도 가장 젊은 스물 셋의 청상이었다.
 초여름이었다. 어느날 밤, 조금 떨어진 멸치 후리막에서 꽹과리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들어 첫
꽹과리다. 마을은 갑자기 수선대기 시작했다. 멸치 떼가 몰려 온 것이다. 멸치 떼가 들면
막에서는 꽹과리나 나팔로 신호를 한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은 막으로 달려가서 그물을 당긴다.
그물이 올라 수확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은면 적은 대로 '짓'이라고 해서 대개는 잡어를 나눠
받는다. 수고의 대가다. 그렇기 때문에 후리를 당기면 갈 때는 광주리나 바구니를 결코 잊지
않았고 대부분이 아낙네들이다. 갯마을의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때다. 해순이도 부지런히 헌옷을
갈아입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담 밖에서 숙이 엄마가 숨찬 소리로,
 "새댁 안 가?"
 "같이 가요, 잠깐..."
 "다들 갔다. 빨리 나오잖고..."
 "아따, 빨리 가면 짓 먼첨 받나 머!"
 해순이가 사립 밖을 나서자 숙이 엄마는,
 "아이구, 요것아!"
 눈앞에 대고 헛주먹질을 하면서,
 "맴(홑)치마만 걸치먼 될걸...꼬물대고서..."
 "망측하게 또 맴치마다, 성님(형님)은 정말 맴치마래?"
 "밤인데 누가 보나 머. 첨벙대로 적시노면 빨기 구찮고..."
 사실 그물을 당기고 보면 으레 옷이 젖는다. 식수도 간신히 나눠 먹는 갯마을이라 빨래가 여간
아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맨발에 홑치마만 두르고 나오는 버릇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로 해서
또 젊은 사내들의 짖꿎은 장난을 싫잖게 받아들이는 갯마을 여인들인지도 모른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는 물기슭 모래톱으로 해서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추지 모래가 한결
시원하다. 벌써 후리는 시작되었다. 굵직한 로우프에는 후릿군들이 지네발처럼 매달렸다.
 -데에야 데야-
 이편과 저펀에서 이렇게 서로 주고 받으면 로우프는 팽팽해지면서 지그시 당기어 온다.
해순이와 숙이 엄마도 아무렇게나 빈틈에 끼여들어 줄을 잡았다. 바다 저만치서 선두가
칸델라불을 흔들고 고함을 지른다.
 당겨 올린 줄을 뒷거둠질하는 사내들이--데에야 데야--를 선창해서 후릿군들의 기세를 돋우고
막 거간들이 바쁘게들 서성댄다. 가마솥에는 불이 활활 타고 물이 끓는다.
 그물이 가까와 올수록 이 데에야 데야는 박자가 빨라진다.
 -데야 데야 데야 데야-
 이때쯤은 벌써 멸치가 모래톱에 헤뜨헤뜩 뛰어오른다. 멸치가 많이 들면 수면이 부풀어오르고
그물 주머니가 터지는 때도 있다. 이날 밤도 멸치가 무던히 든 모양이다. 선두는 곧장 칸델라를
흔든다. 후릿군들도 신이 난다.
 -데야 데야 데야-
 이때 해순이 손등을 덮어 쥐는 억센 손이 있었다. 줄과 함께 검잡힌 해순이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내버려 두었다. 후릿군들의 호흡은 더욱 거칠고 빨라진다. 억센 손은 어느새 해순이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해순이는 그만 줄 밑으로 빠져 나와 딴 자리로 옮아 버린다. 그물도 거의
올라왔다.
 -야세 야세-
 이때는 사내들이 물기슭으로 뛰어들어 그물 주머니를 한 곳으로 모아두는 판이다. 누가 또
해순이 치마 밑으로 손을 디민다. 해순이는 반사적으로 획 뿌리치고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멸치가 모래 위에 하얗게 뛴다. 아낙네들은 뛰어오른 멸치들을 주워 담기에 바쁘다. 후리는
끝났다. 멸치는 큰 그물쪽자로 광주리에 펴서 다시 돌(시덴)함에 옮겨 잡어를 골라 낸다. 이래서
멸치가 굴으면 '젓'감으로 날로 넘기기도 하고, 잘면 삶아서 '이리꼬'를 만든다.
 해순이는 짓을 한 바구니 받았다. 무겁도록 이고 아낙네들과 함께 돌아오면서도 괜히 가슴이
설렌다. 짓보다는 그 억센 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누굴까? 유독 짓을 많이 주던 막
거간이나 아니던가? 누가 엿보지나 않았을까? 망측해라!
 해순이는 유독 짓이 많은 것이 아낙네들 보기에 무슨 죄나 지은 것처럼 부끄럽기만 했다.
그래서 해순이는 되도록 뒤처져 가기로 발을 멈추자 숙이 엄마가 옆구리를 쿡 지르면서,
 "너 운 짓이 그렇게도 많애?"
 해순이는 얼른 뭐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주니까 받아 왔을 뿐이다.
 "흥, 알아봤어, 요 깍쟁이..."
 아낙네들이 모두 킥킥대고 웃는다. 뭔지 까닭 있는 웃음들이다. 짐작이 있는 웃음들인지도
모른다. 해순이는 귀밑이 화앗 달았다. 숙이 엄마네 집 앞에서 해순이는,
 "성님, 내 짓 좀 줄까?"
 숙이 엄마는,
 "준 사람에게 뺨맞게..."
 그러면서도 바구니를 내민다. 해순이는 짓을 반이 넘게 부어 주었다.
 해순이는 아랫도리를 헹구고 들어와서 자리에 누웠으나 오래도록 잠이 오질 않는다. 그 억센
손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른다. 돌아오지 않는, 어쩌면 꼭 돌아올 것도 같은 성구의 손 같기도
한, 아니면 또 징용으로 끌려가 버린 상수의 손 같기도 한-그 억세디억센 손-.
 해순이는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애써 본다. 눈을 감아 잠을 청해 본다. 그러나 금하는
음식일수록 맘이 당기듯 잊어버리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놓치기 싫은 마음-. 그것은 해순이에게
까마득 사라져가는 기억의 불씨를 솟구쳐 사르게를 지펴 놓은 것과도 같았다. 안타깝고 괴로운
밤이었다.
 창이 밝아 왔다. 해순이는 방문을 열었다. 사리섬 위에 달이 솟았다. 해순이는 달빛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뇌어 본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눈시울이 젖는다. 한숨과 함께 혀를 한 번 차고는 문지방을 베고 누워 버린다. 달빛에 젖어
잠이 들었다.
 누가 어깨를 흔든다. 소스라쳐 깨어 보니 그의 시어머니다. 해순이는 벌떡 일어나 가슴을
여미면서.
 "우짜꼬, 그새 잠이 들었던가배-."
 시어머니는 언제나 다름없는 부드럽고 낮은 소리로,"
 "얘야, 문을 닫아 걸고 자거라!"
 남편 없는 며느리가 애처로웠고, 아들 없는 시어머니가 가엾어 친딸 친어머니 못지 않게
정으로 살아가는 고부간이다. 그러나 이날 밤만은 얼굴이 달아올라 해순이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의 시어머니는 언젠가 해순이가 되돌아오기 전에도,
 "얘야, 문을 꼭 걸고 자거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날 밤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의 시어머니다. 어쩌면 해순이의 오늘은 이 '얘야, 문을 꼭
닫아 걸고 자거라...'데 요약될는지도 모른다.
 해순이는 보재기(해녀)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김가라는 뜨내기 고기잡이 애를 배자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그래서 해순이가 났다. 해순이는 그의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을리고 조개껍데기를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컸다. 열살 때부터는 잠수도
배웠다. 해순이가 성구에게로 시집을 가기는 열 아홉살 때였다. 해순이의 성례를 보자 그의
어머니는 그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면서,
 "너 땜에 이십 년 동안 고향땅을 못 밟았다. 인제는 마음놓고 간다. 너도 인제 가장을 섬기는
몸이니 아예 어미 생각을랑 마라."
 그의 어머니는 고깃배에 실려 물길로 떠났다.
 해순이에게 장가들기가 소원이던 성구는 그만큼 해순이를 아꼈다. 성구는 해순이에게 물일도
시키지 않았다. 워낙 착실한 성구라 제 혼자 힘만으로도 넉넉지는 못하나마 그의 홀어머니와
동생 해서 네 식구는 먹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해순이는 안타까왔다. 물옷만 입고 나가면
성구 벌이에 못지 않을 해순이었다.
 어느날 밤 해순이는,
 "물때가 한창인데..."
 "신풀이가 하고 싶나?"
 "낼 전복을 좀 딸래!"
 "전복은 갈바위 끝으로 가야지?"
 "그긴 큰 게 많지."
 "그만둬."
 "가요!"
 "못 간다니--."
 "집에서 별 할 일도 없는데--."
 "놀지."
 "싫에, 낼은 가고 말 게니..."
 이래서 해순이가 토라지면 성구는 그만 그 억센 손으로 해순이를 잡아당겨 토실한 허리가
으스러지도록 껴안곤 했다.

 고등어철이 왔다. 칠성네 배로 이 마을 고기잡이 여덟 사람이 한 패로 해서 떠나기로 했다.
어런 때는 되도록이면 같은 고장 사람들끼리 패를 짠다. 같은 날 같이 갔다가 같은 날 같이
돌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고기잡이 마을에는 같은 달에 난 아이들이 많다. 이 H마을만 하더라도
같은 달에 난 아이가 다섯이나 된다.
 좋은 날씨였다. 뱃전에는 아낙네들이 제각기 남편들의 어구며 그 동안의 신변연모들을
챙기느라고 부산하다. 사내들은 사내들대로 응당 간밤에 한 말이겠건만 또 한 번 되풀이를 하곤
한다.
 돛이 올랐다. 썰물에 갈바람을 받아 배는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사내들은 노를 걷고 자리를
잡는다. 뭍을 향해 담배를 붙이려던 만이 아버지는 깜박 잊었다는 듯이 배꼬리로 뛰어오면서
입에 동그라미를 하고 제 아이 이름을 고함쳐 부른다. 아이 대신 그의 아내가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물기슭으로 뛰어들며 귀를 돌린다.
 "꼭 그렇게 하라니!"
 "멀요?"
 "엊밤에 말한 것 말야!"
 "알았소!"
 오직 성구만은 돛줄을 잡고 서서 마을 한모퉁이에 눈을 박고 있다. 거기 돌각담에는 해순이가
손을 뒤로 붙이고 섰다. 갓 온 시집이라 버젓이 뱃전에 나오지 못하는 해순이었다. 성구는 이번
한철 잘 하면 기어코 의롱을 한 벌 마련할 작정이었다.
 배는 떠났다. 가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이나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과 기대가 깃들어 있을망정
조그만 불안의 그림자도 없었다.
 바다를 사랑하고, 바다를 믿고, 바다에 기대어 살아온 그네들에게는 기상대나 측후소가 필요치
않았다.
 그들의 체험에서 얻은 지식과 신념은 어떠한 이변에도 굽히지 않았다.
 날을 받아 놓고 선주는 목욕재계하고 풍신과 용신에 제를 올렸다. 풍어도 빌었다. 좋은 날씨에
물때 좋겠다, 갈바람이라 무슨 거림낌이 있었으랴!
 하늘과 바다가 맞닿는 곳, 솜구름이 양 떼처럼 피어오르는 희미한 수평선을 향해 배는 벌써
까마득하다.
 대부분의 사내들이 고기잡이를 떠난 갯마을에는 늙은이들이 여린 손자나 데리고 뱃그늘이나
바위 옆에 앉아 무연히 바다를 바라보고, 아낙네들이 썰물에 조개나 캘 뿐 한가하다.
 사흘째 되던 날, 윤노인은 아무래도 수상해서 박노인을 찾아갔다. 박노인도 막 물가로 나오는
참이었다. 두 노인은 바위 옆 모래톱에 도사리고 앉았다. 윤노인이 먼저 입을 뗐다.
 "저 구름발 좀 보라니?"
 "음!"
 구름발은 동남간으로 해서 검은 불꽃처럼 서북을 향해 뻗어 오고 있었다.
 윤노인이 또,
 "하하하, 저 물빛 봐!"
 박노인은 보라기 전에 벌써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변의 징조였다.
 파도 아닌 크고 느린 너울이 왔다. 그럴 때마다 매운 갯냄새가 풍겼다. 틀림없었다.
 이번에는 박노인이 뻔히 알면서도,
 "대마도 쪽으로 갔지?'
 "고기 떼를 찾아갔는데 울릉도 쪽이면 못 갈라고."
 두 노인은 더 말이 없었다. 그새 구름은 해를 덮었다. 바람도 딱 그쳤다. 너울이 점점 커 왔다.
큰 너울이 올 적마다 물컥 갯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노인은 말없이 일어나 말없이 헤어졌다.
그들의 경험에는 틀림이 없었다. 올 것은 기어코 오고야 말았다. 무서운 밤이었다. 깜깜한 칠야.
비를 몰아치는 바람과 바다의 아우성, 보이는 것은 하늘로 부풀어오른 파도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의 참고 참았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흰 이빨로 물을 마구 물어뜯는 것과도 같았다. 파도는
이미 모래톱을 넘어 돌각담을 삼키고 몇몇 집을 휩쓸었다. 마을 사람들은 뒤 언덕배기 당집으로
모여 들었다. 이러는 동안에 날이 샜다. 날이 새자부터 바람이 멎어 가고 파도는 낮아 갔다. 샌
날에 보는 마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날 밤 한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 윤노인이었다. 그의 며느리 말에 의하면 돌각담이 무너지고
파도가 축담 밑까지 들이밀자 윤노인은 며느리와 손자들 앞세우고 담 밖까지 나오다가 무슨
일로선지 며느리를 먼저 가라고 하고 윤노인은 다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바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듯 잔물결이 안으로 굽은 모래톱을 찰싹대고, 볕은 한결
뜨거웠고, 하늘은 남빛으로 더욱 짙었다.
 그러나 고등어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은 더욱 큰 어두운 수심에 잠겼다. 이틀 뒤에 후리막
주인이 신문을 한 장 가지고 와서, 출어한 많은 어선들이 행방불명이 됐다는 기사를 읽어 주었다.
마을은 다시 수라장이 됐다.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이틀이 지났다. 울음에도
지쳤다. 울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설마 죽었을라고--이런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아낙네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살아야
했다. 바다에서 죽고 바다로 해서 산다. 해순이는 성구가 돌아올 것을 누구보다도 믿었다. 그
동안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 했다. 해순이도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갔다.
 해조를 따고, 조개를 캐다가도 문득 이마에 손을 얹고 수평선을 바라보곤 아련한 돛배만
지나가도 괜히 가슴을 두근거리는 아낙네들이었다. 멸치 철이건만 후리도 없었다. 후리막은
집두껑을 송두리째 날려 버린 그대로 손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후리도 없는 갯마을 여름밤을
아낙네들은 일쑤 불가(바닷가 모래밭)에 모였다. 장에 갔다온 아낙네의 장시세를 비롯해서
보고들은 이야기--이것이 이 아낙네들의 새로운 소식이요, 즐거움이었다. 싸늘한 모래에 발을
묻고 밤새는 줄 몰랐다. 숙이 엄마가 해순이 허벅지를 베고 벌렁 누우면서,
 "엣다, 그 베개 편하다..."
 그러자 누가,
 "그 베개 임자는 어데 갔는고?"
 아낙네들의 입에서는 모두 가느다란 한숨이 진다. 숙이 엄마는 해순이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보면서,
 -에에야 데야 에에야 데야.
 썰물에 돛달고
 갈바람 맞아갔소-
 하자, 아낙네들은 모두,
 -에에야 데야
 샛바람 치거던
 밀물에 돌아오소-
 -에에야 데야-
 아낙네들은 그만 목이 메어 버린다. 이때,
 "떼과부년들이 모여서 머 시시닥거리노?"
 보나마나 칠성이네다. 만이 엄마가,
 "과부 아닌 게 저러면 밉지나 않제?"
 칠성네도 다리를 뻗고 펄썩 앉으면서,
 "과부도 과부 나름이지 내가 벌써 사십이 넘었지만... 이년들 괜히 서방 생각이 나서 자도
않고."
 "말도 마소. 이십 전 과부는 살아도, 사십..."
 "시끄럽다. 이년들아. 사내녀석들 한 두름 몰아다 갈라 줄 테니..."
 "성님이나 실컷 하소."
 모두 딱따그르 웃는다.
 이래저래 여름이 가고 잡어가 많이 잡히는 가을도 헛되이 보냈다.
 모자기, 톳나물, 가스레나물, 파래, 김해서 한 푸ㅁ 가면 미역철이다.
 미역철이 되면 해순이는 금보다 귀한 몸이다. 미역은 아무래도 길 반쯤 물 속이 좋다. 잠년는
해순이 밖에 없다. 해순이가 미역을 베 올리면 뭍에서는 아낙네들이 둘러앉아 오라기를 지어
돌밭에 말린다. 미역도 이 삼월까지면 거의 진다.
 어느날 밤 해순이는 종일 미역바리를 하고 나무 등치같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얼마쯤이나
됐을까? 분명코 짐작이 있는 어떤 압박감에 언뜻 눈을 떴다. 이미 당한 일이었다. 악! 소리를
지른다는 것이 숨결만 가빠지고 혀가 말을 듣지 않았다. 대신 사내의 옷자락을 휘감아 잡았다.
세상없어도 놓지 않을 작정하고 그러자 해순이의 몸뚱아리는 아리한 성구의 기억 속으로 자꾸만
놓여지고 있었다. 그렇게도 휘감아 잡았던 옷자락이 모르는 새 놓여졌다.
 -아니, 내가 이게...-
 해순이는 제 자신에 새삼스리 놀랐다. 마치 꿈 속에서 깨듯 바싹 정신이 들자 그만 사내의
상고머리를 가슴패기 위에 움켜쥐었다. 사내는 발로 문을 더듬어 찼다.
 "그 방에 누고?"
 시어머니의 잠기 가신 또렷한 소리다. 해순이는 가슴이 덜컥했다. 그러나 입술에 침을 발라
목을 가다듬었다.
 "뒷간에 갑니더!"
 그리고는 사내의 상고머리를 슬그머니 놓아 주고 발자국소리를 터덕댔다. 이날 밤 해순이는
가슴이 두근거려 더는 잠을 못 잤다.
 다음날도 미역바리를 나갔다. 숨가쁜 물 속에서도 해순이 머리 한 구석에는 어젯밤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성게를 가져다 시어머니에게 국을 끓여 드렸다. 시어머니는
성게국을 달게 먹으면서,
 "얘야, 잘 때는 문을 꼭 닫아 걸고 자거라!"
 해순이는 고개를 못 들었다. 대답 대신 시어머니 국대접에 새로 떠온 더운 국만 더 보탰다.

 해순이는 방바위-바위가 둘러싸서 방같이 됐기 때문에-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었다. 이때
등뒤에서,
 "해순아!"
 해순이는 깜짝 놀라면서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후리막에서 일을 보고 있는 상수다. 해순이는 아랑곳도 않았다. 상수는 슬금슬금 해순이 곁에
다가앉으면서,
 "해순이 내캉 살자!"
 상수의 이글거리는 눈이, 물옷만 입은 해순이에게는 온몸에 부시다. 해순이는 암말도 없이
돌아앉았다.
 "성구도 없는데 멋한다고 고생을 하겠노?"
 "..."
 "내하고 우리 고향에 가 살자. 우리집엔 논도 있고 밭도 있다.!"
 사실 그의 고향에는 별 걱정 없이 사는 부모가 있었고 국민학교를 나온 상수는 농사 돌보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두 해 전에 상처를 하자부터 바람을 잡아 떠돌아다니다가 그의 이모집인
이 후리막에 와서 딩굴고 있었다.
 "응야, 해순아."
 상수의 손이 해순이 어깨에 놓였다. 해순이는 탁 뿌리치고 일어났다. 그러나 상수는 어느새
해순이 팔을 꽉 잡고 놓지 않는다. 실랑이를 하는데 돌아가는 고깃배가 이켠으로 가까이 왔다.
해순이는 바위그늘에 허리를 꼬부렸다. 그새 상수는 해순이를 끌고 방바위 안으로 숨었다.
 "해순이 우리 날 받아 잔치하자."
 "싫에, 싫에, 난 싫에!"
 "정말?"
 "놔요 좀, 해가 지는데..."
 "그럼 내 말 한 번만 들어..."
 "먼 말?"
 상수는 해순이 허리에 팔을 돌렸다.
 해순이는 몸을 비꼬아 손가락을 비틀었다.
 "내 말 안 들으면 소문낼기다!"
 "머 소문?"
 "니하고 내하고 그렇고 그렇다고?"
 "...?"
 "내 머리 나꾸던 날 밤에..."
 해순이는 비로소 알았다. 아무도 모르는 오직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둔 비밀을 옆에서 엿보기나
한 것처럼 해순이는 그만 발끈해지자 허리에 꽂은 조개칼을 뽑아 들었다. 서슬에 상수는 주춤
물러났다. 해순이는 칼을 눈 위에 올려 쥐고,
 "내한테 손 대면 찌른다!"
 "손 안 댈께 내 말 한 번만..."
 "소문낼 텐, 안 낼 텐?"
 "안 낼께, 내 말..."
 "나보고 알은 척할 텐, 안할 텐!"
 "그래, 내 말 한 번만 들어 주먼..."
 상수는 칼을 휘두르는 해순이가 겁은커녕 되레 귀여워만 보였다. 해순이는 도사리고 칼을
겨루면서도 그날 밤의 기억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칼 쥔 손이 어느새 턱밑까지 내렸다.
 해순이는 눈시울이 자꾸만 부드러워 갔다.
 "해순이!"
 상수가 한 걸음 다가오자 해순이는 언뜻 칼을 고쳐 들고 한 걸음 물러난다. 상수가 또 한 걸음
다가오자 해순이는 그만 아무렇게나 칼을 내저으면서,
 "더 오지 마래, 더 오면 참말 찌른다!"
 "참말 찔리고 싶다. 찌르면 나도 해순이를 안고 같이 죽을 테야!"하고 상수는 울목대 밑을
가리키면서
 "꼭 요기를 찔러라. 요기를 찔러야 칵 죽느다니."
 해순이는 몸서리를 한 번 쳤다. 상수는 또 한 걸음 다가왔다. 그러자 해순이는 바위에 등을
붙이고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안 찌르께 오지 마!"
 "찔리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칵 찔러라. 그래서 같이 죽자!"하는 상수 눈에는 불이 일
듯하면서도 입가에는 어쩌면 미소가 돌 것도 같다. 상수의 눈을 쏘아보던 해순이는 그만 칼을
내던지고,
 "참 못됐다!"
 상수는 칼을 주어 칼날을 더듬어 보면서,
 "내 이 칼 좀 갈아다 줄까. 이 칼로야 어디..."
 "어쩌면 저렇게도 못됐을꼬."
 "전복 따듯 목을 싹 도리게스리..."
 "흉측해라. 꼭 섬도둑놈 같다!"
 "그랬으면 얼마나 속 시원할꼬?"
 "난 갈테야."
 "날 죽이고 가거라!"
 "아이 참, 그럼 어짜라카노."
 "내 말 한 번만..."
 "그럼 빨리 말해 보라나..."
 상수는 해순이 목에 팔을 감았다. 해순이는 팔굽으로 뿌리치고 돌아앉아 어깨로부터 물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날 해순이는 몇 번이고 상수에게 소문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그러나
이틀이 못가서 아낙네들 새, 해순이와 상수가 그렇고 그렇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다시
고등어철이 와도 칠성네 배는 소식조차 없었다. 밤이면 아낙네들만이 불가에 모여들었다.
칠성네가 그의 시아버지(박노인-박노인은 그뒤 이렇다 할 병도 없이 시름시름 앓아 누워 지금껏
자리를 뜨지 못한다)가 시키는 말이라면서 작년 그날을 맞아 일제히 제사를 지내라는 것이었다.
모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 H마을에 여덟 집 제사가 한꺼번에 있는 셈이다. 제사를 이틀
앞두고 해순이 시어머니는 해순이에게
 "얘야, 성구 제사나 마치거든 개가하도록 해라!"
 "..."
 "새파란 청상이 어찌 혼자 늙겠노."
 해순이는 그저 머엉했다.
 "가면 편할 자리가 있다. 그새 여러 번 말이 있었으나, 성구 첫제사나 치르고 보자고 해왔다.
너도 대강 짐작이 갈 게다."
 해순이는 낯이 자꾸 달아올랐다. 상수가 틀림없었다. 해순이는 고개가 자꾸만 무거워 갔다.
 "과부가 과부 사정을 안다고, 나도 일찍 홀로 된 몸이라 그 사정 다 안다. 죽은 자식보다 너가
더 애처롭다. 저것(시동생)도 인젠 배를 타고 하니 설마 두 식구야..."
 다음날은 벌써 상수가 해순이를 맞아 간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졌다. 그러면서도
아낙네들은 해순이마저 떠난다는 것이 진정 섭섭했고 맥이 풀렸다. 눈물을 글썽대는 아낙네도
있었다. 해순이는 이 마을-더구나 아낙네들의 귀염동이다. 생김새도 밉지 않거니와 마음에 그늘이
없다. 남을 의심할 줄도 모르고 거짓도 없다. 그보다도 우선 미역철이 오면...아낙네들은 절로
한숨이 잦았다. 그러나 해순이는 그저 남녀가 한 번 관계를 맺으면 으레 그렇게 되나 보다,
그래서 그렇게 됐고 또 그렇게 해야 되나 보다-이러는 동안에 후리막 안주인과 상수를 따라
해순이는 가야 했다.

 해순이마저 떠난 갯마을은 더욱 쓸쓸했다. 한 길 물 속에 미역발을 두고도 철을 놓쳐 버렸다.
보릿고개가 작이도 고되었다. 해조로 끼니를 이어가는 집도 한 두 집이 아니었다.
 또 고등어철이 왔다. 두 번째 맞는 제사를 사흘 앞두고 아낙네들은 불가에 모였다.
 "요번 제사에는 고등 생복도 없겠다!"
 "이밥은 못 차려도 바다를 베고서..."
 "바닷귀신이 고등 생복 없이는 응감도 않을검!"
 이렇게들 주거니받거니 하는데 뒤에서 누가,
 "왁!"
 해순이였다.
 "이거 새댁이 앙이가?"
 "새댁이 우짠 일고?"
 "제사라고 왔나?"
 "너거 새서방은?"
 그 중에서도 숙이 엄마는 해순이를 친정에 온 딸이나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싸고
들여다보면서,
 "좀 예짓(여위었)구나."
 그러자 칠성네가,
 "여기 좀 안거나 보자!"
 해순이는 아낙네들에 둘러싸여 비로소,
 "성님들 잘 기섰소?"
 "너거 시어머니 봤나?"
 해순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시어머니는 해순이를 보자 입부터 실룩이고 눈물을 거두었다. 아들 생각을 해선지?
아니면 제사날을 잊지 않고 온 며느리가 기특해선지? 해순이는 제방에 들어가서 우선
잠수연모부터 찾아보았다. 시렁 위에 그대로 얹혀 있었다. 해순이는 반가왔다. 맘이 놓였다.
그래서 불가로 나왔다.
 "난 인자 안 갈 테야. 성님들하고 여기서 같이 살래!"
 그리고는 훌쩍 일어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켰다. 오래간만에 맡는
그렇게도 그립던 갯냄새였다.
 아낙네들은 모두 서로 눈만 바라보고 말이 없었다.
 상수도 징용으로 끌려가 버린 산골에서는 견딜 수 없는 해순이었다.
 오뉴월 콩밭에 들어서면 깜박 숨이 막혔다. 바랭이 풀을 한 골 뜯고 나면 손아귀에 맥이 탁
풀렸다. 그럴 때마다 눈앞에 훤히 바다가 틔어 왔다.
 물옷을 입고 첨벙 뛰어들면-해순이는 못견디게 바다가 아쉽고 그리웠다.
 -고등어철-해순이는 그만 호미를 내던지고 산비탈로 올라갔다. 그러나 바다는 안 보였다.
해순이는 더욱 기를 쓰고 미칠 듯이 산꼭대기로 기어올랐다.
 그래도 바다는 안 보였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마을에서는 해순이가 매구 혼이 들렸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시가에서 무당을 데려다 굿을 차리는 새, 해순이는 걷은 소매만 내리고 마을을 빠져 나와 삼십
리 산길을 단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진정이냐. 속 시원히 말 좀 해라. 보자-."
 숙이 엄마의 좀 다급한 물음에도 해순이는 조용조용,
 "수수밭에 가면 수숫대가 모두 미역밭 같고, 콩밭에 가면 콩밭이 왼통 바다만 같고..."
 "그래!"
 "바다가 보고파 자꾸 산으로 올라갔지 머. 그래도 바다가 안 보이데-."
 "그래, 너거 새서방은?"
 "징용간 지가 언제라고."
 "저런..."
 "시집에선 날 매구 혼이 들렸대."
 "쯧쯧"
 "난 인제 죽어도 안 갈 테야. 성님들하고 여기 같이 살 테야!"
 이때 후리막에서 야단스리 꽹과리가 울렸다.
 "아, 후리다!"
 "후리다!"
 "안 가?"
 "왜 안 가!"
 숙이 엄마가 해순이를 보고,
 "맴치마만 두르고 빨리 나오라니..."
 해순이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맨발에 식은 모래가 해순이는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마루에 초아흐렛달이 걸렸다. 달 그림자를 따라 멸치 떼가 들었다.
 -데에야 데야-
 드물게 보는 멸치 떼였다.

    하근찬(1931__)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수난이대"가 당선돼 문단에 나온 그는, 스스로
'해방세대'임을 자처하듯 그의 모든 작품 속에 두 개의 전쟁을 철저하게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해방으로부터 45년, 6.25동란 발발로부터는 40년에 이르고 있는 시점에서도 전연 그
비극적 상처가 아물지 않는 민족의 수난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 징용으로 나가 팔 하나를 잃어 불구자가 된 백만도가 6.25동란으로 군대에 입대,
공산군의 전투에서 다리 하나를 잃고 역시 불구자가 돼 돌아오는 아들 진수를 마을 입구까지
마중 나갔다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더욱 마을 앞의 개천에 놓인 외나무다리를 팔은 없으나
다리가 성한 아버지가 다리 한쪽을 잃은 아들을 업고 건넌다는 것이 이 작품의 절정이다.
 이 밖의 작품 "나룻배 이야기", "흰 종이수염", "홍소", "분", "왕릉과 주둔군", "산울림", "붉은
언덕", "유령이야기" 등이 있다. 또한 문단 데뷔 14년만에 첫번째 장편소설 "야호"를 1970__1972년
동안 "신동아"에 연재했는데, 야호는 '요강'이라는 뜻으로 남편을 전쟁에 빼앗기고 '요강'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적 여인의 한을 그린 작품이다.

    수난이대
    "한국일보" 1957.

 진수가 돌아온다. 진수가 살아서 돌아온다. 아무개는 전사했다는 통지가 왔고, 아무개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소식이 없는데, 우리 진수는 살아서 오늘 돌아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어깻바람이 날 일이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박만도는 여느 때 같으면 아무래도 한 두 군데 앉아
쉬어야 넘어설 수 있는 요머리재를 단숨에 올라 채고 만 것이다. 가슴이 펄럭거리고 허벅지가
뻐근했다. 그러나 그는 고갯마루에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들 건너 멀리 바라보이는
정거장에서 연기가 몰씬몰씬 피어오르며 삐익 기적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들이 타고
내려올 기차는 점심때가 가까워야 도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해가 이제 겨우 산등성이
위로 한 뼘 가량 떠올랐으니, 오정이 되려면 아직 차례 멀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공연히 마음이
바빴다. 까짓것, 잠시 앉아 쉬면 뭐할 끼고.
 손가락으로 한 쪽 콧구멍을 찍 누르면서 팽! 마른 코를 풀어 던졌다. 그리고 휘청휘청 고갯길을
내려가는 것이다.
 내리막은 오르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고 팔을 흔들하치면 절로 굴러 내려가는
것이다. 만도는 오른쪽 팔만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왼쪽 팔은 조끼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있는 것이다. 삼대 독자가 죽다니 말이 되나. 살아서 돌아와야 일이 옳고말고,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다 하니 어디를 좀 다치기는 다친 모양지만, 설마 나같이 이렇게사 되지 않았겠지.
만도는 왼쪽 조끼 주머니에 꽂힌 소맷자락을 내려다보았다. 그 소맷자락 속에는 아무것도 든
것이 없었다. 그저 소맷자락만이 어깨 밑으로 덜렁 처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상 그쪽은
조끼주머니 속에 꽂혀 있는 것이다. 볼기짝이나 장딴지 같은 데를 총알이 약간 스쳐 갔을
따름이겠지. 나처럼 팔뚝 하나가 몽땅 달아날 지경이었다면 그 엄살스런 놈이 견뎌 냈을 턱이
없고 말고, 슬며시 걱정이 되기도 하는 듯 그는 속으로 이런 소리를 주워 섬겼다.
 내리막길은 빨랐다. 벌써 고개마루가 저만큼 높이 쳐다보이는 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서면
이제 들판이다. 내리막길을 쏘아 내려온 기운 그대로, 만도는 들길을 잰걸음 쳐 나가다가 개천
둑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외나무 다리가 놓여 있는 조그마한 시냇물이었다. 한여름
장마철에는 들어설라치면 배꼽이 묻히는 수도 있었지마는 요즈막엔 무릎이 잠길 듯 말 듯한 물인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서부터 물은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일 만큼 맑아져 갔다.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절로 이촉이 시려온다.
 만도는 물 기슭에 내려가서 쭈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고의 춤을 풀어 헤쳤다. 오줌을 찌익
깔기는 것이다. 거울면처럼 맑은 물 위에 오줌이 가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뿌우연 거품을
이루니 여기저기서 물고기떼가 모여든다. 제법 엄지손가락만씩한 파리도 여러 마리다. 한 바가지
잡아서 회쳐 놓고 한 잔 쭈욱 들이켰으면...군침이 목구멍에서 꿀꺽했다. 고기떼를 향해서 마른
코를 팽팽 풀어 던지고, 그는 외나무 다리를 조심히 디뎠다.
 길이가 얼마 되지 않는 다리였으나 아래로 물을 내려다보면 제법 아찔했다. 그는 이 외나무
다리를 퍽 조심한다.
 언젠가 한번, 읍에서 술이 꽤 되어 가지고 흥청거리며 돌아오다가, 물에 굴러 떨어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는 사람이 없었기 망정이지, 누가 보았더라면 큰 웃음거리가 될 뻔 했었다.
발목 하나를 약간 접쳤을 뿐, 크게 다친 데는 없었다. 이른 가을철이었기 때문에 옷을 벗어 둑에
늘어놓고 말릴 수는 있었으나 여간 창피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옷이 말짱 젖었다거나 옷이 마를
때까지 발가벗고 기다려야 한다거나 해서가 아니었다. 팔뚝 하나가 몽땅 잘라져 나간 흉측한
몸뚱아리를 하늘 앞에 드러내 놓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나치는 사람이 있으라치면, 하는
수 없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얼굴만 내놓고 앉아 있었다. 물이 선뜩해서 아래턱이
덜덜거렸으나, 오그라 붙은 사타구니께를 한 손으로 꽉 움켜 쥐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곧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하늘로 쳐들린 콧구멍이 연방
벌름거렸다.
 개천을 건너서 논두렁 길을 한참 부지런히 걸어가노라면 읍으로 들어가는 한길이 나선다.
도로변에 먼지를 부옇게 덮어 쓰고 도사리고 앉아 있는 초가집은 주막이다. 만도가 읍내 나올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르곤 하는 단골집인 것이다. 이집 눈썹이 짙은 여편네와는 예사로 농을
주고받는 사이다.
 술방 문턱을 들어서며 만도가,
 "서방님 들어가시나."하면, 여편네는,
 "아이 문둥아 어서 오느라."하는 것이 인사처럼 되어 있었다. 만도는 여간 언짢은 일이 있어도
이 여편네의 궁둥이 곁에 가서 앉으면 속이 절로 쑥 내려가는 것이었다.
 주막 앞을 지나치면서 만도는 술방 문을 열어 볼까 했으나, 방문 앞에 신이 여러 켤레 널려
있고, 방안에서 웃음소리가 요란하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신작로에 나서면 금시
읍이었다. 만도는 읍 들머리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정거장 쪽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장거리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진수가 돌아오는데 고등어나 한 손 사가지고 가야 될거
아닌가, 싶어서였다. 장날은 아니었으나 고깃전에는 없는 고기가 없었다. 이것을 살까 저것이
좋아 보이고 그것을 사러 가면 또 그 옆의 것이 먹음직해 보였다. 한참 이리저리 서성거리다가
결국은 고등어 한 손이었다. 그것을 달랑달랑 들고 정거장을 향해 가는데, 겨드랑 밑이
간질간질해 왔다. 그러나 한 쪽밖에 없는 손에 고등어를 들었으니 참 딱했다. 어깻죽지를 연방
위아래로 움직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정거장 대합실에 들어선 만도는 먼저 벽에 걸린 시계부터
바라보았다. 두시 이십분이었다. 벌써 두시 이십분이라니 내가 잘못 보았나? 아무리 두 눈을 씻고
보아도 시계는 틀림없는 두시 이십분이었다. 한쪽 걸상에 가서 궁둥이를 붙이면서도 곧장
미심쩍어 했다. 두시 이십분이라니, 그럼 벌써 점심때가 겨웠단 말인가? 말도 아닌 것이다.
자세히 보니 시계는 유리가 깨어졌고 먼지가 꺼멓게 앉아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엉터리였다.
벌써 그렇게 되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보이소 지금 몇 싱교?"
 맞은편에 앉은 양복장이한테 물어 보았다.
 "열시 사십분이오."
 "예, 그렁교."
 만도는 고개를 굽실하고는 두 눈을 연방 껌벅거렸다. 열시 사십분이라, 보자 그럼 아직도 한
시간이나 넘어 남았구나. 그는 안심이 되는 듯 후유 숨을 내쉬었다. 궐련을 한 개 빼 물고 불을
댕겼다. 정거장 대합실에 와서 이렇게 도사리고 앉아 있노라면, 만도는 곧잘 생각키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 일이 머리에 떠오르면 등골을 찬 기운이 좍 스쳐 내려가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진 이끼 낀 나무토막 같은 팔뚝이 지금도 저만큼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바로 이 정거장 마당에 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만도도
섞여 있었다.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기네들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지를 못했다. 그저 차를 타라면 탈 사람들이었다. 징용에 끌려나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십 이삼 년 옛날의 이야기인 것이다.
 북해도 탄광으로 갈 것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틀림없이 남양 군도로 간다는 사람도 있었다.
더러는 만주로 가면 좋겠다고 하기도 했다. 만도는 북해도가 아니면 남양 군도일 것이고, 거기도
아니면 만주겠지 설마 저희들이 하늘 밖으로사 끌고 가겠느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들창코로 담배 연기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이 좀 덜 좋은 것이 마누라가 변소
모퉁이 벚나무 밑에 우두커니 서서 한눈도 안 팔고 이쪽만을 바라보고 있는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주머니 속에 성냥을 두고도 옆사람에게 불을 빌리자며 슬며시 돌아서 버리곤 했다.
플랫폼으로 나가면서 뒤를 돌아 보니 마누라는 울밖에 서서 수건으로 코를 눌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만도는 코허리가 찡했다. 기차가 꽥꽥 소리를 지르면서 덜커덩! 하고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는 정말 덜 좋았다. 눈앞이 뿌우옇게 흐려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그러자 정거장이
까맣게 멀어져 가고 차창 밖으로 새로운 풍경이 획획 날라 들자, 그만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이었다. 오히려 기분이 유쾌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다를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처럼 큰 배에 몸을 실어 본 것은 더구나 처음이었다. 배 밑창에
엎드려서 꽥꽥 게워내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만도는 그저 골이 좀 띵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더러는 하루에 두 개씩 주는 뭉치밥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는 한꺼번에 하루 것을 뚝딱해도
시원찮았다. 모두들 내릴 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진 것이 사흘째 되는 날 황혼 때였다. 제가끔
봇짐을 챙기기에 바빴다. 만도도 호박덩이 만한 보따리를 옆구리에 덜렁 찼다. 갑판 위에 올라가
보니 하늘은 활활 타오르고 있고, 바닷물은 불에 녹은 쇠처럼 벌겋게 출렁거리고 있었다. 지금 막
태양이 물위로 뚝딱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햇덩어리가 어쩌면 그렇게 크고 붉은지 정말
처음이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주황빛으로 번쩍거리는 커다란 산이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무시무시하도록 황홀한 광경에 모두들 딱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만도는 어깨마루를 버쩍
들어 올리면서, 이야 고함을 질러 댔다. 그러나 섬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숨막히는
더위와 강제 노동과 그리고, 잠자리만씩이나 한 모기떼...그런 것뿐이었다.
 섬에다가 비행장을 닦는 것이었다. 모기에게 물려 혹이 된 자리를 벅벅 긁으며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무릅쓰고,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 때까지 산을 허물어 내고, 흙을 나르고 하기란,
고향에서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몸에도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니었다. 물도 입에 맞지 않았고,
음식도 이내 변하곤 해서 도저히  견디어 낼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병까지 돌았다. 일을
하다가도 벌떡 자빠지기가 예사였다. 그러나 만도는 아침저녁으로 약간씩 설사를 했을 뿐,
넘어지지는 않았다. 물도 차츰 입에 맞아 갔고, 고된 일도 날이 감에 딸라 몸에 배어드는
것이었다. 밤에 날개를 차며 몰려드는 모기떼만 아니면 그냥저냥 배겨 내겠는데, 정말 그놈의
모기들만은 질색이었다.
 사람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었다. 그처럼 험산하던 산과 산 틈바구니에 비행장을 다듬어 내고야
말았던 것이다. 허나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벅찬 일이 닥치는 것이었다.
연합군의 비행기가 날아들면서부터 일은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산허리에 굴을 파들어 가는
것이었다. 비행기를 집어넣을 굴이었다. 그리고 모든 시설을 다 굴 속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다이너마이트 튀는 소리가 산을 흔들어 댔다. 앵앵앵 하고 공습경보가 나면 일을
하던 손을 놓고 모두 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야 했다. 비행기가 돌아갈 때까지 그러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근 한 시간 가까이나 엎드려 있어야 하는 때도 있었는데 차라리 그것이
얼마나 편한지 몰랐다. 그래서 더러는 공습이 있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했다. 때로는 공습경보의
사이렌을 듣지 못하고 그냥 일을 계속하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모두 큰 손해를 보았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떻게 된 셈인지 사이렌이 미쳐 불기 전에
비행기가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드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기겁을 하는 것이었다. 가장
많은 손해를 입는 것도 그런 경우였다. 만도가 한쪽 팔뚝을 잃어버린 것도 바로 그런 때의
일이었다.
 여느날과 다름없이 굴 속에서 바위를 허물어 내고 있었다. 바위 틈서리에 구멍을 뚫어서
다이너마이트 장치를 하는 것이었다. 장치가 다 되면 모두 바깥으로 나가고 한 사람만 남아서
불을 댕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기 전에 얼른 밖으로 뛰어나와야 한다. 만도가 불을
댕기는 차례였다. 모두 바깥으로 나가 버린 다음, 그는 성냥을 꺼내었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기분이 꺼림칙했다. 모기에게 물린 자리가 자꾸 쑥쑥 쑤시는 것이었다. 긁적긁적 긁어 댔으나
도무지 시원한 맛이 없었다. 그는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성냥을 득! 그었다. 그래 그런지 몰라도
불은 이내 픽하고 꺼져 버렸다. 성냥 알맹이 네 개째에사 겨우 심지에 불이 댕겨졌다. 심지에
불이 붙는 것을 보자, 그는 얼른 몸을 굴 밖으로 날렸다. 바깥으로 막 나서려는 때였다. 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사나운 바람이 귓전을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만도는 정신이 아찔했다.
공습이었던 것이다. 산등성이를 넘어 달려든 비행기가 머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대가 뒤따라 날아드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그만
넋을 잃고 굴안으로 도로 달려 들어갔다. 달려 들어가서 굴바닥에 아무렇게나 픽 엎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쾅! 굴 안이 미어지는 듯하면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만도의 두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만도가 어렴풋이 눈을 떠 보니 바로 거기 눈앞에 누구의 것인지 모를 팔뚝이 하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손가락이 시퍼렇게 굳어져서 마치 이끼낀 나무토막처럼 보이는 팔뚝이었다.
만도는 그것이 자기의 어깨에 붙어 있던 것인 줄을 알자 그만 으악! 정신을 잃어버렸다. 재차
눈을 떴을 때는 그는 푹신한 담요 속에 누워 있었고, 한쪽 어깻죽지가 못 견디게 쿡쿡 쑤셔 댔다.
절단 수술은 이미 끝난 뒤였다.

 꽤애액-기차소리였다. 멀리 산모퉁이를 돌아오는가 보다. 만도는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서며
옆에 놓아둔 고등어를 집어 들었다. 기적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대합실 밖으로
뛰어나가 플랫폼이 잘 보이는 울타리 쪽으로 가서 발돋움을 했다 땡땡땡 종이 울자, 잠시 후
차는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기관차의 옆구리에서는 김이 픽픽 풍겨 나왔다. 만도의 얼굴은
바짝 긴장되었다. 시커먼 열차 속에서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 나왔다. 꽤 많은 손님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만도의 두 눈은 곧장 이리저리 굴렀다. 그러나 아들의 모습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저쪽 출찰구로 밀려가는 사람의 물결 속에 두 개의 지팡이를 짚고 절룩거리면서
걸어나가는 상이 군인이 있었으나, 만도는 그 사람에게 주의가 가지는 않았다. 기차에서 내릴
사람은 모두 내렸는가 보다, 이제 미처 차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플랫폼을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놈이 거짓으로 편지를 띄웠을 리는 없을 건데...만도는 자꾸
가슴이 떨렸다. 이상한 일이다, 하고 있을 때였다. 분명히 뒤에서,
 "아부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만도는 깜짝 놀라며,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만도의 두 눈은
무섭도록 크게 떠지고, 입은 딱 벌어졌다. 틀림없는 아들이었으나, 옛날과 같은 진수는 아니었다.
양쪽 겨드랑에 지팡이를 끼고 서 있는데, 스쳐 가는 바람결에 한쪽 바짓가랑이가 펄럭거리는
것이 아닌가. 만도는 눈앞에 노오래지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한참 동안 그저 멍멍하기만 하다가
코허리가 찡해지면서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도는 것이었다.
 "애라이 이놈아!"
 만도의 입술에서 모지게 튀어나온 첫마디였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고등어를 든 손이 불끈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아부지!"
 "이놈아, 이놈아..."
 만도의 들창코가 크게 벌름거리다가 훌쩍 물코를 들이마셨다. 진수의 두 눈에서는 어느 결에
눈물이 꾀죄죄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만도는 모든 게 진수의 잘못이기나 한 듯 험한 얼굴로,
 "가자 어서!"
 무뚝뚝한 한 마디를 던지고는 성큼성큼 앞장을 서 가는 것이었다. 진수는 입술에 내려와 묻는
짭짤한 것을 혀끝으로 날름 핥아 버리면서 절름절름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앞장 서 가는 만도는
뒤따라 오는 진수를 한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눈을 파는 법도 없었다. 무겁디 무거운 집을 진
사람처럼 땅바닥만을 내려다보며, 이따금 끙끙거리면서 부지런히 걸어만 가는 것이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걷는 진수가 성한 사람의, 게다가 부지런히 걷는 걸음을 당해 낼 수는 도저히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씩 뒤지기 시작한 것이 그만 작은 소리로 불러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진수는 목구멍을 왈칵 넘어오려는 뜨거운 기운을 참느라고, 어금니를
야물게 깨물어 보기도 했다. 그리고 두 개의 지팡이와 한 개의 다리를 열심히 움직여 대는
것이었다. 앞서 간 만도는 주막집 앞에 이르자, 비로소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진수는 오다가
나무 밑에 서서 오줌을 누고 있었다. 지팡이는 땅바닥에 던져 놓고, 한쪽 손으로는 볼일을 보고,
한쪽 손으로는 나무 등치를 안고 있는 꼬락서니가 을씨년스럽기 이를 데 없다. 만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으음! 신음 소리 비슷한 무거운 소리를 토했다. 그리고 술방 앞으로 가서 방문을 왈칵
잡아당겼다.
 기역자판 안에 도사리고 앉아서 속옷을 뒤집어 이를 잡고 있던 여편네가 킥! 웃으며 후다닥
옷섶을 여몄다. 그러나 만도는 웃지를 않았다. 방 문턱을 넘어서면서도 서방님 들어가신다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이처럼 뚝뚝한 얼굴을 하고 이 술방에 들어서기란 아마 처음 일일 것이다.
연편네가 멋도 모르고,
 "오늘은 서방님 아닌가배."하고 킬룩 웃었으나, 만도는 으음! 또 무거운 신음소리를 했을
뿐이었다. 기역자판 앞에 쭈그리고 앉기가 바쁘게,
 "빨리 빨리."
 재촉이었다.
 "핫다나 어지간히도 바쁜가배."
 "빨리 곱배기로 한 사발 달라니까구마."
 "오늘은 와 이카노?"
 여편네가 쳐 주는 술사발을 받아 들며, 만도는 후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입을 어른
사발로 가져갔다. 꿀꿀꿀 잘도 넘어간다. 그 큰 사발을 단숨에 비워 버리고는 도로 여편네 앞으로
불쑥 내민다. 그렇게 거들빼기로 석 잔을 해치우고사 으으윽! 게트림을 했다. 여편네가 눈을
휘둥그래 가지고 혀를 내둘렀다. 빈속에 술을 그처럼 때려 마시고 보니 금새 눈두덩이 확확
달아오르고 귀뿌리가 발갛게 익어 갔다. 술기가 얼근하게 돌자, 이제 좀 속이 풀리는 것 같아
방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진수는 이마에 땀을 척척 흘리면서 다 와 가고 있었다.
 "진수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리 들어와 보래."
 "..."
 진수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어기적어기적 다가왔다. 다가와서 방 문턱에 앉으니까, 여편네가
보고,
 "방으로 좀 들어 오이소."한다.
 "여기 좋심더."
 그는 수세미 같은 손수건으로 이마와 코 언저리를 아무렇게나 훔친다.
 "마 아무데서나 묵어라, 저 국수 한 그릇 말아주소."
 "야."
 "곱배기로 잘 좀...참지름도 치소 잉?"
 "야아."
 여편네는 코로 히죽 웃으면서 만도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고는 소쿠리에서 삶은 국수 두
뭉텅이를 집어 든다.
 진수가 국수를 훌훌 끌어넣고 있을 때, 여편네는 만도의 귓전으로 얼굴을 살짝 갖다 댄다.
 "아들이가?"
 만도는 고개를 약간 앞뒤로 끄덕거렸을 뿐, 좋은 기색을 하지 않았다. 진수가 국물을 훌쩍
들이마시고 나자, 만도는,
 "한 그릇 더 먹을래?"한다.
 "아니예."
 "한 그릇 더 묵지 와?"
 "고만 묵을랍니더."
 진수는 입술을 썩 닦으며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막을 나선 그들 부자는 논두렁 길로 접어 들었다. 아까와 같이 만도가 앞장을 서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진수를 앞세웠다. 지팡이를 짚고 기우뚱 기우뚱 앞서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팔뚝이 하나밖에 없는 아버지가 느릿느릿 따라가는 것이다. 손에 매달린 고등어가 대고
달랑달랑 춤을 춘다. 너무 급하게 들이부어서 그런지, 만도의 뱃속에서는 우글우글 술이 끓고
다리가 휘청거린다. 콧구멍으로 더운 숨을 훅훅 내뿜어 본다. 정신이 아른하다. 좋다.
 "진수야!"
 "예."
 "니 우짜다가 그래 댔노?"
 "전쟁하다가 이래 안댔심니꼬, 수루탄 쪼가리에 맞았심더."
 "수루탄 쪼가리에?"
 "예."
 "음..."
 "어른 낫지 않고 막 썩어 들어가기 땜에 군의관이 짤라 버립띠더. 병원에서예."
 "..."
 "아부지!"
 "와?"
 "이래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점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왜 못
살아."
 "차라리 아부지 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 놓니 첫째 걸어댕기기에
불편해서 뚝 죽겠심더."
 "야야 안 그렇다. 걸어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지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럴까예?"
 "그렇다니.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되겠나, 그제?"
 "예."
 진수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만도는 돌아보는 아들의 얼굴을 향해서
지그시 웃어 주었다. 술을 마시고 나면 이내 오줌이 마려워진다. 만도는 길가에 아무렇게나
쭈그리고 앉아서 고기 묶음을 입에 물려고 한다. 그것을 본 진수는,
 "아부지 그 고등어 이리 주이소."한다. 팔이 하나밖에 없는 몸으로 물건을 손에 든 채 소변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볼일을 마칠 때까지 진수는 저만큼 떨어져 서서 지팡이를 한쪽
손에 모아 쥐고 다른 손으로는 고등어를 들고 있었다. 볼일을 다 본 만도는 얼른 가서 아들의
손에서 고등어를 다시 받아 든다.
 개천 둑에 이르렀다. 외나무 다리가 놓여 있는 그 시냇물이다. 진수는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물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 않지만, 밑바닥이 모래흙이어서 지팡이를 짚고 건너가기가 만만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외나무다리 위로는 도저히 건너갈 재주가 없고...진수는 하는 수 없이 둑에
퍼지고 앉아서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만도는 잠시 멀뚱이 서서 아들의 하는 양을
내려다 보고 있다가,
 "진수야 그만두고 자아 업자."하는 것이었다.
 "업고 건느면 일이 다 되는 거 아니가, 자아 이거 받아라."
 고등어 묶음을 진수 앞으로 민다.
 "..."
 진수는 퍽 난처해 하면서 못 이기는 듯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만도는 등어리를 아들 앞에
갖다 대고 하나밖에 없는 팔을 뒤로 버쩍 내밀며,
 "자아 어서!"
 진수는 지팡이와 고등어를 각각 한 손에 쥐고, 아버지의 등어리로 가서 슬그머니 업혔다.
만도는 팔뚝을 뒤로 돌려서 아들의 하나뿐인 다리를 꼭 안았다. 그리고,
 "팔로 내 목을 감아야 될끼다."했다. 진수는 무척 황송한 듯 한쪽 눈을 찍 감으면서 고등어와
지팡이를 든 두 팔로 아버지의 굵은 목줄기를 부둥켜 안았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했다. 외나무 다리 위로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만도는 속으로,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이런 소리를 주워 섬겼고 아버지의 등에 업힌 진수는 곧장
미안스러운 얼굴을 하며,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하고 중얼거렸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 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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